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 전통시장 푸드트럭존⋯백종원 손길도 무색 [중고매물이 된 청년의 꿈 ②]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존 ‘청춘’ 걸었는데… 상인 반발에 ‘좌절’ “반짝 북적거리더니만, 하나둘 없어지던데…” 13일 수원 팔달구에 위치한 수원 남문시장. 이곳은 2017년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에 푸드트럭 존이 들어서며 많은 이의 관심을 받았던 곳이다. 그러나 그 명성은 사라진지 오래.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현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수원 남문시장과 지동시장을 잇는 지동교를 가득 채웠던 청년 푸드트럭의 불빛과 열기는 주변 상인들의 기억 속에만 자리하고 있다. 남문시장에서 생활잡화 판매 일을 하는 김희자씨(54)는 이들을 ‘반딧불이’에 비유했다. 김씨는 “오후만 되면 청년들이 와서 트럭 불을 켜고 장사를 했다. 저녁부터 밤까지 영업하는데 불을 환하게 켜두고 활기찬 모습이 반딧불이 같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시장에서 청년 사장들이 맛있는 음식도 팔고 그러니 입소문이 나서 전국 각지에서 젊은이들이 구경도 오고 좋았는데, 어느 순간 한두 명 사라지면서 지금처럼 휑해졌다”고 말했다.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지난 2017년 시장 중심부인 팔달문 옆 차 없는 거리와 지동교 광장 양방향 구간에 조성됐다. 이 푸드트럭 존이 주목 받았던 것은 전국 최초로 전통시장 인근에 푸드트럭 존이 조성, 기존 상권과 마찰을 빚거나 유동인구가 적어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 없던 다른 푸드트럭 존과는 달리 푸드트럭 사업자들이 활성화된 상권에서 영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전통시장에선 보기 힘든 수제버거, 피자 등 젊은 층의 입맛에 맞춘 음식들이 채워졌고, 수원시의 적극적인 홍보가 더해지며 이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시작했다. 특히 ‘백종원의 푸드트럭’ 등 인기 방송 프로그램들이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을 조명하면서 입소문을 탄 푸드트럭 존은 늦은 시간까지 인파로 북적였다. 그러나 현재,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넘치는 인파는 통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고 쓰레기 투기, 교통혼잡에 대한 민원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푸드트럭 존 인근에서 영업하던 상인들도 매일 밤 더러워지는 거리에 불평을 쏟아냈다. 시로부터 영업허가 구역을 제공 받았지만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곤욕을 겪던 남문 푸드트럭 존 사업자들은 눈총과 등쌀을 이기지 못하고 남문시장을 떠나야 했다.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에서 분식을 판매했던 고성길씨(가명·35)는 “푸드트럭 존이 처음 생겼을 때는 지자체와 방송사들이 관심을 많이 가졌고 재료 소진으로 영업을 조기에 마감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장 상인분들의 불만, 통행이나 교통 문제가 터져 나왔다”며 “결국 버텨낼 재간이 없어진 (나를 비롯한) 푸드트럭 사장들은 다른 영업장소를 찾아 떠나야 했다”고 말했다. ‘고철 신세’ 푸드트럭… 백종원 손길도 무색 ■ 지자체와 함께 꾼 청년 대박의 꿈 앞서 경기도와 수원시는 지난 2016년 11월 청년 창업을 돕고 전통시장 상권을 회복하기 위해 수원 남문시장에 푸드트럭 존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도와 시는 앞서 2014년 푸드트럭 사업 규제 완화에 청년들이 푸드트럭 창업에 나섰지만, 고속국도 졸음쉼터나 체육시설, 공원 등 활성화된 상권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영업하거나 기존 상권과의 마찰로 마땅한 영업장소를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인지, 이들을 위한 특화 푸드트럭 존을 형성했다. 수원시는 청년 푸드트럭 창업자들이 영업할 수 있는 푸드트럭 존 조성을 위해 다방면의 검토를 거쳐 지동시장, 영동시장 등 수원지역 9개 시장을 대표하는 곳이자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도 인접해 관광객이 자주 찾는 수원 남문시장에 푸드트럭 존을 마련했다. 혹여 기존 상권과의 마찰을 우려해 시는 푸드트럭 영업시간을 야간으로 한정하는 대신 푸드트럭의 전통시장 상권 진출에 수원남문시장상인회와 합의했다. 또 사업 운영에 선정된 영업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자 푸드 트레일러를 임대·지원했다. 이를 통해 경기도와 수원시는 푸드트럭의 안정적인 상권 확보와 관광 활성화로 전통시장 유동 인구 확대를 기대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문을 연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시작과 함께 ‘최초의 전통시장 내 푸드트럭 존’이라는 타이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시가 진행한 푸드트럭 사업자 공모에는 매년 많은 지원자가 몰렸으며, 유동 인구 증가에 따른 매출 증대로 시장 상인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이어졌다. ■ 기존 상권 민원에 무너져 내린 청년의 꿈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을 둘러싼 잡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높은 인기에 푸드트럭 존 일대는 혼잡해져 마비 현상이 빚어졌고, 장시간 기다림 끝에 받아 든 음식은 손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인기는 한순간 식어갔다. 또 인파가 다녀간 자리는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버려져 있어 악취가 진동하거나 벌레가 꼬이기도 했다. 이에 새벽부터 영업을 준비하는 기존 시장 상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하루를 시작하는 일이 반복됐고, 참다 못한 일부 상인들은 푸드트럭 존 운영에 대한 민원을 시에 제기하기도 했다. 수원시의 푸드트럭 존 사업에 대한 불만은 청년 창업자 사이에서도 끊이지 않았다. 앞서 푸드트럭의 전통 시장 진출을 두고 상인회가 수원시에 제시한 ‘영업시간 및 판매 음식 품목 제한’ 조건에 따라 푸드트럭 존 영업자들은 매일 4~5시간만 영업할 수 있었으며, 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품목에 대한 판매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실질적인 이익을 보지 못하는 사업자도 많았다. 2017년 1월부터 수원시 푸드 트레일러 사업에 참여, 남문시장에서 푸드트럭 영업에 나선 18대 푸드트럭의 월평균 매출은 672만원으로 비교적 높았지만, 전체 18곳 중 12곳(66.6%)의 월 매출은 평균 미달이었다. 월 매출이 140만원에 불과한 곳도 있었다. 푸드트럭 존 운영 8개월 만에 6명의 창업자가 운영을 포기하는 등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하는 청년 창업자가 속출한 가운데,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등장하면서 수원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 살아나지 않는 푸드트럭 존, 돌아오지 않는 청년들 결국 경기도와 수원시가 각각 1억3천500만원, 상인회가 2천700만원을 부담해 마련한 푸드 트레일러는 ‘고철’ 신세가 됐다. 2020년부터 푸드트럭 존 영업이 사실상 무기한 중단되면서 푸드트럭 사업을 이어가려는 지원자를 구할 수 없었던 수원시는 수년간 18대의 푸드 트레일러를 사용하지 못한 채 방치했고, 짐으로 전락해 버린 푸드 트레일러는 지난해 고철값도 받지 못하고 처분됐다. 이에 대해 수원시 관계자는 “남문시장 푸드트럭 존은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찾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코로나19가 등장해 푸드트럭 존 운영이 어려워졌고, 트레일러 역시 청년의 수요가 크게 줄어 오랜 시간 보관 끝에 지난해 처분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개고기 종식’ 했다더니... 모란시장 암암리 거래 [개식용종식법 100일 下]

