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나는 늘 범죄자와 함께 있다

공부나 돈이면 된다는 환경적 요인이 내 아이를 반(反) 사회적 성격장애인 소시오패스(sociopath)로 자라게 할 수 있다. 전 인구의 4%로 25명 중 1명인 현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성격 장애. 이는 교도소 수감자의 50~80%를 차지한다. 이 중 사이코패스는 15% 일뿐. 영국에서 사이코패스를 예방하기 위한 전 국민 유전자은행이 인권 침해라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드라마 마우스에서 태아 유전자 검사 및 사이코패스(Psychopath)유전자 강제 낙태 법안을 다뤘다. 심리학자 마샤 스타우트는 우리의 일상 속에 늘 함께 있다. 이 사실을 인정하고 소시오패스를 알아야 한다라고 경고한다. 소시오패스는 겉으로 매력적ㆍ사교적이며, 자신의 쾌락이나 금전적 이득을 위해 친절을 베풀며 끊임없이 상습적 거짓말을 일삼는다. 상대에게 피상적 찬사를 하며, 타인으로부터 성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인생은 이겨야 하는 게임으로 매우 계산적이다. 자기 합리화로 자신의 감정과 고통에만 예민하다.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와 반성하는 척 자신을 잘 위장하고 이번 잘못을 통해 배웠다, 다시 이러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을 도와왔다 등 자신도 피해자임을 강조한다. 감정을 연기하고 감정조절이 뛰어나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없다. 타인의 감정 또한 정서적이 아닌 인지적 공감으로 파악하고 학습해서 생활한다. 고도의 범죄를 계획할 수 있는 지능이며 논리적이다. 타인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철저히 이용한다. 주변 사람을 바둑판의 바둑알처럼 조종하며 착취하는 기생적 인간관계를 맺는다. 카리스마가 있다.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인 힘이며, 타인의 의견이나 조언은 잘 듣지 않는다. 즉흥적이며, 사회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해 가끔 위험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을 준다. 이런 자는 욕구가 강해 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해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많다. 이들처럼 더 악랄하고 더 스스럼없이 더 죄를 저지르는데도 처벌이 미흡한 가해자들이 존재한다는 현실. 결코 미화될 수 없다. 서울대 졸업, 전 국세청 근무, 윤석열 전 검찰총장 후배, 이혼 전문 변호사 겸 세무회계사, 법무ㆍ세무ㆍ농업ㆍ중개 법인 대표, 10년 연하인 안과 의사 아내, 갑상선암 투병 중인데다 당뇨 합병으로 실명 위기. 한 지인의 이런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그런데 필자는 진실로 대했다. 소시오패스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무서운 범죄자가 아닌 가족일 수 있다. 사회적 규범은 무시한 채 탁월한 연기와 화려한 거짓말로 내 마음을 측은하게 만드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조심해야 한다. 그에게 없는 내 양심과 동정심이 공격당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예방이 최선이지만 15세 이전 품행장애가 발생했다면, 부모교육과 더불어 상담을 통한 조기 치료해야 한다. 여성보다 남성이 2~3배 빈도가 잦은 소시오패스로 인해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양심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시민교육과 전담기관이 절실하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청마와 서영은의 아라비아 그리고 우리

모스크에 아잔이 울려 퍼지면 무슬림은 이마를 땅에 대고 신에게 간구한다. 우리의 평화와 기도에 힘을 보태소서! 예배와 기도는 하루 다섯 번 반복되는 그들의 의무다. 종교 의무를 일상에서 실천하기에 그들은 사뭇 경건하다. 뜨거운 모래 위 세찬 바람에도 큰 눈만 껌벅거리는 그들의 낙타와 닮았다. 할례 후 무슬림에게는 어른 됨의 상징으로 잠비야가 주어진다. 잠비야는 허리춤에 휴대하는 짧은 칼이다. 한데 이 칼이 폭력성의 상징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외진 곳을 다녀야 하기에 맹수의 위협이 있다. 또 도적의 위협도 있다. 하여 잠비야는 자신을 지키는 최소한의 방비일 뿐이다. 폭력성에 대한 오해는 지하드에서 절정에 이른다. 지하드는 신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전쟁이다. 원래 살인은 신의 명령으로 금지돼 있다. 단 동료애를 중시하기에 형제가 살해당했을 때 반드시 복수하라고 명하고 있을 뿐이다. 무슬림은 작은 일에도 만족하며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손님을 신의 선물로 생각해 늘 환대한다. 특히 돈은 이웃과 나누는 것이라며 수입 중 사십분의 일을 자카트로 바친다. 또 수시로 재물을 희사하는 사다카도 행한다. 곤한 처지에도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이다. 한남동 모스크에 아잔이 울려 퍼진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우리는 그들에 대해 또 그들의 종교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됐을까. 필자의 경우 청마 그리고 서영은의 문학을 통해 겨우 그들을 접할 수 있었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 지지 못해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生命의 書, 1938), 운명처럼 나를 대면하는 아라비아 사막. 본연의 나를 구하는 신의 땅이었다. 청마의 안내로 첫발을 디뎠던 아라비아는 그저 신비롭기만 했다. 석유로 넘쳐나는 돈의 유혹도 뿌리치고 조상 대대로 이어온 푸른 물길을 찾고자 더 깊은 오지로 들어가는 유목민. 내 안의 낙타를 끌어내어 참 자기를 구하려는 그들(먼 그대, 1983). 무소유의 삶이 탁월한 그들. 암울했던 1980년대 한 노처녀로 분한 서영은이 무슬림을 고행의 구도자로 귀띔해 주었다. 청마와 서영은, 두 선배의 소개로 만난 아라비아의 이슬람, 그들은 지혜로운 동시대인으로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한데 최근 그들에 대한 불순한 선동이 요란하다. 자기 신만을 맹신하는 배타적 이교도, 우리 전통을 훼손하는 불온한 패악세력, 노동 시장을 교란하는 탐욕스런 이주노동자 등으로 몰이하고 있다. 특히 한 줌 무장단체인 다에시와 연관시키는 악의적 의도가 엿보이기도 한다. 잔인하게 각인된 다에시의 테러를 연상케 함으로써 순박한 그들 모두를 악마화하는 회상 용이성의 오류다. 이슬람, 낯설다고 온당하지 않게 여기는 것, 지독한 야만은 아닐까. 부당한 야만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하여 올바른 인식을,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이계존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경기시론] 한국인이 좋아하는 운동 ‘등산’

