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호 칼럼] 왜 ‘김영란 法’을 두려워 하는가

공직자의 부정비리는 중죄다. 당연히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안)은 하루라도 빨리 시행돼야 한다. 정부 부처, 산하기관, 지방자치단체, 국영기업체, 정치권까지 온전한 곳이 별로 없을 지경으로 썩을대로 썩었기 때문이다. 연간 무역 1조 달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라고 자랑하지만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 우리나라 공직자의 청렴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최하위다. 일명 김영란 法으로도 통칭되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은 공직자가 청탁을 받은 경우 반드시 그 내용을 신고하도록 하고, 직무 관련자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대가성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즉 부정청탁을 받았다고 판단하면 공직자는 이를 즉시 소속 기관장 등에게 서면으로 신고해야 한다. 부정청탁자가 이해당사자 또는 제3자인 경우에는 과태료, 공직자인 경우엔 형벌의 대상이 된다. 공직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청탁을 금지하고, 직무상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초강력 청백리법인 셈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직자가 공무원에게 지역구 민원이나 인사 청탁 등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게 눈에 띈다. 고질적 청탁부터 척결돼야 그런데 김영란법 국회 상정을 앞두고 너무 엄격하다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청탁과 민원의 구분이 모호하고, 건전한 의사소통을 위한 만남까지 막을 수 없다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지난해 6월14일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직자의 청탁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을 제안했을 때도 국무위원들의 반대발언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공직자가 받는 모든 청탁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해 보고토록 하고, 직위를 이용해 특혜를 주면 금품을 받지 않았어도 처벌한다는 규정을 담았다. 공직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전관예우 폐해 시정에 역점을 두었다. 하지만 국무위원들이 발목을 잡았다. 대통령 주재하의 국무회의에서 이런 반론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무릇 공직자가 지향해야 할 공공성은 자신의 사적 이익을 벗어나 전체를 배려할 수 있는 성숙한 능력을 의미한다. 공공성을 올바로 수행하기 위하여 반드시 확보돼야 할 것이 윤리다. 공직자의 윤리는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기본적 덕성이다. 공직자가 국민이 아닌 자신을 대리하면 공직의 의미는 상실되며, 공직이라는 이름도 붙이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입법 과정이 걱정된다 공공성을 무너뜨리는 주 원인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다. 이해충돌은 공직자 스스로의 사익 추구에, 부당한 청탁에 의해 발생한다.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것은 윤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부패를 예방하는 길이다. OECD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이해충돌 방지제도를 시행했다. 미국은 케네디 대통령 시절인 1962년에 뇌물 및 이해충돌 방지법을 제정해 분산돼 있었던 이해충돌방지 관련 규정들을 정리했다. 미국 의회는 이 법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법으로 평가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부터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을 추진해온 연유다. 공직윤리 확보를 위한 법이 없진 않지만 그동안 역부족이었던 점에서 최초 여성 대법관 출신의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이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 방지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 이 법은 뿌리 깊은 사회구조 및 그에 의해 형성된 개인의 사고와 행태에 혁신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모든 공직자와 시민이 청탁과 금품 수수 등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윤리적 기준이 내면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일부 고위 공직자의 이중적 행태와 국회 입법 과정에서 상당수 국회의원들이 입법을 지연시킬 우려가 농후한 점이다. 김영란법을 두려워하는 자는 공직자의 자격이 없다. 공직사회를 떠나야 한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6·21 정전대비 비상 훈련’ 성과

사상 처음으로 지난 21일 오후 2시부터 20분 동안 전국에서 실시된 정전(停電) 대비 비상훈련은 성과가 컸다. 훈련 시작 10분 만에 전력수요가 548만㎾까지 줄었다. 화력발전소 기준으로 10기, 원자력발전소로는 5기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양이다. 지난해 915 정전 대란 때 전력공급량에서 수요량을 뺀 예비전력은 24만㎾였다. 기업체와 대형빌딩, 국민이 적극적으로 절전에 나서 10분 만에 이보다 22배 많은 전력을 아낀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전력 당국은 예비전력이 500만㎾ 이상이면 안정권으로 본다. 올 여름 극심한 전력난이 예상되지만 국민이 절전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 전력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일단 입증됐다. 이날 절전량 중 387만㎾는 1천750개의 산업체의 절전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피크 시간대 전력수요의 54% 가량을 차지하는 산업체는 조업시간을 조정하고 냉방기 가동을 중지해 387만㎾의 전력을 줄였다. 총 절전량의 71%에 해당된다. 백화점대형마트호텔다중이용시설 등 일반 건물에서도 총 절전량의 25%인 138만㎾를 줄였다. 아직 미약한 전력부족 위기의식 대다수 이마트는 모든 점포의 조명을 절반 가량 끄고 어두컴컴한 상태에서 영업했고, 롯데마트도 97개 모든 점포가 정전을 가상한 비상훈련을 실시했다. 전체의 96%를 차지할 만큼 이들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잖게 드러났다. 일부 지역은 비상사이렌 소리에도 불구하고 빌딩상점 냉방은 여전했고, 도심 곳곳의 분수대가 물줄기를 뿜어 올렸다, 분수대는 전기로 가동되는 시설물이다.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는데 이날 훈련에선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 도심지의 많은 상점들이 에어컨을 켜고 문을 연 채 영업했다. 민간 업무용 빌딩과 병원, 커피전문점 등 다중 이용시설의 참여도는 더욱 저조했다. 특히 일반 주택의 경우 전력수요를 5천㎾정도만 줄여 절전 참여도가 낮았다. 일반 주택은 피크 시간대 전력수요 점유율이 11%에 달하지만 이번 훈련에서의 절전량은 전체의 0.06%에 불과했다. 가정 주부나 일반 시민층의 전력부족에 대한 위기의식이 아직 약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부분 집을 비우는 시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여가 너무 낮았다. 전력대란을 무서워하지 않는 계층이 의외로 많다. 정부와 국민은 전력대란에 대비해야 된다. 우선 넉넉한 발전 용량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로 서울과 양주의 복합화력발전소 등 올해 준공예정이던 450만㎾의 발전설비가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원전 예정부지의 반발 기류도 난제다. 당장 대형 발전소가 어렵다면 노후 발전소 폐쇄 시점을 늦추거나 단기 준공이 가능한 신규 발전소 설립을 서둘러야 한다. 다음으론 전력 소비를 줄이는 일이다. 비상 훈련으로 절전 잠재력은 확인됐지만 아직도 가정업소의 과소비 패턴이 전적으로 개선될 조짐은 없다. 원가에 밑도는 전기요금이 주범이다. 지나치게 싼 전기 요금 체계를 서둘러 손봐야 한다는 얘기다. 싼 전기 요금, 과소비 부추긴다 일본의 전기 요금은 우리의 2.8배, 미국은 1.3배다. 특히 가용 한도 내에서 단기적 수급 상태를 최적화해야 된다. 잇단 원전 고장 등으로 전력공급 능력은 더 떨어졌고, 정비 일정도 들쑥날쑥해 위기감을 더 키웠다. 올들어 예비전력이 400만㎾ 이하로 떨어진 게 벌써 두 번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형 발전소 한 두 곳이 고장 나면 치명적인 위기가 닥친다. 조금만 불편을 감수하면 안정적 예비전력 규모인 500만㎾를 손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6월21일 정전대비 비상 훈련이 입증했다. 정전대비 훈련이 더 필요한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기는 값싼 에너지가 아니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내가 혹 ‘썩은 사과’ 아닌가

