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또 저물고 있다. 11월부터 12월에는 각종 송년회가 있다.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해가 없었겠지만, 지난 한 해엔 참 크고 작은 많은 일이 많았다. 생각해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이 많을 때, 마음이 떨리게 마련이다. 마음이 떨리고 지혜를 구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마다 지혜를 구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나는 최근의 좋은 책들과 오래된 고전들을 읽으며 지혜를 구한다. 그 가운데 장자(莊子, 기원전 369?-286)와 원효(元曉, 617-686) 이야기에 나오는 지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은 여러 현상을 가지런히 볼 수 있게 해줘서 좋다. 보통 우리는 유한한 관점, 즉 늘 자기관점에서 바라보기 마련이다. 그것들이 사회적 통념이라 하더라도 각자의 한계를 가진 관념일 수밖에 없다. 상대적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는 곳에 바로 생명이 있게 마련이다. 가능한 곳에 바로 불가능이 있고, 곧 불가능한 곳에 바로 가능이 있게 마련이다. 그 무엇 때문에 옳기도 하고 또 그르기도 하며, 그 무엇 때문에 그르기도 하고 또 옳기도 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변화하고, 변화의 과정에서 여러 국면을 가지게 마련이다. 동일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고, 달라진 국면마다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장자의 해법은 좀 더 고차적인 입장에 서라는 것이다. 그래야, 무궁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한을 초월한 고차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물에 대한 여러 가지 면을 더 많이 보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원효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이후 생겨난 많은 불경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하나의 소리가 중생의 인연과 상황에 따라 여러 소리로 분화되어 이해된 것으로 이해한다. 중생들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상황에 따라 부처님께서 가르침의 내용을 다양하게 설명했다는 것이다.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하나인데, 그 많은 불경이 생겨나고 그 많은 가르침이 생겨난 까닭을 이렇게 이해한다. 글을 모르고 농사만 짓는 사람들에게는 볏단을 가지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글을 읽고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게는 글에 나온 내용을 가지고 예를 들어 설명했기 때문에 다양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한다. 또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 수준과 인연에 따라 다양하게 이해하고 이론들을 정립하다 보니, 많은 이론이 생겨난 것이라고 이해한다. 이것은 시절인연(時節因緣)에 따른 이해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이론들과 주장들은 그 시절인연에 따른 그 나름대로 다 일리(一理)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다양한 주장들이 그 일리만을 강조하고 고집하면 다툼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 어느 시대보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권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다양한 주장들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주장들이 모두 존중받으려면, 각각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고집은 한계에서 나온다. 고집을 거두기 위해서는 한계를 뛰어넘어, 큰 눈이 열려야 한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나무들은 잎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잎을 떨구고 있다. 그것은 잎에서 볼 때는 죽음이지만, 나무 자체로 볼 때는 삶이다. 봄이 오면 이 나무들은 잎을 다시 돋우고 키울 것이다. 겨울에 나무가 잎을 떨구고 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그것도 삶이다. 가을, 겨울, 봄, 여름에 맞는 나무의 삶이 있는 것이다. 김원명 한국외대 철학과 교수
오피니언
김원명
2019-11-27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