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유예, 적극 검토할 필요있다

‘고용 있어야 노동 있고 기업 살아야 근로자 산다’, ‘대책은 나 몰라라, 사고 나면 일벌백계’, ‘벼랑 끝 건설업계 중처법에 죽어난다’. 14일 수원에서 열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결의대회에 중소건설인과 중소기업인 4천여명이 모여 이런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중대재해 불안감에 경영 의욕 사라진다”, “산재 예방 잘할 테니 사장 처벌 없애달라” 등의 구호도 외쳤다. 이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의 유예다. 한 차례 유예했는데 2년 더 유예해 달라는 것이다. 80만여 중소·영세기업은 준비가 덜돼 폐업, 도산, 해고의 악순환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회사가 안전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가 숨질 경우 경영책임자인 사업주를 무겁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 후 2년 만인 2021년 제정됐다. 법은 2022년 1월27일 50인 이상 사업장(건설업은 공사 금액 50억원 이상)부터 적용됐고,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간 유예 뒤 시행하기로 했다. 예정대로라면 50인 미만 사업장도 지난달부터 법이 적용돼야 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지난해 9월 중대재해처벌법의 전면 시행을 한번 더 유예 방침을 정했고, 국민의힘이 ‘2년 추가 유예’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 반대로 1월에 국회 통과가 무산된 법안은 오는 29일 본회의에서 결정된다. 중소기업계는 법 시행에 무방비 상태라고 하소연한다. 경총이 작년 말 1천53곳을 실태조사 했는데 적용 시한까지 이행이 어렵다는 기업이 87%였다. 전문인력이 없어서(41%), 의무 내용이 너무 많아서(23%) 등이 이유였다. 정부로부터 컨설팅을 받은 적이 없다는 기업도 82%나 됐다. 사업주들은 중대재해법의 애매모호하고 과도한 처벌 규정 탓에 범법자로 내몰릴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준비 부족과 무리한 법 시행으로 영세 사업장이 폐업에 이르면, 결국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 야당은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추가 유예 법안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중소·영세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체크하면서 미비·보완점을 찾아 안착할 수 있게 지원하지 않은 건 문제다. 2022년 산재 사고 사망자 874명 중 707명(80.9%)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나왔다. 이런 상황이면 2년 더 유예한다고 달라질 게 없다. 정부는 취약 기업에 기술과 시설을 지원하고 안전보건관리체계와 같은 재해예방 인프라 구축에 도움을 줘야 한다. 업계도 노동자 안전을 위해 조직을 정비하고 투자를 늘려야 한다.

[사설]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발굴, 국가 책임 회피 개탄스럽다

경기도가 안산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에 대한 유해 발굴을 추진한다. 당초 도는 인권침해의 핵심 주체가 국가인 만큼 국가가 유해 발굴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는데 유해 부식 가속화 등의 시급한 상황과 피해자단체·시민단체 요청 등으로 직접 나서기로 했다. 도는 유해 발굴 작업을 위해 이달 초 9억원을 예비비로 긴급 편성했다. 3월 초부터 1년5개월간 발굴·조사·감식·봉안 등의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발굴 대상 지역은 안산시 선감동 산37-1번지 총면적 2천400㎡의 묘역으로, 114기의 선감학원 희생자 유해가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감학원 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부터 1982년까지 부랑아 교화라는 명분 아래 4천700여명의 소년들에게 강제노역, 구타, 가혹행위, 암매장 등 인권을 유린한 사건이다. 선감학원에선 1946년 경기도로 관할권이 이관돼 1982년 폐쇄될 때까지 인권침해 행위가 계속됐다. 이 사건은 ‘아동판 삼청교육대’나 다름없다. 1980년대까지 국가폭력에 의한 잔혹한 인권유린이 있었다니 충격적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22년 9월과 2023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해당 묘역의 일부 분묘를 시굴해 희생자 유해로 추정되는 치아 278점과 고리·단추 등 유품 33점을 발굴했다. 과거사위는 선감학원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아동인권침해’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선감학원의 핵심적인 주체인 국가가 희생자 유해 발굴을 비롯한 진실규명을 주도하고, 경기도는 협조하는 역할을 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주관 유해 발굴 사업 예산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국가 주도의 유해 발굴이 어렵게 됐다. 정부는 이후 무책임하게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경기도가 나서게 된 것이다. 묘역이 40년 이상 방치돼 유해 멸실 우려가 있는 데다 신속한 발굴을 통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선감학원 사건은 명백한 국가폭력”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권고에도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경기도에서 유해 발굴에 나선 것은 다행이다. 경기도는 올해 선감학원 사건 피해 지원 대책으로 피해자 지원금과 의료 지원을 포함해 선감학원 옛터 보존·활용 연구, 추모비 설치, 희생자 유해 발굴 등에 예비비를 포함해 총 22억5천만원을 편성했다. 반면 위법적 부랑아 정책으로 인권을 짓밟은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고 아무 조치도 없다. 가해자인 국가는 책임을 인정하고, 선감학원 희생자의 명예 회복과 상처 치유에 적극 나서야 한다.

