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책과 그림을 내항부두 상상 부싯돌로

상상플랫폼은 인천의 새로운 명소다. 내항1,8부두를 개방하고 꾸며서 시민들에게 내놓은 노고는 두고두고 치하할 일이다. 해변 공간이 활짝 트여 있고 월미도와 인천대교가 한눈에 드는 눈맛은 시원하다. 인천이 해양도시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드문 장소다. 시민접근성이나 이후 활용도를 감안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은 안타깝다. 최근 내방객이 적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활성화를 위해 여러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 주변 관광지와 연계성이 부족하고 자체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쓴말이 일리가 있다. 단기간에 타개할 묘책을 내놓을 수 없다면 진단을 공유하고 지혜를 모으는 게 늦었지만 빠른 길이다. 상상플랫폼을 카페플랫폼으로 만들어 버린 장기 계약은 못내 아쉽다. 경관 좋은 한 개 층을 카페가 통째로 독점하고 있어 인근 차이나타운과 신포 상권에도 타격이 크겠다. 창고였다던 장소성에 깃든 추억이 뿜어낼 이야깃거리도 찾기 어렵다. 층고와 넓이에 걸맞은 대규모 행사를 대체해 공간을 채울 소소한 사연들을 복원해 내는 게 과제다. 수변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갑갑해진다. 바닷가로 가는 접근로를 높다란 철책이 가로막고 있다. 철책에 둘러싸인 상상플랫폼에서는 상상조차 막히고 갇힌다. 보안 문제나 출입국 관리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길을 내야 그 길 따라 상상력이 뻗어 나가겠다. 해안가 철책선을 걷어 내어 인천을 바다와 연결하려는 사업이 꽤나 오래됐다. 무슨 수를 내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간을 채울 이야기가 필요하다. 커피를 대신해 감각을 자극할 매개를 찾아야겠다. 현실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 시민의 일원으로 ‘아무말’을 던져 보련다. ‘대잔치’를 통해 모여든 생각들이 의외의 물줄기를 뚫어내는 집단지성을 기대해 본다. 이야기를 체화한 매개자 중 으뜸은 책이다. 상상으로 가는 몰입에는 그림 만한 매개물이 없다. 상상플랫폼에 갤러리가 있지만 입장료가 있는 기획전 중심이라서 일반 관객들은 주머니 사정부터 살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들락날락 자유롭게 그림을 접할 수 있으면서 옆에는 서가가 있는 공간을 상상해 본다. 책에 손이 가도 부담 없고 그림 앞에 움츠러들지 않는 장소는 시끄러운 도서관이자 놀이터 같은 화랑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울산대 도서관 폐기 장서를 비롯해 갈 곳 없는 책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화가들 수장고를 열어 어둠 속에 있는 그림들이 관람객을 만나도록 상봉자리를 깔아 주는 일은 또 어떨까. 미추홀도서관 장서고에 넘쳐나는 책이나 인천중앙도서관 비좁은 서가를 확장해 바닷가에 책방을 열면 좋겠다. ‘지혜의 바다’라는 도서관 명칭처럼 바다로 열린 공간은 이미 충분하다. 서울시에서 운영했던 야외도서관은 따라 배울 사례다. 내년 봄부터라도 인천관광공사 앞 너른 마당으로 열람실을 확장해 추운 계절 빼고 상시 운영해 보길 바란다. 파라솔 아래서 졸다 깨다 하면서 책이 주는 달콤한 잠에 취한 시민들은 치맥파티나 맥강(맥주+닭강정)파티에 취한 중국 관광객보다 가슴이 더 얼큰할 수 있다. 지지부진한 뮤지엄파크를 기다리느니 인천바닷가미술관으로 특성화한 대형전시공간은 어떤가. 욕심을 부리자면 폐기 위기에 처한 장서를 산속에 불러들여 모시고 있는 통도사 종정 성파 스님과 역할을 나누면 좋겠다. 70만 권 책을 살려낸 큰스님은 영축산 전체가 도서관 되기를 꿈꾸신다는데 인천부두를 도서관으로 못 덮을 까닭이 없다.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독서열차나 기차로 이동하는 갤러리를 운영할 수도 있고 부두에서 바로 탈 수 있는 바다 위 독서유람선도 띄워 보자. 인천시 반값 택배가 지하철로 고객과 이어지듯, 연구자들이 원하면 열차택배로 책을 보내주자. 싫든 좋든 근대의 물결은 인천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인천 하면 성냥이듯 부싯돌을 켜는 상상 점화로를 다시 인천앞 바다에서부터 만들어 내자.

[인천시론] 독도

지난 10월25일은 ‘독도의 날’이었다. ‘독도수호대’라는 민간단체가 2000년 지정해 기념하게 된 날이다. 이날이 ‘독도의 날’이 된 것은 대한제국 시절이던 1900년 10월25일 고종이 ‘칙령 제 41호’를 공포해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혔기 때문이다. 이 칙령은 “울릉도를 울도(鬱島)로 개칭하고, 관할구역은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 나온 석도가 바로 독도다. 독도는 그 이전까지 우리 정부에게서조차 그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름도 분명치 않았다. ‘석도(石島)’는 ‘돌섬’이라는 뜻이니, 독도가 온통 돌로 된 섬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석도’는 대한제국 정부가 이때 새로 지어 붙인 이름일 뿐이며, 당시 울릉도 주민들은 이 섬을 ‘독섬’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때 울릉도 주민들의 대다수가 전라도 출신이었는데, 전라도 사투리로는 ‘돌(石)’을 ‘독’이라 했기 때문이다. 울릉도에 전라도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된 것은 ‘공도(空島) 정책’과 관련이 있다. 섬을 비워 놓는 이 정책은 신라시대부터 시작해 조선시대까지도 극성을 부린 왜구(倭寇)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들은 섬마다 돌아다니며 약탈을 하고, 우리 백성들을 마구 잡아갔다. 그런데도 국가가 이를 막을 능력이 안 되니 아예 섬에 사람들이 들어가 살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섬을 비우자 일본인들이 대신 섬에 들어와 소중한 자원을 마구 가져가는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졌다. 이에 우리 정부는 결국 공도 정책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1880년대에 들어서면 울릉도에도 육지 주민들을 이주시킨다. 이 중 80% 정도가 전라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조사돼 있다. ‘獨島(독도)’라는 지금의 이름이 우리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1906년 3월28일, 울릉도 군수 심흥택이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낸 보고서에서다. 심 군수는 그 전날 만난 일본의 독도 조사단을 통해 일본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시키려 함을 알았다. 이에 우리 정부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보내면서 ‘獨島’라는 이름을 처음 쓴다. 그는 서울 사람이었지만 군수였으니 주민들이 말하는 ‘독섬’의 뜻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학(漢學)을 많이 공부했을 그로서는 독도가 먼바다에 외롭게(獨) 서 있는 상황을 생각하고 ‘獨島’라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石島’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보다 한결 문학적인 표현을 택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연을 거쳐 독도는 ‘돌섬’에서 ‘외로운 섬’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독도는 그만큼 더욱 많은 관심과 연구와 활용이 필요한 섬이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고 있는가. 꽤 오래전에 한 신문에서 본 한일 독도 회담 기사가 기억에 무겁게 남아 있다. 일본이 ‘남의 땅’인 독도의 해저에 묻혀 있는 지하자원 상황까지도 소상하게 파악한 내용을 포함해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을 정리해 나온 것을 본 기자가 그에 비해 너무나 빈약한 우리의 자료를 보며 정말 착잡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 우리는 거기서 얼마나 더 앞으로 나아가 있을까. 이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노래만 부른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인천시론] 떠도는 ‘제물포 혼’

