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세종대왕 ‘나는 북극성이 아니다’

세종대왕과 노비출신으로 천재 과학자인 장영실을 다룬 영화 천문은 세종대왕역의 한석규와 장영실 역의 최민식의 뜨거운 연기로 감동을 더 해 주었다. 영화 속에서 세종대왕과 장영실이 별을 보며 대화하는 장면이 있다.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가리켜 저기 북극성이 전하 이십니다라고 말하자 세종대왕은 그건 아니다, 북극성은 중국 황제만이 칭할 수 있다고 주의를 준다. 북극성이 지구의 자전축과 북쪽에서 일치하는 별로 작은 곰 자리에서 가장 빛을 발하기 때문에 오직 중국의 황제만이 그것에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국내에서조차 세종대왕도 북극성에 비유하지 못한 것이 우리 역사이다. 만약 세종대왕이 장영실이 말한 대로 그래 내가 북극성이다 했다면, 그리고 그 말을 누가 중국에 밀고했다면 큰 변고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렇게 중국 황제를 비하하거나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는 등 중국에 불경한 행위를 했을 때 정적들이 중국에 밀고하여 큰 사건을 일으킨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특히 이와 같은 현상은 고려 때부터 극심했는데 심지어 우리의 왕 책봉권도 중국이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가령 원(元)나라가 고려에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고도 내정을 마음대로 간섭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왕 책봉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왕으로 인정해야 즉위할 수 있었고, 재임 중인 왕도 미덥지 않으면 바꿀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고려의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등 3명의 왕은 물러났다가 다시 왕위에 오르는 등 두 번씩이나 왕의 자리에 오르는 허망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충혜왕은 주색잡기에 빠졌다고 원나라 왕실에서 중국으로 압송했으며, 퇴위한 아버지 충숙왕을 다시 왕위에 앉히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렇듯 중국 원나라는 고려를 자기네 속국(屬國) 또는 번국(藩國) 정도로 취급하고 주권을 가진 국가 예우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고려의 대표적 간신으로 꼽히는 유청신(柳淸臣) 같은 사람은 아예 고려를 원의 속령으로 편입시켜 달라고 원에 청원하기도 했고, 멀쩡히 살아있는 충숙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폐위 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고려와 중국과의 관계는 조선왕조에 이르러서도 별반 나아지지 않았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그리고 구한말 일본 세력이 뻗어 오면서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1876년 일본의 무력시위 속에 맺어진 강화도 조약 제1조에서 일본이 조선은 자주국가 라고 선언한 것만 봐도 청의 속국처럼 되어 있는 것을 끊고 조선을 자기들 일본의 세력권으로 예속시키려는 흉계가 있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조선이 미국과 수교조약을 맺은 1882년, 청나라 대표 이홍장은 조약 제1조에 조선은 청의 속국이며 내정은 조선의 자주라는 조항을 넣자고 강력히 요구할 정도였다. 이에 미국 대표 슈펠트가 단호하게 거절, 속국이라는 문항은 넣지 않았다. 이렇게 불과 140년전 까지만 해도 중국은 우리나라를 속국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중국의 우리나라에 대한 인식의 DNA는 지금도 그들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지는 않은지? 가령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최고 통치자 시진핑과의 대화 중 시진핑이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하여 논란이 되었지만, 사실이라면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사드 문제로 관광객의 발을 묶어버리고, 김치의 종주국도 중국이라는 등 억지를 부리는 것을 보면 역시 그들 의식 속에 지워지지 않는 DNA가 있음을 새삼 느낀다. 정말 세종대왕을 북극성에 비유하는 것조차 중국의 눈치를 봐야 했던 역사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으려면 우리 정치인들이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명지휘자가 되려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1989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동서 냉전의 종식을 기념하는 음악회가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형식은 연합 오케스트라로 동독서독, 그리고 독일 점령국이던 미국, 소련(러시아), 영국, 프랑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 이 날 연주 할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환희의 송가」로 하는 것도 모두 합의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누가 이 연합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것인가에 세계적 관심이 집중됐다. 워낙 역사적 의미가 큰 연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로 각국 대표들이 회의를 시작하자마자 쉽게 결론을 내었다. 레너드 번스타인 지휘자의 이름이 발표됐을 때 미국, 소련(러시아), 동독, 서독 모두가 환영했다. 그만큼 그의 지휘 실력과 세계관과, 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미국 지휘자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 색채가 짙어 미국의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을 했고 인종 차별 폐지를 위해 킹 목사와 행진을 하는 등 미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이렇게 이루어진 이날 역사적 연주회에서 번스타인은 전 세계에 방송으로 중계되는 가운데 그의 지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의 지휘봉은 열정적으로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휘저었고 때로는 그 자리에서 점프하기도 했다. 마치 신들린 모습이었고 청중들은 숨을 멈추고 벅찬 대화합의 소리에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동독 사람들은 공산치하에서 느껴 보지 못한 영혼의 자유를, 그리고 서독 사람들은 평화의 소중한 자산이 무엇인가를 새삼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중계를 통해 이 장면을 보는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면 번스타인의 무엇이 이토록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을까? 무엇보다 통합의 마술이다. 악기마다 독특한 소리를 그 곡에 맞게 살려내고 그것들을 전체 오케스트라 속에 녹여내는 능력을 번스타인은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느 악기, 어느 소리도 번스타인의 지휘봉에서는 소외되는 게 없었다. 또한 미국 클래식 음악의 상징인 뉴욕 필 하모니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면서도 대중음악과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 주었다. 예를 들어 뮤지컬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작곡가가 바로 번스타인이며 심지어「워터 프론트」같은 영화음악도 제작하였다. 그러니까 클래식의 영역만을 고수하지 않고 대중음악과의 경계도 허물었다. 끝으로 그가 가진 자산은 특별한 카리스마다. 이 카리스마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었고 그 진솔한 행동은 자연스럽게 단원들 가슴에 전달되는 힘이 됐다. 그는 1990년 10월14일 뉴욕 자택에서 지나친 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2세. 번스타인이 아니더라도 교향악단의 명지휘자들이 갖는 공통점은 악기마다 다양한 소리를 살려 전체 오케스트라 속에 녹여 내는 통합과 화합을 보여주는 것이다. 요즘 이와 같은 오케스트라의 믿음직한 지휘자가 간절해지는 것은 왜 그럴까?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을 크게 걱정한다. 악기마다 다른 소리를 통합과 화합으로 이끄는 지도자가 없고 무대의 오케스트라는 골목대장들의 난장판 같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개똥벌레 철학 같은 것도 없고, 훗날 역사야 어떻게 기록하든 당장 눈앞의 선거에서 승리하고자 온갖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현실, 철저히 편을 가르는 정치, 그래서 피곤한 국민은 번스타인처럼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그리운 모양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아들아, 출세가 성공은 아니란다”

