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집보내는 길은 내내 아비의 몫이다. 굼뜬 걸음으로 도착한 사돈댁, 이미 상견례는 했지만, 사돈 내외는 늘 어렵다. 반기는 표정이지만 바깥사돈의 성깔은 역력하다. 단아한 매무새지만 안사돈의 눈매는 앙칼져 보인다. 미덥지 않음에도 사위의 건성은 믿어야만 한다.
정중한 인사 후 침묵의 바늘방석이다. 하여 금세 고별의 뜻을 전한다. 딸의 얼굴은 더 머물기를 간청한다. 하지만 사뭇 비정해야 한다. 따라나서는 딸에게 매몰찬 한마디, 이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 땡초보다 매서운 시집살이에 위로해야 하건만 내뱉는 말은 한없이 매정하다. 이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소매로 눈물을 찍어내는 딸의 모습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결코 돌아보지 않는다. 박정한 아비일 뿐이다. 만일 고개를 돌린다면 하릴없는 아비 두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할 것이다. 그러면 어제와 다른 아비의 짠한 모습에 딸은 더 슬퍼할지도 모른다.
어미는 이따금 딸을 볼 수 있다. 명절 끄트머리의 반보기이다.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한다. 서둘러 도착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기만 하다. 마침내 딸의 모습이 보여 한 걸음에 달려간다. 덥석 손을 잡는데 곱던 손이 거북 등이 됐다며 연신 눈물바람이다. 시부모가, 신랑이 잘해준다며 딸도 눈물바람이다. 눈물의 반보기, 쏜살같은 반나절이 아쉬울 뿐이다. 이후 아비는 어미의 수다로 딸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하지만 잔정마저 절대 내색하지는 않는다. 모르는 이의 얘기 마냥, 말 없는 마음만 쓴다.
예전 딸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 오늘에도 여전할 것이다. 특히 맘껏 표현하지 못하는 아비의 감춰진 속내는 그때나 지금이나 애절하기만 하다.
딸 없는 필자에게 삼신할미가 베푼 허락은 학문의 딸을 구하는 여학교 선생이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딸들의 커감을 지켰고 이후 험한 세상으로 시집을 보내왔다. 어려운 상황에도 마침내 마무리했기에 딸들의 학업은 대견했다. 앞으로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기에 딸들의 미래는 불안했다. 또 그 험한 세상살이에 뭔가를 이루려 하기에 딸들의 수고는 안쓰러웠다.
어찌 온통 기(杞)의 걱정만 앞섰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근거해 또 하나의 상념을 더하고자 한다. 이제껏 필자의 걱정이나 불안은 종내는 부질없었다. 어떤 딸이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너무도 당당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딸들이 앞으로 모든 일을 분명 더 잘 해내리라는 벅찬 미래를 확신하고 있다. 든든한 자부심을 또 다른 상념으로 가지게 된 연유이다.
이즈음 제자들을 아니 딸들을 사회로 시집보내야 한다. 그 생각만으로 대견함, 불안, 안쓰러움 그리고 자부심 등 필자의 상념은 이리도 번다(煩多) 하다.
이계존 수원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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