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책과 그림을 내항부두 상상 부싯돌로

임병구 (사)인천교육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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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플랫폼은 인천의 새로운 명소다. 내항1,8부두를 개방하고 꾸며서 시민들에게 내놓은 노고는 두고두고 치하할 일이다. 해변 공간이 활짝 트여 있고 월미도와 인천대교가 한눈에 드는 눈맛은 시원하다. 인천이 해양도시라는 걸 대번에 알아차릴 수 있는 드문 장소다. 시민접근성이나 이후 활용도를 감안하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현실은 안타깝다. 최근 내방객이 적어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활성화를 위해 여러 생각을 나누면 좋겠다. 주변 관광지와 연계성이 부족하고 자체 콘텐츠가 빈약하다는 쓴말이 일리가 있다. 단기간에 타개할 묘책을 내놓을 수 없다면 진단을 공유하고 지혜를 모으는 게 늦었지만 빠른 길이다.

 

상상플랫폼을 카페플랫폼으로 만들어 버린 장기 계약은 못내 아쉽다. 경관 좋은 한 개 층을 카페가 통째로 독점하고 있어 인근 차이나타운과 신포 상권에도 타격이 크겠다. 창고였다던 장소성에 깃든 추억이 뿜어낼 이야깃거리도 찾기 어렵다. 층고와 넓이에 걸맞은 대규모 행사를 대체해 공간을 채울 소소한 사연들을 복원해 내는 게 과제다. 수변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갑갑해진다. 바닷가로 가는 접근로를 높다란 철책이 가로막고 있다. 철책에 둘러싸인 상상플랫폼에서는 상상조차 막히고 갇힌다. 보안 문제나 출입국 관리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길을 내야 그 길 따라 상상력이 뻗어 나가겠다. 해안가 철책선을 걷어 내어 인천을 바다와 연결하려는 사업이 꽤나 오래됐다. 무슨 수를 내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공간을 채울 이야기가 필요하다. 커피를 대신해 감각을 자극할 매개를 찾아야겠다. 현실 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 시민의 일원으로 ‘아무말’을 던져 보련다. ‘대잔치’를 통해 모여든 생각들이 의외의 물줄기를 뚫어내는 집단지성을 기대해 본다. 이야기를 체화한 매개자 중 으뜸은 책이다. 상상으로 가는 몰입에는 그림 만한 매개물이 없다. 상상플랫폼에 갤러리가 있지만 입장료가 있는 기획전 중심이라서 일반 관객들은 주머니 사정부터 살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들락날락 자유롭게 그림을 접할 수 있으면서 옆에는 서가가 있는 공간을 상상해 본다. 책에 손이 가도 부담 없고 그림 앞에 움츠러들지 않는 장소는 시끄러운 도서관이자 놀이터 같은 화랑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울산대 도서관 폐기 장서를 비롯해 갈 곳 없는 책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면 어떨까. 화가들 수장고를 열어 어둠 속에 있는 그림들이 관람객을 만나도록 상봉자리를 깔아 주는 일은 또 어떨까. 미추홀도서관 장서고에 넘쳐나는 책이나 인천중앙도서관 비좁은 서가를 확장해 바닷가에 책방을 열면 좋겠다. ‘지혜의 바다’라는 도서관 명칭처럼 바다로 열린 공간은 이미 충분하다. 서울시에서 운영했던 야외도서관은 따라 배울 사례다. 내년 봄부터라도 인천관광공사 앞 너른 마당으로 열람실을 확장해 추운 계절 빼고 상시 운영해 보길 바란다. 파라솔 아래서 졸다 깨다 하면서 책이 주는 달콤한 잠에 취한 시민들은 치맥파티나 맥강(맥주+닭강정)파티에 취한 중국 관광객보다 가슴이 더 얼큰할 수 있다.

 

지지부진한 뮤지엄파크를 기다리느니 인천바닷가미술관으로 특성화한 대형전시공간은 어떤가. 욕심을 부리자면 폐기 위기에 처한 장서를 산속에 불러들여 모시고 있는 통도사 종정 성파 스님과 역할을 나누면 좋겠다. 70만 권 책을 살려낸 큰스님은 영축산 전체가 도서관 되기를 꿈꾸신다는데 인천부두를 도서관으로 못 덮을 까닭이 없다. 인천역에서 출발하는 독서열차나 기차로 이동하는 갤러리를 운영할 수도 있고 부두에서 바로 탈 수 있는 바다 위 독서유람선도 띄워 보자. 인천시 반값 택배가 지하철로 고객과 이어지듯, 연구자들이 원하면 열차택배로 책을 보내주자. 싫든 좋든 근대의 물결은 인천을 거쳐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인천 하면 성냥이듯 부싯돌을 켜는 상상 점화로를 다시 인천앞 바다에서부터 만들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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