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가득한 숲길을 걸으니 행복하다. 보랏빛 산수국을 비롯한 여름꽃이 봄꽃보다 다양하고 화려하다. 용인시 백암면 비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한택식물원 전망대에 올라선다. 눈앞에 펼쳐지는 식물원의 탁 트인 풍경은 더위를 잊게 할 만큼 시원하다. 한택식물원(원장 이택주)은 규모는 물론이고 내용에서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세계적인 식물원이다. 1만여종의 식물과 34개의 주제원을 갖춘 한택식물원은 산림청이 지정한 ‘국가 희귀·특산식물 보전기관’이자 ‘산림유전자원 관리기관’이다. 또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이며 ‘생물다양성 관리기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라 전체에 식물원 하나 없던 1970년대에 한 개인이 뜻을 세우고 시작한 사립 식물원이란 사실이다. 한택식물원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 끼친 선한 영향력이 상당하다. “한택식물원은 희귀 멸종위기 식물의 대량 번식과 자생지 복원, 신품종 개발, 우리 꽃 화단을 조성하는 등 다양한 사업을 펼쳐 왔습니다.” 27년째 한택식물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강정화 이사의 목소리에 긍지와 자부심이 느껴진다. 식물원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전문가답게 그의 발걸음이 가볍고 날렵하다. ■ 감탄하며 만나는 희귀한 풀과 나무 “식물원의 역할은 그 식물원이 위치한 기후대에 적응할 수 있는 전 세계의 식물종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며 기본종을 비롯한 다른 기후대의 식물종 확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식물원을 평가할 때 얼마나 많은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큐 왕립식물원’은 전 세계 식물 2만5천여종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가 식물을 가장 많이 보유했을까. 영국 4만5천점, 독일 5만점, 미국 6만점이다. 그렇다면 한택식물원은 얼마나 보유하고 있을까. “한택식물원에 9천700여종이 있는데 이 가운데 자생식물은 2천400여종이고 외래식물은 7천300여종입니다.” 물론 이 식물들은 쓰임이 많은 유용한 종이다. 한택식물원 연구소의 활약이 특히 주목된다. 울릉도 고추냉이 자생지 복원, 대관령 용평리조트내 자생식물 50만본 식재, 경남 진양·경북 구미 자연학습원 조성 지원, 설악산 설악눈주목 복원, 설악산 솜다리 복원, 주왕산 둥근잎꿩의비름 자생지 복원, 두타산·봉화산 깽깽이풀 자생지 복원, 강원도 정선 노랑무늬붓꽃 자생지 복원, 대청부채 자생지 대체복원, 우리꽃화단조성사업, 히어리 자생지 복원, 미선나무 자생지 대체복원, 나도승마 자생지 대체복원으로 이어졌다. 환경부와 함께 ‘우리땅 생명문화 지키기 운동’을 전개하고 어린이에게 ‘우리꽃 보내기 운동’(전국 초등학교 1천개교 자생식물 10만본 배포)을 벌였다. 살림에 유익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사업은 보존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동안 한택조개나물, 노랑무늬참빗살나무, 작은노루오줌 등 50여품종을 개발했습니다.” 우리 땅에 자라는 자생식물을 채소로 개량하거나 약용식물을 개발하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니 흥미롭다. 한택식물원의 연구 활동은 농가의 수익 확대 및 유전 자원으로서의 미래가치를 키우는 사업까지 뻗어 있다. “자생식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를 만들어 배포하기도 합니다.” 한택식물원이 국내 식물연구의 중심에 서기까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을 쏟았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 자연을 배우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숲속 학교 깨끗한 자연을 배경으로 조성한 한택식물원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주변 환경을 관리해 반딧불이와 가재를 볼 수 있는 청정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생태와 환경교육에 정성을 쏟고 있다. 