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시골 외과의사 토마시도 그랬다. 아버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변 인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내이자 사진작가인 테레자나 화가이자 토마시의 불륜 상대인 사비나, 사비나의 연인 프란츠 등도 예외가 없었다. 전처와의 이혼 이후에도 변한 건 없었다.” 20여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얼개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1929∼2023)가 썼다. 청년 시절 읽었던 서양 소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작품이었다.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들은 서로를 아꼈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그들이 사랑한 건 사실이다. 오류가 그들 자신이나 그들의 행동방식 혹은 감정이 아니라, 그들의 공존불가능성에서 기인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이다.” 쿤데라가 별세 1년 반 만에 그의 조국에 묻힌다. 외신에 따르면 그의 유해가 사망 1년6개월 만에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인 브르노로 옮겨졌다. 브르노 시장인 마르케타 반코바는 쿤데라의 유언을 집행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로부터 유해를 넘겨 받았다. 그리고 “브르노의 영광이자 의무”라고 말했다. 브르노시 당국은 작가의 유해를 모라비아 국립도서관에 임시 보관하다 중앙묘지에 안치할 예정이다. 작가는 공산주의 체제인 조국에서 프라하예술대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다 1968년 일어난 민주화운동인 ‘프라하의 봄’으로 탄압받아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9년 체코슬로바키아 국적을 박탈당했다. 2019년 국적을 찾았다. 민주화 이후 고국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망명 후 줄곧 프랑스 시민으로 살았다.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언급됐지만 2023년 7월 파리에서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작가는 인간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참담할 수 있는지를 고발했다. 2025년의 현실은 이 같은 쓰라림에서 과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란 범죄는 법 앞에, 역사 앞에, 국민 앞에, 민주주의 앞에 용납할 수 없는 광란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버텨도 탄핵의 시계는 돌아간다. 멈출 수 없고 되돌릴 수 없다. 혼돈과 고통, 절망과 분노의 시간에도 시민은 희망으로 연대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질기고 강하다. 그것을 쟁취하는 힘, 지속시키는 힘, 회복하는 힘도 질기고 강하다. 겨울이 깊으면 봄이 오는 이치를 생각하는 시간이다. 지금의 고통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에너지가 돼야 한다. 탄핵은 탄핵대로, 내란 처벌은 처벌대로, 정권교체는 정권교체대로 하고 탄핵 너머의 새로운 질서를 준비해야 한다. 탄핵이 반헌법 반민주를 단죄하는 과거의 시간이라면 대선은 국민의 희망을 회복하는 미래의 공간이 돼야 한다. 내란 세력의 참담한 준동은 탄핵 이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은 서로 다른 탄핵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국민의힘 지지층의 결집 흐름은 윤석열 지키기가 아니라 보수 붕괴 우려 현상이다. 국민의힘은 박근혜 탄핵이 가져온 보수 붕괴의 악몽을 피하고 싶은 보수층의 학습효과를 동력으로 악용하고 있다. 윤석열의 내란을 진영 간 내전으로 바꾸려는 반국민적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새해 언론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의 86%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심지어 총선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국민의힘 지지층 65%는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극단적인 진영 대결 구도다. 정치의 파탄, 상식의 실종이다. 결은 다르지만 진보층의 탄핵 트라우마 역시 존재한다. 자산 불평등의 구조화와 이로 인한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시간 불평등 등 삶의 모든 분야의 양극화에 절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공교육으로 성공하는 사회라는 믿음이 소멸했다. 기회와 정의에 대한 요구는 박근혜 탄핵 때보다 더 넓게 형성됐다. 