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원에서 놀자]<18>부천문화원 '석천농기고두마리' 공연

에 헤리 방애호 에 헤헤리 방애호 이 방아가 뉘 방안가 방아방아가 돌방아냐 지난 11월 10일 토요일 오후, 복잡한 부천역 남부광장에 때 아닌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방애소리가 울려퍼졌다. 빼빼로데이를 앞두고 데이트 나온 연인들, 대형마트에 시장보러 나온 가족들, 친구들과 소주 한잔 하러 나오신 어르신들까지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넋 놓고 공연을 보고 있다. 농부 100여명이 짚신을 신고 나와 논매기를 하고 나서 농기(農旗) 싸움 하는 장면은 고층빌딩이 즐비한 부천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풍경치곤 생경스럽다. 쌀쌀한 늦가을, 농부들은 왜 도심으로 뛰쳐 나왔을까. # 각 마을 농기ㆍ풍물패ㆍ농군, 자웅을 겨루다 부천시민들의 발과 눈을 붙잡은 농부들은 부천우수전통민속놀이 석천농기고두마리 공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 소속으로 초등학생부터 주부, 교사, 어르신, 대학생 등 세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돼 있다. 부천문화원(원장 박형재)이 주최하고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회장 손영철)가 주관한 석천농기고두마리는 풍물이 어우러진 일명 상좌다툼놀이다. 1800년대 초부터 1910년대까지 옛날 부평군 석천면, 현재의 부천시 송내동과 상동 및 중동 일대에서 이어온 민속놀이다. 십 수년 전만해도 넓은 벌판의 평야지대인 이곳에서 논농사와 세벌매기를 마치고 7월 백중(음력 7월 15일) 날 마을 대항으로 치른 놀이로 특히 철종 이후 조선 말기에 성행했던 것으로 전해 온다. 석천농기고두마리는 농기를 사용하는데 농기 위에 꿩의 꽁지깃을 여러개 모아 묶어 만든 꿩장목을 꽂는다. 이 꿩장목을 부천 고유어로 고두마리라 불러왔고, 농기싸움은 바로 이 고두마리를 빼앗는 놀이인 것이다. 농기고두마리는 우선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고된 농사철을 보내는 가운데 농민들이 서로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행해졌다. 다른 한편으론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 보아 반상의 차이가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신분상승에 대한 희망을 농기다툼의 승자를 통해 표출하고자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부천의 들녘이 사라지면서 농기싸움도 자연히 사라졌다. 그런데 어떻게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었을까. 이는 부천 지역 향토 사학자를 중심으로 1990년대 초부터 석천농기고두마리 복원과 재연작업을 해왔고 2010년 8월에는 석천농기고두마리의 발전적 계승을 위해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가 창립하면서 가능했던 것. # 재연이 아닌, 시민들과 함께하는 흥겨운 자리 10일 오후 4시, 부천역 남부광장에 서촌말, 솔안말 양 마을 풍물패가 농기를 앞세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등장하자 행사가 시작됐다. 이어 논매기 준비를 위한 한마탕 놀이가 펼쳐지고 풍물이 그치고 북이 논매기 준비를 알리기 위해 점고가 끝나자 100여명의 농군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논 안으로 들어가고 상사디 소리에 맞춰 논매기 한다. 세벌 논매기가 끝나자 마을 장정들의 씨름판과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풍물이 진행되는 동안 지난해 패자마을 사람들이 제사상을 차려 놓고 같이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런 다음 본격적인 농기싸움이 펼쳐졌다. 풍물패는 농기를 중심으로 풍물을 치고 농군들은 자기 마을 사람들의 사기를 돋우는 함성과 춤으로 열기를 달궜다. 지난해 승자마을에서 패자마을에 농기싸움을 하자고 점고를 보내고 패자마을에서도 싸움에 응한다고 점고를 보낸다. 지난해 패자마을의 농기가 놀이에 앞서 상좌마을의 농기에 기 세배를 한다. 기 세배가 끝나자, 각 마을의 농기는 서로 밀고 당기며 자웅을 겨루었다. 이 장면이 바로 석천고두마리 행사의 하이라이트. 빙빙돌면서 만났다가 멀어지기도 하면서 서로 한껏 두 세 차례 시세를 폈다. 