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지역 연극 속에는 지역 문화가 촘촘히 감겨 있다. 고양지역에서 행주대첩을 소재로 한, 용인지역에서 처인성을 배경으로 한, 수원지역에서 정조대왕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지역색’이 강하다는 게 지역 연극의 장점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역 이야기’에 갇혀 있다 보니 독창성이나 대중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지적한다. 수많은 연극이 뜨고 지길 반복하는 상황에서 지역 연극이 관객 옆에 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part1. 경기도 공연 관람객 6.6%만 ‘연극’ 선택 23일 예술경영지원센터(이하 센터)에 따르면 센터는 지난 4월 '빅데이터 기반 공연 관람 행태 분석 보고서'를 통해 2022년도 공연 시장의 장르 특성 및 소비행태를 분석하고, 향후 공연 관람계를 내다봤다. 이 중 ‘연극’ 통계만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먼저 서울에서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13명은 연극(13.7%)을 본 것으로 조사됐다. 경남(13.7%)도 마찬가지였다. 뒤이어 충남 공연 관람객의 11.3%가, 대전 공연 관람객의 10.5%가 ‘연극’을 봤다고 답했다. 반면 경기도에선 공연을 본 관객 100명 중 6명만이 연극(6.6%) 장르를 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양음악(28.5%)과 무용(6.7%) 공연의 관람객보다도 연극의 인기가 적었다. 티켓 구입가격은 연극(5만6천507원)이 한국음악(4만131원)보다 1만원가량 비쌌다. 뮤지컬(12만2천784원)이나 서양음악(7만9371원), 무용(6만9841원)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부산(평균 13만329원) ▲서울(11만3천595원) ▲울산(10만690원) 지역의 공연 티켓 값이 상위권이었고, ▲경북(2만9181원) ▲광주(3만5천345원) ▲전남(5만774원) 지역이 하위권이었다. 경기도(6만7천305원)는 중간 정도였다. 대부분의 공연이 수도권에 집중된 가운데 특히 연극은 80% 이상이 서울에 몰려 있었다. 비수도권의 공연량은 매우 적은 편이지만 그나마 인천, 광주, 전남 등에선 서양음악, 한국음악, 무용 등이 약진하는 상태였다. 경기도 연극은 관람객 수도, 티켓 가격도, 공연량도 크게 돋보이는 부분 없이 ‘평균~평균 아래’ 수준에 머무르는 실정이었다. ■ part2. 대학로에 뺏기고, 지역 한계 갇히고 경기도 내에서 유독 연극의 인기가 낮은 이유는 뭘까. 첫 번째로는 ‘서울과의 원활한 접근성’이 꼽힌다. 타 시·도와 비교했을 때 경기도는 서울로 이동하기 편하기 때문에 ‘대학로’에 지역 연극인과 관람객을 뺏기고 있다는 의미다. 연극인 입장에선 서울로 가야 더 많은 활동 기회를 얻을 수 있고, 관람객 입장에선 서울 작품이 더 퀄리티가 높다는 인식이 있다는 게 연극계의 시선이다. 두 번째로는 ‘작품 내용의 한계성’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정부 및 지자체, 문화기관 등의 연극 관련 ‘예산’ 문제와도 연결된다. 현재 상당수 지역 극단이 재정 문제로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려워 특정 사업·공모 예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데, 이 예산의 대상과 지원금이 무척 한정적이라는 주장이다. 사업·공모에서 요구하는 작품 주제가 ‘지역’에 초점 맞춰져 한정적이라는 볼멘소리도 더해진다. 경기도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는 한 연출가는 “소규모 극단은 돈이 없어서 1년에 작품 하나를 선보이기도 힘들다. 외부에서 예산이 수반된다면 연간 최대 4개 정도 할 수 있는데 그 예산을 받으려면 사실상 ‘순수 창작극’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사업을 알리는 작품, 지자체 행사에서 공연할 작품 등 주제가 정해져 있고 거기에 ‘지역색’이 더해져야 메리트가 된다. 즉 지역 이야기가 담겨야 예산을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라며 “지역 문화를 우선시하는 건 좋지만, 문제는 그러한 작품을 지속적으로 공연하기엔 ‘유료 관객’이 모일 소재가 아니라 단편에 그치고 끝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 part3. “그럼에도 지역·극단 매력 살리며 고군분투” 관객들의 무관심 속 연극계는 ‘예산 지원’ 틀에 묶여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연극계 내부에서는 지역 명소를 배경으로 하고, 역사적 사건을 소개하고,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가운데 최대한 ‘내 극단만의 매력’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충남에는 충청도 사투리로만 쓰여진 연극 <요새는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그, 윷놀이>가 있고, 제주에는 4·3사건을 다룬 연극 <바람의 소리>가 있는 것처럼, 그게 지역 연극이 현재를 버텨내고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승민 극단 오픈런씨어터 대표(제42회 대한민국연극제 용인 행정감독·한국연극협회 경기도지회 사무처장)는 “아무래도 지역에는 각자의 지역을 대표 콘텐츠로 내세운 공연들이 많다”면서 “특히 경기도의 경우 지역별, 극단별 강한 특색이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지역 공연들이 수없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경기도에도 행주대첩(고양), 처인성(용인), 정조대왕(수원) 등을 메인으로 만든 작품들이 쏟아진다는 설명이다. 