‘개식용종식법’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앞서 개고기 판매 근절에 나섰던 성남시의 ‘모란시장’ 사례를 보면 결국 사회적 인식 전환이 이뤄져야 개식용이 종식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 3대 개시장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모란시장’에서 개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한 건 1960년대부터다. 시장이 형성되면서 들어서기 시작한 개고기 취급 업소는 2001년 54곳까지 늘어나며 시장 곳곳에서 ‘살아있는 개’를 진열하고, 도축·판매하며 성업했다.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개고기 소비가 주춤해져 점포가 절반으로 줄었지만, 2017년까지 20여곳 업체에서 거래된 식용개가 연간 8만마리에 달하며 전국 최대 규모의 개시장으로 성장했다. 이 같은 모란시장에 변화가 분 시점은 지난 2016년.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모란시장의 식육견 논쟁을 없애겠다’며 개 도축 시설을 폐쇄하는 등의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다. 당시 성남시는 ‘모란시장 환경정비 사업’을 추진, 시장에서 개를 보관하거나 전시하고 도살하는 행위를 중단하게 했다. 개고기 취급 업소의 상인들이 업종을 전환하는 대신, 시는 상인들이 전업에 필요한 자금을 저금리로 알선하고, 식당 종사자의 재취업을 돕거나 비가림막을 설치해주는 등 시장의 환경정비에 나섰다. 성남시는 “모란시장의 개 도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며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대한민국의 모범을 만들어가겠다”고 성과를 홍보했다. 그렇다면 모란시장은 현재 어떤 모습일까. 25일 기획취재팀이 모란시장을 확인한 결과, 여전히 20여곳의 업체가 ‘개고기’를 팔고 있었다. 가축거리 어디에도 ‘개고기’ 글자는 보이지 않지만, 흑염소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메뉴엔 ‘보신탕’이 있다. 건강원 등에서도 개고기를 내놓고 팔고 있었다. 김용북 모란시장 가축상인회장은 “성남시가 8년 전 개 도축시설을 가져가면서까지 개고기를 못 팔게 했지만, 일부 상인들이 단골 고객 등에게 개고기를 팔다가 점점 개취급 업체가 늘어났다”며 “여전히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업주들이 도축된 개고기를 들여와 보신탕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성남시는 모란시장상인회와 ‘모란시장 환경정비 업무협약’을 해 개 도축시설을 자진 철거하게 했지만, 개식용과 유통까지 전면 금지하진 못했다. 개식용을 금지할 법과 조례 등이 없다 보니 단속, 처벌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소음과 악취 때문에 민원이 쏟아지니, 눈에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인회와 소통하고 설득한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면서도 “개식용이 ‘비법적’ 영역에 있어 금지할 명분이 없기 때문에 지자체가 나서기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특별법이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선 개식용 금지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개고기를 찾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파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며 “동물보호법을 강화해 동물 학대 등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고, 동물 보호와 개식용 금지에 대한 교육·캠페인 등을 벌여 국민의 인식을 개선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특별법 처벌이 이뤄지는 3년 뒤에 개고기가 암암리에 거래되지 않도록 법망을 촘촘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동물 학대 vs 먹을 자유... 끊임없는 ‘개고기 갈등’ [개식용종식법 100일 中]

‘개식용종식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육견 관련 협회와 동물보호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한육견협회는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는 등 특별법의 전면 무효화에 나선 반면, 동물보호단체는 개식용을 금지해야 할 뿐 아니라 식용 개 52만 마리의 처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향후 진통이 예상된다. 대한육견협회는 지난달 21일 헌법재판소에 ‘개식용종식법’ 관련 위헌확인 헌법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특별법이 직업 선택의 자유와 재산권, 국민의 먹을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주영봉 대한육견협회장은 “육견 농장주들이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도 신고를 하고 이행계획서를 내라는 등의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다”며 “정부와 국회가 육견 농가에 대한 보상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특별법을 개정해 3년의 유예기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식용견과 반려견은 품종과 사육 과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동물보호를 같은 선상에서 논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대한육견협회는 농장을 전·폐업하기 위해선 정부가 개 1마리당 1년 소득을 40만원으로 잡고, 5년간의 손실 비용인 200만원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농장 면적으로 산정했을 경우 1㎡당 개 2마리를 사육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40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주 회장은 “농림축산식품부 직원들과 2주에 1번씩 회의를 하는데도 보상 기준이 나오지 않는다”며 “원하는대로 보상안이 나올 때까지 회원들에게 이행계획서를 내지 말라고 공지했다”고 말했다. 대한육견협회는 현재 회원 600여명을 대상으로 개식용종식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의 결과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받고 있다. 개농장주의 억울한 입장을 강조하고, 법의 효력 정지를 촉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아 다음 달 초 탄원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할 계획이다. 반면 동물보호단체는 식용 개의 열악한 사육환경 등으로 인한 동물학대, 개는 반려동물이라는 인식 등을 들어 개식용을 금지해야 한다고 맞선다. 정윤서 코리안독스 사무국장은 “개의 ‘생명’을 담보로 보상해주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며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개를 가축으로 규정하지 않아 개의 도살·가공 등에 관한 규정이 전혀 없다. 위생 문제도 크기 때문에 개식용은 금지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들은 식용 개 52만 마리의 보호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육견 농가의 폐업 시점을 분산시키는 등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52만 마리가 쏟아져 나오면 아무도 감당하지 못한다. 