5월은 날씨가 맑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가며 운동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팬데믹(pandemic) 이후 실내 운동보다 야외에서 운동하는 것이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더 안전하다는 인식 때문인지 인근 하천이나 산에는 벌써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20년 국민생활체육실태조사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참여율은 60.1%로 나타났다. 2019년 66.6%보다는 6.5% 감소한 것이지만, 이것은 보건 당국에서 코로나19 감염 방역대책으로 실내체육시설들의 영업을 제한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하겠다. 그러나 생활체육 참여율은 2017년부터 매년 3%씩 상승해왔는데 이러한 원인은 우리 국민이 운동을 건강유지 및 증진(44.6%), 여가선용(25.8%) 그리고 체중조절 및 체형관리(13%) 등의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종목별 생활체육 참여율을 보면, 걷기(41.9%) 다음으로 등산(17.6%)을 즐기는 인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주말이면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까 싶을 정도로 등산로 인근에는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아직 20대의 등산 참여율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은 실정이지만, 산을 찾는 연령층은 다양해지고 있다. 한때 등산은 장년층의 전유물처럼 건강 운동이나 여가 활동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가족 단위로 혹은 젊은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데이트를 즐기며 산행하는 형태로 변화되고 있다. 이들은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생수 한 병을 들고 맑은 자연 속에서 자신만의 여가를 즐기는 모습이다. 또 정상에 올라가면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땅히 대한민국이 질서 선진국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과거 등산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고가의 각종 장비를 갖추는 것이 당연시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산을 오르기에 불편함이 없는 간편 복장이면 된다. 여기에 색채가 풍부한 레깅스(leggings)의 등장은 산행 복장의 변화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 이제 산이 더 젊어진 느낌이다. 등산은 자연과 함께하며 나무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작은 계곡이라도 흐르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산 아래로 보이는 자연풍경은 답답한 도심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가슴을 탁 트이게 해준다. 또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가능한 수준까지 오르면 그만이고 한 시간 정도의 등산만으로도 충분한 유산소 운동이 되기 때문에 심폐지구력을 향상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등산, 즐길 거리가 없고 건강에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면 인근 지역의 산을 찾아 숲과 대화하는 산행을 해보자.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마키아벨리와 도덕

서양철학사 속의 인물 중 마키아벨리는 독특한 철학을 가진 사상가였다.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는 군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간사한 책략과 무력을 사용에 대해서 필요하고 통치를 위해서 신의와 종교심이 많은 것처럼 보여도 된다고 했다. 군주가 자기의 정치를 위해서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의 철학은 마치 독재자를 만들기 위한 기본 지침서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지만, 군주론으로 그의 사상을 부정적으로 결론내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후세의 사람들이 그의 철학을 평가할 때 마키아벨리는 커다란 도덕을 위해서는 작은 도덕은 무시해도 된다는 견해를 가졌다고 봤다. 부도덕한 수단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지 못한 군주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견해이다. 어찌보면 마키아벨리는 이 세상에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커다란 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작은 도덕은 위반해도 된다는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에 재보궐 선거와 최근 장관과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각 후보자 마다 여러 가지 흠결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아야 할 고위공직자 후보들도 도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되는 과거가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고 사퇴의 압력을 받기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도덕적이고 능력이 있는 완벽한 사람을 찾기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철학과 같이 작은 도덕의 위반 정도는 문제로 삼지 않고 국가와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는 것이 현실적인 사고일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우리의 미래 세대들이 사회가 완전한 도덕적인 사회가 될 수 없기에 작은 도덕은 무시해도 된다는 결론을 도출할까 우려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하게 타협을 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다. 또한 그들은 지난 우리의 역사 속의 지도자들을 언급하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지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마키아벨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있다고 이미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커다란 도덕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작은 도덕을 지키는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고 여기는 사회풍토가 조성된다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돼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인간의 삶 속에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을 찾기가 어려울지라도 끊임없이 도덕적 가치의 소중함에 대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은 반성적 사고를 통해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나아가는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사망률은 오르는데 출산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고, 함께 지키고,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국민 참여형 캠페인에는 염태영 수원시장 외에 많은 분이 참여해주신다. 좋은 현상이다. 출산은 양육, 보건, 교육, 주거, 노동 등 연결고리인 동시에 순환고리이기에 사회가 전반적으로 행복해야 한다. 촛불 정부인 문 정부가 들어서면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희망도 있었는데 벌써 임기 마무리가 다가오고 있으니. 지난 1일은 모든 노동자를 위한 세계노동절인 근로자의 날이었다. 따뜻한 햇볕도 근로자와 노동자 구별 없이 똑같이 내리쬐고 있다. 노동절이면 어떠하고 근로자의 날이면 어떠한가? 그러나 누구에게나 같은 달력일 수 없듯 필자는 지인으로부터 지인의 사촌에 대한 산업재해 사망 소식을 들었다. 금속 기계로 자동차 부품을 세척하는 회사에서 사고로 뇌사 상태 25일 만에 사망하게 됐다.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중국 연길에서 아들이 한국에 입국했지만, 코로나19로 격리돼 어머니 임종을 보지 못한데다 회사 측의 무책임한 태도에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지인의 말이다. 지인의 사촌은 아들 12살 때 남편과 사별하고 한국에 2009년 방문취업 비자로 와서 화성 마도면에 있는 회사에서 취직했다. 2016년 장결핵에 걸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들의 고가 치료 비용을 벌기 위해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을 했으며 영주권도 받았다. 노동재해란 근로자나 노동자로서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 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말한다. 여기에는 부상, 그로 인한 질병사망, 작업환경의 부실로 인한 직업병 등이 포함된다. 재해는 노동과정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재해 발생의 직접적인 요인을 사용자 측과 근로자 측으로 나눌 수 있다. 사용자 측은 주로 산업재해에 대한 안전대책이나 예방대책의 미비부실을 들 수 있다. 위에 언급한 회사는 근무 현장에 CCTV가 없었고, 위험의 경고문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회사 측은 본인 부주의가 사고 원인이고,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자 측은 근로자의 작업상 부주의나 숙련 미달 등 생각해 볼 수 있지만 10년 이상 근무한 것을 감안한다면 회사의 안전대책을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매일 6명이 일터에서 죽는 대한민국이라 한다. 고(故) 김용균 노동자로 인해 2018년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기업 처벌법이 제정됐다. 그럼에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38명이 사망했다. 구미, 당진 등 폭발사고들이 있었다.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 수가 2천62명이라 한다. 그중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882명이다. 안전이 무엇인가. 이 사회를 노동으로 이끌어가는 모든 근로자가 안전해야 행복한 출산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식구를 그리워하며

