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김정은의 건설정치, 욕망의 모노리스

김정은 집권 10년을 가장 함축적으로 특징 짓는 용어는 핵무기 고도화와 함께 ‘건설’일 것이다. 2012년 집권 이후 거의 매년 대규모 아파트 건설 외에도 굵직한 건축물들이 전국 도시 곳곳에서 건설됐다. 집권 12년 내내 북한은 ‘공사 중’이었다. 특히 코로나19 비상방역 속에서도 매년 1만가구씩, 2025년까지 평양에 총 5만가구의 살림집을 지었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핵무기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는 것과 동시에 평양과 지방에 대규모 살림집 건설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은식 건설정치는 ‘사회주의문명국론’ 및 ‘핵강국론’과 표리일체로 담론화돼 왔다. 사회주의문명국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2013년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선언하며 그 지위에 걸맞은 문명국의 위용을 강조해 왔다. 대규모 건설과 거리 조성 등을 통한 통치 공간의 스펙터클화, 도시의 경관화는 ‘핵강국’의 위상과 정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적 담론에 해당한다. 이 용어들은 이후 강성국가, 전략국가 등으로 변용되지만 뜻하는 본질은 동일하다. 다시 말해 건설정치는 ‘핵정치’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또 대규모 건설사업은 시장메커니즘과 결합된 ‘김정은식 경기 부양’ 및 ‘시장 효과’와도 관련돼 있다. 도시 건설사업 붐은 정권의 이해, 주민 및 관료들의 이해, 그리고 시장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파트 건설은 정치적인 경관 또는 통치전략과도 관련이 있다. 북한에서 아파트는 과거부터 체제의 우월성을 전시적으로 보여주기에 좋은 인공물이었다. 여기에 건설 ‘속도’를 강조하면서 도시의 경관을 빠른 시간에 전변시키는 ‘기적’의 상징이었다. 대규모 아파트로 가득 찬 경관과 건설 실적은 발전 또는 체제 우월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간주됐다. 보여주기 위한 계획적 미화,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념비적인 것, 연극으로서의 건축에 해당한다.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이 대규모로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다. 1972년에는 평양을 ‘혁명의 수도’이자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선전도시로 선포하고 본격적인 대형 건축물 축조, 주택 및 신시가지 건설에 돌입했다. 1974년 김정일은 후계자로 공식화된다. 김정일은 후계 입지를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본격적으로 아버지 김일성의 우상화와 유일지도체계 구축에 박차를 가한다. 대규모 살림집 건설은 김정일의 업적 쌓기 차원에서 구상되고 실행됐다. 경제난으로 인해 1990년대 초 중단됐던 북한의 아파트 건설은 2008년 재개됐다. 김정은 집권 이후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결과적으로 ‘부동산 열풍’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투자로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의 등장은 이제 새롭지 않다. 아파트 부동산 시장의 번성은 음성화돼 있던 부동산 거래 시장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김정은의 집권 이후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양과 주요 도시에서 지위가 높은 간부와 부유층 사이에서는 아파트를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과 위세를 과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로 인해 아파트 실내장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내장식에 대한 관심은 단순히 권세를 과시하는 측면 이상으로 자신의 사적 공간을 꾸미는 욕구와도 관련 있어 보인다. 북한에서 아파트 건설은 권력기관들이 자신의 기관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개별 관료들이 자신들의 개인 이익을 챙기는 차원에서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또 위로부터 자신들에게 할당된 건설 할당량을 없는 능력 속에서 달성하고 한편으로 이익 역시 내려는 도시 내 주요 권력기관·기업소의 생존논리, 대규모 아파트 건설을 통해 통치 능력과 치적을 과시하려는 당국과 최고 지도부의 정치적 욕구, 아파트 부동산 거래를 통해 보다 많은 차익을 남겨 부를 축적하려는 민간 자본의 경제적 욕구, 그리고 아파트 건설에 들어가는 각종 자재, 강재, 시멘트, 장비, 인력 등으로 인해 활성화된 각종 생산 및 유통시장의 관계자들이 결합돼 북한의 건설시장이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대만 총통 선거 표심, 민생 현안 집중해야

1월13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민주진보당 라이칭더 후보가 40.05%의 득표율로 당선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집권 여당 3연임이 이뤄졌다. 다만 우리의 국회의원격인 입법위원 선거에서는 여야 모두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가운데 야당인 중국국민당이 여당보다 1석을 더 많이 차지했다. 대만인들은 집권 여당에 대해서는 한번 더 국정 운영의 기회를 주는 대신 의회권력에 대해서는 견제의 모습도 보여줬다. 이번 대만 선거 결과에 주목할 점은 소위 ‘친중·통일=국민당, 반중·친미·독립=민진당’의 프레임이 아직은 그 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총통 후보들의 선거공약에는 친중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92컨센서스’에 대한 공식 언급이 없었으며 국민당 후보마저 작년 9월 미국 방문을 통해 대만해협의 긴장완화를 강조함으로써 친미 이미지 형성에 노력했다. 중국 지도부는 이번 선거를 ‘평화와 번영, 전쟁과 쇠퇴’의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민진당 후보를 ‘트러블 메이커’이자 분리주의자’로 비난한 바 있으나 선거 결과는 중국의 의도대로 나오지 않았다. 민생 현안 역시 이번 선거에서 대만인들의 표심에 영향을 준 결정적 요인 중 하나다. 대만인들은 과거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시기에도 대만경제의 과도한 중국 의존을 우려했고 최근 코로나19의 영향 등으로 인해 경제사회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특히 대만 유권자의 약 31%를 차지하는 20~30대 젊은 세대는 기존 정치세력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고 오히려 민생 현안에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민중당 커원제 후보는 기존의 양당 대립을 돌파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일자리와 주거 문제에 대한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했다. 그리고 민중당은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적극 활용, 젊은 세대를 공략하는 선거전략을 통해 커원제 총통 후보의 26.46% 득표율과 함께 8석의 입법위원을 만들어냄으로써 향후 대만 정국의 캐스팅보드를 쥐게 됐다. 이번 선거에서 세 후보 간 경쟁이 치열했던 만큼 라이칭더 당선자는 대만의 경제 발전과 사회 안정에 방점을 두고 ‘현상유지’적 관점에서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라이칭더 역시 당선 직후 발표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선거가 민주의의의 승리와 외부 세력의 개입 방지 및 정권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중국은 자국의 이해와 요구를 반영하고 관철하기 위한 유무형의 압박과 회유를 병행할 것이다. 특히 단기적으로 중국의 대만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행동이 쉽지 않고, 최근 미중관계의 ‘안정적 관리’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고려해 대만에 대한 직접적인 강압보다는 소위 ‘회색지대(gray zone)’ 전략이 정교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지금부터 5월20일 대만 총통 취임식까지는 물론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국면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외교안보 및 경제통상 분야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영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살기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기후변화와 바이러스성 감염병 발생의 연관성이 알려지면서 이전보다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과 관심이 대중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기업과 단체를 비롯한 개개인의 인식이 증가해 충분하진 않지만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대응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환경보호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육식과 기후변화의 매우 큰 관련성이 알려지면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 것을 느낀다. 필자도 실제로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부터 채식주의자로 살아가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인간의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대량생산시스템으로 본래 자연스러웠던 생산 과정들이 부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육식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게도 많은 고기를 생산, 소비하고 있다. 동물의 권리를 철저하게 무시한 비윤리적 방식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의 공장식 축산업은 비정상적으로 많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기 위해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해 온실가스의 주원인이 돼 기후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은 소를 사육하기 위해 지금도 열대우림을 없애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먼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식탁에 올라와 있는 식품들이 얼마나 비도덕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기후변화에 영향을 주는지 알기 힘들다. 개개인의 체질에 맞는 식단에 한해 과도한 육식을 줄이고 채식 식단을 늘리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건 친화적 도시로 꼽히는 런던에서는 이러한 사실 아래 채식이 대중적이다. 런던에선 이제 어느 식당에도 채식옵션이 있어 채식주의자들이 마음 놓고 외식을 할 수 있고, 다양한 식물성 식품을 구매하기 쉬운 환경이다. 채식을 하지 않는 친구와 채식주의자 친구가 저녁약속을 잡는다고 가정했을 때 스테이크 전문식당이 아닌 이상 런던에서는 큰 고민 없이 레스토랑을 고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맥도널드나 버거킹 같은 햄버거집에 가도 식물성 패티를 이용한 비건버거 옵션이 있는 정도이니 말이다. 이것은 영국의 다른 지역에서도 해당된다. 장을 보러 가도 식물성 원료로 만든 대체육 식품들을 쉽게 구매해 요리해 먹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필자는 집 앞 마트의 비건 미트볼을 사 미트볼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것을 즐겨했다.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식물성 식품이 이렇게까지 대중화돼 있지는 않다 보니 채식과 비건식품에 대한 접근성이 많이 떨어진다. 따라서 필자 생각에 채식주의자가 살기에는 한국과 비교해 사회적으로 영국이 조금 더 편하다고 느낀다. 한국의 현대 외식문화가 육식에 극도로 편중돼있는 것은 물론 다양성이 인정되기가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라는 요인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성이라 함은 식습관의 다양성도 포함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 여전히 사회적으로 눈치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채식주의자는 풀만 먹을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 때문에 건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거나 측은하게 보는 시선도 많다. 다양한 영양성분과 단백질을 개개인에게 맞는 비율로 잘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지, 고기를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채식을 한다는 것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 어떤 이는 건강을 위해, 어떤 이는 질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채식을 한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더불어 사는 지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다. 진정한 ‘공생’을 위하는 마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나 불편한 사실과 마주하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이 인간의 엄청난 특혜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 아래, 동물과 같이 인간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생물과 이 지구는 이러한 특혜를 가진 인간의 이기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육식을 줄인다는 것은 개인의 건강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이자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아주 작은 노력이라는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제발 다정함을 보여줘”라는 명대사가 있다. 필자는 인간이 이러한 개개인의 작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면 분명히 이 사회와 지구가 더 나아질 것이라 믿는다. 이 작은 노력이 그저 단순히 기후변화를 늦추는 일일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한 시작이라는 사실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길 소망한다.

