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검사소가 특이한 투표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동네 주민들에겐 익숙하고 편리한 투표소입니다.” 제21대 대선일인 3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영통구 매탄동의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자동차검사소 앞엔 ‘매탄3동 제7투표소’라는 표식이 붙어 있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한두명씩 신분증을 들고 익숙하다는 듯 1층 고객 대기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검사를 위해 차량으로 붐볐던 이곳은 이날 딱 하루 유권자들을 위해 투표소로 변신했다. 두살배기 아이를 안고 온 박시후씨(37)는 “투표소로 변한 모습이 이색적이면서도 차량을 정비받으러 오는 곳이라 낯설지만은 않다”며 “우리 아이가 더 좋은 세상, 더 나은 미래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하며 투표했다”고 강조했다. 제20대 대선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이번 대선까지 총 세번의 투표를 이곳에서 했다는 김지우씨(28)도 투표소에 대해 익숙하고 편리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우씨는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네 주민에겐 익숙한 곳”이라며 “당연히 나라가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투표를 했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끝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결혼하고 육아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21대 대통령선거일인 3일 오전 10시께 양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에 마련된 회천2동 제8투표소. 오는 10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 유동협씨(30)와 채희수씨(28)가 함께 투표소를 찾았다. 투표소가 마련된 아파트는 이들이 신혼살림을 시작할 예정인 곳이다. 새출발을 앞두고 인생의 또 다른 중요한 선택을 함께하기 위해 투표에 나선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진지함이 교차했다. 유동협씨는 “청년들이 결혼을 결심하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기를 바란다”며 “우리의 선택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채희수씨 역시 진심 어린 바람을 전했다. 그는 “결혼 이후 아이를 낳고 싶은데,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 지원이 훨씬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모든 부모가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이 할미가 나왔겠어요?”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오전 9시40분께 지팡이를 쥔 김영인씨(88)가 동구 송현동 송현초등학교에 마련된 화수2동 제2투표소를 찾았다. 이날 투표에 나선 김영인씨는 손자, 손녀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나오는 길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내가 나이가 있다 보니 1.4 후퇴와 6.25 전쟁, 군사 독재 다 겪었다”며 “지금 시대에 어떻게 군인을 동원해 국회를 부수고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말 한마디에 끌려갔다 억울하게 제대한 군인들이 내 아들 같다”며 “다시는 이런 부끄러운 일이 없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내일 모레면 내 나이가 90”이라며 “나 같은 늙은이도 지팡이 짚고 나오는데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한 표라도 더 던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경제도 어렵고 억울하게 죽는 사람도 많은데 다시는 눈물 없는 나라가 돼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도장 찍는 게 재밌어 보이고 투표도 신기해요.”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일인 3일 오전 8시40분께 남양주시 다산한강중학교(제4투표소)에 엄마·아빠와 함께 알록달록 보라색과 분홍색 자전거를 타고 등장한 쌍둥이 소녀들이 눈길을 끌었다. 쌍둥이 김소은·김하은양(7)은 김정환(45)·조상희씨(45) 부부의 자녀로 이날 투표소 방문이 생애 첫 경험이다. 조상희씨는 “어제 아이들이 투표가 뭐냐고 물어봤다”며 “어린이집에서 선생님, 친구들과 투표에 대해 얘기했고 궁금하다고 해서 같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투표를 하는 것에 대해 생각보다 빨리할 수 있고 쉬워 보인다면서 나중에 자기들도 투표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며 자녀들의 소감을 전했다. ‘부모님이 투표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어떠냐’는 질문에 김소은·김하은양은 “도장 찍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투표하는 것도 신기했다”며 수줍은 얼굴로 답했다.
“오늘 하루는 오가는 이동노동자들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도 처음 겪는 풍경이에요.” 3일 오전 9시께 의왕 오전동 근로자복지회관. 이곳 1층은 거리를 일터 삼아 택배, 배달 플랫폼에 종사 중인 이동노동자가 더위와 고단함을 잠시 잊는 ‘이동노동자 의왕쉼터’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날은 오전동 제9투표소가 차려졌다. 때문에 공간을 채우던 탁자와 소파, 안마·수면 의자, 휴대전화 급속충전기 등은 잠시 자리를 비켰고 기표소와 참관인 석이 투표 참여 시민들을 맞았다. 현장에서 만난 투표관리관은 “최근 1~2년새 주거단지가 늘며 인구가 유입,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이곳을 새로운 투표소로 지정했다”며 “경기도와 의왕시에서 전날 이동노동자들에게 미운영을 공지, 오늘 하루는 경기 지역 최초의 이동노동자 쉼터 투표소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학교나 행정복지센터에서 투표하는 게 아니다 보니 참 이색적이고 의미가 남다르네요.”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3일 성남지역에 마련된 한 씨름장에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유권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성남종합운동장 실내씨름장이 ‘이색 투표소’로 탈바꿈해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 제2투표소로 유권자들을 반긴 것. 종합운동장 실내씨름장은 인근 주민들의 접근성이 좋아 투표소로 활용하게 됐다. 유권자들은 실내씨름장 입구에 적힌 ‘성남시 씨름장’이라는 간판을 확인한 뒤 투표소 안으로 들어갔다. 모래밭 옆에 설치된 기표소가 신기한 듯 유권자들은 연신 실내를 둘러보기도 했다. 씨름장에서 처음 투표하는 장원호씨(27)는 “지난해 성남동으로 이사오고 처음하는 투표인데, 씨름장에 투표소가 세워지니 깜짝 놀랐다”며 “보통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에 투표소가 마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모래판 옆에 설치된 곳에서 투표하니 남다른 기분”이라고 말했다.