[사설] GB 규제 완화, 느리지만 의미 있다

개발제한구역(이하 GB) 규제가 일부 완화됐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이다. 기존 건축물을 1회에 한해 신축할 수 있게 했다. 농업 생산 현장에 간이 화장실도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이 밖에도 완화된 부분이 여러 곳이다. 건축물을 신축할 때 필요한 진입로 개설을 허용했다. 제설시설 설치에 필요한 도로의 범위를 확대했다. 음식점과 분리된 토지에 주차장 설치를 허용했다. 13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GB 규제는 그 정도가 혹독하다. GB 내 노후 주택에는 일절 손을 댈 수 없었다. 무너진 담장 고쳤다가 ‘GB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조금씩 완화됐지만 지금도 팍팍하다. GB 지정 때부터 대지, 지정 당시 주택이 있는 토지, 공익 사업으로 철거된 사유지 등의 조건이 따라다녔다. 이 조건에 맞는 집·토지가 몇이나 되겠나. 이게 ‘1회 신축 가능’으로 완화됐다. 기존 건축물보다 층수를 높여도 된다. 면적을 넓힐 수도 있다. 돌아보면 어이없는 일이다. GB 내 생산 활동은 대개 임업, 농업이다. 그런 생업 현장에 화장실을 못 짓게 했다. 급한 용무를 어떻게 처리하라는 것인지. 움막, 가리개 등 흉물스러운 치장물은 그래서 등장했다. 현장의 사정을 외면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화장실 허용은 임·농업 작업자에게 최소한의 권리 보장이다. 돌아보면 실소가 터져나오는 만시지탄이다. 이번 규제 완화를 경기도가 이끌었다. 2022년 이후 세 차례나 건의해 얻어냈다. 경기도 행정 목표에는 늘 규제 혁파가 있다. 가장 광범위한 혁파 대상이 GB 규제다. 피해 면적도 넓고, 피해 도민도 많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GB 전면 해제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결국 완화와 개선으로 가야 한다. 피해 도민의 의견을 중앙정부에 건의해야 한다. GB 규제 완화 때마다 경기도의 이런 노력들이 있었다. 이번 2024년 개선은 2020년 경기도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 2020년 이전 완화는 2015년 경기도의 노력이 힘이 됐다. 이렇게 맺어진 경기도의 간헐적 성과가 규제 혁파라는 큰 맥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또 선거철이다. 누군가 ‘규제 완전 혁파’를 공약할 것이다. 아마 거짓말로 끝날 것이다. GB 규제는 급한 부분부터 풀어가야 한다. 그 순서는 현장에 있다. 그게 반영된 이번 개정안이다. 1회 신축 허용, 작은 화장실 허용, 건축물 진입로·제설시설 도로·식당 주차장 완화. 당장 구제될 도민이 얼마나 좋겠나. 작지만 소중한 변화다. 높이 평가한다.