[세계는 지금] ‘팔레스타인 평화’ 염원을 담아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전 세계가 더욱 밝고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곳곳에서 함께 모여 불꽃놀이와 카운트다운으로 새해를 맞이했지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는 불꽃놀이 대신 포성이 끊이지 않았다. 가자사태 발생 3개월을 앞둔 시점에서 새해 전날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35명이 숨지는 등 가자지구에 새해의 희망은 희미하기만 하다. 유럽에서도 축하 분위기와 더불어 긴장감이 감돌았다. 독일 베를린 시내 일부 지역에서는 친(親)팔레스타인 시위를 금지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경찰 5천명이 가자사태와 관련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으나 다행히 큰 충돌과 사건 없이 새해를 맞이했다. 미국의 뉴욕 시내 곳곳에는 가자사태의 휴전을 촉구하는 플래카드와 더불어 건물 전광판에 친팔레스타인 혹은 친이스라엘 메시지가 눈에 띄기도 했다. 새해 첫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25만명이 참가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규탄과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열렸다. 홍해에서는 가자사태 발발 이후 처음으로 미군과 예멘 반군의 교전이 발발했고 이란의 1천550t급 구축함 알보르즈호가 예멘 근해 홍해에 진입하는 등 긴장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가자사태 해결을 위한 실낱 같은 희망의 끈이 보이고 있다. 이집트가 제시한 ‘3단계 휴전안’에 대한 논의를 위해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집트를 직접 방문했고 이스라엘 측도 인질 교환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교환, 휴전과 연계되는 중재안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 첫날, 이스라엘 대법원이 네타냐후 총리와 현 우파 정부가 추진한 사법부 무력화 관련 핵심 입법인 ‘사법부에 관한 개정 기본법’을 15명 대법관 중 8명의 찬성과 7명의 반대로 무효화 처리했다. 대법원이 무효 처리한 기본법은 장관 임명 등 행정부의 주요 정책 결정을 이스라엘 최고 법원인 대법원이 사법심사를 통해 뒤집을 수 없도록 한 법으로 이스라엘 야권과 시민사회가 이에 대한 전례 없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벌여 왔던 와중에 하마스 공격이 발발했던 것이다. 장기전을 위한 저강도 작전으로의 전환을 포석으로 한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투입 병력 일부 철수 결정은 새해를 맞이한 가자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해 전날 일요 기도에서 “무력 충돌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파괴와 고통, 빈곤이 발생했는지 자문해야 하며 분쟁에 관련된 이들은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의 메시지와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촌 인류의 마음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 닿기를 바라며 2024년 새해 아침, 가자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세계는 지금] 2024년, 미국 대선과 반미·반서방·반제재 네트워크

2024년은 선거의 해다. 1월 대만 총통선거, 2월 인도네시아 대선 및 총선, 3월 러시아 대선, 5월 인도 총선, 6월 유럽연합(EU) 집행부 선거, 11월 미국 대선 등이 있다. 전쟁과 지정학적 불안정, 굵직한 선거 일정으로 인해 2024년 전 세계는 경제와 안보 정책의 일대 변화가 촉발되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특히 미국 대선은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 정세 변화의 중대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유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중동, 미중 전략경쟁 및 미-러 대치의 동북아 등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미국 의회가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예산 통과를 주저하면서 전세는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미국 내 팽배한 ‘우크라이나 피로감’은 유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과 지지도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이 두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불확실하다. 반면 러시아는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는 안정세고 안전세 역시 불리하지 않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에 적대적인 국가들과 긴밀한 군사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인도, 베트남, 미얀마, 말리, 토고, 우간다 등과의 무기 거래, 시리아 및 리비아의 군사기지를 운용하고 있다. 특히 이란, 북한, 미얀마, 중국 등과의 군사협력은 더욱 긴밀해졌다.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전투용 드론, 미사일 공급 대가로 전투기와 대공미사일 지원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으로부터는 포탄과 로켓 구매, 그 대가로 정찰위성, 해군·공군 현대화 지원 등을 제공할 수 있다. 미얀마 정권으로부터는 무기 부품을 구매했고 러시아는 외교적 지지와 대테러 훈련을 제공했다. 중국 역시 러시아와 상당한 수준의 군사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와 대외적인 군사협력 추진은 일종의 반미, 반서방, 반제재 코드에 기반한 협력 네트워크다. 대내외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국가들의 절박한 연대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기술 협력은 한반도를 비롯한 주요 분쟁 위험 지역의 확전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이런 반미 코드화 속에서 러시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면서 핵확산 규범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북한도 진영화에 편승한 핵보유국 기정사실화, 불가역성을 보여주는 행보에서 보다 과감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주 북한은 2024년 정책 방향과 주요 과업을 논의하는 당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북한은 미 대선을 염두에 두고 반미 공세를 강화하면서 미국 차기 행정부에 ‘비핵화 불가, 불가역적 핵보유’를 강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핵·미사일 고도화 과시에 더욱 집중할 가능성이 있다. 북-러 모두 대미 견제 및 압박에서는 일정한 이해를 가지고 있어 3월 러시아 대선 이후 북-러 밀착을 강화하는 고위급 및 정상외교를 가동할 가능성도 있다. 또 북중 수교 75주년을 활용한 고위급 외교, 북중 교역 및 관광 유치를 활성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3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대의원선거 통한 대규모 인사 및 중장기 국가비전의 발표, ‘당의 유일사상체계 10원칙’ 발표 및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선포 50주년 계기로 김정은의 ‘새 시대 당건설 사상’의 전면화 등 김정은 우상화를 보다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는 지금] 중국의 ‘전방위 외교’와 영향력 확대

