난간 없고, 땅 꺼지고... 봄철 나들이객 안전 ‘벼랑끝’ [현장, 그곳&]

“날씨가 따뜻해서 산책하러 나왔는데 땅이 갈라져 있어 제대로 걸을 수도 없습니다.” 9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수원천의 산책로. 입구의 계단부터 정리되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성인 눈높이까지 뒤죽박죽 자라있었다. 시민들은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듯 손으로 나뭇가지를 치우며 위태롭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하천변 산책로 곳곳은 흙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아스팔트 도로가 깨져 있었으며 중간중간 길이 사라지는 곳도 있어 다시 돌아가는 시민들도 허다했다. 같은 날 오후 군포시 당정동과 화성시 영천동의 산책로도 상황은 마찬가지. 산책로 옆으로 낭떠러지와 물살이 거센 하천이 나있었지만 길 어디에서도 안전펜스나 난간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시민은 이곳을 걷다 발을 헛디뎌 하천으로 빠질뻔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목격됐다. 임인숙씨(50·여)는 “이곳에 자주 오는데 땅이 움푹 파여 있어 항상 발을 삐끗한다”며 “안전펜스도 없어 밤에는 잘 보이지 않아 하천으로 떨어질까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경기지역 내 관리되지 않은 산책로가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봄철 꽃 구경, 나들이 등으로 산책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이 많아진 만큼 안전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하천을 기준으로 도내 등록된 산책로는 총 79곳이다. 각 지자체는 매년 산책로에 대해 현장점검에 나서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보수가 시급한 곳을 대상으로만 관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산책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사고에 대한 위험성을 고려한 뒤 모든 산책로에 대한 꼼꼼한 현장 점검과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 교수는 “산책로의 경우 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른다. 지자체에선 산책로를 조성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 사고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매년 현장 점검을 하면서 보수 공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곳은 분기별로 더 자주 관리해야 하며 사고 대응 매뉴얼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매년 각 지자체에서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예산이 한정적이라 시급한 곳을 위주로 진행한다”며 “각 지자체에서 산책로 관리를 더욱 꼼꼼히 할 수 있도록 수요조사와 현장점검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못 들어옵니다" 말뿐인 아동친화도시… 노키즈존 ‘나몰라라 [현장, 그곳&]

“우리 아이들을 마음 편히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1일 오전 10시께 성남시 분당구의 한 카페. 이곳 카페 2층 입구엔 ‘어린이 출입 제한, 고등학생부터 이용이 가능합니다’라고 쓰인 표지판이 놓여 있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들어선 부모는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료를 고르다가 표지판을 보고 흠칫하며 굳은 표정으로 다시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같은 날 낮 12시께 수원특례시 영통구의 한 식당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식당 출입문과 외벽 곳곳엔 ‘노키즈존’이라는 안내문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온 정지수씨(39·여)는 “아이와 외출하려면 노키즈존인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게 일상”이라며 “아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은 키즈카페나 놀이터가 전부인데, 그럼 아이들은 어디서 밥을 먹고 문화 생활을 누릴 수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내 아동을 위한 아동친화도시가 ‘노키즈존’에 가려지면서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노키즈존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아동들의 권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아동친화도시는 국제아동기금(유니세프)이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시에 부여하는 인증이다. 이들 아동친화도시는 인증을 위해 비차별의 원칙,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 생존 및 발달에 대한 권리, 아동 의견 존중 등을 준수해야 한다. 현재 도내 아동친화도시는 수원, 성남, 용인, 평택 등 총 10곳이다. 인증을 받은 지자체는 아동권리침해사례를 조기 발굴하고 이를 구제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과 부모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아동을 차별하는 노키즈존을 마주하게 되면서 아동친화도시의 의미가 사라지고 있다. 도내 노키즈존은 80여곳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노키즈존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는 탓에 이를 지자체에서 막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오현숙 서정대 사회복지과 교수는 “노키즈존으로 아이들의 출입 자체를 한정하다보면 아이들의 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아동친화도시로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라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개인 사업장에서 업주들이 노키즈존을 만드는 것이고 이는 사업에 대한 자유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면서도 “업주들에게 아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교육과 홍보 등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전했다.

가천대 의대 개강 첫날, 강의실 텅텅…‘집단 유급’ 우려 [현장, 그곳&]

“오늘 개강이라는데, 학생들이 아무도 안와서 수업을 못했어요.” 1일 오전 10시께 인천 남동구 구월동의 가천대 의과대학 3층 2강의실. 한창 수업이 이뤄질 시간이지만 모든 강의실에는 학생들은 물론 강의를 해야하는 교수들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수십여개의 책상과 의자는 텅텅비어 있고 전등도 꺼져 있다. 강의실 앞 교탁에는 수업에 참석해야 하는 38명의 학생 명단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4개의 의대 강의실이 있는 3층 복도도 모두 불이 꺼져 어두침침하고, 복도를 오가는 사람은 1명도 없다. 복도 끝에는 지난 2월19일부터의 교육과정 일정표와 의과대학 학생 보호·신고센터 운영 포스터만 붙어 있다. 게다가 4층 실습실과 실기실로 가는 통로는 아예 문이 다 잠겨 있다. 이날 4층에서 만난 한 의대 관계자는 “오늘 개강해 오전 8시30분부터 정규 수업이 이뤄질 예정이었다”며 “하지만 학생들이 아무도 오지 않아 수업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말했다. 인천 가천대 의대가 개강했지만, 의대생들의 수업 거부가 여전하다. 가천대에 따르면 의예과 1학년 47명을 비롯해 총 250명의 학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하는 등 계속해서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서 가천대는 지난 2월말 개강할 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의대 정원 2천명 확대’ 등에 반발한 학생들의 수업 거부 등을 우려해 1차례 개강을 지난달 25일로 미뤘다. 이후 학생들의 집단 휴학계 제출에 이어 수업 거부가 이어지자 이날도 개강을 또 늦췄지만, 결국 수업이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가천대는 3번째 개강을 연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칫 개강하고 1개월 이상 학생들의 수업 결석이 이뤄질 경우 의대생의 집단 유급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인하대 의대도 지난달 4일 개강했지만, 현재까지 1학년(52명)을 제외한 2학년 이상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고 있다. 의대 재학생 304명 중 238명(78.2%)이 휴학계를 제출하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다. 인하대도 집단 유급을 우려해 자체 휴강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천대 관계자는 “학생들과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설득하고 있다”며 “가천대 비상대책위원회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지 등을 논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을 2천명 늘리면서 인하대는 종전 49명에서 120명으로, 가천대는 종전 40명에서 130명으로 각각 증원했다.

