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나면 속수무책… 경기도내 소방차 진입 불가 지역 ‘수두룩’ [현장, 그곳&]

“가뜩이나 좁은 도로에 무방비로 불법 주차된 차들까지…화재라도 나면 속수무책이죠.” 9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지동시장 인근. 상가와 시장 주변에 있는 불법 노점과 적치물을 집중 단속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지만 이를 무시하듯 트럭 2대가 노상 한켠에 버젓이 불법 주차를 한 상태로 판매대를 설치한 채 물건을 팔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불법 주차된 차들이 줄지어 서 있어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비좁았다. 게다가 도로를 향해 툭 튀어나온 노점의 테이블과 좌판대들로 보행자들은 도로와 인도 사이를 위태롭게 걸어갔다. 건어물 상점을 운영하는 김창수씨(가명·87)는 “평소에도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이 많아 단속을 나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소방차가 일찍 도착해도 지나가기 힘든 골목이다. 불이 나면 크게 안 번지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같은 날 성남시 수정구 수진동의 한 골목도 마찬가지. 음식점과 식료품점 등 상가가 몰려 있는 이곳 입구부터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이 양옆으로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골목 곳곳에서 상인들과 시민들이 흡연하고 있었지만, 소화전과 옥외 소화기함은 차량과 상인들에게 가려져 있었다. 전통시장 등을 포함한 경기지역 곳곳이 비좁은 도로에 방치된 불법 주청차와 적치물 등으로 인해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곳이 많아 화재 발생 시 대형 참사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소방차 진입이 곤란한 경기도내 지역은 39곳으로 나타났다. 진입이 어려운 사유는 도로 협소가 20곳으로 가장 많았고 상습 주정차 9곳, 고정 장애물 5곳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본보 취재진이 현장을 돌아본 결과, 이 곳들 외에도 불법 주정차된 차들과 적치물들로 좁아진 도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상습 주정차와 고정 장애물 등의 현장은 언제든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화재 발생 시 진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곳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2021년 발생한 8천169건의 화재 중 2천건 이상(25%)이 주거지역에서 발생했는데, 대부분 목조밀집 지역에 소방차 진입 곤란 구간이 집중돼 있어 화재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차가 골든타임 5분 안에 화재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큰불로 확산되기 쉽다”며 “시민들에게 화재에 대한 경각심과 안전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지속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화재 발생 시 불법 주정차된 차들로 소방 통로 확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화재 현장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해 전통시장과 주택상가 밀집 지역에서 ‘소방차 길 터주기 훈련’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내 하루 평균 화재진압 건수는 23.6건이며 인명피해는 1.9명, 재산 피해는 11억5천만원에 이른다.

경기도내 노후 교량 "녹슬고, 깨지고, 갈라져… 불안한 낡은 다리" [현장, 그곳&]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다리를 어떻게 마음 편히 지나다닙니까?” 6일 오전 양평군 양평읍 공세1리와 회현리를 잇는 총길이 180m의 흑천교. 1972년도에 지어져 50년이 넘은 교량의 구조물이 이곳저곳 부서져 있었다. 다리 난간 주변에는 깨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나뒹굴고 있었고, 도로 곳곳에는 균열이 생겨 이곳을 통행하는 차량들이 곡예운전을 펼쳤다. 인근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는 서정분씨(62·여)는 “매년 여름마다 교량이 잠길 정도로 물이 차올라 부식이 심한 데도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다리 근처를 지나다닐 때마다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오후 화성시 양감면 사창리의 사창교(총길이 21m). 준공된 지 34년이 지난 이 교량도 곳곳에 균열이 생겨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교량의 다리 역할을 하는 교각은 녹슨 채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갈라진 틈으로 보이는 내부 콘크리트에도 금이 간 상태였다. 준공 40년이 넘은 가평군 가평읍 마장리의 엽광교(총길이 144m)는 상태가 더 심각해 보였다.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설치된 낙교 방지 장치 틈이 3~4㎝씩 벌어진 채 깨져 있어 내부 철골 구조가 훤히 들여다 보였다. 외벽에는 이끼가 잔뜩 껴 있어 관리 없이 방치된 지 수년은 지난 듯했다. 지난 5일 성남시 분당구 정자교 붕괴로 인명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도내 교량에 대한 면밀한 안전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정자교처럼 준공 30년이 넘은 노후 교량도 많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도에서 관리하고 있는 교량은 총 718개로 이 중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노후 교량은 122곳(17%)에 달했다. 도의 관리 교량 외에도 각 시·군이 관리하는 교량이 3천여개에 달하는 만큼 노후 교량 수는 이보다 더욱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한 정자교도 관리주체가 성남시다. 이와 관련,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오래된 교량일수록 내진성능 보강기술 등 강화된 설계기준을 적용받지 않아 위험도가 높아진다”면서 “우선 정자교 붕괴 원인을 파악한 이후에 점검주기와 항목 등을 새롭게 고려해 안전점검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 관계자는 “도내 모든 교량을 대상으로 집중안전점검을 시행할 계획”이라며 “시군에서 관리하는 교량에 대해서도 집중 안전점검을 실시하라고 공문을 내려놓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일 성남 분당 정자교 보행로 붕괴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 사고 이후 인근 불정교와 수내교 등에서도 보행이 통제됐다.

50억 들여 지은 송도9공구 화물차주차장 ‘그림의 떡’ [현장, 그곳&]