동물보호단체가 보호 관리할 수 있도록 시간차를 두고, 필요한 시설도 지원해야 한다”며 “조만간 개농장주가 포기하는 개들이 늘어 유기견이 많아질 가능성도 크다. 동물보호단체와 행정기관이 이에 대해서도 시급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특별법 통과 후… 보신탕집 손님 되레 늘었다 [개식용종식법 100일 上]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0일이 됐다.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선진국 위상에 맞는 생명권, 동물권 보호 등이 강조되면서 불거진 ‘개고기’ 논쟁도 특별법 통과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런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개농장과 보신탕 가게가 있는 경기도는 특별법 통과 이후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이에 기획취재팀은 특별법 통과 후 ‘개고기’를 둘러싼 각종 루머에 대한 팩트를 체크하고, 개식용종식법의 안착을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일명 개식용종식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1월9일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은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7년 2월부터 처벌이 이뤄진다. 지난 2022년 기준 전국에는 1천156곳의 개농장이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으며, 이중 35.7%에 달하는 413곳이 경기도에 위치해 있다. 또 보신탕 가게의 경우 전국 1천666곳 중 473곳(28.3%)이 도내에서 영업 중이다. 이 같은 개농장과 보신탕 가게 수는 모두 전국 광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특별법 통과 후 개고기를 둘러싼 다양한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대표적으로 ▲보신탕 가게에 오히려 손님이 더 많아졌다 ▲폐업을 준비 중이던 보신탕 가게도 보상 때문에 간판을 유지한다 ▲보상받기 위해 개농장은 더 커지고, 개 번식도 더 빨라진다 등이다. 이에 현장을 직접 찾아 루머의 진위를 확인해 봤다. 먼저 수원, 평택, 광명 등 도내 10개 시·군 35곳의 보신탕 가게 매출 변화를 확인한 결과, 절반 가량인 17곳이 특별법 통과 후 매출이 늘었다고 밝혔다. 평택의 한 보신탕 가게 주인 A씨는 “특별법이 생기고 나서 오히려 손님이 30%나 늘었다”며 “올해 복날엔 개고기를 평년보다 5배 이상 늘려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왕에 위치한 보신탕 가게 주인 B씨는 “앞으로 못 먹게 된다고 하니 원래 개고기를 먹지 않던 사람들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찾아온다”고 말했다. 또 현장에서는 사실상 개고기를 판매하고 있지 않지만 보상금 때문에 메뉴에 개고기를 유지하고 있는 염소탕 가게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원의 한 염소탕 가게 주인 C씨는 “원래 개고기를 판매했지만 갈수록 손님이 줄어 주메뉴를 염소탕으로 바꿨다”며 “폐업까지 고민 중이었는데 정부가 개고기집에 보상을 준다고 하니 혹시 몰라 개고기를 메뉴에서 빼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개농장의 상황은 어떨까. 김포, 남양주, 화성 등 도내 10개 시·군 31곳의 개농장을 확인해 본 결과, 9곳(29%)이 개를 더 데려와 번식을 빠르게 하는 등 수를 늘리고 있었다. 용인의 한 개농장 주인 D씨는 “마리당 보상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컷 30마리를 사와 개 숫자를 늘리는 중”이라며 “농장을 아들한테 물려주려 했는데 안 되니 최대한 번식시켜 보상금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경기도 국감 D-5… '잼버리', '서울~양평 고속도로' 쟁점 예상 [심층취재]

경기도에 대한 제21대 국회의 국정 감사가 5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 파행과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이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현재까지 가장 많은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도 현안이기 때문인데, 도가 잼버리 파행에 따른 전‧현 정부 책임론, 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 등 정쟁 무대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오는 17일 예정된 국감과 관련, 도에 지난 8월 새만금 잼버리 대회 파행으로 스카우트 대원 1만5천명이 도에 머물며 잔여 일정을 소화할 당시 자료를 중점적으로 요구했다. 세부적으로는 도가 ▲기숙사, 연수원 등 대원 숙소 지원에 가용한 시설 ▲프로그램 및 공무원 인력 동원 규모 ▲세부 비용 추계 및 정부 정산 내역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행안위 내부에서는 잼버리 파행 대응으로 지자체가 비용을 지출했지만, 정부가 이를 보상해주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돼 17일 행안위 국감은 이를 둘러싼 여야의 전·현직 정부 책임 공방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앞서 지난 4일 행안위 소속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잼버리 파행 당시 경기도에서만 3천500여명, 전국 9천520명의 공무원이 차출됐지만 정부가 이들의 초과근무수당을 보전해주지 않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국토위의 경우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과 관련해 도와 국토교통부 간 공문 수발신 내역 요구가 가장 많았다. 현재 김동연 지사는 국토부의 노선 변경 과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며 원안 추진을 요구하는 반면,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정당한 노선 변경이라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토위는 지난 10일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노선 변경 정당성 여부를 두고 여야 간 난타전을 벌인 만큼 23일 경기도 감사는 반대로 국토부 국감 연장전이 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지역 한 국회의원은 “행안위 국감은 5일, 국토위 국감은 10여일 정도 남은 만큼 세부 질의, 의제는 정리 중”이라면서도 “경기도와 연관된 잼버리 파행 여파와 서울~양평 고속도로 문제를 짚어나가는 방향을 준비 중”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북부자치도·기회소득·국제공항… 김동연號 정책 검증대 [심층취재]