와~하는 함성과 함께 싸움이 시작되고 마을 사람들의 절반은 자기 마을의 농기를 지키기 위해 빙 둘러서고 나머지 절반은 상대 마을의 농기를 쓰러 뜨리기 위해 상대 마을 농기를 향해 달려갔다. 이날은 서촌말 농군들이 솔안말 농기에 꽃혀 있는 깃털(고두마리)를 뽑아 승자가 됐다. 솔안말 농군들은 땅에 주저 앉아 분함을 감추지 못해 땅을 치고 짚신을 벗어던지기도 했다. 농기싸움 후 양쪽마을 풍물패가 하나돼 신명나게 춤을 추며 노는 화합의 한마당을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흥겨운 풍물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전통민속놀이 공연에 소녀 팬들이 몰려와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김가현(소명여고 1년) 학생은 여월초등학교 풍물부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가요나 팝송 보다 흥이 나는 우리 풍물소리를 더 좋아했다며 친구들과 같이 직접 와서 보니 앞 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아파트 시대 살고 있는 요즘엔 볼 수 없는 농경사회의 협동정신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으며 관람하던 유재호(72) 어르신도 도시개발로 상전벽해를 이룬 부천에서 건전한 민속놀이가 계승 발전되고 있는 것에 대해 부천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며 삭막한 도시 문화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석천농기고두마리 행사를 통해 농경사회 상부상조의 정신을 키우고 지역의 단합력을 결속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석천농기고무마리에서 이긴 농군은 패자의 노고를 치하하고 패자는 승자를 위해 축배를 드는 아량이 있다. 무엇보다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우애가 숨어 있다. 이에 부천문화원과 부천농기고두마리보존회는 단순한 재연이 아니라 현재를 함께 하는 살아있는 민속놀이로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형재 부천문화원장은 신도시 개발로 인한 급작스런 도시의 변천사 속에서 석천농기고두마리는 많은 향토 사학자들이 놀이의 근간을 찾아 연구해 계발함과 그 내용을 자료화해 놀이의 원형을 찾아낸 것으로 앞으로도 자료를 바탕으로 시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석천농기고두마리를 알고, 즐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 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그림읽어주는 남자] 김기라의 ‘망령-역사적 괴물’

올해가 유신 40년이란 사실을 아는 이 드물다. 1972년 10월 17일의 일이었으니 벌써 40해를 훌쩍 넘겼다. 그 해는 국회를 해산 당했고 정당 및 정치활동이 강제로 중지되었다. 유신체제는 대통령의 초헌법적 권력을 용인했다. 당시 비상조치 제1호 포고문에 따르면, 실내외 집회, 시위를 일절 금했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검열을 받아야 했다. 대학은 휴교조치 되었고, 정당한 이유 없이는 직장 이탈이나 태업행위도 할 수 없었다. 야간 통행금지는 물론이고 포고를 위반한 자는 영장 없이도 수색, 구속되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 3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는 유신체제의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유신의 망령은 한국 사회 내부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서 마치 숙주에 기생하는 괴물들처럼 작동한다. 김기라의 망령-역사적 괴물은 수 천 년 역사의 층위에 새겨진 신화와 종교, 영웅의 판타지가 인간사회에 망령으로 떠도는 것을 콜라주로 표현했다. 그는 헬레니즘과 길가메시 서사시의 수메르문명, 이집트 나일문명, 황하문명, 인더스의 고대 문명권과 기독교와 기독교 파생의 온갖 유사종교, 무슬림, 유불선, 신도(神道)의 이미지를 콜라주로 뒤섞었다. 서로 화합할 수 없는 것들을 섞어서 혼합한 뒤, 세상에 없는 우상을 창조해 냈다. 각각의 형상들이 인신(人神)과 신인(神人), 신상(神像), 성인, 영웅들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의 신화적 상징물들이니, 이 우상의 능력은 초특급울트라메가슈퍼파워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영험함의 극치일까? 