2023년은 시진핑(習近平) 3기 지도부가 공식 출범한 첫해다. 중국은 작년 10월 제20차 당대회에서 외부로부터의 위협과 도전에 대한 대응을 강조함으로써 시진핑 3연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고, 올해 중국 외교의 목표를 중국에 유리한 우호적인 전략환경 조성 및 글로벌 영향력 확대로 설정했다. 이러한 외교 목표 달성을 위한 시진핑 지도부의 선택은 ‘전방위 외교’였다. 2023년 중국의 전방위 외교는 국가원수(元首) 외교를 활용해 강대국, 주변국, 개발도상국, 다자기구 등을 대상으로 다각적으로 전개됐다. 대국외교의 핵심은 미국과 러시아 및 유럽연합 등 강대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3월 중-러 정상회담에서는 14개의 경제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반미’연대를 추구했으며 1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간 ‘책임감 있는 경쟁 관리’를 논의함으로써 양국 모두 국내 경제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중국과 유럽연합 관계 역시 디커플링이 아닌 디리스킹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상호 전략적 소통을 강화했다. 주변국과 개발도상국은 중국이 우호적 전략환경을 조성하고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핵심 대상이다. 올해 중국은 베트남과 파키스탄 등 주변국과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대응했으며 10월에는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 포럼’을 개최해 관련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다. 반면 북중 간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았고 한중관계 역시 경색 국면을 지속했다.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 불리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접근도 주목할 만하다. 2023년 중국은 브릭스(BRICs)와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외연 확대 및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강화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엔과 국제기구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 개혁을 주장해온 중국은 2021년 ‘글로벌 발전 구상(GDI)’ 및 2022년 ‘글로벌 안보 구상(GSI)’에 이어 2023년 ‘글로벌 문명 구상(GCI)’을 발표해 미국과 구분되는 ‘중국식’ 국제질서 창출 의지를 표명했다. 다만 중국이 주장하는 각종 ‘구상’의 내용이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공감대를 확보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시진핑 3기 집권 2년 차를 맞이하는 2024년 중국의 정책 우선순위는 대내적 차원에서 경제 회복 및 사회 안정에 매진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우호적 대외환경 조성 및 영향력 확대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의 회복 여부, 미국의 중국 견제와 압박 지속 여부, 유럽연합 국가들의 중국과 관계 설정, 그리고 11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 등과 같은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중국 외교의 방향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고 이는 곧 한중관계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한국 역시 대내외 전략환경 변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국가 간 각자도생의 기술패권·자원·에너지 전쟁에 대비하고 디리스킹 추세를 활용하는 등 선제적 대응 방안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현재 이민 정책과 난민 문제에 대한 고찰

유럽연합은 1956년 6개국으로 설립된 이후 회원국이 28개국으로까지 늘어나면서 60년 동안 평화로운 공동체로서 지내 오려는 노력을 해왔다. 이러한 유럽연합의 생각을 보여주듯 이들의 신조는 라틴어로 “In varietate concordia(인 와리에타테 콩코르디아)”이며 이는 ‘다양성 속의 조화’라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영국은 회원국이 된 지 몇 년 안 됐을 무렵부터 연합을 탈퇴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러다 2016년 당시 총리였던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행한 유럽연합 탈퇴에 관한 국민투표의 결과가 탈퇴 찬성 51.9%으로 결정됨으로써 4년 뒤인 2020년 1월24일, 영국은 절차를 밟고 공식적으로 ‘브렉시트’하게 됐다. 이뿐만 아니라 영국은 그동안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 유럽연합의 통합 화폐인 ‘유로’를 쓰지 않고 ‘파운드’를 계속해서 고수해 온 사실 등 유럽지역의 문화와 다양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유럽연합의 목표와 간극을 좁히는 데 있어 상당히 미온적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경제적 이슈와 일자리 부족이라는 사회 문제가 자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 큰 이유가 됐을 것이다. 영국은 결국 혼자의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오히려 물가가 크게 오르고 저임금 외국인 노동자가 없어지면서 많은 경제적·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영국의 리시 수낵 총리는 영국의 고립적 성향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듯 총리직에 오르기 전부터 난민의 허용 수를 줄이고 불법 이민자를 더욱더 엄격하게 대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그중에서도 지난 4월 제시한 ‘르완다 정책’이 대법원에 의해 위법이라 판단돼 다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권법과 국제난민협약에 반하는 이 법안에 동의하지 못한 영국의 로버트 젠릭 이민부 장관은 장관직을 사임하기까지 했다. 물론 난민을 무조건 허용한다는 것이 좋은 방안은 아니다. 스웨덴은 2015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그리고 이라크 같은 중동지역 난민을 16만3천명이나 허용했다. 그 결과 스웨덴은 현재 알바니아 다음으로 총기 범죄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사회적 취약 계층인 이민자들이 조직범죄에 가담한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 통합에 실패한 케이스가 많기에 국적과 문화가 다른 이민자를 수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난민들은 누구보다도 자신의 고향에 남고 싶어 한다. 애석하게도 그들에겐 그 선택지가 없을 뿐이다. 지금의 선진국들이 많은 기여를 한 기후변화로 인한 기아와 기근, 전쟁으로 인한 인권 침해와 박해 때문에 그들은 이동할 수밖에 없고, 모두가 평등해야 할 이 지구에서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지옥 같은 삶이 일상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은 지난 70년간 매년 적어도 160만명이나 발생했다 한다. 영국이 끝없이 밀려드는 불법 이민자들과 난민을 대책도 없이 무조건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국이 독단적인 행동을 하면 할수록, 유럽연합에서 떠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자국에 큰 파도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필자는 ‘다양성 속의 조화’를 믿는다. 이동 수단의 발달로 이제는 국경과 인종의 의미가 점점 없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필자는 그저 자꾸만 과거로 역행하려는 것 같은 영국의 행보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이제 영국만의 문제가 아닌 글로벌 문제인 것을 상기하면서 우리는 공동체로서 더 나은 대책을 만드는 것을 멈추면 안 될 것이다.

[세계는 지금] 2030 리야드 엑스포와 걸프 국가의 메가 이벤트 유치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EXPO) 개최지로 최종 선정됐다. 지난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BIE) 제173차 총회에서 진행된 2030 엑스포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사우디는 한국의 부산과 이탈리아의 로마를 제치고 최종 개최지 유치에 성공했다. 사우디는 엑스포 개최로 약 4천만명의 관광객이 리야드를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특별한 엑스포 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함께 세계 3대 국제 메가 이벤트로 일종의 경제·문화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다. 1851년 런던 엑스포를 기원으로 1928년 파리에서 체결한 ‘국제박람회조약’에 따라 5년마다 개최된다. 1988년 개정된 협약에 의거해 엑스포는 월드엑스포와 전문엑스포로 나뉘는데 이번에 결정된 리야드 박람회는 월드엑스포로 제한적으로 운영되는 전문엑스포에 비해 규모나 내용 면에서 더욱 권위를 인정받는다. 과거 한국에서 개최됐던 1993년 대전 엑스포나 2013년 여수 엑스포는 모두 전문엑스포로 한국은 아직 월드엑스포를 개최하지 못했다. 현재까지 엑스포는 유럽에서 6회, 북아메리카 3회, 아시아 3회, 남아메리카 1회, 중동에서 1회 개최됐고 사우디 리야드가 2030 엑스포 개최지로 결정되면서 사우디는 중동에서 두 번째로 엑스포를 개최하게 됐다. 중동의 걸프 국가들의 메가 이벤트 유치 움직임은 카타르를 필두로 시작됐다. 카타르는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011 아시안컵, 2022 도하 월드컵, 2023 아시안컵, 2030 도하 아시안게임 등 일찍부터 메가 이벤트 유치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경주해 왔다. 사우디는 국가경제개혁 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2030의 시작과 함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적극적이고 개혁적인 리더십을 중심으로 메가 이벤트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2021 사우디아라비아 그랑프리(F1), 2023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 2023 FIFA 클럽월드컵, 2027 아시안컵, 2029 동계 아시안게임, 2030 리야드 엑스포에 이어 2034 월드컵 개최가 사실상 확정됐다. 걸프 국가들이 메가 이벤트 유치에 열을 올리는 배경에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효과가 있다. 유명 스포츠 이벤트 유치를 통한 국가 브랜드 홍보뿐 아니라 스포츠를 이용한 대중적 이미지와 명성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걸프 국가의 메가 이벤트 유치는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 전환과 국가 이미지 개선을 목표로 한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걸프 국가의 메가 이벤트 유치는 자국 경제발전과 지역개발 등의 기대효과 외에 탈(脫)석유 시대를 대비하는 걸프 왕정 국가들의 네트워크 구축 및 강화를 위한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부산은 사우디의 리야드와 엑스포 개최지 유치 경합에서 안타깝게 성공하지 못했다. 리야드가 개최지로 선정된 배경에 사우디의 ‘오일머니’가 작용했다는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는 ‘변화의 시대: 지구를 미래의 시각으로’를 슬로건으로 내세워 다른 문화 간, 민족 간 문화 교류와 혁신을 촉진하는 기회로 삼기를 희망하고 있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 사우디는 연일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국제적 메가 이벤트를 유치하는 등 개혁과 변화를 위한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사우디의 변화가 중동의 변화를 견인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수년 안에 다가올 사우디의 미래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세계는 지금] 공식시장을 통해 본 북한의 경제정책