허위 스펙에 휘말렸던 조국 前 법무장관의 딸이 의사가 되는 것을 보고, 60만 원으로 한 달 생활한다는 장관이 딸을 연간 4천만 원이 드는 외국인 학교에 보내는 것을 보고 우리 20~30대 젊은이들은 정의, 꿈, 희망 같은 것이 얼마나 허망한 단어인가를 느낀다. 이 젊은 세대들이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월급을 한 푼 안 쓰고 몇십 년을 고생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 앞선다. 정말 이 나라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는가. 정의의 가치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가 회의에 빠지게 한다. 일자리를 구하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펙을 쌓아 보려고 죽어라 뛰어도 아빠 찬스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은 그래서 64%가 나는 하류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며 70%가 계층 상승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이다. (2030세대 904명에 대한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설문조사) 얼마나 가슴 아픈 현실인가. 한 마디로 꿈을 잃은 것이다. 최근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후배와 자리를 함께했는데 요즘 학생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교수를 혼란스럽게 한 직접적 동기는 그동안 여러 번 되풀이한 국회의 장관 인사청문회였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뻔뻔하고 양심이 없느냐는 것이다. 재산 숨기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심지어 입만 열면 교육평준화와 공교육을 주장하던 사람이 자기 자식은 특수학교에 보내는 등 이중인격의 얼굴을 보였는데 그래도 모두 장관에 임명되는 것을 보고 정치학을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대학을 나와서도 취직을 못 해 빈둥거리는 아들을 향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는 것이다. 또한 최고의 가치를 정직에 두어야 할 대법원장까지도 거짓말 파문에 휩싸이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당황하였다는 것. 그래서 그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들아, 출세가 성공은 아니란다 그러나 이 말이 얼마나 궁색한 것이고 무능한 아버지의 유체이탈이냐고 고백했다. 하지만 이 사람은 대학교수를 하면서도 자식들에게 아빠 찬스가 되어주지 못하는 것에 허탈해하는데 그보다 못한 보통 아버지들은 어떻겠는가? 그리고 그 부모 밑에서 기죽어 사는 자식들은 어떻게 할까? 바로 이것이 이 시대 우리나라가 앓는 중병이다. 안타깝게도 국가의 허리 역할을 하는 2030세대가 꿈을 잃고 헤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정치윤리, 그 최소한의 양심과 공공선(公共善)에 대한 불감증이 암세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가령 국민의 눈높이에서 볼 때 저렇게 뻔뻔스러운 사생활이 드러난 장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결기를 보여 주었다면, 그리고 대법원장이 거짓말 파문에 변명하고 사과할 것이 아니라 즉시 법복을 벗고 용퇴하는 결단을 보였다면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과 국가에 대한 자존심을 갖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아들이 아무리 합법적으로 코로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해도 더 어려운 보통사람의 아들들을 위해 양보를 했더라면 공공선(公共善)에 대한 멋진 표상이 되었을 것이 아닌가.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서울 특파원을 지낸 다니엘 튜더씨가 그의 저서를 통해 한국을 기적을 잃은 나라:기쁨을 잃은 나라라고 지적했는데 정말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말이다. 잃어버린 기적을, 그리고 기쁨을 되찾게 할 동력을 가진 우리 2030세대에 우리는 무엇을 보여 줘야 할까. 고작 출세가 성공은 아니라는 현실 도피성 담론이 젊은이들에게 감동을 줄까? 부끄럽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코로나 학번’의 잔인한 봄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학교의 K 교수는 강의실에 곧잘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와 함께 등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만큼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강의가 시작되자 K 교수는 고양이 없이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낯선 비대면 수업에 익숙지 않았던 학생들에게 고양이가 없는 교수의 강의가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K 교수는 비대면 수업시간에 자기 집 고양이를 깜짝 등장시켰다. 학생들은 그 고양이를 보는 순간, 손뼉을 쳤고 그 고양이 때문에 수업은 그런대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이처럼 비대면 수업이 시작되면서 대학은 대학대로 초등학교는 초등학교대로 예상치 못한 일이 빈발하고 있다. 그 중 원격 화상 수업 때문에 교사의 실력이 학부모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돼 학부모와 교사 간 갈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원격 수업에 대한 6건의 기사에 올린 972건의 댓글을 분석한 결과 학부모들의 교사에 대한 불만이 1학기 5.4%에서 2학기에는 27.7%로 크게 늘어났다고 보도된 것만 봐도 비대면 수업의 후유증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교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 지는 것이다. 왜 우리 아이는 발표를 안 시키고 그 애만 시키느냐?, 선생님 복장이 불량하다.선생님 수업 준비가 소홀하다.학생들에게 주는 숙제가 너무 어렵다. 등등. 학부모들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찌감치 쌍방향 수업을 시행하며 문제점을 보완해온 사립학교와 비교하는 소리까지 있어 이래저래 공교육은 불신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학부모들에게 화상 수업을 보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교사들이 처음 해 보는 화상 수업의 질과 기술을 높이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화상 수업의 질을 높인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자는 태어나서 어미로부터 사냥하는 법을 익힌다. 어미 사자가 사냥감을 향해 바로 달려가지 않고 최대한 몸을 숨기며 접근하는 것도 그렇게 보고 배운다. 어미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크면 둥지 밖으로 몰아내 떨어지게 한다. 그러면 새끼는 땅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날개를 퍼덕이게 되고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 어미처럼 높게 날게 된다. 그러나 인간만은 교육을 타인에게서 받게 된다. 교사, 친구, 때로는 이웃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로부터도 교육이 이뤄진다. 이것이 동물과 다른 점이다. 그리고 인간의 교육은 특별한 환경이 필요하다. 교실 또는 강의실, 캠퍼스, 동아리, 실험실, 운동장 그런데 코로나는 이런 것들을 교육으로부터 차단 시켜 버린 것이다. 한 인격자로서, 그리고 이 나라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조건들을 숙성시킬 환경들이 차단된다는 것은 개인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특히 대학생은 지난해, 그리고 올봄 입학하는 이른바 코로나 학번이 가장 큰 피해자다. 이들은 동기 얼굴도 잘 모르는 데 후배들이 들어오고 온라인으로 동아리 모임도 해야 할 판이다. 그 낭만적인 캠퍼스 축제 같은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학술 토론회나 해외 교류 프로그램 역시 그림의 떡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세계적 명성을 떨치는 하버드 대학의 샌델 교수 같은 석학들의 강의, 그런 강의를 들으며 벌이는 뜨거운 질문과 토론, 이런 모든 것이 차단된다는 것은 코로나 학번뿐 아니라 우리 코로나 세대 모두의 비극이다. 캠퍼스에 봄은 오고 있지만 코로나 학번들에게는 잔인한 봄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골프 황제의 충고 ‘머리를 들지 마라’

5ㆍ16 군사혁명으로 군인들이 정부의 장ㆍ차관을 차지하고 있을 때 내무부장관이던 모 육군소장이 어느 날 가뭄 피해 현장을 시찰하고자 충남을 방문했었다. 그는 현역 군복에 권총까지 차고 현장에 나타났다. 도청에서는 식산국장이 장관을 수행했는데 갑자기 논두렁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언성을 높였다. 물론 가뭄대책에 대해 식산국장이 장관의 지시를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가뭄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식산국장이 밝았을 터인데 장관은 장관의 권위로 누르려 했고 국장역시 소신이 강해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내 장관의 입에서 너 말버릇이 이따위냐?라며 권총에 손을 얹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식산국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긴장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는 잠시 후 화가 난 장관은 충남도청에 들러 도지사와 면담을 했는데 도지사도 군인 이었다. 주위에 있던 공무원들은 식산국장에게 인사조치가 내려 질 것으로 보고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었는데 마침내 도지사가 그를 호출했다. 그러나 식산국장이 지사실에 들어서자 그렇게 호통치던 장관이 악수를 청하며 훌륭한 공직자라고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옆에 있던 도지사도 소신 있는 공무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얼마 후 식산국장은 중앙으로 영전했고 부지사로 승진하기도 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난지원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가 동네 북처럼 협공을 당하고 있고 홍남기 부총리가 외롭게 맞서는 것 같다. 참으로 보기에 안타깝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정세균 국무총리가 자신이 내놓은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홍남기 부총리 겸 경제기획재정부장관이 반대한다며 역정을 낸 말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기재부는 머슴임을 기억하라고 역시 기재부를 공격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과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백남기 전 산업부장관은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부하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하고 호통을 쳤다는 언론보도도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계층의 권위의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돼 온 것이어서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국가조직과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특권을 행사하는 관료주의(官僚主義)도 경계해야겠지만 정치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충돌하게 되면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이 입게 된다. 이에 대해 최근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경제부총리, 감사원장을 지낸 전윤철씨가 한 언론인터뷰에서 공무원이 국민의 머슴인 것은 맞지만, 선출직 공직자의 머슴은 아니라고 한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선출직 의원들도 국민의 머슴이라고 한 것은 크게 공감 가는 말이었다. 문제는 선출직 공직자나 국가가 임명한 전문 기술관료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국가운영 시스템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창시자 고(故) 이병철 회장이 생존 시 세계적 골프 황제 소리를 듣는 잭 니클라우스와 미국에서 골프를 친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다. 골프를 끝내고 이 회장이 잭 니클라우스에게 자신의 골프솜씨에 충고를 청했더니 머리를 들지 마라 딱 한마디였다고 한다. 오로지 공에게 시선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사실 골퍼들의 큰 단점은 공을 칠 때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머리를 드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나 전문 관료들 역시 국민만 바라보고 머리는 들지 않았으면 어떨까, 한마디로 겸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머슴이니 나라가 네 것이냐? 하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권력을 잃었을 때와 가졌을 때