빙글빙글 ‘회전교차로’… 막무가내 진입 ‘위험천만’ [현장, 그곳&]

“속도를 줄이지 않고 회전교차로에 끼어들려는 차들 때문에 조마조마합니다.” 28일 오후 2시께 용인특례시 처인구 전대회전교차로. 회전교차로를 돌고 있는 차량과 진입하려는 차들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승용차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회전교차로에 진입해 하마터면 돌고 있는 차와 부딪힐 뻔한 아찔한 상황도 포착됐다. 운전자 김수현씨(30대)는 “이곳은 건설기계 차와 화물차 등도 많이 지나가는 곳이라 더욱 위험하다”며 “실제로 충돌사고도 여러 번 일어난 곳이라 회전교차로를 이용할 때마다 사고의 위협을 느낀다”고 불안해했다. 같은 날 수원특례시 팔달구의 한 회전교차로도 마찬가지. 교차로를 돌고 있는 회전 차량에 우선권이 있지만 양보하는 진입 차량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아랑곳하지 않고 끼어드는 진입 차량 때문에 회전하는 차량이 뒤로 밀려나면서 정체됐다. 경기도내 회전교차로 통행 시 운전자들이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충돌사고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 교통안전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경기도내 회전교차로는 2010년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지속적으로 설치되며 지난 2022년 358개까지 늘었다. 이와 함께 도내 회전교차로 교통사고도 한 해 평균 250여건씩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연도별로 보면 2018년 200건, 2019년 259건, 2020년 272건, 2021년 285건, 2022년 269건이다. 같은 기간 이 사고로 8명이 숨졌고 1천926명이 다쳤다. 특히 ‘진입 시 양보’, ‘주행 시 서행’ 등 회전교차로에서 통행 방법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충돌 사고가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6월 한국교통연구원 조사결과 회전교차로의 통행 방법을 정확히 알고 있는 운전자는 약 36%에 불과했다. 회전교차로에서는 시속 30㎞ 미만으로 속도를 줄여 반시계 방향으로 통행해야 한다. 또 회전하고 있는 차에 통행 우선권이 있으므로 진입 차량은 서행해야 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회전교차로 내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통행 방법에 대해 반복적인 홍보와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권기환 도로교통공단 경기도지부장은 “회전교차로에서 올바른 통행 방법을 지킬 수 있도록 안전수칙 홍보를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낡고 깨지고 낙서 ‘수두룩’… 공공조형물 ‘흉물’ 전락 [현장, 그곳&]

“국민의 혈세를 들여 도시 경관을 해치는 꼴이네요.” 27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상록구 사동 호수공원. 공원 내 시(詩)테마동산에는 무엇이 써 있는지 알아볼 수 없는 철제 조형물이 수두룩했다. 시가 적혀 있어야 할 조형물은 잉크가 번진 채 방치돼 있어 내용을 유추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일부 조형물에는 비속어 낙서가 적혀 있기도 했다. 매일 이곳을 산책한다는 이은아씨(가명·27)는 “조형물이 아니라 그냥 철근 덩어리같다”며 “관리를 하든지 치우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장안공원. 이곳에는 명패가 파손된 것처럼 보이는 기념비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이 기념비는 1970년대 말 수원 화성을 복원한 기념으로 세워진 ‘수원성복원정화기념비’다. 수원성의 이름을 화성으로 바꾸며 기념비의 명패도 ‘화성복원정화기념비’로 고쳤지만, 이 과정에서 그냥 석회를 덧칠해 처리됐고 그 흔적이 그대로 지저분하게 남아 있었다. 도내 일부 공공조형물이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어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공공조형물은 지자체뿐만 아니라 건립 주체인 개인 등의 소유인 경우도 있어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공공조형물이란 지역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공공시설에 건립한 동상이나 기념비 및 조형물을 뜻한다. 이는 지자체별 조례에 따라 관리되는데 그 의무는 자치단체장이나 건립 주체에게 있다. 올해 기준 도에 설치된 공공조형물은 총 1천446개에 달한다. 공공조형물이 점차 늘어나면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014년 무분별한 공공조형물 건립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고자 주기적 안전점검 등 사후관리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지자체 공공조형물 건립 및 관리체계 개선방안’을 권고했다. 하지만 도내 다수 지자체들은 공공조형물 관리의 담당 부서도 정해놓지 않는 등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지자체가 상태 점검에 나서더라도 공공조형물이 개인이나 단체 등의 소유인 경우도 있어 보수나 철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탓에 관리 주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조형물도 있다. 수원특례시 장안구 영화동의 한 길가에는 지난 1996년 ‘꿈이 있는 자리’라는 조형물이 세워졌지만, 시는 조형물의 관리 주체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현재 길가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조형물은 제때 관리하지 않으면 이후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해야 하는 등 많은 비용이 들어가게 된다”며 “지자체는 공공조형물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해 매뉴얼을 정교하게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관계자는 “공공조형물 관리 의무는 건립 주체인 단체나 개인에도 있어 지자체 판단만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며 “현장 점검을 확대하고 설치된 조형물을 관리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공짜 주차’ 입소문... 인천 송도 G타워 ‘주차 뺑뺑이’ [현장, 그곳&]