“눈앞에 화물차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는데, 왜 못 쓰는지 답답합니다.” 4일 오후 1시께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9공구 화물차주차장 앞. 주차장 입구의 차단기는 모두 내려가 있고, 무인주차 시스템은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총 400대의 화물차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지만, 안에는 단 1대의 화물차도 없이 텅 비어있다. 반면 주차장 앞 길에는 불법주차를 한 화물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시로 불법주차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만, 수개월째 이 같은 불법주차는 반복하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화물차 운전기사 김현필씨(53)는 “수십억을 들여 만들어진 곳이라는데, 우리에겐 들어가지 못하니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했다. 이어 “주차할 곳이 없으니 불법주차를 할 수 밖에 없다”며 “벌써 불법주차로 문 과태료만 수십만원”이라고 했다.  인천항만공사(IPA)가 송도9공구에 조성한 화물차주차장이 5개월째 텅 비어있다. 주민 반발 등으로 인해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4일 인천시, 인천경제자유구역청, IPA 등에 따르면 IPA는 50억원을 들여 지난해 12월 송도동 297의10 일대 5만㎡에 총 402면 규모의 화물차주차장을 조성했다. 그러나 인천경제청이 주차장 관리를 위한 가설건축물에 대한 사용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주민 민원의 우려가 큰데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정 단계를 밟고 있다는게 이유다. 인천경제청은 최근 IPA가 신청한 화물차주차장의 무인주차 관제시스템 운영시설 가설건축물 축조 신청을 반려했다. 앞서 인천경제청은 지난 1월 IPA의 간이 화장실 등 필수시설 가설건축물 축조신청도 반려했다. 특히 인천경제청은 뒤늦게 대체부지를 찾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최근 IPA에 화물차주차장 대체부지를 찾고, 활용방안을 구상하는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위한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인천경제청은 지난 2021년 IPA가 이곳에 화물차주차장을 짓겠다고 했을 때 이를 승인했다. 시가 지난 2020년 ‘화물차주차장 입지 최적지 선정 용역’을 통해 이곳을 최적지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경제청은 정작 IPA가 화물차주차장 공사를 끝내자, 되레 대체부지를 찾자고 나선 것이다. IPA 관계자는 “수십억원을 들여 만들어놨더니 이를 활용할 수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지금 상황에선 대체부지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현재 IPA는 인천경제청의 이 같은 화물차주차장 가설건축물 축조신청의 반려에 대해 이의신청을 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IPA는 만약 이의신청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천경제청이 주민들의 반대 논리만 앞세워 무조건 화물차주차장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장은 화물차들이 아파트 단지 등을 지나가지 않도록 동선을 제한한 뒤, 이후에 시와 협의해 대체부지를 찾는 형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일단은 주민 민원 때문에 화물차주차장이 아닌 물류센터나 창고 등으로 쓰는게 좋겠다는 방침만 서있다”며 “구체적인 대책 등을 검토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이어 “권익위의 조정도 나오지 않아 (IPA처럼)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라며 “당초 시가 입지를 선택한 만큼, 함께 TF에서 대책을 찾겠다”고 했다.

하천 정비 하세월... 또 물난리 날까 ‘불안한 경기도’ [현장, 그곳&]

“지난 폭우 이후 달라진 게 없어요. 올여름 내릴 비로 또다시 집이 잠길까 봐 밤 잠을 못 이루고 있습니다.” 29일 오전 11시께 양평군 강상면 세월리 세월천 일대. 마을을 끼고 1㎞가량 물길이 나 있는 이곳에선 8개월이 지난 현재도 지난해 발생한 수해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리와 가까운 일부 구간에만 출입 금지 테이프를 허술하게 설치했을 뿐 대부분의 구간엔 제방이 무너져 있었다. 또한 물살에 꺾인듯한 나무와 돌, 쓰레기 등이 뒤엉켜 있는 채 방치돼 있었다. 지난해 장마로 피해를 입었다는 심상진씨(73)는 “지난해에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하천이 범람해 집과 농장을 덮쳤다”며 “제방이 무너지고 마을이 온통 물난리였는데 지금까지 복구가 안되고 있다. 곧 여름이 다가오고 장마가 시작될 텐데 또다시 지난해 악몽이 반복될까 걱정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같은 날 광주와 여주의 하천 상황도 마찬가지. 퇴촌면 관음리의 우산천엔 빗물에 휩쓸린 모래와 돌덩이들이 하천에 쌓여 있었고, 여주시 산북면 상품리의 주어천 역시 제방이 깎여 모래와 흙이 훤히 드러나 있었지만 안전펜스 등 최소한의 임시방편조차 없어 비가 내릴 경우 붕괴의 위험이 있어 보였다.  지난해 수마가 경기지역을 휩쓸고 간 지 8개월이 지났지만 피해를 입은 하천 수해 현장 10곳 중 8곳은 여전히 복구가 더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대형 복구 사업은 아직 계획 단계라 다가올 장마철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여름철 누적 강수량 최대 690㎜의 집중 호우가 내리며 경기지역 하천 635곳에서 재방이 무너지고 하천이 유실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피해 액수만 233억5천633만원에 이른다.  경기도는 예산 1천767억원을 확보해 지난해 10월부터 수해 복구 작업에 들어갔지만 장마철을 3개월가량 앞둔 지금까지 복구가 완료된 곳은 129곳(20%)에 불과한 실정이다. 394곳은 현재 공사를 진행 중이며 105곳은 복구 작업 설계 단계다. 또한 나머지 7곳은 수해를 포함 기본 계획 변경이 필요한 탓에 내년까지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수해 이후 예산 확보가 늦어져 10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현재 위험한 곳을 먼저 응급 복구를 했다”며 “올해 장마철이 다가오기 전인 6월까지 100% 복구 완료를 목표로 신속하게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버려진 폐가·쓰레기 산더미… 인천 도시재생은 커녕 슬럼화 우려 [현장, 그곳&]