사과는 예사롭지 않은 과일이다. 사과 한 알이 역사를 바꾼 사례가 많다. 인류에게 원죄를 가져다 준 아담과 이브의 사과부터 트로이 전쟁 도화선이 된 황금사과, 스위스 독립의 기초가 된 윌리엄 텔의 사과, 현대미술 출발을 알린 세잔의 사과, 스마트 혁명을 이끈 스티브 잡스의 사과까지 사과는 오랜 세월 동안 빼놓을 수 없는 인류사의 인연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작 뉴턴의 사과는 특히 유명하다.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면서 만유인력(萬有引力)을 발견했고, 우주의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잡아 당기는 힘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궁극적으로 현대물리학의 굳건한 토대가 됐다. 뉴턴은 형이상학과 과학이 경계가 모호하게 섞여 있던 시절에 과학(자연철학) 특히 수학의 눈으로 우주만물을 설명해낸 주인공이었다. 만유인력은 발견 중 발견이다. 뉴턴은 보편중력이라는 개념으로 태양과 달과 지구의 인력을 설명했고, 밀물과 설물의 원리를 찾아냈다. 과일 사과는 인간생활과 밀접하지만 그러나 썩은 사과는 해악을 끼친다. 특히 무더기나 상자 속 썩은 사과는 스스로 썩어 못 먹게 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사과들도 썩게 만든다. 골라내지 않으면 상자 속 모든 사과가 썩게 되고 결국 전부 버려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사회 조직 안에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장기간의 행동으로 개인이나 팀 또는 전체를 병들게 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이들은 썩은 사과로 비유된다. 상자 속에 썩은 사과가 방치되면 다른 사과까지 못 먹게 돼 버리는 현상을 사람과 조직에 비유하면서 만들어진 말이다. 썩은 사과는 동료나 부하직원을 힘들게 하고 조직 전체를 좀 먹게 한다. 조직을 좀 먹는 썩은 사과 이들은 치유조차 힘들고 자기 스스로는 본인이 썩은 사과인지조차 모른다. 심지어 우수한 실적을 보이는 직원 중에도 썩은 사과와 같은 직원이 존재하며, 높은 성과에 홀려 리더가 썩은 사과의 보호자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썩은 사과는 결과적으로 조직에 치명타를 가한다. 문제는 이런 썩은 사과는 규모나 업종을 불문하고 어느 조직에나 있다는 점이다. 직급성별인종학력과도 무관하다. 지속적으로 동료나 부하 직원을 못살게 굴고 방해하며 마음에 상처를 준다. 썩은 사과는 직급이나 업종을 가리지 않고 존재할 수 있지만, 썩은 사과가 권한을 쥐게 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게 된다. 썩은 사과가 지도자급관리자급이 되면 숨겨져 있던 썩은 사과 기질을 드러낸다. 평사원급에서 썩은 사과가 등장하면 그래도 해결할 수 있지만, 리더나 관리자가 썩은 사과가 되면 정말 손쓰기 어려워진다. 여기에다 단기 성과를 추구하기 쉬운 전문경영인이 조직이 시끄러워진다는 걸 껄끄러워하거나 썩은 사과의 단기 성과만 보고 썩은 사과를 방치하면 장기적으로 조직은 완전히 망가진다. 정치적으로 썩은 사과, 적잖다 특히 정치권의 썩은 사과는 썩을수록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간교한 냄새를 풍긴다. 사탄이 따로 없다. 정치권에 썩은 사과가 많아지면 국가가 위태로워진다. 국민이 고달퍼진다. 썩은 사과를 퇴치하기 위해선 최고경영자(CEO)의 관심과 의지가 그 무엇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CEO 자체가 썩은 사과이거나 부지불식간 썩은 사과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어 조직문화 시스템이 썩은 사과를 막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항균 사과박스를 만들어야 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사회, 이 세상이 나를 썩은 사과로 평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묻는다. 너는 썩은 사과가 아닌가?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아라뱃길 수향팔경 보러 갑시다

드디어 경인아라뱃길이 2012년 5월25일 열렸다. 무려 800여년 만이다. 서해와 내륙을 잇는 아라뱃길은 총연장 18㎞에 이르는 물길이다. 한강(서울 강서구 개화동)과 서해(인천 서구 오류동)를 오고 간다. 아라뱃길은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다. 수도권 내륙에 응집된 우리 민족의 기운이 바다 밖으로 드넓게 뻗어나갈 관문을 열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한강~서해 뱃길 조성 역사는 서기 1200년께 고려 고종 집권기 때 시작됐다. 당시 왕조는 전국 각지에서 거둔 조세를 왕실 곳간인 경창(현재 서울 마포 일대)으로 안전하게 옮기기 위해 운하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강 하류의 거센 조류와 조수간만의 차이 등 기술적인 문제로 포기했다. 조선 중종 때도 같은 구간에 운하를 만드는 사업을 재추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운하공사가 다시 추진된 것은 1992년이다. 인천 굴포천 방수로 공사를 경인운하, 아라뱃길 등으로 확대, 추진하며 20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수향팔경은 관광명소 지금 경인아라뱃길은 16개 노선에 여객선 9척, 화물선 10척이 운항한다. 유람선은 김포에서 서해 각 섬들을 잇는 형태로 운항한다. 화물선은 김포에서 평택인천을 거쳐 서해로 빠지는 노선이다. 이 중 국제항로는 6개 노선 총 7척으로 중국 칭다오텐진상하이, 러시아, 일본, 동남아 등을 잇는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2030년까지 연간 총 1천296만7천t에 달하는 화물이 아라뱃길을 통해 서해와 내륙을 오갈 것으로 전망했다. 연간 3조원에 달하는 생산유발 효과와 2만6천명의 고용효과가 예상된다. 홍수 피해 예방 효과도 기대된다. 아라뱃길은 평상시엔 배가 오가는 주운수로지만 홍수기엔 주변 물을 서해바다로 빼는 방수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관광산업에도 혁신이 예고된다. 한강과 서해를 연결해 수도권 주민들이 서해로 오가기 쉬워지고 중국 등지에서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국내로 들어오기 편해졌다. 특히 아라뱃길의 수향팔경은 관광명소다. 서정과 활력이 넘친다.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의 반발, 운하건설의 경제성에 대한 감사원정치권의 재검토백지화 논란으로 하마트면 山으로 갈 뻔한 아라뱃길이다. 2004년 7월 한 차례 공사가 중단된 전력이 있듯 상당수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다. 먼저 물류 기능이 기대 수준에 미칠지가 관심사다. 아라뱃길 수심은 평균 6.3m다. 조선업계에선 5천t급 이상 화물선이 오가기 위한 수심을 6m 이상으로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최소치일 뿐이다. 5천t급을 초과하면 아예 운항이 어렵다. 수도권 물동량 중 상당 부분을 넘겨받기엔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운송시간도 문제다. 현재 서울 행주대교 남단에서 서해까지 차로 30분쯤 걸리지만 선박으로 아라뱃길을 통과하면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각계 전문가들의 지적비판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서울이 항구도시가 된다 관광산업 측면에서도 걱정이 된다. 당초 계획상엔 서해에서 김포를 지나 서울 여의도에까지 이르는 형태로 뱃길이 구상됐다. 하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후 이 계획을 사실상 백지화했다. 만약 폐지 쪽으로 확정된다면 중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이 유람선을 타고 서울로 오기는 글렀다. 여의도와 용산 등지에 대규모 마리나를 설치해 한강을 국제 해상관광 거점으로 키우겠다는 계획은 신기루로 끝날 공산이 없지 않다. 서울시장은 그래서 국민 혈세 2조2천억원이 투입된 대형국책사업 아라뱃길이 유정하게 흐르도록 협조해야 된다. 그래야 내륙도시 서울이 바다를 품은 새로운 항구수변도시로 바뀐다. 서울이 항구가 된다. 국토 분단 이후 한강에서 서해로 나가는 입구가 비무장지대로 바뀌어 오랫동안 막혔던 바다로 나가는 물길을 수도 서울이 열었다는 칭송을 듣는다. 친지들과 유람선을 타고 아라뱃길의 수향팔경을 구경해야겠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취재·보도의 힘