“전망대가 명소라길래 찾아왔는데 차 댈 곳이 없어서 주차장에서만 10분 넘게 돌고 있어요.” 26일 오전 8시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G타워 주차장. 차량 730대 주차가 가능한 규모지만 이른 아침부터 만차 상태였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자 주차면을 그려놓지 않은 구석진 곳마저 주차차량으로 가득했다. 주차장을 무료로 운영하다보니 입소문이 났고, 이 건물 입주사 직원들뿐만 아니라 인근 IBS타워 근무자를 비롯해 국제업무단지와 공사장 관계자들이 G타워 주차장을 이용해서다. 더욱이 G타워는 센트럴파크역과 가까워 지하철로 출·퇴근 하는 송도 주민들 일부가 이곳에 차를 세우고 지하철을 이용하기도 해 정작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는 민원인과 관광객이 주차를 하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자유구역청 G타워에는 송도 전망대와 국제우편과 화물을 담당하는 우체국, 은행 등이 입주해 있어 내국인은 물론 녹색기후기금 사무국(GCF)과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 동북아사무소 등의 외국인 방문도 잦은 곳이다. 방문객들은 주차장을 유료화 해서라도 건물 이용객과 관람객을 위한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망대를 찾은 이희란씨(43)는 “주차장을 10분 이상 돌고 돌아서야 겨우 빈자리를 찾았다”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지경까지는 아니었는데, 유료화를 해서라도 방문객들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정이 이렇지만 인천경제청은 지난 2003년 개관 당시 7천여만원을 들여 설치한 정산기 7대를 사용하지 않다가 뒤늦게 작동을 시도했지만 시간이 흘러 시스템 호환이 이뤄지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 인천경제청은 1억여원을 들여 정산기를 새로 구입한 뒤 관리 방안을 검토하며 민원인과 관광객 주차 불편을 최소화 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갑작스레 주차장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들어오고 있다”며 “현재 유료화 등 방안을 찾아 이른 시일 안에 주차장 부족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리 주체 갈등… 인천수도권매립지 승마장 ‘흉물’ 방치 [현장, 그곳&]

25일 오전 9시30분께 인천 서구 백석동 수도권매립지 내 승마장.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AG)를 치를 목적으로 수백억원을 들여 만들었지만 현재 이 곳 주경기장 객석 앞쪽에는 검은 먼지가 군데군데 쌓여 있었고 난간은 녹이 슨 채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본부 창문에서 경기장 쪽으로 늘어뜨린 전선 뭉치들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낡아 있는 상태였다. 주경기장은 물론이고 연습마장 3곳 부지도 잡초와 알 수 없는 이물질로 뒤덮여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끊겼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부실한 관리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인천 AG 당시 각국 국기가 펄럭였던 야외 스탠드에는 국기봉이 빠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고, 연습마장 출입문은 부서져 떨어진 채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말들의 건강을 살폈던 말보건소 바닥은 블럭이 파손돼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어 보수가 시급해 보였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SL공사)가 관리 중인 승마장이 인천 AG 이후 운영 주체를 찾지 못해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SL공사에 따르면 승마장은 부지면적 17만여㎡(약 5만1천400평), 시설면적 1만5천㎡(약 4천500평) 규모로 주경기장 1면과 연습마장 3면, 대기마장 1면, 대회본부, 마장마술연습장, 말보건소, 마사 12동 등 총 20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SL공사는 환경부와 인천시, 서울시, 경기도의 4자 협의에 따라 수도권에 반입하는 폐기물 반입수수료의 25%를 징수한 기반사업부담금으로 인천 AG 승마장 건립에만 408억원을 사용했다. 그러나 AG가 끝난 뒤 승마장은 천덕꾸러기가 됐다. SL공사와 협약을 한 인천경찰청 기마경찰대가 2015년부터 9마리의 말 관리와 공공 승마프로그램 운영을 한 것을 제외하면 수년째 별다른 활용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마다 2억원이 넘는 운영비를 감당해야 했던 SL공사는 지난 2019년 승마장 운영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을 10차까지 진행했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후 2021년에는 승마장과 수영장을 포함한 체육시설을 인천시가 운영해야 한다고 건의했으나 무산됐고, 이듬해 운영관리비용을 보전해 달라는 요청도 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지난해 2월 기마경찰대가 시설 사용을 끝내고 철수하면서 이곳은 1년 넘도록 폐건물로 방치되고 있다. SL공사 관계자는 “그동안 승마장 활용방안을 찾으려고 여러 방안을 검토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며 “조만간 시와 협의를 이어가는 등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승마장을 시가 직접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관련 협회나 마사회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이 없다 보니 매립지공사와 함께 머리를 맞대 대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답했다.

식당인 척 간판 걸고… 불법 유흥주점 ‘꼼수 영업’ [현장, 그곳&]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춤까지 추는데, 이게 식당인가요?” 지난 23일 밤 10시께 수원시 팔달구 매산동의 한 주점.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주점 한편에는 디제잉석이 마련돼 있었다. 큰 음악이 울리며 레이저 조명이 사방을 비추자, 술을 마시던 손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췄다. 벽에 걸린 빔프로젝터에 글자를 띄우며 흥을 돋우는 점원의 모습도 보였다. 같은 날 밤 11시께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포착됐다. 천장을 수놓은 형형색색 불빛과 춤추는 사람들, 흡사 유흥주점인 듯 보였지만 이곳은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곳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민우씨(가명·21)는 “신나는 분위기에 춤을 추며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마다 방문한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곳곳에 일반음식점 허가를 낸 채 유흥주점과 흡사한 영업을 하는 불법 업소들이 암암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운영 형태는 탈세의 우려가 크고 건전한 상업 질서를 무너뜨릴 여지가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4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일반음식점으로 등록된 업소는 음향 시설을 설치하거나 노래나 춤으로 손님의 유흥을 돋우는 형태의 영업이 금지된다. 하지만 도내 일부 업장은 단속을 피해가며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사실상 적발 자체가 어려운 현장 단속 체계 탓이 크다. 단속에 나선 공무원이 불법 여부 등을 적발하기 위해선 신분을 밝힌 뒤 현장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사이 유흥주점은 노래를 꺼버리는 등 현장 적발을 교묘하게 회피하고 있다. 폐쇄회로(CC)TV로 공무원의 방문을 미리 확인하기도 한다. 이처럼 유흥주점 형태의 일반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세금 부담을 피하기 위해서다. 유흥주점의 경우 수익의 23%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지만 일반음식점은 수익의 10%만을 부가가치세로 내면 되기 때문이다. 최원동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은 “유사업종을 빙자한 불법 유흥업은 상업 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라며 “일반음식점도 유흥주점 허가를 내듯 촘촘한 절차를 거쳐 단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되면 현장 점검을 나가지만 ‘점검을 나왔다’는 것을 먼저 밝혀야 하는 탓에 업소들이 불법 행위를 멈추거나 숨기면 적발이 어렵다”며 “잦은 민원이 들어온 업소들을 대상으로 단속을 벌여 불법 행위 근절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산림청 규정 무시하고 '싹뚝'... 앙상한 인천 가로수 [현장, 그곳&]

