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토론) 불로소득은 나쁜 것인가?

불로소득은 일하지 않고 얻은 수익을 말합니다. 이자, 주식 배당금, 지대, 복권, 증여, 상속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동안 불로소득은 지탄의 대상이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부동산 투기를 통해 돈을 버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로소득을 꼭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엄밀히 따지면 모든 투자는 불로소득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요? 또 우리가 흔히 불로소득이라고 말하는 주식이나 토지거래로 인한 소득도 결국은 인간의 정신적 노동과 판단이 들어간 ‘일해서 얻은 수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늘, 우리가 토론해볼 주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불로소득은 정당화될 수 있는지, 불로소득 중에서 지탄받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눌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봅시다. <생각열기> 물고기를 나누는 가장 공평한 방법은? ※ 다음의 이야기를 잘 읽어본 후 물음에 답해보세요. 어느 무인도에 두 사람이 물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두 사람은 하루 종일 일해서 각각 물고기 한 마리씩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물고기를 잡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던 끈을 이용하여 그물을 만들었다. 그물의 위력은 대단했다. 맨 손으로는 하루에 한 마리의 물고기 밖에 잡지 못했지만, 그물을 이용하니 하루에 네 마리의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그물을 만든 사람은 다른 한 명에게 그물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 대가로 그는 매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요구했다. 그물을 만든 사람은 그 날 이후 계속 놀면서도 항상 두 마리의 물고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나머지 한 명도 과거엔 하루 한 마리밖에 얻지 못했으나 지금은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게 됐다. 1.여러분은 그물을 만든 사람에게 일을 하지 않아도 매일 두 마리의 물고기를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러한 처사는 부당한 것일까요, 아니면 정당한 것일까요? 정당하다면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보고, 부당하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2.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이자에 대한 기록은 기원전 3세기경이라고 합니다. 당시, 은과 보리를 빌릴 때의 이자율이 각각 연 33.3%와 연 20%였다고 하네요. 오늘날에도 이자는 금융소득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물을 만든 사람이 요구하는 물고기 두 마리는 이 같은 이자와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둘 사이에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1. 불로소득이란 무엇인가요? 불로소득(不勞所得)이란 말 그대로 일을 하지 않고 얻는 수익을 말해요. 불로소득에 해당되는 것은 많아요.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복권, 경마가 있어요. 알다시피 복권이나 경마를 통해 얻은 돈은 내가 노력해서 번 돈이 아니에요. 운에 따른 것이지요. 또 적은 금액으로 많은 돈을 얻을 수 있고요.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이나 주식의 가격이 오르거나 증여·상속에 의한 재산증식, 금융기관에 자산을 예치하고 받는 이자, 배당금, 지대(地代) 등도 불로소득에 포함돼요. 즉, 생산과정 없이 얻은 소득인거죠. 불로소득은 노동에 의하지 않은 소득이라는 의미 외에 자신의 활동이나 경제적 기여 없이 우연한 시장조건의 변화로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해요. 2. 불로소득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자신의 재산권에 기초하여 부를 축적한다는 특징이 있어요. 때문에 불로소득은 소유의 독점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큰 규모로 이루어지는 특성도 있어요. 소수에게 독점적인 재산권이 집중되었을 때 경쟁을 통한 거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을 형성하기 때문이죠. 또한 불로소득은 모험적인 요소도 강해요. 앞날을 예측하고, 이에 따라 장래의 소비를 위한 지출을 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죠. 다시 말해 장래에 보다 큰 효용가치를 얻기 위해 현재의 소비를 유보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거예요. 때론 그 위험이 큰 손실을 가져다주기도 하죠. 그리고 비생산적인 활동이기 때문에 고용을 증대시키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3. 불로소득의 대표적인 예를 들어 주세요. 가장 대표적인 것은 부동산에 의한 불로소득이에요. ‘집값이 거품이다, 비싸다’는 얘기를 언론보도를 통해 많이 들어보았죠? 실제로 우리나라 집값은 예전에 비해 많이 올랐어요. 이를테면 천만 원을 주고 산 집이 이제 1억 원이 돼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그 차익인 9천만 원은 불로소득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떠한 노력이나 가치 생산을 하지 않았는데도 9천만 원이라는 소득을 올리게 된 거니까요. 특히 우리나라 상위 1~2%의 사람들은 자산을 이용해 땅이나 집을 사고팔면서 그 차익으로 돈을 축적한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또다시 더 많은 부를 축적하죠. 이렇게 부가 증대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고용증대나 부가가치 창출이 없고, 전국적인 물가상승과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은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있어요. 2005년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총 346조원으로 2004년 한 해 동안 1천4백만 노동자에게 지급한 임금 총액인 342조원을 넘어서고 있어요. 4. 하지만 모든 불로소득이 지탄받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이자를 생각해 볼까요? 현대사회에서 금융권을 통한 이자 수입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자도 분명히 일하지 않고 돈을 버는 행위인데 말이죠. 또 어떠한 기업의 주식을 사고 그로부터 배당소득을 받는 것도 불로소득이지만 비난받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죠. 이는 투자와 투기의 차이점 때문이에요. 하지만 사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모호하고 어려운 일이에요. 투자와 투기는 둘 다 위험을 수반하고,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은 같거든요. 그럼에도 나누어 본다면 투기는 수익이 예상되는 곳에서 빠르게 시세차익만을 노리는 특징이 있어요. 반면 투자는 장기운용을 염두에 두고, 신뢰와 책임감이 있죠. 산업자금으로 활용되면서 부가가치 같은 가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주식을 통해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기업으로 들어가 기업의 생산 활동에 도움을 주고 결국 기업의 가치가 상승해 주주들에게 많은 배당금을 줘 수익이 났다면 이것은 투자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시세차익을 노려 짧은 시간에 주식을 사고파는 것은 투기에 해당하죠. 5. 불로소득이 생겼을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하나요? 정부는 모든 소득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해요. 불로소득의 경우에는 세금의 비중이 일반 소득보다 높은 것이 특징이죠. 이를 테면 복권이 당첨되면 당첨금에서 복권구입액을 뺀 나머지의 22%를 세금으로 내야 해요. 상속세의 경우 상속받는 금액이 35억을 초과할 경우 10~50%의 상속세를 내야 하고요, 이자소득세는 15.4%예요. 토지나 건물 등 자산의 양도로 인한 이익에 대한 세금인 양도소득세나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보유세도 불로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제윤아 유레카논술 상임연구원

논술은 실용적 글쓰기 3

논술을 지도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느냐?’이다. 질문의 의도는 ‘어떻게 하면 짧은 시간 내에 논술을 잘 할 수 있느냐?’이다. 이럴 때마다 수영선수 ‘박태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박태환 선수처럼 수영을 잘 하고 싶다고 해서 유명 수영선수가 쓴 책을 읽어 보거나, 박태환 선수의 동영상을 수십 번을 봐도 수영을 잘 할 수는 없다. 수영장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서 물을 마셔가면서 배우지 않으면 실력은 늘지 않는다. 논술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써보지 않으면 실력은 늘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에서 이런 환경을 조성해 주지도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편이상의 글을 쓰라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필자는 학교에서 수행평가와 연계하여 일주일에 한 편 글쓰기 방법을 실시하고 있다. 일명 ‘신문일기’쓰기이다. 그렇다고 실제 신문을 가지고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일기는 하루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과 반성이지만, 신문일기는 기사의 내용을 비판하고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것이다. 신문일기는 일주일에 한 번, ‘기사 선택하기→출처 밝히기→기사의 내용 읽기→모르는 용어 풀이하기→내용 요약하기→나의 생각쓰기→조별 일기쓰기’의 7단계를 통해 논술 실력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다. 첫 번째 단계의 ‘기사 선택하기’를 위해서는 어떤 신문을 읽느냐가 중요하다. 요즘 지하철에서 나눠주는 무가지 신문은 ‘게이트키핑(gate-keeping, 기자나 편집자와 같은 뉴스 결정권자가 뉴스를 취사선택하는 일)'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가급적 지양하는 것이 좋다. 신문을 선택 했다면 1면부터 기사를 가볍게 읽다가 관심 가는 기사를 선택하여 노트에 붙인다. 기사의 내용은 가급적 선과 악이 분명한 것보다 다양한 의견을 담을 수 있는 내용이 좋다. 두 번째 단계의 ‘출처 밝히기’는 나중에 논술 시험을 볼 때 내용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기록한다(예를 들면 ‘경기일보, 2007년 12월 24일자’). 세 번째 단계의 ‘어휘 풀이하기’는 기사를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사전이나 인터넷을 검색하여 노트에 기록한다. 실제 논술 문제를 풀다가 제시문에 나오는 단어의 의미를 아예 모르거나 잘못 해석하여 논제의 요구 방향과 다르게 흐르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 단계의 ‘내용 요약하기’는 기사의 내용을 다섯 줄 이상으로 요약하는 것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통합 교과형 논술로 바뀌면서 대부분 1번 문항으로 제시문의 내용을 요약하라는 논제가 많다. 제시문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논리적인 글을 쓸 수 없다. 다섯 줄 이상이라는 조건을 단 이유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몇몇 학생들이 성의 없이 단 두 줄로 내용을 요약해 버리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단계인 ‘나의 생각쓰기’는 신문일기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이다. 기사의 내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비판적으로 서술하는 단계로 열줄 이상 쓰게 한다. 짧은 글이지만 기사 내용에 대하여 원인과 주장 그리고 대안을 밝히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정말 이건 말세다.’, ‘이것은 말도 안 된다.’ 등의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학생들이 많으므로 교사의 지도가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인 ‘조별 일기쓰기’는 다섯 명 정도로 구성된 모듬원들이, 친구가 쓴 나의 생각을 읽고 난 후 첨삭을 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평가를 해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교사보다 더 날카롭게 지도 조언 해주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조별일기와 유사한 가족일기도 있다. 가족일기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간단한 코멘트를 해주는 형식이다. 필자는 신문일기를 4년 째 실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학생들의 자신감 넘치는 글을 읽을 때마다 많은 보람을 느낀다. 꼭 신문일기가 아니어도 좋다. 가장 좋은 논술 지도 방법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고민하는 글을 쓰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윤영진 (광명북고 교사)