우리 헌정사상 국회의 첫 청문회는 1988년에 있었던 5공 비리 청문회였다. 전두환 前 대통령이 일해재단을 만들면서 대기업으로부터 거둬들인 불법 자금과 삼청교육대 등 인권유린 등이 청문회의 주제였다. 이때 노무현 의원은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등 재벌들을 신랄하게 추궁,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되었다. 야당의 K의원도 5공 비리를 날카롭게 추궁하며 투사의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전두환 前대통령도 K의원의 공격을 피해 가지 못하였고 특히 재벌로부터의 일해재단 모금이 자발적이 아니라 강제적이라는 데 초점을 모아 갔다. 이렇게 하여 전두환으로부터 쓰고 남은 돈이 139억원이나 된다는 진술을 받아 냈으며 청문회가 끝나자 전두환은 강원도 백담사로 떠났다. 청문회를 계기로 5공 실세들에 대한 비리의혹 수사가 시작됐고 당시 서울시장, 장관, 전두환 前 대통령의 동생, 형, 처남도 함께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불과 3년 후 1991년 노태우 정권의 6공화국 비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수서택지 비리사건이다.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재벌, 심지어 언론인까지 관련된 종합 비리 세트. 특히 이채로운 것은 5공 비리청문회에 그렇게 호되게 비리를 추궁하던 K의원이 수서비리에 관련되어 갇힌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구치소는 5공 비리 관련 실력자들이 나가고 그들을 공격하던 6공 실력자들이 그 자리에 들어온 것이니 정말 이런 코미디가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정치는 돌고 도는 것인지 모르겠다. 특히 권력을 잃었을 때와 권력을 잡았을 때 인간은 정의로운 독수리가 되기도 하고,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지옥의 개가 되기도 한다. 지금 야당이 새누리당으로서 여당일 때 국회에서의 장관인사 청문회가 신상 털기에 급급하여 정책 청문회가 되지 못한다며 청문회 법을 개정하자고 했다. 예를 들어 장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가 과거 부동산 거래한 것까지 자료를 제출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타당한 주장이다. 그러자 지금 여당이 민주당으로써 야당이던 시절, 청문회를 깜깜이 청문회로 만들려고 한다며 반대하여 성사되지 못했다. 그런데 여야가 바뀌어 새누리당이 국민의 힘으로 야당이 되어 조국 前 법무장관 가족 신상 털기를 비롯 위장전입, 재산은닉, 자녀 유학 등 장관후보자들의 사생활을 캐내자 여당 측에서 청문회법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번에는 청문회법 개정을 주장했던 야당이 펄펄 뛰었다. 이렇듯 권력을 잡았을 때와 잃었을 때 입장은 완전히 바뀌고 만다.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시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대여 투쟁의 방법으로 활용했고 김대중 前 대통령은 1964년 5시간19분의 기록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민주당이 여당이 되더니 야당의 투쟁 무기인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켜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국민의 힘이 국가정보원법 전부 개정 법률안에 대한 반대를 위해 윤희숙 의원이 필리버스터를 했는데 재적 5분의 3이 토론 종료를 가결해 그 이상의 발언을 중지시켜 버렸다. 그러니 180석 거대 여당은 무엇이든 마음만 먹으면 해치울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야당일 때 여당이 그렇게 필리버스터를 중지시켰다면 반민주 행위라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참으로 권력을 잡았을 때와 권력을 잃었을 때 보여주는 삼류 저질 코미디의 행진은 오늘도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야당의 딜레마?

어느 고등학교 3학년 졸업반에서 졸업을 앞두고 선생님들에 대해 인기투표를 했다. 물론 학교 측에는 비밀로 한 학생들의 장난스런 이벤트였다. 학생들의 관심은 A교사와 B교사. A교사는 교회 장로에 실력도 겸비한 그야말로 실력파로 인정받았고, B교사는 수학여행 때 학생들이 숨어서 맥주파티 한 것을 보고도 모르는 척 눈 감아 줄 만큼 뱃심(?) 있는 교사였으나, 실력이 조금 모자라는 평을 받았다. 학생들은 엄격한 교회 장로이고 실력 있는 A교사가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여론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여론을 뒤엎고 B교사가 단연 1등을 차지했다. 존경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별개였던 것이다. 하지마라, 그러면 안 된다며 늘 따지듯 엄격한 A교사 보다 실력은 조금 모자라도 학생들에게 인간적인 B교사가 친근함을 느꼈던 것 아닐까? 요즘 야당 처지를 보면 앞에서 이야기한 A교사가 생각난다. 서울시장이나 부산시장 모두 승리할 것처럼 분위기가 감돌았으나 지금은 상황이 쫓기는 감마저 느낀다. 사실 서울, 부산 모두 여당출신 시장들의 성추문으로 발단된 선거여서 도덕적, 윤리적으로 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선거가 내년 대통령선거의 교두보라는 것에서 야당은 고무됐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고 민생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정치 환경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가령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자영업 손실 보상법 추진 등을 선거를 앞둔 포퓰리즘이라고 비난하며 시비를 따지고 있지만 그 이상 어쩌지를 못하는 것이 야당의 현실이다. 그렇다고 국가혁명당 허경영 서울시장 후보처럼 가공할 공약을 쏟아 낼 수도 없는 처지다. 허경영씨는 연애 공영제, 결혼 공영제, 출생 공영제를 시행해 미혼 남녀에게 매월 20만원씩 연애수당을, 결혼을 하면 1억원, 아이를 낳으면 5천만원을 주겠다고 공약을 한 것. 이런 파격적인 공약이 어쨌거나 화젯거리라도 되지만 야당으로서는 포퓰리즘을 걱정 할 뿐 국민들 마음에 와 닿을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코로나로 멍든 영세 상인들이 절실히 원하는 보상 법안들을 반대하자니 표를 잃을 것이 자명한데 참으로 난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안에 찬성하자니 그 성과는 민주당이 차지하는 것이어서 빛을 발할 수 없다. 그래서 코로나 때문에 민주당이 덕을 보고 있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부산의 쟁점이 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도 그렇다. 부산시장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낙연 대표는 예비후보들과 함께 가덕도 현장을 방문해 지금이라도 당장 공항건설이 시작될 것 같은 이벤트도 연출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가덕도 공항 하나에 부산 경제가 확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 것은 야당 후보들에게는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은 역효과를 냈다. 사실 가덕도 신공항 하나에 부산 경제가 확 달라질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부산지역으로서는 큰 이슈가 되고 있고 계속 기대감을 부풀게 하고 있는데 꼭 그런 표현을 이 시점에서 해야 했을까? 물론 국민의 힘 입장에서는 정치적 기반이 되는 TK(대구경북)의 여론에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야당의 딜레마이다. 거기에다 부산시장 예비후보들 간에 내분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럴 때는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특출한 전략으로 조조의 대군을 무찌른 제갈공명 같은 인물이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 딜레마를 헤쳐나 갈 인물이 있는지 모르겠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주저 앉지 마! 내일의 해가 뜨니까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는 2012년 11월 여우 한 쌍을 방사했다. 그런데 그 한 쌍 중에 암컷이 방사된 곳으로부터 5km 떨어진 외딴 집 부엌에서 죽은 몸으로 발견되었다. 부엌은 불은 꺼져 있었으나 따뜻한 온기는 남아 있었다. 국립공원 측은 죽은 여우를 부검하여 사인 조사에 나섰다. 위에는 죽기 전 먹은 다람쥐 등으로 채워져 있어 굶어 죽은 것이 아님을 밝혔으나 장기에 심한 출혈이 발견되었다. 왜 장기에 출혈이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갑작스런 환경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보고 있다. 갑자기 뛰어나오는 멧돼지에 기겁했을 것이고 처음 들어 보는 부엉이 울음에도 신경이 거슬렸을 것이다. 수시로 변하는 깊은 산 속의 날씨, 몰아치는 바람등등. 그래서 여우는 외딴 집 아늑한 부엌을 찾았을 것이고 스트레스로 인한 장 출혈은 마침내 여우의 숨을 끊어 버린 것이 아닐까. 코로나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고 있는 요즘 가슴을 치는 사건이 있었다. 항공사에 다니는 딸이 코로나 사태로 직장을 잃고 극단적 선택을 하자 어머니도 함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이들 모녀는 소백산의 여우처럼 갑자기 몰아닥친 환경의 변화에 버텨내질 못한 것이다. 낮이면 낮대로, 밤이면 밤대로 무서울 뿐이었다. 한 영세 상인은 TV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솔직히 해가 뜨고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하루가 지나가는 만큼 은행 이자 낼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고, 가게 임대료 납부 시간이 다가오는 것 아닙니까? 관리비도 쌓이고,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받는다고 살아납니까?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돈입니다. 이처럼 해가 뜨는 것이 두려운 사람은 이 사람 뿐이 아닐 것이다. 어느 PC방에서 아르바이트 1명을 뽑는 데 80명이나 몰려 왔다고 한다. 정규직도 아니고 아르바이트 자리 1명에 80명이나 지원하다니 IMF 때도 없던 현상이다. 그만큼 코로나로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다. 정말 무서운 환경이다. 내일 해가 뜨는 것이 두려운 사람 중에는 주식시장에 뛰어든 젊은이들도 많다. 특히 영끌처럼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소위 빚 투족. 물론 이렇게 빚투를 해서 쏠쏠한 재미를 보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동학개미라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투자를 했으나 제때에 상환이 이뤄지지 못해 주식이 매도된 소위 반대 매매 규모가 21조원이나 되고 있음은 빚투가 부담스러운 규모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빚 투현상도 코로나 시대에 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의 결과다. 그러나 이처럼 치열한 몸부림 속에서도 우리는 내일 해가 뜨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백산 여우처럼 외딴 집 부엌으로 숨는다면 잘 버텨온 인간의 몸부림, 그 숭고한 가치를 무위로 끝낼 수 있다. 소설과 영화로 너무나 유명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마지막 대사는 스칼렛이 해는 내일도 다시 뜬다며 인간 의지와 미래 희망의 강한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에게 큰 위안을 주는 이상노 시인도 내일은 내일의 해가뜬다는 시에서 지금 너도 힘드니 나도 힘들어 지금은 모두가 힘들어 거기에 그냥 주저앉아 있으면 안돼 일어나. 일어나! 다시 또 한 발짝 걷는 거야 우리 여지껏 그렇게 해 왔잖아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니까라며 우리 의지에 불을 당기려 했다. 그렇다. 그런 희망으로 내일을 맞자.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우리 교포, 美 대통령이 된다면

