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가을 행락철 교통사고 안전수칙

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도 지나가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가을이다. 야외활동을 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나들이 인파가 늘어나는 10월부터 11월을 행락철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시기에는 교통사고도 함께 증가하므로 안전운전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21~2023년) 가을 행락철 교통사고는 하루 평균 587건, 사망자 수는 9.1명이었다. 10월과 11월을 제외한 그 외 기간(1~9월, 12월)에는 하루 평균 538건의 사고가 발생하고 7.2명이 사망했다. 행락철에는 교통사고가 9% 이상 많이 발생했으며 사망자는 무려 20% 이상 더 많이 발생한 것이다. 더욱이 경찰청 잠정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3분기 기준 전년 동기 대비 교통사고 사망자가 2015년 이후 9년 만에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행락철을 맞아 즐겁고 안전한 나들이를 위해 꼭 지켜야 할 안전운전수칙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충분한 휴식으로 졸음운전을 예방해야 한다. 목적지까지 빨리 가고자 하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장시간 무리한 운전으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 행락철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전날 충분히 수면을 취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고 주행 중에는 자주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쉼터에 들러 2시간마다 휴식을 취해야 한다. 둘째, 전방주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차량 운행 중 집중력이 유지된다면 교통사고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 특히 경력 운전자들은 운전 중 휴대폰을 보거나 통화를 하는 등 딴짓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심각한 안전불감증이다. 운전할 때는 자만심을 버리고 항상 주의를 집중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이다. 안전띠를 미착용할 경우 사고 시 차량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차량 내부 또는 동승자와 부딪혀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최대 9배나 높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뒷좌석 안전띠 미착용 시 중상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꼭 착용하도록 보호자가 지도해야 한다. 여행길에 나서는 모든 사람은 빠른 도착도 좋지만 안전한 도착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며 심신을 정화하는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천자춘추] 촘촘한 생명의 그물망

세계경제포럼이 작성한 2024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10년 이내 최대 사업 리스크로 기상 이변, 급격한 지구 시스템 변화, 생물다양성 손실, 천연자원 부족 등 자연환경 위험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이상이 자연과 자연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의존하고 있다고 분석했으며 만약 생물다양성 손실로 생태계가 붕괴되면 복합적인 사회경제적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계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할 만큼 생물다양성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도 2022년 말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채택해 보호지역 30% 지정 목표를 설정했다. 이에 따라 정부도 2023년 국가 생물다양성 전략을 수립했다. 아쉽게도 아직 인천시는 조례 제정이나 생물다양성 전략 수립 계획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행히 부평에서 먼저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걸음을 시작했다. 얼마 전 정예지 부평구의원이 ‘멸종위기 맹꽁이 등 야생생물 보호 및 생물다양성 증진 조례안’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생물다양성의 중요성과 위기 등 국제, 국내 흐름을 살펴보고 부평구 자연환경 현황 및 생물다양성 증진을 위한 과제 제안이 있었다. 부평에서 양서류 모니터링, 하천 보호활동을 하는 시민들도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개진했다. 부평은 원적산, 만월산으로 이어지는 산림이 있고 부평나비공원, 부평공원 등 공원이 위치해 있다.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논습지가 남아 있으며 도심 속 하천이 흐른다. 이 생태 공간에 맹꽁이, 금개구리, 두꺼비, 도롱뇽 등 양서류와 반딧불이 등 곤충, 새들이 기대어 살아간다. 더욱이 굴포천 일부 구간이 복원 중이고 부평미군기지도 공원 조성을 앞두고 있다. 더 많은 생태공간이 조성되고 생물다양성을 증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생물다양성 증진 정책 패러다임이 정부 주도에서 정부와 지역, 기업, 민간으로 전환된 만큼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며 공감대를 형성할 때 활동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촘촘히 짜인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어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물망에 구멍이 생기면 저항력이 약해지고 균형이 무너진다. 인류도 위태로워진다. 생명의 그물망을 촘촘히 유지할 수 있도록 지역에서의 실천이 필요하다. 부평구의 생물다양성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인천의 생명 그물망이 더욱 촘촘해지길 바란다.

[천자춘추] 초고령사회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인 고령자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구분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2000년(7.2%)과 2018년(14.3%) 각각 고령화사회,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초고령사회 진입 시점은 2025년 전반기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매우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는지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초고령사회에 대비해 챙겨 봐야 할 부분은 다음과 같다. 어르신들이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젊은층에 비해 신체·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르신들을 사회 경제적 활동으로부터 배제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노인을 바라보는 태도는 정반대이지만 결과는 모두 어르신들의 사회 활동을 막는 방향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이미 우리 사회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어르신들을 보호하거나 배제한다면 사회의 활력은 더욱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다.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어르신들을 보조하는 시스템에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고령층 운전의 경우도 위험만을 강조해 운전을 제한하는 것보다는 고령층 운전자를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에 투자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의료 분야도 고령층에 대한 의료비 비중이 높지만 고령층의 의료 접근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질환에 의한 신체·인지능력 저하를 늦출 수 있다면 비용에 비해 더 큰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급증하는 홀몸노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전체 65세 이상 인구 중 독거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 2022년 이미 20%를 넘어섰다. 의료기관 이용을 포함해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좁은 지역에 집중돼 있어 평소에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지만 이동에 제한이 생길 경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홀몸어르신의 경우 신체 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며 이 경우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홀몸어르신들의 특성을 파악해 이들을 보조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절실하다. 의료 분야에 한정해 생각한다면 의료진이 직접 방문할 수 있는 재택 의료 분야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급선무라 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에 속할 수밖에 없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을 위한 대책이 결국은 우리의 일이 된다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고령화 대책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와 함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이상 기후에 풀죽은 축구장 잔디