“보기에도 안좋은데, 저렇게 가지를 심하게 쳐내면 혹시 나무한테 안좋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지난 22일 오전 10시께 인천 연수구청 앞 원인재로. 한 초등학교 앞 길가에 나뭇가지들이 줄에 묶인 채 도로변에 놓여 있다. 울타리 옆 가로수들은 앙상하게 3가닥으로 뻗은 줄기만 남은 나무가 줄지어 섰다. 사람 다리 굵기 줄기 윗부분은 단면이 확실하게 보일 정도로 잘려나갔다. 한창 잎사귀를 뽐내며 바람을 맞아 하늘거려야 하는 나무들의 가지가 모두 잘려나가 잔인하다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지난 23일 방문한 미추홀구 수봉공원 앞 언덕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가로수는 긴 줄기가 모두 잘려나가 황량한 느낌마저 연출하며 공원이나 산에 심은 풍성한 나무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인천지역 지자체들이 가로수 가지치기를 과도한 수준으로 해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지적이다. 미추홀구 주민 A씨(72)는 “가지를 너무 잔인할 정도로 잘라 보기가 안좋다”며 “수봉공원을 오르는 길이라 최소한 자연풍경은 보이면 좋겠는데, 너무 앙상하게 굵은 가지만 남겨놔 황량하다”고 말했다. 24일 인천시와 지자체 등에 따르면 3~4월에 녹지조경사업 일환으로 도로변 가로수 정비에 나서며, 인천에서만 최소 7천 그루 이상의 나무에 가지치기 작업을 할 계획이다. 하지만 각 지자체들은 산림청이 제시한 ‘도시숲·생활숲·가로수 조성·관리 기준’을 따르지 않고 심한 가지치기를 단행, 가로수들을 이른바 ‘닭발’ 형태로만 앙상하게 남긴다. 특히, 이 같은 심한 가지치기는 나무 생육에도 좋지 않다고 전문가들 조언한다. 한 나무병원 관계자는 “ISA(국제수목관리학회)에서는 수관의 25% 이상 전정은 기피하라고 권장한다”며 “서울시의 경우 맹아지의 1/3은 제거, 1/3은 축소, 1/3은 보존시키는 방식을 권장하는데, 가장 중간 타협적인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불필요한 가지를 솎아내고 세력이 강한 가지를 선택적으로 축소 전정하는 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지자체들 예산사정을 고려한 선택이라 판단하지만, 강한 두절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산림청은 가지치기 규정 항목을 통해 대상이나 방법 등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가지치기를 지양’, ‘강한 가지치기가 필요한 경우에는 발주처 승인 필요’ 등 항목을 정했지만, 인천지역 지자체들은 이를 지키지 않는다. 박주희 인천녹색연합 사무처장은 “도심 속 자연공간이 오염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생태복지 차원에서 올바른 관리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 한 지자체 관계자는 “이전에도 과도한 가지치기로 인한 비판이 일어 작년 말부터 산림청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다”며 “최대한 닭발 같은 형태 가지치기를 지양하고, 전봇대, 교통표지판, 인근 건물 등 주위 시설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상황에 맞게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국제 강아지의 날’ 맞아 찾은 용인시 동물보호센터…“사람과 동물, 함께 가요” [현장, 그곳&]

매년 3월 23일은 ‘국제 강아지의 날’이다. 단순하게 보면 강아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독려하는 기념일처럼 보이지만, 버려지는 유기견을 보호하고 입양을 권장하는 문화 활성화를 도모하는 날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에 맞춰 국제 강아지의 날을 하루 앞두고 용인특례시 처인구 삼가동에 위치한 용인시 동물보호센터를 찾았다. 이곳은 시에서 직영하는 유실‧유기동물 보호소다. 센터 구성원들은 주인을 잃은 채 떠돌거나 버려진 유실·유기동물을 구조·보호한 뒤 주인을 찾아주거나 새 가족에게 입양을 보내고 있다. 22일 오후 2시께 용인시 동물보호센터 앞마당. 견사에서 저마다 시간을 보내던 유기견들이 낯선 이의 방문에 소리내 짖거나 꼬리 치며 반기는 등 제각각 손님을 맞고 있다. 담당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보호복을 입고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러 나섰다. 먼저 황갈색 털과 짧은 다리로 다부진 인상을 주는 살곰이에게 다가갔다. 간식을 건넸더니 배가 고팠는지, 친해질 생각보다는 간식을 얼른 가로채 달아나 버리는 데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차례 손냄새를 맡게 하고 교감을 시도하며 간식을 건네자 이내 온순하게 손에 먼저 자신의 코를 갖다대고, 털을 만져도 거부하지 않았다. 금새 정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이어 만난 강아지는 새하얀 털로 뒤덮인 마를린이다. 마를린은 사람을 좋아한다. 센터를 출발해 20여분간 마를린과 산책하며 발을 맞췄는데, 새로운 손님 방문에 신났는지 산책 내내 쉬지 않고 뛰어다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저마다 생김새도 다르고 건강 상태도 다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에 있는 강아지들이 모두 주인의 품에 안겨 있다면, 영락없이 듬뿍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생명이라는 점이다. 이곳에서 2년째 근무 중인 A 주무관은 “구역마다 입소된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체크하는데, 다쳤으면 신속하게 치료하고 배변 상태 점검, 사료 상태 확인 등도 수시로 하고 있다”며 “소심한 아이는 조금 활발해지도록, 발톱 깎는 게 힘든 아이는 새 주인이 발톱을 더 쉽게 깎을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새 가족과 만날 때 최적의 상태로 지낼 수 있게 신경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2017년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동물보호과를 설치하고 센터를 개소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천200여마리의 유실·유기동물을 구조한 가운데, 2023년 기준 24%는 보호자 반환, 60%는 입양·기증했다. 입양률 60%는 전국 평균인 27%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치다. 게다가 지난해 센터 내 안락사 비율은 4%로 한 자릿수였다. 전국 동물보호센터 평균은 약 17%, 경기도 평균은 약 22%인 점을 감안하면 용인 센터는 생명을 하나라도 살리는 길에 힘쓰는 셈이다. 지난해 3월에는 성남시·춘천시 반려동물 담당 공무원, 7월에는 인천 연수구의회 구의원들이 센터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방문했다. 이처럼 용인센터는 전국 모범사례로 손꼽힐 만큼 운영되고 있지만, 이에 맞춰 유기동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많이 모인다면 반려동물 문화 활성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비춰진다. 센터 관계자는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단순히 일로 생각하지 않고, 생명 하나를 더 살리자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며 “유기동물이 다시 누군가의 반려동물이 되어 사람과 동물 모두 더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1년 전 방화로 불탄 인천 현대시장, 희망의 빛 [현장, 그곳&]