<매향리 사격장 환경지킴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논란>. 본보 5월 7일 1면 톱기사 제목이다. 화성시 매향리 쿠니 사격장에서 28년간 폭발물 처리반 탄약책임자로 근무하던 74세의 백완기 옹이 지난달 2일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는 내용이었다. 백옹은 지난 3월 29일 오후 8시께 백옹의 집으로 찾아온 자식들이 아버지에게 항의하며 냉장고 안에 있던 음식을 이부자리에 던지는 등의 폭행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식들의 행동은 백옹이 2007년 3월께부터 교제하면서 사실혼 관계에 있는 B씨에게 최근 자신의 땅 3천여㎡(900평)을 준 사실을 알게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백옹은 자식들이 자신을 폭행했다며 이웃 주민에게 신고를 부탁, 경찰이 출동했다. 반면 백옹의 자식들은 같은 날 자신들도 폭행을 당했다며 백옹을 폭행혐의로 맞고소하기도 했다. 백옹은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자식들이 밤에 찾아와 당신 3일 후면 인생 끝났어라고 말한 뒤 2일 오전 구급차가 와 데려갔다며 분명 자식들이 합심, 재산을 탐내면서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고 주장했다. 백옹의 여동생은 당신들 아버지가 한 여자한테 미쳐 전 재산을 날리면 가만히 있겠냐고 말했다고 한다. A 병원은 백옹이 조울증과 행동장애 증세 이외에는 대인관계나 판단력 등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여서 가족 동의만 있다면 통원 치료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매향리 환경지킴이 정신병원 강제입원 논란 일자 경찰, 한 달 만에 뒷북 수사>, <본보 취재 들어가자 가족들 돌연 퇴원 결정>. 본보 5월8일 1면 톱기사 큰 제목, 작은 제목이다. 경찰이 백옹과 자식들의 폭행사건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 것으로 드러나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였다. 이에 대해 화성서부경찰서는 사건 당시 자식들도 아버지의 처벌을 원하지 않고 백옹도 진단이 내려진 상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 본인 진술의 신빙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사건을 종결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백옹의 증세가 심각하다며 입원치료의 당위성을 주장해 왔던 병원측과 가족들은 본보의 취재와 경찰의 뒤늦은 수사착수 이후 돌연, 백옹을 퇴원시키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져 강제입원 의혹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A병원은 가족들의 동의와 의사에 판단에 따라 통원치료를 조건으로 퇴원을 시켰다고 말했다. <매향리 환경지킴이 강제입원 한 달여 만에 집으로 지옥같았던 시간 잊고 매향리 포탄 제거 힘쓸 것>. 본보 5월9일자 1면 톱기사, <백완기옹 정신병원 입원 한 달 인권은 없었다. 손발 묶고 안정제 투여도> 6면 톱기사 제목이다. 한 달여를 보낸 정신병원 입원실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백옹은 경기일보를 통해 새 삶을 얻게 돼 매우 기쁘다. 앞으로 자식들과의 관계개선은 물론 매향리 포탄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며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상당수의 사람이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입원, 고통을 받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A병원은 독방은 전문용어로 안정실이며 환자 본인과 다른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정 시간 안정실에 보내는 것은 치료의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매향리, 우리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포탄 잔해물 수거했다더니 갯벌 곳곳 시한폭탄> 본보 5월 10일 1면 톱기사 제목이다. 국방부가 2010년 지면과 갯벌 상층부에 대한 사격 잔재물 수거제거작업을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바닷물이 빠진 농섬 주변에는 녹슨 500파운드 포탄, 30㎜ 발칸포 탄알, 2.75인치 WP로켓포, 5인치 로켓포 등 수십여개의 사격 잔재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다음날인 8일 백옹은 눈에 보이는 것만 조금 치웠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군 당국의 안전불감증이 매향리에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매향리 주민 백완기라는 개인을 둘러싼 4일간 본보의 심층밀착 취재 보도는 믿기 싫은 한 가정의 우울한 내막,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정신병원의 실상, 여전히 아쉬운 경찰의 수사력, 지금도 위험이 상존하는 매향리의 현실을 연속적으로 드러낸 지상드라마였다. 석연찮은 일부의 변명이 있었으나 본보 기자들의 취재와 보도는 모순 많은 우리 사회의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혔다. 그 노고가 지대하였다. 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중국동포들, 우리의 이웃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 136만명 가운데 절반인 67만명의 국적이 중국이고, 중국 국적의 70%인 46만여명이 중국동포, 즉 조선족이다. 이미 한국 국적을 회복하거나 귀화한 이들도 7만5천여명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이 서울 영등포구로금천구, 경기 수원안산 등 수도권에 모여 산다. 중국동포들 가운데는 기업가나 교수도 있지만 대개 건설현장 일용직, 영세공장 노동자, 양계장 일꾼, 식당 보조, 파출부, 간병인 같은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 내국인들의 3D업종 기피로 중국동포들이 없으면 공장도, 식당도, 공사판도 돌아가지 못할 상황이다. 요즘엔 중국동포 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하는 게 아니라 한국인 공장 주인들이 월급 올리기 경쟁을 하며 중국동포들을 찾아다닌다고 한다.안타까운 일은 극소수 중국동포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다. 중국동포가 밀집해 사는 안산 원곡동 일대는 밤에 외출하기 겁난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동포 출신 조직폭력배들이 성매매, 도박, 마약 같은 범죄를 일삼으며 같은 중국동포들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일 수원 지동(池洞)에서 40대 중국동포가 20대 여성을 납치 살해하고 토막낸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동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1천347명이며, 이 가운데 중국동포는 1천227명에 이른다. 외국인이 많이 사는 것은 그만큼 한국인 인정이 따뜻하고 넉넉하다는 얘긴데 살기 좋기로 이름난 못골이 순식간에 공포의 마을로 변했다. 인심 후하고 살기 좋은 지동살인 사건이 터진 후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주민들은 경찰 잘못으로 인심 후하고 살기 좋은 동네가 흉악범 소굴처럼 됐다며 112신고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한 경찰의 무능함을 탓하고, 인터넷엔 조선족은 동포가 아닌 중국인 모든 조선족을 쫓아내야 한다 외국인 중 가장 악질이 조선족 이라는 글이 떴다. 중국동포를 외국인으로 인식한다면 정말 큰일이다. 그들은 원해서 중국에 간 사람들이 아니다. 운명적으로 한국인 핏줄을 갖고 중국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과 같은 신분이다.문제는 중국동포들이 저임금과 체불 등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워 생계형 범죄에 빠지기 쉽다는 점이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어 성관련 범죄를 일으킬 우려가 없지 않다. 혼자 사는 비율이 높아 정서적으로 외롭고, 공동체에서 소외돼 있어 심리적으로 외로움이나 갈등을 겪는 건 인지상정이다. 중국동포들의 속성이나 문화가 범죄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경제사회적 고립 때문에 범죄를 일으킬 수 있는 객관적 노출에 더 처해 있을 뿐이다. 사회적 차별이 많아 쌓이는 불만하지만 통계상으로 중국동포들의 범죄율은 내국인에 비해 높지 않다. 중국동포는 내국인 인구의 0.9% 수준이다. 대검찰청의 2011년 범죄분석보고서를 보면 한족과 중국동포를 모두 포함한 중국인범죄자 수는 2010년 기준으로 전체 범죄의 0.5%다.외국인 범죄가 언론에 터질 때마다일부에서 중국동포는 위험하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고 분노를 중국동포들에게 표출하는 관행이 반복돼선 안 된다. 중국동포들도 지금 여성 살인사건의 범인을 규탄하고 원망한다.진짜 극악무도의 끝이구나. 죄를 진 만큼 형벌받아야 한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조용하게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대다수 조선족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끼칠까. 선량한 조선족들이 피해를 받을까 걱정된다고 불안해 한다. 그렇다. 개인 범죄를 집단문제로 일반화해선 안 된다. 중국동포들은 우리의 이웃이다. 이방인이 아니다.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선생님들이 불쌍하다, 그러나…