민선 8기 경기도가 출범 2년 만에 김동연호(號) 정책, 사업 검증이 주가 되는 국정 감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북자도) 설치, 기회소득 등 도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지난해 국감보다 30% 많은 자료 요구가 들어온 데 더해 정부의 지역화폐 보조금 축소, 건전 재정 기조에 대한 도의 정책 차별화 관련 질의 등도 예고돼서다. 1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는 지난 7월부터 이날까지 행정안전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로부터 2천여건의 자료 제출 요구를 접수했다. 지난해 국감 당시 같은 같은 기간 1천560여건의 자료 제출 요구를 받은 점과 비교하면 28% 정도 증가한 수치다. 자료 요구, 질의 주제 역시 김동연 지사 핵심 공약 관련 내용이 주를 이뤘다. 행안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오영환 의원(의정부갑),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등이 도가 최근 행정안전부에 주민투표 실시를 건의한 북자도 설치 추진 사업, 장애인 수혜층 확대를 추진한 기회소득 등에 대해 자료를 요구, 의제를 선정 중인 상태다. 이어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경기도의 핵심 공약이자 최근 세부 추진 연구 용역에 착수한 경기국제공항 관련 수원·화성시 등 이해관계 지자체의 입장을 요구, 정책 질의를 예고한 상태다. 국토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민철 의원(의정부을)은 북자도 특별법 관련 도의 입장과 추진 계획과 더불어 최근 서울시가 단독 추진 중인 ‘기후교통카드’에 대한 도의 대응책을 질의할 예정이다. 또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김학용 의원(안성)은 도의 광역 교통 개선 대책과 세부 추진 현황을 짚어본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번 국감에서는 정부의 지역 화폐 국비 지원금 삭감 기조에 대한 도의 입장과 적용 가능한 대안 ▲기회소득과 민선 7기 기본소득 간 차별성 및 효과 ▲정부의 ‘건전 재정’ 기조와 상반된 도의 ‘적극 재정’ 기조의 취지와 향후 세수 부족 대응책 등이 주요 질의로 떠오를 예정이다. 특히 이들 의제의 경우 경기도만의 도정 방향과 기조를 제시, 검증받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게 도의 관측이다. 도 관계자는 “이재명 전 지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중심이 됐던 지난해 국감과 달리 이번 국감은 김 지사의 공약, 정책 검증이 주가 될 것으로 전망 중”이라며 “도정 감사에 철저히 임함과 동시에 민선 8기 주요 정책의 긍정적 측면도 부각될 수 있도록 준비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26일 민주당 운명의 날… 경기도 총선 판도 촉각 [뉴스초점]

더불어민주당이 오는 26일 이재명 당대표(인천 계양을)의 영장실질심사와 신임 원내대표 선거로 운명의 날을 맞게 되면서,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도내 친명·비명계 국회의원에게 어떤 영향이 미칠지 주목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도내 국회의원 중 원조 친명계로 분류되는 의원은 김병욱(성남 분당을), 김영진(수원병), 정성호 의원(양주) 등(가나다순)이다. 여기에 문정복(시흥갑), 이재정(안양 동안을), 조정식 의원(시흥을) 등을 합하면 10~15명가량이 친명계 의원으로 분류된다. 친명계는 아니지만 권칠승 의원(화성병)은 이 대표의 권유로 당 수석대변인직을 수행하고 있다. 비명계 의원으로는 설훈(부천을), 이원욱(화성을), 조응천 의원(남양주갑) 등이 있다. 약 6개월 후 차기 총선을 치러야 하는 친명, 비명 의원들의 촉각은 오는 26일에 쏠려 있다. 이재명 대표의 거취와 신임 원내대표가 누구냐에 따라 공천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따르면 26일 예정된 법원 영장실질심사에 이재명 대표가 출석한 가능성이 점쳐진다. 건강상 이유로 미뤄질 수도 있지만 심사를 피할 수는 없다. 영장 기각 시 이 대표는 리더십을 회복하고 반격의 기회를 얻는다. 친명계 의원에겐 당연한 호재이고 비명계에겐 반대가 될 수 있다. 이 대표가 구속되면 이 대표는 물론 민주당도 타격이 크다. 이 대표가 공천권을 쥔 ‘옥중 공천’이 거론되는데, 이 경우에도 비명계 의원들은 ‘공천 학살’을 걱정해야 할 가능성이 생긴다. 다만, 이 대표가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민주당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이 대표 사퇴론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친명계에서 이 대표 사퇴론을 일축하며 옥중 공천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또 하나의 변수는 신임 원내대표가 누구냐는 것이다. 지난 22일 박광온 원내대표(수원정)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면서 민주당은 오는 26일 새로운 원내대표를 뽑는다. 민주당 당헌당규상 당대표 궐위 시 원내대표는 대표대행을 할 수 있어 차기 원내대표는 차기 총선에 영향을 미칠 두 번째 변수가 된다. 만약 강성 친명계 의원이 원내대표가 된다면 도내 의원들의 운명이 또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비명계가 기를 못 펴는 것은 아니다. 비상대책위원회 논의가 탄력을 받으면 이낙연 전 대표 등 올드보이가 귀환해 당 전면에 나설 수 있다. 도내 정치권 관계자는 “계파색에 따라 공천 여부가 달라져선 안 된다. 이 대표가 강조한 시스템 공천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장심사 결과 ‘쏠린 눈’… 친명·비명 내전 불가피 [뉴스초점]

이재명 대표(인천 계양을)에 대한 체포동의안 가결로 혼란에 빠진 더불어민주당의 운명이 오는 26일로 예정된 이 대표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앞두고 중대 기로에 놓였다. 24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 대표는 26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심사)에 직접 출석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31일 전면적인 국정 쇄신 및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단식에 돌입한 지 24일 만인 지난 23일 단식을 중단하고 본격적인 회복 치료에 들어갔다. 겉으로는 의료진의 강력 권고에 따른 것이지만, 자신에 대한 법원의 영장 심사를 앞둔 데다,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에 따른 당의 혼돈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판단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24일간 단식을 했기에 건강 회복 정도를 보면서 법원과 협의해 심사 기일을 미룰 수도 있지만, 정해진 날짜에 심사받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강선우 대변인도 이 대표의 단식 중단을 발표하면서 “당분간 현재 입원한 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의료진과 협의해 법원 출석 등 일시적인 외부 일정을 소화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검찰은 혐의가 소명됐다는 판단을 받아내기 위해 1천쪽이 넘는 의견서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 측도 “검찰이 구속영장에 기재한 혐의에 근거가 없다”며 무리한 수사임을 입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전망이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 친명(친이재명)계와 비명(비이재명)계도 영장실질심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명계는 이 대표가 구속되더라도 대표직 사퇴는 없다며 ‘옥중 공천’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며, 국회 본회의 과반 찬성으로 구속 국회의원을 석방할 수 있는 ‘석방 요구 결의안’ 추진을 검토 중이다. 반면, 비명계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초래한 이탈표에 대한 당내 반발을 의식해 신중한 입장이나, 이 대표의 구속영장실질심사 결과 이후 목소리를 더욱 키울 것으로 보인다. 비명계는 주말 동안 물밑 접촉을 통해 이 대표의 구속 여부와 관계없이 대표직을 내려놓고 통합형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민주당의 지형을 가를 새 원내대표 선출도 이 대표의 영장심사와 함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원내대표 후보자들은 25일 하루 동안 선거운동에 나서고, 26일 오후 2시 정견 발표 후 곧바로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투표를 실시한다.

