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물 파버리는 無知

인천 문학산 일대의 역사유적과 중요 유물들의 보존이 위기직면에 놓여 있다는 보도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인천시가 문학산을 답사한 향토사학자들로부터 백제우물터와 함께 그 주변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다량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도 수년간 이에 대한 고증작업을 벌이지 않고 방치하고 있어 보존되어야 할 우리민족의 유적 유물이 인멸될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문학산은 선사시대부터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적 유물이 다량 발견되고 있는 역사유적의 보고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조 안정복(1712∼1791)은 ‘동사강목’에서 문학산 성내에 비류정(沸流井)이라는 우물이 있다고 했고, 김정호(1800∼1864) 역시 대동지지에서 ‘비류정’의 존재를 기록했다. 향토사학자들은 이에따라 수년전 답사를 통해 백제정이라고 불리는 우물을 찾아냈으며, 지난 93년 미추홀문화연구회는 백제우물터 주변 지표조사에서 선사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그물추, 그리고 삼국·고려시대 추정의 도자기파편 수십점을 발견 인천시에 보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시측은 문화재위원 등이 1∼2차례 현장답사만 했을뿐 고증작업을 하지않았고, 백제우물터를 도로부지로 편입했다가 향토사학자들의 반발로 취소하는 소동까지 벌였다. 우리민족의 유적 유물을 발굴 보존해야할 행정기관이 향토사학자와 학계가 발굴한 유적을 고증도 하지않고 깔아 뭉개려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천시의 역사유적에 대한 무지와 무식견이 한심스럽기만 한 것이다. 시측의 무지로 인한 유물수난은 이것뿐이 아니다. 지난 봄엔 문학터널공사를 하면서 학산서원터의 표지석과 다량의 유물들을 흙과 함께 버렸고, 문학운동장 공사때도 삼국·조선시대의 각종 유물들이 버려지는 것을 보다못한 향토사학자와 경기문화재단 학예사들이 10여점을 수거하기도 했다. 문화재와 역사유물은 조상의 숨결을 만나고 역사의 향기를 체험할 수 있는 민족문화의 자랑스런 유산이다. 이 소중한 국가의 문화적 자산이며 사료가치가 큰 유물이 무분별한 개발에 밀려 인멸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 당국은 유물발견지역에 대한 지표조사와 함께 발굴된 유물은 고증을 거쳐 보존관리에 철저해야 함은 물론 그 지역이 개발논리로 마구 파헤쳐지는것도 중지해야 할 것이다.

세비인상보다 정치개혁을

국회의원들이 국민과 약속한 정치개혁은 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축내는 세비나 인상하려고 획책하고 있어 이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이 대단하다. 아직도 많은 국민들이 IMF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어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등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데, 세비를 14%인상하고 또한 살림이 어렵다고 가계지원비까지 신설하는 국회의원들의 무신경(無神經), 무체면(無體面)에 국민들은 그저 아연실색일 뿐이다.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을 개혁차원에서 개정하겠다고 공언하였으나, 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지난 달 말 특위자체를 해체했다. 중요 쟁점인 선거구제는 각 정당 자체가 합의된 당내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한 채 여야는 물론 당내에서도 이견이 분분하다. 지구당 폐지도 여야간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며, 정경유착을 근절하기 위하여 법인세 1%를 정치자금으로 선관위에 의무 기탁하는 문제 역시 합의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달 중순 여야 총무는 특위활동시한인 11월30일까지 정치개혁에 대한 입법을 여야간의 합의에 의하여 마무리하겠다고 하였으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여야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299명에서 270명으로 줄이겠다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약속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현행 국회의원 정수를 그대로 유지할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선거법 개정에서 현행 의원정수를 그대로 유지하는 개정안을 제출하였으며, 여당도 굳이 의원수를 줄일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에 묵시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는 국민에 대한 약속 위반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한 지금의 상황에서 의원들 스스로 기득권이나 유지하려고 한다면 정치개혁은 안된다. 개혁을 하겠다는 의원들이 개혁은 하지 않고 밥 그릇이나 챙기려고 세비인상이나 추진한다면 이를 국민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세비인상을 즉각 철회하고 예산심의 등 민생현안은 물론 정치개혁을 조속히 추진하여 신뢰받는 국회상을 정립하기 바란다.