주 대표는 “보통 극단들은 정기공연을 통해 본인 극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목적을 담는 작품을 선보이는데 그 외엔 지역에서 원하는 콘텐츠의 작품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 예산 확보를 위한 목적극 성향의 작품이 나오고 있다는 의미”라며 “그렇다고 그게 잘못 됐다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지역 예산으로는 지역민을 위한, 지역 콘텐츠 작품을 만들 수밖에 없으니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정기공연이 아니어도 연극인의 창작 활동을 보장하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한층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part4. 연극을 기록하는 자들 이토록 힘겹게 탄생하는 지역 연극, 어쩌면 ‘한 번의 무대’로 사라지는 휘발성과 일회성을 가진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편집을 통해 남는 영상물은 OTT 등에 남을 길이 있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현장성의 공연은 기록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연극을 하나하나 지키는 게, 연극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게, 차세대 연극인을 키워나가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극을 남기는 자들’이 있다. 경기지역 안에선 공연판 넷플릭스로 불리우는 ‘경기아트온(ON)’이 사실상 유일무이하다. 경기아트센터가 제작한 예술인 지원 공연영상 콘텐츠 플랫폼으로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 있다. 특히 ‘플레이슈터’도 대표적이다. 플레이슈터는 2020년 1월부터 연극 등 작품을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해왔던 전국 최초의 공연예술 플랫폼이다. 다양한 작품을 영상으로 제작해 체계적으로 아카이빙을 관리하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은 창작자들과 배분한다. 강경호 플레이슈터 대표는 “정부·지자체 예산 등의 지원금 말고도 공연예술인들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고 싶었다”며 “보존되지 않는 공연예술을 기록하기 위해 ‘감히 내가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연극 활동을 했던 그는 “연극이 살아있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위해선, 왜 사라지면 안 되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생각하고 싶다. 만약 연극의 수요도, 공급도 없다면 그땐 없어지는 게 맞다. 이유 없는 쇠퇴는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화성의 이화뱅곳민들레연극마을을 언급하면서 “민들레연극마을이 품앗이 공연예술축제를 여는 것처럼 지역에선 마을이라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극을 키워나가고 있다. 예전에 ‘교양예술’로만 여겨지던 연극이 이젠 ‘지역 커뮤니티’ 개념으로 달라진 것”이라며 “무대에 있어야만 예술로 인정받는 게 아니지 않나. 저희는 그러한 공연예술계의 변화상을 남기고 싶었다”고 전했다. 강 대표는 “베토벤 곡을 국립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한다고 해서 버스킹(Busking·거리 공연)하지 말란 법이 있나. 어떠한 경로건 베토벤 곡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며 “그 곡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작곡가도, 연주가도, 악기도 덩달아 파급효과로 관심을 받을 거다. 제가 공연예술계에서 바라는 것도 그런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3장: 2002년 평일의 어느 날. 연출가 겸 배우이자 극단 마당 대표인 김학재(57·남양주)는 무대에 오를 준비를 했다. 관객은 단 두 명이었지만 ‘한 명이라도 공연을 보러 오면 변동 없이 진행한다’는 신조를 버릴 순 없었다. ‘심봉사’였던 학재는 그날 무대 위에서 울었다. 중간에 모든 관객이 나간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해야 돼, 말아야 돼?” 하는 사이 결국 공연이 멈췄다. 보는 이가 없으니까. ‘재미없어서 가셨나보다, 우리 진짜 열심히 해야 된다’고 단원들과 서로를 토닥이며 반성하던 때, 두 관객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엄마와 딸이란다. “저희 둘을 위해 공연을 해주시는 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데 다시 들어가서 보기엔 더 미안해서…”라며 꽃바구니와 빵을 건넸다. 그렇게 학재는 다시 한 번 울었다. 지역 연극에 보답하리라 다짐한 계기이기도 했다. “사실 지역 연극은 남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너 어디서 활동하냐?’ 했을 때 ‘남양주’라고 하면 ‘먹고 살겠냐?’ 하는 거죠.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성공하려면 상업화가 돼야 하는데 저는 지역 연극에서 절대 상업화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음식점으로 예를 들면 유명한 ‘맛집’이 있어야 근처에 비슷한 가게들이 생기고 다 같이 장사가 잘되는데 지역 연극은 그런 구조가 아니거든요. 서울엔 ‘대학로’가 있지만 경기도엔 그런 여건이 마땅치 않아요." 