아니다. 그는 이 작품을 망령-역사적 괴물이라 명명했다. 신성한 것들의 더하기는 빛이 아니라 망령이란 이야기다. 작가는 신성한 믿음으로부터 발현한 거룩한 숭고의 도상들이 어느 순간 욕망으로 변질된 순간들에 주목했다. 신성한 믿음과 거룩한 숭고가 상실된 자리에서 숭배를 소비했던 욕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지하듯 초기 종교에서는 신성을 중시해 몸의 신체를 만들지 않았다. 최근 4.19혁명 당시 민중의 힘으로 무너뜨렸던 독재자의 동상이 다시 세워졌고, 심지어는 유신의 부활을 부르짖으며 이데올로기 극단화를 부추기는 현상이 빈번하다. 초헌법적 권력의 대통령을 다시 찾는 것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칫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독재를 부르는 순간,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부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ㆍ미술평론가

[비상하는 에듀 클래스]<17>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포럼연극 ‘눈사람?눈사람!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한 고등학생이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에서 빠지지 않고 들리는 뉴스 보도, 학교폭력 그리고 자살(자살시도). 올 1~11월 정신건강검진을 받은 경기지역 초ㆍ중ㆍ고생 1만3천649명 가운데 최근 3개월 내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해 본 경험이 있는 학생은 3천457명에 달했다는 경기도 정신보건센터의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학교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지만 어른들이 말로만 전하는 예방책에 학생들은 반응조차 없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이 직접 나서서 학교폭력 현장을 과감하게 바꿔버릴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PRAXIS)가 만든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 포럼연극 눈사람? 눈사람!이 바로 그것이다. ■토론으로 시작되는 연극을 아시나요? 지난 19일 오전 집중 박수 시작! 우렁찬 진행자의 목소리가 수원 당수초등학교 강당을 뒤흔든다. 왁자지껄 친구들과 장난을 치느라 정신없던 당수초 6학년 학생 180여명은 짝짝~짝짝짝 집중!을 받아치며 이내 귀를 기울인다. 그런 아이들에게 책ㆍ걸상 몇 개가 있는 소박한 무대에서 연극을 보여준다더니 갑자기 학교폭력, 이른바 왕따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어린이 관객들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진행자는 무대에서 펼쳐질 연극을 소개한다. 학교폭력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집단 왕따가 일어나는 연극을 관람한 뒤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 잘못된 장면을 자기 생각대로 바꿔보는 눈사람?눈사람!이라는 것. 3D도 4D 영상도 아닌 배우들이 나와 속마음까지 말해주는 5D(?)의 한 장면으로 토론이 시작됐다. 때리는 포즈를 한 남학생, 몸을 웅크리고 맞는 학생, 지켜보는 학생,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어른. 때리지 마라고 속마음을 이야기 한 친구를 위해 학생들은 너도나도 손을 들며 그러면 안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용기있는 학생 하나가 무대로 나왔다. 괴롭히지 말고, 때리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친구는 신고하고, 어른은 말려야 된다고 말하며 배우들의 몸짓과 표정을 일일이 바꿔줬다. 본 연극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이미지 전환하기, 질문던지기 등을 통해 학교폭력에 대해 생각하고, 처음 경험해보는 포럼연극을 이해하며, 마치 자신의 상황인 것처럼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지연 프락시스 대표는 아이들이 학교폭력에 대해 머리로는 알고, 머리로 답을 하지만 마음으로 오는 지점은 애매하다면서 학생들이 관객이 아닌 상황의 변화를 함께 만드는 사람으로 접근해 그들이 머리로 아는 답이 과연 진짜일까라는 과정을 스스로 알아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관객이 배우가 되는 눈사람?