교원정년 환원론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으로 당선된 김학준 신임 교총회장이 본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원정년 환원’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거듭 공언했다. 정계와 교육계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고 현재는 시립인천대학교 총장인 김 회장이 차지하는 사회적 비중도 그렇지만 전체교원 40여만명중 27만6천여명이 가입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교원정년 환원론은 교육계는 물론 국민적인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65세에서 62세로 단축된 교원정년의 환원주장은 김학준 교총회장 뿐만이 아니라 교총회장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들의 공약사항이어서 앞으로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그만큼 시급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교직사회의 구조조정이라는 명분하에서 단행된 교원정년 단축은 사실 교권을 크게 흔들었고 교원 당사자는 물론 수많은 가족들의 사기를 저하시켰다. 교원정년 단축은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3만여명의 교원들이 교단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원들이 부족해 교사자격증 소지자를 기간제교사로 채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교육정책이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2000학년도 초등교사가 1천여명 이상이나 부족한 현실이 그 실례중 하나이다. 교권확립차원에서 교원연금을 공무원연금에서 분리하고,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교육자치 거론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정면으로 반대, 비판하고 나선 김학준 교총회장의 주장을 우리는 전체 한국교원의 목소리로 생각하고자 한다. 다만 우려하는 것은 교원정년 단축을 찬성하고 희망하는 많은 학부모들과 교육대학생들의 반발 등 이견 차이를 어떻게 좁히느냐 하는 문제이다. 학생과 학부모가 없는 학교와 교원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일선에 있는 교원은 직장인이라는 단순한 차원을 초월한 그 어떤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의 활동을 특히 주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금세기말, 12월을 맞으며

1999년 12월 첫날이다. 금세기를 보내는 마지막 달이다. 새천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느달과 다른 소회가 없을 수 없다. 무엇에 쫓기듯 허겁지겁 살아왔다. 세태는 하루가 멀다하고 깜짝깜짝 놀랄일이 터져 온통 뒤숭숭하기만 하다. 지구촌은 더욱 치열한 21세기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싹수 있는 나라에선 저마다 준비가 한창이다. 우리에게 21세기의 희망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국가나 사회적으로 아무리 돌아봐도 뾰족한 희망이 없다. 그날이 그날이고, 그달이 그달이며, 그해가 그해라면 새천년인들 무엇이 다르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서민들은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다. 세태를 탓하기에는 당장 살아가는 일이 절박해 누굴 탓할 틈조차 없이 열심히 살아왔다.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공헌이며 국가에 대한 기여다. 그런데도 중산층이 붕괴돼 영세민화한 서민은 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참고 견디면 앞날이 새롭게 트일 조짐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회도의는 피폐하고 나라기강은 극도로 문란해져 일탈현상이 우심하다. 사회위기 수준은 구심점을 갖지 못해 마냥 치닫는 양상이다. 타락한 권력의 부도덕성은 아무리 그럴싸한 말잔치에도 신뢰를 상실했다. 정직한 사람이 대우받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받는 세상이 제대로 된 국가사회다. 그렇지 못한 현실은 오로지 상층구조의 난맥에 그 책임이 있다.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일의 희망을 제시하는 것은 먼데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제반의 민생을 당장에 다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 다만 바라는 것은 가능성만을 보여주어도 희망을 걸 수 있는데 있다. 상층구조에서부터 뼈를 깎는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는 더이상 국민에게 개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이젠 정부가 국민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기전에 정부가 먼저 그 무엇인가를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설득력을 갖는다. 지배계층이 앞서 의식을 개혁하고 실천에 옮길때 비로소 우리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말로만이 아니고 행동으로 옮겨보일 것인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하지만 기왕 그러고자 하는 비장한 결심이 선다면 이 해가 가기전에 새천년이 오기전에 신뢰가 가는 그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등록금 대폭인상 재고해야