“1년 동안 참 힘들었는데, 이젠 지붕 공사도 거의 끝났으니 다시 힘내야죠.” 21일 오전 10시께 인천 동구 송림동 현대시장. 높고 푸른 새 지붕을 덮은 덕에 시장 전체에 햇빛이 들어 환하다. 또 시장 거리에서 전 부치는 냄새와 생선 냄새가 풍긴다. 상인들은 화재 피해 전처럼 점심시간 손님 맞이 준비로 분주하다. 이곳은 지난해 3월 방화로 점포 47개가 불에 타면서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약 1년 동안 간이 지붕으로 덮어놔 어두컴컴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대체로 새 단장한 시장 모습을 반겼다. 반찬가게 사장 박순화씨(69)는 “한 1년 동안은 시장에서 햇빛을 볼 수 없었는데 이젠 공사가 거의 끝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환해졌다”며 “1년 전처럼 다시 단골도 만들고, 힘내 보려고 한다”고 했다. 생선가게 사장 김형태씨(59)는 “지난해 삶의 터전이던 시장이 불에 탄 모습을 보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암담했다”며 “지자체와 주변에서 보낸 도움의 손길로 시장이 깔끔해져 다시 장사를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방화로 인해 일대가 불에 탄 현대시장의 보수 공사가 공정률 85%에 이르면서 시장이 활력을 되찾고 있다. 상인들도 다시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손님맞이에 나선 모습이다. 이날 구에 따르면 시장 지붕을 난연성 재질의 아케이드로 덮고, 곳곳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등 각종 보수 공사를 다음 달 마칠 예정이다. 곧 가게들의 간판도 단다. 이에 상인들도 다시 시장에 돌아와 좌판을 펼치고 있다. 곳곳에선 “싸게 나왔어요. 보고 가세요”라는 정겨운 시장 호객 목소리도 들린다. 다만, 화재 여파 등으로 줄어든 시장 손님은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점심시간에 다시 방문하니, 여전히 손님 4~5명만 시장 통로를 오갈 뿐이다. 또 이번 리모델링 사업 구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현대시장 일대는 현대화가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각종 시설은 낡은 채다. 박기현 현대시장상인회장은 “시장은 전반적으로 정돈됐지만, 아직 찾아오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다”라며 “시장 활력을 되찾기 위한 지자체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구 관계자는 “큰 화재 피해로 그동안 고통이 컸을 상인들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려고 한다”며 “시장 현대화와 화재 예방 사업을 비롯해 손님들을 모을 수 있는 정책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구 현대시장은 지난해 3월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47개 점포가 불에 타며 10억여원의 재산 피해가 났다.

어둠 속 도로 위 유령… ‘스텔스 車’ 간담 서늘 [현장, 그곳&]

“어두운 날 라이트를 끄고 달리는 차량 때문에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지난 20일 오후 9시께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향 용인IC 부근. 적재함에 물건을 가득 실은 한 화물차가 후미등을 끈 채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뒤따르던 차량들은 불이 꺼진 화물차가 불안한 듯 이리저리 차선을 변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때 갑자기 화물차가 속도를 줄이자 뒤따르던 흰색 승용차는 뒤늦게 이를 발견하고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다. 같은 날 오후 10시30분께 수원특례시 경부고속도로 상황도 마찬가지. 한 화물차가 라이트를 끈 채 고속도로를 주행하고 있었다. 이때 한 차량이 화물차를 보지 못하고 차선 변경을 하다 하마터면 부딪힐 뻔한 상황이 생기기도 했다. 버스를 10년 가까이 몰았다는 김혁길씨(가명·58)는 “불 끄고 다니는 차들 때문에 사고 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저런 이기적인 차량은 다른 사람 목숨이 중요한지 모르는 거 같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스텔스 차량이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등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나 단속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1일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스텔스 차량은 야간이나 비 오는 날, 안개가 짙은 날 등 시야 확보가 어려운 날에 전조등이나 후미등을 켜지 않고 주행하는 차량을 말한다. 이러한 차량은 다른 운전자들이 주행 중 식별하기 어려워 사고의 원인이 된다. 도로교통법상 스텔스 차량은 적발 시 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제재가 가볍다 보니 스텔스차량 운전자들은 이를 법 위반으로 인식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제 최근 3년간(2021~2023년) 경기도에서 등화점등 불이행으로 적발된 건수는 총 1만192건이다. 이는 매년 평균 3천400여건에 달하는 스텔스 차량이 도내 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텔스 차량은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어 방어운전이 어렵기 때문에 대형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은 라이트를 끄고 달리면 왜 위험한지 알리는 홍보 활동과 시민이 직접 신고할 수 있게 교육 활동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스텔스 차량은 경찰이 순찰 중 발견하거나, 신고 접수 등을 통해 단속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계도·단속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불법 컨테이너 ‘우후죽순’… 관리·단속 ‘강 건너 불’ [현장, 그곳&]