눈사람! 막이 바뀌는 동안 스크린에서는 자살 고교생, 사망 전 폭행, 대구서 9개월 새 9명 자살, 카톡 때문에 자살 등 학교폭력에 관련된 기사들이 이어졌다. 남학생 2명, 여학생 2명, 전학생, 선생님, 엄마가 출연하는 연극이 드디어 시작됐다. 내용은 이렇다. 영어 연극 대회에 나가게 된 하나네 반에 영어를 잘하는 소민이가 전학을 온다. 소민은 아이들이 맡기 싫어하는 나쁜 역할의 주인공을, 반장 영인이는 연출을 맡게 된다. 집과 학교에서 연습하는 도중 영인과 함께 진일, 병진은 소민을 왕따로 만들고 괴롭히고, 결국 소민이는 자살을 시도한다. 소민을 원래 알고 있었던 하나는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 고민에 빠진다. 연극이 끝나자 신고해요, 병진이를 때려줘요, 소민이를 도와줘요 등 의견이 다양했다. 윤소정양(13)은 소민이가 불쌍했어요. 용기 내서 신고를 한 뒤 소민이를 위로해주고 같이 놀고 싶어요라고 전했다. 한바탕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뒤 아이들은 직접 하나역을 맡아 잘못된 부분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수민이 머리에 씌웠던 장면, 눈 가리고 술래잡기할 때 때렸던 장면, 마마보이라고 놀렸던 장면 등. 하지만 객석에서 자신 있게 대답했던 아이들도 무대에선 하나의 역할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지켜보는 입장과 자신이 직접 상황에 있을 때의 부담감이 달랐던 것. 이런 상황에서 나쁜 친구들을 혼내주고 소민이를 도운 이정빈군(13)의 기사도정신이 단연 돋보였다. 이군은 소민이가 맡았던 나쁜 역할을 자처하며 소민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을 애초부터 만들지 않았다. 또 쓰레기통을 씌우자고 주동했던 진일이가 오히려 쓰레기통 괴롭힘을 당하게 상황을 만드는 등 연기 내내 진지한 모습으로 할 말을 다하고 마지막까지 소민이를 도와주는 모습에 객석에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정빈군(13)은 친구를 때리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소민이가 친구들한테 괴롭힘을 당할 때 싫다고 말할 수 있도록 하나 역을 연기했다고 씩씩하게 대답했다. ■희망의 빛 발견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수원지역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자리 잡은 당수동에는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없다. 학교라곤 당수초가 전부이다. 지역적 특색상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이사를 하지 않는 이상 1학년 때부터 6학년 졸업반이 될 때까지 함께 생활한다. 다시 말하면, 왕따를 한 번 당한 학생은 학교를 떠날 때까지 상처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당수초등학교 측은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프락시스에 학교폭력 관련 연극을 당수초에서도 공연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공연은 놀라운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여러 친구가 무대에서 피해자를 도와주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주는 의젓한 연기를 선보인 것. 그 중 교내에서 친구들을 괴롭혔던 아이들도 있어 더욱 놀라웠다. 이를 지켜보던 6학년 담임선생님들도 해당 학생의 변화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자신들도 직접 관객배우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연이 6학년 부장선생님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폭력은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이런 시간을 마련했다며 오늘 아이들이 직접 무대를 꾸미며 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들이 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채워진 것 같다. 