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링 (The Clearing) 남편이 묻는다. “날 사랑해?” 아내가 대답한다. “네.” 남편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내겐 그거면 충분해.”(영화의 엔딩장면) 내년 1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클리어링’(The Clearing)은 심리 스릴러 영화다.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업가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로버트 레드포드, 윌렘 데포, 헬렌 미렌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러브액츄어리’ ‘물랭루주’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크레이그 암스트롱이 음악을 맡았다. 남편이 묻는다. “날 사랑해?” 아내가 대답한다. “네.” 남편이 다시 말을 잇는다. “내겐 그거면 충분해.”(영화의 엔딩장면)¶내년 1월 7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클리어링’(The Clearing)은 심리 스릴러 영화다.¶네덜란드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기업가 납치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로버트 레드포드, 윌렘 데포, 헬렌 미렌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했고 ‘러브액츄어리’ ‘물랭루주’ 등에서 감각적인 음악을 선보였던 크레이그 암스트롱이 음악을 맡았다.¶영화 ‘인사이더’ ‘히트’ 등을 제작한 피터 얀 브루게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는 성공한 기업인 웨인 헤인즈(로버트 레드포드)가 출근길에 납치되면서 시작된다. 그의 아내 일레인(헬렌 미렌)은 웨인에게 저녁에 손님을 초대했다며 일찍 귀가할 것을 부탁한다. 손님이 오고 식사가 끝났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는 실종신고를 내고 FBI가 사건에 가담하면서 극이 전개된다. 남편 웨인을 납치한 사람은 실직자 아널드 맥(윌렘 데포)이다. 그는 예전 웨인의 회사에서 일하다가 해고됐다. 아널드는 웨인에게 “나는 심부름꾼이다. 당신을 납치한 사람은 따로 있다. 나는 숲 속 산장까지 당신을 데려다 주는 임무를 맡았다”며 거짓말을 한다. 영화는 숲속 산장으로 끌려가는 웨인과 납치범 아널드와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와 웨인의 행방을 찾으려고 FBI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레인과 자녀들의 몇 주동안의 에피소드를 병치하면서 전개된다. 웨인을 찾는 과정에서 숨겨진 그의 사생활이 드러난다. 웨인은 여전히 정부(情婦)를 만나고 있었다. 웨인의 회사에 근무했던 그의 정부는 일레인의 종용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그 이후로도 웨인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던 것. 절망하는 일레인. 웨인은 그의 두 자녀에게 “아빠는 엄마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다. 일레인은 FBI요원에게 웨인과 정부와의 관계를 숨겨달라고 부탁한다. 한편 산장으로 가는 웨인과 아널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널드는 장인 집에 얹혀 살며 아내를 출근시키는 실업자의 고통을, 웨인은 젊은 날 성공을 위해 일에만 매달려 가족과 함께 할 수 없었던 과거를 얘기한다. 웨인은 아내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닫는다. 산장으로 가는 길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을 더 확실하게 느끼는 웨인과 납치보다더 충격적인 남편의 사생활에 절망하는 일레인.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이들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웨인은 아널드에게 아내에게 쓴 편지를 부쳐줄 것을 부탁하고 일레인은 남편이 아널드에게 죽임을 당한 뒤 그 편지를 받는다. 편지의 내용은 “내 사랑은 변함없어”다. 영화 제목 ‘The Clearing’은 우리 말로 ‘확실히 하기’ 정도가 될 것이다. 남편의 사랑을 의심했던 아내에게 남편의 편지는 미소며 기쁨이다. 영화 ‘클리어링’은 스릴러 영화지만 드라마에 더 충실하다. 영화에서는 가족과 사랑, 삶의 고통 등 우리네 인생이 그대로 녹아 난다. 쫓기 쫓기는 스릴러 영화를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적격이 아니다. 그러나 극장을 향하면서 박진감보다 감동과 여운을 기대하다면 스릴과 감동을 함께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클리어링’에는 여성들에게 판타지를 자아내는 미남배우 로버트 레드포드는 없다. 그러나 삶의 역경을 이기고 자수성가한 기업인을 눈과 표정으로 그대를 담아 내는 주름살 많은 노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있을 뿐이다. 영화에 대해 굳이 흠을 잡자면 다소 지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투 터프 가이즈 다소 모자란 인물들이 한탕을 노리고 범죄를 모의한 탓에 그 과정이 엉망진창이 되고마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상업영화의 소재로 사랑받아왔다. 31일 개봉하는 스페인 영화 ‘투 터프 가이즈’ 역시 그런 영화다. 메이드인 할리우드가 아닌 까닭에 영화는 매우 독특한 분위기다. 돈 냄새도 안나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주인공 남자들이 워낙 볼품 없어 관객들 역시 처음부터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예상된 수순을 밟지 않는 덕분에 끝까지 시선을 붙드는데 성공한다.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연출이 웬만한 허점은 넘겨버리게 한다. 직업이 킬러라지만 성공률이 거의 제로인 40대 아저씨 파코와 체면이나 눈치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대책없는 말라깽이 청년 알렉스. 두 사람은 백만장자 장인의 유산을 차지할 속셈으로 아내를 납치해 달라는 한 남자의 의뢰를 받고 사건에 뛰어든다. 그런데 엉뚱하게 젊은 창녀 타티아나가 처음부터 끼어들어 얼결에 이들은 삼인조가 된다. 물론 이들의 범죄 전개 과정은 초장부터 망가진다. 설상가상으로 납치극은 의뢰인의 사기로 밝혀지고, 일당은 여인을 곱게 풀어준다. 문제는 그 여인이 마피아의 두목이라는 사실. 전세는 역전돼 이 마피아 두목의 추격전이 펼쳐지고, 비밀을 간직한 타티아나를 쫓는 또다른 세력이 가세한다. 영화는 얼굴에 끔찍한 화상을 입히고 손목을 싹둑 자르는 잔혹성도 갖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날렵한 블랙코미디의 즐거움을 준다. 이 영화의 수입사가 영화를 코엔형제의 ‘파고’와 비교하는 것은 그 때문. 타티아나 역을 맡은 엘레나 아나야는 ‘반헬싱’에서 섹시한 드라큘라 신부로 출연했던 인물. 이 영화에서도 소녀 같으면서도 섹시한 묘한 매력을 풍긴다. 예상대로 전개되지 않는 범죄 상황극의 기본적인 요건을 비교적 만족시키는 영화다. ■신석기블루스 한날 한시에 태어난 두 남자가 있다. 둘은 이름도 같고 심지어 직업도 같다. 이쯤되면 사주팔자가 똑같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웬걸. 둘은 생김새가 다르고 성격과 건강, 인간성이 다르다. 자연히 누리고 있는 인생도 판이하게 다르다. 할리우드판 ‘인생극장’을 그린 ‘나비효과’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가운데, 그 바통을 이어 30일부터는 극장에서 ‘신석기’ 버전의 ‘인생극장’이 펼쳐진다. 뭐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잘생긴 신석기(이종혁 분)는 기업 M&A 전문 변호사다. 매력적이지만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이다. 반면 뭐하나 가진 것 없는데다 못생기기까지한 신석기(이성재 분)는 서민들의 송사를 해결하는 변호사. 볼품 없지만 정 많고 따뜻하다. 이 두 사람이 불가사의한 엘리베이터 사고로 서로의 몸을 바꿔치기 당한다. 그나마도 한 사람은 의식불명이 되고 한 사람만 간신히 깨어나는데, 깨어난 이는 잘생긴 신석기. 그러나 불행히도 그의 몸은 180도 달라져 있다. 졸지에 생김새가 달라진 것도 억울한데, 그 생김새 때문에 어디를 가도 박대를 당해 도무지 옛 권력과 부를 되찾을 길이 없다. 게다가 꼼짝없이 적응해야 하는 못생긴 신석기의 인생은 바퀴벌레가 드글드글한 서민 아파트에, 수임료 한푼 제대로 못받는 지지리도 가난한 변호사. 이성재는 자신의 열번째 작품에서 연기의 폭을 대폭 넓히며 배우로서의 욕심을 한껏 부렸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천식까지 있는,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약골인데다가 추남 중에서도 추남으로 변신한 그는 스스로 그러한 변신이 무척 즐거운듯 스크린에서 아주 편안한 모습이었다. 구부정한 자세에 팔자걸음, 뻐드렁니에 파마 머리는 생각보다도 훨씬 임팩트가 강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지만, 거부감 없이 캐릭터로의 몰입을 안내한다. 9편의 작품을 거치면서 키워진 내공이 꽃을 피우는 기회를 만난 것. 우스꽝스러운 분장 탓에 자칫 가볍게만 치달을 수 있었던 영화가 그나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주연배우 스스로가 ‘알 깨기’의 희열을 만끽한 때문이다. 덕분에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또 이종혁의 연기도 눈길을 끈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를 괴롭히는 선도부장으로 출연했던 그는 ‘잘나가는 신석기’를 맡아 관객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신석기 블루스’는 매순간 다음을 예상할 수 있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비교적 재치있는 소재이고,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가는 호흡이 일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더 이상 새로움은 없는 것. 