엊그제 주말, 모처럼 재즈 뮤지컬을 관람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내 예술공간 ‘트라이보울’ 무대에 올려진 ‘제물포 블루스’는 온통 제물포로 도배질 된 듯했다. 공연 안내 팸플릿에 ‘1926년 제물포에서 울려 퍼진 재즈의 선율로 사랑과 자유를 노래한다’고 적혀 있었다. 300석 관람석을 가득 메운 공연장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보는 듯 옛 TV 브라운관 4대와 색소폰, 기타, 드럼 같은 악기류, 1920년대 인력거를 조합한 ‘인터랙티브’ 설치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TV에선 3D 애니메이션 영상과 함께 뮤지컬 주제곡을 들려주며 관객들에게 1920년대 제물포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 장치였다. 공연장 또한 온통 제물포로 가득했다.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재즈 기타리스트 주인공은 미국 뉴욕에서 만난 흑인 재즈 색소포니스트와 함께 뿌리를 찾아 고향 제물포로 돌아온다. 이들은 제물포구락부에서 재즈공연을 하며 독립운동에 나선다. 낮엔 이국적 문화가 공존하는 국제도시이자 밤엔 독립운동의 비밀기지로 변하는 제물포항(인천항) 일대에서 음악과 사랑, 자유를 향한 이야기다. 제물포의 중화요리점(공화춘) 주방장, 대불호텔의 러시아인 바리스타, 용동권번에서 일하는 3명의 기생, 제물포구락부 주인이자 마술사,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혼혈 여성 재즈가수들이 은밀히 독립운동을 한다. 일본 헌병 나카무라가 이들을 추적한다. 등장인물들이 코믹스러운 연기와 대사를 선보이자 관람객들이 박장대소했다. 무대 뒤쪽 6명의 재즈 뮤지션들은 ‘제물포 아리랑’ 등을 즉석 연주하며 흥을 돋웠다. 일본 헌병을 따돌리고 독립자금을 성공적으로 전달한 마지막 장면에 이어 색소폰 드럼 기타 베이스 연주가 각각 이뤄지자 공연장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멋진 피날레였다. 제물포에 흠뻑 젖어 들게 만든 수작이었다. 작품 제작을 총괄한 예술감독은 인천에서 600년간 살아온 집안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다. ‘뉴욕 아리랑’, 로드 뮤지컬 ‘예그리나(사랑하는 우리 사이라는 뜻을 지닌 순우리말)’, ‘제물포 야상곡’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10년 넘게 제물포와 씨름하고 있다. MZ세대인 예술감독에게 제물포를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미국 보스턴음악대학에 유학할 때 시내를 둘러보면서 독립선언 광장, 독립전쟁 기념탑 등 미국 최초 역사 흔적이 서린 16곳 유적지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 고향으로 돌아와 제물포구락부, 월미도 조탕 등 근대역사를 간직한 ‘코리안 퍼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나서 제물포 뮤지컬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제물포 사랑은 꾸준히 진화하고 있다. 인천시의 역점 사업인 ‘제물포 르네상스’에선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느끼기 어렵다. 인천항 8부두 내 시민 개방구역의 옛 창고를 개축한 상상플랫폼은 정체불명의 관광시설로 둔갑되고 있다. 최근 시의원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1, 8부두는 항만재개발 형식으로 진행돼 역사 흔적을 찾는 노력은 온데간데없다. 국내 최대 근대건축자산들이 동시대 정신과 호흡을 함께 못한 채 썩고 있어 안타깝다.

[인천시론] 애매한 ‘일반 시민’

문화예술과 행정 사이에 ‘거리 두기’가 필요할 것 같다. 인천시 패착으로 예술지대가 ‘술판 논란’에 휩싸여 간판을 붙였다 떼는 등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최근 H동 벽체 유리에 새롭게 장식됐던 ‘인천맥주 호랑이’란 커다란 간판 글씨가 온갖 질타를 받고 곧바로 지워졌다. 그러나 문화공간임에도 시민 누구나 이용하기 어려운 폐쇄공간이 됐다. 술집으로 바뀐 상태라 낮엔 문을 닫고 오후 4~5시부터 밤늦은 시간에만 영업하기 때문이다. 15년간 예술창작 산실 역할을 하는 인천아트플랫폼의 H동에서 운영되던 서점이 문을 닫고 맥줏집으로 변신하더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차 마시며 책 읽던 열린 공간이 청소년 이용이 어려운 ‘19금 공간’으로 변질한 것이다. 주변에 주점시설이 즐비한데도 문화공간과 동떨어진 맥줏점을 입점시킨 발상을 납득하기 어렵다. 과연 시 의도대로 ‘전문 예술인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나? 지난해 시민과 예술가를 이분화해 대립시키면서 일이 꼬이지 않나 싶다. 2009년 문을 연 인천아트플랫폼은 말 그대로 예술창작자를 끌어모으는 기차역 승강장과 비슷한 ‘예술플랫폼’으로 출발했다. 그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미술을 매개로 문화거점을 구축하면서 쇠퇴하던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취지나 성과를 무시하고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예술인 입주공간)’ 기능을 없애려 하면서 황당한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지난해 서점의 운영 중단 소문이 나돌자 공예인, 사진작가 등이 입주하려고 물밑 경쟁이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시 입김으로 이들 대신 유명 커피점을 유치하려다 반발을 샀고, 결국 ‘뮤직갤러리’ 운영을 명분 삼아 주류판매업자를 새 입주자로 선정했다. 음악공연과 술이 어우러지면 ‘일반 시민’이 북적대리라는 기대가 작용했다. 그렇지만 주로 낮 시간대 인천아트플랫폼을 찾는 시민들을 외면한 채 저녁 시간을 선호하는 청년 또는 성인 일부를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새 사업자는 H동 유리 벽체를 뚫어 철문을 설치하는 등 시 건축자산을 멋대로 훼손하고, 일반음식점인데도 음향시설을 갖춰 춤판을 벌여 빈축을 샀다. 서점 운영자보다 점유공간을 더 많이 차지한 주점엔 임대료를 대폭 낮춰줘 특혜 의혹까지 받는다. H동 서점 운영자를 바꾸는 과정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워 문화행정이 갈팡질팡한다. 인천문화재단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눈치만 보고 있어 답답하다. 시는 문화예술영역에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문화정책 기본으로 돌아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만 물어주면 좋겠다.