1987년 8월 미국 필라델피아의 올니 지역 한인회는 영어를 모르는 노인들을 위해 거리에 한글 간판을 설치하게 해 달라고 시 당국에 건의했다. 이곳 올니 지역은 한국 이민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필라델피아 시장은 기꺼이 이를 허가했다. 그러나 예상 밖의 문제가 터졌다. 백인 청년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한극 간판을 몽둥이로 부수기도하고 페인트를 발라 식별이 안 되게 했다. 그들은 영어를 모르면 미국을 떠나라고 대들었다. 그런데 같은 필라델피아면서 중국 화교들은 한자로 된 간판을 그대로 묵인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인에 대한 미국 지방의 이미지는 좋은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초기의 이민자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다. 물론 지금 미국에서의 한국계 이민자들의 지위는 그때와 다르게 향상되었다. 정부 고위직은 물론 정치권에 까지도 영향력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이민 역사상 처음으로 연방 하원의원에 진출한 사람은 김창준씨. 그는 1992년 공화당 후보로 하원의원에서 승리한 후 내리 3선을 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2000년 선거에서는 아깝게 패배, 4선의 꿈을 접어야 했다. 김창준씨는 하원에서 활동하는 동안 워싱턴과 한국의 중요 통로 역할을 했다. 지금도 정계 은퇴를 했지만 김창준 한미 미래재단 이사장 등 한국과 관련된 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김창준 이후 미 의회의 한국계 이민 출신이 뜸하다가 2018년 앤디 김이 뉴저지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고, 지난 1월3일(현지 날짜)에는 3명이나 하원의원으로 취임 선서를 하는 장면이 연출되어 미국에 있는 교포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워싱턴 주 출신 메릴린 스트릭랜드(한국 이름 순자), 미셸 박 스틸(한국 이름 박은주), 그리고 영 김(한국 이름 김영옥) 등이 그들이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하원의원 스트릭랜드, 순자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그는 유일하게 한복을 입고 선서를 했는데 내가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고 우리 어머니를 명예롭게 할 뿐 아니라 미국 의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한복으로 상징되는 한국인 여성으로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 준 것에 대한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주한 미군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흑인 병사와 결혼했고 그렇게 해서 낳은 딸을 순자라 이름을 지었다. 순자, 참 한국 냄새가 짙은 이름이다. 그런데 더 욕심을 낸다면 언젠가는 미국 대통령도 한국계 이민자에게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뭐래도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오늘 대통령에 취임하는 바이든도 아일랜드 이민 후손이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프리카 케냐가 조상의 뿌리이다.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민족들이 모여 미국을 만들었고 아메리카 드림을 이뤄냈다. 자기의 능력만 있으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계 이민은 아시아계 이민의 9%에 불과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한국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창의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배경으로 뉴욕에서는 6월에 있을 시장 선거에 한국계 이민 2세 아트 장(한국 이름 장철희)이 강력한 후보로 대두되고 있다. 그는 미국 최대 은행 JP 모건 에이스의 금융인으로 활동하면서 뉴욕에서 시민운동가로 존경받고 있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교포도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편 가르기 정치가 아닌 통합과 화해의 정치를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타이타닉호를 침몰시킨 불량 연결판

지난주 한 회의에 참석하고 귀가했는데 그날 저녁, 회의 주최 측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 외부 접촉을 하지 말고 대기하라는 것이다. 사연인즉슨, 낮에 있었던 회의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코로나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에 대한 감염 여부를 조사 중이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움직이지 말라는 것. 참으로 난감했다. 왜냐면 그런 통고를 받기 전 지인을 만나 대화를 나눴고 가족들과도 저녁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지인 중에는 많은 직원을 거느리는 기업인도 있었다. 만약 그 회의 참석자가 확진 판결이 나면 나는 물론이고 나와 접촉한 사람들 모두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할 것 아닌가. 이런 폐가 어디에 있을까? 더욱 그 회의에는 서울은 물론 세종시에서도 참석한 사람이 있어 만약 확진자가 나온다면 광범위하게 피해가 확산된다. 단 한 곳에서, 단 한 사람 때문에 이처럼 그 확진자와 관계없는 사람과 관계없는 지역에까지 피해가 연결된다는 사실이 무섭게만 느껴졌다. 코로나19 역시 1년 전 머나먼 중국 우환의 음산한 수산시장 먹거리로 판매되는 박쥐 같은 것에서 그 가공할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렇듯 우리는 국경을 초월해 서로 연결판으로 이어져 살고 있다는 것, 이것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인류가 취득한 교훈일 것이다. 그렇게 네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이 되고 살려 주세요라는 동부구치소 창살 밖 손팻말이 구치소 담을 넘어 전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 등등. 문제는 그 연결판이다. 1912년 4월 타이타닉호의 침몰원인 중 하나로 연결판의 리벳(대형 못)에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엄청난 해난사고가 결국 그 대형선박의 철판을 연결하는 리벳이 불량해 빙하와 충돌했을 때 리벳이 부서지면서 침수가 걷잡을 수없이 시작됐고 이 때문에 그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2시간40분 만에 침몰했다는 것. 그러면 왜 불량 리벳을 사용했는가. 당시 이 배를 만든 조선소는 타이타닉과 함께 3척의 초대형 여객선을 만드느라 리벳이 부족해 선체 중앙에만 강철로 된 리벳을 쓰고 나머지 선체에는 일반 철로 된 리벳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빙하는 중앙이 아니라 일반 철로 만든 리벳에 부딪혔고 그 연결판이 제 기능을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빙하와 충돌한 부분에 구멍이 나지 않았고 철판 6곳에 얇은 틈과 슬래그(찌꺼기)가 발견됨으로써 입증된다는 주장이다. 어쨌든 이렇게 연결판은 매우 작지만 중요하다. 얼마 전 당국의 방역규제에 항의하는 학원 원장들이 국회 앞에서 시위했다. 그때 한 음악학원 원장이 트럭에 싣고 온 피아노를 울부짖으며 연주로 호소하는 모습이 너무도 강렬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음악학원과 관계없는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피아노 소리가 우리의 연결판인 것이다. 아니 우리 사회 모두를 잇는 연결판이 돼야 정상적인 사회다. 지난주 한 SNS에는 뜨거운 연대의 이야기가 올라와 감동을 줬다. 청소 노동자들을 위한 한 끼 연대라는 곳에서 모금을 설정한 지 25시간 만에 530명이 참여해 853만원을 모았다는 것. 이 돈으로 식권 1천550장을 구입, 청소 노동자의 한 끼 식사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정말 건강한 연대다. 너의 배고픔이 나의 배고픔이 되고 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는 인도주의적 연대, 정치 역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민주주의의 연대 - 이 연대의 끈이 튼튼하면 동부구치소 사태나 정인이 학대 살인 사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주한 미군의 백신 접종을 보며