그의 말마따나 경기도에서 오픈런(open run·상시공연)으로 진행되는 작품을 떠올리려 해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막을 여는 아동극이 있다 쳐도 대개 서울발(發) 작품이었다. “경기도를 비롯한 여러 지역들의 창작 연극은 어떠한 ‘임무’에 맞춰져 있어요. 정부나 지자체 요청에 맞춰서 특정 축제에 선보일 수 있는 공연이라던지 하는 식이죠. 거기에 제가 상업극을 가지고 갈 수는 없어요. 그렇다고 제가 순수예술로 남양주의 지역색을 살려서 정약용 공연을 한다면 누가 보러 올까요? 시민들이 관심을 가질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경기도에서 오픈런 공연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이유가 되죠.” 이와 같은 이야기는 경기도에서 활동하는 여러 극단 관계자들도 공통적으로 했다. 지역 연극 공연은 정부 및 지자체나 문화기관 등의 예산을 지원받아 이뤄지는 형태가 많은데, 이때 예산이 ‘지역색 있는 공연’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창작극’은 지원 대상에서 다소 배제돼 있다는 설명이었다. 학재는 본인을 두고 ‘연극만 고집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아닌 ‘겉핥기식 연극인’이라 표현했다. 연극만을 바라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생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지역 연극은 살아 있어야 된다”던 그다. “내 일을, 내 지역에서 할 수 없다는 건 너무 슬픈 얘기 아닌가요? 제가 정약용, 단종, 정순왕후를 자꾸 창작 공연을 통해 끄집어내는 이유는 우리 지역을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에요. 대학로가 아닌 곳에서 지역의 이야기로 일말의 끈을 놓지 않고 남양주의 힘이 되겠다는 것, 그 꿈을 가지고 저는 지역에서 연극합니다”라던 학재. ‘고집 있는 연극인’ 그 자체였다. 점점 줄어드는 연극 관객은 “우리가 자처한 것”이라던 그는 “그래도 지역 연극은 매력 있어요”라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정약용 체험연극: 정약용의 다섯 가지 직업>(2023년作)에 이어 내년에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를 중심으로 연극제 하나를 만들고 싶다는 기대도 품는다. “남양주만이 가질 수 있는 특색, 그리고 남양주만의 특별한 문화 요소를 하나씩 만들고 싶어요. 먹고 살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게 제가 연극을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극은 저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해요. ‘연극이 나를 떠나는구나’ 싶을 때 제가 ‘내가 떠나보내줘야지’ 하는 생각을 품으며 활동하는 중입니다.”
“시각장애 아이들에게도 일반 아이들과 같은 교육 여건이 주어져야 합니다. 예술가들의 따뜻한 손길로 만든 ‘촉각 도서’가 그 첫걸음입니다.” 지난 19일 찾아간 의정부시 가능동의 ‘나누미촉각연구소’.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5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둘러앉아 각양각색의 소품을 두고 아이디어 회의가 한창이었다. 동화책의 줄거리와 각 장의 구성, 꼭 들어가야 하는 소품의 재질부터 각자 잘하는 작업에 따른 업무 분배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이들의 손엔 장애아동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녹아 있었다.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지난 2010년부터 시각장애 아이들을 위해 손끝으로 읽는 그림책인 ‘촉각 도서’를 제작해 전국의 병원·학교 등에 보급하고 있다. 설치미술가인 문미희 대표를 주축으로 조각가, 시각장애인 등 5~6명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점자와 소품이 부착돼 있는 그림동화를 만든다. 나누미촉각연구소가 이 같은 활동을 시작했을 때, 국내엔 패브릭(직물)으로 만들어진 촉각도서가 없었다. 이에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시각장애 아이들이 ‘촉각으로 보는 법’을 제대로 익히게 하기 위해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소품의 크기를 확대했다. 또 다칠 위험이 없는 패브릭을 사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촉각도서 중 50여권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광주세광학교, 인천 장사래어린이도서관, 부평기적의도서관, 병원 등에 기증했다. 올해는 시각장애 영유아 교육기관인 서울효정학교에 5권의 촉각 도서를 기증하기 위해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누미촉각연구소 소속 시각장애인 박규민씨는 “촉각 도서는 한 권을 만드는 데 6개월 이상이 소요될 만큼 많은 정성이 들어간다”며 “시각장애 아이들이 경험하기 어려운 사물들을 직접 만져보면서 상상력과 창의성을 키울 수 있게 해 성장 시기에 필요한 발달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나누미촉각연구소는 촉각도서와 함께 시각장애인들의 지도인 ‘촉지도’도 만들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1호선 의정부역 촉지도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20년엔 경기도청 북부청사, 2021년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2022년 연천 재인폭포공원에 촉지도를 설치해 큰 호응을 얻었다. 