근래 교사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항상 얼굴을 맞대는 학생들이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로부터 욕설과 폭언을 듣는 일이 다반사다. 과거보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폭력적인 학생이 한 반에 1~2명은 꼭 있다고 한다. 정부와 사회는 학교폭력 문제를 교사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있지만 교사들은 날로 거칠어지는 학생들 앞에서 거의 속수무책 상태다. 생활지도에 어려움을 겪다가 심리치료를 받거나 휴직퇴직을 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 교사들이 직업적인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학교에서 속출한다. 근무연수가 20년이 안 됐는데도 명예퇴직 신청자가 늘어나는 추세가 이와 무관치 않다. 어느 나이 많은 여교사는 여학생한테 쓰레기를 주우라고 했다가 X년 이라는 욕을 듣고 절망한 나머지 명퇴를 신청했다. 교사들에게는 무조건 자기 아들 딸을 두둔하고 나서는 학부모도 두려운 존재다. 막무가내로 자녀를 두둔하는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대다수 교사는 약자의 처지다. 학교폭력으로 권고전학 처분을 받은 가해 학생 아버지가 찾아와 집기를 부수고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례가 있었다. 인천 S중의 한 교사는 가해학생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업시간에 교무실로 따로 불러 진술서를 쓰게 한 적이 있었는데 학부모가 왜 수업시간에 조사를 하느냐고 항의해 사죄할 수밖에 없었다고 신세타령을 했다. 더구나 학교폭력을 방관한 혐의로 교사가 경찰 수사까지 받는 지경에 이르러 교사들의 위상이 영 말씀이 아니게 됐다. 교사들 사이에서 소송 대비 보험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가 나온 배경이다. 예전에는 교사와 학부모가 한편이 돼 학생을 훈육했는데 요즘은 학부모가 일방적으로 학생 편을 드는 바람에 교사-학생-학부모 사이가 상당히 서먹서먹해졌다.교사들이 학생 생활지도에 무기력한 이유는 날로 거칠어지는 학생 탓도 있지만, 단순 암기 능력을 측정하는 교원 임용고사가 근본 원인이기도 하다. 현재 초중등 임용고사는 교육학 지식을 묻는 객관식 시험(1차), 전공 분야에 대한 서술형 평가(2차), 수업실연(3차)으로 치러진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엽적인 지식을 묻는 1차 시험이 임용고사를 대비한 사교육 팽창의 주범이라며 올해부터 폐지했다. 그러나 초등 임용고사의 경우 2차 서술형 시험조차 단답식으로 출제돼, 수험생들 사이에 족집게에 대한 요구가 강하다. 각 교육대 교수들이 임용고사 대비 모의고사를 출제하는데, 실제 시험에 유사한 문제가 출제되는 경우가 있어 수험생들이 서로 사고팔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임용고사의 마지막 단계에 수업실연과 적성면접이 포함돼 있지만, 교사들은 연기로 때울 수 있는 쇼나 다름 없다고 말한다. 10분 동안 시나리오를 짜서 부진아 지도를 하는 척하고, 있지도 않은 학생과 눈 마주치는 척하며 웃기까지 한다. 다양한 부적응정서 불안 학생을 만나는 실제 교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사범대나 교대 재학 중 생활지도 관련 교육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생활지도와 관련해선 2학점짜리 단 한 과목을 수강한 경우가 허다하다. 생활지도 관련 과목은 필수가 아니라서 극단적인 경우 이수하지 않아도 교사가 될 수 있다. 특히 과목별로 양성하는 중등의 경우 교사들의 교육자적 자질보다는 국어수학영어 등 전공 과목과 관련한 지식만 강조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서적인 욕구가 충족돼야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는 점에서 학생과 관계를 맺는 생활지도가 교과지도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렇게 교사들의 문제는 난마와 같다. 학생들이 무서워 우울증을 앓는 교사들이 적잖다니 선생님들이 불쌍하다. 학부모들까지 두려운 존재라니 선생님들이 더 처량하다. 교사를 괴롭히는 일부 학생, 학부모들이 그 많은 착한 학생, 좋은 학부모들의 심성을 반에 반 만큼이라도 닮는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학교가 아무리 고달퍼도 스승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교사들은 오늘도 교단에 선다. 그런 선생님들이 훌륭하시다.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에 대비하라

근래 우리의 안보상황은 625 이후 가장 위험한 수준이다. 당장 북한이 올해를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선포할 준비를 갖췄다. 핵과 생화학무기 등 비대칭전력의 개발과 함께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기습침투를 위한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하는 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최근 북한의 서해함대사령부 소속 잠수함 몇 척이 수중작전에 들어가고 북한군이 이명박 역적 패당 등의 표현을 쓰면서 무자비한 성전(聖戰)을 독려하고 있다.북한 기자동맹 중앙위원회 대변인이 지난 13일 물리적 조준경 안에는 청와대 뿐만 아니라 종로구와 중구, 영등포구도 들어 있다고 공공연히 밝혔다. 서울 불바다보다 더 위협적인 언동이다. 이런 와중에 북한이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전후한 내달 12~16일에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16일 밝힌 것은 김정은 체제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핵실험과 함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일시 유예하기로 한 지난달 23~24일의 베이징 미북 합의를 한 달도 안 돼 깔아 뭉갠 것은 의도된 책략이다. 이미 미국은 로켓을 발사하면 식량지원이 어렵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일본은 북한의 자제를 강력히 촉구했다. 중국도 주중북한대사를 불러 우려를 표명했고, 엊그제 유럽연합(EU)이 국제적 의무와 정반대되는 것이며, 특히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결의안(1874호)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제적인 시선을 집중시켜 한꺼번에 여러 효과를 얻겠다는 다목적용 포석을 깔고 발사 공표를 꺼낸 북한은 마이동풍, 우이독경이다.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대내외에 과시함으로로써 내부 체제를 결속하는 동시에 한미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북한은 광명성 3호가 지구관측위성이라며 평화적 우주이용을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탑재할 발사체 은하 3호는 본질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곧 대륙간탄도탄(ICBM)이다. 장거리 로켓과 ICBM은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고열을 견디는 기술 유무로 구분되지만 실제로 큰 차이는 없다. 북한은 지난달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미국이 대양 건너 먼 거리에 본토가 있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처럼 큰 오산은 없다며 우리에겐 위력한 전쟁수단과 최첨단 타격장비가 있다고 큰소릴 쳤다. 북한 조선우주공간기술위원회도 발사계획 발표 담화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을 힘 있게 고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기본적으로 군사용임을 강조했다. 1998년 첫 발사 때부터 장거리 탄도 미사일 실험 의혹을 받았던 광명성 위성 발사 카드를 꺼냄으로써 일종의 벼랑 끝 전술을 폈다. 과거보다 더 위협적인 핵무기 개발의 길로 가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 없다. 광명호 발사 장소를 동해가 아닌 서해로 택한 것도 그렇다. 지금까지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방향을 동해태평양을 택했다. 가깝게는 일본, 멀게는 미국을 위협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천안함, 연평도 도발로 남북 간 군사 긴장이 조성된 서해남쪽을 발사 방향으로 잡았다. 김정은이 남한에 직접 위협을 가할 정도로 대담하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다. 김정은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할아버지(김일성 주석)와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지니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계략이다. 북한이 남쪽 하늘에 대고 미사일을 발사하려는 것은 5천만 동족에 대한 중대한 협박이고 안보에 대한 도전이다. 인민들은 굶주리다 못해 목숨을 걸고 인접국으로 탈출해 유리걸식을 하는 판국에 1억~2억달러가 드는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느냐는 일부 설마론은 절대 금물이다. 최근 지속되는 대남 비난의 강도를 가늠해 볼 때 한반도 긴장의 파고는 훨씬 높아졌다. 더구나 세계 53개국과 4개 국제기구의 지도자들이 참석하는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오는 26~27일 이틀간 대한민국 수도 한 복판에서 열린다. 정부는 우리의 영공영해를 지나는 모든 군사적 행동을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광명성 3호 발사 준비 추이는 물론 북한군의 동태를 실전처럼 주시해야 한다. 안보는 국가 존립과 직결된다. 육해공군이 그야말로 철통같은 경계에 임해야 된다.임병호 논설위원