비빔밥논술 <정시대비 글쓰기 특강>

논술이란 무엇인지, 실전에서 논술문 작성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나 충분한 연습 없이 정시를 맞이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특히 올 한해 수능에 올인하며 뒤늦게 논술의 중요성을 인지한 학생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논술은 하루아침에 실력을 쌓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논술을 포기하는 것은 원하는 대학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오랜 시간 논술에 대비하며 자신의 생각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온 학생들이 우위를 점하겠지만 다수의 학생들은 동일한 출발선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시의 논술고사까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효과적인 방법으로 대비한다면 수능 한 등급 이상을 올릴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본 코너는 정시 논술고사까지 채 한 달이 남지 않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는 학생들을 위해 논술문 작성의 실제를 살펴보고자 기획됐다. 정시대비라는 타이틀이 걸려 있지만 1, 2학년 학생들도 논술문 작성의 기초로 생각하고 실전의 연습에 활용하기 바란다. <논술이란 무엇인가?> 논술은 글쓰기가 아니라 ‘생각’ 글쓰기 특강에서 논술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따지는 것이 이상할 수 있다. 하지만 논술문을 제대로 작성하기 위해서는 논술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철저한 고민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논술에 대해 착각과 오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논술에 대한 오해의 근간에는 지식 중심의 교육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논술이란 어떤 주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입장, 견해)’을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혹은 주어진 문제의 상황에 대한 타당한 해결책을 논리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논술이 지식을 서술하는 것이라 오해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서술하는 것으로 논술을 바라보는 것이다. 학원에서 배운 듯 판에 박은 답, 논리와 창의력 없이 논제와 상관없는 현란한 글솜씨 등은 논술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다. 사실 논술에서 배경지식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물론 체계적인 논술문을 자신의 사고를 통해 쏟아낼 수 있다면 배경지식은 화려한 꽃을 피울 것이다. 하지만 섣부른 배경지식은 논술문 작성에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더 많다. 논제의 요구를 파악하고 그에 대해 고민, 판단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논제에서 벗어난 지식을 나열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논술은 글쓰기지만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다. 오히려 ‘생각’에 가깝다. 또다른 표현으로는 ‘문제해결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논술의 특징을 잘 이해해야 같은 노력으로도 월등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주장과 논거는 논술문의 필요조건 논술은 ‘주장’을 서술하는 것이라 했다. 이를 위해서는 가치관이 명확히 서야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어야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고민은 논술문 작성의 밑바탕이 된다. 자신의 철학이 뚜렷해질수록 논술문의 깊이가 달라진다. 논제에 따라 편의적으로 자신의 가치관이나 입장이 수시로 변하는 글을 쓰게 되면 실력이 축적되지 않을 뿐 아니라 훌륭한 논술문이 나올 수 없다. 또한 논술은 수필이나 일기와 같은 감상문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서술하는 글이다. 객관적 사실과 논리적 근거에 입각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하며, 막연한 추측, 비약, 흑백논리, 감정적 호소 등은 금물이다. 주장과 논거가 논술문의 ‘필요조건’이라면 풍부한 지식, 글맵시, 어휘력 등은 논술문의 ‘충분조건’이다. 무엇이 기본이며 무엇을 중심으로 논술문 작성이 이루어지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논제파악이 절반이다!> 논제파악이 중요한 이유 수능이 끝나면 지원할 대학과 전형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대학별 고사에 올인해야 할 시점이다. 설사 자신이 지원할 수시 2-2에 논술고사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시까지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시간을 대학별 고사, 즉 논술과 구술면접 준비에 할애하고 대학별 특성에 맞춰 시간을 안배해야 한다. 아래의 전략을 참고하여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살펴 시간을 조절하기 바란다. 논제이탈을 안 하려면 논제를 건성건성 읽는 학생들이 있다. 전반적으로 묻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만 대충 파악하고 글 작성에 돌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입시논술은 포괄적인 주제를 던져주고 자의적으로 작성하는 글이 아니다. 논제의 세부 요구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논제를 읽고 또 읽어야 한다. 낱말 하나하나의 뜻에 깊이 주목하고 ‘주문사항’이 무엇인지 하나도 빠짐없이 정리해야 한다. ‘~에 근거하여’나 ‘~을 고려하여’ 등 놓치기 쉬운 표현도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논제의 요구를 파악할 때 각 요구사항이나 전제 등을 세분화하여 번호를 매겨두는 것이 좋다. 각 번호의 요구사항을 활용해 개요를 작성해야 함은 물론이고 글 작성 후 빠뜨린 것은 없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요구사항을 세분화하여 파악하는 것은 달리 말하면 꼭 쓰라는 것만 쓰라는 의미도 포함한다. 의의를 논하라고 했는데 한계에 대해서만 논하거나 문제점을 부각시켜 논하는 것은 결국 논제이탈로 이어진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거나 평소 접해봤던 주제라 하여 논제의 요구범위를 넘어선 내용을 서술하는 것은 큰 문제다. 논제는 항시 일반 주제에 대한 일반론적 주장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주제에 대한 구체적 주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결국 논제의 문구를 엄격하게 구체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논제의 배경과 출제의도를 살펴야 다음의 물음과 대답을 살펴보자. 질문 우리나라에 이발사는 몇 명이나 있을까? (서울대 학교장 추천제 구술고사) 답변 1글쎄, 한 1만 명쯤 될까. 답변 2알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지식을 배우지도 않았고 앞으로 필요하지도 않다. 답변 3우리 아버지가 이발사인데, 한 5만 명쯤 된다고 하더라. 답변 4성인 남성 2000만 명이 한 달에 한번 이발을 하고, 이발사 한 명이 하루 10명을 이발한다고 가정하면…. 서울대 입학생이 이발사의 수를 알아서 뭣하겠는가. ‘몇 명’에 초점을 맞춘 답변 1, 2, 3은 방향을 잘못 잡았다. 답하기 전에 출제 의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특히 답변 1은 수험생의 ‘사고력’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질문은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을 도출할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답변 4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다. 답변의 방향이 올바르면 논리나 문장이 다소 서툴러도 평균 정도의 점수를 얻을 수 있다. 아무리 명문장을 구사해도 출제 의도를 잘못 파악하면 평균 점수도 얻기 힘들다. 즉 좋은 답안과 나쁜 답안을 가르는 첫 번째 갈림길은 ‘출제의도 파악’ 여부이다. 출제의도 파악은 세 가지 과정을 거친다. 논제 분석, 제시문 분석, 논제와 제시문의 연결이다. 간혹 논제에서 요구사항이라 보기 힘들지만 문제의 도입부에 전제하고 있는 문장들이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인들은 거대한 조직 속에 익명으로 방치되어 있다’는 식의 문장이다. 이런 문장을 쉬이 지나치는 것도 문제다. 논제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장이나 표현은 어느 하나도 쓸모없는 것이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이러한 논제의 전제 문장들은 논제의 출제 배경이나 요구하는 글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요구사항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문장을 이해하여 글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해당 논제에 대한 논의가 홰 필요하며 어떤 의의가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논제의 유형을 파악하라 논제의 물음이 어떤 유형인지 파악하는 것은 글쓰기 구상에서 매우 중요하다. 글의 방향이나 구성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유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요약형주어진 글의 핵심 주장이나 견해를 압축적으로 정리한다. ② 논증형주어진 문제상황이나 주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세우고 근거를 들어 타당성을 입증해 나간다. ③ 설명형특정한 견해와 주장과 개념, 주어진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사실적으로 고찰해서 그 의미와 가치를 설명한다. ④ 논쟁형여러 대립되는 입장들 중 특정한 입장과 논쟁을 벌여 자신의 입장을 변론한다. 의견대립과 비판적 논의 즉 동의, 반박 등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부각한다. ⑤ 인과분석형주어진 문제상황이 어떻게 해서 발생되었으며 우리에게 끼치고 있는 영향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서술한다. ⑥ 비판종합형다양한 사태와 다양한 입장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지지근거와 반박근거를 종합하여 새로운 단계의 논의로 이끌어간다. 단서조항이나 유의사항을 놓치지 마라 논제에는 갖가지 단서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정한 관점에서 논하라든지, 제시문을 참고하여 서술하라는 등의 요구조건들이다. 또한 ‘21세기’, ‘현대사회’, ‘한국사회’ 등의 단서조항들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다. 한국사회라는 단서가 붙어있는데 논의를 세계로 확장하여 진행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학교 측이 제시하는 유의사항도 논제의 일부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답안의 분량을 엄수해야 함은 물론이고 제한시간, 필기도구의 종류, 해서는 안 될 표기 등의 조건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제시문이 문제 해결의 Key!> 제시문 독해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져 제시문은 논제의 범위를 제한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서 제시하는 글이다. 논제를 어렵게 하기 위해 제시하는 경우는 없다. 제시문을 통해 논제의 의도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거나 글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재료를 얻을 수도 있다. 제시문 독해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주요 대학들이 통합형 논술 문제를 개발하면서 제시문을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학문 영역 간의 통합이거나 이종 주제를 통합적으로 다루기 위해 제시문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제시문을 단순 참고자료 정도로 여긴다. 이는 논제 해결 과정에서 천군만마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제시문을 꼼꼼하게 독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철저한 독해와 분석이 필요하다. 최근 논제들은 두 개 이상의 제시문이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각 제시문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인지, 서로 대비하여 제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염두에 두고 독해할 필요가 있다. 도표나 통계자료가 주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은 데, 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별도의 연습이 필요하다. 제시문 독해는 논제파악의 완성 제시문 독해는 논제파악과 뗄레야 뗄 수 없다. 논제를 파악하는 것의 완성은 제시문에 대한 정확한 독해에 있기 때문이다. 논제는 대개 제시문을 어떤 의도에서 제시한 것인지, 제시문이 어떤 문제의 상황을 다루는 것이며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안내한다. 논제의 요구를 바탕으로 제시문을 독해할 때 정확한 접근이 가능하다. 반면 제시문 분석이 논제의 요구를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제시문에 대한 독해가 논제의 요구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곤 하기 때문이다. 논제와 제시문을 연관지어 종합적으로 파악할 때 논제의 요구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제시문 독해는 항상 논제의 요구를 먼저 읽은 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제시문이 논제보다 먼저 제시되는 경우가 많은 데 가급적 논제를 먼저 읽어 방향을 가늠한 후 제시문을 독해하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고 효과를 높이는 방법이다. 독해가 불가능한 제시문이 출제되진 않아 평소 다양한 독서를 통해 독해 능력을 키운 학생이 아니라면 여러 유형의 제시문을 읽어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은 고교 교과 과정을 뛰어넘는 난해한 글이 제시되진 않는다. 어렵고 꼬여 있는 듯 보이는 제시문이라도 핵심어와 핵심 문장을 찾고 하나하나 풀어 가면 의미 파악이 가능하다. 어느 한 구절이라도 의미 파악에 있어 실마리를 찾았다면 이를 통해 전체의 윤곽을 찾을 수 있다. 쉬운 글이라도 안이하게 접근하는 것이 문제다. 표면적인 의미만 파악하는 것은 자칫 논제의 요구에 비추어 적절한 독해가 아닌 경우도 있다. 논제의 요구와 다른 제시문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문장 뒤에 숨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하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을 알고 면밀히 전후 상황을 살펴야 한다. 제시문이 정답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펼칠 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제시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제시문의 견해가 정답인 양 제시문에 끌려가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제시문이 주어진 의도는 전체적인 범위를 한정하고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함에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펼치고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주장을 제기하라는 것이 논제의 본질적인 요구다. 제시문의 주장을 지나치게 따라가 많은 부분을 인용하거나 제시문의 사고에 한정돼 주장을 펼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반대로 제시문을 독해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이 섰다고 하여 편견과 선입견에 기대 제시문을 파악하는 것도 문제다. 제시문 독해도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자칫 자신의 주관에 기대 독해에 나설 경우 오독하거나 문제의 맥락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제시문 독해가 목적은 아니다. 제시문을 활용해 논제의 요구를 서술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제시문 독해는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넘어서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해당 제시문의 견해에 대한 어떤 반론이 가능한지, 다른 관점은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 두며 읽어나갈 필요가 있다.