“동네에 폐가들이 수년째 버려져 있어 다니기가 무섭습니다. 도시재생은커녕 슬럼화만 부추기는 것 같아요.” 29일 오전 9시반께 인천 미추홀구 도화1동 537의51 수봉마을 도시재생사업지. 한 폐가의 대문에는 ‘수봉마을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복합커뮤니티센터 예정 부지’라는 경고장이 붙어있지만, 담벼락 대부분은 무너져 있고 창문도 모두 깨진 채 버려져 있다. 일부 폐가는 대문마저 열려 있어 누구나 주택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관리가 허술하다. 한쪽 공터에는 의자, TV, 서랍 등 각종 생활쓰레기들이 가득 쌓여있다. 쓰레기들이 오랫동안 버려진 탓에 악취도 심각하다. 심지어 이들 폐가가 있는 곳은 인근 도화초등학교와 불과 10m 거리에 있어 아이들이 등하교 때마다 위태롭게 폐가들 사이를 지나다니기도 한다. 주민 김봉순씨(54)는 “폐가들이 학교 옆에 있어 아이들 대상의 강력 범죄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이어 “이곳에 도시재생을 한다고 알고 있지만 수년째 그대로인 탓에 마을의 슬럼화 문제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남동구 간석동 353의4 아름드림 도시재생사업지에는 동사무소 옛 건물이 수개월간 비어있다. 지난주에서야 구의 해체 허가가 나와 뒤늦게 건물 철거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주민 박경숙씨(65)는 “주민 프로그램과 각종 교육을 위한 센터를 짓는다고 해 기다렸지만 수개월째 하세월이라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인천지역 곳곳의 도시재생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시 및 군·구의 사업 부지 확보 실패 및 LH(한국토지주택공사)의 행복주택 사업 지연 등으로 사업 추진률은 60%대에 머물고 있다. 29일 시 등에 따르면 올해 연말까지 인천지역 도시재생사업 16개의 사업비 집행률은 833억원 중 564억원(66.4%)에 불과하다. 이들 사업은 원도심에 주민 커뮤니티센터와 LH 행복주택 등을 짓고 낡은 집을 수리하는 사업이다. 시는 전체 사업 16개 중 11곳을 올해 안으로 끝낼 계획이지만, 상당수가 계획대로 준공일에 맞추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시는 중구 공감마을, 미추홀구 수봉마을, 남동구 간석1동 아름드림 등 3개 사업은 연말까지 집행률이 50%에도 못 미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당초 사유지의 소유자들과 부지매입 합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대체 부지를 찾느라 사업이 6개월 이상 늦어졌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공사 자재비 급등 등으로 LH가 도시재생사업과 함께 추진할 행복주택의 가구 수를 줄이고 설계용역을 바꾸려다 사업이 예정 준공일을 넘기고 있다. 시는 올해까지 수봉마을에 커뮤니티센터를 준공하려 했지만, 예정 부지의 폐가들을 철거조차 못해 내년까지 사업이 미뤄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간석동 아름드림 사업도 올해까지 커뮤니티센터를 준공할 예정이지만 이제야 철거를  시작해 내년 6월이 넘어서야 준공이 가능하다. 중구 공감마을 사업은 LH가 190가구의 행복주택을 104가구로 줄이면서 설계를 다시 한 탓에 당초 올해였던 예정일을 2년이나 늦은 2025년으로 미뤄놨다. 시 관계자는 “사유지 소유자가 갑자기 부지 매각을 포기하고 LH도 사업을 중단한 탓에 사업이 늦어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최근 각 군·구와의 협의를 통해 추진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활짝 열린 방화문… 火 키우는 ‘안전불감증’ 여전 [현장, 그곳&]

“아파트에 불이라도 나면 어떻게 대피하려고 방화문을 열어두는 지 모르겠어요.” 28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상록구 사동의 한 아파트 2층. 방화문이 활짝 열려 있고, 문 밑에는 커다란 돌이 받쳐져 있어 문을 고정해둔 모습이었다. 방화문은 화재 발생 시 연기와 화염을 차단해 대형 화재를 방지할 수 있도록 항상 닫혀있어야 하지만, 2~5층으로 향하는 모든 방화문은 활짝 열린 채 방치돼 있었다. 또 다른 층 방화문에는 문고리에 노끈과 철사를 묶어 벽에 고정시킨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곳 주민 김순자씨(가명·68·여)는 “누가 그런지 모르겠는데 돌로 문을 고정해 오래전부터 열려있었다”며 “편하게 다니려고 고정을 해둔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날 수원특례시 권선구 호매실동의 한 아파트도 비슷한 모습. 이곳 아파트 1층부터 4층까지의 방화문 틈 사이엔 작은 나뭇조각이 끼워져 열린 채로 고정돼 있었으며 ‘방화문을 닫아야 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년 경기도내 아파트 화재가 7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지만, 도내 아파트 방화문은 활짝 열려 있어 화재 피해 확산 방지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대부분의 주민들이 방화문의 용도를 제대로 모르거나 닫아둬야 한다는 규정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8일 경기도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도내 아파트 화재 발생 건수는 2018년 779건, 2019년 731건, 2020년 790건, 2021년 699건, 2022년 727건이다. 이로 인해 19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38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방화문은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화재가 나면 불길과 유독가스가 다른 층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방화문은 언제나 닫힌 상태를 유지하거나 화재로 연기, 불꽃 등을 감지하면 신속히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여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편의 등을 이유로 방화문을 개방한 채 방치하고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도 소방당국은 방화문을 일일이 관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방 관계자는 “소방점검을 나갈 때 주민들에게 방화문을 닫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홍보도 하고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부분 현장에서 시정 조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 점검 이후 방화문을 다시 열어두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방화문을 열어두면 화재 발생 시 연기와 화염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 질식 등 사고 위험이 높으며 대피도 할 수 없다”며 “불법임을 알려주는 문구를 정확히 적어 방화문 옆에 부착하는 등 주민들에게 홍보와 계도를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화마가 앗아간 ‘코리안 드림’... 안산 나이지리아 4남매 숨져 [현장, 그곳&]

“이미 1차례 위기를 넘겨 여기까지 왔는데…또 다시 이런 비극이..” 27일 오전 3시28분께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나이지리아 국적의 어린이 4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이들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께 고대안산병원. 이번 화재로 세상을 떠난 나이지리아 국적 아이들의 부모  A씨(55)와 B씨(41), 막내 아이인 1세 여아가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엄마인 B씨는 화마 속에 아이들을 두고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허망한 표정으로 말없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화재 사고의 사망자는 11·4세 여아와 7·6세 남아로 A씨와 B씨의 자녀들이다. 거실에서 불길을 발견한 이들 부부는 막내를 대피시켰으나 다른 자녀들은 미처 구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불은 출입문 부근 벽면 콘센트와 연결된 멀티탭에서 시작된 걸로 확인됐다.  이들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동안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나이지리아 친구 린씨(45·여)는 “(11세 여아는) 참 똑똑하고 동생들을 잘 보는 착한 아이였다”며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는데 밝고 당찼다. 그런데 어쩌다가…”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지인 등에 따르면 A씨 부부는 지난 2009년 ‘코리안 드림’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타지 생활은 생각보다 가혹했다. 남편 A씨(55)는 오디오, 중고차 등 고물과 헌옷 등을 수거해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을 하는 등 밤낮 없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일곱 식구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처럼 고된 생활이 이어졌지만 A씨 부부는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희망을 잃지 않고 다섯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을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A씨 자녀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화마 사고는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021년, 이미 A씨 가족은 화재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아픔을 경험했다. 이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거처를 옮긴 이 곳에서 또다시 동일한 비극이 이어진 것으로 확인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A씨의 친구 마이클씨(58)는 “전에도 집에서 불이 나 아이가 다쳐 이곳으로 이사 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버텨온 이들에게  이 같은 불행이 다시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가혹하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울먹였다. 같은 날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의 모습은 처참했다. 불이 났던 빌라는 1층에서 3층까지의 외벽과 계단은 불길에 잠식돼 있었던 듯 새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또한 화재가 난 2층 세대 안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거나 녹아있었으며 바닥엔 깨진 유리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어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이곳 주민들 역시 당시 상황은 참혹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곳 주민 이금자씨(73·여)는 “새벽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와보니 불길이 치솟아 있었다”며 “누군가가 외국어로 ‘불이야’라고 말하는 듯 계속 소리쳤다. 소방차가 이미 와 있어서 아이들이 모두 대피한 줄 알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해 사망자들에 대한 부검을 의뢰할 계획이다.  한편 나이지리아 대사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이날 오후에 화재 현장과 유가족이 있는 병원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다. 안산다문화교회, 안산 나이지리아 공동체 등은 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들 가족의 장례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4년 만에 마스크 없는 봄…여행·의류업계 기대만발