‘눈 먼 해태’가 너무 많다

물水와 갈去로 구성된 法이란 한자는 정자(正字)가 아니었다고 한다. 전설의 동물 해치(해태해타)를 뜻하는 글자가 去위에 더 있었다. 해치는 사람의 시비곡직을 판단하는 신령스러운 재주가 있어 성군을 도와 현명한 일을 많이 하였고, 만일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그 뿔로 받아 넘긴다는 상상의 동물을 뜻한다. 기록마다 모습이 다르지만 머리가 사자 또는 양의 모습이다. 기린처럼 머리에 뿔이 있는데 몸 전체가 비늘로 덮였다.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는 것으로 전한다. 해치는 2008년 5월 13일 서울시의 상징 동물로 선정됐다.선인과 악인을 구분하기 때문에 해치는 재판과 관계지어졌고, 후대에는 해치의 모습이 재판관의 옷에 그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의 관복 흉배에 해치를 새겼다. 사헌부를 지켜주는 상징인 셈이다. 오늘날에도 국회의사당과 대검찰청 앞에 해치상이 세워져 있다. 해치처럼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어 항상 경계하며 정의의 편에 서서 법을 공정하게 처리하라는 뜻이겠다.중국 책 <論衡>은 해치가 죄 있음을 알아채는 본성이 있다(性知有罪)고 하였다. 고대 중국인들은 헛갈리는 사안을 재판할 때 판단을 하늘에 맡겼다고 한다. 소송 쌍방은 자기의 해치를 데리고 나가 제기(祭器)에 자신의 결백 맹서를 넣고 신판(神判)을 기다렸다. 신판 결과 패한 자는 신을 속인 것이 죄가 되어 제기, 해치와 함께 강물에 던져졌다. 법의 정자(正字)에서 해치 밑에 있는 去의 윗부분은 패소자, 밑부분은 뚜껑을 깨트려 없앤 패소자의 제기를 의미한다. 죄 짓고 못 산다는데패소자를 커다란 짐승 가죽에 싸서 강물에 던지기도 했다. 춘추시대 말 吳나라 왕 부차(夫差)는 미녀 서시(西施)에 홀린 자신을 간하는 충신 오자서(吳子胥)에게 자결을 명령했다. 오자서가 저주의 말을 남기고 죽자 부차는 화가 나 시신을 말가죽 자루에 싸서 강에 버렸다. 이렇듯 법은 원래 죄인에 대한 형벌을 의미했다.罪의 고자(古字)는 自 밑에 辛을 썼다. 自는 정면에서 본 코의 형태, 辛은 살갗에 먹물을 들일 때 쓰는 대침이다. 고대에는 먹물을 죄인의 코에 들였다. 죄인 얼굴에 죄명을 입묵(入墨)하는 형벌이다. 갑골문 발견 전까지 한자 해석의 권위였던 <설문해자(說文解字)>는 죄를 물고기를 잡으려고 대로 만든 그물이라고 풀이했다. <시경(詩經)>에 죄의 그물이라는 말이 나온다. 죄 짓고 못 산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다.판사의 判은 제사에 희생물로 쓰이는 소(牛)를 칼(刀)로 양분하는 형상이다. 판단한다는 뜻이 여기서 나왔다. 후에 신물(信物)을 양분하여 증거로 삼는 관습이 생기자 반쪽이라는 뜻도 생겼다. 반쪽만 보고 판단한다는 판결이 그래서 나오는 모양이다. 작금 법관들의 이상한 편향 판결을 놓고 찬반으로 갈라져 논란이 분분한데 눈 먼 해태는 공정하지 않은 판결을 야유하는 말이다. 유전무죄 무권유죄전설의 동물 해치는 부정한 존재를 판별하여 자신의 뿔로 처벌한다는 정의의 상징이다. 따라서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공평하고 해치처럼 정의로워야 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물처럼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과 해치처럼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부정한 자는 처벌돼야 한다는 법의 정신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런데 괴이한 판결이 자꾸 나온다.풍자어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유권무죄(有權無罪) 무권유죄(無權有罪)가 국어사전에 오를 지경에 이르렀다. 사법부에 눈 먼 해태가 자꾸 등장해서는 안 되는데 야단났다. 지금 법이 만인 앞에 평등한가.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보육교사들에게도 신경 좀 쓰세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보통 하루 10시간 이상 아이들을 돌본다. 아침 7시께 출근해 저녁 6시까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아이들을 보살핀다. 대개 3~4살 아이들을 집 앞에서 태워오고 집에 데려다주는 등하원 차량에 탑승하는 날엔 앞뒤로 한 시간씩 근무시간이 늘어나기도 한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평가인증 준비나 토요일에 열리는 어린이집 행사를 준비할 때면 밤 늦게까지 일한다. 온종일 아이들을 안아주고 달래느라 무릎허리가 안 좋아지고, 간혹 울며 보채는 아이들 때문에, 잠시 한눈 파는 사이에 아이들이 다칠까봐 화장실도 마음 놓고 가지 못한다. 점심시간이라고 해도 애들 급식지도를 하다 보면 그야말로 밥이 입에 들어가는 지 모를 지경이다. 몸이 아파도 밤늦게까지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어 병원도 제때 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월급은 형편 없다. 가정형 민간 어린이집 월급의 경우 100만원 수준이다.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수년 간 일한 경력치곤 초라하기 짝이 없다. 1년을 일하든 10년을 일하든 민간 어린이집에서 받는 임금은 최저다. 임금이 워낙 적어 유아교육과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보육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젊은 보육교사들이 견디지 못해 그만 두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집 원장이 월급을 주는 민간 어린이집과 달리 정부 예산에서 월급이 나오는 국 공립 어린이집은 그나마 급여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박봉도 너무 지나쳐 부끄럽다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평균 임금은 2010년 기준 126만1천원이다. 평균 노동시간은 9.5시간이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12시간에 가깝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지난 1월 13일 올해 보육 교직원 월급을 동결한다면서 만 5세 누리과정을 담당하는 보육교사에게 월 30만원 씩의 수당을 3월부터 지원한다고 밝혔다. 1만 5천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육교사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꼴이 됐다. 0~4세를 담당하는 교사들에겐 아무런 수당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육교사들의 반발이 여간 거세지 않다. 문제는 또 있다. 0~5세 아이를 맡은 보육교사 모두에게 보육환경개선비 명목으로 5만원씩 지급할 예정이라는데 석연찮다. 17만여명이 대상이지만 현실을 잘 모르는 정책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액만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중 지원을 피하려는 조치이지만 보육교사들이 체감하는 처우개선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5만원이 보육교사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보육교사 통장에 직접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으로 지원되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실정 잘 모르는 정부지난 8일 전국의 보육교사 300여명이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개최한 보육노동자 임금 동결 규탄, 노동조건 개선 결의대회는 보육교사들이 창피를 무릅쓰고 현실을 공개한 자리다. 집회에 참가한 보육교사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의 개선 없이 보육교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힌 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보육교사협의회 등이 그동안 국공립 어린이집 전면 확충을 통한 보육 공공성 실현과 1인당 아동 수를 줄이기 위한 보육인력 충원, 국공립, 민간 어린이집 간 임금 격차 해소 등을 요구해왔지만 정부는 거의 아랑곳 하지 않았다. 요즘 정치권에서 부모들을 위한 무상보육 정책은 연일 쏟아내면서 정작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를 위한 정책적 배려를 외면하는 것은 모순도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생각해보면 어린이집 운영의 실체는 보육교사들이다. 국공립,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의 임금격차도 당국이 조속히 해소해야 될 아주 시급한 일이다. 보육교사들은 어린 아이들의 엄마가 할 일을 어린이집에서 대신 하는 제2의 엄마들이다. 정부는 물론 모든 가정에서도 보육교사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임병호 칼럼] 입춘유정