결과적으로 2017년 탄핵 이후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실망이 진보층의 트라우마다. 탄핵 이후의 희망을 만드는 것이 국민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다. 내란 세력의 준동을 막고 새 시대를 향한 국민의 열망을 모아 내는 길이다.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은 기회와 정의, 회복과 성장이 살아 숨 쉬는 더 좋은 나라, 더 나은 세상이라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진보적 다수 연합정치로 새 비전, 새 가치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최근 많은 국민은 법원의 폭력 사태와 이를 비호하는 국민의힘을 보면서 정치개혁을 절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영남권(대구·부산·울산·경남·경북)에선 65석 가운데 60석(92%)을 얻었다. 국민의힘 지역구 국회의원 90명 가운데 영남권 비율이 67%다. 지역 독점 구도가 유지되는 한 내란을 일으킨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아도, 탄핵소추안에 반대해도, 내란 수괴의 체포 영장을 막아서도, 검찰개혁을 거부해도,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직을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을 버리지 못할 것이다. 극우 정당이 돼 가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도 외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 없는 지역 독점 구도를 타파해야 비정상적 정치가 소멸된다. 비례성을 높이는 선거제도의 도입이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다. 무엇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한탄강의 강물이 휘도는 아름다운 지형에 있는 바위로 강물과 자연 식생이 함께 어우러져 비경을 이루고 있다. 하천이 휘돌아 가며 생겨난 깊은 연못과 수면 위로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13m나 솟아올라 있으며 짙은 색의 현무암 절벽과 밝은 색의 기둥바위, 짙푸른 물빛이 어우러져 있다. 화적연은 지형적 가치도 높은데 대보화강암(중생대 백악기 화강암)을 뒤덮은 현무암층, 현무암 주상절리, 화강암 암반, 상류에서 공급된 풍부한 모래와 자갈 등 다양한 지형 요소를 관찰할 수 있다. 이들 지형 요소는 서로 어우러져 하천을 굽히고 있으며 여름철 많은 물이 흐르며 거대한 바위를 갈아 아름다운 화적연을 만들어 온 것이다. 국가유산청 제공
어느 해보다 입시 변수가 많았던 2025 대입은 의대 증원, 사탐런, 무전공 선발 확대, 상위권 n수생 증가 등의 이유로 예측이 쉽지 않았다고 입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본적으로 수시는 상향 지원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글을 통해 쓴소리를 해보고자 한다. 얼마 전 고교생 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에 이어 건국대가 학생 선호 4위에 올랐다. 학생들이 높은 점수를 준 이유를 살펴보면 캠퍼스 위치와 지역 상권, 그리고 장학금이나 교육비 혜택을 꼽았다. 실제로 학생들을 만나 보면 자신의 희망 학교가 건국대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의 성적과 무관하게 말이다. 하지만 건국대를 가기 위해서는 상위권 성적이 필요하다. 많은 학생이 인서울 대학을 원하고 더 좋은 대학에 가길 원하지만 입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충실한 학습과 더불어 객관적인 전략이다.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합과 전형을 파악하고 선택 과목을 골라야 하며 탐구 과목의 유불리도 따져야 한다. 또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는 생기부 관리 및 비교과 활동도 필요하며 수능 최저라는 조건으로 인해 내신과 수능 준비까지 동시에 해야 한다. 수시에서도 수능 점수를 반영하는 것이 수능 최저라면 정시에서도 내신을 반영하는 대학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이제는 수시와 정시를 명확히 구별하는 것보다는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목표를 높게 잡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연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상위 0.1% 최상위권 학생들이 일반 상위권 학생과 다른 점은 자기객관화가 훨씬 더 잘돼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예측 점수도 훨씬 정확하다. 모두가 최상위권이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최상위권의 학습전략과 자기객관화는 따라해 볼 만하다. 자기객관화란 무엇을 의미할까. 바로 학습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다. 