“엔데믹 이후 첫 봄인 만큼 오랜만에 가족 여행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오는 손님들도 많고…앞으로 매출이 더 늘어날 것 같아 기대가 큽니다.” 4년 만에 마스크 없는 봄을 맞이해 관련 상품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의류 및 여행업계가 ‘엔데믹 특수’를 위해 다양한 상품을 내놓는 등 기분 좋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26일 수원특례시 권선구의 롯데백화점. 백화점 내 스포츠·아웃도어 브랜드 매장에는 노랑·하늘·분홍색 등 산뜻한 색감의 겉옷과 바지는 물론 등산화나 캠핑용품이 진열돼 있었다. 연인부터 가족 단위 고객들까지 손님 약 10명은 세심하게 옷을 고르는 모습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매장을 찾은 30대 김유경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걱정에 여행 다니길 꺼렸는데, 올해는 더 자유롭게 놀러 다니려 한다”며 “다음 주 가족끼리 오랜만에 벚꽃을 보러 나들이를 가는데, 그 때 입을 겉옷을 사러 왔다”고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이날 용인특레시 수지구의 신세계백화점도 꽃 놀이와 등산에 앞서 쇼핑을 하러 온 손님들로 붐볐다. 다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방문한 젊은 부부 등 손님들의 얼굴에선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백화점 내 입점한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매장 역시 이번 달 매출이 전년 보다 15% 가까이 증가했다. 해당 매장 관계자는 “거리두기가 본격 해제되며 손님들이 이제는 여행지를 먼저 이야기하고 옷을 추천 받기도 한다”며 “제주도는 물론 해외여행을 가는 손님들도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홈쇼핑 업계도 봄을 맞아 외출 수요가 늘어나, 맞춤형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롯데홈쇼핑의 경우 지난달 가디건, 원피스 등 외출복 주문량은 30% 증가했고, 색조 화장품 등 뷰티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아무래도 마스크 없는 첫 봄인 만큼 외출 수요가 커져 패션이나 뷰티 쪽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행 업계 역시 봄 여행 수요에 즉각 반응하고 있다. 지난 25일 진해 군항제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벚꽃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고, 국내 여행 전문 여행사인 ‘하늘투어’ 역시 봄꽃 여행 시즌을 맞아 하동 쌍계사 십리 벚꽃길·화개장터 당일 코레일 기차여행 패키지, 경주 벚꽃축제 국내 당일치기 버스여행 등 상품을 내놨다. GS홈쇼핑에선 구례 섬진강 벚꽃 기차여행 상품을 출시하는 등 관련 상품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시민들 역시 봄 여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여행·여가 플랫폼 ‘여기어때’가 ‘봄꽃 여행 계획’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6.2%가 국내 봄꽃 여행을 가겠다고 밝혔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올해 전국 벚꽃 축제는 코로나 이후 4년 만에 본격적으로 재개되는 것이다.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벚꽃 축제가 차례로 개최돼 상춘객들의 기대감을 더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심 속 고철 덩어리 ‘방치 차량’… 지자체 ‘골칫거리’ [현장, 그곳&]

“폐차 직전의 차가 몇 개월 동안 골목 주차 공간을 차지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23일 오전 10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의 한 골목. 보닛이 들려 엔진이 훤히 보이는 파란색 승용차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자동차 표면은 희뿌연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타이어 휠은 갈색으로 녹슬어 있었다. 인근 주민 박경미씨(54·여)는 “몇 개월 전부터 이곳에 계속 차가 방치돼 있다”며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어 주차 공간을 두고 매일 전쟁 중인데, 왜 견인을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같은 날 오후 1시께 오산시 경기대로에도 버려진 차량이 눈에 띄었다. 회색 차량 위에는 먼지와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었고 각종 생활 쓰레기와 고철 등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이곳 근처에서 500여m 떨어진 곳에 방치된 트럭 한 대도 녹이 슬어 고철 덩어리로 변한지 오래였다.  경기도내 주택 밀집 지역과 도로변 곳곳에 장기간 방치된 차량들이 주민들의 주차 공간까지 침범하고 있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경기도와 일선 시군 등에 따르면 최근 4년간 도내 무단 방치 차량으로 접수된 민원은 총 4만8천여건으로, 연평균 1만2천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19년 1만2천30건, 2020년 1만1천599건, 2021년 1만2천595건, 2022년 1만1천857건으로 꾸준하다. 자동차관리법에서는 차량을 타인의 토지나 도로에 2개월 이상 방치하면 강제로 폐차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민원을 접수한 지자체의 처리 기간이 지연되면서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민원 발생 즉시 차량을 견인하는 대신 자진 처리를 유도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방치 차량의 훼손도가 심하거나 번호판이 없어 차주를 찾지 못할 경우 처리 기간은 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지자체는 무단 방치 차량도 사유 재산인 만큼 소유주의 재산권 등을 존중해 경고장 스티커를 부착하고, 자진 처리안내문을 발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무단 방치 차량을 처리하려면 주민 불편 신고 시점부터 평균 6개월 이상이 소요된다”며 “신고가 들어오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민원이 접수되면 자동차의 소유자가 차량 관리를 완전히 포기한 차인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무단 방치 빈도가 높은 곳을 중점적으로 현장 조사하겠다”고 해명했다.