앞으로도 기회만 생긴다면 전 학년으로 확대해 외부 도움을 받고 싶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처럼 짧은 시간에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학교폭력예방프로그램이지만 더 큰 무대에서 많은 학생에게 보여주기엔 아직 역부족이다. 프락시스가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지난 10월부터 5개 초ㆍ중교 학생 1천5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다른 기관에서는 포럼연극의 특징을 이해하지 못해 이 사업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연 대표는 포럼연극이 연극도 교육도 아닌 중간에 끼어 있어서 연극 쪽에선 교육, 교육 쪽에선 연극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지원을 꺼려한다며 이번 연극처럼 사람들이 점점 개인화되는 시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하나의 작은 주제에서 끌어내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으로 청소년 간의 경쟁, 사이버라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문제점 등을 다룰 계획이다. 연극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혜준 기자 wshj222@kyeonggi.com

[문화바우처의힘]<4>예술의 정점 봉사정신 실어 나르는 ‘황금마차’

수원에 요란한 포장마차가 떴다. 옛 음악 흐르는 자그마한 오디오와 오색찬란한 조명등을 달았다. 서너명 간신히 끼어앉을 수 있는 규모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곤 국수 한 그릇에 단무지와 김치가 전부인 것이 이름도 있다. 황금마차다. 더 웃긴 것은 요놈이 곧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예술품이 된 마차를 만나기 위해 지난 14일 수원의 한 경로당을 찾았다. 황금마차를 마주한 곳은 북수동 노인회관(수원시 팔달구 북수동)이었다. 한쪽 문이 내려앉아 어르신은 여닫기도 힘겨운 낮은 철문을 비집고 들어가니, 노인회관의 한 뼘 정원을 황금마차가 주차돼 있다. 마당을 차지한 마차 천정에 걸린 낡은 오디오에서 흘러간 옛 노래가 퍼지고 문닫은 캬바레에서나 구경할 수 있음직한 낡은 조명이 사방으로 빛을 흩뿌린다. 노인회관안에서도 구성진 노랫소리가 퍼져 나온다. 노인회 20여명 할머니들이 한 방에 모여 앉아 젊은 총가들의 통기타와 아코디언 연주에 맞춰 박수치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 신명난 목소리에 하마터면 본래 목적(?)을 잊고 방안으로 들어갈뻔했다. 예술품임을 자청하는 황금마차의 가면을 벗겨야 하는 것 말이다. 이에 마차 주인장을 찾으니 젊은 작가 천원진씨가 나선다. 다짜고짜 물었다. 이 황금마차가 예술이냐고. 대답은 추호의 흔들림없이 그렇다이다. 조각을 전공한 저는 마차의 나무로 음식 놓고 먹을 수 있는 판부터 지붕도 만들었고, 조명이나 네온싸인으로 꾸미는 것은 장영환 서양화가의 아이디어에요. 기계적 문제를 잘 다루는 장성진 조각가는 마차에 동력장치를 달고 자전거 핸들을 달아 디자인적 요소도 넣었죠. 결국 3명의 미술 전공자이자 전업 작가의 협업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천 작가는 지난해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이자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인계시장을 통해 연을 맺은 수원에서 개인 작업을 결심, 이후 재래시장이 있는 수원시 팔달구 지동에 개인 작업실을 꾸렸다. 그곳에서 작업 방향을 고민하던 중 낮이나 밤이나 덥거나 춥거나 폐지를 줍고 삼삼오오 모인 노인을 목격한다. 무료한 삶을 버티는 동네 어르신을 위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다. 그리고 혼자 끓여먹던 국수를 어르신들에게 대접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동료 작가들과 기획한 것이다. 황금마차는 그 프로젝트를 현실화하는 대표적 수단이 됐다. 때마침 경기문화재단 문화나눔센터가 문화바우처 활생(문화공명)의 지원사업을 공모중이었다. 천 작가를 중심으로 의기투합한 젊은 예술가들의 소통과 예술, 지역성 등을 고려한 프로젝트 기획안은 선정작으로 꼽혔다. 그렇게 지원금을 받고 본격적으로 수원의 지동과 북수동 등을 중심으로 60세 이상 어르신에게 국수 대접하는 황금마차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머니들한테 직접 연구하고 끓인 육수 맛 자랑하려고하는데 한 할머니가 비리다면서 뱉는거에요. 