아는 부분을 또 공부하는 것은 필요 없을 뿐 아니라 효율적이지 못하다. 모르는 부분과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는데 중위권 학생들의 공통적인 실수는 아는 부분을 반복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다. 자기객관화가 부족한 것이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공부시간만 많을 뿐 전혀 효율적이지 못한 공부를 하고 있고 자기객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 고교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르는 이유는 나의 객관적 위치 파악과 함께 부족한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다. 모의고사라는 말 자체가 수능을 위한 ‘모의’시험 아닌가.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무시한 무리한 상향 전략은 의미도 없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고교생이 인서울 대학을 원하다 보니 무리수를 둔 상향 전략이 되곤 한다. 자신의 수능 성적표는 내 진짜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가장 잘 나온 점수가 자신의 원래 점수라고 믿는다. 그러고는 재수를 당연하게 결정한다. 코넬대의 사회심리학자인 더닝과 크루거는 ‘실력이 부족한데도 이를 깨닫지 못하는’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자신감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일을 잘하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실수는 우연, 부주의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이에 반하는 증거는 무시하려 한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판단하는 방법은 실력을 기르는 것이다. 예비 고3들의 2026 수능은 11월13일 치러진다. 아직 2025 대입 정시 발표와 추가 합격이 남아 있지만 이제 고3이 되는 학생들은 2026 대입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특히 겨울방학 기간 대입전형을 살펴보고 수능 준비를 꼼꼼히 하는 것이 좋은데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 내신 준비와 수시 지원 그리고 수행평가 등으로 수능 전형 공부와 나에게 맞는 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2026 수시 지원이 시작되는 9월 전까지 지금 겨울방학 시즌과 여름방학을 철저히 시간 배분한 후 학습과 수능에 대비하는 것이 좋다.
2025년 을사년 푸른 뱀의 해가 밝았다. 10개의 천간(天干)은 각각 의미와 색을 지니는데 갑(甲)은 무성하게 솟아오르는 나무의 청색이며 을(乙)은 푸릇하게 대지를 덮고 있는 풀과 같은 청색이다. 색깔 10개 동물 12개 올해의 60간지 중 42번째, 푸른 뱀을 의미한다. 지난해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 2026년은 병오년(丙午年)으로 붉은 말의 해다. 푸른색은 새싹이 돋아나듯 희망을 상징하며 새로운 시작의 변화를 의미한다. 뱀은 발이 없어도 걷는다, 뱀이 천년 묵으면 용이 된다, 구렁이가 담을 넘으면 집안이 잘된다 등 뱀과 관련된 속담이 많다. 민속신앙에서는 뱀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뱀이 성장할 때 허물을 벗고 겨울잠에서 다시 살아나는 모습은 죽음에서 재생(再生)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뱀은 한번에 10개의 알을 낳아 건강한 생명력과 다산(多産)을 상징하기도 했다. 뱀은 예부터 신성하게 여기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뱀을 보면 술을 바쳐 빌며 쫓아내거나 죽이지 못한 것은 곳간의 쥐를 잡아먹기 때문에 재물의 신(神)으로 문헌에도 남아 있다. 뱀과 관련된 지명(地名)을 보면 전국에 총 208곳으로 이 중 뱀의 모양과 관련된 지명은 87곳이 있다. 뱀의 해를 맞아 뱀이 지닌 문화적 싱징과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3월3일까지 특별전을 열어 뱀과 관련된 생활용품, 의례용품, 그림 등 60여점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다. 빨간 긴 바지에 관복을 입은 뱀 신을 표현한 십이지신도 부적(符籍), 뱀과 관련 있는 전설을 담은 책, 뱀 형상의 탈 등 공예품도 전시하고 있다. 뱀은 움직이는 모양 탓에 친근하지 않으며 치명적인 독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뱀을 치유의 상징으로 여기기도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문에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며 기어오르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스클레오피스는 친구 집에서 뱀을 죽이는데 이때 다른 뱀이 약초를 물고 와 죽은 뱀에 붙여 살려냈다고 한다. 