연말, 결산의 시기다. 북한도 통상 이 시기면 연초 목표했던 한 해 경제 목표를 채우기 위해 성과 ‘몰아치기’가 한창인 때다. 2023년 역시 북한경제는 악전고투의 한 해였다. 연초 북중 국경을 열며 무역이 재개됐지만 식량 수급의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아사자’가 보고되기도 했다. 국가의 식량 통제가 강화되면서 곡물가가 오르고 아사자가 발생한 것이다. 그만큼 국가가 식량분배를 통제하며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고 배제된 사람들이 발생, 그중 농민층이 극심한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당국은 곡물 생산 ‘허위보고’, 곡물 수매 과정의 유출, 시장 유통 곡물에 대한 돈주들의 사재기 등을 막겠다고 통제에 나섰으나 오히려 시장 유통을 제약하고 분배 교란을 가져온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시장’은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을까. 북한의 시장은 당국이 허가한 공식시장과 불법적인 비공식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통일연구원은 2016년 국내 처음으로 북한에 있는 공식시장의 전국적 분포와 입지 현황을 조사한 바 있고 2022년 6년 만에 동일 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2022년 11월 현재 북한의 공식시장은 총 414개로 집계됐다. 2016년과 비교하면 1개 감소했다. 숫자로 보면 공식시장 증가는 정체 국면에 있었다. 전체 시장의 신규 건설, 폐쇄, 이전, 확장, 축소 등의 변동 건수는 총 116건으로 파악됐다. 신규 설치 및 확장 등 규모 확대 관련 건수는 45건, 폐쇄나 축소 등 규모 감소 관련 건수는 26건으로 전체 시장 수의 순증가는 –1개이지만 일정 수준 규모 확장은 진행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별 시장 수는 평안남도가 68개로 가장 많았고 평양까지 포함하면 98개의 시장이 평남에 위치하고 있다. 도별 시장 수는 평균 31.8개로 2016년과 비교하면 변화는 미미했다. 전체적으로 도별, 시별 시장 수에도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공식시장 1개당 이용 인구 수는 6만1천831명으로 2016년 당시 5만6천265개에 비해 5천566명 증가했다. 통계청의 북한 인구 추계로 2008~2022년 약 224만8천164명의 인구가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인구 증가에 비해 시장 수는 정체돼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각 시장의 시설 규모 확대를 통해 일정 부분 늘어난 인구 수를 소화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공식적인 종합시장 이외의 상품 소비·유통 방식의 다양화가 시장 수 증가 압박을 완충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국 공식시장 전체 면적은 여의도 면적(2.9㎢)의 60%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 1개당 평균 면적은 4천697㎡(1천420평)로 서울광장(1만3천207㎡)이나 잠실야구장(1만3천880㎡)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2016년과 비교했을 때 시장 1개당 면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시장 매대 수는 추정 결과 총 115만3천722개로 집계됐다. 2016년에 비해 6만730개가 증가한 것이다. 시장 매대 1개당 상인 1인으로 가정하면 북한 전체 공식시장 상인 총수는 115만3천722명, 매대 상인 외에 시장관리소 관리 인력을 합하면 북한 공식시장 관련 종사자 수는 116만312명으로 추계됐다. 시장 관리에선 변화가 나타났다. 2021년 제8차 당대회 이후 비교적 자율적으로 운영돼 왔던 시장 시스템을 국가의 계획지표 안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2021년 모든 상업기관과 생산, 유통, 판매 전 영역에 걸친 통제 강화 계획을 밝히면서 시장에 대한 통일적 지휘 체계를 확립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장세’는 북한 당국이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재정 자원이 됐다.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2010년 이후 확장 일로에 있던 북한 시장은 최근 국가 통제로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코로나19의 영향도 있다. 올해 8~9월 격심했던 식량난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연말에 있을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2024년 경제과업을 제시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미중 정상회담의 국내적 요인

지난주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은 고위급 군사협력 채널 복원과 마약금지 협력 강화 및 교육·문화·비즈니스 분야 교류 확대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대만 문제와 대(對)중국 기술통제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이견을 확인했고, 한반도 문제도 회담 의제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번 미중 정상회담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동안 치열하게 전개된 미중 전략경쟁이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중 간 ‘핵심이익’을 둘러싼 전략경쟁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본격화됐고 2021년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지속됐다. 전략경쟁의 분야도 무역통상에서 시작해 이데올로기와 대만 문제 및 첨단 과학기술 등으로 점차 확대됐다. 급기야 미국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을 강조했고 중국도 핵심 이익에 대한 절대 양보 불가 방침을 고수하면서 양국 간 전략경쟁은 갈수록 심화됐다. 하지만 올해 5월 이후부터 미중 전략경쟁은 서서히 완화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의 국가안보보좌관, 국무장관, 재무장관, 상무장관 등이 차례로 중국을 방문해 “중국과 신냉전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디커플링을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발신했다. 중국도 미국의 유화 제스처에 적극적으로 반응함과 동시에 자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왕이 외교부장은 10월 미국을 방문해 대만 문제와 핵심기술 봉쇄 등에 대한 미국의 입장 전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고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 조율을 진행했다. 이처럼 미중이 긴장 완화를 통해 양국 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한 이유는 양국이 처한 국내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중국 디커플링 전략이 미국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이로 인해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도 작년 11월 리오프닝 이후 다양한 경기 부양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 급감 등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은 장기화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도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 모두 치열하게 전개되던 전략경쟁을 잠시 멈추고 국내 문제에 치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중관계 개선 분위기는 무역 및 산업 분야에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다. 올해 11월 초 중국 국영 곡물업체는 미국으로부터 약 70만t의 대두를 구입했고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도 중국시장 공급용 인공지능(AI)칩 출시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AI에 대한 정부 간 대화 강화에 합의했고 중국이 주최한 미국 기업인들과의 만찬에 글로벌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대거 참석함으로써 대중국 투자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미중 간 핵심 이익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라는 전략경쟁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책임감 있는 경쟁 관리”로 설명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대국 간 경쟁은 시대의 대세가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즉, 미국은 경쟁을 말하고 중국은 협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개최된 양국 상무장관회의에서 중국은 미국의 대중국 수출통제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으나 미국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라 협상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여줬다. 대만 문제도 내년에 예정된 대만 총통선거와 미국 대선 등을 앞두고 미중 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최근 미중관계에서 나타난 전략경쟁의 ‘안정적 관리’ 모드는 언제든지 다시 ‘경쟁 혹은 갈등 심화’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는 곧 국제 정세의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대내외적 환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에 근거해 특정 국가에 편향된 외교에서 탈피, 국익 기반의 ‘실리외교’를 제대로 추진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현대까지 미치는 제국주의의 영향과 이-팔 전쟁의 원인