‘묻지마 범죄’ 막는다… 자체 대응 나선 지자체 [뉴스초점]

성남시 서현역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하고, 용인특례시에서 흉기를 든 남성이 배회하는 등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반복되자 경기도와 일선 시·군이 자체 대응에 속속 나서고 있다. 주요 밀집 지역 치안 강화, 정신질환자 관리 등 가용한 수단을 동원해 시민 불안을 해소하겠다는 취지인데, 도 역시 광역 차원의 예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9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는 연일 대책회의를 열고 묻지마 범죄 피해자 지원 강화 방안과 도 차원의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특히 도는 서현역 사건 피의자가 정신질환 치료를 중단한 상태로 범행을 저지른 점에 착안해 정신질환자 모니터링 강화 등 대책을 수립, 조만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김동연 지사가 지난 6일 SNS를 통해 “(서현역 흉기 난동) 유사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안전 조치, 적극 대응과 피해자 지원 방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데 대한 후속조치다. 현재 도는 묻지마 범죄 피해자, 목격자에 대한 공무원 1대 1 매칭 방침을 세웠으며, 서현역 사건 피해자를 지원 중이다. 이와 함께 도 일선 시·군에서도 각각 치안 강화와 피해 예방을 위한 사전 조치 강화에 나섰다. 서현역 흉기 난동을 겪은 성남시는 주요 역사, 광장, 판매시설 등 인구 밀집 지역에 대한 경찰의 감시 활동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순찰 활동에 지역 자율방범대, 해병대전우회 등을 적극 연계하고 도시정보센터 CCTV를 24시간 경찰에 실시간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 피해자와 목격자 등 피해자들이 겪을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이달까지 비상근무 체제로 전환했다. 시 관계자는 “지역 보건소, 경찰과 연계해 범죄 우려가 있는 정신질환자 치료, 관리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산시도 지역 자율방범대와 경찰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도시정보센터 CCTV 실시간 공유를 진행 중이다. 수원특례시도 CCTV 실시간 모니터링과 경찰 신고 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용인특례시는 감시 체계 강화에 더해 본청 및 구청 공무원으로 구성된 지원반을 편성, 인구밀집 지역인 에버랜드와 경전철 역사 등 4곳에 대한 경찰 순찰 활동 지원에 나섰다. 파주시는 경찰과 핫라인을 구축해 흉기 소지자를 감사하는 등의 체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인구가 점점 늘어감에 따라 소외되거나 은둔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보건소를 통해 이들을 적극 발굴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유도하는 프로그램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도 관계자는 “묻지마 범죄 예방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지자체 차원에서 자체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은 한정적인 상태”라며 “도 차원에서 가용한 피해자 지원, 재발 방지 대책을 적극, 신속하게 마련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올들어 40여건, 전조 있었다... 폭행·흉기 위협 ‘활개’ [뉴스초점]

서울 신림역 ‘묻지마 흉기 살인’ 사건 발생 2주 만에 또다시 분당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재연됐다. 일상 생활 곳곳에서 예고도 없이 연이어 터지는 비상식적 참극에 평범한 퇴근길, 익숙한 거리가 테러의 현장으로 변질된 지금. 대한민국의 일상은 공포가 됐다. 이에 정부와 여당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 도입, 테러방지법 검토 등 적극적인 대처를 예고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퍼질 대로 퍼진 ‘그 누구도, 그 어떤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트라우마와 포비아를 잠재우긴 역부족인 상황. 전국을 충격으로 내몬 두 건의 연이은 묻지마 강력 범죄 전에도 이미 경기도에서는 묻지마 강력 범죄의 전조를 보이는 수십건의 크고 작은 관련 범죄가 활개를 쳐 왔다. 경기일보는 올해 1월부터 현 시점까지 경기일보가 최초 보도하거나 취재 후 세간에 알리지 않은 경기 남부지역에서 벌어진 묻지마 관련 사건들을 취합했다. 일면식도, 마땅한 이유도 없이 행해진 ‘묻지마 흉기·폭행 사건’ 사례를 정리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묻지마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조명한다. 특별취재반 ■ 경기도 묻지마 폭행·흉기난동 주요 일지 1월9일 오후 11시38분께 -50대 남성, 여주의 한 병원에 찾아가 자신이 찾고 있는 환자를 불러달라며 간호사에게 흉기를 꺼내 보이고 병원 문과 기둥을 내려찍어 1월23일 오후 10시40분께 -30대 남성, 안양의 한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를 기다리던 여성 2명과 남성 1명을 상대로 아무런 이유없이 폭력 행사 1월26일 오후 2시19분께 -30대 남성, 수원의 한 주민센터에서 의자와 탁자 등을 발로 차는 등 주변 민원인들과 직원들을 위협하며 난동 1월26일 오후 3시13분께 -20대 여성, 안양 아파트 주거지 안에서 집 근처를 지나가던 불특정 다수에게 집기류를 집어 던지고 흉기를 꺼내 보이며 위협 2월9일 오전 10시25분께 -60대 남성, 부천의 한 노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성이 바지를 내리고 있던 자신을 봤다는 이유로 흉기를 든 채 쫓아가 협박 3월5일 오후 2시50분께 -30대 남성, 경기 광주의 한 노상에서 과일을 팔고 있던 60대 남성의 얼굴을 이유 없이 발로 폭행 3월10일 오후 9시20분께 -40대 남성, 부천의 한 대형쇼핑몰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불특정 다수를 위협하고 내부에 있던 나무 벤치를 흉기로 수차례 찍어 3월12일 오후 8시께 -20대 남성, 자신을 국정원 직원이라고 사칭하며 흉기를 든 채 경기도의회 건물에 침입 3월22일 오전 5시55분께 -20대 남성(군인), 모르는 남성에 대한 1차 묻지마 폭행 후 인근 편의점에 들어가 홀로 근무 중이던 여성 점원의 머리를 바코드센서기로 수차례 내려찍어 3월26일 오후 2시2분께 -50대 남성, 흉기를 소지한 채 부천 송내역에 들어가 공용의자에 칼을 꽂은 뒤 다시 뽑아 지하철 탑승 4월1일 오후 4시40분께 -50대 남성, 군포의 한 초등학교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일면식도 없는 20대 남성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찍고 이를 말리던 고등학생도 폭행 4월2일 오후 10시12분께 -40대 남성, 수원의 한 편의점 앞 거리에 주차된 차량을 큰 돌을 던져 파손시키고 인근을 주행 중이던 차량을 강제로 