이에 뱀을 치료의 상징으로 삼았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한 국제의료기관의 로고가 뱀과 지팡이를 형상화하고 있다. 반면 동양에서는 십이지신 중 하나로 등장해 뛰어난 통찰력과 직관적인 동물로 그려진다. 뱀의 특성처럼 잘 빠져나가듯 변화에 유연하게 내실을 다져가는 더 좋은 세상을 기원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전국에 1만여점의 국가유산이 있다. 그중 7천441개가 경기도에 있다. 17개 시·도 가운데 여섯 번째로 많다. 행정의 관리 능력이 도저히 따를 수 없다. 그래서 만들어진 제도가 국가유산지킴이다. 국가유산청이 2005년 처음 도입했다. 인력·행정의 한계를 지원하는 역할이다. 9시간의 온라인 교육 이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번 위촉받으면 4년간 자격이 유지된다. 현재 도에서 활동하는 지킴이는 2천100명이다. 일반인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당사자들의 자부심은 어느 직함 못지않다. 유산의 보수, 보전, 관리에 책임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황당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수원화성에서 대치 상황이 있었다. 국가유산지킴이 20여명을 관리사업소가 막아선 것이다. 하남시의 한 향교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있었다. 향교 유림들의 반대로 지킴이 40명이 발걸음을 돌렸다. 아주 흔한 모습이다. ‘너무 민망했다’는 한 지킴이의 술회가 이해된다. 국가유산청이 교육까지 시키며 위촉한 요원들이다. 국가·지방 지정 유산, 비지정 유산을 관리하라며 책임까지 줬다. 그들 사비로 청소 도구, 보수 장비, 홍보용 리플릿 등을 마련한다. 이런 지킴이들이 현장에서는 봉변을 당하고 쫓겨난다. 정확히 말하면 행정 기관이 막아서는 것이다. 문제의 출발은 간단하다. 엉성한 제도다. 역할만 부여하고 권한은 주지 않은 제도가 문제다. 국가유산청은 그야말로 위촉만 했다. 이를 구체화할 근거를 마련하지 않았다. 지자체가 알아서 권위를 부여하지도 않았다. 이렇다 보니 이제는 지킴이 지원자도 급감하고 있다. 신규 위촉자가 2021년 531명, 2022년 347명, 2023년 182명, 2024년(10월 현재) 59명이다. 위촉됐던 지킴이들도 떠나고 있다. 재위촉자가 2020년 1천869명에서 2022년 1천256명으로 줄었다. 남아 있는 2천100명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경기도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 2023년 ‘경기도 국가유산지킴이 활동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2024년 5월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조례 제5조에 지원의 근거도 부여하고 있다. ‘도지사는 국가유산지킴이 활동에 필요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제8조에 포상 근거도 마련해 놨다.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단체, 개인 등에 대하여 포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체성을 획정하는 데 모호한 측면이 있었다. 때마침 경기도의회가 이런 문제를 보완할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점은 다행이다. 국가 유산 관련 기관의 업무 보조, 순찰 및 감시 활동, 용역 수행 등 활동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유산지킴이들의 자부심을 고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2년 전 재외동포청이 인천 송도에서 문을 열었다. 인천시는 ‘1천만 인천 시대’를 장담했다. 750만 재외동포와 함께 가는 ‘글로벌 초일류 도시’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재외동포웰컴센터와 한인비즈니스센터를 개설했다. 정부기관임에도 따로 인천시 지원기구들을 보탠 것이다. 그러나 이들 센터가 1년이 넘도록 뚜렷이 하는 일 없는 상태라고 한다. 인천시는 2023년 10월 재외동포웰컴센터 및 한인비즈니스센터를 열었다. 19억원을 들여 재외동포청이 입주한 빌딩에 같이 자리 잡았다. 재외동포 경제인 및 기업 대상의 투자 상담, 컨설팅을 해주는 창구다. 세계 곳곳 해외 한인 기업과의 교류·협력으로 인천 투자유치를 이끌어 낸다는 목표였다. 그러나 이 센터들은 1년이 넘도록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재외 한인들이 인천시 홍보물 등을 집어 가거나 차를 마시며 교류하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인천시는 이들 센터 개소에 앞서 투자유치기획위원회나 자문단 등을 운영했다. 투자 유치를 성사시키면 국내외 투자기업 보조금이나 성과급 등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같은 성과급 관련 예산 집행은 전무하다. 실적이 없어서다. 그간 인천시가 연례적으로 해오던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나 수출상담회에서 홍보관 등을 운영하는 데 그쳤다. 