탱고까지는 아니어도 탭댄스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있었을텐데, 영화는 마치 기본 스텝만 밟는 약식 왈츠 같다. 너무 안전한 길만 택했다. 결론은 물론 개과천선. 신석기가 순진하고 착한 회사 안내 데스크 여직원(김현주 분)을 통해 사랑에 눈을 뜨고 참된 인생에 눈을 뜨는 과정은 예정된 수순을 밟으며 무난히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지적할 것도 없지만 이성재의 성공적인 변신 이상으로 감흥을 일으키는 것도 없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꼬집고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외치는 이 영화는 무해하다. 그런 무해함이 반드시 맛과 직결되지는 않지만 존재 가치를 상실한 영화들이 종종 등장하는 극장가에서는 그것 역시 미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알렉산더 … ALEXANDER 다이내믹·장대함의 결정체 ‘고대 전투신’ 놓치면 후회 ‘Fortune favors the bold(운명의 여신은 용감한 자의 편이다)’. 영화 ‘알렉산더’를 상징하는 대사다. 영화는 자신 앞에 놓인 미지의 길을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헤쳐나갔던 영웅 알렉산더를 추앙했다. 뉴욕대학 시절 그리스신화를 전공한 올리버 스톤 감독은 수십년간 머릿 속에 그려왔던 알렉산더의 이미지를 스크린으로 옮기는데 마침내 성공했다. 제작기간 3년간 2억4천만달러(약 2천539억원)을 쓰면서 7개국을 돌며 촬영했다. 덕분에 영화는 ‘트로이’ 이후 그 이상의 어떤 고대 전투신이 등장할까 궁금해하던 관객들에게 또한번 새로운 전투신을 선사하는데 성공했다. 마치 비행기가 착륙할 때 발 아래의 인간세상이 개미의 그것처럼 보이듯, 영화는 창공을 당당하게 나는 독수리의 시선으로 발아래 거대하게 펼쳐진 전투를 마치파도가 오가면서 해변에 남기는 흔적처럼 독특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초반에 등장하는 ‘가우가멜라 전투’가 그것인데, 이 장면은 결코 할리우드의 자본력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블록버스터와 스톤의 신선한 아이디어가 제대로 접점을 찾은 장면이다. 인간의 시선으로 돌아가면 지상에서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격렬한 육박전이 숨돌릴 틈 없이 펼쳐지고 있지만, 창공을 나는 독수리의 시선에서는 거대한 군대의 움직임이 한낱 바람에 그 형태가 좌우되는 사막의 모래알갱이인 것. 영화는 이러한 대비되는 시선의 교차편집을 통해 숨막히는 재미를 안겨준다. 문제는 그러한 그의 의지와 상업영화의 재미가 이 정도에서 결별을 한다는 것이다. ‘JKF’ ‘7월 4일생’ ‘플래툰’ 등 뚜렷한 정치적·사회적 색채가 짙은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스톤과 블록버스터의 결합은 영 매끄럽지 못하다. 스톤은 할리우드블록버스터들의 ‘얄팍한’(스스로의 생각이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상술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의미있고 진지한 영화를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는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오락영화도 아닌 어정쩡한 3시간 짜리 영상으로 탄생하고 말았다. 물론 공을 들인 전투신과 고색창연하게 복원한 기원전의 세상이 볼거리를 준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인생을 가감없이 보여주겠다는 스톤의 야심은 기름기가 싹 빠진 닭가슴살처럼 퍽퍽하다. 또한 시종 설교적이다. 결정적으로 미스 캐스팅에서 빚어진 불협화음이 관객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트로이’가 브래드 피트를 캐스팅한 것만으로 당당해보였던 것과 대조되는데, 실제 알렉산더의 몸집이 콜린 파렐처럼 작았다할지라도 파렐의 캐스팅은 일반인들의 생각을 배반한다. ‘알렉산더’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는 어찌됐든 거대하고 당당한 장수의 이미지. 적어도 상업 영화에서는 그런 바람에 부합해야하는데 파렐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왜소하다. 또한 안젤리나 졸리가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로 등장하는 것도 코웃음을 자아낸다. 알렉산더의 부인이 되도 시원찮을판에 어머니로 등장하니, 일부러 구사하는 ‘마케도니아식 영어 억양’과 겹쳐 스크린에 스며들지 못한다. 세계 제패의 대망을 안고 8년간 350만㎞를 거침없이 나아간 알렉산더.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양성애자의 모습과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렸던 나약한 모습이 놓여있다. 이렇듯 ‘복잡한’ 인생을 겨우 서른세해 동안에 그린 그이기에 스톤으로서는 여러가지가 욕심이 났을 것이다. 31일 개봉, 15세 관람가. ■내셔널 트레져 … NATIONAL TREASURE 니콜라스 케이지의 내한으로 한껏 분위기가 고조된 ‘내셔널 트레져’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어드벤처 블록버스터다. ‘진주만’ ‘콘에어’ ‘더록’ ‘아마겟돈’ 등을 만든 블록버스터의 대부 제리 부룩 하이머가 제작자라는 것만으로도 그 성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탐험의 선봉에 서면서 오락 어드벤처 영화로서의 구색을 성실히 갖춘 듯 하다. 내용 역시 남녀노소에게 너무나 익숙한 보물찾기. 덕분에 이 영화는 미국개봉에서 3주 연속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는 위용을 과시했다. 미국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을 3대째 찾고 있는 게이츠 가문의 후손 벤저민(니콜라스 케이지 분)은 그의 아버지조차 포기한 보물찾기에 여전히 혈안이 돼 있다. 결정적인 단서라고 생각했던 샬롯이라는 이름의 배를 극적으로 찾았지만 거기서부터 모험은 다시 시작된다. 추적 끝에 미 독립선언문과 1달러 짜리 지폐에서 또다시 단서를 발견한다. 하지만 샬롯에서 의견 충돌을 빚은 후 적으로 돌아선 옛동지 이안(숀빈 분)과 독립선언문을 훔치면서 따라붙은 FBI의 추격이 숨쉴 틈을 주지 않는다. 영화는 많은 부분 최근 서점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빈치 코드’를 생각나게 한다. 프리 메이슨이나 템플 기사단 등 ‘다빈치 코드’로 인해 익숙해진 기독교적 단어들이 등장하고, 수수께끼가 곳곳에 놓여 있는 모양새가 그러하다. 물론 ‘다빈치 코드’에 비해서는 해석이나 추리를 요하는 깊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얇다. 하지만 12세 관람가답게 이 정도 선에서의 타협이 가장 무난했던 선택이었으리라. 그러다보니 영화는 마치 1985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한 ‘구니스’의 2004년판 같다.지극히 미국적인 장소를 무대로 감칠맛 나는 부비트랩과 수수께끼를 늘어놓고 속도감 있게 관객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그 수준은 ‘구니스’가 그러했듯 아이들이 넋을 쏙 빼놓고 즐길 수 있을만한 정도다. 해답은 너무 쉽고, 주인공의 다음 행보는 만천하에 공개된 듯 예상가능하다.영화의 설정은 흥미롭지만 뛰어나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을 풀어가는 방식에서는 할리우드의 거대한 자본력이 선명하게 아우라를 발휘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존재방식이려니 생각하면 위안이 될까. ‘트로이’에서 빼어난 독일 미인의 고전적인 자태를 뽐냈던 다이앤 크루거가 문화재 박사로 출연, 타이트한 청바지 패션을 선보인다. 31일 개봉. ■룩앳미 … LOOK AT ME 참보잘것 없다. 스무살 아가씨 롤리타(마릴루베리). 오늘도 체중 조절에는 실패했고 불만 투성이인 얼굴에는 ‘엿먹어라’는 식의 표정만이 가득하다. 주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작가인 아버지 에티엔(장 피에르 바크리)의 덕을 보고자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 뿐이고 이 아버지도 심술과 오만이 가득한 자기 중심적인 인간이다. 그런 그녀에게 즐거움이 있다면 바로 성악 연습을 하는 것. 나름대로 공연 준비에 열심이던 롤리타에게 어느날 관심을 주는 남자가 나타난다. 24일 개봉한 ‘룩앳미’(원제 Comme Une Image)는 한국 팬들에게는 ‘타인의 취향’으로 알려진 프랑스 감독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신작이다. 영화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고른 호평을 받은 끝에 각본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개봉시에는 2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하기도 했다. ‘타인의 취향’에 함께 출연했던 감독과 남자배우 장 피에르 바크리가 다시 호흡을 맞췄으며 두 사람은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집필하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도 생긴 롤리타. 성악 선생님인 실비아(아네스 자우이)가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니 이젠 호감을 느낄만한 사람도 생긴 처지다. 이젠 그녀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지만 현실이란게 그렇듯, 상황이 썩 잘 풀리지만은 않는다. 전 남자친구에게는 ‘못된 꼴’을 당하고 실비아 선생님도 알고보니 에티엔의 도움으로 남편 피에르(로랑 그레빌)가 성공을 거두기를 은근히 바라는 처지. 새로운 남자 친구 세바스티앙(케인 부이자)도 롤리타에게는 썩 매력적이지 못하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감독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인물들 사이의 관계에 있다. 영화 속 관계는 권력을 가진 남자인 롤리타의 아버지 에티엔을 중심으로 얽혀있다. 에티엔의 젊은 부인 카린(비르지니 드사르노)은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며 살고있고 롤리타의 성악 선생님인 실비아와 그녀의 남편이며 젊은 소설가 피에르는 에티엔을 통해 주류 문단에서 성공을 꿈꾸고 있다. 새 남자친구 세바스티앙도 에티엔의덕에 막 일자리를 얻은 처지. 이들은 한결같이 에티엔에게 조롱을 받으면서도 이를 잘 참아내는 입장이다. 권력가인 그에게 기댈 수밖에 없는 이들 중 일부는 후반부에 ‘싫다’며 인상을 쓰게 된다. 감독과 영화의 장점은 관객들이 자신을 대입시켜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캐릭터들이 섬세하고 정교하다는 것.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현실에서 뽑힌 듯 날카롭게 옮겨졌지만 인물 자체가 스스로에 대한 변명과 그럴듯한 이유를 담고 있는 까닭에 냉소적이라기 보다는 따뜻하게 느껴진다. 상영시간 110분. 15세 이상 관람가.
