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6 군사혁명으로 군인들이 정부의 장ㆍ차관을 차지하고 있을 때 내무부장관이던 모 육군소장이 어느 날 가뭄 피해 현장을 시찰하고자 충남을 방문했었다. 그는 현역 군복에 권총까지 차고 현장에 나타났다. 도청에서는 식산국장이 장관을 수행했는데 갑자기 논두렁에서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언성을 높였다. 물론 가뭄대책에 대해 식산국장이 장관의 지시를 정면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가뭄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식산국장이 밝았을 터인데 장관은 장관의 권위로 누르려 했고 국장역시 소신이 강해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마침내 장관의 입에서 ‘너 말버릇이 이따위냐?’라며 권총에 손을 얹고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식산국장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긴장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고는 잠시 후 화가 난 장관은 충남도청에 들러 도지사와 면담을 했는데 도지사도 군인 이었다. 주위에 있던 공무원들은 식산국장에게 인사조치가 내려 질 것으로 보고 분위기가 얼어붙어 있었는데 마침내 도지사가 그를 호출했다. 그러나 식산국장이 지사실에 들어서자 그렇게 호통치던 장관이 악수를 청하며 ‘훌륭한 공직자’라고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닌가 옆에 있던 도지사도 소신 있는 공무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것이다. 얼마 후 식산국장은 중앙으로 영전했고 부지사로 승진하기도 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재난지원을 둘러싸고 기획재정부가 ‘동네 북’처럼 협공을 당하고 있고 홍남기 부총리가 외롭게 맞서는 것 같다. 참으로 보기에 안타깝다.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 정세균 국무총리가 자신이 내놓은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를 홍남기 부총리 겸 경제기획재정부장관이 반대한다며 역정을 낸 말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기재부는 머슴임을 기억하라’고 역시 기재부를 공격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과는 별도의 문제이지만 백남기 전 산업부장관은 자기 말을 듣지 않은 부하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하고 호통을 쳤다는 언론보도도 충격을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권력계층의 권위의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돼 온 것이어서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국가조직과 사회가 점점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특권을 행사하는 관료주의(官僚主義)도 경계해야겠지만 정치의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충돌하게 되면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이 입게 된다.
이에 대해 최근 노무현 대통령 밑에서 경제부총리, 감사원장을 지낸 전윤철씨가 한 언론인터뷰에서 공무원이 국민의 머슴인 것은 맞지만, 선출직 공직자의 머슴은 아니라고 한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선출직 의원들도 국민의 머슴’이라고 한 것은 크게 공감 가는 말이었다. 문제는 선출직 공직자나 국가가 임명한 전문 기술관료가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국가운영 시스템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창시자 고(故) 이병철 회장이 생존 시 세계적 골프 황제 소리를 듣는 잭 니클라우스와 미국에서 골프를 친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다. 골프를 끝내고 이 회장이 잭 니클라우스에게 자신의 골프솜씨에 충고를 청했더니 ‘머리를 들지 마라’ 딱 한마디였다고 한다. 오로지 공에게 시선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사실 골퍼들의 큰 단점은 공을 칠 때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머리를 드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나 전문 관료들 역시 국민만 바라보고 머리는 들지 않았으면 어떨까, 한마디로 겸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머슴’이니 “나라가 네 것이냐?” 하는 말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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