투자 유치 관련 전문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천시가 센터를 직접 운영하면서 인력도 모두 공무원으로 채워졌다. 인천시 재외동포협력과의 웰컴센터팀 팀장과 3명의 주무관이 전부다. 이들이 시설관리부터 연구 및 사업추진, 프로그램 개발 등을 맡는다. 해외 한인 경제단체 등과의 네트워킹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더욱이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1~2년 안에 바뀌는 순환보직이다. 전문성을 쌓아 가기도 어렵다. 때마침 인천연구원에서 관련 연구용역 결과물을 내놓았다. ‘한인비즈니스센터 발전 모델에 관한 연구’다. 투자 유치나 비즈니스 지원 등의 업무는 외부 전문기관 위탁이 낫다는 것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나 인천상공회의소 등을 예로 들었다. 재외 한인 기업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은 대학이나 연구소에 맡기라고 했다. 센터 안에 전문가 자문 풀을 갖추라고도 권했다. 인천을 찾는 재외동포들에 대한 일상 응대 등 웰컴센터의 업무는 기존의 직영체제로도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직영과 외부 위탁 등 투트랙 전략이다. 요는 투자유치나 한상(韓商) 비즈니스 지원 등에 대한 센터의 전문성 강화다. 얘기가 통해야 동포 기업인들도 인천시 한인비즈니스센터를 믿고 찾을 것이다.
“청년 창업자가 실패하면 사회가 다시 기회를 주고 용기를 주면 되지만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한 가정이 무너진다.” 침체된 경제 탓에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소상공인의 절규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인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지고, 결국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2025년 새해가 밝았고 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가 다가왔지만 소상공인의 곡소리는 여전하다. 높은 물가와 가벼워진 지갑 탓에 명절이라고 소비자들이 무턱대고 돈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관련 주요 지표도 절망적이다. 최근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조사해 발표한 소상공인 관련 통계를 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경기도내 소상공인의 1년 생존율은 80% 초반대로 10곳 중 두 곳은 1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했다. 또 2025년 가계 소비 지출 전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2025년에는 지출을 줄이겠다고 답했다. 결국 올해 소상공인의 매출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혼란에 빠진 중앙정부에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멈춰선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가 소상공인의 희망이 돼야 한다. 최근 적극적으로 민생경제 살리기에 나선 수원시가 대표적인 예다. 수원시는 이달 초 지역화폐의 인센티브를 20%로 확대해 시민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설 명절을 앞둔 24일 2차 지역화폐 인센티브 20% 지급 이벤트를 실시한다. 지난해에는 관내 모든 공영주차장의 1시간 이용요금 무료화를 추진, 공영주차장 이용객을 크게 늘렸다.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가기 위해 공영주차장을 이용하는 이는 없다. 결국 공영주차장 1시간 무료 혜택을 보는 사람은 전통시장 및 소규모 점포를 이용하는 시민이고 이는 소상공인 매출에도 기여한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수원시같이 소상공인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럴 때일수록 지방정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문학평론의 위기를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주례사 비평이다. 문학평론가는 작품을 평할 때 엄격하게 장단점을 말해야 올바른 평론이 된다. 그런데 비평이 마치 결혼식 주례사처럼 듣기 좋은 말만 늘어 놓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비평의 존재 이유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문학평론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 비평가다. 문학평론가는 매일 생산되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현실적 가치에 질문을 던져보는 사람이다. 