식구(食口)는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하얀 쌀밥에 기름진 찬을 먹을 때만이 아니다. 깔깔한 조밥에 목이 멜 때도, 심지어 땟거리가 없어 굶주릴 때도. 배고픔의 아픔까지 같이하여 먹는 것에서 비롯된 생명을 함께 나눈다. 가족이 피를 같이하는 혈연적 결속을 의미한다면 식구는 먹음의 본질 즉, 생명의 공유(公有)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필자는 혈통으로 고루한 가족보다 먹는다는 일상으로 하나 되는 식구를 더 선호한다. 예전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라면 별식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라면이 요즘과 같이 저렴하고 흔한 정크 푸드(junk food)는 아니었다. 먹는 것이 귀했기에 기름에 튀겨진 면발 그리고 뼈를 우려낸 국물은 탁월했다. 대부분 라면은 절반만 끓였다. 그리고 다소 값이 헐한 국수를 반 정도 같이 넣었다. 이후 솥단지를 뒤집다시피 고소한 라면 면발을 한 가락이라도 더 먹으려는 전쟁이 벌어졌다. 반상(盤床)의 전쟁에 치열함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선 자식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부모의 애환이 서렸다. 유복하게 살아보고자 발버둥쳐 왔지만, 자식의 주린 배마저도 채워 주지 못하는 부모의 안쓰러움이 있었다. 라면을 탐하는 자식들의 아귀 찬 모습이 일견 기특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야속해 결국 드러나는 부모의 배려가 있었다. 다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난 라면이 싫다. 너희나 많이 먹어라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국수 가락만 연신 찾았다. 그리고 일찍 철이 든 큰누이마저 부모 같은 배려를 따라 했다. 꼬불거리는 라면 가락은 단지 힘의 논리에 의해서 나누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가족 간의 배려로써 묘하게 나누어졌다. 면발을 다 건져 먹은 후 식은 밥을 말았다. 이 국밥은 여유가 있었는지 모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라면 가락을 더 차지하려는 다툼은 이렇듯 가족의 훈훈한 정에 의해 그 치열함이 완화됐고, 급기야 국밥에 의해 여유 있게 해소됐다. 그리하여 모두가 만족해하는 라면의 성찬(盛饌)이 종료될 수 있었다. 식구를 생각하며 떠올린 한 장면에서 진정 식구 됨을 반추한다. 서로 바쁘기에 밥상에 마주 앉기도 어려운 요즘 과연 식구란 어떤 의미일까. 예전에는 많지 않은 것, 때로는 배고픔까지도 함께 했던 생명 공유의 식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넉넉하게 있음에도 이를 일상적으로 함께 나누지 못하는 식구 아닌 식구는 아닐까. 필자는 변해가는 식구의 모습을 아쉬워하며 단 하나의 장면만은 반드시 지키고자 한다. 비록 매 끼니를 함께 할 수 없어도 이따금 나누는 그 밥상에서 생명 공유의 일치로서 먹는 모두의 입가에 흐뭇함은 늘 한결같기를 바랄 뿐이다. 이계존 수원여자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경기시론] 부산 ‘혹부리 영감’ 이야기는 씨름판에서 유래했나?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에는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사람 이야기가 구전설화로 전해진다. 다른 지역의 구전설화에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데 반해 부산에는 장승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옛날 옛적에 혹부리 영감은 길을 걷다 밤이 깊어지자 장승 밑에서 잠이 들게 되었다. 장승들은 집에 손님이 오셨으니 헝송 공부를 하자며 헝송헝송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혹부리 영감은 허송 공부도 아닌 헝송 공부라는 소리가 재미있어 그 소리를 따라 헝송헝송 하였다. 장승들은 자신들의 헝송 공부를 잘 따라 한 혹부리 영감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며 그의 혹을 떼어주었다. 이 소문은 곧 마을에 전해지게 되었고, 또 다른 혹부리 영감은 자기의 혹도 떼어 보려고 장승 밑에서 잠을 청하였다. 장승들은 다시 손님이 오셨으니 헝송 공부를 하자며 헝송헝송 소리를 하였다. 그런데 이 혹부리 영감은 그 소리가 우습다며 우스갯소리로 헝송헝송을 따라 하였다. 화가 난 장승들은 혹부리 영감이 자신들의 헝송 공부를 방해했다며 혹부리 영감에게 혹을 하나 더 붙여 주었다라는 이야기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의하면, 1927년 2월 임석재라는 사람이 구전설화를 채록하기 위해 부산 동래구의 동래 공립보통학교에 현지 조사를 나가서 듣게 된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채록하기 2년 전인 1925년 3월11일 동아일보에는 씨름이 혹 떼어 그리고 씨름도 이기고 귀찮은 혹도 떼어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부산 동래구 은천리에 거주하는 박차건이라는 사람은 몇 해 전부터 귀 뒤쪽에 큰 혹이 생기면서 바깥출입도 하지 못하고, 병원에 가서 고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못해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부산의 동래 온천장에서는 여관조합주최로 경남씨름대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박차건은 엉겁결에 씨름 구경을 하다가 자신도 씨름을 하게 됐다. 그런데 박차건은 씨름을 얼마나 잘하든지 연달아 다섯 명을 이겼다. 그리고 여섯 번째 사람과 경기를 하다가 넘어지면서 혹이 한방에 떨어져 나가버렸다. 혹이 떨어진 박차건은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상으로 받은 은과 수건을 손에 들고는 가로 뛰고 모로 뛰는 광경이 참으로 일장희극을 이루었다라고 신문에는 기록돼 있다. 약 100여년 전의 신문 기사이지만, 혹 때문에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씨름 때문에 상도 받고 혹도 떼어낸 박차건의 기사를 보며, 혹시 부산 동래의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인 사람 이야기가 씨름판에서 발생한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구전설화는 아닌지 생각해본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총과 미얀마