잔디는 생물이다. 잔디는 일조량과 통풍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그라운드 바닥 배수 관리도 매우 중요하다. 기온과 기후에 따라 잔디의 컨디션이 달라진다. 사람도 더우면 얼음물을 마시며 체온을 낮추고 추우면 점퍼를 입으며 체온을 유지한다. 하지만 생물인 잔디의 경우 적재적소에 어떤 좋은 비료와 영양제를 투입해도 연일 폭염과 열대야, 스콜 등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 변화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항상 역부족이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천연잔디 대안으로 하이브리드 잔디로 운영하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 몇 년 전 K리그에서 구단별 경기력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하며 구장 잔디 관리 문제가 대두돼 당시 큰 투자를 통해 파격적인 하이브리드 잔디를 국내 프로 무대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인조잔디 파일과 천연잔디를 조합, 외부 충격에 의한 잔디 파임의 방지 효과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디보트 문제에 대한 빠른 원상회복의 어려움과 천연잔디 구장 대비 3배의 관리비용 부담, 복합구장으로 활용하는 사용 목적의 한계에 봉착하다 보니 축구팬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이상 기온에 따른 대책은 전무한 상태로 불만의 목소리만 커져 가는 상황에서 최상의 잔디를 만들어 가기 위한 개선과 대안의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변화의 환경에 있어 필자가 근무하는 수원월드컵경기장은 최초 조성 당시 페레니얼라이그라스(20%)와 켄터키블루그라스 종자(80%)를 혼합 파종해 관리 운영해 왔으나 비에 취약하고 고온다습한 혹서기 기후에 맞지 않아 잔디 종별 특성화를 고려, 현재는 켄터키블루그라스 단일종으로 관리해온 결과 그간 여러 차례 그린스타디움상을 수상하며 컨디션을 유지해 왔지만 폭염과 폭우로 인한 기온 및 기후 변화 탓에 기상관리 병해 문제, 답압과 부식물 축적으로 환원층이 생성돼 원활한 배수와 환원층 제거를 위해 그라운드 전면 교체를 결정, 1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게 됐다. 또 재단은 다층 지반구조 공법으로 배수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왕사층 비율 증대와 점토 성분이 적은 그린사 모래 포설, 팝업식 헤드 11개소로 확대하는 관수시스템 개선까지 지난 9월부터 공사를 진행 중이다. 경기도, 수원시의 예산 지원 없이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있는 경기수원월드컵재단은 매년 약 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천연잔디구장을 관리하고 있다. 재단은 관리인력 한계와 관리예산 증액의 적정성 여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환경에 맞춰 과감히 K리그 잔디 체질 개선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바꿔 나가고 있다. 관리 방식의 고도화를 위해서는 전국 10개 월드컵경기장 잔디 관리에 대한 각자의 매뉴얼만 가지고 갑론을박할 일은 아니다. 구장별 현장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잔디 관리자와 잔디 전문기관, 그리고 관리 주체와 구장을 사용하고 있는 구단까지 함께 소통하며 이상 기후에 대비한 체계적이고 진화된 최상의 잔디 관리 솔루션을 공동 연구해 앞으로의 상생 방안 마련을 위한 넓은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할 때다. 사람도 성장 과정과 환경이 중요하고 생물인 잔디도 생육 환경과 여건이 좋아야 하듯 결과만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과감한 하이브리드 잔디 도입 시기 때처럼 변화와 혁신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잔디를 연구하는 현장의 노력이 있기에 질타와 쓴소리의 불통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상생 소통으로 지속적인 개선 솔루션을 발굴한다면 한 단계씩 성장통을 거쳐 K리그 잔디는 더욱 강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천자춘추] ‘존엄하게 나이들기’ 돕는 사람들

뜻밖의 선물처럼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10월1일 국군의 날은 유엔 회원국이 1991년 제정한 ‘노인의 날’이기도 하다. 올해 서른네 번째로 열리는 노인의 날 행사는 ‘존엄하게 나이 들기: 노인 돌봄과 지원 체계 강화의 중요성’을 주제로 선정해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존엄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신체·정신적 건강 유지에 필요한 의료서비스와 돌봄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더불어 노인이 사회 안에서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하며 자기결정권이 존중되고 사생활 역시 보장돼야 한다. 노인을 둘러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환경과 제도, 성숙한 인식이 뒷받침돼야 존엄한 나이듦이 가능하다.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적절한 제도가 마련돼야 하고 아이와 양육자가 모두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이처럼 존엄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 외에도 돌봄을 이용하는 사람과 돌봄 수행자 사이에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관계 형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돌봄 이용자와 수행자 사이의 관계는 개인적 상호작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 대한 처우와 인식, 사회시스템이 관계의 질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 12시간 단위로 돌아가는 주야간 근무, 허드렛일로 치부되는 돌봄행위는 돌봄 제공자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한다. 비공식적인 ‘독박 돌봄’은 가족의 관계와 재정을 모두 무너뜨리기도 한다. 힘들고 지친 돌봄 수행자는 노인의 존엄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밥을 국에 말아 마구 퍼 먹이는 행위나 휠체어에 11시간씩 묶어 두는 행태가 결코 정당화될 수 없지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존엄하게 나이 드는 것을 돕는 사람들의 존엄성은 보장받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존엄하게 나이 드는 것은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듯 한 사람이 존엄하게 나이 들기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님과 내가 존엄하게 나이 들어갈 이 마을은 수많은 돌봄의 손길로 이뤄져 있다. 이제는 이들의 존엄을 생각할 때다.