해빙기 도로 곳곳 지뢰밭… ‘포트홀’ 안전 위협 [현장, 그곳&]

“운전 중 큰 사고가 날 뻔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22일 오전 수원특례시 세류동 세류사거리 인근 도로 표면엔 길이 1m, 폭 50cm 크기의 포트홀이 연이어 발생해 있었다. 매끄러운 주변 도로와 달리 포트홀의 표면은 다 벗겨져 있었고 이곳을 지나는 자동차들은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차체가 위아래로 흔들리기도 했다. 주행하던 차가 포트홀을 피하려다 옆 차선의 차와 부딪힐 뻔한 아슬아슬한 장면도 포착됐다. 이 도로에서는 지난 17일 포트홀 위를 지나다 자동차의 타이어가 찢어지고 휠이 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차주 김동호씨는 “도로를 지나는데 굉음과 함께 차가 크게 흔들리며 동승자가 차 유리에 머리를 부딪혔다”며 “그 길은 화물차나 버스 등 대형차도 많이 다녀 안전에 더욱 유의해야 하는데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같은 날 안양시도 상황은 마찬가지. 평촌공원 인근 도로에는 포트홀을 보수한 땜질 주위로 또다시 손가락 두 마디 깊이 만큼 도로가 움푹 패어 있었다. 안양에서 의왕으로 가는 방향의 경수대로 역시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포트홀부터 지름 30cm가 넘는 포트홀 등 도로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다. 포트홀 주위로 도로가 거미줄 모양으로 갈라져 있기도 했다. 해빙기를 맞아 도내 도로 곳곳에 포트홀이 늘어나면서 운전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접수된 포트홀 발생 건수는 2020년 6만8천78건, 2021년 6만8천950건, 2022년 6만6천223건으로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6만7천여건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작은 포트홀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주기적인 유지·보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포트홀은 도로 위 지뢰와 같다. 자동차 바퀴가 빠지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오래되거나 품질이 안 좋은 도로에는 해빙기와 장마철에 포트홀이 생길 수밖에 없어 지자체의 꾸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 관계자는 “도가 관리하는 도로는 신고가 들어오면 곧바로 보수하고 있고 ‘도로 모니터링단’ 운영 및 도에서 발주하는 아스팔트는 공사 시 동영상 촬영을 의무화해 포트홀 원인 중 하나인 부실 공사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도 시군과 협력해 도민의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년 전 ‘죽음의 호수’처럼… 안산 시화호 검붉은 물 ‘줄줄’ [현장, 그곳&]

“시화호가 ‘생명의 호수’로 살아난 뒤 이처럼 검붉은 색 물이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21일 오전 8시50분께 안산시 상록구 사동 시화호 상류지역은 마치 검붉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았다. 이곳에서 만난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69)는 참담한 심정으로 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라는 오명을 받고 있을 당시의 색깔과 비슷해서다. 앞서 지난 17일 오후 안산갈대습지 장전보에서 하류 방면 500~600m가량 시화호 쪽으로 내려간 지점에서 처음 목격된 검붉은 색의 물은 5일이 지난 현재 시화호와 안산천이 합류하는 시화호 방향으로 3㎞가량 떨어진 하류 지점까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조력발전소 운영으로 시화호 내 물이 이동하면서 간장 빛깔의 물이 시화호 상·하류를 왔다 갔다 하면서 확산은 더 빨라지는 모양새다. 사정은 이런데도 안산시와 한국수자원공사(K-water)는 관리 책임을 서로 전가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환경단체 관계자들은 지난해 10월 시화호 상류 반월·동화·삼화천 인근서 이뤄지는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공사현장으로부터 발생한 모래와 흙 등이 빗물을 타고 시화호 상류로 유입된 것을 이 같은 현상의 주원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이곳에 유입된 모래 등 토사가 시화호 상류 2~3㎞가량의 갯벌을 70㎝ 두께로 뒤덮으면서 갯벌에서 서식하는 갯지렁이와 패류 등 수생생물들이 폐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시화호 상류에서 유입되는 물은 상대적으로 적어지고 여기에 다양한 부유물의 유입은 되레 많아진 데다 최근 온도가 높아지면서 오염 현상이 가속화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종인씨는 “지난해 10월 시화호 상류에 유입된 토사로 간척지가 썩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그동안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탓도 있다”며 “이렇게 시화호의 생태계가 주변 환경으로 급속도로 오염되면 시화호 상류는 물론 시화호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시화호가 더 망가지기 전에 시화호 유역 지자체들이 개발사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협의체 구성 등을 모색해야 한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K-water 관계자는 “검붉은 물이 발생한 지역은 공유수면으로 안산시가 위탁 관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안산시 관계자는 “갈대습지 인근에 설치된 장전보 하류는 시화호에 속하는 곳으로 K-water가 관리하는 지역”이라며 “점용에 대한 권한이 K-water에 있어 K-water가 관리하는 게 맞다”며 “갈대습지 및 경기가든에서 발생한 것으로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나 원인 파악을 위해 드론을 활용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해명했다.

돼지열병 확산 막아라... 포천 방역 '비상' [현장, 그곳&]

“매일 두 번씩 소독하고 관리도 철저히 했는데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해 답답할 따름입니다.” 20일 오후 2시20분께 포천시 영중면 영송리 A농장. 방역초소 2곳을 지나야 겨우 접근이 가능한 이곳 농장에는 왕래하는 인적도 없고 차단방역을 위해 파견된 가축위생방역 지원본부 방역사들만 출입구를 막고 통제하고 있었다. 농장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하얀 생석회가 무수히 깔려있었고, 77곳에 달하는 인근 농장으로의 전파를 막으려는 포천시 축산 담당 공무원들의 소독과 인원 통제 손길만 분주하게 오갔다.  농장에 도착하자 주변을 빙 둘러 설치한 펜스가 삭막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겹겹이 둘러져 있는 펜스 안에서는 조사관들이 발생 원인을 찾기 위한 활동과 함께 살처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날 ASF 발생 통보를 받은 장영규 대표(67)는 하염없이 하늘만 올려다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당 농장에선 돼지 1만2천842마리를 사육 중이다. 이 중 50마리가 폐사해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 정밀검사를 시행한 결과 ASF가 확인됐다. 장 대표는 “방역에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우리 농장에서 ASF가 나왔는지 모르겠다”며 “자식처럼 키웠는데”라고 말을 잇지 못하며 망연자실해 했다.  이 농장을 오가며 일했다는 축분차 운행기사 강종훈씨(63)도 출입이 통제된 A농장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성였다. 그는 “당장 농장 일을 하지 못해 생계가 막막하다”고 털어놨다. 해당 농장에는 현재 직원 14명이 근무하고 있고 인근에 근로자들의 숙소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외부에 있는 근로자들은 농장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농장 안에 있던 일부 근로자들은 식사를 외부에서 공급받는 등 격리된 상태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ASF 확산 방지를 위해 해당 농장에 초동방역팀과 역학조사반을 파견해 농장 출입을 통제하고 소독과 역학조사 등 긴급방역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또 전파 차단을 위해 이날 오전 5시부터 22일 오전 5시까지 48시간 경기·인천과 강원 철원지역 양돈농장 및 도축장, 사료공장 등 축산 관계 시설 종사자와 차량에 대해 일시이동중지명령(Standstill)을 내렸다. 중수본은 해당 농장에서 사육 중인 돼지는 긴급행동지침 등에 따라 살처분할 예정이다. 한편 지난 1월5일 포천의 한 농장에서 올해 처음으로 ASF가 발생했고 강원 철원(1월11일), 김포(1월22일), 강원 양양(2월11일) 등지에서 각각 ASF 확진 사례가 나온 데 이어 이날 다시 포천에서 ASF가 확인됐다.