[사설] 설 화두는 ‘축구 분노’, 정치 훈수도 불편하다

설 연휴 많은 이들의 화두는 축구였다.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참패한 국가대표 얘기다. 이번 대회 일정상 예견됐던 일이었다. 결승전이 2월11일 0시에 예정돼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하는 설날 밤이다. 대회전부터 ‘설날 치러지는 한일 결승전’이라며 관심을 샀다. 한국이 결승 가고, 우승도 하는 행복한 가정이었다. 대회 시작 전 설 화두는 그렇게 행복했다. 그런데 한국이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최악의 경기였다. 설 화두는 나쁜 소식으로 대체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이 그 중심에 있다. 책임론과 함께 퇴진 요구가 들불처럼 퍼졌다. 감독으로서의 능력은 진작 불신받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선수 선발과 기용이 계속 지적됐다. 경기에 따른 맞춤형 전술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다. 막판에는 선수들과 소통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분노는 그를 택한 축구협회를 향했다. 29억원의 적지 않은 연봉을 주고 데려왔다. 해임하려면 70억원 안팎을 물어줘야 한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여기에 정치인들이 끼었다. 먼저 치고 나간 게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클린스만 경질을 요구했다. 정치인답다고나 할까, 축구협회장을 직격했다. 해임에 따른 위약금 책임에 ‘(정몽규) 축구협회장이 물어내라’고 했다. 여기에 ‘축구 사대 주의’라는 지적도 했다. 우리에게도 세계적인 지도자가 ‘즐비하다’고 썼다. 듣는 이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었다. 그러면서 ‘경남FC, 대구FC 구단주 경험’을 소개했다. ‘해봐서 안다’는 얘기다. 정치인도 국민이고 축구팬이다. 클린스만 감독 해임 요구는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가 말한 구단 운영 이력에 대해서는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경남FC 구단주를 2012년부터 2017년까지 했다. 그의 취임 전까지 1부 리그 5~8위였다. 그게 2013년과 2014년 11위로 추락했다. 그러더니 2015년 2부 리그로 내려앉았다. 대구FC 구단주로서의 성적도 다르지 않다. 취임 전 3위에서 취임 후 8위, 6위다. ‘클린스만 기준’이면 해고감 아닌가. 권성동 의원도 ‘축구 분노’에 올랐다. 자신의 SNS에 ‘검증은 끝났다. 대한축구협회가 응답할 차례’라고 밝혔다. 역시 협회의 감독 선임 책임을 묻고 있다. 딱히 축구와 권 의원을 연결할 정보는 없다. 2년 전 도쿄 올림픽에서 축구 대표팀 릴레이 영상이 있다. 같은 강원 소속이라며 김학범 감독을 칭찬하고 있다. 정치는 늘 스포츠의 과실을 노린다. 경기장을 찾고, 응원단에 끼어 앉는다. 팬들이 눈총을 줘도 비집고 들어간다. 표가 된다고 봐서다. 그런 일상을 새삼 뭐랄 건 아닌데 이번에는 좀 다른 거 같다. ‘카타르 재앙’에 국민적 실망이 크고 축구 팬들의 충격은 여전하다. 여기에 득표의 촉수를 들이미는 건 아닌 것 같다. 물론 제일 큰 잘못은 정치인 농락까지 자초한 한심한 한국 축구에 있지만 말이다.

[사설] 의대 정원 확대, 경기∙인천 배제해선 안 된다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2천명 늘리기로 했다. 내년도 입시에서 전국 40개 의대는 총 5천58명의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다. 2006년 이후 3천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이 19년 만에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국민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태부족이다. 정부는 지역·필수의료가 붕괴되고 있다고 진단, 의대 증원을 추진해 왔다. 정부는 현재 의료 취약지구에서 활동하는 의사를 전국 평균 수준으로 확보하려면 약 5천명이 필요하고,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늘어날 의료수요를 감안하면 2035년에는 1만명의 의사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구 1천명당 의사 숫자는 2.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이에 2035년까지 1만명의 의사 인력을 확충할 방침이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가 진단을 잘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사 수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의사들이 의료환경 때문에 응급실,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 시설을 기피하는 것인데 의대 정원을 늘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휴진(진료 거부) 등 집단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의협은 국민의 건강·생명권을 볼모로 정책 추진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 정부는 의료계 단체행동에 대비해 의료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비상 진료 대책을 빈틈없이 마련해야 한다. 의사 인력 확충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 의대 신입생 증원은 비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복지부가 수도권(서울 8, 인천 1, 경기 4)을 제외한 비수도권 27곳 대학에 집중 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취약 지역이 있는 경기도와 인천이 수도권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의대 정원 문제는 ‘서울 쏠림’이 핵심인데 이를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이분화하면, 경기·인천지역의 의대는 인원 배정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 현재 경기도내 성균관대, 아주대, 차의과학대 등은 입학 정원이 모두 40명이다. 인천의 가천대와 인하대도 50명 미만이다. 경인지역 인구 규모에 비하면 입학 정원이 적어 증원이 절실하다. 소외지역인 경기 북부에서도 의대 설립을 기대하고 있다. 대학별 입학 정원은 교육부의 정원 배정 절차 등을 거친 이후 발표할 방침이라고 한다. 2천명에 이르는 입학 정원을 무조건 비수도권 의과대학에 배정해선 안 된다. 경기·인천의 인구 수와 소외지역 등을 감안해 경인지역 정원도 당연히 늘려야 한다.