[천자춘추] 감동의 사연

요즘 연천은 옛날 연천이 아니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전철 1호선이 연천까지 연결돼 이제는 ‘인천에서 연천까지’가 새로운 구호가 됐다. 인천이 태평양과 중국으로 이어지는 제1의 항구도시라면 연천은 선사시대 구석기의 유적지와 동이리 주상절리가 아름다운 고도(古都)다. 전철이 이어지면서 연천에는 에스컬레이터를 갖춘 아주 편리한 현대식 역사가 문을 열어 아마 북에 가장 가까운 전철역사가 마련됐다. 훗날 남북 통일의 새 역사가 이뤄지면 연천역은 휴전선의 분단을 넘어 북으로 향하는 첫 관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연천을 가장 빛나게 만들고 더 따듯한 마을로 발전시킨 것은 연천의 인구 대비 1.1%나 되는 대한적십자사 봉사원들의 헌신과 봉사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연천은 관내 어느 지역에서든 재난이 발생하면 긴급구호를 위해 적십자사의 노란 단복을 입고 구호품을 들고 현장에 제일 먼저 나타난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바로 장옥화님이다. 장옥화님은 1996년 연천다정봉사회에 입회한 이래 오늘날까지 27년간 쉬지 않고 무려 1만573시간을 봉사해 올해에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명예의 전당에 1만시간 봉사자로 등재됐다. 장옥화님은 지금은 대한적십자사 봉사회 연천지구협의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아픈 허리를 마다하지 않고 봉사의 현장에 어김없이 제일 먼저 달려간다. 장 회장이 이렇게 봉사에 나서게 된 동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1996년 연천지역에 큰물이 범람하면서 수많은 이재민이 군청에 마련된 대피소로 피신했는데 그곳에서 적십자사 봉사원들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그 감동으로 장옥화님은 그저 대피소 안에 무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집이 물에 잠겨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 살짜리 아기를 들쳐업고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구호 활동에 나서게 됐다. 그 자리에서 봉사회에 입회하고는 ‘아이 업고 봉사하러 다니는 엄마’라는 사람으로 기억될 만큼 억척스럽게 나서 구호 현장을 뛰어다녔다. 그것이 장옥화님이 평생을 봉사원으로 살게 했고 그때 등에 업혀 자라던 아이는 이제 어엿한 청년이 돼 가족들과 함께 모두 봉사의 길에 나서게 됐다. 장옥화 회장은 지하철과는 달리 사람의 아름다운 봉사로 사랑과 헌신의 대로를 연천 한가운데 만들었고 이 길이 연천을 살고 싶은 도시로 이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천자춘추] 보조자가 아닌 책임자로서 남성의 돌봄 역할을 위한 만남의 장

2023년 전국 합계출산율은 0.721명으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며, 경기도의 합계출산율은 전국보다 약간 높은 0.766명이다. 저출생현상 대응으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으나 그 효과는 미비한 실정이며, 최근에는 자녀를 낳고 키우는 환경 조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환경 조성에서 강조되고 있는 부분이 여성의 모성권뿐 아니라 남성의 부성권에 대한 강조이다. 자녀발달에 있어 아버지 역할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남성의 돌봄 역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초기 남성의 아버지 역할 수행에 있어서 가부장적인 아버지 역할에서 탈피해 친구 같은 아버지, 함께 놀아주는 아버지의 역할만을 강조했으나, 최근에는 실질적으로 양육하는 아버지로 변화하고 있다. 함께 돌보는 평등한 돌봄 문화의 확산으로 주양육자는 여전히 어머니인 상황에서 함께 놀아주는 보조자 역할만을 수행하거나 단순히 놀이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자녀의 일상생활을 돌볼 수 있는 돌봄 책임자로서 남성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남성 돌봄자 역랑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이 저출생 대응 정책의 일환이자 가족 정책의 일환으로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경기도는 양육하는 아버지들의 양육 역량 강화를 위해 2020년부터 ‘경기도 아빠하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이가 아빠에게 하이!, 아빠끼리 하이!를 의미하는 ‘경기도 아빠하이!’ 사업은 3∼10세 아이를 양육하는 남성 양육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경기도 31개 시군의 가족센터 및 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도 아버지역할 지원, 아버지-자녀가 함께하는 돌봄프로그램, 남성대상 교육 등을 기본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남성의 가족 역할 수행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2023년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의 경기도 남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남성대상 가족프로그램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2.5%였고,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남성 중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남성은 29.1%에 그쳤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가족프로그램에 대한 필요성은 높게 인지하고 있으나, 실제 알고 있거나 참여한 경험은 상대적으로 낮은 경향을 보였다. 이는 다양한 지원이 존재하나 이에 대한 남성의 정보 접근성 및 프로그램 참여 접근성이 높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 함께 돌보는 돌봄 환경 조성을 위해 남성의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돌봄 역할 수행이 중요하며 관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돌봄을 하고 있는 남성들과의 교류를 통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 독일 베를린의 경우 남성의 가족 역할 지원을 위해 파더센터(Väterzentrum e.V.)가 운영되고 있으며, 육아휴직중인 남성을 위해서 파파카페(Papa café)를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남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어려움이나 팁을 공유하고 육아휴직 후 복직, 일과 가족생활의 균형에 대한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 마련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천자춘추] 치유의 시작은 인정

‘달과 놀던 아이’를 쓴 뤼시엥 뒤발은 가톨릭 사제이자 유명한 샹송 가수였다. 그는 자신의 알코올 중독 경험과 힘겨운 회복 과정을 책에 담았다. 자제력을 잃고 절망 속에 방황하던 그에게 치유는 중독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나 뤼시엥 뒤발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저는 알코올을 이겨낼 힘이 없습니다. 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 역시 여러 형태로 중독 문제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또 얼마든지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 잘 모를 뿐이다. 매번 조절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또다시 무언가를 갈망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사실 중독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특정 물질(알코올, 약물 등)이나 행동(도박, 성, 인터넷)뿐 아니라 권력, 명예, 자리같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이거나 투자, 소유(소비), 일같이 자신에게 이득을 된다고 믿는 것이라면 더 교묘하게 우리를 지배하는 중독이 될 수도 있다. 중독의 특징은 그 행위에 사용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가족과 보내는 시간, 친구와 교제하는 시간, 자신을 성찰하고 편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찰나지만 자신에게 해방감, 성취감, 절정의 극치감을 선사한 그 경험을 어떤 형태로든 재경험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작용과 그 무의식적인 작용에 뇌가 지배를 받아 몸이 기계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를 중독으로 인정하지 않는 중독자들은 자신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모르게 특정 행동(술, 약물, 게임, 도박, 쇼핑, 스마트 기기 등)에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잠깐의 틈새 시간, 그리고 더 심각하게는 밤에 잠을 자야 할 시간을 줄여 중독행위에 몰입한다. 그러다 보니 낮에 더 피곤하고 더 쉽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남들에게는 늘 바쁘고 여유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이 자신을 쉴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행위가 자신에게 위로를 줬지만 대개는 후회와 부끄러움을 유발하고 종래에는 고통스러운 삶으로 귀결된다. 뒤발은 중독 행동을 멈추려면 행복해져야 하고, 또 행복해지려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중독이 시작된 이유는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독에 빠진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초기에 느꼈던 극치감과는 다르게 중독 행동은 시간이 갈수록 후회와 죄책감을 가져다준다. 그런데 죄책감에 빠져 자기 처벌 심리가 작동하면 중독 행동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심각한 중독 행동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수용하는 것이 중독과 거리를 둘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일 수 있다. 홀로인 상황,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중독은 다시 외로움과 불행감 등 정서적 불편감을 불쏘시개 삼아 활성화한다. 중독에서의 치유는 나만의 세계를 버리고,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사람들과 세상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이다. 황순찬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전 서울시자살예방센터장