연례행사처럼 진통을 겪고 있는 사립대 등록금문제가 내년에도 예외는 아닐것 같다. 서울소재 대학들이 이미 내년도 등록금을 15%인상키로 한 가운데 도내 대학들도 10∼15%정도 올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측은 IMF관리체제 이후 경제난을 감안한 정부의 등록금 동결권고에 따라 2년간 동결했기 때문에 내년엔 10∼15%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학생측은 올해의 물가인상률보다 훨씬 높게 잡은 등록금 인상은 학부모들의 가계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운동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전체 사립대 80% 이상이 등록금에 의존하는 실정에서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한 일이다. 더욱이 지난 2년간 등록금을 동결했던 대학들로서는 내년도 인상폭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일 것이다. 그러나 등록금 동결은 IMF관리체제에서 고통분담이라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만큼 이를 보충이라도 하듯 대폭 인상하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등록금 인상의 기준이 되어온 물가인상률을 따져볼 때 올해는 1%미만으로 예상되고 있고, 내년은 3%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록금을 10∼15%나 올리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도내 일부 대학에선 지금도 학생들이 기성회비 납입 거부운동을 벌여 학교측과 마찰을 빚고 있는 중이다. 이런 터에 내년 등록금을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대폭 인상한다면 대학가가 등록금 인상반대투쟁으로 다시 분규가 일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교육부가 지난 89년부터 등록금 인상을 완전 대학에 맡긴 등록금 자율화가 곧 대학의 일방통행식 인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자율화에 따른 대학경영의 투명성과 재원확보에 대한 별도의 노력없이는 학생들의 반발만 키울 수가 있다. 등록금 문제는 어느 일방의 고집과 주장만으로는 풀 수 없다. 먼저 대학은 예산집행의 공개성·투명성을 확보해야 하고, 등록금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게 결정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 인상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설득함으로써 학내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실패한 로비도 ‘로비’다

옷사건은 마침내 김태정 전 검찰총장 및 법무부장관, 박주선 전 청와대법무관, 김 전 총장부인 연정희씨 등을 사법처리하는 단계에 왔다.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상관없다”던 사람들이 더는 사건의 배후인물임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옷사건은 신동아 ‘구명로비’의 깃털에 불과하다. 단순히 옷사건에 그치지 않는 몸통접근이 필요하다. 신동아로비스트 박시언씨는 지난해 6·7월 김 전총장과 박 전 비서관을 수차 만나 최순영 회장의 구명운동을 활발히 벌였다. 나중엔 보고서 사본을 복사해 갔을 정도였다. 박씨는 이 과정에서 금품로비를 한 사실은 없다고 부인하지만 그같은 말을 믿을 수 없는 것이 그간 보아온 경험법칙이다. 신동아측의 금품로비가 확인될 경우 정치권까지 불똥이 튀어 일파만파로 번질 공산이 있으나 이를 두려워해선 안된다. 외화 유출혐의가 드러나자 학맥·인맥을 총동원, 구명운동을 전방위로 벌인 적이 있다. 외자유치를 구명카드로 제시하기도 했다. 검찰수사가 유보됐다가 재수사로 반전하는등 한동안 혼선을 벌인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옷사건이 나왔으나 사직동팀에 이어 검찰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한통속 종결을 지었다. 그러나 특검수사로 옷사건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은 역순으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진 신동아로비의 실체를 벗겨야할 시점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문책하겠다’(11월 25일)고 했다. 이에 앞서서는 ‘잘못 없는 것으로 수사결과 판명됐다’(6월 10일)고 했고, ‘마녀사냥식으로는 안된다’(6월 1일)고도 했다. 사태를 잘못 파악한 책임을 진실로 지고자 한다면 옷사건에 국한하지 않는 로비 전반에 걸친 지위고하 불문의 엄중 문책이 있어야 한다. 검찰은 우선 수사범위를 보고서 유출에만 국한하고 있는듯 하다. 특검 수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겠지만 검찰의 은폐수사에 대한 자체조사와 신동아 로비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마땅히 있어야 한다. 이는 실추될대로 실추된 만신창이의 검찰위상을 회복하는 마지막 기회이며 국가기강확립의 길이기도 하다. 만약 이마저 잘못되면 검찰은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맞게 될 것이다. 실패한 로비도 로비다. 실패했다고 하여 덮어두어서는 거센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한다.