문미희 대표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장애인들이 촉각도서와 촉지도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토리노는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였던 도시다. 피에몬테주의 주도인 이 도시에서 올여름의 며칠을 보냈다. 토리노에서는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유럽에서 가장 큰 야외 시장은 채소와 과일이 신선하고 저렴했다. 살구 1㎏, 납작복숭아 1㎏, 바질 한 단, 루콜라 한 묶음, 완숙 토마토 한 개, 모차렐라치즈 250g 한 통, 계란 다섯 알을 샀는데 총 1만4천500원. 서울이라면 최소 두 배는 줘야 하는 가격이었다. 마침 부엌이 딸린 아파트에 머물고 있어 매일 장을 봐 아침을 해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바게트를 길게 잘라 모차렐라치즈와 잘 익은 토마토를 썰어 넣고 바질 잎 몇 장을 올리면 이탈리아 국기 색깔의 샌드위치였다. 아침을 먹고 나면 토리노의 엄청난 문화유산을 즐길 차례였다. 프랑스의 론알프스 지역(당시 사보이 지역으로 불렸다)에서 창설된 사보이 가문은 사보이아 백국에서 시작해 공국을 거쳐 사르데냐 왕국, 통일 이탈리아 왕국까지 건설했던 가문이다. 16세기 중반 이후 토리노는 사보이아 가문의 근거지였다. 토리노 혹은 튜린으로 불리는 이 도시는 피아트, 란치아, 알파로메오 같은 이탈리아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음식과 와인이 맛있기로 유명하고 슬로푸드 운동이 시작된 도시라고 해서 토리노를 찾았다. 토리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왔는데 첫날, 아름다운 바로크 건축물이 늘어선 산 카를로 광장에 선 순간부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이 도시가 왜 소문난 관광지가 아닌 걸까. 무솔리니를 기용하는 바람에 이탈리아를 세계대전에 휩쓸리게 한 데다 쫓겨나서 망명 50년 만에 귀국한 사보이아 가문의 후계자들이 하나같이 한심한 인물들이라 이 도시를 기피하는 건 아닐 테고…. 장엄한 문화유적을 지닌 이 도시는 관광객이 적은 탓인지 시민들이 친절하고 여유가 있었다. 카페 성애자인 필자가 토리노의 명성 자자한 카페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카페 알 비체린. 커피에 초콜릿과 크림을 섞은 음료 비체린을 발명한 곳인데 무려 1763년부터 영업을 해왔다. 250년 역사가 깃든 카페는 작고 소박했다. 더 마음에 드는 점은 카페를 시작한 이는 남성이었지만 대대로 여성이 운영해 왔다는 사실. 여성이 가게를 꾸리는 일이 거의 불가능했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던 덕분에 갈 곳 없던 여성들이(그 시절 카페는 남성 전용 구역이었다) 이곳에서는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성소 콘솔라타 덕분에 더 안전하게 느꼈다나. 여성 경영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마지막 여주인의 가족과 오래 일한 여성 직원들이 카페를 꾸리고 있다. 비체린은 손잡이가 없는 유리잔을 뜻하는데 이 음료가 이런 잔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붙은 이름. 권위 있(다)는 잡지 감베로 로쏘는 2001년 이곳을 ‘이탈리아 최고의 바’로 선정하기도 했다. 유서 깊은 카페에 단골이 없을 수 없다. 이곳의 단골 손님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프리드리히 니체, 푸치니(라보엠은 토리노의 극장에서 초연됐다), ‘나무 위의 남작’을 쓴 이탈로 칼비노 등이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아예 그의 소설 ‘프라하의 공동묘지’에서 이곳을 길게 묘사했는데, 이 카페의 냅킨에 소설의 그 부분이 적혀 있다. 필자는 에코의 글이 적힌 냅킨 한 장을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아무튼 토리노의 대표 음료인 비체린을 원조집에서 마셔봤는데(안동소주를 안동 종가댁에 가서 마신 셈이랄까) 초콜릿 음료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한 잔은 즐겁게 마실 수 있는 맛이었다. 에스프레소 위에 핫초콜릿, 그 위에 다시 크림을 부은 칼로리 대폭발 음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도 이 카페는 특별한지 조용히 기념사진을 찍는 이들이 보였다. 계산서를 받아보니 비체린 한 잔의 가격은 7.9유로. 우리 돈 1만2천원에 육박했다. 계산할 때 살짝 손이 떨렸다. 토리노는 니체와도 인연이 깊은 도시다. 말년까지 니체를 괴롭힌 정신질환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곳. 니체가 토리노에 머물던 시절,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선 그는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얻어맞고 쓰러지는 말을 보게 된다. 그는 온 몸으로 마부를 가로막으며 말을 끌어안고 울다가 혼절했다. 이 일을 계기로 니체는 정신을 놓고, 10여년 간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내다 죽음에 이른다. 니체의 이 행동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광장 근처 니체가 머물던 하숙집을 찾아갔다가 피를 나눈 남자에게 니체의 집 사진을 보냈다. 니체의 일화가 등장하는 영화 ‘토리노의 말’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서. 그는 자타공인 문학청년에 영화광이라 분명 봤을 거라 생각했다. 곧 답이 왔다. “토리노의 말 보다가 중도 포기. 