[천자춘추] 청소년을 위한 경기도 지역사 교육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역사 교육은 중앙사 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해 국가주의‧민족주의 정책을 강화했다.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에 대한 역사 교육은 배제‧축소됐다. 국가 위주의 교육과정은 학교 현장에 오로지 ‘국사’ 교과서만 존재하게 만들었다. 학생들이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 현상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함이다. 과거의 사실을 많이 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물의 역할‧원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 교육은 교과서뿐만이 아닌 자신의 존재와 역할, 다른 사람‧사물과의 공존을 깨닫게 할 수 있는 학습활동이 요구되며 학생들이 직접 생활하고 있는 장소, 즉 지역과 연계될 때 실감 나는 역사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2019년 경기연구원의 조사에 의하면 경기도는 20년 이상 거주한 연령대 중에서 20대의 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높았는데 20대의 25.5%가 20~30년 거주, 29.5%가 10~20년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첫 번째는 경기도 인구가 급증했던 1980~90년대 경기도에 이주해 살기 시작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현재까지 경기도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이로 인해 10~20대 등 젊은 세대의 지역 의식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거주지 소속감이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경기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지역사 교육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제6, 7차 교육과정을 통해 공교육으로서의 지역교육이 전에 비해 강화됐다. 초등교육과정에는 시‧도교육청에서 제작한 사회과 지역화 교재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016년부터는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자유학기제는 지역사회와 연계해 진로 탐색 활동, 주제 선택 활동, 동아리 활동, 예술‧체육 활동 등 다양한 체험 중심의 활동을 운영하도록 했다. 교육과정의 지역화가 점점 더 확대되는 양상이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경기학센터)은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역사를 학습교재로 제작해 학교에 배포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역사여행’이라는 큰 제목 아래 인물편, 문화유산편, 사건편 등 전 3권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교육 현장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교재로서의 형식을 갖췄다. 권당 16차시로 편성해 학교 수업시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 토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경기도역사여행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14만부가 도내 중학교에 배포돼 자유학기제 교재 또는 역사교과 부교재로 활용됐다. 앞으로 이 교재가 확대 보급돼 도내 청소년들이 지역의 역사와 가치를 습득하고 이해해 경기도에 대한 소속감과 지역민으로서의 의식을 높여 가길 바란다.

[천자춘추] 목재 이용과 탄소중립

기후위기 속에서 탄소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플라스틱 빨대 같은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나무를 베어 쓰는 것이 있다. 바로 목재를 이용하는 것이다. 나무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뱉으며 성장한다. 또 그 과정에서 몸안에 탄소를 저장하며 이는 나무가 베어져 수확되고 난 뒤에도 대기 중으로 방출되지 않고 그대로 저장돼 있다. 나무는 이렇게 산에 서 있을 때는 물론이고 수확돼 우리가 가구나 소품 등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도 탄소를 저장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에서는 목재 속 탄소 저장량을 계량화해 국산 목재를 사용하는 것을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의 한 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목조주택 1동(목재 36㎥ 사용)에는 총 9t의 탄소가 저장돼 있으며 이는 소나무숲 400㎡가 1년6개월간 흡수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같다. 또 목재는 철근, 콘크리트 등 다른 건축 소재에 비해 생산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가 적으며 단위무게 대비 강도가 철근과 콘크리트보다 최대 400배까지 강해 장점이 많은 소재다. 전 세계에서는 목조건축 등 자국산 목재 이용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는 파리 올림픽 선수촌과 수영장 등의 경기장을 목조건축물로 조성하고 홍보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산림청 소속 기관 및 공공기관을 목조건축물로 조성하는 등 목재 사용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광주시 등을 필두로 국산 목재 사용 활성화와 탄소중립을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광주시는 2026년까지 국산 목재 수요를 창출하고 목조건축 기술력을 제고하고자 목재건축 실연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조성 후에는 목재 이용으로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교육 장소로 운영할 예정이다. 또 어린이 보육시설을 목재로 개선하는 어린이 이용시설 목조화 사업 등 다양한 목재 이용 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국내 건축물은 대부분 철근 구조로 목조건축물은 전체 건축허가 건수의 5%, 전체 면적의 5% 정도로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 경기도 공공건축물 심의 대상 중 목조건축물은 없는 실정이다. 경기도의 목조건축 활성화를 위해 목조건축 의무화 및 지원근거 등 정책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공 부문 건축물 심의 제도를 개선하는 등 중·장기적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63%가 산림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산림 비중이 네 번째로 큰 산림 국가다. 숲속 나무의 부피 또한 165㎥로 OECD 국가 평균인 131㎥보다 훨씬 크다. 하지만 국산 목재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기후위기 극복과 탄소중립에는 국산 목재 사용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며 그 시작은 국민 인식 개선에 있다. 탄소중립을 위해 왜 건강하고 가치 있는 숲이 중요한지, 우리나라의 나무를 왜 베어 써야 하는지, 그리고 이를 위한 효율적 산림 경영이 왜 필요한지 관심을 갖고 고민해야 할 때다.