[인천시론] 프랑스인 에르베와 백령도 1박2일

요즘 프랑스는 필자에게 흥미로운 나라다. 문화 수준에 강약 기준을 두는 게 적절한지 몰라도 문화강국이라는 말에 토를 달기 어려운 여름을 보냈다. 프랑스를 올려다보게 됐다. 파리 올림픽을 통해 보여 준 프랑스문화에서는 격조가 느껴졌다. 도시가 가꿔 온 전통을 거대 스포츠 이벤트에 녹여 낸 솜씨는 발군이었다. 프랑스는 혁명으로 일군 공화국이고 그 정신을 배태하고 있는 문화는 강했다. 개막식 피날레, 셀린 디옹이 에펠탑 중간 특설 무대에 올랐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대 날 사랑한다면 두려워할 것 없으리.’ 근육 수축 희귀병을 앓고 있는 가수가 온 힘을 다해 부르는 ‘사랑의 찬가’는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인이 사랑하는 노래를 우리는 기꺼이 함께 불러왔고 그 밤에 더욱 감동하며 따라 불렀다. 나는 평창 올림픽 무대에 섰던 정선아리랑 예능 보유자 김남기옹을 떠올렸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지려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메밀밭 물결 위를 헤쳐가는 뗏목 위 아이들을 보며 세계인들은 같은 꿈을 꿨다. 사랑은 영원하고 인류는 희망하는 존재들임을 두 가수가 들려줬다. 지난해에는 샹송의 나라에서 우리 소리 공연이 펼쳐졌다. 판소리 창 본 ‘심청가’를 번역 출판한 에르베 페조디에가 큰 역할을 해 이뤄진 자리다. 에르베는 프랑스에서 ‘K-vox(한국 소리)’를 설립해 판소리를 알려온 배우이자 극작가다. 김경아 명창이 무대에서 심청가를 불렀고 에르베가 아니리 광대로 같이 공연했다. 프랑스어로 번역해 프랑스인들에게 들려 준 심청가에 관객들이 열광했다. 우리 관객들도 머뭇대는 추임새가 울려 퍼져 극장을 달궜고 한국의 소리가 세계인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사실에 공연자들은 들떴다. 에르베는 심청가 중 인당수 대목에 꽂혀 현지 방문을 원했고 지난 9월 초, 백령도 심청각에 공연 마당이 펼쳐졌다. 날이 화창해 가시거리 안에 인당수가 보인다 해도 좋을 야외 무대였다. 관객은 기획과 기록팀 10여명, 백령 주민들과 선생님들, 오가는 관광객들로 조촐했다. 김경아 명창이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대목을 불렀고 눈물 바람 끝에 에르베가 등장해 심봉사 눈뜨는 장면을 연기했다. 소경이 ‘번쩍번쩍’ 눈을 떠야 하는데 ‘뽕짝 뽕짝’으로 들리는 에르베의 발음과 몸짓에 좌중은 박장대소했다. KBS, OBS에서 동행 취재했고 이후에 공연과 인터뷰를 방영했다. 적지 않은 나이로 보이는 에르베는 평생소원을 이루게 됐다며 아이처럼 들떠 1박 2일을 보냈다. 나는 프랑스 사람 에르베를 통해 프랑스를 다시 경험했다. 그와 만났던 시기를 전후해 열린 올림픽도 달리 보였다. 내가 좁은 범주에 가둬뒀던 우리 소리가 세계인 모두의 소리가 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한복을 입고 부채를 흔들며 몸짓과 소리로 심청가를 즐기는 그는 유연하지만 강해 보였다. 자유롭게 유머를 구사했고 이틀 내내 온몸으로 행복감을 뿜어냈다. 나는 에르베에게서 프랑스가 꿈꾸는 문화인을 보았다. 셀린 디온이 에펠탑에서 불렀고 에르베가 백령도 심청각에서 불렀던 노래가 ‘다 프랑스’였고 문화의 힘은 그렇게 강했다.

[인천시론] 라면 삼국지의 승자

매운맛을 앞세운 한국 라면의 인기가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이 우리 라면을 먹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영상이 줄을 잇는다. 엊그제 ‘농심’은 연간 10억개를 생산하는 동남아와 유럽 수출 전용 공장을 부산에 새로 짓기로 결정했고, 관세청은 올해 우리나라의 라면 수출액이 사상 처음 1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 라면의 출발은 오늘날 ‘삼양식품’의 뿌리가 된 ‘삼양공업’이 일본에서 들여온 기계와 기술로 만들어 1963년 9월 시장에 내놓은 ‘삼양라면’이다. 오는 15일로 61세 생일을 맞는 이 라면은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이에 앞서 일본에서는 1958년 ‘닛신(日淸)식품’이 ‘치킨라면’을 내놓았는데, 이것이 지금과 같은 즉석요리 식품으로서 세상에 첫선을 보인 라면이다. 이렇듯 우리의 라면은 일본에서 배워온 것이고, 그 이름도 일본어 ‘라멘’과 이어져 있다. 그런데 ‘라면’은 무슨 뜻이고, 어떻게 해서 생긴 말일까. 라면의 기원(起源)에 대해서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설명은 이런 것이다.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밀가루로 여러 종류의 면을 만들었는데, 이 중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계속 잡아 늘여 가늘게 만든 것이 ‘수타면(手打麵)’이다. 이를 중국 북방(北方) 지역에서는 ‘拉麵(납면•중국어 발음은 ‘라미엔’에 가깝다)’이라 불렀다. ‘拉’은 ‘끌다, 당기다’ 외에 ‘치다, 때리다’라는 뜻도 있다. 면을 가늘게 만들려고 나무판에 계속 치고 당기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된 것으로 본다. 그런데 1937년 일본이 일으킨 중일(中日)전쟁 때 ‘拉麵’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중국군이 말린 ‘拉麵’을 전투 비상식량으로 가지고 다녔는데, 중국군 포로들을 통해 이것이 일본에 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그 이름까지 함께 전해졌다는 얘기다. 그 뒤 ‘닛신식품’이 이를 응용해 기름에 튀긴 면을 말린 다음 물에 잠깐 끓여 먹을 수 있도록 새롭게 개발했다. 따라서 라면은 그 뿌리가 중국에 있으나 즉석식품으로서의 원조는 일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본을 통해 라면을 배운 대한민국이 전 세계 라면시장을 휘어잡고 있다. 이는 영국의 유명 방송사가 “한국의 라면이 전 세계를 제패(制霸)했다”라고 보도할 정도인데, 한편에서는 “매운맛만으로는 머지않아 그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것 없다. 우리 기업들이 어디 보통 수준인가.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불합리한 간섭만 없다면, 다 알아서 창의적인 대응책을 찾아내 더욱 맛있고 인기 있는 라면을 계속 만들어 낼 테니까.