625 전쟁이 발생하기 전부터 38선에서는 간헐적으로 무력 충돌이 벌어졌다. 또한 북한은 11만 1천 명의 보병을 38선에 이동 배치하고 T34 중형 탱크 30대, 각종 포 1천600문을 확보하고 있어 어느 때고 남침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 국군은 탱크 1대도 없는 것은 물론 심지어 4.2인치 박격포 하나 없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다. 이런 무력 불균형과 북한군의 간헐적 공격에 대해 당시 국회에서 의원들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시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은 사태를 안이하게 평가하고 심지어 만약 북한이 남침을 한다면 우리는 즉시 반격,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게 될 것이라며 호언장담을 했다. 국회는 물론 국민도 참모총장의 말을 믿었다. 그러나 막상 북한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해왔을 때 우리는 과연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 대반격을 했던가? 오히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적, 물적으로 희생을 치러야 했던가? 38선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 안이한 평가를 하고 호언장담을 할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응할 탱크와 무기를 확보하여 힘의 균형을 이루었다면 그런 비극을 막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을 하게 된다. 결국 국가 통치는 타이밍, 곧 때를 놓치지 않은 것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라 하겠다. 지난 12월25일 크리스마스 날 인천공항에는 미국에서 백신을 싣고 온 수송기가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그리고 재빨리 헬기들이 백신을 미군 기지로 운반했다. 미군들에게는 멋진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었다고 환호성이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속에 전인류가 갈망하던 백신이 드디어 한국 땅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마음이 허전한 것은 왜 그럴까? 미국은 멀리 떨어져 있는 그들의 군인과 군인가족들을 위해 이렇게 긴급 백신 수송 작전을 벌이는가 하면 미국 내 인디언 보호구역에 있는 원주민까지도 백신을 공급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독일, 프랑스는 물론 헝가리도 백신을 확보해 자국민에게 접종을 시작했다.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8천800만 회분의 백신을 확보했다고 밝혔고, 뉴질랜드는 그들 국민들에게 필요한 물량을 확보했으며, 남은 것은 이웃 나라에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참 부럽다. 어떻게 저들 나라들은 그렇게 일찍 백신을 확보했을까?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여름부터 백신 확보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니까 방역을 위해 시민활동을 규제하거나 심지어 봉쇄를 하는 등 야단법석을 떨면서 뒤로는 백신 확보 작전을 펼쳤던 것이다. 그 무렵 미국에서는 코로나 재난지원금 문제가 나왔을 때 헬리콥터에 달러를 가득 싣고 전국을 다니며 뿌려도 소용없다. 백신이 답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아무리 현금을 지원해도 코로나에 빠진 미국경제를 살리는 길은 백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 백신으로 항체를 회복하면 노래방이건 학원이나 식당, 관광지 그 어디든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 터이고 그러면 경제는 저절로 살아 날것 아닌가. 그래서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는지 모른다. 우리나라도 백신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당국은 물량확보를 장담했었다. 그러나 이 시간까지 백신은 이 땅에 도착하지 않았고 마침내 대통령까지 백신 확보전에 나서야 했다. 아무리 확보가 되어도 중요한 것은 백신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는 타이밍이다. 주한 미군들이 우리나라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이 그래서 착잡하기만 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 시대 희망을 준 두 회장님

요즘 두 사람의 이야기가 훈훈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 하나가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의 이야기, 83세의 이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 후 그 시절 몇 명 안 되는 여기자로 활동했으나, 전두환 정권 때 신문사가 폐간되는 바람에 목축업에 뛰어들었다. 목축업뿐 아니라 골재 채취, 부동산 등 그렇게 사업에 투신하여 돈을 많이 벌었다. 그리고 2018년 81세의 할머니임에도 서울 법대 동문인 김 모 변호사와 결혼을 했는데 재혼이 아니고 초혼이라는 데 관심들이 높았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지난 11월 말 766억원의 사재를 털어 카이스트에 기부한 것이다. 그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에 기증하지 않고 카이스트에 기부한 이유에 대해 이제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방송에 나와서도 우리나라의 절실한 과제로 과학 기술을 지적했다. 이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과학기술이 발달되어야 하며 그것을 견인하는 목표로 노벨상을 제시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모교를 제쳐놓고 카이스트에 거액을 기부한 것. 766억원은 카이스트 설립 후 최고의 기부 금액이다. 그런데 또 며칠이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참치 왕으로 유명한 동원그룹의 김재철 명예회장이 500억원을 카이스트에 기부하여 감동을 주었다. 500억원 역시 카이스트 기부자 중 네 번째로 큰 금액이다. 그는 12월16일 대전에 있는 카이스트에서 개최된 기부 약정식에서 미국, 일본 등 AI(인공지능) 선진국의 치열한 기술 개발 경쟁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AI는 우리의 미래라고 강조했다. 카이스트는 김 회장의 기부금 전액을 AI 분야 연구와 인재양성에 사용할 계획이며 AI대학원 명칭도 김재철 AI 대학원으로 변경하는 등 AI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AI 분야에서 나올는지 모를 일이다. 이렇듯 766억원을 기부한 광원산업의 이수영 회장이나 500억원을 기부한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 모두 표현은 달라도 공통된 뜻은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기술에 달렸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간절히 소망하는 이수영 회장의 생각도 그렇고 미국, 일본의 치열한 AI 기술 경쟁을 긴장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김재철 회장의 생각도 그렇다. 사실 세계에서 385명이라는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미국은 제쳐두고 라도 우리의 경쟁국 일본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16명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물리학 분야에 9명, 화학분야에 7명의 과학 노벨 수상자를 배출했다. 우리나라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1명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수영 회장과 김재철 회장이 노벨 과학자의 탄생을 위해, 그리고 AI 선진국 진입을 위해 거액을 투척한 것은 코로나 때문에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는 이 시대에 큰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라 하겠다. 또한, 2021년 새해를 맞아 다시 일어나자는 기도 같기도 하다. 특히 코로나 백신 하나 제대로 해결 못 하는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80대 황혼의 나이의 두 기업인이 미래의 화두를 던진 것에 우리는 위안을 받는다. 희망을 갖는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법에 갇힌 세상