“경제 상황이 많이 어려운데 살림살이가 나아지면 좋겠어요.” 3일 오전 5시 37분께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 e편한세상계양더프리미어아파트 경로당. 이날 가장 먼저 투표소에 도착한 안창호(56)·김윤자(62)씨 부부가 제일 앞에 서 투표소가 열리길 기다렸다. 오전 6시. 한 투표 사무원이 대선 투표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시민들은 안내에 따라 기표소로 들어갔다. 선거사무원 안내에 따라 본인 확인 절차를 마친 시민들은 기표소에 들어가 투표를 마친 뒤 홀가분한 표정으로 투표소를 빠져나왔다. 효성동 e편한세상계양더프리미어아파트 경로당 투표소 첫 투표자인 안창호·김윤자씨 부부는 “서민들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에 일찍 투표소를 찾았다”며 “투표도 맨 먼저 하고 싶어서 일찍 찾아왔고, 투표 전에 지역 공약 등을 자세히 보고 소중한 1표를 행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모두가 많이 힘든 상황”이라며 “마음을 담아 선택한 후보가 당선돼 경제적인 안정을 확보해 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1대 대선 본투표 당일인 3일 오전 10시 현재 전국 투표율이 13.5%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전국 1만4295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시작된 투표에서 오전 10시 현재 총선거인 4천439만1천871명 가운데 600만3천187명이 투표를 마쳤다. 지난 2022년 20대 대선 11.8% 대비 1.7%p 높은 수치다. 수도권 투표율은 경기 14.1%, 인천 13.4%, 서울 12.5%로 집계됐다. 현재 투표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구(17.0%)이며, 경북(16.1%), 충남(14.9%), 경남(14.7%), 대전(14.5%) 등 순으로 높다. 가장 낮은 곳은 광주(9.5%)이고, 전남(9.6%), 전북(9.9%) 등 순이다. 본투표는 이날 오후 8시까지 이뤄진다. 투표소에 방문할 때는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투표소는 경기 3천287개·인천 742개를 비롯해 전국 1만4295개가 설치됐다. 투표소 위치는 선관위 홈페이지나 대표전화로 확인 가능하다. 지난달 29∼30일 실시된 사전투표율(34.7%)은 아직 반영되지 않았다. 사전투표는 거소(우편)·선상·재외투표와 함께 오후 1시부터 공개되는 투표율에 합산된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투표의 소중함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3일 오전 9시께 인천 미추홀구 도화1동 행정복지센터. 현동식씨(57)와 아들 준석군(13)이 함께 투표소 앞에 줄을 섰다. 마침내 차례가 된 현씨가 투표소 안으로 들어가고 준석군은 인근 카페 앞에 서서 아빠를 기다렸다. 5분 여가 흐른 뒤 투표를 마친 현씨가 나와 준석군에게 투표에 대한 의미를 설명했다. 현씨는 “투표라면 지금까지 항상 참여해왔었고, 특히 대통령을 뽑는 중대한 임무이기 때문에 아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를 겪으면서 아들에게 사회 구조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인식시켜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 어르신부터 아이까지 투표소로…“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 “투표는 우리가 누리는 권리이며, 지켜야만 하는 의무이기도 하니까 줄을 서 기다려서라도 행사해야죠.” 3일 오전 8시30분께 인천 미추홀구 도화1동 행정복지센터. 제21대 대통령선거 제1투표소인 이곳에는 아침 이른 시간부터 투표를 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 대기 중이다. 어르신부터 부부, 청년, 아이까지 다양한 주민들이 투표소를 찾았다. 투표를 마친 송지연씨(32)의 얼굴에는 후련함이 가득하다. 송씨는 휴대폰카메라를 들어 도장 마크를 찍는 등 투표 인증을 하기도 했다. 송씨는 “지난해 12월3일 계엄사태 이후 투표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됐다”라며 “사전투표보다는 본 투표에서 권리를 행사하는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오늘 투표했다”고 말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21대 대통령 선거 당일인 3일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우 의장은 이날 오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노원구 한청경로당에 마련된 하계1동 제4투표소를 찾아 부인 신경혜씨와 투표했다. 우 의장은 투표 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오늘의 선거로 대한민국은 지난 12월3일 시작된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헌법과 법률의 질서에 따라 극복하고, 다시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 번영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고 적었다. 이어 “본투표는 오늘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지정된 투표소에서 투표하실 수 있다”며 “우리 모두 소중한 권리,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자. 투표는 힘이 세다. 대한민국을 위해 꼭 투표해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