[인천시론] 머나먼 배곧대교

지난달 18일 수원행정법원은 시흥시가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을 상대로 낸 ‘배곧대교 건설사업 재검토 통보 처분 취소 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기각과 달리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청구내용이 판단 대상이 아닐 때 내리는 결정으로 이유는 구체적으로 판시하지 않았다. 대개 각하 결정은 당사자적격 내지 소의 이익이 없거나 제소 기간, 절차상 하자, 중복 제소 등을 이유로 내리게 된다. 법원이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추측만 가능한데 절차적으로 별 다른 문제가 없다면 배곧대교가 민자사업이란 점에서 당사자적격 내지 소의 이익과 관련될 개연성이 크다. 시흥시는 2014년부터 배곧대교를 민자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다 2020년 한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배곧대교 민자투자사업 전략 및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초안에 대해 부적절 의견을, 이듬해 본안에서 전면 재검토 의견을 받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기각 결정이 나게 되고 이에 불복, 법원에 소를 제기했지만 이번엔 심리도 하지 못하고 부적법 각하됐다. 이로써 사업 추진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시흥시가 주장하는 배곧대교의 필요성은 한마디로 말해 ‘경제적 이익’이다. 시흥시 정왕동 배곧지구와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가 다리로 연결되면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와 배곧지구 모두 투자유치와 정주환경이 크게 개선,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대형화물차 등으로 상습 정체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제3경인고속도로와 아암대로의 교통 불편을 해소하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도시의 시너지,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시흥시 입장이다. 이와 달리 인천시는 기본적으로 찬성하지만 환경단체와 시민사회계의 반발을 의식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시흥시가 배곧대교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던 2014년 이전에 이미 습지보호지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상황이었고, 인천 갯벌이란 천혜의 자연을 가지고 있는 인천시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변화의 기조가 감지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임병택 시흥시장과의 간담회에서 배곧대교는 국가경제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 송도개발계획의 기반시설로 반영하는 것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배곧대교의 경제적 효과, 필요성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다. 가장 먼저 해묵은 난제, 람사르 습지란 높은 벽을 넘어야 한다. 재판은 항소를 하더라도 승소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고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전환해 습지보전법의 예외 규정을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그동안 추진 상황과 규모에 비춰볼 때 어려운 점이 많다. 배곧대교, 갈 길이 멀다.

[인천시론] 36주 차 낙태 브이로그, 무법사회의 책임

최근 20대 여성 유튜버가 올린 소위 ‘36주 차 낙태 브이로그’ 영상이 준 충격은 상당하다. ‘총 수술비용 900만원, 지옥 같던 120시간’이란 제목부터 노골적이다. 해당 여성은 임신 36주 차의 만삭 상태로 병원에 입원해 낙태수술을 받고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을 일일이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했다. 특히 수술 후 이튿날까진 물 포함 금식이라 하면서도, 입원 당일 사온 김밥을 몰래 먹으면서 “조금 시큼하지만 괜찮다”며 맛 평가까지 하는 모습은 가히 엽기적이라 할 수 있다. 36주 차 태아는 폐와 간, 신장 등 주요 기관이 완전히 성숙해 자궁 밖에서 독립적 생존이 가능하다. 심지어 세상을 인지하고 소리를 들으며 고통까지 느낀다고 하니,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로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인지 사실상 다 자란 아이를 꺼내 죽였다는 누리꾼들의 비판은 뼈아프다. 그리고 이런 영상이 마치 불치병을 극복한 성공담을 자랑하듯, 떳떳이 공개되는 현실에 여론은 들불처럼 분노했다. 수사기관 역시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해당 여성은 영상을 내리고 잠적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 적용된 혐의는 낙태가 아닌 수술 집도의에 대한 살인죄다. 살인죄 성립이 가능할지를 떠나 낙태죄가 배제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한 임산부와 의사’에게 적용되던 형법상 낙태죄 조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시 헌재는 “임신 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침해이며,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낙태는 국가의 생명보호 수단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전체 임신 기간 낙태를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낙태 금지 기간을 합리적으로 조정해 달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회는 헌재가 정한 대체입법 시한인 2020년 말까지 관련 입법을 하지 않았고, 결국 2021년 1월1일부로 낙태죄는 완전히 효력을 상실해 지금에 이른 것이다. 완벽한 사람의 형상을 갖춘 아이라 할지라도 배 속에 있는 한 언제든 낙태해도 문제가 없는 사실상 낙태의 무법지대가 펼쳐진 것이다. 잉태된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저출산 위기를 외치는 모습은 코미디에 가깝다. 생명과 직결된 법이 공백상태에 방치된 건 국가적 비극이기도 하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일하는’ 국회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인천시론] 행정체계 개편, 도시 체질•품격 높여야

지난 7월 중구 제2청사 대회의실에서 ‘자연환경 특색을 살린 영종구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오는 2026년 7월 영종구 출범을 앞두고 영종지역 특색을 살리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날 지역주민,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제안과 기대들이 적극적으로 표출됐다. 한 참석자는 ‘숲과 공원, 바다가 어우러진 그린힐링시티 영종구’를 구체적으로 제안,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인천 행정체계가 오는 2026년 7월 1일부로 달라질 예정이다. 현재 중구 내륙지역과 동구를 ‘제물포구’로 통합하고 중구 영종도 지역을 ‘영종구’로 떼어낸다. 인구 60만명이 넘은 서구는 검단 지역을 분리해 검단구를 신설하고, 나머지 지역을 기존 서구로 유지한다. 이렇게 되면 2군 8구에서 2군 9군으로 31년 만의 대변혁을 이루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995년 결정된 현 체제로는 그간의 지역발전과 인구변화 양상에 부합할 수 없었던 측면이 크다. 더불어 달라진 행정수요와 시민욕구 대응을 위해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했다. 이를 두고 해당 지역에서는 수많은 ‘희망사항’들이 만발하고 있다. 그 대부분은 소위 ‘발전’을 표방한 개발과 도시화에 대한 요구들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지역별 개성이나 고유자원과는 무관한 천편일률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흐를까 싶어서다. 인천의 모든 도시가 마천루가 즐비하고 빼곡한 아파트 숲일 수는 없다. 서울 지향의 부속, 위성도시여서도 곤란하다. 당연히 도시마다의 역사와 문화, 환경, 그래서 고유한 이야기가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잘 반영된 ‘발전’이 관건이다. 국내에서 광역지자체로 분구·신설을 통한 행정체계 개편으로는 인천이 첫 사례다. 추진 과정서부터 성과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남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천시는 지방재정 운영방안, 생활SOC 확충 방안, 자치법규 정비 등의 과제를 잘 풀어내야 한다. 각 지역의 특성을 살리면서 조화와 균형을 갖춘 지속가능한 도시모델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할 부분이다. 주민참여와 전문가 협력, 공론화 과정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인천시가 행정체계 개편을 추진하며 내세운 ‘시민편익 증진 및 행정 효율성 증진’만으로 모두 설명될 수도, 완성도 높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최근 신설된 인천시 행정체제개편추진단의 임무가 막중하다.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역할을 해낼 행정체제 개편 추진조직 역시 그렇다. 세부 구상을 제시하고 초석을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정치논리에 의한, 혹은 그야말로 행정체계에 초점을 맞춘 개편을 넘어설 수 있기를 바란다.