타르코프스키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영화. 말과 인간을 함께 희생시키는 영화였다”는 말에 혼자 웃었다. 토리노에는 궁전이 많다. 이탈리아가 공화국이 된 후 사보이아 왕족은 망명을 떠났는데(97년 이후 귀국이 자유로워졌다) 그들이 남긴 궁 열 네 곳이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됐고 나는 다섯 곳을 방문했다. 가장 좋았던 곳은 토리노 외곽에 자리한 베나리아 레알레 궁이었다. 이탈리아 바로크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데 광대한 정원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역사적인 장소 곳곳에 현대작가의 작품을 전시해 더욱 생기 있는 공간이 됐다. 토리노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간 박물관은 몰레 안토넬리아나. 토리노시의 건축적 상징인 이 건물은 형이상학파 화가 키리코의 그림에도 몇 번이나 등장한다. 1863년 건축가 알레산드로 안토넬리가 설계한 건물의 높이는 167.5m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석조 건물이었다. 토리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줄은 긴데 영화 박물관 줄은 짧았다. 전망대를 빼고 영화 박물관만 둘러봤다. 토리노는 1896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영화가 상영된 도시. 영화 박물관은 생각보다 재미난 곳이었다. 영화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를 세세히 구분해 전시하고 최초의 카메라 장비며 촬영도구도 있고 영화 촬영의 과학적 배경도 친절히 설명해준다. 제일 재밌는 건 실제로 영화에 사용된 소품 전시였다. 해리포터의 지팡이부터 스파이더맨의 옷, 매트릭스의 총알 같은 것들. 토리노는 3박4일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볼거리, 먹거리가 가득한 도시였다. 이탈리아는 몇 번을 와도 늘 새롭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도시 볼로냐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이억주 목사)는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후보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최근 논평을 통해 “대통령실이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에 전 헌법재판관 안창호 변호사를 지명한 것은 헌법재판관 당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소신 있는 행보를 보여왔고, 법무부에 있을 때도 법률 복지 향상에 기여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이라며 “우리 국민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는데 소홀함이 없는 국가 기관의 국가인권위원장으로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의 인권위원장 활동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인권위원장은 특정 정파, 특정 이념 세력, 특정인들을 대변하는 사람만이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특히 동성애 성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다수의 인권이 무시되는 이때 안창호 후보야말로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노작홍사용문학관(관장 손택수)은 제24회 노작문학상에 황유원 시인의 ‘하얀 사슴 연못’이 선정됐다고 21일 밝혔다. 노작문학상은 일제강점기에 문예동인지 ‘백조’를 창간하고 낭만주의 시 운동을 주도한 홍사용(1900~1947) 시인의 정신을 기리고자 그의 호 ‘노작(露雀)’이란 명칭으로 제정됐다. 2001년 제1회 수상자인 안도현 시인을 시작으로 문인수, 이영광, 김행숙, 김소연, 최두석 등 한국 문단의 굵직한 시인들이 상을 받았다. 올해는 2023년 1월부터 2024년 6월 사이에 발간된 시집 중, 등단 10년이 넘거나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가진 시인의 시집을 대상으로 했다. 제24회 노작문학상 본심사위원은 김사인, 안도현, 유지선(이상 시인), 최현식 평론가로 이들은 “황유원 시인의 하얀 사슴 연못은 무심하되 집중된 아름다움이 가득한 시집”이라며, “한국의 젊은 시인들이 맞닥뜨린 모험의 애매성으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최현식 평론가는 황유원 시인에 대해 “홍사용 시인의 시 정신과 당대의 뛰어난 선구적인 표현 능력을 잘 계승하여 미래의 한국시를 잘 일궈 나갈 능력을 갖춘 시인”이라고 평했다. 황유원 시인은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2015년 김수영문학상, 2022년 대한민국예술원 젊은예술가상, 현대문학상, 2023년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수상작 ‘하얀 사슴 연못’은 황유원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제68회 현대문학상 수상작을 포함해 총 55편의 시를 실었다.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정지용 시인의 ‘백록담’(1941)을 시집 곳곳에서 오마주하고 있다. 노작문학상 시상식은 다음 달 28일 오후 5시 노작홍사용문학관에서 열린다.