10월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하면서 1천400여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시작해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인한 팔레스타인인의 사망자가 최근 1만명이 넘었다. 아무리 인간의 역사가 다른 민족 간의 종교전쟁과 학살, 땅 따먹기의 되풀이라 할지언정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속되는 깊은 갈등은 21세기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수준의 것이다. 이렇게 끊이지 않는 갈등의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면 어떤 이는 로마제국의 팔레스타인(옛 이스라엘) 지배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것이고, 어떤 이는 오스만 제국 시대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 갈등의 원인들은 바로 제국주의의 식민정책, 그리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에 의해 체결된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밸푸어 선언’이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은 각자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었고, 이는 근본적으로 1차 세계대전의 원인으로 발전한다.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사건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제국주의 국가 간의 식민지 쟁탈전이었던 것이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옛 유대인의 고향이었으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다. 영국은 이 레반트와 아라비안반도 지역을 두고, 오스만 제국을 제압하는 데 도와주면 아랍인들에겐 아랍인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후세인-맥마흔 서한)을,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의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밸푸어 선언)을 함으로써 두 민족의 도움을 받아 승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은 같은 연합국이었던 프랑스와 전쟁 후 이 지역을 나눠 통치하겠다는 사이크스-피크 협정을 미리 맺어 놓았기 때문에 막상 전쟁이 끝나고 나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영국의 팔레스타인 식민통치 기간 내내 달라진 건 없었다. 대영제국에 의해 서로의 이해관계가 전혀 성립될 수 없는 협정을 당사자들은 서로 모른 채로 맞닥뜨리게 됐으니 중동이 큰 혼란에 빠진 것은 영국이 크게 일조한 것이나 다름없으며 변명의 여지없이 그저 제국주의적 사상으로 식민지를 확장시키려 두 민족을 철저히 이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대영제국만이 인류 역사에 있어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다른 민족을 이용했던 나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옛 이스라엘 지배로 유대인은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중동과 다른 지역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로마제국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배하고 포로가 돼 다른 나라로 끌려가기도 했으며, 척박한 땅을 떠나 살기 위해 이동하기도 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구약성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대인의 이주와 핍박은 이집트에 의해서도 일어난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수많은 제국주의 국가에 의해 흩어져 자신이 속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국가나 영토 없이 박해 당하며 정말 오랫동안 살아남아온 디아스포라 민족이다. 슬프게도 유대인만이 강제적인 디아스포라를 당한 민족이 아니다. 제국주의의 노예제도에 의해 수많은 노예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이주 당했고, 그중에서도 적지 않은 인구가 노예선에서 살아남지 못해 바다에 던져졌다. 제국주의가 저지른 강제적 디아스포라와 식민주의는 현대에도 구조적인 인종차별과 임금차별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후세인-맥마흔 서한과 밸푸어 선언은 현대까지 영국 제국주의의 가장 큰 정치적 실책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으며 그 제국주의의 직접적인 영향이 현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한마디로 제국주의 식민지 전쟁의 산물이다. 제국주의의 영향은 현대에도 만연하다. 제국주의의 비인간적인 역사는 이렇듯 현대에도 아직까지 너무나 많은 사회적 문제의 뿌리로 남아있으며 어느 쪽의 잘못이 더 크고 작고의 문제 이전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은 그 많은 문제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우리는 앞으로도 현대를 살아가면서 제국주의의 역사를 그저 과거로 바라보는 시각보다 그 잘못이 현대에까지 주는 영향을 잊지 않고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위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탈식민주의적 생각을 따라야 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이-팔 사태를 보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한 달로 접어들고 있다. 육해공의 전방위적 공격과 상상을 뛰어넘는 치밀한 전술로 천장 없는 감옥이라 불리던 가자지구의 콘크리트벽과 철조망을 부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공격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무엇이 잘못될 것일까? 어디서부터 얽힌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걸까? 잊혀지는 듯했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고 세계는 중동을, 그리고 팔레스타인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11월6일(현지 시간) 현재 가자지구 사망자 수는 1만22명이며 그중 4천104명은 어린아이들이라고 하마스 보건부는 발표했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 1천400명을 합쳐 지난 한 달 동안 발생한 사망자 수는 약 1만1천400명이다. 위성사진으로 확인한 가자지구의 모습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이스라엘군의 가차 없는 폭격과 공습으로 그나마 빼곡히 모여 있던 낡은 건물들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돼 있었다. 2만2천145㎢의 이스라엘 땅에 가자지구가 차지하는 면적은 불과 365㎢다. 길이 41㎞, 폭 10㎞의 좁은 지역에 230만명의 가자지구 주민들은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된 6m 높이의 육중하고 단단한 콘크리트벽 안에서, 물과 전기와 식량의 반입까지 제한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하마스 궤멸이라는 구실로 자행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은 학교, 병원 심지어 난민촌까지 가리지 않는다. 지하 40m 깊이에 약 500㎞까지 늘어선 ‘가자메트로’라 불리는 지하터널망에 숨어 있는 하마스 대원을 색출해 사살하려는 이스라엘군의 분노에 찬 공격은 무너진 건물 잔해 위를 넘는 탱크와 그 뒤를 따르는 지상군의 진격으로 이어진다. 1천400명의 이스라엘 민간인이 희생된 하마스의 공격은 초반에 국제사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현재 이스라엘 사망자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에 ‘인도주의적 휴전’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 이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다시 이스라엘을 방문해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청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했고 아랍 외교장관들은 이 시점에서 필요한 조치는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휴전이 아닌 인도주의적 휴전 자체라며 미 국무장관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오스만제국과 독일을 상대로 승리하기 위해 당시 유럽 유대계의 큰손인 로스차일드경에게 전쟁비용을 지원해주면 유대인 국 가건설을 지원하겠다는 ‘벨푸어선언’을 약속한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영국은 ‘멕마흔-후세인’ 협정으로 아랍인들에게 전쟁 후 아랍독립국을 약속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는 전후 중동지역을 나눠 각각 식민통치하자는 ‘사이크스-피코’협정을 비밀리에 맺는다. 영국은 같은 땅을 두고 세 개의 서로 다른 약속을 한 것이다. 결국 전 세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으로 몰려들었고 1948년 5월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 수는 2022년 기준 590만명을 넘어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떠한 경우에도 민간인들의 희생은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순간에도 폭격에 속절없이 희생되고 있는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고통을, 그리고 외침을 가슴에 묻는다.