그제, 2월 4일은 봄이 시작되는 입춘(立春)이었다. 겨울 속에서 듣는 봄이란 말은 반갑기 그지 없다. 겨울은 추워야 한다고 혹자들은 말하지만 그래도 따뜻함이 낫다. 봄에는 특히 자연의 신비로운 생명력을 실감하고 그가 거둔 승리감을 공유할 수 있어 기분이 좋다. 어찌 작년의 그 봄이 아니라고, 나이가 한 살 늘었다고, 안타까워 하랴. 나이 들수록 더욱 환희로운 계절이 봄이다. 겨울을 견디고 봄을 다시 맞을 수 있는 삶의 여정이 고마울 뿐이다.입춘은 동지(冬至) 이후 대지의 음기가 양기로 돌아서면서 모든 사물이 왕성히 시작되는 24절기의 시작이다. 정월(正月), 새해를 시작하는 달에 들어 있어 선인들은 입춘을 기준으로 해가 넘어가는 것으로 여겼다. 입춘 전날을 절분(節分)이라고도 하였다. 절분은 해넘이라고도 불린다.그래서 입춘 날 아침 사람들은 입춘첩(立春帖)을 써붙인다. 입춘첩은 새봄이 온 것을 축하하고 한해의 행운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문기둥 등 집안 곳곳에 붙이는 글귀다. 입춘축(立春祝), 입춘방(立春榜), 춘첩자(春帖子)라고도 한다. 대문이나 기둥에 양쪽으로 붙이는 대련(對聯)으론 立春大吉 建陽多慶입춘이 되니 크게 길하고, 따스한 기운이 도니 경사가 많다, 壽如山 富如海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여라, 雨順風調 時和歲豊비가 순조롭고 바람이 고르니, 시절이 화평하고 풍년이 든다, 掃地黃金出 開門萬福來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열면 만복이 들어온다,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부모님은 오래 살고, 자손들은 길이 번영한다라고 썼다.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단첩(單帖)엔 春到門前增富貴봄이 문 앞에 당도하니 부귀가 늘어난다, 春光先到吉人家봄빛은 길인의 집에 먼저 온다, 上有好鳥相和鳴 하늘에는 길한 새들이 서로 조화롭게 운다, 一春和氣滿門楣봄날의 온화한 기운이 문에 가득하다라고 썼다. 백번을 들어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귀들이다.저 옛날 이백(李白701~762)이 寒雪梅中盡, 春風柳上歸라고 <궁중행락사(宮中行樂詞)>에서 읊었다. 차가운 눈은 매화 속에서 사라지고, 봄바람이 버들가지 위로 돌아온다는 말이겠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지만, 활짝 핀 즈음이면 눈은 어느 사이엔가 스스로 녹아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버들가지는 연한 녹색 빛을 보일 듯 말 듯 가리고서 봄바람에 흔들릴 터이다. 차가운 눈은 생명을 다했으니 인내한 매화의 승리는 완전하고, 봄바람은 버들가지에 돌아 왔으니 마땅한 제 자리를 찾았다.두보(杜甫712~770)도 細雨魚兒出(가랑비에 새끼 고기 물 위로 나오고), 微風燕子斜(산들바람에 어린 제비 날개 기울인다)고 노래했다. <수함건흥(水檻遣興)>에 보인다. 봄날 가랑비에 새끼 고기들이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고, 미풍을 타고 어린 제비들이 날개를 기울여 오르락내리락 나는 광경이 눈감아도 보인다. 전원의 소박함과 평화로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우리말의 봄도 보다의 명사형이다. 입춘지절은 대지 위에 서서(立) 이러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감상하는 계절이다.한자(漢字) 春은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풀이 돋아 나오는 모양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부활과 시작의 의미를 지닌 글자다. 春은 갑골문(甲骨文) 당시만 해도 대단히 형상적이었다. 풀(艸) 사이로 태양(日)이 그려져 있고 소리부 겸 의미부인 屯(둔)이 들어 있다. 춘휘(春暉)는 봄볕으로 어머니의 은혜를 비유한다.북극한파가 남아 있고 꽃샘 추위가 몇 날 있겠지만 남녘지방의 동백은 이미 붉게 꽃봉오릴 열었다. 봄은 이미 남강을 건너 와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머물렀다. 2012년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아 우리나라 사람 모두 입춘첩의 글귀처럼 만사형통하였으면 좋겠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이다.임병호 논설위원

[경기일보-칼럼]공기업 비리, 지방의회가 감시하라

아주 고질적인 자치단체의 인사비리가 만연한 이유는 선출직으로 당선된 자치단체장의 막강한 권한에 기인한다. 자치단체장은 지역의 소통령으로 공공연히 불린다. 적절치 못한 인사권을 휘둘러도 견제하고 감시할 장치가 거의 없다. 정실인사가 특히 심한 곳은 지방공기업이다.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자치단체 산하 지방공기업의 직원 특혜채용 실태 점검 결과는 가히 인사비리 백화점이다. 예컨대 지자체장 측근을 특채하는 수단으로 전형절차를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평가 기준을 특정인에게만 알려주는 수법을 쓴 사례도 적잖다.84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채용시험에서 전 국회의원 수행비서(별정7급)를 일반직 4급으로, 44대 1의 6급 경력경쟁시험에서 시청 국장 자녀를 각각 특혜 선발했다. 별정 7급인 구청장 비서를 4급으로, 자격증을 위조해 전문직으로 특채하기도 했다. 예고된 인사비리이런 인사비리는 문제가 제기된 곳에 대한 감사에서 확인된 것에 불과하다. 전국 373개 지방공기업 중 14곳만 점검한 결과다. 실제로 드러나지 않은 사례는 더 많을 터이다. 지방공기업의 정실인사는 무엇보다 높은 실업난 속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애쓰는 사람들로부터 공평한 취업기회를 뺏는 불법행위다. 공기업의 채용비리는 이미 예고됐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방공기업 사장 10명 중 최고 9명꼴이 낙하산인사로 채워졌다. 임명권을 가진 자치단체장이 선거 때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나 측근 아니면 코드가 맞는 사람을 임명한다는 것은 알려진 비밀이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임기가 남았는데도 알아서 물러나는 대표도 있지만 대개가 밀려나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지자체장과 같은 당의 국회의원, 지방의원 등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의 입김도 적지 않게 작용한다. 이렇게 임명된 지방공기업 사장이 다시 내부적으로 코드 인사를 하는 것은 물론 외부의 청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일 것은 능히 예견되는 일이다. 감사원이나 국민권익위원회 등 감사기관의 강도 높은 감시감찰 활동도 중요하지만 지방의회시민단체 등이 주축이 된 감시장치를 조속히 도입해야 된다. 특히 지방의회 역할은 막중하다. 그동안 지방의회는 집행부와 같은 당이 주류일 경우 견제는 커녕 인사비리의 한통속이라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오해를 불식시키는 차원에서라도 앞으론 집행부를 철저히 감시해야 된다. 막중한 지방의회 역할작금 공기업들은 경영부실로 적자가 늘어나면서 빚을 얻어 연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 137개 지방공기업의 부채가 5년 전 23조7천억여원에서 2010년 말 46조3천여억원으로 불어났다. 지자체의 재원을 늘리라고 설립한 지방공기업이 되레 국민의 혈세로 갚아야 할 빚만 잔뜩 졌는데도 방만한 사업을 자꾸 벌이려고 한다. 정실인사로 특채된 무자격자부적격자들이 더 이상 공기업을 망치게 해선 안 된다. 대개 지자체장들은 감사원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문제점이 적발됐어도 대부분 시정 권고 등 솜방망이로 그치기 때문이다. 지방의회는 다방면으로 할 일이 많다. 지방의회가 시민단체 등과 협조해 공기업을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국고가 거덜날 지경인데도 세비나 올리고 자고나면 자당이익과 정권유지탈환을 목적으로 싸움질을 일삼는 국회는 절대 닮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원 배지와 지방의원 배지가 다를 게 없다.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과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진력하는 지방의원 배지가 훨씬 고귀하다.임병호 논설위원

MB의 마무리

새해 벽두부터 임기말의 대통령이 듣기 싫은 말을 하는 게 뭣 하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이명박(MB) 대통령은 아무래도 인복이 많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우선 측근들의 충성심이 부족하다. 고려대현대건설국회의원서울시장을 역임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주로 측근이 됐지만 충성도 면에선 정치인 대통령의 경우보다 낮다. 당장 측근들의 배신이 너무 심하다. 일 잘 하는 사람들이란 평가를 받은 실세 측근들이 비리로 구속됐거나 형이 선고된 사람이 13명이다. 이 순간에도 어디서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오빠가 국회의원 공천 대가, 로비 청탁으로 구속돼 친인척측근이 웬수가 됐다. 보좌관의 비리를 도의적으로 책임진다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친형 이상득 의원까지 만일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형님이 정치하는 걸 말리지 못한 원죄가 크다. 뒤늦게서야 한발 뺀 형님도 책임이 없다할 수 없다.자고로 권력무상이었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은 커녕 권불오년이다. 조선 왕조 참여를 거부했던 목은 이색은 군자의 지킴(君子守)란 시에서 아침에 재상 권력 잡았어도(當朝秉鈞衡/ 한번 기울면 재앙이 미친다(一傾災禍延)고 권력무상을 읊었는데 지금은 권불사년(權不四年)이다. 임기가 그래도 아직 남았는데 이 지경이다. 압도적인 지지 속에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말년이 역대 다른 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걸 보자니 국민이 불쌍하다.MB는 취임 초 내 임기 중엔 측근비리가 없다고 공언했지만 결국 빈 말이 됐다. 한비자(韓非子)가 망국(亡國)을 막는 불망지술(不亡之術)로 준법정치, 신상필벌, 지혜집중, 실력배양, 국민총화, 방위강화 등 여섯가지를 꼽았다. 만일 MB가 한비자의 충고를 따랐다면 유전무죄무전유죄 시비는 나오지 않았다. 고소영 인사와 회전문 인사가 등장했을 리 없다. 그래도 임기는 제대로 마쳐야 한다. 2012년엔 과거 4년보다 할 일이 훨씬 더 많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당장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 터다. 경제에도 먹구름이 낄 것이란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 연착륙을 양대 국정과제로 삼고 411 총선, 1219 대선 정치일정을 무리 없이 치러야 한다. 공정사회 실현, 공직사회 기강확립, 엄정한 친인척측근 관리로 임기말 증후군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된다. 특히 친인척측근을 친국(親鞫)해야 된다.유종지미는 아름다운 마무리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탕편(蕩篇)에 나오는 미불유초(靡不有初) 선극유종(鮮克有終)도 같은 의미다. 처음을 갖지 않은 사람은 없으나 능히 끝을 얻는 사람이 적다는 뜻이다. 시작은 요란했으나 공이 형편 없거나 욕심으로 명예를 더럽히는 경우다. 현인(賢人)들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하지만 살아가면서도 큰 고비 때마다 매듭을 잘 지어야한다고 일러주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공직 등 사회의 어떤 자리에서 물러날 때 중요하다. 유종지미를 거두지 않으면 그동안 쌓았던 노력들이 도로(徒勞)가 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아름다운 마무리가 중요하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공수신퇴(功遂身退공을 세우면 물러나고), 생이불유(生而不有살아가되 없는 듯이 하라)고 했다. 마무리를 하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유종지미라고 하였다. 흑룡의 해 임진년을 맞아 이명박 대통령의 강녕과 유종지미가 함께 하길 바란다.논설위원임병호 칼럼