#2장: 배고픈 예술인이지만 “배고픈 예술을 한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코로나19로 공연장 문이 잠겨도 무대를 지키고, OTT 확대로 객석이 비어도 관객을 기다렸다. 나는 굶을지언정 나의 예술은 배불렀으면 하는 바람에서 연극인들은 연극을 가꿔왔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연극은 하염없이 흔들린다. 특히 지역 연극이 심각하다. 공연시장 전반은 성장하는데 연극시장은 정체된 지금, 경기도에 초점을 맞춰 지역 연극의 현실을 살펴봤다. ■ part1. 서울 10편 공연할 때 경기·인천 달랑 ‘1건’ 19일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해 1~5월 경기‧인천권에서 진행된 연극 공연은 총 94건이다. 코로나19 펜데믹 후 ‘활발히’ 공연 중인 상황인데도 100건이 채 안 된다. 이는 서울권(836건)의 11.2%에 그치는 수준이다. 비수도권인 경상권(180건)과 비교해도 절반(52%) 정도다. 그나마 대전·세종·충청권의 연극 공연건수가 70건으로 경기‧인천권과 비슷했지만, 지역 간의 인구 차이를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경기·인천권 연극이 저조하게 공연 중임을 알 수 있다. ‘개막 편수’, ‘티켓 판매건수’, ‘티켓 판매수입’ 또한 경기·인천권은 서울권에 한참 뒤처졌다. 같은 기간 서울권에서 개막한 연극은 493개로 전국의 61.1%를 차지했다. 다음은 경상권이 123개로 15.2%, 경기·인천권이 86개로 10.7%였다. 서울권에서 팔린 연극 티켓 건수는 전국 연극의 78.9%(82만7천917장)였고, 그로 인한 수입 또한 213억8천424만5천만원에 달했다. 경상권은 전국의 8.9%(9만3천322장)만큼 티켓을 팔고, 20억5천861억1천만원의 수입을 거뒀다. 이때 경기·인천권의 티켓 판매건수는 단 5.18%(5만4천323장)에 불과했다. 수입도 11억922만4천만원으로 서울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수도권이라는 위치와 전국 최다인 인구 비중 등을 고려하면 타 지역에 비해 경기·인천권 연극 입지가 낮다고 풀이된다. ■ part2. “연극 수입은 月41만원” ‘인기 없는 연극’은 ‘저조한 수입’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8년과 2021년에 발표한 ‘예술인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축, 무용, 만화를 뺀 모든 분야에서 예술인의 수입이 감소했다. 그 중에서 특히 감소세가 두드러진 분야가 바로 ‘연극’이다. 구체적으로 2017년 평균 수입(연극인 가구 총수입) 4천82만원에서 2020년 평균 수입 3천147만원으로 22.9% 떨어졌다. ‘음악(-18.8%)’, ‘영화(-15.3%)’, ‘국악(-14.6%)’, ‘대중음악(-12.5%)’ 등의 수입도 줄었지만, 현장성이 무엇보다 큰 연극계가 코로나19로 가장 타격을 입은 셈이다. 이 여파로 한 달 수입이 100만원 미만일 것으로 추산되는 가구(총수입 1천만원 미만인 가구) 역시 ‘연극계’가 3.1%(2017년)에서 6.7%(2020년)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음악’이 1.5%에서 2.9%로 1.4%p 증가하고, ‘국악’이 1.7%에서 1.2%로 0.5%p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연극계에서 유독 저소득 가구가 급증했다. 결과적으로 연극 분야 종사자의 연간 수입(연극인 개인 예술활동 수입)은 2017년 1천891만원에서 2020년 491만원으로 74% 떨어졌다. 연극인의 월급이 41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겸업 연극인 비율에 대해서는 정확히 조사된 바 없지만, 연극인들은 “겸업을 안 하는 연극인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한 겸업하는 연극인의 58.1%가 일용직·임시직 등의 불안정한 일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연극인들이 겸업하는 이유의 78.3%는 예술 활동에서 낮거나 불안정한 소득 때문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경기·인천 지역 연극계는 타 지역에 비해 공연 건수도, 수입도 많지 않다 보니 더 열악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기북부권의 A극단 대표는 “저 역시 야간에 새벽 배송 일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연극인이지만 ‘연극이 먼저냐, 생활이 먼저냐’ 하는 문제에서 무조건 연극이 먼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생활도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경기남부권의 B극단 관계자도 “지역 연극배우들이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연극판을 많이들 떠난다. 그렇다 보니 지역 연극계가 아마추어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며 “서울과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연극만 하려는 연극인들은 서울로 떠나버린다”고 말했다. ■ part3. 한정적 지원 없애고, 대중적 예술 더해야 경기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기준 경기도 연극인은 580여명이며, 극단은 130여개 존재한다. 코로나19 유행 이후 ‘새로운 연극인’이 점점 줄어들었는데 그나마 올해는 선방하고 있는 편이다. 