[인천시론] 갈 길 먼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

옛 경인고속도로(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옹벽, 방음벽 철거가 시작됐다. 1968년 개통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라는 상징성을 지닌 경인고속도로가 반세기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인천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동안 경인고속도로는 산업화 시대에 경제 발전의 일등공신으로 국가와 지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 팽창으로 이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아졌다. 인천 도심 한복판을 동서로 양분하고 단절시키는 데다 소음, 진동, 분진 등으로 시민들의 주거환경을 크게 훼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화물차를 비롯해 상습정체 구간이 늘어나면서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지도 오래다. 이에 인천시는 2017년 국토교통부로부터 경인고속도로 인천 기점에서 서인천나들목 구간까지 관리권을 이관 받고 일반도로로 전환했다. 이후 일반화 사업을 줄곧 추진했지만 이번 옹벽 철거를 통해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셈이다. 유정복 시장은 단절됐던 도심을 연결하고 옹벽을 철거한 자리에 공원과 여가공간을 조성해 점점 쇠퇴하고 있는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의 전체 구간을 둘로 나눠 인천 기점에서 주안산단 고가교 4.8㎞ 구간은 1단계로 2027년까지 완공하고 주안산단 고가교에서 서인천나들목 5.65㎞ 구간은 2단계 사업으로 2030년까지 준공해 원도심과 신도시 간 양극화 및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일반화 사업이 추진될 경우 인천대로 인근 서구와 미추홀구 주민들은 가까이에서 공원, 녹지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옹벽으로 인해 한참을 돌아가야 했던 불편이 해소되고 손쉽게 통행, 왕래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우선 점점 늘어나는 공사비로 인해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천시가 무리를 해서라도 예산을 편성하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만 더 큰 문제가 남아 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과 연계한 각종 사업들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인천대로와 맞닿은 미추홀구 용현동 일대 문화복합시설 건립 사업은 공사비 급증으로 아직까지 설계 단계에 멈춰 있다. 당초 나들목 주변 시유지(市有地)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거점개발사업 역시 시가 계획했던 사업 구상과 실제 토지 모양이 달라 계획 변경만 반복하며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원도심 활성화는커녕 자칫 슬럼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천대로 일반화 사업은 옹벽 철거와 공원 조성 등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배후 연계 사업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인천시론] 굿바이, 친족상도례

‘친족상도례’란 낯선 법률용어가 익숙해진 건 비극이다. 친족상도례란 직계혈족이나 배우자, 동거가족, 동거친족 또는 그 배우자 간에 발생한 절도와 사기, 횡령, 배임 등 재산범죄에 대해서는 형을 필요적으로 면제토록 하는 규정이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이 근원으로, 가족간 분쟁에 함부로 법을 개입시키지 말고 자체 해결을 도모하라는 뜻이다. 대가족 농경사회를 지향하던 우리나라가 1953년 형법 제정시 이를 받아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핵가족화를 거치며 가족간 유대관계가 이전보다 약화된 현 시점에도 여전히 친족상도례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 난센스였다. 가족의 재산을 절취 내지 편취했다는 뉴스가 이제 식상할 지경임에도 71년 전 도입된 친족상도례가 여전히 그들의 방패막이가 돼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소위 셀럽이라 불리는 이들의 살벌한 가정사로 인해 친족상도례가 유명세(?)를 치른 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지난 2022년 방송인 박수홍이 횡령 혐의로 친형 부부를 고소했을 때, 뜬금없이 아버지가 등장해 “자금 관리는 내가 했다”고 나선 건 ‘동거’가족이 아닌 장남을 구하고자 친족상도례를 내세운 꼼수였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최근 골프스타 박세리 역시 아버지의 채무 문제로 큰 곤욕을 치렀음에도 사기나 횡령이 아닌 사문서위조 혐의로 아버지를 고소한 것 역시 친족상도례라는 거대 암초 때문이었다. 이를 계기로 시대착오적인 친족상도례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고 최근 헌법재판소는 이에 적극 응답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 지적장애 3급인 조카의 재산을 착취한 부부와 치매환자인 노모의 재산을 빼돌린 자식 등 파렴치한 범죄자들이 친족상도례의 혜택(?)으로 처벌을 면하게 되자 헌법재판소가 제동을 건 것이다. 특히 헌법재판소는 이번 결정에서 친족상도례를 두고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고 있다”, “가족 내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할 염려가 있다”고 하며 그 위헌성을 지적하는 한편 2025년 12월31일까지 국회가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효력을 상실토록 했다. 사실상 친족상도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순간이다. 이제 가족이란 이유로 모든 게 용서되던 시대는 끝났다. 그동안 친족상도례란 장막 뒤에 숨어 있던 숱한 착취형 범죄들에 종말을 고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굿바이, 친족상도례!

[인천시론] 슈퍼스타 김호중 구하기, 그 이후

“고백한 죄의 반은 용서받은 것이다.” 용서를 받길 원한다면,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영국 속담이다. 가수 김호중씨의 죄는 크다. 음주운전뿐 아니라 도로 한복판에서 택시를 들이받은 후 그대로 줄행랑치는 뺑소니 범죄까지 저질렀다. 여기에 경기도 구리의 모텔로 몸을 피한 후, 17시간 만에 경찰서에 출두하며 음주 측정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모텔 인근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하는 소위 ‘술 타기’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사고 당시 음주 여부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도록 모든 꼼수가 동원된 것이다. 그 사이 매니저가 김씨를 대신해 허위 자수하고, 본부장은 유력한 증거인 블랙박스 메모리를 삼켜 없애 버린 건 덤이다. 음주는 안 했지만, 공황장애로 부득이 사고현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속사의 공식 입장문을 보면, 어떻게든 음주운전만 피해가면 된다는 조악한 셈법이 읽힌다. 남은 뺑소니 범죄는, 과중한 스케줄에 따른 아티스트의 공황장애로 충분히 방어 가능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김씨가 음주 혐의를 부인하며, 공연까지 강행한 것도 같은 이유다. “유흥주점을 방문한 뒤, 술잔에 입은 댔지만 마시지는 않았다”는 희대의 명언(?)을 남긴 것도 그때였다. 그랬던 김씨가 열흘 만에 음주운전을 시인했다. 사법방해 의혹이 불거질 무렵으로 이쯤 되면 악화된 여론에 구속만은 피하고자 던진 회심의 카드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활동을 이어가고자 죄에 죄를 더하는 무리수를 둔 결과, 남은 공연을 뒤로한 채 김씨는 물론이고 소속사 대표에 본부장까지 줄줄이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최근 검찰이 김씨를 구속 기소하며 특가법상 위험운전치상·도주치상, 도로교통법상 사고후미조치, 범인도피교사 혐의만 적용했을 뿐, 음주운전은 제외했다. 정확한 혈중알코올농도를 특정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결국 “일단 튀어”에 “술타기”까지 동원된 김씨의 필승법이 적중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크게 분노했고, 정치권 역시 이에 응답해 ‘음주운전 적발을 회피할 목적으로 현장에서 도주하거나 추가로 술을 마실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케 하자’는 소위 김호중 방지법까지 논의한다 하니 출국전략조차 마땅치 않은 지경이다. 슈퍼스타 김호중 구하기의 결말은 참담하다. 특히 대중의 신뢰를 잃어버린 건 연예인으로서 치명적이다.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할 때, 적어도 절반의 용서를 얻는다는 착한 필승법이 절실한 순간이다.