‘三星’의 사회적 기여

197080년대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봉급날이면 수원상권(水原商圈)이 들썩였다. 삼성 사원들이 봉급날 돈을 수원서 풀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물론 은행, 재래시장, 식당 등이 삼성전자 수원공장 봉급날을 사원들보다 더 기다렸다. 이렇게 삼성전자가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한 영향은 실로 지대하다. 지난 12일자 본보에 보도된대로 삼성전자는 1969년 수원시 매탄벌에서 임직원 36명으로 출범했다. 지금은 수원기흥화성 등 경기지역 3개 사업장이 세계 최고 수준의 R&D, 마케팅단지로 발돋음해 국가경제는 말 할 것도 없고 지역사회 고용창출과 경제활성화의 견인차가 됐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국내 8개 사업장에 10만2천명이 근무하고 있는 글로별 IT업계의 최강자로 성장했다. 실예를 든다. 삼성전자의 R&D, 마케팅단지(수원:디지털시티, 기흥화성:나노시티)가 밀집된 경기도의 경우, 10년 전 3만2천명이었던 임직원이 6만1천명으로 90%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제조인력은 1만5천명에서 1만7천명으로 14% 증가했고 핵심기능 R&D 인력도 2001년 1만3천명에서 올해 3만 5 천명으로 163% 늘었다. 마케팅 인력 또한 960명에서 4천700여명으로 394% 나 급증했다.삼성전자가 대내외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경기도 세수에 기여하는 비중 또한 더불어 증가했다. 법인세의 경우 2001년 4천600억원에서 올해 3조1천800억원으로 6.9배 늘어났다. 상당부분이 경기도와 수원, 용인, 화성시에 납부되고 있어 삼성전자의 눈부신 성장은 1석5조의 기쁨을 우리 사회에 선사하고 있는 셈이다. 더욱 획기적인 소식은 삼성전자가 올해 11월 말 휴대전화 3억 대를 출하했다는 사실이다. 1988년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지 24년 만의 성과다. 한 마디로 쾌거다. 국내 업체로는 처음이며 세계적으로도 핀란드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체 노키아(NOKIA)에 이어 두 번째다. 올해 제48회 무역의 날엔 역대 최고탑인 650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삼성전자는 연말까지 3억3천만 대 가량을 출하할 것이라고 한다. 연간 3 억 대 출하를 위해선 하루 평균 82만 대, 초당 9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생산해야 한다. 그야말로 똑딱하면 9대, 뚝딱하면 한해 3억 대의 휴대전화가 만들어진다. 3억 대의 휴대전화를 한 줄로 쌓으면 해발 8천850m의 에베르트산 높이의 300배가 넘는다고 하니 정말 놀랍다.삼성전자는 1996년 휴대전화 100만 대를 돌파한 뒤 2005년 1억 대를 넘어섰으며 4년 만인 2009년 2억 대,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3억 대를 돌파하며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휴대전화 사업을 시작한 뒤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은 총 16억 대로 전 세계 70억 인구의 23 %에 해당하는 수치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해 1천만 대 이상을 판매한 스마트폰 갤럭시S에 이어 올 4월 말 출시한 갤럭시S2도 5개월 만에 1천만 대를 돌파했다.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연 3억 대 시대는 국내 휴대전화 산업이 글로벌 시장의 중심에 우뚝 섰음을 입증하는 금자탑이다. 기업의 성장은 기업 자체의 수익과 함께 국가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막강한 원동력이다. 42년 삼성이 있기에 경기도의 향토나라경제가 든든하다는 평가는 추호도 과장이 아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농촌진흥청과 연계하여 각 사업장 내에서 우리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운영하고 사내 인트라넷을 통해 자매마을 농산물 사내판매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디지털시티(수원)에만 자체 봉사팀이 280개에 이른다. 세계적 굴지의 대기업이면서 지역사회를 위한 나눔 기업이 되고자 각종 사회공헌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초일류 삼성전자가 자랑스럽다.임병호 논설위원

역사 속의 ‘장애인’ 위민

장애인을 옛말로는 잔질자(殘疾者), 독질자(篤疾者), 폐질자(廢疾者)로 불렀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이런 용어들은 <고려사>에서부터 등장한다. 과거에도 괴이한 유형의 장애가 있었으나 위민(爲民) 복지정책으로 활로를 찾았다. 일단, 장애인에게도 직업과 자립을 권면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최한기는 <인정>에서 어떤 장애인이라도 배우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학파의 선구자 홍대용은 <담헌서>에서 소경은 점치는 데로, 궁형 당한 자는 문 지키는 데로, 벙어리와 귀머거리, 앉은뱅이까지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나이가 너무 들었거나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은 국가가 직접 진휼했다. <고려사>에 공민왕이 신하들에게 독질, 폐질이 있는 자에게는 소재지 관사에서 마땅히 구휼할 것이요, 궁핍하여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자도 소재하고 있는 관사에서 힘써 진휼하라고 명한 기록이 나온다. 중앙 뿐 아니라 지방 관아에서도 장애인을 돌볼 것을 국가가 명했다.조선의 역대 임금들 중에서는 세종이 장애인 복지정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세종실록>에 (장애인들이) 처소를 잃지말게 할 것이라는 세종의 즉위년 당부가 기록돼 있다. 즉위 3년째 되는 1420년 수재와 한재가 잇따르자 잔질인을 우선적으로 구제해주되, 장차 조관(朝官)을 보내 순행하여 물어볼 것이니, 만약에 여염 가운데 한 명의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중죄로 처단할 것이라는 엄명을 내렸을 정도다. 홀로 사는 나이든 장애인에게는 오늘날의 장애인 도우미를 국가가 제공했다. 또 장애인과 그 부양자에게는 부역이나 잡역 등을 면제했다. 이런 기록은 <고려사>에도 등장한다. 25대 충렬왕은 나이 80세 이상의 독질폐질자는 그 소망함에 따라 가족 중 한사람에게 부역을 면제하여 호양하도록 허락하고, 친척 가운데 호양할 사람이 없으면 국가에서 식량을 지급하고 관원을 보내 제조토록 하라고 명을 내렸다. 옛기록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이다. 국가는 이들을 자립이 가능한 장애인이라고 여겨 직업을 갖고 살아가도록 유도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점복과 독경, 악사 등을 직업으로 삼게 했다. <세종실록>에 명과학(운명길흉화복을 판단하는 학문)을 하는 장님 중 젊고 영리한 자로 10인을 골라서 서운관에 소속시키고, 훈도 네댓사람을 두어 사흘마다 한번씩 그 업을 익히게 하소서라고 임금에게 아뢴 기록이 나온다. 물론 세종은 그대로 따랐다. 조선시대엔 시각장애인 악공을 위해 장악원에 관현맹인(管絃盲人)을, 성기능 장애자를 위해 환관제도를 두고서 정기적으로 품계와 녹봉을 올려 주었다.고위 관직에 오른 장애인들도 많다. 이육의 <청파극담>에 나온 허조는 척추장애인으로 조선 개국 후 네 명의 왕을 모시며 좌의정까지 지낸 청백리다. <중종실록>에는 간질장애를 갖고 있던 권균이 사직을 청하고, <숙종실록>엔 다리가 하나 뿐인 정승 윤지완이 임금에게 면직을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시각장애인으로서 3등공신에 올랐던 이영선, 기형아로 태어나 생육신이 된 권절, 정신질환을 이겨내고 대사헌에 오른 공서린, 이조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청각장애인 이덕수 등은 장애인 관료로 회자된다. 조선 중기 유몽인의 설화집 <어우야담>에 다리 하나가 짧은 지체장애인을 가리킬 때 마땅히 다리 하나가 길다고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도 <사소절>에서 아이들이 장애인을 대할 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썼다. 우리 땅에서 장애인들을 차별하기 시작한 것은 근현대의 비장애인들이다. 장애의 유무보다도 그 사람 자체의 능력과 노력을 더욱 중시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았던 역사 속의 장애인 복지 제도와 참뜻을 본받아야 한다.임병호 논설위원