정차시킨 뒤 운전자 멱살을 잡는 등 폭행 4월6일 오후 1시10분께 -50대 남성, 수원의 모텔에서 흉기를 들고 다수의 종업원을 위협 4월8일 오전 4시40분께 -10대 후반 남성, 수원의 한 노상에서 자신과 눈이 마주친 행인들을 평소 가지고 다니던 군용칼로 위협 4월11일 오전 2시5분께 -40대 남성, 평택의 마사지 업소에 들어가 경찰관을 사칭하며 아무런 이유 없이 업소 관계자와 손님에게 흉기를 꺼내 보이고 “목을 따버리겠다”며 협박 4월13일 오후 3시36분께 -20대 여성, 권선구의 한 TG영업소를 찾아가 일면식도 없는 50대 여성 직원 뺨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 4월16일 오후 6시13분께 -10대 후반 남성, 평택의 한 휴대폰 매장에서 갑자기 난동을 부린 뒤 인근 편의점에서 커터칼을 훔치고 이를 소지한 채 거리를 배회 4월29일 오후 4시23분께 -30대 여성, 수원의 한 노상에서 처음 본 초등학생 남자 아이를 흉기로 위협 5월4일 오전 9시34분께 -20대 남성, 부천의 한 노상에서 흉기 든 채 배회,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에게 침 뱉어 5월16일 오후 3시50분께 -신원 미상 여성, 부천의 한 터미널에서 양손에 흉기를 든 채 고함을 지르며 난동 5월18일 오후 9시46분께 -40대 남성, 수원의 한 노상에서 별 다른 이유 없이 유리잔으로 20대 남성의 뒤통수를 가격 5월19일 오전 2시12분께 -40대 남성, 수원의 한 노상에서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가 호프집을 묻는 자신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하자 흉기를 꺼내 다가가 “죽여버리겠다”고 협박 5월23일 오후 5시15분께 -50대 남성, 안산의 한 백화점에서 여성 직원들과 손님들에게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폭행 5월26일 오후 9시14분께 -50대 남성, 성남의 한 노상에서 알지도 못하는 피해자에게 “죽여버리겠다”며 흉기로 위협 6월15일 오전 6시50분께 -60대 남성, 부천의 한 편의점 앞에서 망치를 꺼내 들고 우연히 노상에서 만난 피해자를 쫓아다니며 협박 6월15일 오후 6시40분께 -50대 남성, 군포의 한 병원에서 링거 거치대 높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환자들과 간병인들에게 흉기를 들이대는 등 위협하며 폭행 6월19일 오전 1시28분께 -20대 남성, 단원구의 한 노상에서 전동 공기총 난사, 20대 여성 손 맞혀 6월24일 오전 5시58분께 -평택 관광특구로에서 상의를 벗고 문신을 보인 상태에서 흉기를 꺼내 보이며 피해자 6명을 아무런 이유 없이 폭행 6월29일 오전 11시50분께 -60대 남성, 흉기를 든 채 부천의 한 거리를 활보하면서 시민들을 위협한 후 인근 휴대전화 매장으로 들어가 난동 7월2일 오전 2시20분께 -10대 후반, 김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모의 총기와 쇠구슬 2천여개가 담긴 탄띠를 메고 배회 7월2일 오전 3시35분께 -60대 남성, 수원의 한 노상에서 “길 좀 비켜달라”는 피해자의 말에 화가 난다는 이유로 흉기를 휘둘러 복부에 자상을 입힘 7월5일 낮 12시29분께 -20대 남성, 의왕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본 이웃 여성을 상대로 묻지마 폭행을 한 후 강간을 시도 7월6일 오전 2시께 -60대 남성(노숙인), 양손에 흉기 1점씩을 들고 안산의 한 파출소로 들어와 경찰관을 위협하다 테이저건 맞고 제압 7월12일 오전 11시35분께 -20대 남성, 자신을 진료하는 의사 앞에 흉기를 꺼내 보이며 ‘잘 치료해달라’고 협박 7월12일 오후 2시35분께 -30대 남성, 양평의 한 노상에서 처음 본 인부 2명에게 흉기 휘둘러 상해 7월14일 오전 10시20분께 -60대 남성, 성남의 한 전통시장에서 흉기로 상인들을 위협 7월16일 오전 1시40분께 -부천의 한 광장에서 처음 본 여고생들과 20대 남성을 흉기로 협박하고 소주병 투척 7월25일 오전 9시29분께 -분홍색 옷을 입은 신원 미상의 여성이 왼손에 흉기를 들고 경기 광주의 한 노상을 배회 7월25일 오후 5시23분께 -60대 남성, 하남시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지인에게 알린 후 흉기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감 7월25일 오후 11시39분께 -30대 남성, 부천의 한 가게에서 “라이터가 없다”고 말하는 종업원을 흉기로 위협하고 밖으로 나가 인근 행인들에게까지 흉기 난동 8월3일 오후 11시49분께 -40대 남성, 시흥의 한 노상에서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에게 시비를 건 후 다툼을 벌이다 인근 주점에서 흉기를 들고 나와 피해자를 찌를 듯 위협 8월4일 오전 2시께 -30대 남성, 지인 아내 성추행 후 항의하는 남편을 폭행한 뒤 흥분한 상태에서 인근 지나가던 행인들에게도 폭력 행사 8월4일 오후 9시40분께 -용인의 한 거리에서 “목사를 죽이겠다”며 흉기를 들고 배회 8월5일 오전 1시2분께 -60대 여성, 아무런 이유 없이 평택의 한 빌라 앞에 주차돼 있던 오토바이와 차량을 부순 뒤  피해자의 현관문과 도어록까지 파손 시도 8월5일 오후 4시32분께 -40대 남성, 시흥의 한 주거밀집지역에 주차된 차량 2대를 별다른 이유 없이 벽돌로 내리쳐 8월6일 오전 7시57분께 -40대 남성, 분당 판교역사 내에서 쇠파이프 들고 배회

흉기 난동에 불안 커지는데… 처벌은 솜방망이 [뉴스초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흉기 난동 등 경기지역에서 묻지마 흉기 관련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어 처벌 강화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다. 흉기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만큼 흉기 소지에 대해서도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6일 경기일보가 올해 1월부터 단독보도하거나 입수 후 보도하지 않은 경기남부지역 묻지마 폭행·흉기난동 사건은 총 46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현행법상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해의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그런 목적이 없이 흉기 등을 숨겨서 지니고 다니는 경우는 경범죄 처벌법의 적용을 받아 범칙금 처분만 받고 훈방된다. 또한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지 않고 특정인에게 흉기를 들고 찾아가는 행위 등도 대부분은 훈방 조치하는 상황이다. 