[인천시론]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의사들의 집단휴진 선언이 이어지며 의정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증원 재논의’와 ‘전공의 행정처분 취소’ 등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의협이 불법적인 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부에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사실상 거절, 주장을 일축했다. 정부와 의료계의 강 대 강 대치 속에 응급 환자나 중증 환자만큼은 제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 대학교수들까지 병원을 떠나자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가 만성화된 상황에서 급기야 지난 12일 인천에서 50대 응급환자가 하루 종일 병원을 찾아 헤매다 지방의료원장으로부터 직접 수술을 받아 위기를 넘기는 일도 발생했다. 급성 충수염, 즉 맹장이 터지면서 장폐색(막힘)과 복막염까지 진행돼 긴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인천은 물론 서울·경기까지 이 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없었다. 전공의 집단사직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부분 병원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자포자기하고 있을 무렵 인천의료원으로부터 겨우 연락을 받았다. 병원 측은 당초 건강 상태를 보고 상급종합병원 입원을 권했으나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는 결국 환자를 받았다고 한다. 이날 밤이 돼서야 입원을 했고 이튿날 오전 7시께 조승연 원장 집도로 수술을 마치고 위기를 넘겼다. 사실 충수염은 유병률이 높은 비교적 흔한 질병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맹장염이라고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수술 난도가 낮은 편이지만 방치할 경우엔 치사율이 10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술을 받기 위해선 수도권 전역의 병원을 알아봐야 하고 밤늦게 간신히 입원하더라도 의사가 없어 병원장이 직접 메스를 들어야 하는 모습. 요즘 우리 대한민국의 의료 현실이다. 반면 다행스러운 것은 전공의 이탈과 의료계의 집단휴진으로 의사에 대한 존경과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명감으로 묵묵히 진료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분만 및 아동병원은 휴진 불참을 선언했고 뇌전증 의사들도 이에 동참했다. 공공병원도 의료 취약계층을 위한 마지막 보루다. 이번에 응급 수술로 직접 생명을 구한 조 원장은 최근 의대 증원에 따른 전공의 이탈 사태와 관련해 평소 “의사가 환자 곁을 벗어나 투쟁하는 방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설령 의료계의 주장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한다. 집단 휴진을 철회하고 하루속히 의료현장으로 복귀하길 바란다.

[인천시론] 토종식생과의 평화와 복원을 위한 신토불이

본격적인 여름에 들어선 요즘도 거리와 공원 곳곳은 여전히 형형색색으로 즐겁다. 시내 화원이나 꽃가게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듣도 보도 못한 초화류들이 손님을 유혹하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은 예산과 인력을 들여 때마다 꽃밭을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만나는 꽃들의 상당 부분은 이색적이고 이국적 자태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고유종이나 개량종이 있고 국내로 들여온 외래종 초화들인 경우도 흔하다. 경북 구미시 낙동강변에 조성된 수십만㎡의 큰금계국밭이 화제였다. 명소로 손꼽히지만 동시에 토종식생을 교란해 파괴하는 대표적인 예로 지적됐다. 사실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노랗게 물든 금계국이나 큰금계국은 매우 쉽게 마주치는 일상의 꽃이 됐다. 하천변이나 공원은 물론 여느 노지나 산자락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금계국이나 큰금계국은 5월과 6월에 본격적으로 개화한다. 이 꽃은 원래 북미가 원산지다. 특히 문제가 되는 큰금계국은 여러해살이 식물로 씨앗뿐만 아니라 뿌리로도 번식하며 생명력이 매우 강하다. 가히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될 만하다. 일본에서는 큰금계국을 생태교란종으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8년 국립생태원 외래식물 조사에서 유해성 2등급으로 발표됐지만 생태교란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채 관리를 받으며 자라는 실정이다. 우리가 이국의 꽃들에 매력을 느끼고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는 사이 한쪽에서는 토종식생 보호와 생태복원을 위해 야생화를 심고 식물자원 강화에 나서고 있다. 가시박, 단풍잎돼지풀, 서양금혼초와 환삼덩굴 등 생태계 교란식물 제거는 이미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이 됐다. 국제적 기념일인 ‘세계 환경의 날’이 지났다. 지난 5일이었는데 올해의 주제는 ‘토지 복원, 사막화 및 가뭄 복원력’이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우리가 땅과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세대임을 강조하며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숲을 키우고 수원을 되살리고 토양을 되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땅과의 평화’라든가, ‘되살림’이라는 의미가 새삼 묵직하게 다가온다. 평화로운 방식으로 보존하고 되살려 가며 발전을 추구하고 행복을 지속가능하게 누리자는 의미이겠다. 우리가 누리던 일상의 즐거움이나 추구했던 행복의 방식을 잠시 돌이켜보자. 먹거리에 ‘신토불이(身土不二)’가 있듯 고유 생태계와의 평화, 복원에 마음이 머문다. 이제 토종식생과의 조화라든가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꽃을 바라보고 즐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것까지 신경써야하니 조금은 피곤한 노릇이겠으나 말이다. 환경을 보호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혜가 어렵지 않고 멀리 있지는 않다.