요즘처럼 TV에 변호사들이 많이 출연하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공중파 방송이든 케이블 방송이든 하루도 몇 번씩 화면에 등장하는 변호사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법률상담 정도로 출발했으나 지금은 정치문제 토론은 물론 전문분야가 아닌 코로나 방역문제까지도 활발한 의견을 개진한다. 심지어 오락 프로에도 자주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직접 프로그램의 MC(진행자)를 맡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법률적 탤런트를 필요로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변호사 수가 급증하기 때문일까. 지난해 변호사 시험에 3천330명이 응시했는데 1천691명이 합격을 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합격률 50.78%. 이렇게 해마다 평균 1천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다 보니 이들의 진로도 각자도생(各自圖生) 일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윗집 아주머니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 그 사연을 물었더니, 그 강아지의 나이는 18살이라 했고, 지난해 백내장에 걸려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개도 백내장에 걸리느냐고 물었더니 이제 백내장 뿐만 아니라 치매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해서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동안 치매 치료를 받았던 동물병원장이 약을 잘못 처방하는 바람에 치매가 악화됐다며 동물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이다. 물론 동물병원 의사를 상대로 소송하기 위해서다. 참으로 대단한 애견가라 생각하며, 동물 전문 변호사는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아주머니는 유명 로펌 중에는 반려동물 전담 변호사팀이 생기는가 하면 동물의 법적 지위를 위해 활동하는 변호사 모임도 생겼다는 것이다. 하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천500만이나 되고 있으니 그에 따른 법적 분쟁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변호사의 수요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강아지의 입양에서부터 동물병원의 의료사고, 동물 학대에 이르기까지. 뿐만 아니라 법원 주변에 보면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는 사람도 많다. 또한 재산상속에 대한 치밀한 법적 대응이 필요해 지면서 상속 전문 변호사도 각광을 받고 있다. 이 밖에도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 환경문제 전문 변호사, 특허전문변호사, 기업의 인수 합병 전문 변호사 등등 전문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변호사가 많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정말 우리는 수많은 직업이 날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고용직업분류(KECO) 기준으로 1969년 우리나라의 직업은 3천260개였다. 그러다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1986년에는 8천900개로 거의 3배 늘어났으며, 2018년에는 1만2천145개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일본의 1만7천209개, 미국의 3만4천여개에는 크게 뒤지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직업도 계속 늘어날 것이며, 전문화될 것은 틀림없다. 이에 따라 법률제정도 끝없이 계속 될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의 경우 발의된 법률안건이 2만개가 넘었는데 그 중 처리된 것은 30% 정도이고, 1만5천432건이 자동 폐기되었다. 그러나 그 1만5천여 건의 법률안도 수정 정도만 손질하여 다시 국회에 상정될 터이니 과연 우리는 법률의 홍수 속에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따라서 법률시장도 그만큼 확대될 것이고 전문화될 것이다. 미국처럼 경미한 교통사고나 이웃집 정원수 그림자 문제까지도 변호사에게 맡겨 버리는 사회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그 법이라는 것이 힘의 논리에 의해 어제는 분명히 남자였는데 오늘은 여자로 둔갑을 하고, 어제는 호랑이였다가 오늘은 애완견으로 변신하는 그 법 위에 군림하는 힘이 두려울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Lock down’

해마다 올해의 단어를 발표하는 영국의 세계적 영어사전 출판사 콜린스가 2020년 단어로 Lock down을 발표했다. 봉쇄를 뜻하는 것이다. 더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올해 지구촌을 지배한 코로나19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학교가 봉쇄되고 해외여행이 봉쇄되는가 하면 일상적으로 우리가 즐기던 영화관, 축제, 모임, 카페, 노래방 등등, 모든 것이 그렇게 강요된 봉쇄를 겪어야 했다. 병원시설이나 요양원, 콜센터 등이 코로나에 감염되면 코호트 격리라 하여 집단적 봉쇄도 감수했다. 심지어 코로나19 발원지로 알려진 중국 우한처럼 도시 전체가 봉쇄되는 경우도 있었고 항공기 운항을 막거나 입국자를 일정기간 자가 격리시키는 등 대부분의 국가가 사실상의 봉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봉쇄가 만능이었을까. 우리는 봉쇄의 허점을 일본에서 볼 수 있다. 호주, 동남아, 일본을 관광코스로 순항하던 대형 크루즈 다이아몬드 프린스호가 지난 1월25일, 홍콩에 정박했을 때 승객 1명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배에는 승무원을 포함 3천700여명이 타고 있었으며 2월19일 일본 요코하마에 입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이 크루즈선의 입항을 거부하기로 하여, 2월19일부터 3월1일까지 해상 봉쇄 조치를 내렸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본 상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일본정부는 크루즈선이 밀폐된 공간에 통풍관을 통해 선내 공기가 순환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하여 691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6명이 선내에서 사망하는 등 혼란이 벌어졌다. 그리고 방역진을 비롯한 요원들이 선실을 오가면서 그 틈새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육지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결국 해상에 봉쇄한 크루즈는 코로나 바이러스 배양기지가 된 셈이며, 지금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는 봉쇄하고 격리하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봉쇄, 격리에 따른 내부의 안전장치가 중요함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만약 크루즈선이 공기순환이 전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만 파악하고 감염자를 선실 한쪽에 격리시키는 조치를 취했더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체에 퍼지게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봉쇄는 어쩌면 이것저것 상황이 복잡할 때 쉽게 취할 수 있는 수단이다. 지난 10월3일 개천절과 한글날, 보수 단체가 계획한 광화문 집회 봉쇄도 그 한 예이다. 수백 대의 경찰버스가 성곽처럼 에워싸고 1만여 개의 철제 바리케이트가 시민들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했다. 그야말로 올해의 단어 Lock down이 실감 나는 장면이었다. 그렇게 해서 광화문의 목소리도 잠재우고 코로나 방역의 효과도 높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이와 같은 봉쇄의 맛에 길들여질까 하는 것이다. 복잡한 상황을 대화와 협치의 리더십을 발휘해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쉽고 간단한 봉쇄의 리더십에 의존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 여당은 국회에서의 절대 의석을 확보해 공수처법 통과에서 보듯이 무엇이든 거의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크루즈선의 해상 봉쇄가 오히려 엄청난 역작용을 일으켰듯이 봉쇄의 리더십은 함정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올해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문을 걸어 잠근 Lock down이 새해에는 모두 풀리길 소망해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날마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보궐선거가 몇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두 보궐선거를 위해 국민 세금 800억원 이상을 쏟아 부어야 한다. 이것이 억울한 것은 박원순, 오거돈 두 시장이 부하 여직원의 성추행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그 점잖지 못한 성추행 때문에 나라의 곳간을 헐어야 한다니. 외국인들에게는 호기심 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외국뿐 아니라 우리도 처음 경험하는 이상한 선거다. 우리는 이렇게 거의 매일,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겪으며 살고 있다. 지난 12월1일 한 TV 종편방송에서 오후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주제의 흐름을 깨뜨리는 대형 속보가 4건이나 터져 진행자를 당황케 했다. 그 첫 번째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감찰위원회가 만장일치로 징계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이 화면에 뜨자 진행자는 화제를 수정하는 듯했다. 두 번째는 바로 법원에서 윤석열 총장이 제출 한 직무정지 임시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속보가 큼직한 자막으로 화면에 떴다. 방송진행자는 또 내용을 처음 편성했던 시나리오에서 첨가해야 만 했다. 세 번째 돌출사항은 추미애 법무장관 사람으로 알려진 고기영 법무차관이 전격 사의를 표했다는 것. 그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정지와 징계가 부당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런데 오후 5시가 넘어 윤 총장은 퇴근 시간인데도 법원의 판결이 나자마자 출근을 했고 TV는 그 모습을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이처럼 1년에 한 번도 보기 어려운 대형 사건이 불과 서너 시간에 터진 것은 참으로 경험하지 못한 장면이다. 물론 윤 총장 문제에 전국 59개 검찰청의 대부분 평검사, 검찰 간부들이 일체가 되어 추 장관의 조치들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대한민국 건국 후 처음 경험한 일. 처음 경험한 일들이 어디 이뿐이랴. 지난 3일 시행된 대학 수능시험장에는 코로나 감염학생들을 위한 특별 응시장이 마련됐는데 여기에 동원된 감독관들 모두 우주인 같은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이 역시 우리 수능시험 역사 이래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처음 경험하는 것들도 많다. 가령 격차 투자니 영끌이니 하는 용어들도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것들이다. 갭 투자란 매매가격이 10억원인 주택의 전세금 시세가 9억5천만원이라면 전세를 끼고 5천만원에 집을 사는 방식을 뜻하고, 영끌은 이름 그대로 처가, 부모, 퇴직금 등등, 영혼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집을 사는 것을 뜻하는 것이고, 여기에 또 등장하는 것이 동학 개미라는 증권가의 신조어다. 이 역시 2020년이 만들어 낸 경험하지 못한 단어다. 그런 데 개미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만만치 않은 힘을 과시하고 있다. 사실 요즘과 같은 불황에도 증권시장이 활성화되는 것은 이런 동학 개미들의 넘치는 의욕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심지어 직장인 중에는 월급은 주식 투자에 밑천으로 쏟아 붓는가 하면 직장 생활은 뒷전이고 주식투자가 본업으로 뛰는 젊은이들도 많다는 것이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치열한 삶의 모습들이다. 이 뿐만은 아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감옥에 있는 것도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것인데, 하물며 어떻게 일일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다 열거할 수 있을까? 새해에는 이렇듯 국민들 가슴 졸이는 일 없게 하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살아가길 소망해 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21세기 기생충