법조계에서는 단지 흉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살인 예비죄’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구속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간 변호사는 “예비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준비한 정황이나 실질적인 위험성 등 범죄 행위의 구체성을 밝혀야 한다”며 “휴대전화에 적대적인 문자메시지나 협박성 통화내역이 있다든지, 인터넷 커뮤니티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살인 예고를 한 흔적이 있다면 예비범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흉기 소지는 살인과 같은 흉악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범죄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과거에는 흉기 소지가 단순히 불안감을 야기시키는 정도에서 끝났지만, 지금은 그 흉기가 실질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며 “한시적으로라도 흉기 소지 자체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흉기 소지자를 검거했을 경우 단순히 범칙금 또는 훈방 조치로 끝날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의 대응 방식 자체를 보완해야 한다”며 “우선 체포 전후 범죄가 될 만한 행동을 했는지에 대해 디지털포렌식을 통한 적극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성격 장애 등 정신병으로 치료받은 전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앞으로도 흉기를 다시 들고 다닐 수 있는 재범의 위험성이 명확하다면 적어도 일정 시간 그 사람들에 대한 보호 관찰을 명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특별취재반

적자 눈덩이 인천 시내버스… 요금 2천228원 받아야 ‘본전’ [내달 250원 인상 앞둔 시내버스]

인천지역 시내버스 요금이 다음달 성인 기준 1천500원으로 250원 인상을 앞둔 가운데, 요금을 운송원가에 맞춰 현실화하려면 2천228원까지 올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천시민의 혈세를 투입하는 시내버스 준공영제 지원금을 줄이려면 단계적인 요금 인상과 함께 준공영제의 투명성 확보, 노선개편 등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 9일 인천시가 회계법인을 통해 지난해 시내·광역버스의 경영실태 용역 결과, 시내버스 운송수지 적자는 2천589억1천400만원에 이른다. 이 적자는 시내버스 요금 수입에 광고 수입을 더한 금액에서 인건비와 유류비 등 원가(지출)를 뺀 금액이다. 여기에 인천시의 시내버스 준공영제 지원금을 반영해도 시내버스는 44억1천900만원의 적자를 냈다. 이에 따라 시내버스의 수입과 지출이 맞는 수지균형 요금 수준(성인·카드 기준)은 간선이 현재 1천250원에서 78.2% 오른 2천228원, 지선은 950원에서 111.9% 올린 2천13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광역버스의 수지 균형 요금은 현재 2천650원에서 46.4% 오른 3천881원인 것으로 인천시는 분석했다. 만약 재정지원금을 반영하더라도 3천240원까지 22.3%의 요금 인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데도 인천시는 시민들의 시내버스 요금인상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지난 7~8년 간 요금을 동결해오다 최근 물가 상승과 적자폭 등을 반영한 요금인상을 추진했지만 20% 수준의 인상에 그치고 있다. 현재 인천시는 버스 요금은 성인을 기준으로 시내버스는 250원, 광역버스(직행좌석) 350원 등을 일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최소한의 수지균형 요금 수준만큼 버스요금 인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인천시의 재정부담은 지속적으로 커질 전망이다. 인천시가 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지난 2010년엔 재정지원금이 430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2천650억원으로 10년 만에 6배 이상 급증했다. 시는 올해는 2천940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인천시가 이 같은 요금 인상과 맞물려 준공영제의 투명성 확보, 노선개편 등 자구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요금 인상에 따른 경제적 취약계층의 교통비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도 필요하다.  당장 도입이 가능한 것은 비교적 이용객이 적은 새벽시간 때 조조할인 요금제다. 서울시는 현재 오전 6시30분 이전 승객에겐 요금의 20%를 할인하고 있다. 또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을 위한 정기권 제도 도입도 있다. 용역 결과에선 관광객에겐 1~7일권을, 시민들은 통근·통학 목적의 1~6개월권의 도입이 나왔다. 이미 인천지하철은 5만원의 1개월권(60회) 정기권이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버스요금 현실화를 위해선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시민 부담을 줄이려 인상폭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요금 현실화에 맞춘 할인 및 정기권 도입 등은 검토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뉴스초점] 다시 달궈진 골목상권... 지역화폐 국비삭감 ‘찬물’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 시대에 ‘지역화폐’로 숨통 좀 트이나 싶었더니 또다시 고비겠네요.” 7일 오전 9시 용인특례시 처인구의 한 서양 음식점. 단 8명의 손님만 받을 수 있는 소규모의 식당인데도 20여명의 이름이 대기 명단에 빼곡하다. 구슬땀을 흘리며 식당 이곳저곳을 다니던 주인 강모씨(35)는 이런 광경이 꿈만 같다고 고백한다. 2년 전만 하더라로 월 평균 70만원의 수익으로 가게 운영을 이어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역화폐로 손님들이 유입되면서 월 200만원의 안정적인 매장 수익을 유지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그런데 정부가 내년도 예산을 삭감한다고 하니 당황스럽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수원특례시 팔달구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임모씨(38) 역시 정부의 결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지역화폐 예산 삭감으로 인센티브와 추가 할인 등 소비자 유인책이 사라지게 되면, 수수료가 1%뿐인 공공배달앱에서 6.8%인 민간 배달앱으로 고객 이동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임씨는 “손님들이 종종 공공배달앱의 가장 큰 장점은 지역화폐에 있다고 말했다”며 “이렇게 팍팍한 상황에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 고객들의 지갑도 닫힐까 두렵기만 하다”고 고백했다. 정부가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잠시나마 활기를 띤 지역 경제가 또다시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이어질 거란 소상공인들의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정부의 결정으로 대부분의 도내 지자체가 기존 10%의 지역화폐 할인율과 최대 월 100만원인 충전 한도액의 하향을 고려하고 있다. 