高3 학생들에게 당부함

수능시험이 끝난 수험생들은 앞으로 정시모집 등 대학입시전형에 지원해야 하지만 실제 학교에서 보내야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 논술고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전체 186개 대학 가운데 논술을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 등 31개 대학에 불과해 면접을 제외할 경우 사실상 추가시험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도 많아 90여만명에 달하는 전국의 고3수험생들은 사실상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애매한 신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불과 3∼4개월 후면 대학생 혹은 직장인이 될 이들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없고 건전한 놀이문화 공간도 제대로 없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 고3학생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홍보부족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같은 내용을 모르고 있거나 또 주최측에서는 지속적인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들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일선 고등학교의 담임교사들이 특차와 정시모집 등 전형일정에 쫓겨 생활지도는 엄두도 못낸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오전에 교양프로그램 비디오를 보여주고 귀가시키거나 학부모에게 가정통신문을 보내는 것으로 생활지도를 대신하는 정도다. 그렇다고 고3 수험생들 모두가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건전하게 지내려고 해도 술 마시는 일 아니면 마땅히 할 일이 없다고 유흥가나 록카페 등을 전전하는 학생들에게 당부한다. 수능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학생시절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려웠던 고3까지의 학창시절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생각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그동안 시험공부때문에 읽지 못했던 양서들을 찾아 읽고 좋은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유익한 일이다. 또 대학을 안가는 학생들은 취업진로를 모색하면서 청년시절을 설계하여야 한다. 잘못된 사회환경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동화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이 사회를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는 아름다운 청년들이 되어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옷로비 ‘대통령부부’에까지

옷로비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연정희, 정일순, 배정숙씨 등의 짜맞추기식 거짓말에 온국민이 농락당했다. 국회도 당했다. 검찰은 축소수사를 했고 김태정 전 검찰총장 및 법무부장관과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이에 한몫 했다. 이런 가운데 해괴한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최순영 회장의 내사가 시작되자 신동아 부회장으로 영입된 여권실세 측근의 박시언씨란 사람이 검찰총장실에서 옷사건 내사기록을 복사해갔다고 한다. 사직동팀 최종보고서 문건이 박전비서관을 통해 김 전 총장에게 건네진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해괴한 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로비자금 1백억원 살포설은 도대체 무슨 소린지 궁금하다. 옷사건을 둘러싼 이런저런 의혹은 대통령까지 속여 기만한 것으로 돼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신동아측의 면회신청을 거부했고 집사람(이희호여사)도 로비가 들어온 것을 거절했다’고. 그러면서 옷사건은 ‘실패한 로비’라고 말했다. 대통령 부부에까지 로비의 검은 손을 뻗쳤던 것은 충격이다. 감히 로비가 이 정도였다면 대통령 아래의 고관들에게는 무슨 짓을 못했겠느냐는 것이 아직 풀길 없는 우리의 의문이다. 대통령 말대로 로비의 목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로비가 먹혀들어간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아쉬운 것은 대통령부부에까지 뻗친 엄청난 로비사실을 좀더 일찍 밝혔더라면 일은 지금처럼 꼬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있다. 당초 옷사건을 축소보고한 검찰수사를 대통령이 그대로 곧이 믿은 사실은 총명함이 평소답지 않다고 보아진다. 국민을 속이고 국회를 기만하고 심지어 대통령을 허위보고 대상으로 삼은 일련의 옷사건은 권력의 부도덕성을 여실히 말해준다. 어쩌다가 일이 이지경이 됐는지 앞날이 걱정이다. 이래가지고 무슨 개혁을 말하고 부정부패추방을 말할 수 있겠는지, 사태는 실로 심각하다. 지금이라도 전형적 권력형 비리라할 옷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옷사건 뿐만이 아니다. 이를 은폐하고 축소한 배후와 검찰수사과정도 한점 의혹없이 밝혀내는 것만이 상처받은 국민의 마음을 달래줄 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감추면 감추려고 할수록이 사태는 더 악화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사단법인 ‘난파합창단’새출범