중국에서 화약의 발명과 더불어 총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중국 원나라 시대(1271~1368년)에 만들어진 화총은 총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는데, 길이는 43.5㎝이고 총구 크기는 3㎝이다. 이 화총은 전쟁에서 명중률이 많이 떨어져서 적에게 공포를 가져다주는 용도로 활용됐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오늘날의 소총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어진 아쿼버스(arquebus)가 있었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총으로 인해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고 있어 많은 사람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군경의 총격과 폭력으로 사망자가 벌써 700여명이 됐다. 자고 일어나면 사망자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사망자의 사진과 영상이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있다. 미얀마 군경은 무장하지 않은 시민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까지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하는 등 좀처럼 강경한 진압이 멈추지 않고 있다. 미얀마에서 가슴 아픈 비극의 역사가 쓰이고 있다. 유엔은 미얀마 군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각국의 많은 단체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지만, 미얀마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유엔은 미얀마의 위기 상황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아 많은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유엔이 미얀마 사태에 대해 군사 개입을 위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가 모두 동의를 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미얀마 사태에 대해 적극적인 개입을 하는 것에 대해 꺼리고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미얀마의 유혈사태를 막을 수 있는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다. 국제사회가 미얀마 군부를 대상으로 경제 제재를 하고 있지만, 민간인의 사망자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어 즉각적인 효과가 없다. 국제사회는 국제법을 엄격하게 마련해 각국 정부가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총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감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히 도입돼야 할 것이다. 무고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동의 없이 유엔 평화유지군이 자동으로 개입을 통해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인권침해를 막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민간인 학살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행위자에게 엄격한 책임을 물어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 질서 안에서 국가와 인간을 보호하고자 군대와 무기가 필요한 것은 현실적이다. 지금과 같은 미얀마 사태에서 군사개입이 실효적이다. 무력의 사용은 평화가 깨어지는 것을 막고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미얀마의 비극은 미얀마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자신의 문제임을 자각해야 한다. 각국 정부가 미얀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인도주의에 따라 최소한 민간인을 상대로 한 학살은 시급히 막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준비되었는가

둘째 아들이 태어나 행복을 안겨 준 좋은 날이 있는 4월. 그런데 유독 필자의 기분을 가라앉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4월에는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많은 이슈가 있다. 제주 4ㆍ3사건, 4ㆍ15 제암리 학살사건, 4ㆍ16 세월호 참사, 4ㆍ19 혁명 등 거기에 요즘 미얀마의 유혈사태 소식이 있어 더 그런가 보다. 그래서인지 유독 4월, 여러 모양으로 우울하다. 얼마 전 80대 중반인 부모님을 모시고 50대 중반 형제들이 가족회의를 했다. 부모님께서 임종하면 어찌할까. 거동 잘하고 계시는 부모님 앞에 모시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죽음을? 순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먼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데. 부모님은 서울과 경기지역에 사는 자식들이 왕복에 힘들어할까 걱정된다며 거창에 있는 선산을 내려놓으셨다. 필자는 부모님의 죽음이 아직 실감 나지 않지만, 죽음에 초연하신 부모님을 바라보며 교훈을 얻는다. 손자 볼 나이인 필자는 지금도 부모님께 부모 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경기도 근교 왕복 1시간 거리에 있는 추모공원 가족 수목장으로 8명에서 12명이 이사 갈 수 있는 가족묘를 택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직은 머리로만 아는 죽음이다.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맘과 함께 울컥 뭉클함이 몰려왔다. 이별은 단어만으로 서글프다. 과연 나무 아래로 소풍 가듯 다녀올 수 있을까? 필자의 지인 중에 15살 학생은 성적 비관 자살로, 20살 대학생은 교통사고로, 36살 주부는 우울증과 의처증에 시달려, 47살 사업가는 스트레스로, 먼저 떠났다. 그럴 때마다 그런 현실이 필자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의욕이 사라지고 인생이 허무해서 필자의 삶조차 내려놓고 싶은 심정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죽음 또 다른 탄생을 의미하듯 산 사람은 잘 살아내고 있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후대와 연결되어 천년만년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식물이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차가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온다. 순리이고 당연함 속에 희생이 있다. 열매 속 씨앗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끈이 되듯 사람도 자신의 운명을 본능처럼 알 수 있다. 단지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탄생만으로 자손을 낳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이다. 우리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기억해야 한다. 2년 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동생을 또 가슴속에서 꺼냈다. 그 당시 준비 없이 맞은 죽음에 우왕좌왕했었다. 탄생을 준비하듯 죽음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긴 필자가 부모님 덕분에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됐다. 이제 필자는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가슴 한편이 뿌듯하고 든든하다. 아마도 이는 내 속에 죽음이 삶과 공존하기 때문이리라.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경기시론] 이빨의 참 의미

