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2월 4일은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었다. 겨울 속에서 듣는 봄이란 말은 반갑기 그지 없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그래도 따뜻함이 낫다. 봄에는 특히 자연의 신비로운 생명력을 실감하고 그가 거둔 승리감을 공유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어찌 작년의 그 봄이 아니라고, 나이가 한 살 늘었다고, 안타까워 하랴. 나이 들수록 더욱 환희로운 계절이 봄이다. 겨울을 견디고 봄을 다시 맞을 수 있는 삶의 여정이 고마울 뿐이다.입춘은 동지(冬至) 이후 대지의 음기가 양기로 돌아서면서 모든 사물이 왕성히 시작되는 24절기의 시작이다. 정월(正月),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들어 있어 선인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도 하였다. 절분은 해넘이라고도 불린다.그래서 입춘 날 아침 사람들은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인다. 입춘첩은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문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이는 글귀다. 입춘축(立春祝), 입춘방(立春榜), 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대문이나 기둥에 양쪽으로 붙이는 대련(對聯)으론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다, 壽如山 富如海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여라, 雨順風調 時和歲豊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고르니,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든다,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님은 오래 살고, 자손들은 길이 번영한다라고 썼다.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엔 春到門前增富貴봄이 문 앞에 당도하니 부귀가 늘어난다, 春光先到吉人家봄빛은 길인의 집에 먼저 온다, 上有好鳥相和鳴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一春和氣滿門楣봄날의 온화한 기운이 문에 가득하다라고 썼다. 백번을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귀들이다.저 옛날 이백(李白701~762)이 寒雪梅中盡, 春風柳上歸라고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에서 읊었다. 차가운 눈은 매화 속에서 사라지고, 봄바람이 버들가지 위로 돌아온다는 말이겠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지만, 활짝 핀 즈음이면 눈은 어느 사이엔가 스스로 녹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버들가지는 연한 녹색 빛을 보일 듯 말 듯 가리고서 봄바람에 흔들릴 터이다. 차가운 눈은 생명을 다했으니 인내한 매화의 승리는 완전하고, 봄바람은 버들가지에 돌아 왔으니 마땅한 제 자리를 찾았다.두보(杜甫712~770)도 細雨魚兒出(가랑비에 새끼 고기 물 위로 나오고), 微風燕子斜(산들바람에 어린 제비 날개 기울인다)고 노래했다. <수함건흥(水檻遣興)>에 보인다. 봄날 가랑비에 새끼 고기들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미풍을 타고 어린 제비들이 날개를 기울여 오르락내리락 나는 광경이 눈감아도 보인다. 전원의 소박함과 평화로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말의 봄도 보다의 명사형이다. 입춘지절은 대지 위에 서서(立) 이러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하는 계절이다.한자(漢字) 春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오는 모양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과 시작의 의미를 지닌 글자다. 春은 갑골문(甲骨文) 당시만 해도 대단히 형상적이었다. 풀(艸) 사이로 태양(日)이 그려져 있고 소리부 겸 의미부인 屯(둔)이 들어 있다. 춘휘(春暉)는 봄볕으로 어머니의 은혜를 비유한다.북극한파가 남아 있고 꽃샘 추위가 몇 날 있겠지만 남녘지방의 동백은 이미 붉게 꽃봉오릴 열었다. 봄은 이미 남강을 건너 와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머물렀다. 2012년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아 우리나라 사람 모두 입춘첩의 글귀처럼 만사형통하였으면 좋겠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이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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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호 논설위원
2012-02-05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