해외영화제 품에 안았다 0%에 육박하는 자국영화 점유율,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의 초대박, 세계 3대 영화제의 잇따른 석권 등 올해 한국 영화계는 적어도 외형적으로 국내외에서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해외 수출 총액도 상반기에 이미 지난해 2천500만 달러(약270억원)를 넘어섰다. 하지만, 부쩍 커진 체격에 비해 내실이 없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저예산 제작, 소규모 상영관의 ‘작은 영화’들은 여전히 기지개를 펴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작품들의 ‘대박’ 이후 한해 내내 뚜렷한 화제작이 없었다는 점은 호황 속의 불황이라는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관객 1천만명 시대 ‘빛과 그늘’=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잇따라 전국 1천만명을 돌파하는 등 상반기 호황을 바탕으로 한국 영화의 올 한해 시장 점유율은 58%(IM픽처스 추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만 1천만명 이상을 동원한 ‘큰 물고기’ 두 편이 휩쓸고 간 한국 영화계는 그다지 뚜렷한 화제작 없이 1년을 보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를 제외하고는 서울 관객 100만명을 넘은 영화는 ‘말죽거리 잔혹사’(102만명) 한 편 뿐이었으며 ‘어린 신부’(서울 88만명), ‘내 머리속의 지우개’(79만명), ‘범죄의 재구성’(78만명), ‘아라한 장풍대작전’(76만 명), ‘귀신이 산다’(75만명),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67만명), ‘효자동 이발사’(66만명), ‘우리형’(66만명), ‘바람의 파이터’(64만명), ‘늑대의 유혹’(61만) 등 ‘중박’규모의 히트작이 이어졌다. ▲해외에서 높아지는 한국 영화 위상= 올해 한국 영화계는 세계 3대 영화제로 불리는 베를린과 베니스, 칸 영화제에서 잇따라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기덕 감독은 ‘사마리아’와 ‘빈 집’으로 각각 베를린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올드보이’(박찬욱)는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또 최고 권위의 애니메이션 축제인 안시 페스티벌에서도 한국 작품 ‘오세암’(성백엽)이 대상을 차지했다. 영화제를 통해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는 한편 해외 마켓에서도 호조를 띠며 상반기에 이미 3천250만 달러의 해외판매 수익을 거둬들여 올 한해 수출 총액 400만 달러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TV 드라마에서부터 불어닥친 한류 열풍은 일본내에서 배용준, 이병헌, 최지우 같은 스타를 탄생시켰고 ‘태극기 휘날리며’(약 90만명),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약 70만명), ‘실미도’(약 50만명) 등의 히트작을 낳으며 한국 영화의 몸값을 올려놓고 있다. ▲실존인물 소재 영화 제작 붐= 연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등 근현대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충무로는 실존 인물과 과거의 역사에 눈을 돌렸고 이는 올해 전체를 감도는 가장 뚜렷한 제작 경향이었다.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테의 고수 최영의(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 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이 스크린을 통해 다시 태어난 실존 인물들이지만 흥행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드디어 ‘사랑’에 눈을 떴다. 23일 개봉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웃집 토토로’, ‘천공의성 라퓨타’ 등으로 40년 애니메이션 인생을 꽉 채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이 작품은 지금까지 그의 애니메이션과는 조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과 평화’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젠 ‘너’를 지키고 싶다는 사랑의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 18살의 소녀 소피는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다가 우연히 꽃미남 마법사 하울을 만난다. 그러나 소피는 그와 함께 한 잠깐의 공중 데이트 때문에 마녀의 마법에 걸리고 쭈글쭈글한 90살의 할머니가 된다. 집을 나온 소피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청소부로 들어간다. 밤마다 상처입은 몸으로 들어오는 하울에게 관심과 호기심을 키워나가던 소피. 그러던 중 매일 벌어지는 전쟁에 지쳐버린 하울을 위로해주고 하울 대신 국왕을 만나러 간다. 감독이 그려낸 환상의 세계는 여전히 우리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선다. 집과 철근으로 만든 ‘움직이는 성’은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자 지친 몸을 달래주고 외로운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는 아지트 역할을 해낸다. 불꽃 악마 ‘캘시퍼’와 외발로 통통 뛰어다니는 무대가리 허수아비, 어수룩한 변신을 즐기는 제자 ‘마르클’, 철없는 악마 ‘황야의 마녀’ 등 톡톡 튀는 조연들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꽃미남 마법사 하울과 할머니가 된 소피, 가장 환상적인 이 둘의 캐릭터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커다란 새로 변신해 잔인하게 적을 해치우는 파괴력을 가진 마법사지만 머리카락 색깔 하나에 하늘이 무너질 듯이 괴로워하는 중증 왕자병 환자인 하울. 동시에 소피의 잠든 모습을 훔쳐보는 로맨틱함을 간직한 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소피는 젊은이의 열정과 할머니의 지혜로움을 모두 갖고 있다. 60을 훌쩍 넘겼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상상력을 갖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본인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가 되니 잃을 것이 없어 좋다’거나 ‘이렇게 마음이 평화로운 적이 없다’는 소피의 말에서 ‘나이 듦’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또 마음가짐에 따라 30대, 40대 또는 10대로 돌아가는 소피의 얼굴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이 둘의 사랑은 따뜻하다. 하울과 소피가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 뒤 하늘을 두발로 걸어다니는 장면에는 비행기 같은 기계의 힘 없이 오직 서로의 팔에 의지해 중력을 거스르는,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다. 하야오 감독 작품 최초의 키스신도 볼 수 있다. ‘키스신’보다는 ‘뽀뽀신’에 가깝지만 둘의 사랑을 그려내기에는 충분했다.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사랑에 빠지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점. 관심에서 호감으로, 호감에서 사랑으로 발전시키는 단계가 조금은 서툴러 보인다. 감독의 다음 작품이 어떤 것이 될지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이 작품으로 그의 애니메이션 세계에 방점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을 걸어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도, 그 마법을 푸는 것도 결국은 ‘사랑’이니까 말이다. 상영시간 119분. 전체관람가. ■서바이빙 크리스마스 오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개봉하는 ‘서바이빙 크리스마스’(Surviving Christmas)는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보낼 위기에 처한 한부자 싱글 남자가 돈으로 ‘크리스마스用’ 가족을 구하는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애인과 피지로 날아갈 꿈에 부풀었던 드루 래덤(벤 애플렉 분)은 애인이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야한다”고 딱지를 놓으면서 졸지에 외로움이 사무치는 신세가 된다. 