경기도 내 신인 연극인은 2021년 382명, 2022년 120명, 2023년 35명까지 떨어졌고 올해(6월 기준) 43명으로 소폭 증가세를 보였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무대가 열린 영향과 함께 ‘경기도 예술인 기회소득’ 등을 받기 위해 연극인으로 등록한 인원이 늘어나는 등 상황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신인 연극인도, 기존 연극인도 상당수가 ‘생활전선’에 뛰어든 터라, 지역 연극 명맥을 이어가기 위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건표 연극평론가 겸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지역 연극이 사실상 위기에 처했다”면서 “첫째는 지자체의 연극인 지원이 보편적이지 못하고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순수예술을 하는 연극인 중 90% 가량이 지원에서 배제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순수예술에 대한 심의나 경쟁 체제, 지원기준 등이 어렵게 갖춰져 있어서 지역예술인들이 지자체의 지원을 피부로 와 닿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경기도 내에서 지금처럼 예술인들에게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보다도 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도내 연극계 또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순수예술로 대중에게 좀 더 다가서기 위해 대중성을 갖추는 노력 등이 더해져야 지역 연극도 소멸하지 않고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part4. 안산, 예술인 5명 중 1명이 연극인…연극단체 비율 1위는 양주 한편 경기도 예술인 중 '연극인'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안산으로 나타났다. 경기예술인지원센터에 따르면 예술인 데이터베이스(DB)에 등록된 도내 예술인은 지난 6월18일 기준 6천880명으로 집계됐다. 여기서 예술장르는 연극을 포함한 음악, 미술, 문학, 사진 등 13개다. 이 중 연극인은 8.43%(579명)이었다. 경기도 예술인 100명 중 8명만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시·군별로 보면 안산시 예술인 중 20.3%가, 과천시 예술인 중 17.7%가, 하남시 예술인 중 12.6%가 '연극'을 하며 상위 1~3위를 차지했다. 반면 여주시 예술인은 1.8%만이 연극을 했고, 안성시(4.8%)와 군포시(5%)도 하위권에 머물렀다. 예술단체별로는 상황이 달랐다. 양주시에서 활동하는 전체 예술단체의 33.3%는 '연극단체'로 도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광명시는 전체 예술단체 가운데 27.3%가, 과천시와 연천군은 각각 25%가 연극단체로 분류됐다. 이들 지역 예술단체 4곳 중 1곳 이상이 연극을 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안성시에는 연극단체가 없었다. 이어 시흥시 5.9%, 용인시 및 여주시 각 7.1%, 수원시 8.1%만이 연극단체로 집계되며 타 지역에 비해 미미한 수치를 보였다.
문 닫는 공연장, 소멸하는 극단, 텅 빈 객석. 연극계가 흔들린다. 연기·조명·의상 등 각종 예술장르의 총망라였는데 이젠 ‘연극’ 자체가 리미티드 런(limited run·기간 한정공연)이다. 경기도 연극판은 어떨까. ‘대학로’와 가깝지만 ‘공연메카’는 아닌 이곳에서 경기도 연극인들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추구하나. 지역 연극을 통해 문화예술계의 현실과 이상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인터뷰 줌-in 연출가 겸 배우 극단 허리 대표 유준식 “고향 그린 연극… 내 꿈이고 고집이었다” #1장: 어둠이 내린 소공연장. 검은 커튼이 양옆으로 펼쳐지면 비로소 공연의 막이 열린다. 웅성거리던 객석의 숨을 멈춰 세우고 한 남성이 고요히 무대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는다. 무채색 옷을 입은 연출가 겸 배우, 극단 허리 대표인 유준식(63·의정부)이다. "지역 연극계 어때요?" 묻자 준식은 "대학로는 청과물시장, 지역은 과수원"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에게 되도록 비싼 값에 잘 팔려는 '시장', 그리고 판매의 본질이 되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고자 하는 '밭' 정도의 차이가 있단다. 시장 중심 사회에서 농사는 소홀해졌다는 게 그의 독백이다. 상업도, 비상업도 무엇 하나 잘못된 건 없다. 다만 그는 "본질에 대한 깊이 추구가 지역 예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연극 현장은 과연 '지역' 연극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까. 짧은 상념에 빠진 준식은 10여초 후 천천히 입을 뗐다. "이를테면 대구에 지역 연극이 있어요. 부산 연극, 창원 연극, 진도 연극도 있고요. 그런데 경기 연극은 참 이상해요. 제가 애써 '의정부 연극'이라 표현한다 해도 그 단어가 웃기게 들려요. 과연 경기 연극과 대학로 연극의 변별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거죠. 오히려 수도권과 멀수록 '지역 연극'은 잘 돼요. 경기도는 서울 문화에 가까우니까 '우리 고장의 예술판'이 형성되기 힘들거든요. 의정부 사람들이 여기서 연극 보겠어요? 40분만 나가면 서울인데." 준식은 잠시 멈추더니 이내 힘을 실어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의정부 연극'이라는 고집을 부리는 거죠.” 1962년, 그가 태어났을 때 '이 땅'은 산골마을이었다. 의정부시 최동단에 위치해 한자로도 '산곡(山谷)동'이라 쓴다. 학교를 가기 위해 정류장까지 가는 길만 걸어서 30분. 그런데 그 정류장이 기지촌 가까이에 있었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행패를 무섭도록 실감나게 봐왔어요. 마을 할머니들도 미군만 보이면 다 도망가 빗장을 걸어 잠굴 정도였죠. 매일 헬기·장갑차 훈련 소음에 시달리는데, 예민한 청소년기에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근데 학교를 가면 주한미군은 우리의 '우방'이래요. 