[세계는 지금] 김정은은 왜 군사정찰위성에 집착할까

북한이 10월에 발사하겠다고 예고했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가 기한 내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 5월31일 1차 발사 실패 후 85일 만인 8월24일 2차 발사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은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으로 3차 발사를 예고한 바 있다. 김정은은 올해 상반기부터 다른 활동은 뒤로 미룬 채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는 점에서 체면을 구기게 됐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군사정찰위성에 집착하는 것일까. 낙후된 북한경제 상황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집착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군사적, 외교적, 국내 통치 차원의 ‘절박성’이 담겨 있다. 우선 핵무기 고도화에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다종화된 미사일을 개발·실전화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어디에 쏠지 들여다볼 위성은 없다. 쉽게 얘기하면 매서운 주먹은 있지만 눈을 가리고 있는 꼴이다. 군사정찰위성은 상대의 군사기지, 무기체계, 군사 동향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미사일 운용 시 효율성과 정확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은 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합쳐 소위 ‘양탄일성’이라 부르며 핵무력 완성의 척도로 삼았다. 북한은 2021년 제8차 당대회를 통해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계획’을 제시한 이후 ‘북한식 3축체계’를 목표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한마디로 전술핵+전략핵+정찰위성 3축의 플랫폼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다. 전술핵무기를 실전화해 한반도 및 일본(주일미군)에 대한 억제력을,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같은 전략핵무기를 통한 억제력을,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통해 핵·미사일의 운용성을 높이는 차원이다. 북한은 “미국과 그 추종무력들의 위험한 군사행동을 실시간으로 추적, 감시, 판별하고 사전 억제 및 대비하며 공화국 무력의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화하는 데서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도 있다. 통상 정찰위성 개발이 장기간의 투자와 실험을 요한다는 점에서 여러 기술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1~3차 발사를 짧은 간격으로 연속 실험하는 것은 기술적 차원보다는 ‘정치적 목적’이 클 가능성이 있다. 단기적으로는 한미의 확장억제력 강화, 한미일의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핵무기 고도화 의지를 피력하고 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는 차원이다. 한편으로 김정은 당 총비서의 대내 성과를 과시하는 국내 정치적 목적도 있다. 북한은 정찰위성에 대해 “핵심 우주과학기술연구사업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들 이룩”, “종합적 국력의 시위”, “과학기술강국의 지위 확보”, “경제발전 주도하는 우주산업 건설” 등의 의미를 부여해 왔다. 핵무기 고도화에 모든 것을 집중해 온 김정은 노선의 성과와 정당성을 보여주는 차원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군사정찰위성 개발을 의식한 맞대응 성격이다. 소위 남북 경쟁을 의식한 행보다. 한국은 고해상도 군사정찰위성 5기를 개발 중이다. 2024년까지 영상레이더(SAR) 위성 4기, 전자광학(EO) 위성 1기 등을 전력화할 예정이다. 이달 미국 반덴버그 공군기지에서 ‘스페이스X’ 팰컨9 로켓에 실어 정찰위성 1호기를 발사할 예정이다. 북한은 지난해 한국의 고체연료 우주발사체 추진 시험(3월), 누리호 2차 발사(6월21일), 고체추진 우주발사체 시험(12월), 누리호 3차 발사(2023년 5월25일) 등에 맞춰 경쟁적으로 위성 관련 행보를 이어 왔다. 북한은 7월부터 발사체 신뢰도를 검증하기 위한 엔진 연소시험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차 발사체 인양 후 한미가 공동 분석한 결과 군사적 효용성이 전무하다고 한다. 결국 러시아의 기술 자문이 중요한 기폭제가 될 수 있다. 한미의 ‘비질런트 디펜스’가 실시되고 있다. 9~10월이 북-러, 중-러의 외교 시즌이었다면 11월은 미중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중동으로 시선이 분산된 속에서 11월은 조용했던 북한이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시기다.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일대일로(一帶一路) 10주년, 변신과 지속가능성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이 개최됐다. 이번 포럼은 중국이 일대일로 추진 10주년을 기념해 성과를 과시하고 국제협력을 강조하기 위한 외교무대로 기획됐다. 러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칠레 등 24개국과 국제기구의 정상들이 포럼에 참석함으로써 중국 경제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인시켜 줬고 중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는 한국도 해양수산부 장관이 참석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전쟁의 여파로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 유럽 국가들이 포럼에 대거 불참했고 최근 분쟁을 겪고 있는 중동지역 국가들의 참여율도 저조했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개발도상국들의 부채 문제 등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일대일로 10년의 성과를 저평가하고 그 지속가능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2013년 10월 시진핑 지도부가 제시한 국가발전전략 구상으로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러시아~유럽을 잇는 ‘육상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와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중동~아프리카~유럽을 연결하는 ‘21세기 해상실크로드(一路)’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은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대출이나 투자 형태로 자금을 빌려주고, 중국 기업이 해당 국가에 진출해 도로와 철도 및 항구 등과 같은 인프라를 건설해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국내에서 한계에 직면한 산업의 해외 진출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한 영향력도 확대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들 역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다양한 인프라를 건설하고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일대일로 구상에 긍정적이며 적극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개발도상국에 높은 이자의 대출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부채가 발생하고 있고, 해당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점이다. 이는 곧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일대일로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다. 세계은행의 2019년 보고서는 일대일로가 개발도상국의 무역과 투자 증진 및 인프라 개선 등에는 기여했지만 동시에 많은 부채를 안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과 경제회랑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금 부족과 비용 초과 및 환경 악영향 등의 문제에 직면해 계약을 취소하거나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전체 프로젝트 규모는 줄어드는 추세이며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인도-중동-유럽 경제회랑’이나 ‘글로벌 게이트웨이 프로그램’ 등을 제시해 일대일로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 지도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일대일로 구상은 향후 일정한 ‘조정’을 거쳐 지속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이 구상이 중국의 소위 ‘두 개의 백년 계획’, 즉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 및 20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100주년과 연동돼 있는 장기 프로젝트이자 미중 전략경쟁의 장기화 추세에 대비한 국가전략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2021년 11월 개최된 일대일로 좌담회에서 상대국이 감당할 수 있고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小而美) 프로젝트’를 추진할 것을 강조했고, 이와 관련해 중국은 2022년 해외 대출 규모의 엄격한 관리를 위한 문건을 발표했다. 이번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일대일로 참여국에 약 1천66억4천만달러를 새롭게 출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주목할 점은 향후 일대일로 국제협력의 중점이 녹색개발이나 공중보건 및 디지털경제 등과 같은 새로운 분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국의 개발도상국에 대한 인프라 건설로 시작한 일대일로 구상은 1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프로젝트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도 대응 프로그램을 가동하기 시작하면서 중국과의 영향력 경쟁에 대비하고 있다. 향후 중국 경제의 회복 여부 및 관련국과의 관계 개선 등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대일로는 중국의 글로벌 표준 개발 및 영향력 확대를 위한 플랫폼으로 기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중국과 미국 등 강대국들의 개발도상국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함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실질적인 국제 협력을 추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케이티 헤셀의 ‘남성 없는 미술사’

2022년 8월 출판된 케이티 헤셀의 ‘남성 없는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 Without Men)’는 출시되자마자 영국 최대의 체인 서점인 워터스톤으로부터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될 만큼 현재까지 핫이슈인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으나 미래의 한국 독자들을 위해 소개하고 싶은 책이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 책이 대중적으로도 유명해진 것은 21세기가 되면서 학문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여성과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술사는 현대까지도 굉장히 백인 남성 중심적이었다. 서양미술사의 교과서라고 여겨지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만 해도 여성 아티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 단어도 나오지 않는 사실을 보면 말이다. 헤셀은 책의 서문에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며 2000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30%만이 여성 화가의 이름을 3명 이상 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뿐만 아니라 영국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왕립미술원은 1768년 창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여성 아티스트의 개인 회고전을 열지 않았다. 영국에서는 2020년이 돼서야 내셔널 갤러리에서 이탈리아의 유명한 바로크 여성 화가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전시를 열게 됐다. 따라서 페미니즘적 새로운 관점은 미술계에도 끊임없이 필요하며 다행히 현재의 미술사학은 과거와 비교해 많은 페미니즘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중에서도 헤셀의 ‘남성 없는 미술사’는 르네상스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당시에는 이름이 꽤 알려져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역사에서 잊힌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 명 한 명 디테일하게 재조명한다. 그동안 백인 남성 중심이었던 서양미술사를 폭로하고 떳떳하게 남성을 배제해 버리는 제목 또한 위트 있고 당당하게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커버 디자이너가 ‘남성 없는’ 부분의 글씨를 투명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서점 방문자들이 이 책을 찾는 것을 어려워해 항상 직접 찾아줘야 한다며 지역 서점의 주인이 필자에게 불평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미술사가 애초부터 남성 중심이라는 페미니즘적 관점이 서양미술사에 지금에야 막 등장한 주장은 아니다. 미술사학계에 처음으로 이런 관점이 제시된 것은 1971년 미국의 미술잡지인 아트뉴스에 실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라는 린다 노클린의 에세이에서다. 그 당시만 해도 미술사의 주요 이론들은 사고방식이 남성 중심이거나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분위기가 미술계에서도 위대한 미술가들은 남성이 많다는 고정관념을 만들게 된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마치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교육돼 왔다. 린다 노클린은 이러한 사실을 꼬집으며 그전까진 아무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던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 충격을 줬다. 남성 우월적 분위기의 사회는 말할 것도 없고 과거에는 여성 화가와 남성 화가가 그릴 수 있는 장르가 달랐으며, 화가에게 필수인 누드 드로잉 연습을 하는 것까지 여성에게는 금지됐던 사실 등 구조적인 성차별적 문제가 현재의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을 폭로하면서 말이다. 위대한 여성 화가는 존재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워진 것이다. 현대의 미술사학은 노클린 같은 새로운 페미니즘적 관점의 이론들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육되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적어도 필자가 공부한 영국에서는 말이다. 이러한 이론들이 미술사학계에서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없는 미술사’ 같은 책을 통해 대중적으로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생각에 우리나라에도 여성의 관점으로 보는 페미니즘적 한국미술이론이 현재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과 이론이 대중적으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처럼 새로운 여성의 관점으로 미술사를 연구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환경이 지속된다면 한국에서도 역사에서 지워졌던 위대한 여성 화가들이 앞으로 계속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라 기대된다.