18일 낮 12시께 화성시의 한 공장단지. 밀집한 공장들 곳곳에서 신고·허가를 받지 않거나 용도 외로 사용하고 있는 불법 컨테이너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제조업을 하는 A공장은 창고용으로 설치된 컨테이너를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었고, 인근 B회사는 허가받지 않은 컨테이너를 흡연실 등으로 바꿔 휴게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심지어 C회사는 이 같은 불법 행위가 들킬까 두려워 항공사진 촬영에 대비한 검은색 천막을 컨테이너 위에 덮어두기도 했다. A공장 관계자는 “인근 업체들을 보고 우리도 컨테이너를 설치해 기숙사로 사용하고 있었다”며 “컨테이너 설치에 신고나 허가가 필요한지 몰랐다”고 말했다. 같은 날 수원특례시 장안구의 한 건축회사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승인받지 않은 채 설치된 컨테이너 안에는 건축 자재 등이 쌓여 널부러진 모습이었다. 경기도내 곳곳에 불법 컨테이너가 난립하고 있다. 관련 법에 따라 신고·허가를 받지 않은 컨테이너는 건축·소방 관련 법령의 사각지대에 있어 화재에 취약한 만큼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리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컨테이너는 건축법상 임시사무실, 임시창고, 임시숙소 등으로 사용할 경우 관할 관청에 가설건축물 신고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불법으로 컨테이너를 설치하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도내에서 이 같은 불법 컨테이너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도내 한 가설건축물 철거업체 대표는 “불법 컨테이너 철거 신고만 매년 120건 이상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 같은 가설건축물은 건축·소방기준을 적용할 수 없어 화재 발생 등 안전사고 위험이 높다. 이 같은 상황에도 단속 주체인 지자체는 불법 컨테이너를 일일이 찾기 어렵다는 이유로 정확한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가설건축물은 내부에 목재, 가구 등 가연성 물질이 많지만, 소방기준이 없어 화재에 취약하다”며 “지자체는 건축주가 직접 분기마다 화재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 신고하도록 하는 방안과 위반 시 행정적 처벌을 강화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불법 컨테이너는 각 시·군에서 분기별로 단속하고 있지만 일일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단속이 미흡한 부분에 대해 각 지자체에 단속을 강화하라고 말하겠다”고 해명했다. 한편 최근 3년(2021~2023년)간 도내 컨테이너 화재는 총 625건으로, 9명이 숨지고 35억원 이상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지하에 숨은 무등록 학원… ‘안전’ 사각지대 [현장, 그곳&]

“지하에 학원이 있어도 되는 건가요?” 지난 15일 오후 3시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음악을 따라 어두운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초등학생 5명이 춤 강습을 받고 있었다. 학원법상 지하는 학원 인허가를 받을 수 없지만, 이곳에선 버젓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춤 강습을 하고 있었다. 내부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고, 화재진압장치는 외부 출입구 밖에 놓인 소화기 한 대 뿐이었다. 같은 날 오후 5시께 수원특례시 권선구 권선동. 성인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좁은 출입구를 따라 들어가자 각종 악기를 배우는 ‘방’이 나왔다. 외부로 퍼지는 악기 소리를 막기 위해 방마다 화재에 취약한 방음벽까지 설치했지만, 스프링클러는 없었다. 더욱이 출입구마저 비좁아서 화재 등 사고가 날 경우 대피가 어려워 보였다. 경기도내 일부 음악학원이 ‘지하에선 운영할 수 없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채 암암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는 비상상황 발생 시 이동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 데다 환기나 채광 면에서 학생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만큼 안전관리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7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도내 모든 학원은 경기도학원조례에 따라 원칙상 지하 운영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내 일부 시설은 학원 인허가를 받지 않은 채 ‘학원’이라는 명칭으로 영업하거나 ‘~뮤직’, ‘~댄스’라는 이름을 붙여 학원이 아닌 것처럼 둔갑해 불법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무등록 학원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현행법상 학원배상책임보험은 모든 학원이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정식 업체가 아닌 경우 의무가 아니라 사고 발생 시 보상을 받지 못할 여지가 크다. 특히 음악 학원은 화재에 더욱 취약하다. 음악 학원 특성상 소음을 차단하기 위한 방음 공사가 이뤄지는데, 방음재 등이 화재에 약해 불쏘시개로 작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에는 수원의 한 음악연습실에서 방마다 설치된 흡음재가 불에 타면서 구석 방에 있던 20대 남성 한 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등록 학원을 운영하는 사례는 증가하고 있다. 도내 무등록 학원의 적발 및 고발 건수는 지난 2021년 15건, 2022년 10건 등 코로나19로 주춤하다가 지난해 38건으로 늘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까다로운 학원 등록 절차를 거치지 않은 무등록 학원은 안전사고에 노출되기 쉬워 원천 폐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도교육청 관계자는 “온라인 접수나 민원 신고를 통해 무등록 학원을 감독하고 있지만 교육청은 수사 권한이 없어 신고가 들어와야만 현장을 적발할 수 있다”며 “무등록 학원 감독을 위한 신고 포상금 제도를 더욱 홍보하고 적극적인 단속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20년 전통 인천 어시장 ‘찬밥 신세’... 아무도 모르는 난전시장 ‘임시 이전’ [현장, 그곳&]

“소래포구항 공사 때문에 올해 초 다리 밑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매출이 반토막 났어요. 손님들이 찾아오질 않네요.” 16일 오전 10시30분께 인천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 소래수협 공판장을 지나 어시장 초입 소래대교를 따라가니 ‘난전시장, 소래대교 하단부로 임시 이전’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위치를 알려주는 화살표 방향이 적힌 현수막이 바람에 쉴 새 없이 부대끼는 탓에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상인들에게 묻고물어 겨우 난전시장이 새로 자리잡은 곳을 찾았다. 고무대야에 크지 않은 낙지 수십마리가 뭉쳐 있었고 그 옆으로 한눈에도 신선해 보이는 도다리, 장대, 간재미, 물메기, 아구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 곳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은 뚝 끊긴 상태였다. 20년이 넘게 인천의 전통 어시장으로 자리잡아 온 소래포구 난전 시장이 자리를 옮겼지만 홍보 부족 등으로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곳은 인천 앞바다에서 잡아온 어선들이 소래포구로 들어와 경매 물품을 제외한 나머지 생선을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파시’로 알려졌다. 50대 어민 박모씨는 “공사를 하는 인천해수청이나 남동구가 난정시장을 옮기면 장사가 잘되도록 홍보를 해주거나 도움을 주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히려 유투버들이 종종 가격을 물어보고 영상을 올려줘 그걸 보고 오는 시민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인천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오는 2026년 11월까지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소래포구항 건설공사가 진행된다. 하지만 20년이 넘도록 어선에서 직접 잡은 물고기만을 판매하는 소래포구 난전시장이 소래포구항 건설공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상인들이 장사에 어려움을 겪는다. 신영철 소래어촌계장은 “자리를 옮기기 전보다 40% 정도 손님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곧 있으면 성어기인데, 매출에 더 큰 영향이 있을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수막을 붙이는 등 나름대로 홍보를 한다고 해도, 연세가 많은 분들은 잘 찾아오지 못한다”며 “구나 해수청이 홍보에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우리도 어민들 처지는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공사 기간에는 감수를 해야 할 것”이라며 “이르면 연말 안에 난전시장 부지 공사만이라도 끝내 이용객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텅텅 빈 수난인명구조함… 안전 '꼬르륵' [현장, 그곳&]