현실과 교육 사이의 괴리감이 있었죠. 서울을 지켜주며 피해를 감수하는 지역, 분단을 강화하는 중심 도시. 그게 의정부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걸 연극으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분단’, 그리고 ‘고향’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고 싶던 준식, 그게 경기도 연극계에 몸담게 된 이유이자 명분이었다. 문학·미술·음악·무용의 총체적 형태인 이 '밭'에서 가족과 '농사'를 꾸린 세월만 30년이 훌쩍 넘었다. 그의 곁에는 연극기획자인 아내, 배우인 딸, 음악가인 아들이 함께한다. 대표적인 작품은 <만남>(1996년作)과 <환향>(2010년作)이다. 시골에서 순박하게 살고 있는 아이들을 이웃이 괴롭히는 내용, ‘환향년’ 등으로 불리우며 수모를 겪는 이들의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을 상징화하고, 의순공주 묘역 등을 담으며 지역색을 잔뜩 묻혔다. "정치권력으로 풀어내면 ‘폭력’, 경제 논리로 풀어내면 ‘고용’, 감동의 힘으로 풀어내면 ‘문화’ 아니겠습니까. 저는 문화를 선택했죠. 지역 연극이 곧 기초예술이기 때문에, 그 뿌리가 단단해야 이파리가 무성한 나무로 중앙예술이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대학로건 어디건 예술 활동은 이어져야 하니까 저는 경기도 소극장에서 연극을 하는 겁니다." 깊이 있는 지역만의 이야기를 문화로 승화하기 위해, 경기도 연극무대에 남아 있다는 그였다.
한국건강관리협회 경기도지부(이하 건협 경기도지부)는 SK청솔노인복지관을 찾아 메디체크어머니봉사단과 함께 매달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배식 봉사활동을 펼쳤다고 19일 밝혔다. 이날 건협 경기도지부 임직원들과 메디체크어머니봉사단은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배식, 식탁 정리, 잔반 처리, 청소 등을 하며 봉사했다. 건협 경기도지부 관계자는 “지역 사회공헌 인정기관으로서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인증심사를 통한 질 높은 건강검진을 제공하고, 지역사회 기관과 연계한 건강강좌 및 건강캠페인,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며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의료 소외계층 대상 무료 건강검진, 물품 후원 및 성금 기탁 등 다양한 사회공헌사업을 펼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를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전시가 열렸다. 유관순, 안중근 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에 작가별 해석을 담아 역사적 시간성과 인물의 특성을 재조명했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은 광복 79주년을 기념해 경기미술창고 특별전시 ‘대한독립’을 선보이고 있다. 4명의 작가가 각각 연령별, 장르별, 기술에 따른 예술 접근성을 달리해 작품을 제작했으며, 15점의 작품을 통해 광복절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길 수 있다. 중견 화가인 박순철 작가는 안중근, 홍범도, 김구, 한용운 등의 인물을 수묵화로 표현했다. 박 작가는 특유의 섬세한 관찰과 대담한 붓질, 생략에 의한 표현방식으로 사실 묘사부터 풍자까지 다양한 인물풍경을 개성있게 드러내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선 담담한 수묵 기법으로 독립운동 인물을 역사적 인물에 그치지 않고 지금 시대의 오롯한 한 사람으로서 담백하게 표현했다. 반면 손지훈 작가는 독창적인 디지털 동양화 기법을 통해 현대적인 소재를 전통으로 역 전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유관순 열사가 노트북을 보며 차를 마시고, 김좌진 장군이 오토바이를 타고 있거나, 안중근 의사가 드론을 날리는 등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담아냈다. 이들이 대한민국 독립 이후 소소한 일상 속에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을 통해 지금의 대한민국을 함께 살아가는 인물로 재조명했다. 특히 유승백 작가는 그래피티 아트 장르를 활용한 스프레이 기법으로 색감이 주는 생명력을 흑백사진과 결합해 표현했다. 작가는 윤봉길, 안창호, 이호영 등 독립운동 인물의 업적을 색상과 패턴으로 연결했으며, 인물을 부각하는 방법으로 흑백기법을 사용해 역사적 시간성을 담아냈다. 이승재 작가는 일상 속의 군상들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판타지로 변환하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한반도를 호랑이로 비유해 일제강점기부터 광복까지의 역사적 서사를 구성했다.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며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두의 아픔과 기쁨을 일러스트로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최기영 학예연구사는 “전시 공간 역시 태극기 형상을 모티브로 해 ‘건, 곤, 감, 리’를 4명의 작가별 공간으로 구성했다”며 “60대의 박순철 작가부터 30대의 이승재 작가까지 연령층이 모두 다른 작가들이 각각 독립운동가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담고자 했다.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전시를 통해 광복의 의미와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