[사설] 유권자는 원조 공약 아닌 실천 능력 따진다

원조 공약을 둘러싼 공방이 필요할까. 유권자는 이 논쟁을 쳐다보지 않는다. 관심 두는 것은 오직 실천이다. 누구를 뽑았을 때 이행될 것이냐를 따진다. 공약자의 능력, 열정 등을 평가한다. ‘그리곤 해낼 것’ 같은 사람에 투표한다. 원조 공약이 되레 점수를 잃을 때도 많다. 과거 반복해서 공약을 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실천하지 못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켜줘도 또 못할 것’으로 비치면 끝장이다. 그런데도 여야의 원조 공약 논쟁이 한창이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한다. 특히 경기도 공약과 관련된 비난이 많다. 윤재옥 원내대표가 5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지적했다. “민주당은 자체적으로 종합적인 비전을 내놓지 못하고 도심철도 지하화처럼 우리 당 공약을 급하게 카피(모방)하거나 그조차 어려우면 음해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은 서울과 경기의 경우 생활권 재편을 통해 출퇴근을 비롯한 각종 생활불편을 해소하고 지방은 구도심 개발, 광역교통망 확충, 의료·교육시스템 개선, 기업 및 공공기관 이전 등을 통해 발전시키겠다는 선명한 비전을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국민의힘 공약 비난도 거칠다. 윤영덕 원내대변인이 서면브리핑을 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수원∙구리∙김포 등을 방문하며 수원에서는 ‘철도 지하화’, 구리∙김포에선 ‘서울 편입론’을 내세우며 경기도민을 현혹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철도 지하화’는 지난 대선에서 불거진 이슈였다가 이번 총선에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사이 무엇을 하다 또다시 총선 공약으로 재활용하나”라고 비난했다. 특히 윤 원내대변인은 “사탕발림 공약으로 공약 사기나 치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무책임한 공약 남발을 멈추라고 공격했다. 이 원조 공방의 중심에 등장하는 공약이 있다. 수원 지역 경부선 철도 지하화 공약이다. 1월 말 국민의힘 방문규(수원병) 예비후보가 던졌다. 다음 날 한동훈 위원장이 수원을 찾아 재확인했다. 곧바로 원조 공방으로 이어졌다. 지역 민주당에서 원조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철도 지하화는 수원의 숙원이다. 민주당에서 공약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도 2월1일 중앙당이 공약으로 발표했다. 같은 철도 지하화 공약에 붙은 원조, 모방 공방이다. 생각 좀 해보자. 유권자가 어떻게 보겠나. 원조를 찾아 그 당에 투표하겠나. 아닐 것 같다. 아닐 게 틀림 없다. 다수 유권자의 관심은 오직 실천이다. 어느 후보를 뽑으면 철도가 지하로 들어갈 것이냐만 관심이다. 이렇게 요구가 뻔하니 내놓을 답도 뻔하다. 철도 지하화를 실천할 청사진이다. 상대보다 구체적이고 믿음직한 세부 계획을 세우면 된다. 그러면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를 얻어서 당선된다. 원조 논쟁할 시간 있으면 실천 묘수나 찾는 게 옳다.