[세계는 지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향방

지난 7일 이스라엘과 전 세계는 이스라엘 내 가자지구를 실효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 무장 정파의 집중 공격으로 충격에 휩싸였다. 현재까지 양측 합계 1천600여명의 사망자와 6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제5차 중동전쟁’으로 사태가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1948년 이스라엘은 현 영토에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전 세계로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은 국가 건설의 염원이 실현됨과 동시에 이스라엘 영토로 몰려들었고 당시 현지에 거주하고 있던 아랍인(팔레스타인인)들은 하루아침에 집과 고향을 잃고 난민이 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 바야흐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서막이 열린 것이다. 현재까지 수십년간 계속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은 중동지역 문제 중 가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로 주변 아랍국과 미국을 포함한 서구국가들에 정치적 부담이 돼 왔다. 1993년과 1995년 극적으로 오슬로협정이 체결되면서 한 영토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국가가 공존하는 해법, ‘두 국가 해법(Two State Solution)’이 제시됐지만 이마저 흐지부지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악화일로를 걸어 왔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것은 공격의 양상이 기존 패턴과 상당히 다른 동시다발적인 집중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로켓포 4천500발을 동시에 발사해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최첨단 저고도 방어시스템인 아이언돔을 무력화시켰고 육해공에서 수백명의 하마스 무장대원이 이스라엘로 침투해 민간인을 향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해외)와 신베트(국내)의 정보력 부재도 큰 문제로 대두됐다. 이들이 하마스에 허를 찔린 배경에는 이스라엘의 첩보력과 군사력에 대한 과신과 현 네탸냐후 정권이 주도한 사법부 무력화에 대한 반발로 인한 정치적, 사회적 혼란이 대두되고 있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중동 내 확전 가능성과 미국과 이란의 국제전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과거 팔레스타인 문제를 형제국의 비애로 함께 싸워 왔던 아랍국들이 2020년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고 최근에는 미국의 중재로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마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려는 상황이 하마스에는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지역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두 곳으로 제한돼 있다. 특히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로 인해 경제난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실업률 50%에 물과 생필품, 전력이 수시로 차단되는 기본적인 생존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얻는 쪽은 누구이며 잃는 쪽은 누구인가? 중동지역에 아랍국가 연대라는 대의명분은 사라지고 자국 이익만 남은 상황에서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응, 그리고 국제사회의 대처가 갖는 함의는 무엇인지 상황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북-러 정상회담의 전략적 메시지들

지난 9월12일부터 17일까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러시아 방문이 있었다. 북한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협력 가능성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향후 북-러 협력 양상에 따라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는 큰 변화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러는 정상회담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군사협력’ 가능성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국제적 주목 효과를 한껏 누렸다. 그렇다면 북-러 정상회담 행보 속 전략적 의도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견제에 있어 북-러의 전략적 일치다. 러시아는 ‘장기적 소모전’으로 전환된 우크라이나전쟁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데 북한을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대부분 포격전에 집중되면서 장기간의 사상자 발생, 장비 손실 및 탄약의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이다. 양측 모두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장비 수리 및 교체, 최전선 병력 순환, 포탄 및 탄약 조달에 급급한 국면이다. 북한은 제재를 감수하면서 러시아의 소모전을 지원할 안정적인 후방 공급기지로서 최적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거의 유일한 국가다. 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와 전세의 불확실성은 미국 대선 국면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대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공화당 내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이 팽배하다.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는 미국 대선 국면을 염두에 둔 ‘심리전’ 차원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북-러 군사협력을 통한 대미 견제는 동북아로도 연결된다.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핵심기술 이전 가능성을 전면에 부상시킴으로써 동북아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한편 한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경고의 성격도 띠고 있다. 우크라이나 유럽 전선과 동북아 전선 양쪽을 연계하는 대미 견제 차원에서 러시아는 ‘북-러의 군사협력’ 메시지를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입장에선 북-러 군사 협력의 가능성은 핵·미사일 고도화를 통한 대미 억제 의미를 갖는다. 무기에 대한 기술 지원뿐만 아니라 동해상에서의 북-러 연합훈련을 통해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하는 구도를 만들 수 있다. 한편 북-러 밀착을 통해 북한의 대중국 의존성을 분산해 군사·경제적 협력 창구를 넓히는 의미도 갖는다. 둘째, 실질적인 북-러 군사기술적 협력의 효과다. 단기적으로 한미일에 대응하는 북-러 협력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미일 연합훈련에 대응한 동해상의 북-러 해상연합훈련, 공군 전력에서 절대적 열세에 있는 북한에 대한 대공미사일체계 지원, 얼마 전 북한이 공개한 ‘전술핵공격잠수함’ 개조에 대한 기술적 지원, 군사 정찰위성 개발에 대한 지원 등이다. 이 같은 지원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의 직접적 위반을 교묘하게 회피할 수 있는 ‘협력’이기도 하다. 향후 1년여 미국 및 중국의 반응, 북한의 우크라이나전쟁에 대한 기여 수준 등에 따라 핵·미사일 핵심기술에 대한 직접적 협력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러 양측의 협력은 유동적일 수 있다. 특히 중국 변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경우 북한의 대러시아 군사 의존이 높아지고 경제협력이 확대되면 중국의 대북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할 가능성이 높다. 북-러의 밀착은 중국이 통제하기 힘든 외교적 공간이 될 수 있다. 결국 향후 중국이 북-러 관련 어떠한 입장과 외교적 태도를 취하느냐가 북-러 밀착 수준을 가늠할 중요한 변수다. 그런 측면에서 조만간 있을 중-러 정상회담은 중국의 입장을 가늠해 볼 중요한 기회다. 이 회담 결과와 예상되는 푸틴-김정은의 후속 정상회담이 정세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북-러의 군사협력이 단기적 이해에서 중장기적 ‘전략적 일치’로 발전한다면 그 영향은 클 것이다. 북한의 대러시아 군수지원이 본격화되면 우크라이나전쟁의 전세 및 유럽의 안보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1년여 남은 미국의 대선에도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북-러 군사협력은 한미일 대북 억제력 강화, 중국의 대미 견제 차원의 군사적 활동을 자극해 동북아 안보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핵·미사일 기술 지원이 가시화될 경우 미국의 동북아 역내 억제력은 강화되고 한반도의 안보 딜레마는 보다 첨예화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는 지금] 항저우 AG과 중국의 속내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서 제19회 아시안게임이 개막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코로나19 팬데믹 종료 이후 중국에서 치러지는 가장 큰 국제행사이자 올해 3월 시진핑 3기 지도부가 공식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홈그라운드에서 개최하는 스포츠 이벤트다. 최근 미중 전략경쟁이 가속화되고 서방국가들의 집중 견제와 압박을 받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중요한 계기를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지난 9월23일 열린 개막식은 중국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외부 세계에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우선 중국의 역사와 문화 자원을 활용한 소프트파워를 과시하고자 한다. 개막식 공연에서 남송(南宋)시대의 수도였던 항저우의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하는 성대한 공연을 연출했다. 이번 대회 메달 수상자에게는 꽃다발이 아닌 도자기 형태의 꽃병을 시상품으로 전달할 예정이고 표면에 ‘열매가 결실을 맺다(碩果累累)’라는 뜻을 가진 한자를 표기했다. 또 항저우가 보유한 3개의 세계문화유산에서 힌트를 얻어 대회 마스코트를 선정하는 등 역사와 문화의 도시 항저우를 통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의도를 표출했다. 다음으로 친환경과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세계에 발신하고자 한다. 중국은 이번 아시안게임을 저탄소 녹색발전의 친환경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스마트 대회로 치르겠다고 공언해 왔다. 개막식에서 전통 방식의 불꽃놀이를 폐지해 탄소배출량을 줄였고 5G 이동통신기술과 인공지능 및 증강현실(AR) 같은 최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성화 봉송 및 점화 방식을 선보였다.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본사가 소재하고 있고 2016년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경험을 가진 항저우가 갖고 있는 스마트시티 구현 능력을 기반으로 중국의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조함으로써 우군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전략경쟁에 장기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반미 성향의 국가 혹은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경제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개막식 당일 환영 연회에서 아시아 운명공동체를 강조하고 냉전적 사고와 진영 대결에 저항할 것을 호소했다. 또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회담에서 한중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정책과 행동에 반영되기를 희망한다고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중국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자국의 소프트파워를 과시하고 디지털 강국 이미지를 전파하며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현재까지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보인다. 중국의 역사 문화에 관련된 개막식 공연은 “중국이 중국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했고 친환경 및 디지털강국 이미지도 국제사회에 긍정적으로 각인됐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은 ‘옥에 티’가 보인다. 반정부 시위대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시리아 대통령을 만나 일대일로(一帶一路)와 관련된 협력에 서명했다는 점,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징계를 받았던 북한이 인공기를 들고 입장하도록 허용했다는 점 등이다.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그것이 소프트파워로 연결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가 배울 점도 있다. 좀 더 주목할 것은 중국이 단순히 과학기술 역량을 과시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중국은 첨단 과학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의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의 과학기술 수준은 미국과 함께 여전히 세계 최고다. 실제로 최근 미국의 과학저널 네이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2023년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과학기술 분야 세계 최고 수준의 논문을 가장 많이 발표하는 나라가 됐고 최근 3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및 중남미 지역 국가들과의 국제 공동연구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성과를 이끄는 원동력은 국가 차원의 관심과 연구인력의 배양 그리고 과감한 예산 투자일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2024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개발 예산이 축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중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세계는 지금] 英•美•韓의 성소수자 차별•혐오 현주소