3년 버릇, 여든 간다… 마스크 못 벗긴 ‘습관’ [현장, 그곳&]

20일부터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지만 경기지역 대다수의 시민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쉽게 벗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일부 시민들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버스나 지하철에 오르기도 했지만 마스크를 쓰는 것이 습관화됐고 밀집 지역에서의 감염 우려 때문에 ‘노마스크’를 주저하는 분위기다.  20일 오전 8시30분께 수원특례시와 안산, 인천시를 오가는 어천역. 20여명의 시민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 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지하철 문이 열리고 빈틈 없이 지하철 자리가 채워져 있었지만 마스크를 벗은 시민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전동차 두 칸에 시민 50여명 가운데 마스크를 벗은 승객은 딱 2명이었다.  수원에서 안산까지 출퇴근을 한다는 김한수씨(38)는 “마스크를 쓰는 것이 습관이 돼서 아직은 벗는 게 더 어색하다”며 “미세먼지도 그렇고 집에 아이도 있어 아직까지는 출퇴근 시간에 마스크를 써야 안심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뿐만 아니라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벗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원에서 서울까지 가는 7770번 버스에서는 모든 승객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였다. 의왕으로 출퇴근 하는 이현주씨(28·여)는 “버스에서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첫 날이라 마스크 없이 버스에 타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조금 민망해 다시 마스크를 썼다”며 “아직 언제 어디서 감염될 지 모르니 당분간 쓰고 다닐 예정”이라고 전했다.  인천지역의 대형시설과 대중교통 승강장의 모습도 비슷했다. 인천터미널 앞 택시 정류장에서는 여전히 많은 승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로 택시에 올라탔다. 인천 남동구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마트와 마트 내 약국을 이용하고 있었다. 김창희씨(72)는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너무 아팠던 기억이 있다”며 “이젠 감기조차도 걸리기 싫어서 마스크를 벗으라고 해도 안 벗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마스크에서 자유로워진 시민들은 홀가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화성에서 용인으로 학교를 다닌다는 유재훈씨(25)는 “왕복 2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등교를 하는데 마스크를 오랫동안 쓰고 있어서 너무 답답하고 불편했다”며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 괜히 눈치도 보이고 어색하지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편하다”고 웃어 보였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대중교통 마스크 의무 해제 시기가 적절하다고 본다”면서도 “대중교통에서 코로나19 감염 위험, 미세먼지 때문에 시민들도 당분간 쉽게 마스크를 벗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편 이날부터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교통과 마트, 역사 등 대형시설 내 개방형 약국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대중교통에서의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는 지난 2020년 10월 이후 약 2년5개월 만이다.

파리만 날리는 시흥 '아쿠아펫랜드' [현장, 그곳&]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질 않습니다.” 18일 오후 2시께 시흥시 정왕동 소재 아쿠아펫랜드. 이곳에서 만난 부동산업계 관계자 A씨(56)가 해당 건물 1층 내 텅빈 상가를 가리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지적처럼 공인중개사 사무실과 내부공간 공사인력 일부를 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인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쿠아펫랜드는 총 사업비 900억원 중 보조사업으로 국·도비 포함 150억원이 투입돼 연면적 6만3천563㎡(지상 5층, 지하1층), 보조동(지상 4층, 지하 1층) 등이 지난해 10월 준공됐으며, 다음달 개관할 예정이다. 향후 관상어산업 지원동, 근린생활시설, 판매시설 등으로 운영된다. 해당 건물은 앞서 지난해 10월 임병택 시흥시장을 비롯해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염태영 경기도 경제부지사 등 정부·경기도 관계자, 관상어산업협회, 신세계건설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식을 갖고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당시 시는 아쿠아펫랜드 조성으로 연간 116억원의 수입대체 효과와 연간 250만명의 방문객이 다녀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런 가운데 다음 달 아쿠아펫랜드 개관을 목표로 내부공사가 한창이지만 근린생활시설로 분양한 4개동 1층은 90% 이상 비어 있다.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입주가 시작됐지만 1층 상가는 입주가 전무한 실정이다. 상가가 활성화되려면 족히 수년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업시설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수분양자 B씨는 “계약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계약금을 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아쿠아펫랜드 관계자는 “현재까지 점포 20여곳에 대한 계약 포기 물량을 받았다. 기존에 들어간 홍보비 등 비용이 있어 계약금은 당연히 위약금으로 귀속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지면서 계약 포기 민원이 많은 건 사실”이라며 “민원 해소를 위해 노력 중이지만 현실적으로 아직 뚜렷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소화기 없고 켜진 고데기 방치… 火 부르는 ‘무인점포’ [현장, 그곳&]

“무인점포인데 소화기도 없다니…불이라도 나면 대형 화재로 번질 것 같아 불안합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께 의왕시 삼동의 한 셀프빨래방.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는 이곳에선 대형세탁기와 건조기 10대가 24시간 가동되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적정량보다 많은 세탁물은 건조 시 타버릴 수 있다’는 주의사항이 붙어 있었지만, 매장 어디에도 소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이진우씨(27)는 “셀프빨래방을 자주 이용했지만, 소화기가 없다는 것은 몰랐다”며 “세탁기에 라이터라도 잘못 들어가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냐”고 우려했다. 같은 날 오후 1시께 수원특례시 팔달구 효원로. 400여m 길 위에는 무인 사진관이 9곳이나 들어서 있었다. 16㎡(약 5평) 남짓한 공간에는 가발과 털모자 등 불에 잘 타는 촬영 용품이 가득했고 머리단장용 고데기가 켜진 채 방치돼 있었다. 더욱이 근처 무인 사진관 모두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고 소화기가 없는 곳도 상당수였다. 비대면 소비문화 확산 등으로 급속하게 늘어나는 무인점포가 화재 예방에 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인세탁소와 무인 사진관 등은 별도의 소방시설 설치 규정이 없기 때문인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18일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상위 6개 사업자의 무인세탁소 가맹점 수는 2016년 3천86개에서 2020년 4천252개로 약 38% 증가했다. 또한 KB국민카드가 발표한 소비트렌드를 보면 지난해 신규 무인 사진관 비중은 전년 대비 54% 늘었다. 현행 다중이용업소법에 따르면 다중이용시설은 소화기와 경보장치 등의 화재 예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며 안전시설 정기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무인세탁소와 무인 사진관 등 무인점포는 다중이용시설에 포함돼 있지 않아 현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며 소방법 적용도 받지 않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무인점포가 화재 위험성이 높은 만큼 소방시설 설치 등으로 화재·안전사고에 대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무인점포 영업주 모두에게 소방안전교육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며 “무인점포는 24시간 운영되는 곳이 많고, 손님이 없을 때 화재가 발생할 수 있어 자동식 소화설비인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도내 10종 무인점포를 대상으로 현황조사 및 화재위험평가를 진행하고 있다”며 “전수조사 결과상 화재 안전 등급이 낮은 무인점포는 주기적으로 안전 점검을 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인천, 새벽마다 집 앞서 '공회전'...잠 설치는 주택가 [현장, 그곳&]