선진실업교육현장을 가다 <7> 영국

영국의 직업교육은 유럽내 다른 국가들보다 늦게 시작된다. 만 5세부터 시작되는 의무교육은 초등학교(Preparatory) 6년, 중학교(Secondary School) 5년으로 16세까지 모두 11년간 실시된다.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대학진학 또는 직업교육 등의 구분없이 모두 같은 교육을 받게 된다. 국내 사정과 별반 다를 바는 없으나 유럽내 인접한 직업교육 선진국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17세가 되면 학생들은 일반 대학 또는 직업학교인 칼리지(college)에 진학을 하던 지 취업을 선택하게 된다. 이때 취업을 하는 학생들은 아무런 직업교육도 받지 않은 채 산업현장에 뛰어드는 셈이다. 이렇듯 학생들에 대한 직업교육의 천대(?)는 최근 영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교육제도 실패를 공언하고 나서게 된 하나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영국내 17세 청소년 기준으로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30%, 직업교육 또는 훈련 과정을 받는 학생들이 15%이다. 특히 아무런 기술도 없이 취업한 청소년들은 25%이상이며, 17세 실업률도 25.5%나 되고 있다. 이는 저소득층 출신의 학생들이 직업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방황하거나 탈선을 조장하는 원인으로 꼽히면서 지속적으로 정책변화가 제기됐었다. 이에 따라 영국 정부는 오는 2013년부터 의무교육을 현행 16세에서 18세로 확대하는 한편 이 시기에 대학진학을 원하지 않는 학생들에 한해 직업교육을 전폭적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원래 영국 교육정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의무교육을 ‘학교’에 한정시키지 않는 것에 있었다. 영국이 지난 1944년 제정한 교육기본에는 의무교육 범위에 대해 ‘학교 또는 그외의 형태’로 규정했을 정도로 학생들이 산업현장의 실무교육 등 직업교육을 의무교육으로 중시했었다. 이에 따라 한동안 직업교육을 천대하면서 발생된 청소년 범죄 등 갖가지 사회적 문제를 의무교육확대를 통한 직업교육 실시로 바꿔보겠다는 전략으로 성공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이에 반해 영국의 고등 직업교육은 유럽내 다른 나라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수준의 현장중심의 실무교육으로 대표된다. 특히 칼리지(college)로 통하는 고등 기술교육과 산업현장내 직업교육은 평생교육(Further Education)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잘 돼 있다. 현장에서는 이론보다는 직업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교육 중심으로만 실시된다. 직업교육 칼리지(Further Education College·FE College)는 대부분 직업 교육 재정 지원 협회(Further Education Funding Council), 스코틀랜드 교육 산업부(Scottish Office Education and Industry Department), 북아일랜드 교육부(Department for Education in Northern Ireland) 등의 정부 기관으로부터 보조를 받는 공립으로 무상 또는 소정의 등록금만 내면 된다. 또 각각의 직업 교육 과정들은 여러개의 산업체와 연계돼 있어,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즉시 활용가능한 최신 기술을 중심으로 교육한다. 모든 직업 교육과정에는 필수코스로 일정 기간의 현장 실습이 포함돼 있어 학생들은 현장 실습을 통해 실무적인 능력을 갖추게 되며 이는 높은 취업률로 이어진다. 영국 직업교육 과정의 또 하나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융통성과 학위 과정과의 연계성이다. 상당수 직업 교육 과정은 입학 요건이 까다롭지 않으므로 현재 교육 정도 또는 졸업장에 구애 받지 않고 입학이 가능하다. 특히 언제라도 실무 교과목 A-Level (Vocational A-Level), 국가 자격증 과정 (National Diploma·ND)이 고급 국가 자격증 과정(Higher National Diploma·HND) 등의 직업교육 과정을 마치면 학사 과정에 입학하거나 편입할 수도 있다. /최종식·김대현기자 dhkim1@kgib.co.kr 2013년부터 16세→18세로 의무교육 확대 영국 정부는 오는 2013년부터 현행 16세까지의 의무교육기간을 18세까지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이면 내년, 2008년에 중학교를 입학하는 아이들이 이 정책의 첫 대상자가 된다. 영국의 의무교육 연령은 지난 1880년 10세로 시작해서, 1893년 11세, 1899년 12세, 1918년 14세, 1947년 15세, 1972년 16세로 늘려 왔고, 이번에 18세로 늘리면, 40년만의 확대가 된다. ‘청소년 직업훈련’이라는 측면에서 ‘18세 의무교육’ 이라는 것은, 전혀 새로운 시도도 아니다. 영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청소년 직업교육 또는 훈련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끊임없이 제기돼 왔고, 수차례에 걸쳐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16세에 의무교육이 끝나고 대학진학을 꿈꾸며 후기 고등학교 과정에 진학하는 아이들은 대체로 부유층 자녀들이며, 16세에 학업을 포기하는 아이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이다. 18세 의무교육이 실시되면, 지금까지 정부가 제공하던 청소년 직업교육을 외면해왔던,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집중적으로 압력이 걸리게 된다. 그동안 현장 직업 훈련생을 받아들이는 회사들이 대체적으로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단순노동에, 제대로 된 ‘가르치는 과정’이 없어 ‘직업훈련’이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을 데려다가 ‘부려먹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갈만한, 또는 가고 싶은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회사들을 만들어 놓고 의무교육을 하면 좋지만, 옛날 같은 시스템 그대로 두고, 의무교육으로 만들어 강제로 가게 한다면, 아이들은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 동안 실패를 거듭해왔던 청소년 직업훈련 정책들은 ‘사업’의 수준이었지만, 이번처럼 ‘법령’ 수준으로 만들어지면, 그 후유증은 상당히 복잡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최종식·김대현기자 dhkim1@kgib.co.kr /사진=김시범기자 sbkim@kgib.co.kr