전문가의 안내로 안전하고 즐겁게 체험하는 것이 한택식물원의 강점이다. “생명의 가치와 식물자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숲을 교육하고 성인을 대상으로 조경 기술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실행하는 프로그램은 전문성을 갖춘 ‘청소년수련활동인증 프로그램’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탐정놀이형’은 책에서 보던 식물을 실제로 만나는 생동감 있는 생태 환경 융합 교육프로그램이고 ‘생태체험형’은 오감으로 체험하는 살아 숨 쉬는 생태 교육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자연생태학교 ‘환경체험형’은 인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이에 대응하는 식물과 숲에 대해 인지하고 해결책을 고민해 보는 환경교육 프로그램이다. 모두 친환경성과 우수성, 안전성을 인정받아 환경부 우수 환경교육 프로그램으로 지정됐다. 한편 ‘진로융합형’은 진로 체험과 생태 교육을 융합한 프로그램으로 천연 화장품 원료로 나만의 화장품을 제작하며 화장품 연구원으로서의 진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모둠마다 과학전공 교사와 생태전공 교사를 배치해 안전하고 전문적인 실험 수업과 생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장화 신고 삽 들고 가꾼 낙원 2003년 5월 정식 개원한 재단법인 한택식물원의 공간 구성이 재미있다. 사계정원, 허브·식충식물원, 어린이정원, 아이리스원, 원추리원, 침엽수원, 자연생태원, 비봉산생태식물원, 무궁화원, 암석원, 관목원, 숙근초원, 비비추원, 난장이정원, 침상원, 살랑떠러지정원, 멸종위기·특산식물원, 약용식물원, 산딸나무원, 억새원, 덩굴식물원, 모란작약원, 화살나무원, 수생식물원, 채소원 등 이름만으로도 공간의 특별한 분위기를 상상할 수 있다. 봄이면 많이 찾는 매화길, 목련길과 사계절 언제나 걷기에 좋은 백송길처럼 곳곳에 산책하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을 조성한 것도 한택식물원의 자랑이다. 치유정원과 구상나무산림욕장도 갖춰 치유와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4월18일부터 한 달 동안 봄꽃 축제가 열렸다. 10월에는 들국화 축제와 단풍 축제가 열린다. 우리 아이들을 식물원에서 놀게 해야 한다. 10만명이 배우면 그중 10명은 식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나온다니 투자할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다. 식물 이름만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식물이 어디서 자라고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것에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한택식물원 수생식물원은 여름이면 연꽃과 수련이 만개해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7월부터 100여종의 연꽃과 45종의 수련, 수생 아이리스까지 어우러져 연못 전체가 꽃물결에 휩싸이는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 홍련·백련은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다. 수련은 물 위를 가득 채우며 아침에 활짝 열려 신비로움을 더해 주는 꽃이다. 초여름 붓꽃·아이리스가 화사함을 더해 준다. 낙우송은 나무 뿌리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식물원의 속살을 보려면 여름이 좋다. 여름에 식물원을 찾으려면 서둘러 아침에 집을 나서야 한다. 더위도 덜하고, 특히 수생식물원에서 연꽃과 수련이 선명하게 피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연꽃과 수련이 활짝 핀 연못이 황홀하다. 연꽃과 수련꽃이 수줍듯이 피어나는 물가 산책로를 걸으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울창한 그늘과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여름꽃과 향기로운 허브를 마주하는 시간도 특별하다. 여름의 한택식물원은 물과 숲과 꽃이 만들어내는 청량함으로 신선하다. 강정화 이사는 식물원을 안내하는 중에도 연신 꽃을 피운 망초를 비롯한 잡초를 뽑는다. “씨앗을 맺기 전에 해야 합니다.” 연구원들이 장화를 신고 연못의 잡초를 뽑고 있다. “인부처럼 보이지만 저 사람도 식물학 박사입니다.” 이 놀라운 식물원이 지금까지 운영되는 것은 이처럼 묵묵히 맡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구성원들의 땀과 노력이 아닐까. 관람객들이 쾌적하고 아름다운 식물원을 관람하도록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을 기억하면 좋겠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문화일반
경기일보
2025-07-03 1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