래덤은 이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돌연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찾아가고, 현재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를 가족처럼 보내는 조건으로 25만달러(약 2억6천만원)를 제안한다. 삶의 무게에 치여 이혼 위기에 몰렸던 부부는 이 돈으로 잠시 상처를 봉합하기로 하고 연휴동안 래덤의 부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법. 조금 전까지만해도 능력있고 자신만만한 남자였던 래덤은 엉겨붙을 부모가 생기자 갑자기 유년으로 퇴행한듯, 잇따라 억지스러운 요구를 한다. 불쑥 궁금해졌다. 밴 애플렉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가족주의를 설파하자는 의도라면 그는 이미 ‘저지걸’에서 가족의 가치를 역설한 바 있다. 애플렉은 이 영화에서 한발 더 나가 몸을 던지며 가족을 부르짖는다. 블록버스터 스타의 변신이가상하다. 그러나 ‘저지걸’ 출연이 감독 케빈 스미스와의 막역한 친분 때문이었고 영화 역시 저예산영화의 미덕을 어느 정도 발휘했던 것에 비해 이번 ‘서바이빙 크리스마스’는 다소 생뚱맞다. 유년과 가족에 대한 상처를 안은 캐릭터라지만 그것을 해소하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요란스러운 크리스마스 연휴를 홀로 보내야 하는 공포감은 외로운 싱글들에게 충분히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소재. 그러나 주인공이 돈이 많아서였을까. 영화가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은 땅에 발을 붙이고 있기 보다는 10여㎝ 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했나. “참 아이러니다. 난 돈을 쓰면서 끼어들려는 가족을 버리려들다니…”라는 래덤의 대사를 통해 드러난 이 영화의 주제는 살갑다.‘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라는 표어가 사무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어떻게 다가설지 궁금하다.
세상을 가졌으나 웃지 못했던…‘슬픈 영웅’ 力道山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잠잠했던 영화계에 15일 ‘역도산’(감독 송해성)이 대박의 꿈을 품고 관객들을 만난다. 한국에는 프로레슬러 김일의 스승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역도산은 일본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신화와 같은 존재다. 해성 감독에게 역도산은 여느 영웅들과는 다른 영웅인 듯하다. 전후 일본을 복구하는 데 한몫 단단히 한 영웅, 혹은 결혼반지까지 가짜였던 모사꾼으로 평가가 엇갈리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가 매 순간 너 아니면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인물이라는 것. 스스로 밝히고 있듯 감독은 화려한 볼거리보다는 역도산이라는 한 남자의 치열한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영화가 영화계 안팎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은 단지 ‘대단한’ 실존인물을 소재로 택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18㎏이나 몸무게를 불리면서까지 열연을 펼친 명배우 설경구와 국내 영화에는 처음 출연하는 스타급 일본 여배우인 나카타니 미키, ‘파이란’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헤집고 다녔던 송해성 감독의 이름값에 ‘살인의 추억’, ‘말죽거리 잔혹사’, ‘범죄의 재구성’ 등 명가 싸이더스가 제작을 맡았다는 사실은 손가락을 꼽으며 개봉일을 기다리게 만든다. 뻑뻑한 빵을 우유 없이 먹는 듯, 혹은 꽉 막힌 헬스클럽에서 장시간 앞만 보고달리는 것처럼,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에피소드와 바로 한 치 앞이 눈에 보이는 구성으로 지독스럽게 평범한 영웅담을 그려냈다. 다른 무도 영웅들과는 달리 ‘쇼맨십’이 넘치는 인물로 알려졌던 역도산은 이 영화 속에서는 이보다는 잔뜩 눈에 힘을 준 담백한 인물에 가까운 편. 그의 삶도 (작지 않은)큰 실패와 큰 성공만 반복하며 비슷한 종류의 다른 스포츠 영화에서 봐왔던대로 고난과 극복, 성공과 불안의 과정을 그대로 밟아간다. 레슬링 경기 장면도 그다지 스타일 없는 평범한 화면으로 일관하고 역도산(설경구)과 부인 아야(나카타니 미키)의 러브스토리도 그렇게 설득력이 있지 않다. 때는 1963년 일본 도쿄의 밤거리. 거센 빗길을 다급하게 달리는 차 안에는 역도산이 거친 숨을 뿜어내고 있다. 시뻘건 피로 물들어가는 하얀 와이셔츠, 피는 배를 움켜쥔 역도산(설경구)의 손 위로 새어 나온다. 피흘리는 역도산의 모습으로 시작한 영화는 과거인 50년대로 돌아가 세상을 다 가졌지만, 웃지 못했던 이 남자 역도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50년 역도산은 랭킹 3위에 오른 스모 선수다. 순수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는 없다는 말에 그는 난동을 부리고 결국 스모를 포기한다. 스모밖에 할 게 없었던 역도산. 하루 하루를 술에 취해 보내던 그는 어느날 운명처럼 레슬링을 만난다. 그에게 레슬링은 스모와는 다른 ‘세계’의 스포츠. 역도산은 연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왔듯,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향한다. 2년 후, 프로레슬러가 되어 금의환향한 그는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사업을 시작한다. 모두들 반신반의한 상태에서 열린 첫 레슬링 시합. 많은 사람의 우려와 달리시합은 흥행에 성공하고, 전쟁 패배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은 역도산이 미국선수들을 때려눕히는 광경을 보며 환호를 내지른다. 점점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가는 역도산. 하지만 세상을 다 가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의 삶도 어긋나기 시작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37분. ■올겨울, 애니로 따뜻하게~ 애니메이션에 열광하는 관객이라면 이번 겨울은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따뜻함과 웃음을 전해줄 대작 애니메이션이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 15일 개봉하는 디즈니-픽사의 ‘인크레더블’부터 24일 개봉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24일 개봉하는 톰 행크스 주연의 ‘폴라 익스프레스’, 내년 1월 7일 개봉하는 드림웍스의 ‘샤크’까지. 애니메이션 대국인 일본과 미국의 대표 선수들이 제작한 만큼 애니메이션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인크레더블 =‘토이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의 픽사가 디즈니와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주인공은 초능력을 가진 미스터 인크레더블. 영웅으로 활약하며 악당을 물리치던 그는 평범하게 살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보험회사원으로 지루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자신의 초능력이 필요하다는 사람을 만난다.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찰랑대는 등장인물의 머리카락부터 실사 영화에 뒤지지 않는 표현까지 볼거리로 가득하다. 순간의 웃음을 포착해내는 특유의 유머로 영화를 보는 내내 배꼽을 잡게 만든다. 2)폴라 익스프레스=아이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같은 이 작품은 산타를 믿지않는 소년이 북극행 열차인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잘 알려진 반 알스버그의 동화를 원작으로 했다. 실사 배우들의 연기와 표정을 디지털로 잡아내는 새로운 기법 ‘퍼포먼스 캡쳐’를 도입해 한 장면 한 장면이 살아 움직이는 동화책처럼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톰 행크스가 1인 5역을 맡아 열연했다. 3)하울의 움직이는 성=일본에서 연일 흥행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표 수공예 애니메이션’인만큼 세밀하게 공들인 흔적과 그만의 상상력으로 꽉 차있다. 19살 소녀 소피는 어느날 마법에 걸려 90살의 노파로 변신한다. 소피는 마법사 하울을 만나고 움직이는 마법의 성에서 모험을 겪는다. 일본 그룹 SMAP의 멤버 기무라 타쿠야가 하울의 목소리 연기를 연기했고 감독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음악을 맡았던 히사이시 조도 작업에 참여했다. 4)샤크=‘슈렉’ 시리즈로 애니메이션의 새 장을 연 드림웍스가 갱스터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접목한 작품으로 작은 물고기 오스카와 상어 대부 돈 리노의 한판 승부를 재치있게 담았다. ‘슈렉’에서 봤던 대중문화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가 이 작품에서도 잘 살아있다. 윌 스미스와 로버트 드 니로, 안젤리나 졸리, 르네 젤위거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가 참여해 보는 재미뿐 아니라 듣는 재미도 있다. ■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이 있지만, 최근 수없이 많은 속편들이 제작되면서 예외도 종종 생겨나고 있다. ‘블레이드3’도 그 중 한 편으로 기록될 만한 영화이다. 15일 국내 개봉되는 ‘블레이드3’는 ‘블레이드’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전편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던 ‘블레이드2’ 못지 않은 재미를 준다. 