필자는 얼마 전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앞차가 ‘차별 금지법 반대’라는 슬로건의 스티커를 자랑스럽게 붙이고 다니는 것을 봤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차별 금지법’이란 사회적 약자와 성소수자 등을 포괄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에선 2006년 처음으로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이후로 아직도 입법화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대신 ‘장애인 차별 금지법’과 ‘성차별 금지법’ 같은 개별적인 차별 금지법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별법이기에 모든 종류의 차별을 법으로 막아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대표적으로 성소수자들은 대한민국에서 감당하기 힘든 차별과 혐오를 받아도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성소수자를 배려하는 병원과 진료소를 찾기도 어렵기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특히 트랜스젠더) 진료를 받을 권리조차 불안정하다. 이렇듯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는 위험한 나라인 한국을 어떻게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와 다르게 영국 국민들은 2010년부터 아홉 가지 개별적 차별 금지법을 통합한 ‘평등법’ 아래 보호받고 있다. 영국과 미국은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에 평등법까지 존재하니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없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실제로 경험한 영국의 사회 분위기를 보면 법의 유무는 실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의 정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분법적 성별에 속하지 않는 성소수자나, 생물학적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를 겨냥하는 혐오는 정도의 차이일 뿐 영국과 미국에서도 여전히 만연한다. 실제로 퀴어 혐오로 인해 일어난 미국의 증오범죄를 예를 들어보자.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는 본인을 여성도 남성도 아닌 ‘에이젠더’라고 정의하는 한 청소년이 외모가 생물학적 성별인 남성으로 보임에도 여성의 치마를 입고 버스를 탔다는 이유로 앞에 승차하던 다른 소년이 라이터로 옷에 불을 붙인 사건이 있었다. 놀라운 사건이지만 이는 너무나 많은 성소수자를 겨냥한 증오범죄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다. 퀴어들을 향한 합당치 못한 차별은 이렇게 리버럴한 서양 국가에서조차 적지 않다. 더 무서운 것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만 누구도 증오범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의견의 대부분은 이 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그들의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억압해 사회적 약자가 아닌 자신들을 오히려 역차별한다는 주장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회적 약자들이 이 법을 남용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정 종교인들은 이 법이 ‘관습’에 반하는 건강하지 못한 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논리라면 한국인에게 대놓고 동양인 차별을 하는 백인을 봐도 그들은 그저 관습대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생각이다. 또 국제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차별을 당연시하는 현재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은 지금 갖고 있는 소프트파워의 국제적 인기도 결국 잃게 될 것이다. 외국인이 방문하거나 거주하기에 안전하지 않은 국가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인간의 역사가 알려주듯 권위를 가진 한 인간이 공동체에 잘못된 두려움을 조성해 서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수단은 한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숨길 수 있는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대한민국에는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조금이라도 평등한 권리를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권위자들이 많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은 지도자들도 잘못이지만 공포의 근본적 이유를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국민의 무지함도 큰 잘못이다. 영국 정부는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타기팅이 잘못된 무지한 두려움을 혐오와 차별의 정당성으로 이용할 것인가? 이제는 시대에 맞춰 많은 것을 바꿔 나가야 할 때다. 국민 개개인이 더 공부하고 젠더 감수성을 길러 진심으로 다양성을 존중하고 당당하게 차별을 금지하는 나라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의 브릭스 가입의 함의

지난 8월 사우디아라비아는 경제 5개국 협의체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입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브릭스에 가입이 승인된 국가는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이란, 아르헨티나, 에티오피아로 2010년 남아공 가입 이후 13년 만에 브릭스는 외연을 확장하면서 회원국이 총 11개로 늘어났다. 이로써 세계 인구의 약 42%, 영토의 26%, 국내총생산(GDP)의 23%를 차지해온 브릭스는 지배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주로 남반구나 북반구 저위도에 위치한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의 목소리를 세계 의제의 중심에 두는 본격적인 다극화 시대를 열게 됐다. 그동안 중국과 러시아는 브릭스의 확장을 적극 추진해 왔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사이의 대립 구도가 고착화되는 가운데 6개 회원국의 가입은 미국의 패권에 경쟁할 수 있는 세력을 결집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 분석할 수 있다. 6개 신규 회원국 중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 이집트 등 4개국은 최근 10년 넘게 중국이 경제적, 외교적 지원을 하며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공을 들인 중동지역 국가다.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으로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중재하며 중동 문제의 주요 행위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브릭스 가입은 미국에 대한 발언력을 확보하고 현재 추진 중인 탈(脫)석유 경제구조 다각화 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2030’에 대한 적극적 투자유치가 주된 목적인 것으로 분석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등 에너지 부국들의 브릭스 가입은 러시아를 제외한 기존 회원국들에 향후 안정적 에너지 공급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란의 브릭스 가입은 또 다른 함의가 있다. 이란은 브릭스 회원국이 됨으로써 미국의 경제적 제재에 맞설 기회를 모색할 수 있고 미국을 주축으로 하는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G7 경쟁자를 만들기 위해 브릭스의 확대를 추진한 중국의 승리”, “서방과 지정학적, 경제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시진핑 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승리”,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합류로 브릭스의 경제적 영향력 확대”, “미국 주도 금융 질서의 대항마로서 브릭스의 새로운 역할” 등 세계 각국 언론은 이번 6개 신규 회원국의 브릭스 가입 의미를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브릭스의 외연 확장이 안보협력 단계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의구심은 남는다. 이번 신규 회원국 가입 승인 과정에서 보인 기존 5개 회원국 간 분열상은 11개 회원국의 각기 다른 당면 과제와 속내로 인해 향후 회원국 간 통합과 협력으로의 여정이 지난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6개국 가입 승인은 더 넓은 신흥국 세계의 통합과 협력을 위한 브릭스의 결정을 보여주는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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