선진실업교육 유럽을 가다 <6> 프랑스(2)

프랑스의 직업교육은 지속적인 진로 상담을 통해 완성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이 장래 희망을 구체화하기 시작할 때부터 재취업을 희망하는 언제든지, 누구라도 직업을 완성할때까지 지속적인 진로 상담을 통해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준다. 프랑스의 진로 상담은 의무교육인 중학교(꼴레쥬·college) 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내 모든 중학교에는 진로 상담사가 상주하고 있다. 이들 상담사들은 교직 외에도 별도의 상담과 진로 등 관련 학과를 전공한 전문가들이다. 이에 따라 상담사들은 학생들이 학업을 모두 마친 뒤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당장 중학교를 졸업한 뒤 실업·공업 또는 인문계 고교중 선택해 진학할 수있도록 해준다. 중학교 진학과 함께 장래의 직업과 이에 따른 관련 정보를 개인별·맞춤식 특별 상담을 통해 제공받는 셈이다. 이와는 별개로 모든 중학교에서는 매년 수차례씩 다양한 직업전문가를 학교로 초빙, 직업홍보 등의 교육을 실시하면서 진로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중학교 과정에서 학생들의 직업관을 확고히 심어줌으로써 청소년 시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을 떨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본격적인 진로 상담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프랑스에는 동네마다 소규모 진로 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진로상담센터에서는 지역내 학생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진로정보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교육청을 통해 학생 개인별 성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성적관리를 받을 수 있으며, 지역내 학생들이 모여 스터디 그룹 등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 ‘공부방’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이같은 진로상담센터는 적은 규모의 동네별 센터로 그치지 않고 각 구(Arrondissement)별 상담센터는 물론 시별로도 상담센터가 운영된다. 상담센터의 기본적인 역할은 학생들의 진로 선택과 그에 따른 성적관리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정보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상담센터는 관내 기업들이 제공하는 구인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 관리하며 센터 이용자들과 연결시켜 주는데 지역에 국한된 기업과 취업정보 등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상담센터별 동네→구→시→국립 상담센터로 갈수록 다양한 구인·구직 직업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중학생의 경우 실업·공업 또는 인문계 진학을 위해 상담센터를 찾으면서 이론적인 또는 실제 상담을 통한 진로정보를 받을 수 있지만 고교과정 이후부터는 구직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모가 커질수록 대학 도서관에 버금가는 자료와 시설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용객들 역시 대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모든 상담센터에서는 모든 상담학생들에 대한 직업관과 상담 내용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용객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와 자료 등을 수시로 업데이트해 제공한다. 또 모든 상담센터는 교육청이 운영하면서 중·고교는 물론 대학까지 상담센터 직원이 상주·또는 수시로 방문, 진로선택에 있어서 학교와 연계한 실질적인 중계자 역할을 하고 있다. 파리 CIO(Centre Dinformation Dorientation·파리 상담센터) Solenne Pavard(쏠렌느 빠바르) 센터장은 “프랑스의 경우 학생 개인별 성적을 교육청에서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와 상담센터가 이를 공유해 학생진로지도에 유기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세부적인 도움까지 줄 수 있다”며 “중학교부터 직업을 선택할때까지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개인의 능력과 희망 직업에 근접할 수있도록 하는 것이 프랑스 교육의 목표다”라고 말했다. /최종식·김대현기자 dhkim1@kgib.co.kr <실벵 드 블릭께르 프랑스 국립직업정보원 상담사> “학업과 진로선택 연계 맞춤식 직업정보 제공” “학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합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ONISEP(국립직업정보원). 교육청이 운영하는 직업상담센터로 학교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이기도 하다. 이곳은 파리내 전체 중·고교를 비롯 대학과 연계, 학생들의 개인적 성적, 성향과 재능 등의 상세 정보가 수집돼 있다. 또 파리와 인근 지역 기업에 대한 구직 현황까지 구비돼 있다. 이에 따라 하루 평균 50~100여명 이상의 학생 등이 진로 상담과 구직을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그러나 모두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는 것만은 아니다. 일선 학교에서는 소위 문제 학생 등의 상담을 이곳에서 받도록 하고 있다. 센터내 심리상담사가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부모 또는 교사의 손에 이끌려 상담을 받는다. 또 센터 자체적으로 직업 체험프로그램을 운영, 방과후 또는 방학중 기업 등의 견학과 기업 전문가를 초빙해 설명회 등을 갖기도 한다. 이처럼 이곳은 진로를 위한 전문기관으로 일선 학교와 함께 연계해 학업과 진로선택을 완성시켜 주는 또하나의 학교로 자리잡고 있다. ONISEP 상담사 Sylvain De Bleeckere(실벵 드 블릭께르)는 “어릴때부터 성적과 장래 희망 등을 고려한 맞춤식 직업정보를 줌으로써 빨리 진로를 선택하면서도 다양한 기회를 가지는 셈이다”라고 말했다./최종식·김대현기자 dhkim1@kgib.co.kr

<이해웅의 입시전략>2008학년도 대입 논술 대비법 <1>

[기획의도] 등급제로 진행된 2008학년도 수능이 끝났다. 수능 변별력 상실과 등급제의 허망함으로 예상했던 대로 논술이 올해 입시의 화두로등장하고 있다. 평상시보다 등급이 나오지 않은 수험생들에게는 마지막 역전의 기회로, 본인이 원하는 등급을 받은 수험생들에게는 동점자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부담으로 논술은 우리 앞에 다가서 있다. 생소하고 부담스러운 논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막연해 하는 수험생에게 도움 을 주고자 특집을 마련했다. 논술 유형별로 대학을 구분하고, 그 준비 방법을 소개하려 한다. 모든 대학의 논술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내가 지원하려는 학교를 그룹화 해서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수능은 끝났지만 입시는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마무리를 잘해서 반드시 목표한 대학에 진학하길 기원한다. [들어가며] 논술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인식하자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2008학년도 새로운 입시는 내신, 수능, 논술의 3중고로 불렸지만 사실은 상위권 대학의 ‘수능+논술’전형, 일부 우선선발을 중심으로 한‘수능 중심’ 전형과 중하위권의 ‘내신 중심’전형의 세 전형으로 대변되는 것으로 끝나가고 있다. 수능이 등급제로 치러지면서 예상했던 모든 문제점을 노정한 이 시점에서 수험생들은 논술을 실시하는 대학에 지원하는 것이 마지막 ‘패자부활전’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자신의 수능 등급보다 상위 대학을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기회이고, 수능 등급에 맞추어 진학하려는 학생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물론 일부 학생들은 논술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향지원으로 입시를 끝내려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짧게는 1년 길게는 6년 이상을 매달려 온 입시에서 손해보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최소한 수능 등급에 맞는 대학에는 진학을 해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를 예로 들어 보면 수능이 등급제로 바뀌면서 수능으로 구분할 수 있는 학생들의 급간이 점수제에 비해서 줄어들었다. 고려대의 경우, 수능환산점수로 만점인 학생이 문과의 경우 대략 1,600명, 이과는 760명 정도가 예상된다. 만점자도 논술 점수가 부족하면 불합격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표1> 참고) 논술 채점의 구조를 이해하자 고려대 법대에 지원하려는 수험생의 경우 다음과 같은 수능과 논술의 상관관계를 갖는다.(<표2> 참고) 고려대는 수능 400점 만점, 논술 100점 만점에 기본점수 95점으로 합격생을 선발한다. 물론 내신이 500점 들어가지만 사실상 내신 차이가 미비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무시하도록 하겠다. 물론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고려대 논술 채점이 9등급으로 진행되고 100점 만점과 95점 최하위 점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각 등급 간의 배점이 대략 0.5점(전형 총점 1000점 만점 기준)이 된다. 그리고 논술 시험 결과와 수능을 합해서 합격 커트라인이 497.5가 된다고 가정하자.(물론 이는 순수한 가정이다. 커트라인은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커트라인의 주요 변수는 지원자들의 수능점수와 논술점수이다.) 위의 조건에 따라 최종 결과를 예상해 보면 수능 400점 만점을 받은 수험생도 논술에서 6등급 이하를 받게 되면 불합격이 된다. 반대로 수능 398점인 수험생이 논술에서 1등급을 받으면 합격이 가능하게 된다. 논술 고득점이 필요하다 수능 변별력의 약화로 논술은 기본점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었다. 논술 고득점이 필수적인 요소이다. 각 학교별로 모두 준비할 수는 없다. 논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주어진 시간에 모든 학교의 논술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므로 논술을 실시하는 대학들을 그룹으로 나누어 효율적으로 대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해웅 유레카논술아카데미 입시연구소장