20여분이나 모아놓고 큰일이다 싶었죠. 근데 다들 맛있다고 드시네요. 아마 그 할머니는 자신의 요리 노하우를 과시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분도 두 그릇이나 잡수셨어요.(웃음) 지난 9월에 시작한 황금마차는 이달말쯤 곧 영업을 끝낸다. 3개월여간 국수 한 그릇이 따뜻한 관심과 정으로 느껴지길 바라며 동네 곳곳을 누볐다. 어르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음악과 조명기기를 설치했고, 인맥을 총동원해 악기 연주와 노래 잘 부르는 동료 작가들을 참여시켰다. 15년 미술했는데 전시작을 봐도 이해되거나 감흥이 없어요. 미술, 도대체 그 예술이 뭘까요. 즐거운 거 아닌가. 정확히 모르겠지만, 결국 예술의 정점은 즐거움을 주는 봉사인 것 같아요. 평생 자식 뒷바라지에 밥해주느라 허리 필 틈 없던 어르신들과 노래하며 함께 놀고 뜨끈한 국물에 국수 한 덩이 말아 건네는 것이 곧, 황금마차 프로젝트팀의 예술작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기언 문화나눔센터 담당자는 커뮤니티 아트의 예술성을 실험하는 시기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 작가군을 발굴 지원해 그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소외계층에 적극적으로 문화예술향유기회를 제공하는 문화바우처 활생사업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설아기자 rsa119@kyeonggi.com

[그림 읽어주는 남자]공성훈의 ‘비행기구름’

아침저녁의 날씨가 시나브로 차다. 덥고 추운 것을 떠나서 차고 시리다. 옷겹을 단단히 조이고 밖으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낯을 때리고 몸을 쑤신다. 겨울바람이 하는 일을 늦가을 새벽바람이 하는 일이니, 가을꼬리가 짧은 셈이다. 여명과 어스름은 가을꼬리보다 더 짧다. 그것은 찰나와도 같아서 낮과 밤사이를 순식간에 지나쳐 버린다. 옛 어른들이 입으로 전한 이야기에 따르면 바로 이 시간들이 도깨비들의 시간이다. 온갖 신화와 전설이 잉태하고 자라고 소멸했던 시간들이 바로 그 찰나에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찰나의 신비를 따르지 않는다. 그런 시간들이 우리 삶에 있는지조차 궁금해 하지 않는다. 공성훈의 비행기구름은 어스름이 깔리던 순간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푸른 하늘에 비행기 지나간 자국.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자국이 아니라 전체 풍경이다. 그는 최근 여명과 어스름에 속한 풍경들을 그렸다. 바다와 산과 하늘이되, 파도와 나무와 구름 따위의 세목들이 찰나를 이루는 풍경들을. 그 풍경들에서 우리는 여명과 어스름이 이루는 신화적 시간의 영적 순간들과 마주치게 된다. 그의 전시에서 바다를 본 적이 있다. 바다 그림들은 어두웠으나 그것을 보는 나의 몸각은 낱낱이 소름이었다. 그림의 색들은 푸르렀으나 그것을 보는 나의 눈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그의 풍경은 간헐적으로 나의 신체를 공격해 들어왔다. 바다였는지 바다의 색이었는지 아니면 그 그림들 사이를 떠도는 낮은 바람이었는지, 그것들은 내 눈의 안막을 넘어와 심연의 창살을 뒤흔들었다.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은 그렇게 내 안의 것들을 뒤흔들어서 출렁거렸다. 나를 채운 바다는 마치 거대한 항해의 한 복판에서 크게 넘실거리는 듯하였다. 그러나 전시장을 빠져 나오자 그 모든 순간들은 까마득한 찰나였다. 비행기구름의 느낌도 다르지 않다. 공성훈의 회화는 자연의 거대 환상이나 숭고 따위가 아니라 가장 현실다운 현실의 초상과 직면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관념의 풍경들을 지우고 그 풍경의 진실 속으로 들어가면, 공성훈의 풍경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순간순간 상실한 일상이다. 삶은 언제나 판타지로 가득했고, 비현실과 초현실로 충만했으며 숭고했다.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시간들이 길어졌을 따름이다. 사실 그동안 회화는 회화론에 갇혔고 미술은 미학에 갇혀있었잖은가! 공성훈의 풍경을 따라 현실로 직립해 들어가 볼 일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 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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