“새벽마다 집 앞에 불법으로 밤샘주차 된 트럭들이 공회전을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15일 오전 4시께 인천 연수구 옥련동 한 아파트 인근 도로. 도로 3차선은 10여대의 대형 화물차들이 빼곡히 불법 주차돼 있는 상태였다. 이 화물차들과 아파트의 거리는 고작 10m 정도로 가까운 거리. 새벽에는 운전사들이 화물차를 몰고 나가기 전에 10여분간 시동을 걸어 공회전을 한다. 이 때문에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같이 소음과 매연에 시달리며 강제 기상을 하기가 일쑤다. 또 이른 저녁부터 밤샘 주차 중인 화물차들은 시야를 가려 주민들의 버스 승차도 어렵게 하고 있다.  주민 이옥순씨(85)는 “새벽마다 화물차 때문에 잠을 깨곤 해 괴롭다”며 “주택가에 화물차를 주차하지 못하도록 전용 주차장을 멀리 만들어 주던가 대책을 세워달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같은 날 새벽 남동구 논현동 남동근린공원 인근 도로 상황도 마찬가지. 공원 옆 도로에는 화물차 22대, 특수차량 4대가 늘어서 있었다. 건너편 도로에도 12대의 트럭이 긴 줄을 만든 채 일렬종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주민 나경연씨(43)는 “아이들도 다니는 길인데 화물차들 때문에 불안하다”며 “주택가 도로가 화물차 주차장으로 둔갑돼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지역 주택가 도로가 대형 화물차들의 밤샘 차고지로 활용되며 이에 따른 피해가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지역 등록 화물차는 총 3만3천633대다. 그러나 화물차 주차공간은 공영차고지 3곳(540면), 공영주차장 17곳(2천134면), 민영주차장 22곳(2천86면) 등 모두 5천560면에 불과하다. 등록 화물차 대비 주차공간은 16.5%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해마다 화물차 불법주차 단속 건수도 4천~5천건에 이른다.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는 화물차는 차고지 등 정해진 곳에서만 밤샘주차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화물차가 자정 12시부터 오전 4시까지 1시간 이상 차고지 아닌 곳에 주차할 경우 5일간 운행정지 또는 5만~2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다. 1.5t 이상의 화물차를 등록하려면 차고지를 증명해야 하지만, 대부분 먼 곳 차고지로 등록하고는 주택가 도로 등에서 불법 밤샘 주차를 하는 것이다.  조정재 화물연대 인천본부 사무국장은 “차고지가 너무 없어 불가피하게 불법 주차를 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이 같은 불법 주차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하루 빨리 화물차 주차 공간을 확보해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 관계자는 “일부 지역에 화물차 주차장 조성이 계획돼 있지만 주민 반대로 늦춰지고 있다”며 “하루 빨리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해명했다. 

“선거철마다 한숨만 나와요” 이동약자 문턱 높은 투표소 [현장, 그곳&]

“선거철마다 투표 장소를 확인하면 한숨만 나옵니다.” 14일 선거 때마다 투표소로 쓰였던 용인특례시 기흥구의 한 대학교. 정문에서 가파른 언덕을 200여m 올라가니 투표소로 쓰였던 건물이 있었다. 건물 입구에서 계단 수십 개를 올라 2층에 도착하고 나서야 투표소로 쓰였던 장소가 보였다. 20년 전 척추 장애 판정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임지숙씨(가명·84·용인시)는 “승강기도 없는 건물인데 1층이 아닌 다른 층에 투표소를 설치하는 것은 이동약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결정”이라고 토로했다. 투표소가 지하 1층에 설치돼 있었던 수원특례시 권선구의 한 행정복지센터도 상황은 비슷했다. 정문 입구에 있는 경사로는 휠체어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비좁았고 건물 내부에는 승강기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고령자·장애인 등 이동약자의 접근 편의성을 고려하지 않은 투표소가 도내에 50곳 가까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나 평등하게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는 투표에서 이동약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투표소 접근 편의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제20대 대통령선거(2022년 3월9일)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2년 6월1일) 당시 도내 ‘지하 또는 2층 이상 승강기 미설치된 곳’의 투표소는 각각 42곳과 47곳에 달했다.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라 투표소는 이동약자의 접근 편의성이 확보된 곳에 설치돼야 하나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해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예외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투표소의 접근성 개선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다. 더욱이 한번 설치된 투표소는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설치 장소가 변경되지 않기 때문에 이동약자들은 매번 선거때마다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경기도 선관위 관계자는 “이동약자의 편의성 개선을 위해 대형기표대 설치나 높이조절 기표판 부착 등을 하고 있다”며 “답사 등을 통해 장소를 추가로 확보하고, 더 많은 곳에서 이동약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투표 참정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투표소 장소 확정 공고는 통상 각 지역의 선관위를 통해 투표 10일 전 공고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소는 내년 3월 말께 확정돼 공고될 예정이다.