[인천시론]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다

2020년 한 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전 국민에게 특수부대에 대한 로망을 선사했던 유튜브 콘텐츠 가짜 사나이에 대한 기억을 소환해 본다. 평균 또는 그 이하의 체력을 가진 ‘가짜’ 사나이들을 강한 훈련을 통해 ‘진짜’로 변모시킨다는 취지 자체는 훌륭했다. 하지만 막상 화면을 가득 채운 건 훈련이 아닌 얼차려를 빙자한 ‘가혹행위’였다. 교관들은 훈련생들을 향해 ‘이 새끼’라 칭하며 묵음 처리될 수준의 욕설에 ‘대가리 박아’를 남발했다. 심지어 얼차려를 제대로 받지 못하자 “너 인성 문제 있어?”라며 상대의 인격을 조롱하는 모습은 가히 삼청교육대의 잔상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리얼리티 쇼일 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가짜 사나이’가 21세기 대한민국 군대에서 다시금 재현됐다. 최근 한 훈련병이 밤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40kg 완전군장을 한 채 연병장 1.5㎞를 달리고 선착순 뺑뺑이에 팔굽혀펴기까지 군기교육을 받던 중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함께 군기훈련을 받던 동료 모두 너무 힘든 나머지 서로의 상태를 살필 여유조차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강행군이었을지 알 만하다. 군장 무게를 늘리고자 군장 안에 여러 권의 책을 넣어주는 센스(?)까지 보인 건 덤이다. 부검 결과 사망한 훈련병은 갑작스러운 고강도 훈련으로 인해 근육이 녹는 ‘횡문근융해증’ 의심 증상을 보였다고 하니, 이쯤 되면 ‘죽을 때까지 괴롭혔다’라는 표현이 맞는 듯하다. 군기교육은 얼차려의 또 다른 말로 엄연히 육군 규정에 명시된 훈련 중 하나다. 규정에 따르면 훈련병은 완전군장 상태로는 뜀걸음이 아닌 1㎞ 이내로 보행만 가능하고, 팔굽혀 펴기 역시 맨몸 상태에서 해야 한다. 여기에 군기훈련을 받는 병사들의 건강상태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건 기본이다. 이렇듯 우리 군은 군기교육이 자칫 가혹행위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자 세세한 규정까지 뒀지만 어쩐 일인지 현실에선 깡그리 무시된 것이다. 결국 군기교육을 빙자한 가혹행위에 간호사를 꿈꾸던 전도유망한 20대 청년의 목숨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입대한 지 고작 9일밖에 안 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은 전 국민의 공감을 얻으며 어떻게 군을 믿고 자식을 보내냐는 이유 있는 분노로 이어지고 있다. 강한 군대를 위해 가혹행위조차 필요악으로 치부되던 야만의 시대는 진작에 끝났다. 그럼에도 가혹행위라 쓰고 군기교육이라 읽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도 참담하다.

[인천시론] 5호선 연장 최종안 발표를 앞두고

서울지하철 5호선 연장 노선 최종안 확정을 앞두고 인천시 요구안이 받아들여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는 올해 초 서울 방화역에서 출발해 인천 검단신도시와 김포 한강신도시를 잇는 5호선 연장 노선 조정안을 발표한 데 이어 조만간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대광위가 1월 발표한 조정안을 보면 김포는 한강 시네폴리스, 풍무지구와 인접한 S03, 김포골드라인으로 환승할 수 있는 풍무역 S04, 인천 서구 불로동과 유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감정동 S05, 김포골드라인 환승역인 장기역 S08, 김포한강2 콤팩트시티 예정지인 S09 등 모두 7개 정거장인 반면 인천은 인천지하철 1호선 환승이 가능한 S05(아라역), S06(원당역) 2개 정거장을 설치한다. 인천시는 이는 김포~서울 직결 노선을 요구하는 김포시 의견을 수용한 결과라며 당초 요구했던 4개 정거장이 아닌 2개 정거장만 설치하고 원당사거리역과 불로역이 빠진 조정안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대광위에 전달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물론 검단을 지역구로 하는 모경종 당선자 등 지역 정치권과 서구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종안 확정이 임박한 가운데 인천시와 경기도 김포시의 막판 기싸움이 물밑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5호선 연장 사업은 지자체 간 합의로 노선을 결정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는 만큼 대광위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지난 4개월의 지자체 협의 과정을 거치며 인천시 요구안을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김포시 또한 지역 주민과 정계를 중심으로 기존 조정안에 통진역, 김포경찰서역, 풍무2역 등 역사를 3곳 더 추가해 총 10곳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두 지자체 간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앞서 대광위는 GTX-D 노선의 예비타당성 결과가 나오게 되면 5호선 연장 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것으로 보고 조속한 노선 확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간 사업 지연을 지켜 본 시민들도 더 이상 노선 확정이 늦어지게 되면 자칫 5호선 연장 자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솝 우화 중 ‘외나무다리 위 두 염소 이야기’가 있다. 두 마리의 염소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서로 먼저 건너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싸우다 결국 두 마리 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다리 밑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이야기. 대광위는 인천과 김포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할 수 있는 최선의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유리해선 안 된다. 지자체들 역시 합의를 통해 조속하게 5호선 연장 노선을 확정해야 한다. 어리석은 염소꼴이 나지 않도록 말이다.

[인천시론] ‘남는 장사’ 된 사기범죄, 한국이 호구된 이유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는 과연 한국과 미국 중 어디로 송환돼 재판을 받을지 초유의 관심사다. 권씨가 설립한 테라폼랩스는 가상화폐 ‘테라’와 자매코인 ‘루나’를 발행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99.99%라는 기록적인 폭락 끝에 개당 10만원이 넘던 코인이 1원 이하로 떨어지며 사실상 깡통코인으로 전락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만 400억달러(약 54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권씨는 11개월간의 도피행각 끝에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됐지만 이후 권씨의 송환을 둘러싼 잡음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웠다. 한국과 미국 모두 자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권씨를 자국 법정에 세우고자 권씨의 송환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몬테네그로 법원은 둘 중 어느 나라가 먼저 송환을 요청했는지를 두고 고심한 끝에 당초 미국으로 결정된 송환지를 한국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웬일인지 국내 반응은 차가웠다.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하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권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사범의 최고 형량이 40년 정도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형을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한 까닭에 100년 이상의 중형이 가능하다는 게 이유였다. 다행히(?) 기존 하급심 결정이 무효라는 몬테네그로 대법원의 판단으로, 권씨의 미국행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권씨가 현지 로펌을 동원해 한국행을 강력히 추진한다는 소식은 여전히 불편하다. 권씨가 한국행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낮은 형량 때문이다. 지금까지 경제사범에게 내려진 최대 형량은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된 징역 40년이다. 투자자들에게 가짜 정보를 제공해 292억원 상당의 비상장 주식을 판매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과 서민 191명의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인천 건축왕’ 남모씨에게 각 3년6개월과 15년의 실형이 선고된 것은 그 단적인 예다. 사기가 가성비 좋은 ‘남는 장사’로 둔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 같다”는 검찰총장의 푸념은 결코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경제사범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범죄수익 역시 철저히 박탈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의 개정이 시급하다. 더 이상 대한민국이 사기꾼들에게 호구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인천시론] 전략적 상임위 배정과 역할 분담