“구조함이 텅텅 비었는데, 사람이 물에 빠지면 어떻게 구해야 하나요?” 14일 낮 12시께 의왕시 학의동 백운호수. 이곳에 설치된 수난인명구조함엔 ‘사고 발생 시 누구든지 구명환(구명튜브), 로프를 이용해 인명구조 활동을 해주길 바란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정작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구명튜브와 구명줄 등 구조에 필요한 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사용 안내도 마저 부착돼 있지 않았다. 같은 날 오후 3시께 수원특례시 영통구 광교저수지의 수난인명구조함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온전하게 장비를 갖춘 구조함은 3개뿐이었다. 일부 구명튜브는 가파른 절벽 밑에 나뒹굴고 있었고 물속에 잠겨있는 등 쉽사리 접근하기 힘든 곳에 방치돼 있었다. 이곳을 산책하던 양수연씨(26·여)는 “구조함이 텅텅 비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구할 수 있겠냐”며 “저렇게 관리가 안 되는데 위급 상황에서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혀를 찼다. 매년 경기지역에서 수난 사고가 늘어나고 있지만 시민을 구하기 위해 설치된 수난인명구조함이 관리가 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수난인명구조함은 하천, 계곡, 저수지 등에서 수난 사고 발생 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구조함이다. 관리지침에 따라 구조함 안엔 구명조끼, 구명튜브, 구명줄 등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며 구조함 전면엔 장비 사용 방법과 사고 발생 시 대처요령 등이 표기돼 있어야 한다. 또 구조함의 상태가 불량할 경우 지자체 등이 나서 즉시 보수 및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에도 현장에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위급상황 시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리 주체인 지자체는 분기마다 현장점검을 통해 관리한다고 하지만 현장의 상황은 달랐다. 내부가 비어있거나 구조장비의 상태가 불량한 수난인명구조함이 비일비재했다. 이러는 사이 경기지역에서 물 빠짐 사고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최근 3년간 도내 수난 사고 건수는 2021년 936건, 2022년 1천893건, 지난해 2천325건이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구조함이 관리가 안 된 채 방치되면 시민들이 물에 빠졌을 때 구조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구조장비가 잘 비치돼 있는지, 사용법은 잘 표기돼 있는지 세밀하게 관리해야 한다”며 “또한 도난을 대비해 폐쇄회로(CC)TV와 경보기 등을 설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구조함은 각 시·군에서 자체적인 예산으로 계획을 수립해 점검하고 있다”며 “미흡한 부분에 대해 각 지자체가 다시 철저히 관리하도록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부천시 뒷짐 행정이 만든… 백만송이 장미원 ‘쓰레기장’ [현장, 그곳&]

“시민들이 건강 증진을 위해 매일 이용 중인 산책로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13일 오후 2시께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백만송이 장미공원 뒤편 도당산 중턱 산책로. 이곳에서 만난 A씨(64)는 산책로 인근에 잔뜩 버려진 채 방치되고 있는 폐기물들을 보면서 손사래를 쳤다. 이 일대에는 폐 타이어와 폐 콘크리트, 폐 철재, 폐 골재, 폐 수목 등 온갖 폐기물 수십t이 방치돼 있어 얼핏 보면 폐기물 집하장을 방불케 했다. 산책로 바닥에는 작게 부서져 쌓여 있는 폐 콘크리트 덩어리 일부가 지저분하게 섞인 상태로 평탄 작업까지 이뤄진 것으로 보여 토양 오염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봄철 비라도 내릴 경우 폐기물에서 흘러나오는 폐수가 그대로 바닥 산책로 흙으로 스며 들어 지하수 오염도 우려된다. 개발제한구역인 백만송이 장미공원 뒤편 도당산 중턱 산책로에 다량의 폐기물들이 20여일간 버려진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도당산 아래에는 시가 자랑하는 봄 축제장 백만송이 장미공원이 위치해 있어 폐기물을 통해 오염된 폐수가 공원까지 흘러갈 수 있지만 당국은 이 같은 폐기물이 쌓여 있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B씨(60·부천시 원미구 상동)는 “폐기물들이 산책로 주변에 버려진 채 그대로 방치되면서 악취가 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며 “관리·감독해야 하는 행정당국은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부천시 관계자는 “해당 지역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으로 군부대가 있던 장소로 막사 등 건물 철거에 대한 행위에 대한 어떤 신청도 없었다”라며 “현장을 나가보고 빨리 조치하겠다”고 해명했다.

