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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3.성남 을지대 범석의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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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석홀 전경. 홍기웅기자

 

‘몸’보다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사람들은 몸이 아파야 비로소 몸에 관심을 기울인다. 몸에 이상이 오기 전에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돌본다면 훨씬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 몸을 공부하기 좋은 의학 전문박물관이 경기도에 있다. 바로 성남 을지대 범석의학박물관이다. 을지대(총장 홍성희) 범석의학박물관은 제1종 전문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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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재단 설립자인 박영하 박사의 흉상과 사진. 홍기웅기자

 

■ 몸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한 공간

‘범석(凡石)’은 을지재단 설립자인 고 박영하 박사의 아호다. 을지대 본관 8층에 설립자를 기리는 ‘범석홀’과 제1전시실이 있고 아래층인 7층에 제2전시실이 있다. 2003년 개관한 범석의학박물관(관장 김시덕)은 대학박물관에서도 주목되는 박물관으로 손꼽힌다.

 

“범석의학박물관은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이 설립자인 고 범석 박영하 박사의 인간사랑·생명 존중의 뜻을 기리고 보건교육의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2003년 10월 개관했습니다.” 장례지도학과 교수이기도 한 김시덕 관장은 국립민속박물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30여년간 학예연구관으로 활동한 현장 경험을 살려 학생과 지역민과 친숙한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궁리가 많다.

 

“내 뜻이 사회 곳곳에서 두루 꽃피게 하라.” 을지재단 설립자 고 범석 박영하 박사의 정신이 깃든 곳에서 낡은 책과 두툼한 원고를 만난 것은 뜻밖이다. 1937년 펴낸 ‘동의어사전’은 설립자의 부친인 박봉조 교수가 애용한 것이다. 한글과 한자와 영문 필기체가 단정하게 정리된 노트는 설립자의 박봉조 교수가 1900년 한영사전을 만들기 위해 작성한 초고다. 6·25전쟁에서 군의관 박영하와 간호장교 전증희는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겪으며 생명의 존귀함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깊이 체득한다. 부부가 전쟁을 통해 터득하고 실천한 ‘인간사랑’과 ‘생명존중’은 을지재단의 설립 이념이다.

 

2008년 박영하 박사에게 수여한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2020년 재단 명예회장 전증희 여사에게 수여한 국민훈장 모란장 훈장,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박영하·전증희 부부에게 수여한 ‘호국영웅기장증’은 이를 잘 보여주는 증거물이다. 1973년 펴낸 ‘보전학보’ 창간호와 2016년의 ‘을지재단 60년사’ 같은 책자는 대학의 역사와 박물관의 뿌리를 보여준다. 설립자의 명함과 가까운 사람들의 번호가 빼곡한 ‘삐삐’, 이제는 구닥다리가 된 전자 손목시계와 두 개의 안경과 만년필도 설립자의 검소한 성품을 보여준다. 하얀 의사 가운과 목제 청진기, 뒤축이 닳은 가죽구두는 의료 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설립자의 분주한 일상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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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관 내부 전경 모습. 홍기웅기자

 

■ 몸을 살피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보건의료의 중요성을 알리는 제1전시관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물을 마주한다. “유리관 속에 든 것은 실재 인간의 뇌입니다.” 유리관에 담긴 뇌를 보고 머리뼈를 절단해 뇌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보여주는 모형을 함께 전시해 뒀다. 엄마의 자궁에서 자라는 태아를 보여주는 모형도 있다. 한 달 된 태아부터 출산 직전의 모습까지 실재와 비슷한 모형으로 아기가 자라는 과정을 모형으로 살펴본다. 아기처럼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우리의 몸속 들어있는 장기의 위치를 살펴본다. 뼈와 장기와 혈관, 근육 등 인체를 이루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어 몸을 공부하기에 좋다. 한자로 쓰인 작은 글씨가 가득한 인체도 앞에 서서 동양의 의사들이 이해한 몸의 구조를 살펴본다. 인체를 작은 우주로 봤던 한의사의 인식은 온몸에 그려진 ‘경락’이 입증한다. 한의사가 침을 놓거나 뜸을 뜨는 곳이 바로 이 부분이다. 17세기부터 20세기의 의학 고서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 유럽, 미국 등의 근현대 의학 관련 고서적 가운데 국내 유일의 의학 도서도 있습니다.” 나이팅게일의 친필 편지와 에칭 초상화, 찰스 다윈 저서 ‘종의 기원’을 마주하는 기쁨도 적지 않다. 제2전시실에는 60여점의 ‘현미경’이 전시돼 있다. 1700년대부터 시작된 현미경의 발전상을 살펴보는 재미가 기대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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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의 구조를 나타낸 인체 모형도. 홍기웅기자