일단 ‘블레이드’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특유의 화려한 액션과 탄탄한 구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이는 ‘블레이드’와 ‘블레이드2’의 시나리오를 썼던 데이빗 S 고이어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덕이 크다. 그는 강력한 액션을 ‘MTV’ 스타일의 화려한 영상에 군더더기 없이 풀어내 감독으로서의 능력도 발휘했다. 이야기 자체는 ‘블레이드’나 ‘블레이드2’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평범하다. 복잡한 복선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도 없다. 블레이드와 뱀파이어의 대결이라는 ‘간단한’ 설정 외에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간단, 명료하다. 낮에도 돌아다닐수 있는 뱀파이어의 제왕 ‘드레이크’가 등장해 블레이드와 최후의 대결을 벌인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 굳이 철학적 심오함이나 진지한 비장미를 덧칠하지 않았다. 주인공이 무게를 잡으며 멋진 대사를 내뱉을 만한 시점에서 의외의 위트있는 대사로 웃음을 전하기도 한다. 뱀파이어 진영에서 뱀파이어의 제왕을 등장시켰으니, 이에 ‘블레이드’도 홀로 맞서지는 않는다. ‘블레이드’는 오랜 동반자 휘슬러를 잃지만, 그의 딸인 애비게일(제시카 빌)과 한니발 킹(라이언 레이놀즈)의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역시 주인공 웨슬리 스나입스의 건재함이 ‘블레이드3’의 가장 큰 매력이다. 그의 존재는 다른 ‘흡혈귀 액션’ 영화들과 내용상 큰 차이가 없음에도 ‘블레이드3’에 특별함이 느껴지게 한다. 한국인 아내를 둔 할리우드 액션스타 웨슬리 스나입스는 ‘블레이드3’에서 더욱 강하고 화려한 액션을 선보인다.
대금명인 이생강(67·중요무형문화재 제45회 대금산조 예능보유자) 선생이 크로스오버 음반 ‘이생강 추억의 소리’(신나라)를 내놨다. 해금, 가야금 등 크로스오버 음악도 많이 연주하는 국악기들에 비하면 대금은 좀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 선생은 1950년대부터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원조’격이다. 이미 70년대 초에 길옥윤 선생과 국악과 재즈를 접목한 음반을 선보였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우리 것만으론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크로스오버’란 것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번 음반은 2001년 초 소량 발매됐던 음반 ‘추억’의 수록곡 일부와 새 편곡작품 8곡을 더해 재편집해 만든 것이다. 창작곡인 ‘추억의 소리’를 비롯해 ‘황성옛터’ ‘타향살이’ ‘눈물젖은 두만강’ ‘봉선화’ ‘칠갑산’ ‘오빠생각’ 등 우리 전통가요, ‘어메이징 그레이스’ 등 외국곡까지 13곡이 실려있다. 곡의 성격과 느낌에 따라 악기도 달라진다. 대금뿐 아니라 소금, 단소, 퉁소, 피리, 태평소 등 7가지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명인인 이 선생은 곡의 분위기에 맞춰 악기를 바꿔 녹음하고, 특히 재즈처럼 즉흥성이 있는 서양곡엔 피리를 택해연주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악기는 5음계에 맞춰져 있어 서양음계 연주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그렇다고 개량악기를 써 버리면 원래의 구수한 맛이 나질 않습니다. 악기는 본래의 악기를 쓰면서 테크닉으로 음계의 문제를 극복했지요.”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만 해도 400여 종에 달하는 이 선생은 내년 4월쯤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인생 60년을 기념하는 공연도 연다고 한다. 그 외의 공연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어디서든 불러만 주면 공연은 한다”라며 “숨이 끊어질 때까지 대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페라의 유령 영상·음악·감동의 삼중주 미국 최대의 영화 사이트 IMDB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검색하면 대략 10여 편의 크고 작은 작품들이 소개된다. 영화뿐 아니라 TV시리즈와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그만큼 ‘오페라의 유령’ 이야기는 지난 10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1911년에 출간된 가스통 르루의 동명의 소설은 이 사이트에 따르면 1916년 독일에서 최초로 영화화됐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86년 뮤지컬로 만들기 전에도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였던 것.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이 지금처럼 화려한 낭만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 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웨버의 뮤지컬 덕분이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오페라의 유령’의 조엘 슈마허 감독 역시 1988년 ‘오페라의 유령’의 뉴욕 초연을 보고 홀딱 반해, 그로부터 장장 16년간 웨버와 머리를 맞대고 영화화를 논의해왔다. 제작국가인 미국보다도 앞서 세계 최초로 국내에서 개봉하는 슈마허 버전의 ‘오페라의 유령’은 2시간 23분 동안 관객을 화려한 뮤지컬의 세계로 안내한다. 영화는 지극히 화려하고 비교적 신실하다. 미국에서는 ‘너무 오페라적(TOO OPERATIC)’이라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이 영화의 여타 허점은 너무도 감미로운 음악 덕분에 가려진다. 영상과 음악의 결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영화는 웨버가 직접 음악 감독을 한 작품답게 그의 뮤지컬 뺨치는 음악성을 과시한다. 물론 배우들의 가창력이 뮤지컬 배우들의 그것보다 모자라기는 하지만, 원체 원곡이 좋아 관람 내내 음악 감상실에 있는 것 같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뮤지컬과 큰 줄기에서는 같다. 1870년 파리의 오페라 하우스를 무대로 유령처럼 극장을 점령한 정체불명의 남자 팬텀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그를 사랑하는 젊은 귀족 라울의 애절한 삼각 사랑 이야기. 크리스틴을 향한 팬텀의 사랑과 음악적 열정이 광기를 띠면서 오페라 하우스는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영화는 여기에 뮤지컬에서는 없었던 팬텀과 라울의 과거를 추가했다. 슈마허와 웨버는 상상력을 신나게 발휘, 무대의 제약을 뛰어넘어 다양한 볼거리에도 신경을 썼다. 슈마허 감독은 ‘배트맨’ 시리즈를 연출한 솜씨를 살려 어두운 조명의 오페라 하우스와 팬텀의 지하 동굴을 특유의 기괴한, 그러나 세련된 분위기로 꾸몄다. 또한 긴장과 스릴, 액션을 한껏 살려 상업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총제작비는 1억달러(약1천48억원)에 육박했다. 적어도 두 사람 만큼은 이번 작업을 아주 원없이 즐겼음에 틀림없다. 만 18살의 나이에 크리스틴을 맡은 에미 로섬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귀를 사로 잡는다. 뮤지컬 여배우들보다는 가냘프고 깊이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녀는 착한 소녀의 이미지 그대로 ‘Think of me’ ‘Angel of music’ 등의 곡을 참 어여쁘게 소화했다./연합 ‘투모로우’ ‘미스틱 리버’에 출연한 로섬은 일곱살 때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노래를 배웠다. 팬텀을 맡은 제라드 버틀러 역시 투박하긴 하지만 애절하고 힘있는 목소리로 크리스틴을 향한 사랑을 고백했다. 그의 목소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선율과 함께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영등위 선정 올해의 좋은 영상물‘태극기 휘날리며’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가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영상물에 뽑혔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2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비롯해 비디오, 아케이드 게임, 패키지 게임, 온라인 게임 등 다섯 개 분야에서 좋은 영상물을 발표했다. 패키지 게임 부문에는 ‘마그나카르타:진홍의 성흔’(소프트 맥스)이, 온라인 게임부문에는 ‘마비노기’(넥슨)가 각각 뽑혔다. 아케이드게임 부분에는 레이싱게임 ‘에스에이피티’(유니아나)가 선정됐다. 이밖에 비디오(DVD) 부문에는 코아필름서울이 제작한 ‘애니메이션 A부터 Z까지’가 뽑혔다. 올해의 좋은 영상물은 매년 영등위가 선정·시상하는 것으로 작품성과 국민 정서 함양에 기여한 콘텐츠에 수여된다. 시상식은 오는 10일 오후 5시 서울 장충동 자유센터 웨딩홀에서 열릴 예정이다. ■6월의 뱀 잠들어 있던 욕망·관능을 깨우다 심리치료센터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젊고 아름다운 린코는 중년의 샐러리맨과 단둘이 살고 있다. 어느날 그는 ‘남편에겐 비밀’이라고 쓰인 우편물을 받는데 그 안에는 남편 몰래 자위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찍은 사진이 들어 있다. 공포와 수치심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또다시 사진을 담은 봉투가 배달되고 전화가 걸려온다. “사진과 필름을 돌려 받으려면 내 말을 들어!” 장대비가 쏟아지는 토요일 린코는 필름을 돌려받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고 집을 나선다. 전화로 지시를 받으며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 낯선 목소리는 얼굴도 드러내지 않은 채 옷을 하나씩 벗으라고 강요한다. 