논술은 실용적 글쓰기 2

논술은 학생들이 지닌 비판적 사고 능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 능력을 판단하는 일종의 통합적인 시험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채점 기준표를 보면, 비판적 사고 능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 논술 지도 교사들은 자칫 논리적 글쓰기 능력이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 난다할지라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논리적 글쓰기 능력은 논술에서 가장 기본이 된다. 이런 점에서 논술을, 자신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입증하여 자신의 견해와 반대 입장에 있는 보이지 않는 독자를 설득하는 글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다. 논술문이 논리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논리적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각 대학의 논술문 채점 기준표를 분석해 보면 논술 채점시에 ‘논리적 기준’이 매우 중요한 항목임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 요구하는 논리적 기준에는 ‘논지의 적절성’, ‘논의의 일관성’, ‘논거의 적합성’, ‘논증 방식의 타당성’ 등이다. 먼저,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을 펴는 것이 논지의 적절성이다. 논술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글이므로, 주장은 상대방이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둘째, 하나의 논점을 일관되게 유지하면서 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논의의 일관성이라고 한다. 글쓰기에서는 맨 처음에 화제로 삼았던 것이 서술해 나가는 과정에서 곁가지로 빠지거나 엉뚱한 화제로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셋째, 논술문은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글이므로 논거는 논술문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된다. 논거는 확실하고 풍부하며 사실이면서 대표성을 지녀야만 적합성 있는 논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논술은 사실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입증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글이므로 논증 방식이 타당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논증이라고 하는데, 논술문에서 제시되는 주장은 반드시 일정한 논증을 거쳐야 한다. 논증을 거치지 않은 견해나 주장은 일방적인 외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논증에는 연역적 논증과 귀납적 논증이 있고 논증의 종류에 따라 그것을 운용하는 규칙과 절차가 있다. 규칙이나 절차가 무시된 논증은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것이고, 이런 논증은 설득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좋은 논증이란, 전제의 수용가능성(Acceptability)과 전제의 결론연관성( Relevance) 그리고 전제의 적절 충분성(Sufficiency)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올바른 추론을 위해서는 논증의 형태를 알아야 하는데, 모든 논증은 크게 연역적 추론과 귀납적 추론으로 나눌 수 있다.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의 구별은 전제가 결론을 뒷받침하는 정도에 따른다. 전제가 결론을 끌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연역적 추론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전제는 결론을 뒷받침할 뿐 아니라 결론이 참인 것을 결정짓는다. 즉,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참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연역 추론에는 한 명제에서부터 다른 명제를 직접 이끌어내는 직접 추론 방식과 다른 명제의 매개를 통해 추론하는 삼단 논법(간접 추론) 방식이 있다. 반면, 전제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도가 불완전한 경우를 귀납적 추론이라 한다. 전제는 여전히 결론을 뒷받침하나 전제는 결론을 받아들이고 믿을 만한 것을 여길 근거를 제공할 뿐 완전하게 결론이 참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모든 참된 전제들로 이루어진 결론도 귀납적 논증에서는 참이 아닐 수도 있다. 이러한 귀납 추론에는 몇 개의 개별적인 사례에서 일반적인 명제를 이끌어 내거나 일반성이 적은 명제들을 근거로 하여 좀 더 일반성이 큰 명제를 이끌어내는 일반화 추론과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들과 어떤 측면에서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다른 측면에서도 유사할 것이라고 추론하는 유비추론이 있다. 이러한 연역 추론과 귀납 추론은 논증 구조를 분석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윤영진 (광명북고 교사)

비빔밥 논술 / 상식과 규범의 이면을 찾아야(미셀푸코)