[사설] 준비 덜 된 ‘늘봄학교’, 졸속 우려 목소리 높다

정부가 올해 전국 모든 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대상으로 ‘늘봄학교’를 시행하기로 했다. 1학기에 2천곳을 선정해 시행하고, 2학기부터 전체 초등학교 6천175곳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초1 학생은 부모의 맞벌이나 저소득층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2025년에는 초등 1~2학년, 2026년에는 초등학교 전 학년 모두가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5일 하남시 신우초등학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늘봄학교를 올해부터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겠다”며 “페어런츠 케어(부모 돌봄)에서 이제는 퍼블릭 케어(국가 돌봄)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늘봄학교는 오전 7시부터 최장 오후 8시까지 학교를 중심으로 방과후 교육과 돌봄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올해 1학기부터 늘봄학교에서 매일 2시간씩 음악·미술·체육·수학·과학 등 맞춤형 프로그램을 무상 제공한다. 관련 행정 업무는 교사가 아닌 ‘늘봄지원실’이 맡는다. 늘봄지원실 실무 업무는 상반기에 기간제 교원 2천250명, 하반기에 공무직·단기계약직 등 6천명을 채용해 맡길 계획이다. 늘봄학교의 취지는 좋지만, 준비가 거의 없는 상태로 시작돼 여러 가지 차질과 시행착오가 우려된다. 늘봄학교를 담당할 인력과 공간, 프로그램에 대한 세부 밑그림 없이 졸속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돌봄·교육 공백을 해소한다는 정부 구상이 교육 현장에서 제대로 실현되려면 예산과 인력 확충, 교사를 비롯한 관련 종사자와 긴밀한 협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당장 다음 달 새 학기부터 늘봄학교를 운용할 초등학교 2천700곳 명단조차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교육부는 선정작업을 최대한 빨리 해 이달 중순까지 마무리 방침이지만, 2천곳 목표치를 채울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1학기에 기간제 교원 2천250명 배치도 참여 학교가 확정되지 않아 개학 이전에 마무리될지 미지수다. 돌봄과 방과후 교육의 질을 담보할 공간 마련도 여의치 않다. 과밀 학교의 돌봄 공간 확보를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다. 교육부는 교원 업무 부담을 고려해 늘봄 업무를 교사에게서 분리한다는 방침이지만 교사들은 신뢰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늘봄 업무를 맡게 되는 공무직(돌봄전담사)도 혼란스러워한다. 준비없이 시행되는 늘봄정책에 교육 현장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학부모들도 정책 자체는 환영하지만 돌봄의 질이 담보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도가 완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밀어붙인다고 되는 게 아니다. 늘봄학교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위해선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사설] 사법리스크 벗은 삼성, 큰 도약 기대한다

사법리스크 벗은 삼성, 큰 도약 기대한다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후 1천252일, 약 3년5개월 만이다. 삼성은 이로써 총수 사법리스크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검찰이 이 회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에서 특히 주목됐던 것은 경영권의 승계 불법성 여부다. 검찰은 이 회장 등이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미전실이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 회계 부정 등에 관여했다고 봤다. 그룹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지주회사 격인 합병 삼성물산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제일모직의 주가는 올리고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추기 위해 부정행위에 관여한 것으로 조사했다. 기소 이후 재판은 “공짜 경영권 승계”를 처벌해야 한다는 검찰과 “신성장동력 확보 목적”이었으므로 무죄라는 이 회장의 반박이 맞섰다. 재판부는 이날 “두 회사 합병이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여기에 비율이 불공정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점도 밝혔다. 결과적으로 통상적인 기업 경영 과정의 일부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철저하게 법리에 의해 결론 내린다. 법리 외적인 요소를 대입하는 건 그래서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깔린 배경을 얘기한다.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는 경제계 비중이 감안됐다는 분석이다. 선고 전부터 무죄 선고 가능성이 흘러나온 것도 이런 예상 때문이었다. 여기에 이날 선고를 앞두고 나온 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의 발언도 주목을 끌었다. “국민경제에 대한 기여에 족쇄가 있었다면 심기일전할 기회가 되면 좋지 않겠나 싶다”고 했다. 수사와 재판을 ‘족쇄’로, 선고를 심기일전의 ‘기회’로 해석한 것이 이채롭다. 이 원장은 2020년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였다. 이 회장 수사와 기소를 직접 이끌었던 수사 담당자였다. 물론 이 원장은 이날 발언에 분명한 전제를 달았다. “(사건에) 직접 관여하거나 상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는 발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회장 무죄를 예상 하는 듯한 표현이었다. 삼성그룹에는 더없는 희소식이다. 사법리스크를 벗고 제 역할로 도약해 가기를 바란다.