치아(齒牙) 또는 이와 비교하면 이빨은 왠지 상스러운 명칭으로 인식되고 있다. 빨이 된소리이기에 천박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무슨 빨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점잖지 않은 표현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국어사전에도 이빨은 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주로 동물의 경우를 지칭한다고 돼있다. 이리 매도됨에도 이빨은 여전하게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금이빨, 이빨이 깨졌다, 이빨이 갈리다, 이빨이 세다 등등. 언어 규범과 일상 사용에 상당 차이가 있기에 이빨의 어원에 대한 궁금증을 오래전부터 가져왔었다. 하지만 필자의 과문으로 쉬이 그 답을 구하지 못하던 중 하나의 발칙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빨은 입의 발이 아니었을까. 입(口)은 나와 세상이 교류하는 주된 창구이다. 이러한 입의 초입에 발(簾)이 가지런히 늘어져 있다. 발은 안과 밖을 가르기 위해 문 등에 걸리는 것이다. 이후 입발은 연음에 의해 이빨이 됐을 것이다. 입에 발이 걸림으로써 생명을 영위하기 위한 음식물이 골라지고 우리 몸에 알맞게 변형된다. 우선 입발의 엄정한 검역으로 각종 외물에 대해 먹을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이후 입발의 저작(咀嚼)으로 외물을 자르고, 찢고, 부시고, 갈아서 잘 흡수될 수 있도록 한다. 한데 갓난아이는 모자람 없이 온전한 엄마 젖을 먹기에 입발이 전혀 필요치 않다. 또 이후에도 오랫동안 탁월한 이유식을 먹기에 완전한 입발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스스로 음식물을 가려야 하는 나이가 되면 입의 발이 필요해지고 비로소 이빨이 나는 것이다. 이빨의 의미는 단지 음식물 섭취만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흔히 이빨을 깐다라고 표현한다. 거칠게만 생각되는 이 표현에서도 자못 진지한 이빨의 의미를 엿볼 수 있다. 우리는 이빨을 까며(걷으며)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빨 너머의 속내가 상대에게 그대로 드러나기에 이빨 까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 본디 그 신중이란 단지 보이는 나만 생각하는 천박한 욕심에서 벗어나 보는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즉, 우리를 함께 지향해야 한다. 특히 일단 한번 까면 다시 감추기 힘든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의 엄정함이 있기에 더욱 신중하게 이빨을 까야 한다. 마침 요란하게 이빨을 까는 선거 공간이 열렸다. 그 공간에 참여하는 정치인 모두는 이빨의 참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네 이빨이 없더라도 엄마 젖과 같은 오롯한 정책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편안한 세상을 열어줘야 한다. 또 이빨을 까는 것은 상대를 해치는 독한 언설이 아니라 정치하는 속내를 진솔하게 드러내고 그 속내에 어울리는 선량으로 나아가는 전초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씨름 경기는 왜 무릎을 꿇고 시작할까?

전통스포츠인 씨름 경기는 무릎을 꿇고 시작한다. 이러한 경기방법은 치열한 샅바 싸움이 시작되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기 때문에 미리 상대에게 예(禮)를 갖추기 위한 의식 중 하나로 행해진다. 동양에서 무릎 꿇는 모습은 낯설지 않지만 다른 스포츠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모습이다. 특히, 좌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일상생활에서 무릎 꿇는 일이 없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좌식문화에 불편을 겪곤 한다. 서양에서는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때, 그리고 과거 신하들이 왕에게 경의를 표할 때 무릎을 꿇는다. 그것도 한쪽 무릎만 꿇을 정도다. 그만큼 무릎 꿇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신에게 기도를 드리거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에게 존경심을 나타낼 때, 혹은 굴복하거나 용서를 구할 때 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한국에서조차 명절 때가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그나마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씨름판이다. 씨름판에서는 모두가 동등하게 무릎을 꿇고 경기를 해야 한다. 누구라도 예외 없이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씨름판에 들어서야 씨름 경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는다. 이렇게 인본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씨름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왜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면, 씨름은 언제부터 무릎을 꿇고 경기를 시작했을까? 그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조선 시대 한양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유득공(1749~1807)의 《경도잡지 京都雜誌》제2권 『단오 端午』편에는 씨름 경기방법과 관련된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장안의 소년들은 남산 기슭에 모여 씨름(角力)을 한다. 그 방법은 두 사람이 각각 무릎을 꿇고(其法兩因對) 왼손으로 상대방의 오른쪽 다리를 잡고 또 오른손은 각기 상대방의 허리를 잡는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서며 서로 힘을 겨룬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씨름 경기는 1800년대 전후부터 이미 무릎을 꿇고 샅바를 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1927년 조선씨름협회는 제1회 전조선 씨름대회의 첫 경기부터 무릎 꿇는 경기방식을 고집해왔다. 1983년 프로화된 민속씨름이 출범하면서도 그 전통은 이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아마추어 경기에서 샅바 잡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만으로 서서 샅바를 잡고 경기를 진행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당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생각하지 못한 씨름협회의 잘못된 결정 때문이었다. 앞으로 동방예의지국의 위상에 맞게 씨름의 가치를 더 높이려면 무릎 꿇는 경기 모습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씨름의 건승을 기원하며.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선거와 국민소환제

선거는 국가의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제도다. 지도자를 잘 뽑는 것이 국가와 국민을 이롭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오는 4월7일 시행되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 등 선거 관련 뉴스가 넘친다. 하지만 지난 선거의 투표율의 추이를 살펴보면 유권자의 투표 참여율은 저조하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은 각각 60.2%, 66.2%였다. 투표 참여율이 낮은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필자는 국민이 투표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바뀔 거라는 것에 회의적이기 때문에 투표율이 저조하다고 본다. 선거가 그들만의 리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은 낮은 자세로 모범을 보이고 자신의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기 보다는 국민의 삶이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진심 어린 노력을 보여야 한다. 정치인은 철저하게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선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서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불성실한 당선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제도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주민소환제가 존재한다. 하지만 국회의원에게 의정활동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5년 영국은 하원의원이 범죄로 기소돼 구금형을 선고받거나 의원직을 14일 이상 정지 당한 경우에 소환이 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이 돼 있다. 영국은 지역 유권자의 10%가 대상이 되는 의원에 대한 소환을 찬성하게 되면 의원직을 잃게 된다. 우리나라도 정치에 대한 투명성과 책임성을 위해 영국의 사례를 비롯하여 다른 나라의 제도를 연구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국민소환제의 도입이 시급하다. 모든 국민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제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현실적으로 대의민주주의는 필요하지만, 그동안 국민이 체감했던 제도의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작업들이 필요할 것이다. 국민소환제의 논의를 시작으로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근본적으로 정치가 국민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 것이 아닌 긍정적인 인식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정치인의 노력과 더불어 제도의 발전도 병행돼야 한다. 정치인이 우리 사회에서 국민 다수로부터 존경받을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국가의 발전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정치가 국민의 삶과 유리된 경우가 많이 있지만, 지금의 법과 제도 안에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정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국민은 자신의 입장을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 투표하고 우리 사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치에 관심을 갖고 민주주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똥통 속으로 빠진 꿈