비평은 텍스트들이 현실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분석하고 새로운 답을 찾아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문단에서는 평론가들이 이러한 임무를 저버리고 지나치게 칭찬만 해 잘못을 저지른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회자되는 주례사 비평은 과연 잘못인가. 어느 날 몇 명의 문학평론가가 인천의 한 음식점에 마주 앉았다. 젊은 평론가 M이 시집 해설을 쓰고 난 후 일어난 일화를 들려줬다. M평론가는 시집 해설을 의뢰받고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솔직하게 해설을 썼다고 한다. 요즘 문제시되는 주례사 비평이 아닌 시의 작품성 위주로 평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를 분석하니 시집은 혹평이 됐다. 그 후 시집의 저자인 시인에게 전화상으로 M평론가는 상스러운 욕을 먹었다. 이 젊은 평론가는 정말 주례사 비평을 싫어했다. 또 다른 예도 들려줬다. 출판사로부터 의뢰받은 시집 해설을 쓸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 역시 문제점 위주로 시를 평가했다. 그리고 시집 출판기념식에서 저자인 시인으로부터 M평론가는 멱살을 잡히고 육두문자를 들어야 했다. M은 평론가로서 자의식이 확실한 자신을 거듭 강조했다. 현재는 폐간을 한 모 권위지에서는 매호 작가 특집 코너가 있었다. 문예지에서 그 호에 특집으로 다룰 작가는 이름이 알려진 소설가였다. 특집 대상의 소설가는 평론가의 평가에 기대를 많이 했다. 당연히 우리 시대를 대표할 만한 소설가였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기대하며 문예지의 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특집의 평론을 맡은 B평론가는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혹평했다. 특집 대상의 작가는 한 번도 받아보지 않은 혹평을 받고 큰 상처를 받았다. 그는 늦은 밤 만취해 울분에 찬 목소리로 문예지 편집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절필 선언을 하고 말았다. 문예지의 특집이 되는 작가들은 평론가들로부터 빛나는 조명을 받는다. 문학 장 안에서의 문예지와 평론가 그리고 작가의 카르텔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집의 대상이 되면 작가는 문단에서 지위가 상승한다. 그런데 B평론가의 혹평이 한 작가의 자존감을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만 것이다. 위에서 예를 든 두 명의 평론가는 자의식을 갖고 해당 작품을 평가했다. 문단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주례사 비평을 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작품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두 명의 평론가는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필자는 시집 해설과 문예지 특집의 작품론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예지의 특집은 B평론가처럼 자의식을 갖고 작품의 문제점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할 수 있다. 비평은 감시받지 않는 절대 자유 속에서 대상 텍스트를 평가해야 한다. 작품의 문제의식과 인간의 다양한 욕망 그리고 부조리를 실존적 의미와 결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비평의 문장은 결기와 파열음이 가득해야 존재 이유가 확실해진다. 필자가 편집인으로 있는 시와 비평 전문지 포엠피플에 ‘문제적 비평’이라는 코너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집 해설일 경우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이 시집을 출간하는 것은 매우 큰 축제에 해당한다. 시인은 자신의 시집 출간을 최대한 축복받고 싶어 한다. 문단에서 평론가로부터 평가받는 작가는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 자장 안에서 문단은 작동한다. 따라서 문학 장 안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의 승자는 소수의 스타급 작가다. 비평의 대상은 이들로 국한돼 있다. 하지만 비권위지 출신의 시인이 평론가로부터 평가받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시집을 출간할 때다. 시인들은 기대에 부풀어 섭외한 평론가의 평가를 기다린다. 문단에서는 비권위지 출신이지만 개성이 강하고 작품성이 높은 시를 쓰는 시인이 많다. 이들의 문학에 대한 열망은 매우 높고 자존심도 강하다. 시집 출간이라는 자신의 축제에 M평론가처럼 혹평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시집 출간이라는 축제의 측면에서 보면 M평론가는 잘못을 저질렀다. 필자는 시집 출간을 할 때는 시인의 축제에 참여했으므로 문학적 열망과 결과에 대한 답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게 옳다고 본다. 다만 작품론이나 작가론을 쓸 때는 평론가의 자의식으로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