제22대 인천 국회의원 당선인의 절반 이상이 국토교통위원회 배치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수의 언론보도에 따르면 4·10 총선 여야 당선인 총 14명 중 최소 6명에서 최대 8명까지 국토위 배정을 1순위로 답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중구·강화군·옹진군)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허종식(동구·미추홀구갑), 정일영(연수구을), 맹성규(남동구갑), 박선원(부평구을), 유동수(계양구갑), 김교흥(서구갑), 모경종 당선인(서구병)까지 모두 국토위를 희망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소관 부처에 따라 입법 등 의안을 심의하기 위해 상설적으로 운영되는 상임위원회는 모두 17개가 있다. 겸임할 수 있는 상임위인 국회운영위, 정보위, 여성가족위원회를 제외하더라도 14개 상임위가 행정부 각 부처와 소관에 따라 나뉘어 있다. 위원은 주로 20명 내외로 구성되며 인기 상임위인 국토교통위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는 무려 30명에 달한다. 특히 국토위는 주택·토지·건설 등 국토 분야와 철도·도로·항공 등 교통 분야를 담당하며 부동산, 광역급행철도(GTX)처럼 지역민을 비롯해 국민적 관심사가 많은 현안을 다루다 보니 선호도가 높다. 실제 제21대 국회 전반기엔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명 중 49명이 국토위를 1지망으로 썼다. 이번 총선에선 전체 국토위 소속 의원 82%가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공천율이 가장 높은 상임위이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천지역 당선인들이 대거 국토위를 원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신의 지역구에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사업을 유치하고 예산 배정을 하는 데 있어서도 유리하다. 하지만 인천의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당선인들이 상임위에 골고루 분산 배치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상임위만을 선호하는 모습은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당선인들의 바람과 달리 국회 의석수와 상임위 구성에 비춰 1~2명을 제외하고는 국토위에 배치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머지는 2지망 내지 원하지 않는 상임위로 배치될 수밖에 없다. 제21대 국회 후반기에는 17개 상임위 중 인천지역 국회의원이 아예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해양도시 인천이란 위상에 무색하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위한 환경노동위, 인천대 공공의대 설립을 위한 교육위, 인천고법 설치를 위한 법제사법위원회 역시 마찬가지다. 당선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서로 양보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지역구 및 인천 발전을 위해 협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는 해묵은 인천 현안들이 해결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상임위 배정과 역할 분담을 기대한다.

[인천시론] 인천 국회의원 당선인에게

제22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4•10 총선이 끝났다. 인구 300만명의 도시, 인천은 지역구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14개 선거구에서 여야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정권심판론’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지난 21대 총선과 마찬가지로 중구강화군옹진군의 배준영 당선자와 동구미추홀구을의 윤상현 당선자를 제외하곤 12개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싹쓸이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위원장이 강조한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를 심판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조심판론’은 오히려 정권심판 여론을 부추기며 선거에 불리한 상황으로 이어졌다. 통상 집권 여당이 경제와 민생, 국정 안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달리 아무런 집행력이 없는 야당을 심판하겠다는 것 자체가 실책이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 속에서 선거를 치렀다. 결국 정권심판이라는 거센 바람과 선거 전략 부재로 인해 국민의힘은 인천에서 단 두 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윤상현 의원은 민주당 남영희 후보를 0.9% 차로 아슬아슬하게 따돌리며 5선 고지에 올랐고 배준영 의원도 민주당 조택상 후보와 세 번째 맞대결에서 승리하며 재선에 성공했지만 수도권의 참패로 빛이 바랬다. 반면 민주당은 다수의 중진 의원을 배출했다. 김교흥 의원을 시작으로 맹성규, 박찬대, 유동수 의원까지 3선 의원만 4명이나 된다. 국회에서 상임위원장에 대한 기대와 함께 벌써부터 인천시장 하마평이 무성하다. 지난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표를 비롯해 정일영, 허종식 의원은 재선 반열에 올랐다. 언론인 출신으로 YTN, 경인방송에서 각각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던 노종면 이훈기 당선인, 이재명 대표 비서실 차장이었던 모경종 당선인, 문재인 정부 국정원 제1차장을 했던 박선원 당선인, 영입인재 23호인 변호사 출신 이용우 당선인까지 민주당의 영입인재, 정치신인들도 첫 도전에 모두가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인천지역에서 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여당 소속 단체장인 유정복 시장은 민선 8기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에도 시정 운영의 동력을 확보하고 국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 됐다. 민주당의 경우 인천시당이 제시한 10대 공약 중 인천 2호선 연장, GTX-D Y자 노선 제5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반영, 공공의대 추진을 제외하곤 21대 공약이 반복,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은 수권정당으로서 해결하고 넘어야 할 숙제다. 정권심판에 의한 반사이익을 온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과신하거나 승리에 도취해선 안 된다. 시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정치, 여야 간 협치와 공조를 통해 인천의 주요 현안과 자신들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는 제22대 인천 국회의원들을 기대해 본다.

[인천시론] 22대 총선, 기후위기 대응 전환점 돼야

제22대 국회의원선거에 인천지역 14개 선거구 후보자 39명이 출마했다. 2일간 진행된 사전투표 결과, 역대 최고인 30.08%(전국 사전투표율 31.28%)를 기록했다. 이번 선거에 쏠린 유권자들의 높은 관심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오늘이 본투표일이다.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할 일꾼이 누구일지를 판단하는 지혜와 책임 있는 국민으로서의 권리 행사가 얼마나 소중한지가 확연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투표권 행사를 두고 저마다 고민하며 신중을 기한다. 거기에는 정당이나 후보자 선택에 대한 근거와 기준들이 따르게 마련이다. 이번 선거에 이전과 색다르게 ‘기후선거’, ‘기후투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일부 유권자들은 총선 후보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국회에서 기후 불평등과 기후 재난을 막을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을 기후유권자라고 하는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을 가진 정치인에게 투표하려는 경향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에너지전환과 탄소중립산업화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이는 그야말로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전략인데 개개인의 일상적 실천만으로 도달이 좀처럼 쉽지 않다. 기업과 시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정치와 정책에 녹여내야 하는 과제다. 이번 선거가 중요하고 유권자들의 안목이 중요한 이유다. 지역(지방)과 중앙을 잇는 국회의원이고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국회의원이다. 국가적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아니 가능하다면 그 이전에라도 서둘러 달성해야 하는 책무가 그들에게도 있다. 아쉽게도 각 정당이나 후보들의 면면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비전과 의지를 찾기 힘들다. 여전히 개발이나 온실가스 다배출에 영향을 미칠 공약, 주장들이 난무하는 듯하다. 이를 입증하듯 시민사회단체가 지난달 말 5개 정당에 환경 분야를 포함한 정책제안을 했지만 1개 정당만이 수용 의사를 표명하는 데 그쳤다. 기후위기를 해소하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 시급히 추진해야 할 정책을 담아낸 후보를 찾기가 너무 어렵다. 기후선거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생각이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이래서는 맞닥뜨린 사회적 복합위기와 더불어 기후위기 대응을 비롯한 지속가능발전을 이뤄내기 어렵겠다는 좌절감까지 든다. 그래도 후보들의 이력이나 공약의 의미를 잘 읽어 제한적이나마 기후유권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가 끝나더라도 삶터를 지켜내고 미래세대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지속가능발전이 계속 추동돼야 한다. 우리는 일꾼을 자처하고, 당선된 이들에게 부지런한 감시자이면서 과제 이행을 꼼꼼히 점검하는 평가자여야 한다. 비록 선거는 끝나더라도 인천시민이자 유권자로서의 역할은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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