강경파의 虛實 (허실)

사람이 강경파가 되는 이유를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라고 심리학자들은 설명한다. 집단 극화는 개인이 혼자 결정할 때보다 집단이 의사 결정을 할 때 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는 경향을 말한다. 개인의 성격보다 집단성에서 강경 성향의 근원을 찾는다. 이들 강경파는 선천적 요인보다 상황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사람들은 자존심에 위협이 느껴지면 강경해진다. 이런 현상은 집단적일 때 더 뚜렷이 나타난다. 온건한 사람이 모여 토론하면 더 온건해지고 강경한 사람이나 집단이 모여 토론하면 더 강경해지는 경향과 같다.예컨대 특정 지역 사람끼리 모여 이야기하면 그 지역다운 것이 규범에 맞는 것으로 느끼게 되고 그쪽으로 더욱 치우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 한 집단이 반대되는 집단과 대치되는 상황이 되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자연스레 자기 논리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집단 규범에 더욱 치우치게 되고 상대도 마찬가지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양극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강경파를 자기 중심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특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강경파일수록 콤플렉스가 많다는 주장도 있다. 또 동물심리학자들의 경우 강경하다는 것을 공격성으로 분석하기도 한다.우리 사회 특히 정치 집단에는 강경파온건파중도파가 존재한다. 자칫 우유부단하게 들릴 수 있는 온건파와는 달리 강경파의 논리는 선명하고 화끈하게 보인다. 비굴하게 타협하느니 장렬히 산화하자는 식이다. 복잡한 현실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강경파의 주장은 듣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 준다. 강경파는 거센 저항에 부딪칠 때 우회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문제는 뒤끝이 나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강경노선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많았다.우선 떠오른 것은 병자호란의 치욕이다. 조선 인조 때 청나라가 조선에 형제관계에서 군신관계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당시 조정은 일전불사를 외치는 강경파(김상헌)가 청과 화친을 주장하는 온건파(최명길)보다 우세했다. 오랑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주장이 국제정치의 현실논리를 깔아 뭉갰다. 강경파가 주자학의 이상주의에 집착하면서 조선은 병자호란이라는 참변을 겪었다.고려 말 정도전과 정몽주의 정쟁은 정권교체를 주장한 강경 개혁파와 체제내 개혁을 강조한 온건 개혁파와의 격돌이었다. 또 개화기 때 최익현과 김옥균의 대립은 철저한 외세배격과 극단적 급진개화 주장이 맞선 경우다.1958년 자유당 정권의 국가보안법 날치기 파동이나 1979년 박정희 정권의 김영삼 의원 강제 제명 사건 등도 강경이 권력의 몰락을 재촉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무릇 정치는 상대방이 있다. 대화를 해야 한다. 협상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꺾고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다. 물론 협상은 실리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다. 조금은 양보해야 한다. 상생하여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 여야 강경파가 보여주는 각종 행태는 눈 뜨고 봐줄 수 없다. 대체적으로 강경파가 주도하는 정당은 허구헌 날 시끄럽다. 자중지란으로 바람 잘 날이 없다. 지금 정치권 특히 민주당 강경파가 보여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거부는 정도와 상식을 넘어섰다. 민주당이 당론 바꾸면 당도 죽고 국민도 죽는다지만 되레 그 반대다. 계속 어깃장을 놓는 건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당리를 위해서다. 한나라당이 강행처리하도록 유도해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작전이다. 강경파는 잠깐 인기가 있을지 몰라도 후유증이 길다. 實(실)보단 虛(허)가 훨씬 많다는 얘기다. 민주당 강경파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임병호 논설위원

‘119’를 구출하라

우리나라 국민이 119구급대의 구급이송을 받은 건수가 최근 10년 사이 50만건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구급이송 건수는 2001년부터 매년 증가해 2004년 처음으로 2010년엔 140만건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구급이송 인원도 98만5천여명에서 148만 1천여명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구급대 인력과 장비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2001년 1천83대였던 구급차량은 2010년 1천297대로 200여대 늘어난 정도에 불과했다. 전국의 구급대원 수는 2001년 4천291명에서 2010년 6천409명으로 2천118명 늘었지만 지난해부터 대부분 구급대가 2교대 근무를 3교대로 바꿨기 때문에 인력부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의 119구급대 현황이다.올 9월9일부터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단순 생활민원에 대해선 소방관이 출동을 거부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법 개정은 지난 7월 한 소방대원의 안타까운 죽음이 계기가 됐다. 주택 난간에 고립된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속초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김종현 소방교가 구조 과정에 9m 아래 바닥으로 추락해 사망했다. 그의 나이 29세였다. 하지만 소방관은 화재진압, 인명구조, 훈련 중 순직의 경우에만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다. 결국 김 소방교는 국립묘지에도 묻히지 못했다.이 사건을 계기로 쓸 데 없는 일에 소방력을 낭비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일었고 법 개정도 이뤄졌다. 소방방재청은 동물구조, 문 개방 요청, 비응급성 신고 등의 경우엔 출동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개고양이 같은 동물 구조, 현관문 개방 등 생활민원 출동 건수는 줄지 않는다. 2010년의 경우 동물 구조가 10만7천221 건이다. 5년새 6.3배 가까이 증가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신고를 받으면 출동을 거부할 수 없다고 소방관은 말한다. 119신고를 받으면 주간에는 20초, 야간엔 30초 내에 출동을 개시한다. 1초가 빠르면 한 생명이 더 산다!고 질주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119구급대원의 사명감이다.119구급대원들이 지난 한 해 1인당 평균 222.8건이나 긴급이송에 투입됐다. 구급대원 수는 6천409명에 불과한데 긴급이송 건수는 142만8천건이나 됐다. 격무도 이런 격무는 없다. 소방공무원들의 격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화재진압이나 구조구급 등을 위해 출동한 건수는 236만8천703건이나 된다. 지난해 말 현재 소방공무원 정원이 3만6천711명이다. 1인당 평균 출동건수가 64.5회다. 내근자까지 포함시킨 통계치다. 게다가 장비 부실도 소방대원들을 위험으로 몰아 넣는다. 출동한 소방차량이 고장이 발생한 게 지난해 137건이다. 각종 소방장비의 노후화 탓이다. 지난해 업무와 관련해 부상하거나 사망한 소방공무원 공상자가 348명에 이른다. 최근 5년간 연평균 328.4명이 부상하고 6.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소방대원들의 근무 환경이다.소방관들의 과로는 119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기본적인 원인이다. 국민들이 화재나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119를 누른다. 허위신고도 적잖다. 소방업무 중 화재 출동은 전체의 10~20% 정도에 불과하다. 더구나 구조업무의 전문성 등으로 예비인력이 충분치 못한 데다 예산지원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소방업무 예산을 재정이 취약한 지방자치단체가 부담케 해선 안 된다. 선진국에선 국가에서 예산을 67%나 보조하는데 한국은 지방교부세 명목으로 겨우 1.7%를 중앙정부가 지원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소방업무 현실이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의 경우 11월 4일 119생활안전단을 발대시켰지만 지금 한국의 119구급대가 위험에 처했다. 이젠 국민이 119를 구출할 때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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