[천자춘추] 초심

올해는 우리나라 공인중개사제도가 생긴 지 4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의 ‘택지건물취인업법’을 모태로 1984년 제정된 ‘부동산중개업법’은 지금의 공인중개사법과 비교해도 큰 틀에서는 그 내용이 다르지 않다. 당시 부동산중개업법 제1조에는 ‘부동산중개업을 건전하게 지도·육성하고 부동산중개업무를 적절히 규율함으로써 부동산중개업자의 공신력을 높이고 공정한 부동산거래질서를 확립해 국민의 재산권 보호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며 제도 도입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를 곱씹어 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들썩이던 부동산 투기 현상과 혼탁한 부동산시장 질서를 전문가인 공인중개사제도 도입으로 해결코자 했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법에서는 일본처럼 협회 설립을 의무화했으며(법 제30조) 모든 회원은 협회 회원이 되도록 하고 협회의 정관과 규정을 준수토록 했다(법 제16조, 제31조). 대(對)국민 공신력 제고를 위해 자격시험도 2년에 한 번씩 국가가 정한 수 이내를 선발하기 위한 상대평가로 치러졌다. 그런데 IMF 직후인 1998년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불필요한 규제에 해당한다며 대폭 완화했다. 협회 가입은 비의무화로 바꾸면서 지도단속 권한을 폐지했고 시험은 60점만 넘으면 합격할 수 있는 절대평가방식으로 바꿨다. IMF 사태로 힘들어진 국민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줘야 한다는, 실업통계수치를 조금이라도 낮춰야 한다는 정무적 판단에 기인한 변칙적 제도 변경이었다. 그로부터 26년이라는 시간이 다시 흘러 현재에 이르렀다. 행정관청과 경찰이 손 놓고 있는 사이 부동산컨설팅이라는 이름의 무등록업자와 갭투자라는 이름도 이상한 재테크 수단이 판을 치고 부동산 전세사기로 전국에서 선량한 서민들이 연일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배출된 공인중개사 자격자는 무려 53만6천명에 이르고 연간 휴폐업 중개사무소는 2만여개에 달하고 있다. 참다 못한 중개업계에서는 지난해 협회를 통해서라도 자신들을 감시·점검과 단속해 달라며 국회 청원을 냈고 5만명 요건도 충족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공인중개사제도가 도입됐던 40년 전 당시 초심을 이제는 되새겨야 할 때다.

[천자춘추] 다중지능이론과 교육개혁

IQ(지능지수) 이론은 사람의 지능은 필기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문제 해결 능력이며 저마다 타고나는 고정된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는 개인의 노력이나 훌륭한 환경 속에서도 타고난 지능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관점이다. 지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범접할 수 없는 고유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관점은 지능이 실제 삶 속에서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 능력을 평가해 주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 졸업 후 사회에서의 성공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지능검사가 평가하는 지적 능력의 범위는 매우 협소하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는지 측정하기에도 미흡하다. 특히 창의성과 예술성은 지능검사로 점수화하기 힘들다. 인지과학의 최신 연구들은 사람이 여러 종류의 지능을 갖고 있으며 IQ만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능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은 인간에게는 여러 갈래의 능력과 지능이 있고 환경과 훈련으로 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적 능력을 여덟 가지 형태로 구분한 하버드대 심리학과 하워드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이 대표적이다. 언어를 습득하고 구사하는 능력인 언어지능이 있고 숫자와 논리를 다루면서 기호 간 논리적 관계를 개념화하는 논리수학지능이 있다. 음악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창작·연주하는 음악지능이 있고 공간을 구성하는 공간지능이 있다. 타인을 이해하고 상호작용하는 인간친화지능이 있으며 자기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자기성찰지능도 있다. 세상의 모든 사물을 구분하고 자연을 인식하는 자연지능이 있고 신체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신체운동지능이 있다. 여덟 가지 영역의 지능은 생물학적으로는 동등하다. 또 각각의 지능은 독립적으로 뇌의 특정 부분과 관련돼 있으면서도 상호작용하며 복잡한 형태로 강화된다. 모든 사람이 여덟 가지 지능을 갖고 있지만 각 지능의 높낮이 분포는 개인마다 다르다. 각 지능은 그것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따로 존재하지만 서로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전히 우리 교육은 IQ 이론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수능이나 내신 등의 입시제도는 IQ에 기반한 문제로 시험을 치른다. 하지만 언어지능과 논리수학지능에만 의존해 획일적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은 한계가 뚜렷하다. 축구 선수 손흥민의 활약상과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 실력을 IQ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영어·수학 성적이 우수한 정치인들보다 인간친화지능이 탁월한 인재들이 정치권에 더 많이 들어왔다면 좋은 세상이 오지 않았을까.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 적용하기 위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다중지능이론을 통한 교육적 토대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아이들의 재능과 진로를 적절하게 찾아줄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낡은 잣대와 결별해야만 교육개혁이 가능하다.

[천자춘추] 농촌체험형 쉼터

농림축산식품부는 12월부터 농지법을 개정해 농지에 임시 숙소로 활용할 수 있는 농촌체류형 쉼터제도를 도입한다. 농촌체류형 쉼터는 도시과밀화 등 사회여건 변화 이후 높아지는 귀농·귀촌 수요에 부응하고 농촌에서 농업과 전원생활을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임시 숙소 형태의 거주시설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헌법 제121조 제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했다. 그래서 완화된 조치로 농지개혁법 제9조 제2항에 특별히 농지를 취득하려면 해당 지역에 농사를 지은 것을 전제로 마을 농지위원회가 확인해주면 농지매매증명이 발급된 적이 있다. 그 후 농지거래의 숨통을 트기 위해 농지법 제8조에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를 실시했다. 이는 영농사실을 확인 후 발급이 아니고 앞으로 영농을 하겠다는 계획서를 보고 발급했으며 1천m² 미만의 토지는 주말영농체험으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 줬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농지가 타 용도 전환이 가능한 농지 위주로 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게 된 것이다. 요즘도 보도되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심심찮게 국무위원 후보자가 농지 거래를 할 당시 현지에 거주했는지를 따져 묻는 것이 단골 메뉴다. 이러한 현상은 농지거래가 투자수단이 됐기 때문이다. 돈이 안 되는 곳에 투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종전에는 농지취즉자격증명 발급제도가 업무 처리 기간이 5일로 누구나 쉽게 발급받을 수 있었으나 현재는 매월 2회 개최하는 농지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가능하다. 더욱이 농지거래를 하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담보가치를 보고 감정을 받아 거래하던 상황이 바뀌어 현재는 은행을 통한 거래에 있어 DSR제도의 확대로 거래가 꽉 막혀 버린 상황이다. 그래서 농촌체험형 쉼터를 시행한다고 해서 별안간 거래가 활성화되고 소멸하는 농촌이 활성화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는 섣부르다고 할 수 있다. 12월부터 시행한다는 농촌체험형 쉼터는 최대 존속기한을 12년으로 계획하고 있다. 12년만을 기대하고 농지거래를 한다는 발상은 단순히 숫자만을 의식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현재 농지 거래의 동맥경화 상황은 무엇보다도 거래에 있어 적용되는 엄격한 농지취득자격증명제도와 DSR 강화에 있다. 자본주의는 내 것이 영속적인 것을 바라는 인간의 이기심이 출발점이다. 그것을 간과한 것이 사회주의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농촌체험형 쉼터는 4년에 한 번씩 사용 허가를 연장해야 하고 그 기한도 12년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다. 물론 지금도 그것이 재테크의 한 수단이 된다면 너도나도 묻지마 투자를 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천자춘추] 백남준의 ‘촛불TV’