최근 ‘미드’ 열풍을 주도한‘CSI 과학수사대’를 보면, 수사관은 범죄 현장에 숨어있는 단서를 찾아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포위망을 좁혀간다. 지나치기 쉬운 조그만 단서도 의심해 보고 이를 통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찾아가는 추리력이 매우 놀랍다. 이 드라마가 주는 재미는 범인 찾기 놀이를 통해 ‘범죄를 재구성’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미스터리 수사물을 통해 추리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 미셸푸코 /1926~1984 > 프랑스 철학자로 소위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로 분류된다. 그의 지적 관심은 철학뿐만 아니라 정신병리학, 심리학, 역사학 등 폭넓게 걸쳐 있었다. 대표작으로는《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1961)《 병원의 탄생》(1963)《 감시와 처벌》(1975)《 성의 역사》(1976) 등이 있다. →논제 우리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간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며 삶을 주기도 하지만, 그 어느 곳보다도 죽음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다. 병원의 긍정적 기능은 무엇이며, 한계는 무엇인지 써보자. →[푸코 Tip] 병원의 긍정적 기능은 상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국민보건의 측면에서 서술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접근할 때는 푸코의 문제의식에 따라서 써 보세요. 상식적인 생각을 뒤집어보고 타당한 근거를 찾는 방법이죠. 규율을 통해 죄수를 훈련하고 통제했던 감옥의 교화방법을 병원의 시스템에도 적용해보세요. # 어느 사회나 수많은 갈등을 안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정당 간의 대립이, 경제적으로는 노사 간의 갈등이, 사회적으로는 가치관의 갈등이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는 곳에 해결책이 있듯이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도 여러가지 접근방법이 있다. 법적으로 해결하자는 사람, 윤리와 상식으로 해결하자는 사람, 대화로 해결하자는 사람, 전문가의 견해로 해결하자는 사람, 힘으로 해결하자는 사람 등 그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어떠한 해결책이든 사태의 원인을 발견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것이다. 과학수사대가 범죄 현장의 단서로 범죄를 재구성하듯 주어진 문제의 단서를 가지고 문제의 윤곽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문제풀이의 기본전제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근대 철학의 포문을 열었다. 이 명제는 ‘인간의 사고’를 철학의 원리로 삼았다는 점에서 인본주의를,‘ 생각하는 이성’으로부터 세계의 진리를 출발시켰다는 점에서 과학적 합리성을 부여받았다. 친구들 사이의 말다툼에서도 합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개진하지 못하면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 비가 올거라 주장하는 학생과 점괘를 보니 오늘 비가 온다고 주장하는 학생중 여러분은 누구 말을 더 신뢰하겠는가. 과학은 자연을 숭배의 대상에서 앎의 대상으로 전환시켰고, 이로써 인간은 자연을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다. 이제 진리의 왕관은 신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주어졌다. 그러나 과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에덴동산의 행복을 얻지 못했다. 특히 세계 1, 2차 대전에서 보았듯이 과학기술의 발달에 영향을 받은 현대 무기는 전쟁터에서 민간인과 젊은 군인들을 학살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 무렵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념대결로 치닫기도 했다. 이후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들이 보여준 전체주의적 경향은 많은 지식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합리적인 인간의 판단에 따라 사회가 계속 진보할 것이라는 기대가 신기루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발생한 것이다. 합리주의에 대한 의혹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른다. ● 근대사회는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이러한 의심을 배경으로 미셸 푸코는 ‘근대의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탐구하였다. 데카르트가 말한 ‘의심할 수 없는 나’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특히 니체의 계보학을 본 따, 근대 초기 역사 속에서 사회가 근대의 개인들을 어떻게 만들어 냈는지 그 과정을 파헤친 방법이 독특하다. ‘니체의 계보학(genealogy)’이란 학문을 전개한 방법론을 말한다. 마치 나의 뿌리를 알기 위해 가문의 족보를 살펴 올라가는 방법과 유사하다. 예를 들어 가게에서 산 음료수의 표시성분을 보는 것보다 생산 공장에 가서 어떻게 만드는지를 보는 것이 그 음료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푸코는 ‘나는 누구인가’를 아는 것보다 ‘나는 어떤 역사속에서 태어났는가’를 아는 것이 더 정확하게 나의 탄생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푸코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들을 뒤집어 볼 것을 제안한 것이다. 거울 속의 나는 진짜 ‘나’가 아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뒤집어진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경험한다. 하지만 과연 거울이 없다면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까? 혹시 거울이 ‘나는 이렇게 생겼다’고 속이는 것은 아닐까? 나는 결국 거울이 보여준 나이지 않은가? 이처럼 푸코는 인간의 의식과 지식을 일종의 ‘거울의 반영’으로 이해했다. 나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거울이란 사회와 무의식을 지배하는 권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러한 푸코의 사고법은 논술고사에서 제시된 문제를 해결하고 주장의 타당성을 밝히는 서술의 방식에 활용될 수 있다. 우리들의 신체(몸)에 어떻게 권력이 작용해 왔는지에 대한 푸코의 생각을 따라가보자. ● 고문에서 규율로 통제되는 육체 《감시와 처벌》은 ‘감옥의 역사’라는 부제가 붙은 그의 대표적 저서다. 푸코는 이 책에서 우리 사회의 권력이 개인의 신체를 어떻게 처벌하고 감시하였으며, 근대적 인간의 모습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학교, 공장, 정신병원, 감옥 등이 모두 비슷한 시스템을 갖춘 제도라고 말한다. 푸코에 의하면 이 기관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저 교육하고, 노동하고, 치료하고, 교화하는 단순한 장소가 아니다. 그곳들은 모두 규율을 통하여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는 규율제도들인 것이다. 사극을 보면 역모의 자백을 받기 위해 고문을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오늘날과 비교해보면 매우 잔인한 재판과정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했을까? 푸코는 이러한 끔찍한 사법행위가 자행된 이유가 그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절대주의 권력의 속성 때문이라 말한다. 절대 권력인 왕은 개인의 신체에 가할 수 있는 위협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극대화하여 복종시키려 한 것이다. 고문을 통한 공포의 조성은 체제에 저항하는 민중을 통제함으로써 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일종의 정치행위였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 공개처벌과 신체형벌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자각이 일어났다. 민중들은 끔찍한 고문을 보면서 죄수들을 동정하거나 사형수의 최후 변론에 동요되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던 탓이다. 당시 계몽주의자들은 권력에 대한 공포감을 줄이면서도 민중의 저항을 제어할 새로운 사법체계를 고민했다. 그 결과 고문과 같은 신체형벌은 점차 감소하고 권력의 신체에 대한 구속력도 완화되었다. 그러면 인간은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났을까? 이제 권력은 고문이라는 직접적 고통이 아니라‘훈육을 통한 신체의 통제’로 나아간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죄인에 대한 인권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진보된 사법행정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푸코가 보기에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신체에 가해지는 권력의 작용이 변화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처벌이 고문에서 교화로 이동했다면, 그것을 집행할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이 바로 감옥이다. 감옥은 간수가 죄수들을 관리할 수 있는 건축기술의 발달을 낳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 할 수 있는 효율적인 건축구조가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죄의 경중에 따라 구속할 것인지 말 것인지, 구속한다면 얼마나 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이에따라 범죄와 그 처벌에 대한 법률지식이 발달하였다. 이처럼 푸코는 감옥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여 권력과 지식의 발달이 어떻게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논리적으로 밝혔다. 푸코에 따르면 법학의 발달은 사법체계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근대사회가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자유와 합리성이 보장된 민주사회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푸코는 바로 그러한 생각을 비틀어준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사회가 사실은 ‘감옥’처럼 규율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닐까 하고. 그러한 의문 속에 푸코는 감옥의 규율이 군대, 학교, 공장, 병원 등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감옥에서 뿐 아니라 군대, 학교, 공장, 병원 등 그 어느 곳에서든 일정한 시간에 맞추어 행동한다. 현실을 떠올려 보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각하지 말고,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규율들은 직장 생활에서도 환영받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교는 미래의 직장 생활을 위한 규범을 가르치는 곳이다. 물론 사회적 규범은 약속으로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그 규범을 어길 경우 처벌을 받는다. 그것은 합리적인 내가 스스로 정한 것이기에 지켜야 한다. 스스로 내린 벌이기 때문에 달게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러한 논리도 사실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규율을 합리화 하려는 논리에 불과하다고 역설한다. 과연 푸코처럼 근대사회를 분석하는 방식이 어떤 도움이 될까? 푸코는 근대 초기 사회를 분석하면서 현대 사회가 그때로부터 뿌리 내리고 있음을 밝히고자 했다. 마치 족보를 들추듯 우리들이 이렇게 살게 된 연원을 살핀 셈이다. 푸코를 따라가 보면, 현대사회의 갈등 구조들이 그 뿌리가 깊어 단순히 대화나 법적 장치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구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백화점에 숨어 있는 자본권력의 손짓 이제 사회 속에서 자본권력이 일상의 영역으로 들어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 온 과정을 살펴보자. 예를 들어 쇼핑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백화점은 어떨까? 고대나 중세에도 시장과 상점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백화점같이 대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서구사회의 경우 백화점은 19세기 중반이후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왜 19세기 중반부터 집중적으로백화점이 생겨났을까? 이는 산업혁명으로 생산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대량소비라는 출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백화점은 생산과 소비를 대량으로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런데 백화점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대량소비가 가능하려면 인구가 집중된 도시가 필요하다. 도시인구를 백화점으로 연결하는 교통기관의 발달도 필수적이다. 또한 백화점이라는 거대상권을 형성하기 위하여 자금조달을 위한 주식회사와 금융기관의 발달도 전제되어야 한다. 물론 백화점이란 판타지공간을 만들어낼 건축기술의 발전과 신문과 같은 광고 매체의 발달도 있어야 한다. 이처럼 백화점은 단순한 쇼핑공간이 아니라 현대인의 삶을 변화시킨 수많은 기술이 응축된 공간이다. 백화점의 등장은 소비자들에게 소비와 선택의 자유를 열어 주었다. 우리는 백화점에 가서 멋진 제품 속에 자신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소비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나 백화점은 단순히 소비자의 편의를 위해 탄생한 곳이 아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입장에서는 진열된 상품들을 주체적으로 구경하는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상품의 눈으로 볼 때는 지갑을 열 예비 구매자를 구경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백화점에서 주체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윤의 도구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대량소비의 사회에서 광고로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자극하고, 그 욕망의 기호에 따라 소비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백화점의 판타지는 판매를 통해 이윤을 실현하는 신기루일지도 모른다. ● 소비대상으로 전락한 육체 우리들의 육체가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육체라는 점은 장 보들리야르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소비의 사회》에서 주객이 뒤바뀐 소비의 대표적 사례로 인간의 육체를 말한다. 중세사회에서 육체는 종교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금욕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근대사회는 금욕의 장막을 걷어내고, 육체를 숭배의 대상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오늘날 얼짱문화와 성형의 유행은 아름다워지려는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 육체를 소비의 대상으로 만드는 거대하고 은밀한 사회 구조의 결과이다. 소위 예쁜 여자는 착하며, 성공한다는 드라마 속의 신데렐라 이야기는 끊임없이 외모에 대한 소비를 자극한다. 즉 육체와 외모는 나의 실체가 아니라 소비사회가 만들어 놓은 관념이며 기호일 뿐이다. 오늘날 웰빙문화, 얼짱 문화, 성형유행 등은 단순히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본성의 발로가 아니라 대량 소비 사회가 창출한 시장이 가진 특징일 뿐이다. 그러니 예뻐지고 잘 살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 논리가 아니라 배후를 통찰하자 이처럼 푸코와 보들리야르의 주장은 사회와 인간을 인간중심으로 바라보았던 전통적 시각에 반기를 들고 있다. 데카르트의 ‘나’는 세계의 중심인 주체이며, 합리적 주체로서 인간은 세계를 판단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근대 이후의 발전은 모두 이러한 인간관에 기초했다. 그러나 푸코는 이를 뒤집는다. 친구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친구가 말하는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심전심처럼 친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푸코의 계보학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사회구조의 배후가 무엇인지를 묻고 있다. 물론 푸코의 주장이 어떤 정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푸코의 문제의식과 뒤집어 생각해보는 사고방식은 일상적인 생활과 사회에 대하여 규범과 상식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할 때 도움이 될 것이다.