린코는 자신의 은밀한 모습을 훔쳐보며 부끄러운 행동을 강요하는 스토커에게 불쾌감과 두려움이 앞서지만 한편으로 몸속 깊이 잠들어 있던 욕망과 관능이 살아나면서 묘한 희열을 느낀다.¶평소 전화를 통해 상담 신청자들에게 “용기를 갖고 하고 싶은대로 해보라”고 조언하던 그가 이제는 스토커의 명령에 따라 차마 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시도하며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다.¶결벽증이 있는 린코의 남편 시게히코는 어느날 집에서 아내의 모습을 담은 사진한 장을 발견한다. 의혹과 질투에 몸을 떨던 그는 며칠 뒤 아내를 미행하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등장인물과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섹스리스로 살던 남편이 스토커의 명령에 따라 나신으로 춤을 추는 아내의 모습을 보고 흥분해 자위를 한다는 설정은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취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매력은 강렬한 시청각적 이미지에 있다. 카메라 플래시의 섬광은 흑백톤의 거칠고 어두운 화면에 악센트를 주고, 대지를 때리는 빗줄기 소리에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와 셔터 소리가 겹쳐져 긴장을 고조시킨다. 관객도 줄거리에 빠져들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카메라의 파인더 속으로 얼굴을 들이 밀게 된다. 마치 ‘몰래 카메라’를 찍는 기분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린코의 전라 모습은 많은 관객을 관음증 환자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눈부시다. 쓰카모토 신야(44)는 이 영화에서 제작, 연출, 시나리오, 촬영, 편집, 미술 등을 도맡으며 스토커 이구치 역까지 연기했다. 아역배우 출신의 구로사와 아스카(23)는 시나리오를 읽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는 등 철저한 준비로 감독의 마음을 움직여 린코로 낙점된 뒤 판타스포르토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상영시간 77분. 18세 이상 관람가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대학교 영화과 학생들이 뽑은 최고의 감독에 선정됐다. 대한민국대학영화제(집행위원장 김창유) 사무국이 전국 51개 영화영상전공 대학재학생 2천300명을 대상으로 지난 달 18~28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최고의 감독에 박찬욱 감독이 선정됐으며 최민식과 문소리는 각각 최고의 남녀 배우에 뽑혔다.
■영 아담(Young Adam)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 갇히다 성행위를 마치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남과 여. 천장을 향해 누워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젖꼭지에는 파리가 손을 비비며 앉아 있고 비스듬히 여자를 보고 있는 남자의 성기는 초라하게 늘어져 있다. ‘파격적인 성기 노출’ 식의 수식어를 달고 있지만 3일 첫선을 보이는 영화 ‘영 아담’(Young Adam)은 그다지 야하지 않은 영화다. 클로즈업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큰 땀구멍이나 겨드랑이에 삐쳐나와 있는 털, 너저분한 침대 시트, 그리 유쾌하지 않는 이미지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데다 성행위라고 해봐야 담배 한대가 다 타기 전에 끝나니 훔쳐보는 즐거움을 느끼기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후반부 안개가 가득한 강가를 항해하는 바지선(Barge船)의 이미지에 있다. 범인을 쫓지 않는 스릴러며 야하지 않은 에로물인 이 영화를 보다보면 ‘성이란 혹은 인간의 욕망이란 무엇인가’, ‘규범과 일탈, 도덕과 비도덕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식의 질문에 빠져 마치 안개 속에 있는 듯 혼란스럽지만 인간과 그가 살아가는 삶의 깊은 곳을 엿보는 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체 모를 남자 조(이완 맥그리거)가 영국의 한 마을로 흘러 들어온다. 남자가 일자리를 구한 곳은 석유 등의 물건을 나르는 바지선. 배에는 선주이기도 한 여자엘라(틸다 스윈튼)와 그녀의 나이든 남편 레스(피터 뮬란)가 일을 하고 있다. 이 바지선에서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엘라와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사를 나누는 관계가 된다. 레스의 눈을 피해 서로 정을 통하던 남녀, 점점 과감해지던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남편의 시선조차 무시하기 시작한다. 한편, 어느날 오후 이들 앞에 벌거벗은 젊은 여자의 익사체가 한 구 떠오른다. 타살일까, 아니면 자살일까.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그러던 중 유력한 용의자가 경찰에 검거된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비트 작가(Beat writers; 50년대 반사회적 작가 그룹)인 알렉산더 트로키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트래인스포팅’의 이완 맥그리거, ‘올란도’의 틸다 스윈튼이 욕망과 운명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는 남녀주인공을 맡았다. /3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97분. ■까불지마 넘버2 vs 넘버3 3일 개봉하는 영화 ‘까불지마’는 인기시트콤 연기자며 왕년의 액션배우였던 오지명(65)의 감독 데뷔작으로 제작 발표때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다. 주인공 삼인방인 벽돌과 개떡, 삼복으로 변신한 사람은 최불암, 오지명, 노주현 등 세 명의 중견 배우. 여기에 그룹 UN의 김정훈과 ‘청담동 호루라기’로 알려진 방송인 이진성, 신인 연기자 임유진 등이 합세했다. 마치 ‘순풍산부인과’ 같은 시트콤에서처럼 영화의 미덕은 탄탄한 캐릭터에 있다. 벽돌(최불암)은 따뜻함과 의리를 지닌 인물이다. 별명처럼 벽돌같은 묵직함이 장점. 셋 중에서는 가장 철이 들어 보이며 슬픔도 안고 있다. 반면 개떡(오지명)은 단순, 무식, 과격을 콘셉트로 한다. 성격만 ‘개떡’같을 뿐, 기억력, 상황 판단, 참을성 모두 제로에 가깝다. 취미는 ‘삥 뜯기’, 싸움에서는 날렵한 주먹이 강점이다. 셋 중 막내인 삼복(노주현)은 이들 둘 사이의 중간 지점 같은 역이다. 장점은 빠른 상황 파악과 잔머리. 잘생긴 외모가 돋보이며 형들 사이에서 재롱도 ‘좀’ 피우는 편이다. 영화는 벽돌과 개떡의 ‘맞장’ 장면에서 시작된다. 은퇴를 선언한 보스가 넘버2와 넘버3인 두 사람에게 함께 조직을 맡으라고 말한 것이 발단. 두 사람은 강 둔치에서 한판 붙기로 하고 심판으로는 동생 삼복이 나선다. 하지만, 이 틈에 계략을 짜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한참 ‘쫄따구’인 동팔(김학철)이다. 결국 동팔의 음모로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벽돌과 개떡. 감옥 속에서 복수의 칼날을 간지 15년 되던 해 드디어 출소를 하고 삼복은 두부를 사들고 이들을 맞이한다. 15년 묵은 복수를 시작하는 삼인방. 하지만 웬걸, 동팔도 경찰서에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동팔은 이들에게 자신의 딸 은지(임유진)를 보호해주면 거액을 내놓겠다는 새로운 제안을 한다.방송과 영 화계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지만, 65세 노장 신인 감독의 연출 실력은 어느 정도 될까?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영화는 탄탄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꽤 짜임새 있게 진행이되는 편이다. 웃음과 감동, 볼거리, 여기에 중견 배우들의 망가지는 모습까지 영화는 심심풀이 코미디의 기본은 갖추고 있다. 문제는 감독의 유머가 관객들과 통할지 여부. ‘털어서 나오면 십원에 백대씩’ 혹은 ‘정화조? 성이 정씨인가 보네?’라는 식의 유머가 관객들에게 먹혀들 수 있을까? 배꼽을 쥐기를 바랐었다면 지나친 기대일 듯 싶다./3일 개봉. 상영시간 100분. 15세 이상 관람가. ■인터뷰/‘달콤한 인생’ 뵨사마 이병헌 김지운 감독의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제작 영화사봄)을 찍고 있는 ‘뵨사마’ 이병헌. 그는 올 하반기 일본에서 사진집 15만부, DVD 10만 세트, 캘린더 10만부를 각각 판매하며 ‘욘사마’에 비견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달콤한 인생’ 잘 진행되고 있나. ▲미니시리즈 드라마를 찍고 있는 기분이다. 영화의 특성상 내가 95% 정도 등장하니 거의 스태프나 마찬가지다. 현재 75% 진행됐는데, 연말까지 마치는 게 목표다. -얼마전에 한남대교 위에서 촬영했다. ▲어유, 짜릿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촬영했는데 차량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많았다. 그래서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확실히 불황은 불황인가보다. 막연히 심야의 한남대교에서는 강 양쪽의 화려한 네온사인을 감상할 수 있을줄 알았는데 완전히 암흑이었다. -액션 연기가 많은데 다치지는 않았나. ▲초반에 허리를 잠시 삐끗한 이후에는 괜찮다. (하도 촬영이 고되서) 오히려 촬영이 없을 때 아프다. 나는 촬영장에서 ‘천하무적 김실장’으로 통한다. 극중 내이름이 김선우 실장인데, 10월 초였나 무려 14일간 밤마다 비를 맞는 신을 찍었다. 영화에는 겨우 6~7분 등장하는 신일텐데, 용케 안 쓰러지고 버텼다. 담요를 아무리 갖다줘도 부들부들 추운 상황이었는데 심지어 땅속에까지 묻혔다가 나왔다. -그래도 이 영화에 대단히 애정을 갖고 있다. ▲촬영 끝나면 열심히 공부한 후 방학한 기분이 들 것 같다. 보람을 많이 느낀다. -얼마전 도쿄 팬미팅 열기가 대단했다. ▲어린시절 이후에는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날 행사장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느껴졌다. 진짜 대단하더라. 만석의 축구장에서나 나올법한 함성이었다. -NHK 10시뉴스에도 생방송으로 출연했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동시통역의 도움을 받으며 했는데, 독특한 경험이었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곧바로 귀에서 일어로 통역하는 소리가 들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NHK 10시 뉴스는 90개국으로 나간다고 들었는데, 작은 실수라도 했다간 큰일나겠다 싶었다. 얼른 정신 차리고 이왕 하는 것 차분하고 자신있게 하자고 생각했다.-한류의 거품론이 제기된다. ▲그건 배우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배우는 그저 연기를 열심히 하면된다. 좋은 작품만 계속 나온다면 걱정없다. 결국 가수는 노래로, 배우는 연기로, 감독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금 한류가 대단하다고 그것을 지키려고 아등바등한다면, 그것은 한치 앞도 못 내다보는 것이다. 지금 일본인들이 무엇을 좋아하느냐에 연연하지 말고 다양성으로 승부해야 한다. 완성도 높은 다양한 작품만이 길이다.