 

■ 미지의 광선 X선으로 몸속을 여행하다

17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명한 온도계는 우리와 가장 친숙한 의료기기가 아닐까. 1816년 프랑스에서 발명한 청진기는 의사의 상징 같은 의료기기로 각인돼 있다. 1851년 독일에서 발명한 검안경이나 1911년 네덜란드에서 발명한 심전계(ECG), 그리고 1913년에 미국에서 개발한 엑스레이 튜브는 의료의 혁신을 이끌었다. 1924년 독일에서 개발한 뇌전도(EEG), 1957년 미국에서 개발한 연성 내시경은 우리 몸속을 자세히 살펴 치료할 수 있게 해줬다.

 

드디어 1960년대에는 인공판막을 개발하고 심장 이식수술에 성공한다. “1970년대 영국에서 개발한 X선 CT와 MRI는 의료의 혁명을 불러왔습니다. 현대의 의학 기술은 인류에게 100세 시대를 약속합니다.” 130년 전 독일에서 발견한 X선은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대발견이었다. 특별 전시실에서 암의 발견부터 코로나19의 확진까지 사람들의 각종 치료에 큰 역할을 하는 엑스레이의 흥미로운 역사와 마주한다.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이 우연히 몸을 통과해 뼈를 보여주는 광선을 발견하고 이 광선에 수학에서 ‘미지의 속성’을 가리키는 ‘X’를 붙여 ‘X-ray’라 이름을 붙인다. 초기에는 신장 결석을 확인하거나 병사의 몸에 박힌 총알을 찾아내던 이 신비로운 광선은 1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0.3㎜의 미세 병변까지 발견하는 ‘소마톰 포스’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인 지멘스 헬시니어스가 제작한 의료기기를 살펴보면서 건강과 장수를 향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확인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자동으로 진단 이미지를 분석하고 의료진의 진단을 돕는 촬영기기까지 선보이며 엑스레이 기반의 의료기기가 나날이 진화하고 있지요. 영화처럼 더욱 선명한 3D 영상 이미지는 AI 기술과 결합해 이미지 자동 분석으로 AI가 병변을 잡아내는 수준으로 진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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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현미경 표본. 홍기웅기자

 

■ 몸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

제2전시실의 주인공은 역시 현미경이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소중한 유물들이다. 그중 몇 개를 선택해 자세히 살펴본다. 생물 시료와 금속 시료를 관찰할 수 있는 광학현미경과 약 15도로 벌어진 2개의 광속을 이용해 시료를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입체현미경의 차이와 성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집광기와 대물렌즈 사이에 광학판을 넣어 물체를 통과한 빛의 위상 차이를 명암의 차이로 바꿔줘 살아있는 상태로 조직을 관찰할 수 있는 ‘간섭현미경’도 주목되는 현미경이다. 자외선 같은 단파장 빛을 쪼이면 형광을 발하는 원리를 이용한 ‘형광현미경’은 아교섬유나 지방조직 등 생체 물질의 관찰에 이용된다. ‘레이저 초점 주사현미경’은 형광 장치가 부착되고 레이저를 광원으로 사용하는 현미경으로 물질을 광학절편으로 자르고 그 절단면은 주사해 나타나는 상을 관찰한다. ‘초고압전자현미경’은 두꺼운 조직의 관찰이 가능하고 ‘주사전자현미경’은 물체의 표면 관찰, 물체 구성원소의 정성, 정량 등의 분석에 이용된다.

 

100년 전에 사용했던 현미경으로 보는 세포 슬라이드 체험존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유물이다. 의학 발전에 기여한 물리학, 화학, 생물학에 이용된 다양한 실험기구도 관람의 재미를 더해준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과학 기술과 의료기기는 인간에게로 향하고 있다. 전시실을 안내하며 김시덕 관장이 들려준 말을 떠올린다. “여러분이 박물관을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박물관을 둘러보면 몸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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