그 무성하던 참나무 숲이 이제는 나목(裸木)으로 겨울 추위를 버티고 있다. 조금 있으면 참나무는 잎을 다 떨구겠지만, 가지 여기저기 황록색의 새 둥지 같은 것이 찬바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죽은 것처럼 검은 가지에 얹어 있는 황록색의 둥지는 보기에도 좋다. 알고 보니 그것은 겨우살이과의 상록 기생관목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참나무, 밤나무, 팽나무 등에 빨대를 꽂아 겨울을 나는 말하자면 기생충 같은 것이다. 꽃이 피어 열매도 맺는데 새들이 그 열매를 먹고 여기저기 번식까지 시킨다니 고급 기생목(寄生木)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구의 모든 생물체는 숙주(宿主)에 붙어사는 기생충 같은 것이 있기 마련인가 보다. 왕성한 저서활동과 방송출연 등으로 세인의 관심이 높았던 혜민스님이 뜻밖에도 같은 수행승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국적의 현각스님으로부터 기생충 같다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아 언론을 장식했다. 현각스님은 혜민스님을 가리켜 연예인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는 기생충이라고 까지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혜민스님은 모든 활동을 접고 수행에 전념하겠다며 지난 11월15일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다. 참회의 글도 남겼다. 물론 현각스님도 하루 만에 자신의 말을 뒤집고 혜민스님을 칭송하는 글을 발표했지만, 그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풍파를 일으킨 현각스님의 경솔함을 비판하는 소리도 높다. 그러나 신성한 종교계에서 기생충이라는 말 자체가 등장하는 것이 시민들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성전에서 물건 파는 사람들, 환전상들을 쫓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유대교에서 그 당시 백성이 성전에 바치는 속죄 제물 등, 각종 제물을 비둘기나 양 같은 짐승 대신 돈으로 환전하여 바쳤는데 이 순수한 신앙행위가 부패와 타락의 방법으로 변질됐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 환전상이나 물건 파는 제도가 성전의 기생충이 되어버렸고 그 제도권에 있던 지도층과는 먹이 사슬 같은 고리가 형성됐던 것.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질책했던 것이다. 하지만 숙주와 기생충이 고리가 형성되어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수석 사제와 율법학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위기를 느껴 예수님을 없앨 방도를 모색했을 것이다. 여기서 백성의 지도자들이란 정치인에 해당될 것 같다. 옛날 궁궐에는 내시, 환관들이 있었다. 남성을 상실한 이들은 남자로서도 인정받지 못했고, 그렇다고 여자 쪽에 끼지도 못하는 특이한 존재. 그러나 왕과 왕족들 사이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과 같은 환관들이었지만 오히려 왕권과 공생하기도 하고 국정을 조종하는 권력을 휘두르기도 했다. 왕권에 기생하여 매관매직의 통로가 되는가 하면 심지어 왕이 후궁의 침소에 드는 것까지 음습한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이쯤 되면 왕비와 후궁들도 환관의 눈치를 보거나 뇌물로 매수하는데 그러니 궁궐이 정상적으로 흘러갈 수 없었다. 또 왕은 정상적인 계통을 통해 정보를 받기보다 환관들로부터 은밀한 신료들의 신상 정보를 얻었고 그래서 기생충과 숙주는 공생을 즐기며 타락해 갔다. 백성을 섬기고 국가를 번영케 할 궁중이 기도하는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것처럼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기생충은 어디에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다며 그것을 이용해 돈벌이하는 기생충도 있고, 민주주의와 인권, 환경, 노동, 난민, 동물 보호, 연예계, 경제시장, 그리고 마침내 종교에 까지도 음산한 뿌리를 내린다. 기생충은 앞으로도 더욱더 넓고 깊게 번져나갈 것이다. 그것들이 숙주 위에 군림하는 세상이 될까 두렵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코로나 시대’의 노총각·노처녀 결혼 주례

지난주 오랜만에 결혼 주례를 섰다. 신랑은 43세, 신부는 40세. 일반적 개념으로는 신랑신부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많은 편이다.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사랑을 했는데 이렇게 결혼이 늦어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직장 문제. 여자는 학원 강사를 하고 있었지만, 남자는 오랫동안 소위 공시생(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 노량진에 있는 고시촌에서 생활했고 시험을 볼 때마다 2점, 심지어 1점 차이로 낙방 되면서 다음에는 꼭 되겠지 하고 열공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1점 차라는 것이 무슨 유령처럼 그의 눈앞에서 손짓한 것이다. 심지어 지방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경찰 시험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1점차 낙방. 그래서 몇 년 허송세월했던 공시생 꿈을 접고 지난해 해운회사에 시험을 봐 합격하여 직장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해외 지사에 파견하게 되어 이래저래 결혼을 늦게나마 서둘게 된 것. 둘째는 집 문제였는데 남자가 해외 근무로 나가게 되었으니 신부 집에서 당분간 신세를 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말하자면 남자가 해외근무를 나가게 된 것이 역설적으로 집 문제를 해결할 시간을 벌게 해 주었고 미루던 결혼식도 앞당겼다는 것이다. 아예 이번 해외근무 때 상황을 봐서 그 나라로 이민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국내에서의 살인적 주택문제와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속 시원히 해외로 진출하여 새로운 인생의 지평을 열어 보는 것도 좋겠다는 것이다. 결혼에 앞서 이들 신랑 신부를 만나 대화를 나눴을 때 또 하나 새롭게 느낀 것은 신혼여행에 대한 것. 코로나 때문에 해외로 나가기 어렵지 않으냐고 했더니 꼭 해외로 가야 신혼의 의미가 있는 것이냐며 자기들은 호캉스를 선택했다고 했다. 호캉스가 처음 듣는 말이라 어리둥절했더니 호텔과 바캉스를 합성한 말이 호캉스라며 조용한 지방 호텔에 가서 인생 설계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언제쯤 갖겠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너무 의외였다. 아이 갖는 게 지금으로서는 급한 게 아니며 삶의 터전을 잡는 게 최우선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삶의 터전을 잡으면 아들 딸 구별 없이 하나만 낳아 잘 키우겠다고 했다. 왜 우리나라 출산율이 감소하고 인구가 줄어드는지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째서 자식을 낳는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왜 하나만 낳아 기르겠다는 것인지 물었다. 그랬더니 자신들이 낳을 아기는 금수저도 아니고 흙수저를 물고 태어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도 흙수저를 갖고 태어나 이렇게 힘들게 젊음을 보내고 있는데 자식까지 그 힘든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말에 갑자기 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혼 자체가 인류창조의 질서이며 아기를 갖는 것 역시 창조 질서라고 이야기했지만, 이해의 벽을 뚫기는 현실의 벽이 너무 두꺼운 것 같았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왔다. 예식장 좌석은 거리두기로 배치돼 있었으며 하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써달라는 안내 방송이 되풀이되어 나왔다. 주례까지도 마스크를 써야 했다. 주례석에서 내려다보는 하객들의 마스크 쓴 모습이 낯설기만 했다. 결혼 기념사진은 더 가관이었다. 마스크를 살짝 벗고 찍자고 통사정을 했지만 역시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진이 나온다 한들 누가 누구인지 식별하기도 어려운 기념사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코로나 시대의 결혼 풍속도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먼 훗날 손자 손녀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스크 쓴 결혼사진을 보면서 코로나를 물리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또한 가치가 있으리라.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개그맨의 자살이 충격적인 것은