사랑스러운 왕자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얼마 전 봄맞이 청소하다가 발견한 아기 수첩. 1993년도 이야기이다. 사랑스러운 아기의 두 발바닥 사진을 보는 순간 필자의 눈가가 이미 촉촉하게 젖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안함과 감사함이 어우러진 묘한 감정이다. 임신 2개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다. 냄새만으로도 화장실로 향한다. 현기증에 팔다리까지 쑤신다. 죽조차 토한다. 임신 5개월 태몽을 꾸었다. 산길을 힘들게 걸어 올라가고 있는데 크고 시커먼 돼지 한 마리가 나타나 힘들고 지친 나를 업고 쏜살같이 날아가듯 달려 똥통 속으로 함께 빠진 꿈. 아기를 향한 간절한 기도문도 있다. 많은 사랑을 베풀 줄 알며 지혜를 활용하여 총명함을 떨치는 겸손한 아이로 정의에 앞장서며 불의하고도 타협하는 신세대를 이끄는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엄마의 사랑을 담아 엄마도 노력하겠다고. 11월29일 아기가 태어난 날이다. 붉은빛이 도는 아기의 피부, 머리는 새카맣고 구레나룻이 있으며 코는 오뚝하다. 눈은 뜨지 못해도 눈의 길이가 길다. 귀는 머리에 달라붙어 있다. 손톱과 발톱은 길어서 잘라 줘야겠다. 배꼽 옆에 푸른 점이 있다. 몸에는 솜털이 뽀송뽀송 신기하게 나 있다. 아주 작지만, 외모만으로는 사람 맞다. 하루하루 써 내려가던 아기에 대한 일기장. 사랑스럽다기보다 너무 작아 만지기가 겁난다. 잠만 자는 아기 그런데 신기하게 배고프면 운다. 생리현상이 일어났다며 운다. 그 외엔 새근새근 진짜 신기하다. 말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 이게 얼마 만인가? 오늘은 혼자 섰다. 계속해서 부르며 한 발 내딛기를 바라며 계속 불렀다. 넘어지면 안쓰럽지만, 그보다 한발 한발 걷는데 너무 행복하다. 공, 차, 물 단어 하나 가지고도 소통이 된다. 놀랍다. 사람이 성장하는 게 신비롭다. 돌아다니며 노느라 밥을 거부한다. 한참 실랑이를 하며 밥을 먹인다. 이러다가 식사란 나에게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 내가 제대로 식탁에 앉아 대우받으며 힘 들이지 않고 먹으면 행복할 것 같다. 힘들고 지치다가도 아이가 나를 보며 웃는다. 나를 보고 나를 찾고 나를 내가 뭐라고 그랬구나! 그 산부인과는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됐다. 필자의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커버렸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이 생겼고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이런 세대가 흘러 또 다른 세대를 구성하는 것이 인간사(人間事)이다. 이는 당연한 이치다. 당연함을 자꾸 망각하는 우리에게 가수 이적이 당연한 것들이라며 노래를 들려준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당연히 돌아올 거라고 당연히.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 원장

[경기시론] 이순신 장군과 씨름협회

이순신 장군은 32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관직에 진출했다. 그는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선조(宣祖)와 달리, 명량에서 백의종군하며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수군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둔 살신성인의 정신은 그를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기억하게 했다. 특히,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위기 속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모습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지쳐 있는 장수들과 군사들을 위로해 주는 세심한 모습도 잘 드러나 있다. 그의 1596년 병신일기(丙申日記)를 보면, 군사 중에서 힘센 사람을 뽑아 씨름(角力)을 시킨 결과 우승을 차지한 성복에게 쌀을 상으로 줬고, 또 장수들에게는 씨름하며 즐겁게 뛰놀게 했는데 이것은 나 스스로 즐거워지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수들의 수고를 덜어 주자는 생각에서였다라는 기록이다. 이 내용은 씨름을 통해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기에 병사에게 쌀을 상으로 줌으로써 군사의 사기를 높여주고, 장수들과 병사들이 오랜 전쟁의 시름을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려는 그의 뜻깊은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제 이만기 인제대 교수의 스승 명장 황경수 감독이 제43대 대한씨름협회장에 당선된 만큼 황 회장은 위기에 처한 씨름을 위해 이순신 장군과 같은 리더로서 씨름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한다. 대중적으로 전승돼온 씨름에서 인간문화재를 만들고자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씨름전수관을 설립하는 데 힘써야 하고, 유소년과 생활체육 동호인이 증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 또 씨름이 국내에서만 머물지 않고 국제 스포츠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GAISF(국제경기연맹총연합회) 가맹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축제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단적으로 씨름보다 늦게 단증제도를 도입한 복싱이 경찰시험에서 가산점을 받는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씨름협회가 행동 없이 말로만 위기라고 하며 얼마나 뒤처진 행정을 한 것인지 뒤돌아봐야 한다. 현재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씨름협회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씨름 진흥법 개정을 통한 법정법인 국립씨름진흥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안정적인 재정을 확보해가면서 국내외의 씨름 전승보급은 물론 다양한 사업도 가능해진다. 또 장기적으로는 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과 스모의 양국국기관(技館)처럼 씨름 전용 경기장 건립도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황경수 회장을 통해 보이길 기대해본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법의 정의

법은 국가를 통치하는 역할도 하지만, 민주주의 근간이 되는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수단이다. 증거재판주의를 바탕으로 한 법의 판단을 통해서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법의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법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반드시 정당성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법의 정의는 퇴색돼 보이기도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 돼야 하는데, 요즘 시대적 경향을 보면 법으로 처벌을 받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검찰개혁, 법관 탄핵,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등 사법과 관련해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논쟁이 치열하다. 주로 여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올바른 사법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검찰은 개혁돼야 하고, 그 힘을 분산시켜 사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수진영은 여당이 주도하고 있는 검찰개혁을 포함해 사법 정의를 위한 입법 방향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사법제도가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혁돼야 하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법을 집행함에서 투명하고 공정해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단적인 예로, 사직한 판사나 검사가 변호사가 돼 전관예우 차원에서 소송의 유리한 판결을 가져가는 관행에서는 사법 정의를 찾아볼 수 없으며 비도덕적이다. 이로 인해 국민은 법의 가치와 정의에 대해 시선이 곱지 못하다. 또한, 검찰이 기소권을 많이 남발하는 것도 문제이기도 하지만,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도 커다란 문제다.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법을 집행하는 기관들이 스스로 자정 노력을 보여야 하지만 관행이라는 잘못된 인식으로부터 스스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법의 정의를 바로 세우려면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국민에게 도덕적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적어도 입법과 사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공직자에 대해 법을 집행함에 더욱 철저하고 엄격해야 하며, 부를 많이 가진 자에게도 법이 공평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법의 적용에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이 있다면, 국민은 법에 대해 불신이 높아질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려면 많은 어려움이 수반이 되지만, 각고의 노력을 통해 법의 정의가 바로 세워져 젊은 세대가 국가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발전하길 기대해 본다. 이창휘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코로나 up, 스트레스 up