[사설] 판결, 몰래 녹음 무한정 인정한 것 아니다

교실 내 몰래 녹음을 무한정 인정한 것으로 오해될까 걱정이다. 제한적인 경우에만 한정해 증거 능력을 인정한 판결이다. 웹툰 작가 주호민씨 자녀 사건 판결 후유증이 적지 않다. 지난 2일 전국특수교사노조가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교사노조연맹 산하 전국초등교사 노조, 경기 및 인천교사노조 특수교사 40여명도 함께했다. 특수교육과 통합교육을 후퇴시키는 불법녹음 증거 능력을 배제하라고 주장했다. 또 “교육 현장에 장애아동의 정상성에서 배제하고 별개의 특별한 집단으로 분리 권고하는 파장을 불러왔다”며 해당 판결을 비난했다. 앞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도 가세했다. “특수교사 유죄 판결에 대해 유감”이라며 “특수교육 현장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재판부가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판단한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몰래 녹음한 것이 법적 증거로 인정돼 교육 현장이 위축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판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파장은 늘 크다. 그래서 판결은 취지대로 정확히 해석돼야 하고 왜곡 없이 전달돼야 하는 것이다. 이 판결에 앞서 대법원은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을 부인했다. 부모가 아이 가방 속에 녹음기를 넣어 보내 녹음한 사건이다. 1, 2심에서는 모두 증거능력이 인정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을 부인했다. 주씨 자녀 사건도 당연히 대법의 판결 취지를 따를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수원지법 형사 9단독 곽용헌 판사의 판결은 유죄였다. 몰래 녹음된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고, 해당 교사에게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판결이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을 무한정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곽 판사도 주씨 측이 녹음한 내용이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에 해당한다고 봤다.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큰 틀의 조건은 인정했다. 다만 이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살폈다. 몰래 녹음이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 즉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판례가 하급심을 지배하는 것은 동일한 사건 또는 유사성이 높은 사건의 경우다. 앞서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사건과 주씨 자녀 사건이 완전히 같다고 볼 수 없다. 이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만한 특수하고 예외적인 측면을 곽 판사는 고려했다. 현직 교육감과 관련 교원단체의 걱정을 당연히 존중한다. 다만, 일반인들이 ‘몰래 녹음해도 된다’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다. 이번 판결은 그게 아니었다.

[사설] 중대재해법 유예 불발, 여야는 해결책 조속히 마련해야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적용이 지난달 27일부터 실시되고 있으나, 이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소규모 사업장은 혼란과 불안감 속에 놓여 있다. 소규모 사업장은 지난 1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법 시행이 2년 유예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민주당이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에서 여당의 요구를 거부, 유예가 불발됨으로써 소규모 사업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근로자에게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중형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강화해 2018년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참변을 당한 하청근로자 고 김용균씨 사건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관점에서 제정된 법으로 노동자의 생명을 존중하자는 의미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전국 83만7천여곳에 달한다. 대다수 사업장은 법 시행 관련 안전교육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실정일 뿐만 아니라 전문인력이 충분히 양성되지 않아 기업들이 안전담당자를 구하는 것 자체도 어렵다. 이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11월 해당 기업 1053곳을 설문조사해 보니 94%가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고 답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에 지난달 31일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 등 3천500여명이 국회에 모여 “한순간에 예비 범법자로 전락했다”며 법의 유예를 호소하는 대규모 집회도 개최했다. 이 같은 소규모 사업장이 혼란에 빠진 책임은 여야는 물론 기업인들 모두에게 있다. 우선 지난달 27일부터 법이 시행됨을 알면서도 대비하지 않은 정부·여당과 기업들의 잘못은 크다. 특히 정부·여당은 지금까지 시행에 따른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다가 시행에 즈음해 유예를 주장하면서 이를 거부하는 야당만 탓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거대 야당도 소규모 사업장이 법 시행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반대하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 2년 뒤 산업안전보건청을 신설하는 조건으로 유예를 수용할 뜻을 내비쳐 여당이 이를 협상안으로 제안했으나, 결국 민주당이 거부해 처리가 무산됐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생입법이라면 여당에 적극 협조하겠다던 말과 행동은 서로 다른 것 아닌가. 국회 임시회가 오는 8일 끝난다. 여야는 소규모 사업장의 어려움을 직시, 유예안 처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여야는 밤을 새워서라도 조속히 재협상에 나서 이번 회기에 개정안을 처리하기를 간곡히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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