개그맨 박지선이 36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연예계는 물론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13년 동안 개그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박지선은 그의 밝고 활달한 모습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사람들 눈에 감추어진 아픔이 있었을 것이다. 평상시에도 화장을 못 할 피부질환으로 고통을 겪은 것 때문일까. 혹여 그 얼굴을 두고 무책임하게 쏘아 댄 악플 때문일까. 틀림없이 심각한 고민이 있었을 텐데 우리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많다. 2010년 10월 행복 전도사라는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TV를 통해 또는 지방순회 강연을 통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설파하던 최윤희씨 부부의 자살도 그 한 예다. 행복 전도사가 불행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여러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항 속의 물고기처럼 투명하게 비쳐 질 수는 없다. 지난 11월 초 세종시에 있는 어린이집 교사 A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A씨는 아동 학대 누명을 쓰고 해당 아동 가족들로부터 폭언과 모욕,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그 가족들을 처벌해 달라는 국민 청원이 35만 명을 넘었다. 교육 당국은 A씨와 같이 부당하게 인권유린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방지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 국민청원이 35만 명을 넘는다 해도, 그리고 교육 당국이 사후 대책을 내놓는다 해서 죽은 A씨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참으로 우리나라는 그야말로 자살 공화국이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자살하고, 서울시장을 지낸 사람, 예비역 장군, 검사, 국회의원, 대기업 회장, 심지어 가난에 시달리다 일가족 모두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가슴 아픈 사연이 너무 많다. 이렇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2018년 통계로 1만3천670명, 매일 37.5명이 죽음을 택하는데 OECD 36개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 우리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아도 지난해 사망자가 3천349명, 자살로 목숨을 잃는 것의 30%도 안 된다. 그런데도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발생하면 큰 뉴스가 되는데 자살은 그렇지 않다. 일종의 불감증 때문일까. 정말 코로나19 보다 무서운 것이 자살이다. 그렇게 코로나로 온 나라가 매일 같이 떠들썩해도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자살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일본 역시 무리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가족이 해체되고 이에 따른 고독사, 자살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었었다. 그러다 2011년 사상 최악의 쓰나미와 대지진을 겪으면서 슬픔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웃을 위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바로 이것이다. 이웃과 슬픔을 공유하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회. 우리도 그동안 산업화의 가파른 길을 치열하게 달려오느라 이웃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했고 함께 눈물을 닦아 주지 못했다. 따라서 우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코로나의 수난을 겪으면서 죽음 직전의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찾아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삶의 용기를 주어야 한다. 60~80%의 자살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우울증에 걸려도 치료를 받는 경우는 1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증상을 끌어안고 산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 체면의식 때문이다. 국민 질병으로 지적되는 우울증 치료를 위해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노력도 그래서 필요하다 하겠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화이트칼라’의 빛과 그림자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고 말하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자유와 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루소의 에밀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18세기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학술적으로 큰 명예를 누렸지만, 사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는 테레즈 르바쇠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이 여자와 23년을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아이도 다섯 명이나 낳았다. 그런데 그는 아이들을 입적도 하지 않고 고아원에 내다 버렸다. 아이들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으며 성별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동거하던 여인과는 거의 인생 말년인 1768년에야 정식 결혼을 했다. 「에밀」, 「민약론」, 「고백록」 등 불후의 저서로 민권과 자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부르짖은 위대한 사상가로서는 그의 사생활과는 일치하지 않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법률학 권위자로 존경받던 서울대 안모 교수는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그야말로 국회 청문회도 순탄하게 통과될 것으로 관망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안모 교수가 27세 때 어느 여성의 도장을 위조하여 몰래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책임은 없지만, 그리고 혼인무효 판결도 받았으나 도덕적으로는 큰 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법치의 수장으로서는 이 흠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여론이 높아 마침내 안모 교수는 6월16일 법무장관 후보 사퇴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사퇴를 발표하면서 그 일(허위 혼인신고)은 전적으로 저의 잘 못입니다.라고 솔직히 사과를 한 것이다. 대개 자신의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변명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하성 주중대사가 고려대 교수 시절 학교 법인 카드를 강남 유흥점에서 부당하게 쪼개 쓰기를 했다 하여 여론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교육부 감사에 적발된 교수는 장하성 교수뿐 아니라 모두 13명인 데 12명은 중징계, 1명은 경고를 요구했고 장하성 교수는 퇴직했기 때문에 불문에 부쳤다는 보도다. 장 교수는 이 일이 있은 2016년 다음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입성하여 소득주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법인 카드 쪼개 쓰기란 결제금액이 많을 경우 한 번에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나누어서) 결제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가끔 기업이나 하급 관리들이 업무상 부득이 카드를 쓸 때 사용하는 꼼수다. 그런데 장 교수 등이 사용한 카드 쪼개기는 30초 간격으로 이루어졌고, 사용처가 강남 유흥주점이라는 데서 개운치가 않다. 사용한 금액도 2016년에서 지난해 까지 6천600여만 원으로 적지 않은 액수다. 더욱이 소득주도 경제성장 주창론자인 그가 이렇게 카드 쪼개기 편법을 쓴 것도 소득주도냐?라는 등 여론의 질책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처럼 화이트칼라(지식인)들의 이중적 처신에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제자의 논문 지도나 예능 레슨을 빌미로 금품 수수에서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그 탈선의 도는 한계를 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제자를 성추행하여 국민재판을 받는 교수도 있다. 지난 가을 태풍으로 과일 농가들이 큰 손해를 입었었다. 그때 어떤 농부가 작은 트럭에 복숭아를 싣고 아파트 입구에서 외치고 있었다. 이번 태풍에 땅에 떨어져 멍이 들었습니다. 싸게 드릴 테니 팔아 주세요! 멍든 복숭아를 속이지 않고 솔직히 말하며 팔아 달라는 그 농부가 참으로 존경스럽게 보였다. 주름지고 검게 탄 얼굴의 그 농부에서 화이트칼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쇠가 쇠를 먹는 권력

흥선대원군이 파락호 시절 충북 괴산에 있는 화양서원을 찾았다. 화양서원은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을 제향하는 서원으로서 당시 위세가 당당했다. 그곳의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해 우리나라를 도운 명나라 황제의 위패까지 모시고 있어 더욱 성역시했다. 서원을 오르는 돌계단이 있는데 계단이 가팔라져 있어 오를 때에는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야 한다. 일부러 권위를 위해 허리를 굽혀 오르게 한 것이다. 그런데 대원군이 이 계단을 오르면서 고개를 빳빳이 세웠으니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더욱 대원군의 옷차림이 파락호 시절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서원 경비원이 달려와서 여기가 어느 곳이라고 올라오느냐?라고 고함을 지르며 대원군의 발을 걷어찼다. 대원군은 그 자리에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대원군으로서는 말할 수 없는 수모였다. 대원군도 걷어차는 화양서원은 노론의 집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 속에서 그렇게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그 세력권에 있는 사람들은 권력의 맛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화양서원에는 이곳을 찾는 유생들을 위해 복주촌(福酒村)이라는 것도 운영하고 있었는데 어떤 범법자도 이곳에 숨어들면 관에서 손을 쓸 수 없는 불가침특권을 누리기도 했다. 집수리 명목으로 세도가들이나 지방 관속들로부터 경비를 뜯어내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다 1863년 마침내 대원군은 아들 고종의 왕위 계승과 함께 대권을 잡게 됐다. 대원군이 권력을 잡자 제일 먼저 한 것은 서원철폐였다. 자신을 계단에 오르지도 못하게 걷어차 수모를 준 화양서원이 제1호였다. 전국에서 47곳만 그대로 두고 모든 서원이 철폐되었는데 그 당시 화양서원은 그 위세로 보아 당당히 존치될 줄 알았었지만, 대원군은 그 예상을 깨뜨려 버렸다. 대신들은 물론 전국이 깜짝 놀라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대원군은 그 순간 권력의 맛을 흠씬 느꼈을 것이다. 한동훈 검사장은 재벌 총수들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구속하는 등 수사 검사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때는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살아있는 권력에도 서슴없이 칼을 빼들었다. 그가 쥐는 칼은 법의 이름으로 주어진 것이 어서 누구도 제지를 가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 칼을 뺏는 또 하나의 권력이 있었다. 법무부 장관의 인사권이 그것이다. 지난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밀려났고, 그것도 모자라 지난 6월에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발령을 받아 경기도 용인에 있는 연구원 분원에 근무해야 했다. 그런데 다시 지난 10월14일부터는 충북 진천에 있는 본원에 근무하라는 명을 받았다. 올해 세 차례나 보따리를 싸야 하는 그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또한 보도에 의하면 법무부 감찰관실은 그에 대한 복무점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출퇴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연구 업무는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복무 점검이다. 우리 속담에 쇠가 쇠를 먹는다는 말이 있다. 쇠(鐵)가 그렇게 강하고 단단해도 역시 그것도 용광로의 끓는 쇠에는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권력은 허무한 것이 아닐까? 권력은 게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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