필자는 최근 정인이 사건을 보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대해 생각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임시번호나 전산관리번호 등으로 지내는 아이들이 있다. 호적 등 난민법 등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이름이 부여받기까지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분만을 담당한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 의무를 부과한다는 말이 있다. 출생 즉시 신고한다면 출생신고의 누락을 일부 해소는 되겠지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걸까?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무국적자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당연히 취학은 할 수 없는 것이며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주변에 여러 가지 이유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몽골 출신 부부는 불법체류자라서 출생신고조차 할 방법이 없다. 다른 외국인 부부는 이중국적이라 40일 후 출생신고해야 하는데 한 달 안에 BCG 예방접종을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그러면 혼외 출생은 출생 사실을 숨기면 어떻게 알지? 생명은 생명 자체로 귀하므로 생명에 이유가 있어선 안된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산모의 신원을 밝히지 않더라도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생명과 인권이며 아이가 사랑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다. 불안한 사람이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 사람과 사귀었다. 이런 불안이 처음에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아이를 낳으면 자신이 가진 불안이 각 각의 불안과 합쳐져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 낸다. 그런 불안과 두려움이 아동학대로 연결되는 듯하다. 학대로 인한 영아 사망 사례는 매년 발생하는데 2012년부터 출생신고를 의무화하면서 실제로 영아 유기가 급증했다고 하니. 한 해 평균 127건의 영아 유기와 한 달에 한 번 영아 살해가 이루어진다는 경찰청 통계를 봤다. 세상에 완벽한 공평이 있을까? 한 사람이 잘못했다고 모두 다 벌을 주면 안된다. 코로나19로 서로의 감정 해소 방법이 줄면서 스트레스가 더 쌓여가고 있다. 서로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기 더 어려워져 문자로라도 소통이 더 필요한 때다. 내가 여기 있다고 느끼는 자아 존재감이 내가 멋지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아존중감으로 자라 잘 형성될 수 있도록 어른들의 솔선수범이 절실한 때다.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애들이 다시 부모가 될 테니까.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 원장

[경기시론] 딸자식 시집보내기

딸 시집보내는 길은 내내 아비의 몫이다. 굼뜬 걸음으로 도착한 사돈댁, 이미 상견례는 했지만, 사돈 내외는 늘 어렵다. 반기는 표정이지만 바깥사돈의 성깔은 역력하다. 단아한 매무새지만 안사돈의 눈매는 앙칼져 보인다. 미덥지 않음에도 사위의 건성은 믿어야만 한다. 정중한 인사 후 침묵의 바늘방석이다. 하여 금세 고별의 뜻을 전한다. 딸의 얼굴은 더 머물기를 간청한다. 하지만 사뭇 비정해야 한다. 따라나서는 딸에게 매몰찬 한마디, 이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 땡초보다 매서운 시집살이에 위로해야 하건만 내뱉는 말은 한없이 매정하다.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는 딸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박정한 아비일 뿐이다. 만일 고개를 돌린다면 하릴없는 아비 두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이다. 그러면 어제와 다른 아비의 짠한 모습에 딸은 더 슬퍼할지도 모른다. 어미는 이따금 딸을 볼 수 있다. 명절 끄트머리의 반보기이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서둘러 도착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마침내 딸의 모습이 보여 한 걸음에 달려간다. 덥석 손을 잡는데 곱던 손이 거북 등이 됐다며 연신 눈물바람이다. 시부모가, 신랑이 잘해준다며 딸도 눈물바람이다. 눈물의 반보기, 쏜살같은 반나절이 아쉬울 뿐이다. 이후 아비는 어미의 수다로 딸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하지만 잔정마저 절대 내색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이의 얘기 마냥, 말 없는 마음만 쓴다. 예전 딸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 오늘에도 여전할 것이다. 특히 맘껏 표현하지 못하는 아비의 감춰진 속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애절하기만 하다. 딸 없는 필자에게 삼신할미가 베푼 허락은 학문의 딸을 구하는 여학교 선생이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딸들의 커감을 지켰고 이후 험한 세상으로 시집을 보내왔다. 어려운 상황에도 마침내 마무리했기에 딸들의 학업은 대견했다. 앞으로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기에 딸들의 미래는 불안했다. 또 그 험한 세상살이에 뭔가를 이루려 하기에 딸들의 수고는 안쓰러웠다. 어찌 온통 기(杞)의 걱정만 앞섰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근거해 또 하나의 상념을 더하고자 한다. 이제껏 필자의 걱정이나 불안은 종내는 부질없었다. 어떤 딸이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너무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딸들이 앞으로 모든 일을 분명 더 잘 해내리라는 벅찬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든든한 자부심을 또 다른 상념으로 가지게 된 연유이다. 이즈음 제자들을 아니 딸들을 사회로 시집보내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대견함, 불안, 안쓰러움 그리고 자부심 등 필자의 상념은 이리도 번다(煩多) 하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경기시론] 왼씨름 vs 오른씨름 (下)