비빔밥 논술

영상토론(映像討論) <오만과 편견>논술로 감상하기 18세기 영국 사회를 들여다보니 결혼은 재산획득과 신분 상승을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경우가 허다하다. 21세기 한국 사회를 들여다 보면 좀 다를까?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입으로는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 미화하지만 실제로 결혼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기반을 어느 만큼 보장해 줄 수 있는지 저울질한 연 후에야 하는 일종의 보험 상품 같다. 너무 지나친 풍자일까? <오만과편견>의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은 생각할 수도 없다며 조건을 중시하는 전통적 결혼관에 맞선다. 그는 사랑의 결실인 결혼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가지만,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자신에 대한 ‘오만’과 타인에 대한 ‘편견’이 방해꾼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베넷가의 자매들을 보며, 나는 과연 누구와 가까운지 견주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김경미(상임연구원) CF 광고에서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미녀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은 재벌이 아닐까? 유명 연예인들과 재벌의 결혼 소식은 언제나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몇 달 전에는 1000억 재산가가 자신의 딸을 대신해서 공개구혼을 해 화제를 모았다. 공개구혼에는 수백명의 남성들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 걸 보면 여성이나 남성이나 부자와 결혼하기를 꿈꾸기는 마찬가지인 듯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결혼’이 장사처럼 거래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사실 결혼의 이중성이 꼭 유명 연예인이나 재벌가 사이에서만 드러나는 문제는 아니다. 정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관문을 통과할 즈음에는 멈칫거리며 자신의 배우자를 전혀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돈 많은 신붓감, 신랑감, 사윗감, 며느리감이 나타나면 절로 눈이 밝아진다. 고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엘리자베스의 사랑과 결혼을 보면서, 과연 우리 안에 결혼에 대한 이중잣대가 없는지 곱씹어볼만 하다. ● 결혼은 사랑의 종착역?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라고. 더불어 결혼은 사랑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라고. 사랑과 결혼의 관계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사랑은 결혼의 전제조건이고, 결혼은 더 큰 사랑을 만들기 위한 출발점? 제인 오스틴의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오만과편견>을 보면 그 비유가 꼭 들어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오만과편견>은 18세기 영국의 가난한 시민계층 베넷가(家) 사람들 이야기를 화면에 담았다. 베넷가의 안주인 베넷부인은 딸만 다섯인데 딸들의 결혼문제야말로 일생일대의 고민거리다. 다섯 딸의 이름을 줄줄이 열거해 보면, 제인, 엘리자베스, 키티, 메리, 리디아다. 베넷 부인은 딸들의 ‘유리한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언제나 분주하다. 짧게 말하면 <오만과 편견>은 ‘결혼’을 두고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담은 이야기다. 그런 베넷부인이 호들갑을 떨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긴다. 젊고 부자인 빙리 씨가 이웃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베넷 부인은 이것이야말로 딸들의 ‘유리한 결혼’을 위한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어떻게 해서든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 동분서주한다. 빙리 씨에게 자신의 딸들을 소개시키는 일만큼 중요한 일은 없으므로. 그런데 대체‘유리한 결혼’이란 어떤 결혼일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진작 알아차렸을 것이다. 베넷부인에게 유리한 결혼이란 자신보다 훨씬 부유한 사람과 결혼해 평생을 편하고 안락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가족들의 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결혼이다. 이렇게 단정하고 보니 베넷부인은 돈만 밝히는 속물로 보인다. 아니, 베넷부인만 이런 ‘유리한’ 결혼을 바란 것은 아니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를 제외한 나머지 딸들도 그런 결혼을 꿈꾸었고, 베넷가의 주변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비단 여성들만 이런 유리한 결혼을 꿈꿨던 게 아니라 남성들 역시 부유한 여성이나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여성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그렇다면 당시 영국 사람들은 모두 속물? 하나의 일반적 관념은 그 사회상에서 비롯된 것이니, 영화에 나타난 사람들의 결혼관은 당시 영국 사회의 한 단면이 사실적으로 반영된 것이다. 당시 영국 사회에서 결혼이 어떠한 의미를 지녔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들을 이해하기 한결 수월할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장남만 부모의 재산과 지위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그 외의 아들들은 군인이나 목사가 되어 귀족의 지위와 생계를 근근이 유지해 나가야 했다. 그러니 장남 이외의 아들들이 부를 누릴 수 있는 기회란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은 상대와 결혼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딸들은 어떤가? 차등없이 균등하게 상속받을 수 있었을까? 딸들은 일정한 조건에 맞는 경우에만 상속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럴 때에도 결혼을 해야 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당시 영국 사람들은 결혼의 힘을 빌지 않고서는 부나 높은 지위를 손에 넣기가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사람들은 돈 많고 지위 높은 사람과 결혼하려 들 수밖에. 사람들은 사랑없는 정략결혼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여성들의 경우 남성에 비해 재산을 상속받기도 어려웠고, 경제력 있는 직업을 갖기란 거의 힘들어 결혼에 목을 맬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군인도, 목사도 할 수 없었으니. 결혼의 첫째 조건이 사랑이라는 엘리자베스의 말이 친구인 샬롯에게는 한가하고 사치스러운 소리로 들렸다. 샬롯은 엘리자베스가 사랑을 느낄 수 없다며 거절한 콜린스와 결혼했고, 엘리자베스는 그런 샬롯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엘리자베스에게 샬롯이 일침을 놓는다. “사람들 모두가 로맨틱해질 여유가 없는 거야. 덕분에 안락한 집에서 보호받으며 살게 됐어. (중략) 난 스물일곱이야. 돈도 없고 미래도 없어. 게다가 난 이미 우리 부모님께 짐만 되고 있단 말이야! 난 그게 두려워!” 여러분이 샬롯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 18세기 영국, 21세기 한국 자, 이제 영화밖으로 나와 볼까? 18세기 영국을 떠나 21세기 한국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는 사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또한 스스로 능력만 갖춘다면 직업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여성들에게도--물론 논란의 여지야 있지만--직업적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 지위와 재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널려 있으니, 엘리자베스의 말처럼 사랑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 사회의 결혼세태를 바라보면, 무언가 불순한 것이 끼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결혼의 외피는 사랑인데, 그 외피를 들추고 보면 수많은 조건이 내걸려 있다.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위해, 신분 상승을 위해 결혼 조건을 보는 일은 다반사다. 21세기 한국의 상황은 18세기 영국의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1등 신랑감과 1등 신부감은 재력과 학벌이 좋은 사람이다. 각종 결혼 정보 회사에서도 재력이나 학벌을 최우선으로 꼽는다. 물질적으로 넉넉해지고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졌는데도 사람들은 부자나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기를 갈망한다 왜 그럴까? 예나 지금이나, 영국에서나 한국에서나 결혼이 사랑의 결실이 아닌 재산 획득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렇게 이야기 하고 보니, 결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너무 부정적으로 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사랑보다도 재산과 지위만을 계산하여 결혼 결심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고집스럽게 말한다. 사랑이결혼의 첫번째 전제 조건이라고. 그러나 엘리자베스를 보니 오로지 사랑만을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삼는데도 그 결혼조차 순탄하기 어려운 듯하다. 사실 결혼을 하고 결혼 생활을 잘 이끌어 나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하다. 사랑 하나만으로 실제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너무나 버겁다. 결혼은 개인과 개인이 만나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 가족과 한 가족이 어우러져 또하나의 가족을 만들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의 경제적 사회적 요소의 차이로 여러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결혼이 낭만적일 수만은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재력이나 신분 등 외적 조건을 중시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를 지나 현대로 넘어 오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개인의 성품과 선택을 중시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사회의 위계질서나 가족의 화합만큼이나 나의 자유와 선택도 중요해졌다. 사랑에 대한 욕망도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조건만을 우선시 하는 전통적인 결혼관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또다른 새로운 결혼관이 생겨나고 있다. 결혼이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다며 동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결혼을 아예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앞으로는 조건이냐 사랑이냐가 아닌 다른 이유들이 결혼에 대한 기존 관념에 맞설지도 모르겠다. <오만과 편견>은 1813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 많은 나라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200여년이 흐른 뒤에도 그토록 사랑을 받는 이유는 결혼을 통해 전통적 가치관과 근·현대적 가치관의 충돌과 융합을 그렸기 때문이 아닐까? ● 엘리자베스의 결혼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엘리자베스는 사랑에 깊이 빠졌을 때에만 결혼을 할 생각이다. 전통적 결혼관이 지배적이었던 당시 상황에서 엘리자베스의 결혼관은 현실화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엄마가 부의 획득을 위해 친척인 콜린스와 결혼하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엄마가 콜린스와 결혼해 동생과 가족들을 가난에서 구하라고 애걸하는데도 엘리자베스는 사랑없는 결혼은 할 수 없다며 당차게 돌아선다. 이런 엘리자베스에게 전통적인 결혼관이 널리 퍼졌던 당시 사회 분위기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가 생각처럼 결혼을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랑을 제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결국에 가서는 다아시를 사랑하게 되고 둘은 결혼에 이른다. 그런데 둘이 처음부터 마음이 맞았던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오해 때문에 꽤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증오했다. 그리고 오해가 생긴 것은 두 사람 모두 자신에 대한 오만과 상대방에 대한 편견을 지녔기 때문이다. 둘은 첫인상만 보고 서로를 성급하게 판단했다. 첫인상만 보고 타인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는 오만이 발동한 셈이다. 그리고 첫인상을 가지고 내린 판단을 오랜 시간 동안 유지했다. 편견이 자리잡으면서 상대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해로 서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여느 연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런 점에서 <오만과 편견>은 하나의 연애담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런데 오만과 편견은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태도나 생각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종종 오만과 편견으로 사물이나 사람 혹은 상황을 잘못 판단하곤 한다. 여러분은 혹시 오만과 편견 때문에 오류를 범하거나 실수를 저지른 경험이 없는가? 그때 어떤 방법으로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었나? ● 영화 VS 소설 앞서 말했듯이 영화 <오만과 편견>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어떤 이들은 영화가 소설 내용을 제대로 농축하고 있다고 평하는 반면 원작의 본질을 흩뜨려 놓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소설의 줄거리와 거의 흡사하다. 하지만 소설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인 데 반해 영화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주인공으로 한다. 소설에서와는 달리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가 첫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또한 영화는 주인공들 사이의 성적 긴장감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오스틴 순수주의자들은 영화가 원작의 의도를 왜곡한다며 분노를 표했다. 그들은 오스틴이 소설에서 당시 사회적 관습과 형식을 표현하려 노력했는데 영화가 그것을 훼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를 재미있게 본 관객의 경우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영화가 전통적인 결혼관이 퍼져 있는 당시 현실과 낭만적 사랑을 갈구하는 주인공의 갈등을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고 있다고 호평한다. 소설은 언어를 통해 상황의 디테일을 표현하고 있지만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몸짓이나 옷차림새 등으로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고 말한다. 어느 쪽 입장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궁금한 독자는 영화와 소설을 함께 보며 직접 확인해보는 것은 어떨까? 하지만 누구든 쉽사리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 모름지기 예술은 예술을 발판삼아 나아가는 것일 테니.