백남준과 인간문화재는 만날 일이 없었다. 장르 자체가 다른데 비디오아트와 공예다. 하지만 내용으로 보면 하나다. 경기도박물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2024경기무형유산특별전 ‘극락 PARADISE’에 가면 이 사실을 목도할 수 있다. 칠흑(漆黑)같은 방에 오불탱화와 고행상, 나전칠기, 범종의 소리 속에 철가방 TV 케이스 안 촛불이 넘실대며 홀로 내 몸을 태워 온 세상을 밝히고 있다. 바로 1975년 제작된 백남준의 ‘촛불TV’다. 백남준은 불교라는 역사전통을 지렛대 삼아 TV 내장을 완전히 들어내고 촛불을 켰다. 알고 보면 이런 극단의 반문명 예술이나 전위예술도 없는데 콩대로 콩을 볶고 있는 격이다. 이미 백남준은 50년 전에 인공지능(人工知能·AI)과 같은 기계가 인간이 되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시대가 오늘날임을 증거하고 있다. 기계시대 지금은 또 다른 차원의 고해(苦海)다. 그야말로 구멍 난 배가 아닐 수 없는데, 물을 퍼내지 않으면 해저에 가라앉고 만다. 백남준은 기계시대 고해를 촛불이 된 자신을 태우면서 피안(彼岸)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형유산 장인들도 촛불이기는 마찬가지다. 단청으로, 생칠로, 나전으로, 쇳물 녹이며 평생을 하루같이 몸을 태워 역사 전통의 불꽃을 피워냈다. 세상에 자청해 하는 이런 극한직업도 없지만 한 생각을 돌라면 차안(此岸)인 여기가 바로 극락(極樂)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문화재라는 이름으로 지켜온 무형유산(無形遺産·Intangible heritage)은 지금 여기 예술의 불씨다. 현재 K-컬처는 무형유산이 없다면 존재할 수 없다. 불씨가 불꽃이 돼 활활 타오른 결과가 오늘 예술이다. 하지만 무형유산의 현실은 전승공예관에서 박제화된 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전통이 미래다’라고 노래 부르면서도 미술시장과 뮤지엄에서 괄호 밖에 내놓은 존재다. 며칠 전 막을 내린 2024 키아프리즈 무대는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다. 2조원대의 고양 K-컬처밸리나 4천억원대의 서울아레나도 무형유산과는 무관하다. 여기에 쏟아붓는 예산 10분의 1만 해도 100배의 효과를 내는 것이 무형유산인데 말이다. K-컬처의 뿌리와 본체인 무형유산은 경기도만 해도 기능 41종, 예능 30종 등 총 71종이 지정돼 있다. 그 무한가치를 국가 공공 민간이 시작 단계부터 정책적으로 실천해야 할 때가 무르익은 것이다. 보호를 명목으로 인간문화재라는 온실에 가둘 것이 아니라 노지에서 지금 현재 예술과 진검승부 해야 한다. 더 이상 전통 따로 현대 따로 노는 세상이 아니다. 진정한 K-컬처의 격이나 깊이 두께 확보도 무형유산의 생생활활 여부에 달려있다. 까마득히 오래된 미래인 백남준의 ‘촛불TV’가 이런 사실을 증거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왜 이런 기막힌 모순이 실존에서는 더욱더 공고화되는가. 한마디로 장인을 원형 모방만 일삼는 기능인으로 오인한 데 있다. 달이 아니라 손가락만 봐 온 것이다. 장인의 손을 통해 유형(有形)속에 내재해 있는 무형(無形)의 가치가 대대로 전수된다. 비물질적인,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는 장인의 극공(極工) 이후의 통령(通靈)을 통해서만 우리 눈앞에 드러난다. 이 점에서 현대예술의 거장(巨匠)과 다르지 않다. 정신과 본질을 기준으로 보면 형상의 파괴나 전복을 일삼는 전위예술마저 무형유산이라는 역사전통에 전적으로 빚을 지고 있다. 존재의 배후를 드러내는 모방 내지는 미메시스야말로 창조의 어머니다. 여기서 장인(匠人)과 거장(巨匠)은 하나로 통한다. 오늘도 전시장의 백남준 TV 속 촛불은 불(佛)이라는 역사 전통을 태우며 도도히 세상을 밝히고 있다. 온 세상을 돌고 돌아 비디오아트가 무형유산의 본자리에 앉아 있다. 이 지점에서는 기존 백남준 언어의 난해함도 저절로 풀린다. 극락이 바로 여기다.

[천자춘추] 노후 빌라촌 재정비 ‘뉴:빌리지’