어린이 통학차, 짙은 선팅… 깜깜한 안전 ‘불안’ [현장, 그곳&]

“아이들이 타는 차량 내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선팅이 짙은데, 불안해서 아이를 어떻게 맡기나요?” 12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천천동에 세워진 한 어린이 통학 차량. 차량 내부에 몇 명의 아이들이 타 있는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창문이 새까맣게 선팅돼 있었다. 짙은 선팅으로 밖이 보이지 않았던 탓에 운전기사는 차량을 그대로 후진시키다 차량 뒤를 지나가던 아이가 부딪칠뻔한 아찔한 상황도 포착됐다. 같은 날 오후 4시께 안산시 초지동 어린이 통학 차량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선팅이 짙어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던 부모들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차량 내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학부모 박미정씨(여·37)는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는 차의 선팅이 이렇게 진하면 아이를 태우는 입장에서 안심이 되겠냐”며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모를 거 같아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이 통학 차량의 짙은 선팅이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차량 선팅에 대한 규제만 있을 뿐 제대로 된 처벌 조항이 없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지자체, 경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은 어린이 교통사고 근절 방안의 하나로 지난 2021년 4월17일부터 어린이 통학 차량의 모든 창 유리에 대해 가시광선 투과율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어린이 통학 차량은 자동차 관리법상 창문에 빛이 투과되는 정도가 70% 이상이어야 한다. 짙은 선팅으로 가시광선 투과율이 70% 미만일 경우 단속 기관의 시정 조치 후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에도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검사 후에 운전자들이 개인적으로 차량 선팅을 하고 있으며 단속에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별다른 처벌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지자체 등은 위반 차량을 적발할 경우 시정 권고 조치만 하고 있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어린이 통학 차량의 선팅이 짙으면 차량에 아이가 갇혀도 알 수 없다. 또 아이들은 주위를 잘 살피지 못하기 때문에 주행 시 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운전자들이 규제에 맞는 선팅을 할 수 있도록 관계 당국에서 철저한 단속과 운전자 교육 등을 함께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매년 경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 유관기관과 합동점검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차량을 한 번에 검사할 수 없어 빈틈이 있을 수 있다”며 “단속에 적발돼도 시정 권고 조치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단속기간 이후에 운전자에 대한 지속적인 계도와 교육 활동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수원특례시, 관심 시들… 세계유산 소나무 ‘고사 위기’ [현장, 그곳&]

“세계문화유산에 썩은 소나무라니 관광객 보기 부끄럽습니다.” 11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영화동 장안공원. 수원화성 보호구역에 속하는 이 공원에는 몸통이 썩어 절반가량 사라진 소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치기가 되지 않은 다른 나무가 소나무를 덮었고, 결국 햇빛 등 영양분을 흡수하지 못한 소나무가 고사한 것. 매일 이곳을 산책한다는 주민 김홍준씨(71)는 “지역을 대표하는 유적지에 심어둔 나무가 허술하게 관리되는 것 같다”며 “관광지일수록 더 신경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날 오전 11시께 팔달구 행궁동의 소나무도 비슷한 상태였다. 길거리 전선과 맞닿아 썩은 줄기가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풍경을 찍던 관광객은 온전한 나무를 찾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했다. 수원화성을 둘러싼 소나무가 변색된 채 방치되고 있다. 소나무는 수원특례시가 지정한 상징목인 만큼 더욱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11일 시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내에는 소나무 1만250주가 있다. 이 소나무들은 수원화성 보호구역에 있어 지자체가 별도 예산을 들여 관리한다. 그러나 보호구역의 일부 소나무는 썩거나 마른 채 문화재 경관을 해치고 있었다. 지난해 시가 이곳의 소나무 관리를 위해 들인 예산만 1억5천만원에 달하지만, 곳곳의 소나무가 고사 직전에 처하는 등 부실하게 관리된 셈이다. 게다가 현재 시에는 수원화성 인근 소나무들에 대한 별도의 관리 체계도 없어 같은 문제가 지속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관계자는 “소나무의 배경이 수원화성이라는 점에서 가로수 조경과 다른, 전통 조경 공간에서의 조경법을 따라야 한다”며 “지자체 매뉴얼이 없다면 문화재수리 표준관리법이라도 규율로 삼아 나무를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소나무 관리는 격년으로 병해충 방지용 약을 주고 가지를 치는 게 이상적인 관리법”이라면서도 “예산 문제로 우선순위를 세워 관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병해충 발생 시기 현장에 나가 나무 상태를 확인하는 방식으로만 운영하고 있다”며 “더 많은 예산을 확보해 문화재 경관 유지와 소나무 보호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날씨 풀리며 토사 ‘와르르’… 해빙기 안전 ‘비상’ [현장, 그곳&]

10일 오전 10시께 화성시 비봉면 일대. 도로 곳곳엔 급경사지에서 떨어진 흙과 돌이 나뒹굴고 있었다. 또 지저분하게 자란 나무들이 낙석방지망을 뚫고 나와 바람에 휘청이고 있었으며, 방지망이 없는 곳은 언제든지 도로 위에 흙이 쏟아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안성시 원곡면도 상황은 마찬가지. 깎인 절벽에서 굴러떨어진 크고 작은 돌들이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었고, 차량 운전자들은 낙석을 피하기 위해 차선을 급히 바꾸며 곡예운전을 하고 있었다. 덤프트럭 운전자 유한명씨(51·가명)는 “도로를 지날 때마다 흙과 돌이 떨어져 있어 급하게 피해 가기 일쑤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 지 몰라 겁이 난다”며 “해빙기라 사고 위험이 높은데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본격적인 해빙기가 시작되면서 경기지역 곳곳에서 낙석 및 붕괴 등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매년 2월부터 3월은 해빙기로, 기온이 오르며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지반이 약해진다. 이 때문에 시설물 침하 및 붕괴, 낙석 등의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높다. 최근 3년간 전국 기준 해빙기 관련 사고 건수는 총 143건으로, 낙석 및 낙빙 29건, 수난 29건, 산사태 9건, 지반 약화 76건 등이다. 이 기간 해빙기 사고로 인해 3명이 사망하고 8명이 다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난 겨울 역대 가장 많은 비가 내려 올해 해빙기 사고는 더욱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내린 비의 양은 평년의 2.7배로, 물을 머금은 흙이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기도는 각 지자체와 함께 해빙기 취약지역 4천638곳을 선정해 안전점검을 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점검 기간이 짧은 데다 그마저도 육안으로 점검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겨울 동안 많은 눈과 비로 빗물이 스며 하단에 고이면서 하중이 발생해 해빙기 붕괴 등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빙기 때 잠시 육안으로 살펴보는 것은 예방적인 점검이라고 할 수 없다”며 “지속적으로 사고 위험성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취약지역으로 분류돼도 매일 현장에 나가 볼 수 없다”면서도 “해빙기에 각 시·군과 취약지역을 선정해 현장을 점검하고 위험요소를 파악해 안전시설 등을 설치하겠다”고 말했다.

사회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