몰라서 못 누린 세탁서비스... 지원 예산도 ‘턱없이 부족’ [현장, 그곳&]

“세탁서비스요? 처음 들어봅니다.” 12일 오전 10시께 인천 동구 만석동의 한 쪽방촌. 안면장애와 지체장애를 동시에 앓고 있는 조명옥씨(75) 방 한켠에 겨울철 묵은 빨래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곳 쪽방촌에는 공용세탁기가 있긴 하지만 빈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그마저도 조씨는 몸이 불편해 쓰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씨는 “특히 두꺼운 이불이나 겨울 옷은 잘 마르지도 않아 세탁을 미룬다”며 “인천시에서 (세탁서비스라는 걸)문자로라도 알려줬으면 진작에 이용했을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같은 날 남동구 구월동의 한 원룸에 사는 이영내씨(77)도 마찬가지. 당뇨와 뇌경색을 앓고 있는 이씨는 “직접 빨래하기가 어려워 대부분 그냥 쌓아두고 다시 입는다”고 말했다. 기초수급자,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인천시의 ‘찾아가는 세탁서비스’가 겉돌고 있다. 대상자들 대부분이 서비스를 알지 못하는 데다 관련 예산도 턱없이 부족해서다.  시는 지난 2018년부터 인천지역 취약계층의 세탁물을 직접 수거해 세탁한 뒤 배송하는 ‘찾아가는 세탁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은 탓에 이용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 서비스 대상 가구 8만3천603가구 중 세탁서비스를 이용한 가구는 3천372가구(4.03%)에 그쳤다.  반면 세탁서비스 대상이 되는 취약계층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1년 7만8천850가구이던 서비스 대상 가구는 지난해 8만3천603가구로 늘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도 시는 더 많은 취약계층에게 서비스를 알리기는커녕, 4년째 약 4천가구에만 세탁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예산을 유지하고 있다. 세탁서비스 예산은 2020년 2억6천만원, 2021년 3억원, 2022년 3억원, 올해 3억1천만원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세탁 서비스로 외부 접촉을 늘리고, 복지사각지대에 처한 취약계층도 찾을 수 있다”며 “지자체가 홍보를 강화하고 사회적 기업과 연계해 서비스 대상을 늘리는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서비스 신청자 수가 매년 비슷해 예산을 유지한 것”이라며 “복지기관과 연계해 서비스를 널리 알려 신청률을 높인 뒤 예산 증액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안전장치 없는 환기구 위로… 인천시 ‘위험한 통행’ [현장, 그곳&]

“별 생각없이 걷다가 아래로 수십미터가 뚫린 환기구 위에 서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10일 오전 11시께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한 인도. 보행자가 많이 지나다니는 이 곳엔 인도와 같은 높이인 환기구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그대로 노출해 있었다. 고작 환기구 각 모서리에 시선유도봉 만 설치해놓은 탓에 시민들은 무심코 환기구 위를 걸어다녔다. 이 곳 환기구는 철망 아래로 30m 깊이로 뚫려 있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 우지현씨(69)는 “무심코 환기구 위를 지나다니는 시민들이 많지만 이를 제지할 제대로 된 장치는 없다”며 “낙상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가 시급해 보인다”고 불안해 했다. 같은 날 부평구 부평동의 한 인도도 마찬가지.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는 환기구 위로 시민들이 통행하고 있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밖에서 환기구 위로 다니는 사람을 보고 위험하니 옆으로 비켜가라고도 한다”며 “가끔 환기구 추락사고 뉴스를 접하면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불안하다”고 걱정했다. 인천 인도 곳곳에 안전장치가 미흡한 환기구가 남아 있어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의 설비기준 등에 관한 규칙’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환기구는 바닥으로부터 2m 이상의 높이에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덮개 등 추락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인천에는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은 환기구가 그대로 방치해 있다. 이 규정은 2015년 이후에 설치된 환기구에만 적용되는 탓에 지자체들이 사실상 관리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천시와 인천 군·구 등은 환기구 안전장치 설치 여부는 물론, 환기구 수 등 현황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주민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시선유도봉 등 임시방편으로 조치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환기구 추락 사고는 큰 인명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2015년 이전에 설치한 환기구에 대해서도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0년 10월22일 중구 을왕동의 한 공사장에서는 노동자가 환기구 아래로 떨어져 목과 다리를 크게 다쳤다. 또 지난해 9월 부산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철거 작업을 하던 작업자가 환기구 아래로 추락해 숨지기도 했다. 조흠학 인제대학교 보건안전공학 교수는 “환기구의 깊이는 20~30m로 추락하면 발견도 구조도 어렵다”며 “지자체에서 임시방편이 아닌 보행자 접근을 차단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동구 관계자는 “관계기관과 안전을 보완할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부평구 관계자도 “시민 불편이 있다면 현장 점검을 나가 조치하겠다”고 해명했다.

‘생태계 보고’ 육지화 가속, 안산 갈대습지가 사라진다 [현장, 그곳&]

“시화호를 되살린 안산갈대습지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해 말라버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시화호의 수질 오염을 개선하기 위해 조성한 안산갈대습지가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한 채 육지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현상은 시화호의 환경 오염 우려는 물론 멸종생물의 서식 활동도 위협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8일 오전 10시30분께 안산시 상록구 안산갈대습지의 저습지 지역. 습지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의 양이 줄어들어 있었다. 또한 습지 안에는 2~3m까지 무성히 자란 갈대 등 습지식물과 토사물 등 부유물이 빽빽하게 쌓인 채 방치돼 있었다. 이곳의 수위는 지난해보다 약 60㎝ 줄어들었으며 이 같은 현상은 저습지 4~5곳과 고습지 3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갈대습지엔 멸종위기 동물인 수달과 수상식물 290종, 철새 15만마리 등이 서식 중이어서 이들 생물에 대한 서식지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매일 17마리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수달은 올해 1~2마리만 겨우 발견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이날 안산시에 따르면 안산갈대습지는 정부의 시화호 수질개선 종합관리대책에 따라 시화호 상류 지천을 통해 유입되는 오염수를 자연정화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1997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화호 상류 103㎡ 면적에 사업비 268억원을 들여 완공, 2002년 5월 개장했다. 이후 2014년 4월 관리 주체가 안산시와 화성시로 이관됐으며 안산시의 경우 2020년 안산환경재단에 관리를 위탁했다. 안산시와 화성시를 지나는 반월천·동화천·삼화천의 물이 이 갈대습지를 거친 뒤 시화호로 유입되고 있다.  환경전문가들은 이같이 습지 안에서 갈대 등의 습지식물이 무분별하게 자라고 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점을 육지화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시화호 지킴이 최종인씨는 “갈대습지의 물이 빠져나가 수위가 점점 낮아지고 부유물이 쌓인 채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며 “계속해서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습지의 제기능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어렵게 자리 잡은 수달과 저어새 등 멸종위기 동물들도 서식활동에 위협을 받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산시 관계자는 “겨울철에 하천에 물이 얼어있고 수문을 가동하기 어려워 매년 봄철이면 수위가 낮아지곤 한다”며 “현재 환경재단과 함께 수위를 높이기 위해 용수를 공급을 하고 있으며 갈대는 한 번에 제거할 수 없어 순차적으로 제거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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