■삼사라 ‘끝없는 선택의 삶’ 그 끝은…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던 독일·인도·프랑스·이탈리아의 합작영화 ‘삼사라(Samsara)’가 3년여 만에 26일 지각 개봉됐다. 화면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오지 풍물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명징하고 구도와 인과응보라는 주제도 뚜렷하지만 오히려 이 점이 영화를 더욱 낯설고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어 관객과의 만남을 더디게 했는지 모르겠다. 영화의 배경은 해발 3천500m의 고원지대인 인도 북부 라다크의 한 마을. 호숫가를 따라 라마교 승려 일행이 길을 가고 있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동료 타시가 외부와 출입을 끊은 채 수행중인 토굴. 3년 3개월 3주 3일 동안 일명 면벽(面壁)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마친 그는 린포체(스승이라는 뜻)로부터 고위 승직을 하사받는다. 5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절에 왔다가 불문(佛門)에 귀의(歸依)한 동자승이 이제는 촉망받는 수도승이 된 것이다. 그러나 동진출가(童眞出家, 어려서 산문에 들어옴)해 고행까지 견뎌낸 몸이지만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을 수 없었던지, 아니면 전생(前生)의 인연을 끊지 못했던지 마을 축제에 내려갔다가 아름다운 처녀 페마에게 한눈에 반한다. 도반(道伴)의 만류도 그를 막지 못했고 여색(女色)을 호랑이나 뱀 본 듯하라는 부처님의 계율도 소용없었다. 페마도 운명처럼 다가온 타시를 거부하지 못한다. 결혼을 약속한 자마양이 있었지만 점쟁이에게 선택을 맡긴다. 환속(還俗)해 페마와 결혼한 타시는 평범한 산골 농부로 변신한다. 아들 카르마를 낳고 오순도순 살며 행복을 맛본다. 저울을 속이는 미곡 중개상 다와를 내쫓고 곡식을 직접 도시에 내다팔아 마을에 높은 소득을 올려주기도 한다. 자연의 변화 말고는 삶의 모습이 별로 달라지지 않는 산골의 일상을 담담히 좇아가다가도 영화 막바지에 이르면 초반부의 굴절 못지 않게 급격한 전환이 기다리고 있다. 초반부에 암시한 영화의 주제가 한꺼번에 드러나는 것이다. 영화 제목 ‘삼사라’는 산스크리트 어로 윤회(輪廻)라는 뜻. 아들 이름 카르마는 내세의 응보(應報)를 결정짓는 선악의 소행, 즉 업(業)을 일컫는 말이다. 선불교(禪佛敎)의 공안(公案) 중 하나인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은?)’에서 따온 배용균 감독의 영화 제목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처럼 불가(佛家)의 화두(話頭)를 빗대어 제목을 다시 짓는다면 ‘싯다르타가 집을 나간 까닭은’쯤 될까.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어떻게 해야 한 방울의 물이 마르지 않을까’란 질문을 골똘히 생각하며 영화를 보는 것도 나름대로 지루함을 떨칠 수 있는 비결이다. 영화의 매력은 주제보다는 화면에 있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연봉들,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하늘빛 물을 가득 담은 호수,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고갯길, 자줏빛 승복과 낭랑한 염불 소리, 알곡을 털고 빻는 장면이나 실을 뽑아 피륙을 짜는 모습 등은 한번쯤 이곳을 여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인도 출신의 판 날린 감독은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고산지대에서 15개국에서 모여든 스태프들과 영화를 찍느라 고행을 거듭해야 했다고 한다. 주인공 역의 숀 쿠는 뮤지컬 배우 출신의 신인이며 미곡상 다와 역의 락파 테링은 인도 남부 방갈로르의 수공예품 가게 주인. 페마를 빼앗기는 자마양 역의 켈상타시와 타시의 도반 소남으로 등장한 자마양 진파도 현지에서 캐스팅한 실제 농부와 라마승이다. 상영시간 138분. 18세 이상 관람가. ■청룡영화제 등서 주·조연상 후보 대거 올라 영화계에서 중견 배우들의 활약이 눈에 띈 한해였던 만큼 이들이 연말 각 영화제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이달 29일 열리는 제 25회 청룡영화제와 12월 5일 개최되는 제3회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주·조연상 중견 배우들이 대거 노미네이트되며 영광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원빈, 신하균 주연의 영화 ‘우리형’에서 두 아들의 어머니로 출연한 김해숙은 데뷔 이후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는 이미숙, 김혜수, 전도연, 강혜정과 함께 당당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청룡영화제에서는 염정아, 엄지원, 추상미와 나란히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다. 특히 청룡영화제의 여우조연상에는 김해숙과 함께 ‘인어공주’에서 열연한 고두심도 후보에 올라 중견 배우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범죄의 재구성’에서 박신양과 화면에 꽉 차는 연기 대결을 펼쳤던 백윤식 역시 주연상과 조연상에 이름을 올렸다. 청룡영화제에서는 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는 박신양을 제치고 주연상 후보에 올라 눈길을 끌고 있다. 대한민국영화대상의 여우조연상 후보는 중견배우들의 기세가 대단함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윤여정과 ‘위대한 유산’의 김수미가 고두심과 함께 세를 형성했다. ‘올드보이’의 윤진서와 ‘거미숲’의 강경헌의 이름이 중견배우들의 그늘에 가렸다. 중견 배우들의 활약은 영화 시나리오가 보다 촘촘해지면서 이들이 주로 맡게 되는 부모 역할이 단순한 부모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 더욱이 백윤식의 경우 작년 ‘지구를 지켜라’와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지듯 강한 캐릭터로 젊은 톱배우들과 당당히 경쟁을 벌이고 있다. ■노 맨스 랜드 유머와 버무린 ‘잔인한 현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 사이의 전장. 한차례 총격전이 치러진 뒤 양 진영의 한복판에 세 명의 군인이 남겨진다. 세르비아 병사가 한 명인데 비해 보스니아 병사는 두 명. 하지만 이 중 보스니아 병사 한 명은 등으로 지뢰를 누른 채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형편이니 일종의 힘의 균형 상태가 유지된다.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수입 백두대간)는 안보고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영화다. 가벼운 듯 기발한 말장난과 유머를 유쾌하게 지켜보다 보면 전쟁에 대한 감독의 철학이 느껴지고 조금씩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줄거리를 쫓아가다 보면 전쟁의 참상은 어떤 다큐멘터리 보다더 강한 충격으로 전달된다. ‘노 맨스 랜드’에 고립된 세 명의 군인. 잠시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도 하지만 결국 적일 수밖에 없다. 지뢰 위에 누워있는 보스니아 군인(필립 소바고비치)은 빨리 누군가 지뢰를 제거해 이 억세게 나쁜 운에서 해방되기만을 기다릴 뿐. 다른 보스니아 남자(브랑코 주리치)가 동료를 구하고 싶은 반면, 세르비아 남자(레네 비토라야츠)는 무조건 탈출만 하면 되니 서로 입장도 다르다. 그러던 중 UN 평화유지군이 사태 해결에 나서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외신들은 특종을 낚기 위해 모여들면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여간다. 잠시 긴장을 풀고 친교의 시간을 갖지만 제한된 공간 속의 적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일이 터지면 180도 돌변해 으르렁거릴 뿐. 코미디의 옷을 입고 시치미를 떼던 영화는 보는 이의 마음을 싸늘하게 만들 정도로 잔인한 결론도 준비하고 있다. 전체관람가. 상영시간 98분.