씨름인 출신으로 대한씨름협회장을 지낸 박승한 교수(영남대)에 의하면 과거 씨름은 크게 3~4가지 형태로 행해졌는데, 같은 씨름을 두고도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렸기 때문에 현대씨름이 왼씨름인지 오른씨름인지는 논란이 있다고 말한다. 1950~70년대 씨름의 전설로 불리고 청구씨름단에서 이태현 교수(용인대)와 백승일 장사를 길러냈던 김학웅 원로(前 대한씨름협회 연수원장)에 의하면 1940~60년대에는 씨름경기를 진행하는 분들이 주로 이북출신이 많았고, 이분들은 다리샅바를 왼손으로 잡기 때문에 지금의 씨름을 왼씨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북한의 유네스코 등재신청서에는 현대씨름을 왼씨름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김 원로는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이 경상도 사람이었고 어려서부터 지금의 씨름을 오른씨름으로, 전라도에서 하던 씨름은 왼씨름으로 배웠다고 한다. 대구 출신으로 1937년 제10회 전조선 씨름대회에서 우승한 라윤출(1963) 장사의 『조선 씨름』에 의하면 바른씨름은 오른팔을 상대자의 왼 겨드랑이 밑에 들이밀고서 그의 허리샅바를 잡고, 왼손으로는 다리샅바를 잡는다. 그리고 왼씨름은 바른씨름과 정반대되는 씨름 형태를 말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현대씨름은 오른씨름이 맞다. 왼씨름을 주장하는 사람은 다리샅바를 왼손으로 잡기 때문이고, 오른씨름은 오른 어깨를 맞대기 때문이란 논리다. 그러나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언론에 보도된 샅바 잡는 사진을 보면, 손목을 다리샅바에 넣어서 잡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만 잡고 경기를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다리샅바가 중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씨름에서 중요한 다리샅바를 왼손으로 잡기 때문에 현대씨름이 왼씨름으로 불려야 한다는 근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렇게 씨름명칭의 혼란이 발생한 것은 이북 사람들에 의해서 현대씨름이 왼씨름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1959년 제1회 전국장사씨름대회부터 왼씨름으로 통일하다 보니 이후 세대들은 현대씨름을 왼씨름으로 알게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도 부산, 경상도 지역에서는 현대씨름을 오른씨름으로 배웠다는 씨름인들이 있는 만큼 대한씨름협회는 씨름명칭 문제를 공론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씨름명칭에 대해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떠나서 현대씨름이 왼씨름으로 불리게 된 이유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겠고, 씨름원형복원 과정에서 또다시 명칭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국가무형문화재로서의 그 상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씨름명칭의 논쟁을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공성배 세계용무도위원회 사무총장

[경기시론] 폭력 없는 사회

정인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이 어린 생명을 살릴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음에도,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없던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고 분노하고 있다. 아동학대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미디어를 통해 많은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동학대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아동학대 건수는 각각 2만4천604건, 3만45건으로 아동학대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를 줄이고자 아동학대 인력 확충, 인력의 전문성 강화, 예산 확보, 아동학대 처벌 강화 등 다양한 대책을 밝혔다. 도대체 아동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아동을 언어적ㆍ신체적으로 학대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노르웨이 평화학자인 요한 갈퉁은 직접적인 폭력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사회 구조에 내재된 문제에서 나아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는 폭력적인 문화 현상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이는 폭력의 문화 속에서 학습된 대중이 폭력을 양산한다는 논리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적 폭력의 개념을 단순하게 폭력을 자행한 사람들의 잘못을 면피하기 위한 논거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 폭력은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로 인해 발생하지만, 개인의 인격적인 문제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다수 성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학교, 가정, 군대 등에서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경험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의 유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행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각성해야 하며, 어떠한 이유로도 폭력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 아동학대를 근절하고자 비폭력의 문화를 조성하는 노력 그리고 개인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물질 만능주의와 학력 우선주의를 비롯하여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한 인간이 폭력 없는 사회를 지향하며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운 환경이다. 혁명적인 문화의 개선과 의식 개혁이 없이 법과 제도를 통해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인간 존중이어야 하고, 각자가 선 위치에서 타인을 향한 따뜻한 말과 행동이 아동학대 근절을 넘어 비폭력의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창휘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담당 팀장

[경기시론] 무관심이 자른 생명줄

2012년 낙태죄 합헌 판결 7년 만에 역사적인 진전을 이룬 2019년, 낙태가 2021년 1월 1일부터 전면 합법화되었다. 여성(女性)으로서 여성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이 출산(出産)이다. 여성은 태아를 위한 성스러운 집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출산은 행복이어야 한다. 낙태가 여성의 삶을 옭아매고 국가적 폭력 상황이라 말하는 이유가 있다. 이는 낙태에 대한 여성만의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4차 산업 혁명시대 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의 경험이나 감정을 무시한다. 무관심하게 하는 일들이 이슈의 당사자가 될 수 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은 1966년부터 인구는 국력이다 라며 피임과 낙태, 이혼을 모두 금지했다. 이 정권 당시 800배 이상이 불법 낙태로 인한 모성 사망률이었다. 1979년 혁명으로 차우세스쿠가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했던 보건 정책이 임신중절 합법화다. 그 후 당연히 모성 사망률이 현저하게 뚝 떨어졌다. 임신중절을 쉽게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 보건 기구의 안전하지 않은 낙태비율을 보니 낙태금지국가는 75%, 낙태허용국가가 10%다. 낙태 금지로 원정 낙태나 음성적으로 낙태를 하게 되면 여성의 건강을 더 헤치게 된다. 낙태죄 폐지로 출산이 행복일 수 있다. 통제보다 자율 속에서,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출산(出産)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정책이 빠른 시일내에 마련돼야 한다. 낙인과 차별없는 재생산권 보장, 피임 방법과 임신중지 대한 정보에 대한 교육 등 그것에 대한 접근성을 제공받아야 한다. 여성들이 처한 한계상황을 돕고 보호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미혼모나 미혼부 가정에 대한 양육 지원을 대폭 늘린다. 임신 중지 시 지원받는 방법이나 부작용 등 의사 상담을 의무화 한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을 통해 공식적으로 67개국이상의 나라에서 사용하는 임신중지 유도약물의 도입 및 절차 그리고 여성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만든다. 출산 이후 삶에 대한 고통과 현실 그리고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성교육을 교과 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 태아도 소중한 생명임을 공익광고를 통해 알린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방향에서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정부가 인구 관리 목적으로 여성의 몸을 관리하며 통제하였다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안전 절차를 만들어 지원해 줬으면 싶다. 또, 나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질 수 있도록 통제나 비난하지 않는 더 나은 사회이길 소망해 본다. 김양옥 한국출산행복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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