< 대중문화로 논술하기 > 사람들이 10대 소녀 그룹들에 열광하는 까닭은?

요즘 ‘원더걸스’와 ‘소녀시대’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다. 올해 상반기와 하반기에 연이어 등장한 이들 소녀 그룹은 침체의 늪에서 좀체 탈출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한국 가요계의‘구세주’가 되어 있다. 두 그룹은 멤버 숫자, 음악 스타일, 캐릭터 등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그보다는 공통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두 소녀 그룹은 모두 10대 소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팬층은 30~40대 성인 남성들까지 폭넓게 걸쳐 있다. 이 두 가지 공통점이 요즘 연예계는 물론이고 대중 문화계 전반의 가장 큰 이슈로 떠올라 있는 상태다. ‘원더걸스’는 5인조이다. 16살 중학교 3학년 2명, 19살 고등학생 3학년 2명, 20살 대학생 1명이다.‘ 소녀시대’는 9인조이다. 17살이 1명, 18살이 2명, 19살이 6명이다. 완전히 소녀 일색이다. 두 소녀 그룹의 의상을 보면 ‘원더걸스’가 스트리트 룩이나 언더그라운드 씬의 패션을 하고 있고,‘ 소녀시대’는 그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정돈된 패션을 하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10대 소녀 멤버들의 앳됨, 건강함, 밝음, 명랑함을 최대한 강조하고 있다는 기본 전략은 같다. 이들 소녀 그룹을 또래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30~40대 성인 남성들이 좋아한다고 해서 방송사 뉴스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오마이뉴스의 조은미 기자는 ‘원더걸스’의 대표곡 ‘텔미’에 중독된 사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30대 김유식씨는 황당했다. 나이가 몇인데 10대 아이돌 가수 노래에 이렇게 빠지다니? 창피했다. 그런데 ‘텔미’ 중독자가 그뿐이 아니었다. 둘러보니 많았다.” 같은 기사는 ‘원더걸스’의 ‘텔미’가 열풍을 넘어 중독증으로까지 확산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심지어 중독단계까지 소개하고 있다. 1단계 중독은 ‘텔미’노래를 자꾸 듣는 것, 2단계는 ‘텔미’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3단계는 ‘텔미’ 뮤직비디오를 보고 ‘텔미’UCC 동영상을 찾아 보는 것, 4단계는 ‘텔미’ 댄스를 따라하는 것, 5단계는 ‘텔미’ 댄스 UCC를 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학교와 군대는 물론이고 경찰들도 따라하고 여러 직장의 중년 남성들도 ‘텔미’를 흥얼대거나 ‘텔미’ 댄스를 어설프게라도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기사는 1단계 중독이면 괜찮지만, 2단계 이상으로 넘어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30~40대 남성들까지 이들 소녀 그룹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음악 전문가들은 두 소녀 그룹의 대표곡인 ‘텔미’와 ‘소녀시대’ 노래가 모두 1980년대에 유행했던 음악 스타일을 복고풍처럼 차용해 쓰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에 덧붙여 특히 ‘텔미’는 곡이 쉽고 멜로디가 단순하며 어려운 창법도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텔미텔미테테 테테테 텔미’라는 후렴구가 신나게 반복된다. 한번만 들어도 후렴구를 금세 따라 부를 수 있고, 더욱이 댄스 동영상과 함께 보았다면 몸을 들썩이게 된다는 것이다. 댄스의 위력을 원인으로 꼽는 사람도 있다.‘ 원더걸스’는 ‘텔미’를 통해 일명 팔찌춤과 흔들흔들춤을 선보이고 있고,‘ 소녀시대’는 데뷔곡인 ‘다시 만난 세계’에서 일명 안녕춤과 꽃봉오리춤을 선보이고 있다. 두 소녀 그룹의 댄스는 확연하게 차이를 보이는데,‘ 소녀시대’의 댄스는 파워풀하고 화려하며 따라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반면, ‘원더걸스’의 댄스는 몸치라도 대충 따라 할 수 있게 간단하고 쉬운 동작이 반복된다. 어쨌든 두 소녀 그룹의 댄스는 10대 소녀들의 건강함과 섹시함이 뒤섞인 묘한 매력을 한껏 발산한다. 이 때문에 문화평론가들은 두 소녀 그룹에 대한 성인 남성들의 뜨거운 관심을 롤리타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롤리타 신드롬은 남성 어른들이 미성숙한 소녀에 대해 정서적으로 동경심을 갖고 성적으로도 집착하는 현상인데,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일명 ‘원조교제’나 일본의 경우 애니메이션 영화와 만화책 그리고 라이트 노블(light novel)이라 불리는 소설 등에서 광범위하게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는‘미소녀’ 캐릭터 열광까지 다양하게 적용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원더걸스’로 예를 들면, 그 이전까지는 한국 가요계의 여성 코드가 성인 남성들을 겨냥한 섹시 코드로 치달아왔다면, ‘원더걸스’로 인해 성인 남성들이 섹시 코드에서 귀엽고 앙증맞은 여동생 코드로 넘어 갔다고 진단한다. 다시말해 문근영 신드롬으로 확인되었던 그 열망이 지금 ‘원더걸스’와 ‘소녀시대’에 대한 인기로 재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경제적 구매력을 가진 30대이 상 남성들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위한 철저한 분석과 마케팅에 따른 결과라고 바라보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이들은 수년간의 기획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들 소녀 그룹의 멤버들이 갖는 별명만 해도 그렇다.‘ 원더걸스’는 민죽이, 태왕사유빈, 순수천사, 박여사님, 만두소희 등으로 불린다. ‘소녀시대’는 꼬마리더, 매력소녀, 흑진주, 티파니, 얼음공주, 명랑소녀, 사과공주, 막내공주, 귀염둥이 등으로 불린다. 이런 별명은 이들이 다양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드라마의 주인공들 같은 느낌을 준다. 요컨대 이들은 그냥 10대 가수가 아니라 10대부터 30~40대 남성들까지를 소비자로 포섭하는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 종합세트인 셈이다. 김종휘 문화평론-기획자, 방송인, 노리단 단장, 하자센터 기획부장. 저서 <일하며 논다, 배운다> <내 안의 열일곱> <너 행복하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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