■shall we dance? 그의 생활은 춤과 함께 달라진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쉘 위 댄스?’는 리메이크 영화의 미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웬만해서는 원작의 매력을 뛰어넘기 힘든것이 리메이크 영화의 태생적 약점.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철저한 현지화(때에 따라서는 현대화)가 아닐런지. ‘쉘 위 댄스?’는 1996년 일본 영화 ‘단스오 시마쇼우까’(영어명은 쉘 위 댄스)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이미 검증 받은 시나리오에 리처드 기어, 제니퍼 로페즈라는 인기 배우가 주연을 맡았으니 대단히 매력적인 조합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현지화에 삐거덕거린다. 마치 얌전한 모범생처럼 원작을 부지런히 쫓아가는데만 신경을 썼다. 점프하고 싶은 것을 참고 발만 동동 구르는 격이라고나 할까. 일본 영화에서야 심심하고 정갈한 맛이 미덕이지만, 그것이 할리우드화될 때는 분명 어느 정도의 변신은 따라야 하는 법. 뉴욕에서 20년 간 변호사로 활동하며 부러울 것 없는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클라크. 그러나 삶은 무료하다. 부자들의 유언장을 써주는 일도 이제는 기계적이다. 아내와 영화 한번 보러 가는 것도 어렵다. 그런 그가 퇴근 길에 전철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던 볼룸댄스 학원을 용기 내어 찾는다. 그의 생활은 춤과 함께 달라진다. 물론 단순히 춤 때문만은 아니다. 젊고 아름다운 댄스교사 폴리나의 존재 자체가 설레게 한다. 춤은 등장인물들을 모두 즐겁게 만든다. 초보자들의 열정이 폴리나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고, 술에 의지하던 원장 미찌도 ‘건전’하게 만든다. 또한 남편이 바람 난줄 알고 긴장했던 비벌리도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춤을 배우는 사실을 숨겨온 클라크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더 바랄 게 없는데 더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것이 부끄러웠다”며 비벌리에게 고백한다. ‘쉘 위 댄스?’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메마른 인생에 용기내어 기름질을 쳐보자고 조용히 이끄는 영화다. 그러나 영화 자체에 좀 더 기름칠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 ‘웬수’와의 ‘사랑방정식 ’ ‘007’ 시리즈의 피어스 브로스넌과 아카데미 영화제 단골 후보 줄리언 무어가 법정에서 만났다.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원제 Laws of Attraction)’의 주인공은 둘 다잘 나가는 이혼 전문 변호사. 줄리언 무어가 연기하는 오드리 우즈는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치밀한 논리로 승소율 100%를 자랑하며, 피어스 브로스넌이 배역을 맡은 대니얼 래퍼티는 풍부한 경험에 토대를 둔 예리한 직관으로 불패 신화를 쌓아왔다. 첫 대결은 오드리의 어이없는 완패로 끝난다. 대니얼의 후줄근한 옷차림을 보고만만한 상대를 만났다고 안심하다가 의뢰인의 정신병력을 모르고 지나쳐 보기좋게 한방 먹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워밍업을 위한 오픈 게임. 아일랜드 고성(古城)이 위자료로 걸려있는 록 스타 손 제미슨(마이클 신)과 패션 디자이너 세레나(파커 포지) 부부의 이혼 소송을 두고 자존심을 건 승부를 펼친다. 눈만 마주쳐도 으르렁대던 둘은 아일랜드 고성으로 현지 답사를 갔다가 만나 마을의 전통축제를 함께 즐기며 가까워진다. 일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술에 잔뜩취해 정신을 잃은 뒤 아침에 깨보니 둘이 한 침대에 누워 있는 것. 게다가 손가락에 같은 반지가 하나씩 끼워져 있다. 둘은 엉겁결에 부부가 됐다는 사실을 감추기로 하고 뉴욕으로 돌아가 이혼소송변론을 계속한다. 이제는 법정에서의 승부보다는 사랑의 줄다리기 결과가 궁금해진다. 두 배우의 매력을 제쳐놓는다면 호감을 살 만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다. 98년 ‘슬라이딩 도어즈’로 감각적인 재능을 과시한 피터 호위트 감독이 지난해 ‘미스터 빈’(로완 애킨슨)의 원맨쇼에 기댄 ‘쟈니 잉글리시’를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도 주연배우의 후광에 연출력이 빛을 잃은 듯한 작품으로 실망시켰다. ●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 한달동안… 맥도날드만 먹어봐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날드를 정면으로 비판한 영화 ‘수퍼사이즈 미’(Super Size Me)가 12일 개봉한다. 영화가 화제를 낳은 것은 감독이 스스로를 직접 ‘마루타’로 사용해 실험을 했다는 점에 있다. 모건 스펄록 감독은 30일 동안 하루 세 끼를 맥도날드만 먹으면서 자신의 몸에 생기는 변화를 관찰했다. 직접 실험 대상이 된 만큼 영화는 전형적인 ‘미(me) 다큐멘터리’의 형태를 띠고있다. 때문에 영화의 중심에 있는 것은 흔히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객관성보다는 감독이 강한 말투로 펼쳐내고 있는 주관적인 주장에 있다. 객관성을 위해 감독이 세워 놓은 기준은 ‘물을 포함해서 카운터에서 주문이 가능한 것만 먹을 수 있다’, ‘권하지 않으면 슈퍼사이즈 메뉴는 시킬 수 없다’, ‘메뉴에 있는 음식은 최소한 한 번은 먹어야 한다’의 세가지. ‘건강한 몸’임을 입증하기위해 두 명의 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았다. 영화 속 카메라는 감독이며 동시에 주연배우인 모건 스펄록의 몸을 하루하루 체크해 나간다. 햄버거에 ‘물려’ 구토를 하는 장면이나 ‘위와 아래’에서 가스를 뿜어내는 것을 보여주는게 실험의 전반부. 중간중간 몸무게 체크나 건강 혹은 체력 점검이 계속되고 날짜는 하루 하루 지나가 30일째를 향한다. 무모해보이는 이 실험은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를 낳았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나트륨 수치가 점점 높아지더니 피곤과 두통은 점점 쌓여갔다. 결국은 의사로부터 중단하라는 권고를 받을 지경에 이르렀고 체중은 11㎏ 이상이 늘어났다. 원래 체중을 되찾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14개월이나 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방식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다. 이는 영화의 구성이 비교적 단조롭기 때문. 영화는 주인공의 몸상태를 날짜별로 체크해가며 패스트푸드의 해악을 설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들의 하루는 저한테는 1년이나 마찬가집니다” 암 투병 중인 가수 길은정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음반 ‘만파식적’을 내놓았다. 직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그는 최근 암세포가 골반으로 전이되면서 병원에서도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신보 출시도 모자라 원음방송(서울 89.7㎒)에서 매일 생방송 ‘길은정의 노래하나 추억둘’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발이 완전히 마비되어 휠체어와 목발에 의지해 삶을 지탱하고 있는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인터뷰를 특유의 소녀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히 이어나갔다. “매일 아침 병원 통증 클리닉에서 마약성분이 있는 진통제를 맞고 패치를 붙이고 링거를 맞고 방송국에 옵니다. 정신을 놓아버리면 완전히 폐인이 될 것 같아서 방송이라는 마지막 끈을 붙들고 있습니다. 무언가 사람을 만나고 약속을 하고 하는 일이 있어야 하잖아요. 매일 밤 통증이 너무 심해서 비명을 지르고 잠도 한숨 못이루고 진통제를 맞을 아침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도 너무 많이 맞아서 이젠 잘 듣지도 않네요.” 1996년 직장암과 투병을 시작했던 길은정은 2년 전 노래 시집을 내면서 임파선으로만 전이가 되어서 잘만 관리하면 10~20년까지도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림프와 혈류를 통해 암세포가 뼈 속까지 완전히 침투한 상태라고 한다. 골반과 척추에 전이되면서 오른쪽 다리는 현재 전혀 쓰지 못한다. 병원에서도 수술도 항암 치료도 가망이 없다고 짧으면 3개월 길어도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한번 무너지면 끝장이 날 것 같아서 마지막 끈을 붙들고 있어요. 그렇지만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예요. 아주 고요하고 평화롭게 받아들이고 맞이할 수 있을 것같아요”라고 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옥죄어 온 병마와 싸워 가면서 평소 해야할 일들을 차근차근 준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이미 해놓은 듯했다. “2년전 노래시집 베스트음반을 낼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만파식적’ 음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음반은 작년 겨울에 녹음을 했었던 겁니다. ‘나 떠나도 멀리가도 눈물 흘리지 마요. 하늘보고 나를 보고 이 노래를 불러요’라는 가사를 직접 쓴 걸 보면 작년부터 예감을 하고 있었나봐요.” 이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한 ‘이 노래를 불러요’란 곡. 또 최희준의 원곡인 ‘종점’도 생의 마지막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로 해석돼 안타까움을 전한다. 그는 단독 콘서트는 아니지만 많은 팬들을 만날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오는 7일 여의도 KBS홀에서 녹화하는 ‘열린 음악회’의 무대가 그것.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서 왼쪽발로만 지탱하고 기타를 치면서 ‘난 널’이라는 신곡을 부를 예정이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한참 생각하더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죠”라고 수줍어 한 뒤 “뭐랄까 정직한 낭만주의자였다”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