정부는 지난달 말 ‘뉴:빌리지 사업 공모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고 이달 초 지자체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나섰다. 뉴:빌리지 사업은 올해 3월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처음 발표된 사업으로 현 정부의 공공분양주택 정책인 뉴:홈에 이어 노후 저층 주거지역 정비에 대한 정책 브랜드다. 이는 노후 단독주택, 빌라촌 등에서 소규모 정비, 개별 건축과 연계해 저층 거주지에 아파트 수준의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하는 사업으로 국비로 공용주차장,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과 방범시설, 주민운동시설, 도서관 등의 편의시설 설치를 지원한다. 연내 선도사업으로 노후 단독·빌라촌 30곳을 대상지로 선정해 최대 국비 18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2029년까지 비(非)아파트 5만가구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국 주택 중 아파트의 비중은 1990년 말 기준으로 22.7%에 불과했지만 작년 말 기준으로 64.6%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나라 주거생활은 아파트로 획일화돼 가고 있다. 저층 주거지의 단독주택, 빌라 등은 상대적으로 주거비용이 저렴해 서민과 청년들의 보금자리이자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도시 내 다양한 주거 형태 중 하나로 균형 있게 관리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 비해 불편한 편의시설, 주택 노후화 등으로 인해 주거 만족도가 낮고 신규 공급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뉴:빌리지 사업은 노후 저층 주거지를 보다 살기 좋은 거주 공간으로 재탄생시켜 신규 공급을 늘리는 정책으로 매우 환영할 만하다. 특히 재개발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도권 중소도시, 지방도시 등에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나 한편으로 정책 추진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사업 내용으로는 기반·편의시설 설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지원이 가능하나 실질적인 주택 정비와 관련된 수단은 자율주택정비사업 외 마땅한 수단이 보이지 않는다. 신규 공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해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정비수법의 도입이 필요하며 필지의 권리 관계 조정 및 부정형의 대지 형태를 정비할 수 있는 토지구획정리와 연계한 수법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주택 정비에 대한 전문적인 컨설팅 및 계획수립 지원, 철거비 지원 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소위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리며 아파트 중심으로 획일화돼 가는 주거생활에서 벗어나 다양한 주거문화가 공존할 수 있도록 새롭게 추진되는 뉴:빌리지 사업에 대한 기대와 응원을 보낸다.

[천자춘추] 미니멀 라이프 소감

집에 놀러 가도 되냐는 물음에 난 당황했다. 물론 오셔도 되지만 우리 집은 앉을 자리도 없어요. 앉을 자리 없는데 와도 된다니, 허무맹랑한 대답에 지인은 바로 그 모퉁이 카페에서 만나요, 했으나 마음이 명쾌하지 않은 건 사실이다. TV에서 잡동사니를 수집하는 사람의 일상을 본 적이 있다. 폐지, 페트병, 캔, 양은 냄비, 빈 병, 폐비닐 등 쓰레기라고 하는 물건들이 집 안 곳곳 발 디딜 틈 없이 쌓여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집의 사정은 어떤가.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던 책을 글 쓰기 시작할 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했고 26년 모은 책들이 방과 거실에 정리할 공간 없이 쌓여 있다. 책상 위 널브러진 책들은 물론이고 침대, 식탁, 화장실에도 몇 권씩 버티고 있는데 그때그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사들인 책들과 살 때마다 몇 권 더 집어 든 책들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꽤 있지만 절판된 책, 품절된 책을 얻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텍스트에서 정보를 얻어 구매한 책, 선호하는 작가의 책들, 그리고 각종 문예지 등등. 여전히 벽돌처럼 쌓이는 책들이 주인 행세하며 거주인들까지 몰아낼 형국이 됐다. 결국 사다 쌓은 책들이 방문할 손님을 차단한 것이다. 바리케이드를 친 것이다. 친구가 앉을 자리를 책들이 대신하고 가구가 대신하고 TV가 대신한 것이다. 결핍이 많은 존재여서 친구를 초대할 자리에 책을 사다 배치하고 친구 대신 책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스스로 깊은 위안을 삼았던 것이다. 방문한 타인들은 대개 집 안을 살피며 침묵으로, 혹은 간섭으로 그 생각을 읽도록 불편을 주지만 물건들은 무조건 복종이어서 가만히 엎드린 것들 거느리는 맛이 있다. 그게 소유욕이 발동하는 지점일 것이다. 괄시받고 소외당하고 배척당하는 이면에 작동하는 무의식이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나를 내세울 만한 무언가가 소유욕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쓰레기 수집하는 사람과 나를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허무와 공허를 메우려고, 친구의 부재와 나의 빈약함을 들키지 않으려고, 존재 증명을 위해 난 책을 선택했을 뿐이다. 책은 날 포장할 도구였다. 쓰이지 않는 물건은 이미 쓰레기다. 쌓인 서적을 쓰레기 더미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요즘은 카페가 집을 대신할 사랑방 역할을 한다. 초대하지 않으면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집은 적막이다. 활기가 없고 에너지가 제로다. 물건을 버리고 집을 비우며 찻상 앞에 친구를 초대할 일이다. 마주 앉아 사는 얘기, 서로의 관심사에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건강한 삶의 의미를 이어갈 일이다. 이젠 무소유를 실천하고 미니멀리즘을 실행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천자춘추] '율곡정신문화진흥원'에 거는 기대

