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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3 (목) 메뉴 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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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세월이 가면 알 수 있을까?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성공도 없고 실패도 없다는 것을 오직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길만이 있다는 것을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자도 없고 가난도 없다는 것을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빈손이 되어 떠난다는 것을….

김용해 요한님의 시 「세월이 가면」의 일부이다. 세월이 가야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때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여겨졌던 무수한 것이 막상 냉혹한 현실 앞에선 진정 아는 게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중 죽음에 대한 우리의 앎이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 중에 150년 뒤에도 꼿꼿이 살아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실 우리는 가까운 가족이나 이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하며 산다. 모든 죽음이 그렇듯 당장에는 슬프고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다. 우리는 다시 일상에 묻히고, 또다시 우리의 죽음을 나와 무관한 영역으로 미뤄두며 살아간다. 그 죽음이 나에게는 당장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의 생활은 항상 일이 먼저이고, 여전히 많은 일정을 소화해 내는 데에 온 마음과 정신을 쏟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일을 해야 하고 이왕이면 성공해야 하며 조금 더 바란다면 돈이 되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한다. 종종 부모님을 찾아뵌다거나 가족들의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뒷전이다. 그것은 또 때로 먹고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의 합리화를 낳는다.

절망스럽게도 우리는 우리 생에 대한 관전 포인트를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숨을 몰아쉬는 직전에 가서야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절망 속에서 숨을 거둔다. 죽을 때에 일을 더 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은 없다. 또 돈을 더 벌지 못해 후회하거나 더 높은 명예를 얻지 못해 후회하는 사람들도 없다. 하나같이 죽을 때 후회하는 것은 더 넉넉한 마음으로 살지 못해서, 더 사랑하지 못해서, 손 내밀어 용서하지 못해서 후회한다.

필자 역시 막상 아버지와의 이별을 맞이하고 보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과 과정이 여간 쉽지가 않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과 현실은 얼마나 먼 거리의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학창시절 한 교수 신부님의 말씀이 그러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길고 먼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여행이라고.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었을 게다. 나는 머리에서 가슴까지로의 여행길에서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가수 노사연의 노래 <바램>에는 이런 노랫말이 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고단한 주름살만 느는 늙음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영글어가는 익어감이었으면 좋겠다.

무더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날씨다. 우리 눈엔 그저 고요하게 보이지만 한 뼘 자라려고 1년을 치열하게 살았을 저 수많은 숲의 나무들과 들녘의 곡물들은 계절에 순응하며 이제 그 성장의 속도를 늦추고 열매를 내놓는다. 내려놔야 한다는 것과 때로 멈추어야 할 때를 알면서도 내려놓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내 삶은 진정 앎을 말할 자격이나 있을지 심히 부끄럽다.

이 깊어가는 계절의 길목에 서서 겸허히 나에게 묻는다. 방 안엔 며칠 동안 아무도 없었는데도 뿌연 먼지가 참 곱게도 쌓여 있다. 아무도 없던 방에도 이리 먼지가 쌓이는데 하물며 내 마음속은 그간의 숱한 만남과 일들로 하여 또 얼마나 많은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을까? 한 달 일정표는 벌써 해야 할 일정들로 빼곡하다. 잠시 마음의 창을 열어 환기를 시켜본다. 청명한 하늘만 바라봐도 금세 마음이 살찔 것 같은 이 가을, 조급한 발걸음 찬찬히 늦춰 걸으며 내일이면 후회할 것들과 세월이 가면 알게 될 것들에 대하여 잠시 생각에 잠겨 보는 건 어떨까?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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