초겨울 가로등의 뽀얀 불빛 사이로 희끗희끗 첫눈발의 서설이 내린 어제 저녁, 수원시 권선구 교동 136의4 흥화빌딩(옛 경인일보건물) 4층에서 실로 뜻깊은 행사가 있었다. 우리 지역사회의 자긍심이기에 충분한 난파합창단이 새천년을 앞두고 사단법인체로 새로운 출범의 닻을 올렸다. 화성이 낳은 우리나라 현대음악의 선구자 난파 홍영후선생을 기리고자 하는 지역사회 아마추어 동호인들로 난파합창단이 창단된 것은 1965년 9월 12일이다. 당시 20대후반의 열정을 바쳤던 회원들이 지금은 환갑이 넘었다. 평소엔 각자가 생업에 종사하다가 모임을 가질때면 목수 일을 하는 이는 무대를 만들고 미술에 소질이 있는 이는 그림을 그려 봉사하고 다소 여유가 있는 이는 사비를 내놓는 등 회원들 저마다의 지금 활약하고 있는 남녀회원은 70여명이지만 34년동안 배출한 선배회원이 1천여명을 기록하면서 지난 5월 29일 난파탄생 101주년 기념 생가음악회까지 무려 62회의 정기연주회를 갖기도 했다. 어느 누구에게 제대로 보살핌 한번 받지 못한 거친 조건에서 이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분발한 음악발전으로 수차 도대표로 나가고 대한민국 국민예술상을 수상한 가운데 각종 위문공연을 가졌다. 또 난파 어린이합창단과 난파 어머니합창단을 배태하는 등 돌이켜 보면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이같은 활약에도 임의단체의 제약을 벗어날 수 없었던 애로를 드디어 타개할 수 있게된 것이 한 독지가의 상당한 사재쾌척으로 마침내 새로운 계기를 맞은게 이번의 사단법인체 출범인 것이다. 사단법인 난파합창단(전화 0331-233-3350)은 법인화를 전기로 오는 10월 1일 제63회 정기연주회를 경기도립팝오케스트라와 협연한데 이어 문화소외지역 순회공연, 나아가서는 국제무대에 나가 성가를 떨칠 다부진 포부를 갖고 있다. 이는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음악인들의 자생적 의지인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된다. 사단법인 난파합창단은 앞으로 기전사회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어 이에대한 기대가 크다. 정치, 경제, 사회적 갈등이 심화하는 오늘의 세태에서 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지역사회의 자존심인 난파음악으로 상징될 수 있다. 그의 ‘고향의 봄’을 다같이 노래부를 땐 우리는 다같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하나의 마음을 비로소 지닐 수가 있다. 앞으로의 활약을 새롭게 거듭 기대하며 행정당국을 비롯한 지역사회의 각별한 관심이 있기를 당부해 마지않는다.

DJ, 新黨 ‘명예총재’ 돼야

엊그제 올림픽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창당준비위원회를 거창하게 가진 가칭 ‘새천년민주신당’은 내년 1월중순 창당대회를 목표로 지구당 조직책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김대중대통령은 ‘21세기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전국정당의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치사를 통해 말했다. 우리는 그같은 명제를 부인하지 않으나 그것이 반드시 신당창당으로만 가능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기존의 국민회의로는 내년 4·13총선에 한계가 있고 정권재창출의 벽이 두텁다고 여겨 새로운 카드로 내놓은 게 민주신당 창당으로 보는 것이 객관적 시각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표방하는 대로 신당이 정치안정의 주체가 될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공동정부의 우당인 자민련마저 참여는 커녕 옷로비사건, 서경원사건 재수사, 교육개혁 실패로 인한 교권추락 등을 강도높게 비판, 김대중정당과의 차별화속에 총선을 치를 태세다. 신당이 아무리 구태정치의 탈피를 내세우며 국민적 규합을 강조해도 구호일뿐 여전히 구태의 틀속에 박힌 한정된 정치세력으로 보는 것이 세간의 지배적 정서다. 이른바 신당 영입인사들 가운데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박탈당해도 동지적 신념으로 머물 인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으로 보는 것이 항간의 시선이다. 민주신당이 주장하는 새로운 법통주장은 무의미하다. DJ가 대통령이 되기전에 만든 평민당, 국민회의에 이어 이번엔 대통령이 되고나서 만든 당이 신당으로 다같은 김대중정당의 재판인 것이다. 이는 민주신당이 아무리 부인해도 부정될 수 없는 세상엔 이미 그렇게 각인돼 있다. 신당이 장차 이같은 이미지에서 다소라도 벗어나 신당다운 구실을 제대로 할려면 김대중대통령이 명예총재로 물러나 지도일선에서 손을 떼야 한다. 대통령은 오로지 대통령 직분에만 전력을 다하고 당의 관리는 후견인으로 물러앉아 당에 맡기는 것이 보다 신당이 전국 정당화할 수 있는 길이다. 만약 김대중대통령이 총재를 맡지 않음으로 해서 당이 정상가동하기가 어렵다면 이는 정당이 아닌 붕당일 수 밖에 없다. 구태정치의 청산은 먼곳이 아닌 바로 정당의 민주화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새천년 민주신당’은 대통령의 명예총재체제에서 정당의 민주화가 자생적으로 성숙할때 비로소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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