율곡 이이(栗谷 李珥)는 1536년 덕수 이씨 원수 공과 평산 신씨 사임당 사이에 태어났다. 이미 8세 때 ‘화석정 시’, 10세 때 ‘경포대 부’를 지었고 29세까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해 이조·병조판서와 대사간을 지냈다. 그의 저술 자경문(自警文)과 성학집요(聖學輯要), 격몽요결(擊蒙要訣)에 그의 교육사상이 잘 드러나 있고 이기일원론과 민본사상으로 압축되는 정치철학과 정의로운 경제활동, 부국강병 등을 주장해 류성룡으로부터 “율곡은 참으로 성인이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율곡의 학문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에 근거해 합리적 판단을 구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근본으로 인격과 학문을 닦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율곡은 후학 양성에 주력한 이황과 달리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조선 사회를 개혁하는 데 힘썼다. 이황이 성리학의 기틀을 닦았다면 율곡은 그 토대 위에서 ‘경세(經世)’로 나아갔다. 특히 기호철학의 중심 인물인 우계 성혼과 율곡은 임진강변 율곡리와 늘노리를 번갈아 오가며 아홉 차례나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때 두 사람의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인심·도심(人心·道心) 논쟁을 통해 조선 성리학의 수준을 한 차원 끌어올렸는데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원리주의에 머물렀던 성리학을 세계적인 동양철학으로 발전시킨 전성기로 높이 평가한다. 기호철학은 휴암 백인걸을 비롯해 율곡, 우계, 구봉 송익필, 남계 박세채, 사계 김장생, 우암 송시열 등 수많은 학자를 배출했고 이들을 모시는 향교와 서원이 6개소에 이른다. 문묘에 배향된 동방 18현 중 파주와 관련된 분이 여섯 분이나 된다는 것은 파주가 동양철학의 본산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화는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장 이면에는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수기치인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K-컬처의 바탕에도 유교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안동에는 1995년 경북도가 설립한 ‘한국국학진흥원’이 있다. 논산에는 2022년 충남도가 설립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유교 철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파주에는 이런 연구·교육시설이 없다. 파주문화원에 율곡학 사업단이 설립돼 콘텐츠 개발과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다. 경기도와 파주시가 나서 전통문화 유산의 조사연구를 통해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정신적 좌표를 확립하고 유교문화의 전통과 가치를 인류 유산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율곡정신문화진흥원’을 설립해야 한다. 최근 자운서원 내 ‘율곡연수원’을 폐지하고 학교를 설립하겠다는 경기도교육청 결정이 갈등을 빚고 있다. 연수원 시설을 존치해 대한민국 정신문화의 본산이자 경기도 기호철학의 본향인 파주에 율곡정신문화진흥원을 설립하는 게 최적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천자춘추] 금투세 논쟁을 바라보며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이슈는 ‘금투세’라고 할 수 있다. 야당 내에서도 의견차가 있고 여야 간 입장 차이도 분명하다. 여야 모두 토론을 통한 합의를 말하고 있고 이는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일정 금액 이상 이익을 실현하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게 금투세의 취지다. 투자자들이 이해당사자가 될 텐데 이들은 계층적 관점에서 최소 중산층 이상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고 소위 ‘굴릴만한’ 여유 자산이 있어야 투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빠듯한 서민 노동자들이 금융상품에 투자할 여력이 있을까. 거의 없다는 게 정확할 것이다. 지나친 단순화임을 부정하지 않겠지만 본질은 분명하다. 금투세 전에 ‘노란봉투법’ 이슈가 있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 노동 현장의 책임 소재 등을 다루는 법안이다. 이 이슈가 금투세만큼 정치권에서 중요하게 다뤄졌던가. 여야가 서로 비난만 하다가 야당이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에서 이를 다시 처리하려면 200석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데 현재 국회 구조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노란봉투법은 폐기될 것이다. 금투세 논쟁은 중요하다. 여야가 치열하게 토론하고 잘 합의하기 바란다. 다만 중산층 이상 계층이 중심이 되는 이슈에는 이토록 치열한 데 반해 사회 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과 이해관계에 대한 논의를 등한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양극화, 저출산, 실업, 복지 등 현안들을 풀어갈 때 ‘노동의 시민권’ 문제를 회피하면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여야가 금투세 논쟁에서 보여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노란봉투법 논의 과정에서 보여줬다면 법안이 비토크라시(vetocracy·거부민주주의)로 귀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야 모두 필요할 때는 노동자와 서민을 부르짖지만 정작 현안에서는 무책임하고 무능하다. 돈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보다 노동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권리와 안전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한 이는 바뀌지 않는다.

[천자춘추] 공동체 위한 기후행동 서약

올여름 우리는 덥다는 말을 그리고 역대급 폭염, 열대야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이는 기후변화의 영향이다. 한편으로 인간의 생활 활동으로 인해 현재 기후변화의 동인이 됐음을 인식하고 어떤 기후변화 대응 활동에 참여해야 할지 준비할 시기이기도 하다.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변화의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더 해보자는 관심과 의지가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경우 경기도에 거주하면서 서울로 통근하는 많은 직장인 중 한 명으로 온실가스 감축 활동으로 대중교통 이용을 실천하고 있다. 때에 따라 승용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버스와 지하철, 중간중간 걷기도 하고, 환경보전 관련 업무 종사자로서 가능한 한 텀블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다 7월 ‘기후행동 기회소득’을 알게 됐고 기후행동 서약에 동참했다. 필자의 경우 약 9kgCO2eq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였다. 국가온실가스통계에 따르면 2021년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13.1tCO2eq로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필자의 경우 전체 배출량의 약 0.07% 감축에 기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1년 동안 지금보다 더 열심히 기후행동을 하면 1% 가까이 또는 그 이상 감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나를 위한 활동이면서 공동체를 위한 활동으로 상호 연결된 문제로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동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동체의 사전적 정의는 ‘특정한 사회적 공간에서 공동의 가치와 유사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임을 고려할 때 경기도라는 지리적 공통성과 기후변화 대응, 탄소 저감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측면에서 우리 공동체를 위한 기후행동 서약에 함께 참여했으면 한다. 물론 함께 오는 보상(reward)은 우리의 소소한 행복과 더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활동을 위한 것으로 즐겼으면 한다. 많은 사람이 올 한 해 동안 우리 공동체를 위해 기후행동 서약에 동참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활동을 함께했으면 한다.

[지지대] ‘긱 이코노미’ 시대

요즘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는 용어가 많이 쓰인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관련 있는 사람과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다. 긱 경제에 종사하는 사람은 ‘긱 워커(gig worker)’라 한다. ‘긱’은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에서 연주자를 그때그때 섭외해 단기공연 계약을 맺어 공연했던 것에서 유래됐다. 이런 ‘긱’ 개념은 미국 경제계에서 널리 사용된다. 주로 디지털 플랫폼 등을 통해 단기계약을 맺고 일회성 일을 맡는 등 초단기 노동을 제공한다. 정규직을 쓰는 대신 필요에 따라 단기 임시·계약직을 주로 고용하는 긱 이코노미는 우리나라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주 5일 40시간씩 회사에 있는 정규 근로자보다 일주일에 36시간 미만 일하는 단시간 근로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7월 주당 36시간보다 적게 일한 단시간 근로자는 680만8천명으로 1년 전보다 35만7천명 늘었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단시간 근로자 비율은 23.6%까지 뛰었다. 주 36시간 미만 일하는 ‘긱 워커’ 증가세는 30대 이하 청년층과 60대 이상 고령층에서 두드러졌다. 청년층 긱 워커의 증가는 취업까지 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면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나 용돈을 벌기 위해 단시간 근로라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 5월 기준 청년들이 직장을 잡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5개월이었다. 고령층의 근로 여건도 답답하다. 7월 기준 70세 이상 가운데 주 36시간 미만 근로자는 135만6천명인 반면, 36시간 이상은 71만8천명이었다. 정부가 확대한 노인 일자리 대부분이 하루 3~4시간 일하는 데 그친다. 긱 경제가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일자리의 질이 나빠져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논란이 있다. 긱 이코노미는 투잡, 쓰리잡 등 N잡러를 양산하기도 한다. 산업구조는 변하고 먹고살기는 여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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