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화이트칼라’의 빛과 그림자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놓았다고 말하는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은 자유와 민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육대학이나 사범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은 루소의 ‘에밀’을 잘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18세기 위대한 사상가 루소는 학술적으로 큰 명예를 누렸지만, 사생활은 그렇지 못했다.

그에게는 테레즈 르바쇠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는 이 여자와 23년을 결혼하지 않고 동거를 하며 아이도 다섯 명이나 낳았다. 그런데 그는 아이들을 입적도 하지 않고 고아원에 내다 버렸다. 아이들 이름도 지어 주지 않았으며 성별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동거하던 여인과는 거의 인생 말년인 1768년에야 정식 결혼을 했다. 「에밀」, 「민약론」, 「고백록」 등 불후의 저서로 민권과 자유, 인류에 대한 사랑을 부르짖은 위대한 사상가로서는 그의 사생활과는 일치하지 않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법률학 권위자로 존경받던 서울대 안모 교수는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첫 법무장관으로 지명되었다. 그야말로 국회 청문회도 순탄하게 통과될 것으로 관망 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안모 교수가 27세 때 어느 여성의 도장을 위조하여 몰래 혼인신고를 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공소시효가 지나 법적 책임은 없지만, 그리고 ‘혼인무효 판결’도 받았으나 도덕적으로는 큰 흠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법치의 수장으로서는 이 흠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여론이 높아 마침내 안모 교수는 6월16일 법무장관 후보 사퇴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사퇴를 발표하면서 ‘그 일(허위 혼인신고)은 전적으로 저의 잘 못입니다.’라고 솔직히 사과를 한 것이다. 대개 자신의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변명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장하성 주중대사가 고려대 교수 시절 학교 법인 카드를 강남 유흥점에서 부당하게 ‘쪼개 쓰기’를 했다 하여 여론에 회자되고 있다. 물론 교육부 감사에 적발된 교수는 장하성 교수뿐 아니라 모두 13명인 데 12명은 중징계, 1명은 경고를 요구했고 장하성 교수는 퇴직했기 때문에 불문에 부쳤다는 보도다.

장 교수는 이 일이 있은 2016년 다음해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입성하여 ‘소득주도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법인 카드 ‘쪼개 쓰기’란 결제금액이 많을 경우 한 번에 결제하는 것이 아니라 쪼개서(나누어서) 결제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가끔 기업이나 하급 관리들이 업무상 부득이 카드를 쓸 때 사용하는 꼼수다. 그런데 장 교수 등이 사용한 카드 쪼개기는 30초 간격으로 이루어졌고, 사용처가 강남 유흥주점이라는 데서 개운치가 않다. 사용한 금액도 2016년에서 지난해 까지 6천600여만 원으로 적지 않은 액수다. 더욱이 ‘소득주도 경제성장’ 주창론자인 그가 이렇게 카드 쪼개기 편법을 쓴 것도 ‘소득주도냐?’라는 등 여론의 질책은 따가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처럼 ‘화이트칼라(지식인)’들의 이중적 처신에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제자의 논문 지도나 예능 레슨을 빌미로 금품 수수에서 성추행에 이르기까지 그 탈선의 도는 한계를 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제자를 성추행하여 국민재판을 받는 교수도 있다.

지난 가을 태풍으로 과일 농가들이 큰 손해를 입었었다. 그때 어떤 농부가 작은 트럭에 복숭아를 싣고 아파트 입구에서 외치고 있었다. ‘이번 태풍에 땅에 떨어져 멍이 들었습니다. 싸게 드릴 테니 팔아 주세요!’ 멍든 복숭아를 속이지 않고 솔직히 말하며 팔아 달라는 그 농부가 참으로 존경스럽게 보였다. 주름지고 검게 탄 얼굴의 그 농부에서 ‘화이트칼라’에서는 볼 수 없는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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