정부의 지역화폐 국비 예산이 지난해 1조522억원에서 올해 6천50억원으로 줄었고 내년에는 0원이 되는데, 지자체는 이로 인한 재정 부담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럴 경우 지역화폐를 견인하던 인센티브 역시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지역화폐의 주사용처인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거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도 관계자는 “재정 부담은 줄이되 지역화폐의 효과는 살릴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며 “민생 경제 회복을 위해 관계 부처에 건의하는 등의 국비 확보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화폐 정책 근간 흔들... 민생경제도 ‘휘청’ 전통시장·골목상권 활성화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온 지역화폐가 존폐기로에 섰다.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전액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인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들에게 돌아갈 전망이다. 7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역화폐 사용 전 35.2%였던 도내 소상공인 점포 이용률은 지역화폐 사용 후 59.3%로 24.1%포인트 증가했다. 전통시장 및 연매출 10억원 이하의 매장을 사용처로 지정하면서 대형매장으로의 유출 가능성은 낮추고 도내 41만7천여개의 소상공인 점포가 지역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추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효과의 입증으로 도는 추석을 앞두고 도내 일선 시·군에 지역화폐 할인율을 평소보다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거래량이 증가하는 명절 동안 할인된 가격과 매출 증대로 소비자와 판매자의 만족도를 동시에 잡겠다는 취지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경기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정책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긍정적인 반응이 70.9%를 차지했다. 소비증대라는 측면에서 판매자의 요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소비자 역시 매출 증대 효과(80.2%), 소비자 편익 증대(78.6%), 지역 활성화 기여(71.8%), 고용효과(63.1%)에 공감을 표한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 추석에는 광주·시흥시 2곳을 제외한 도내 시·군 29곳에서 지역화폐 충전 금액 중 10%의 인센티브(국비 40%, 도비 30%, 시·군비 30%)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도 역시 1천17억원(국비 500억원, 도비 517억원) 규모의 지역화폐 발행을 지원한다. 하지만 정부의 내년도 예산 삭감으로 지역화폐 정책의 근간이 휘청이며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자 전문가들은 도내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줄이되 지역화폐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창의적인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경기연구원 유영성 선임연구위원은 “지역화폐 예산의 약 40%가 국비로 지원되는 만큼 삭감으로 인한 후폭풍, 예컨대 지자체의 예산 문제에 대해 공론화된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며 “우선은 경기도가 국비 확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장을 매출로 나눠 할인율을 조절하는 방식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역화폐는 애초에 한시적 사업으로 시행한 것”이라며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피해가 완화됨에 따라 추가 지원으로 인한 유인책 역시 효용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손사라기자

[심층취재] 경기도, 1천억 넘는 국비사업 18개...내년도 국비확보 ‘錢의 전쟁’ 예고

경기도의 내년도 주요 현안사업 중 정부와 여야 도내 의원들에게 1천억원이 넘는 국비지원을 건의한 사업이 18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경기일보가 ‘내년도 도의 주요 국비사업 100개’를 분석한 결과, 총 건의액은 6조 6천40억원에 달했다. 소관부처별로는 국토교통부가 54개 사업으로 절반을 넘었고, 환경부 10개, 행정안전부 7개, 보건복지부 6개, 해양수산부 5개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1천억이 넘는 국비지원 사업 18개 중에는 국토부가 13개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복지부 3개, 환경부와 행안부 각 1개로 드러나 국토위 등에서 의원들의 국비 확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건의액이 가장 많은 사업은 민자고속도로 건설 지원으로, △수도권 제2순환(포천~화도) 5천383억원 △광명~서울 1천502억원 △평택~부여(서부내륙) 2천134억원 등 3개 구간에 9천19억원 반영을 요청했다. 이어 신안산선 복선전철 민간투자사업으로 6천365억원, 인덕원~동탄 복선전철 4천440억원을 각각 건의했다. 또한 월곶~판교 복선전철에 3천709억원 반영을 요구했으며,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A노선 파주~삼성과 삼성~동탄 구간에 각각 2천743억원과 2천80억원, C노선(수원~덕정)에 1천285억원을 반영해달라고 건의했다. 도로·철도가 아닌 사업 중에는 31개 시군 공통의 내년도 전기자동차(승용차·버스·화물차) 3만여 대 구매지원을 위한 4천206억원, 노인일자리 사업 2천36억원, 경기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발행 1천904억원, 출생 아동 1인당 200만원의 첫만남이용권 1천570억원 등을 꼽을 수 있다. 누리과정(만3~5세) 차액보육료 지원(1천43억원)과 외국인 아동(만0~5세) 보육료 지원(280억원)을 합한 영유아보육료 지원 1천323억원도 새로 요청했다. 도는 지난 17일 여당인 국민의힘 지도부와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진 바 있으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는 오는 28일 전당대회 이후 예산정책협의회를 가질 계획이다. 김동연 지사와 전직 지사이면서 당 대표를 예약한 이재명 의원(인천 계양을)이 머리를 맞대고 예산과 정책을 협의하게 된다. 경기도 국회의원 초청 정책협의회 역시 국민의힘 유의동 도당위원장(3선, 평택을)과 민주당 임종성 도당위원장(재선, 광주을)이 모두 정식으로 취임한 뒤 다음달 중순께 이뤄질 전망이다. 道-도내 의원, 사업순위 놓고 온도차… 조율 ‘쏠린 눈’ 경기도의 내년도 주요사업 국비지원 건의와 관련, 도가 우선순위를 두는 사업과 도내 의원이 방점을 두는 사업 간 미묘한 차이가 예상되고 있다. 도는 경기지역화폐 확대 발행과 양산 연계형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 등 지역활성화와 산업경쟁력 강화 등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데 비해 의원들은 지역구 관련 SOC(도로·철도) 예산 확보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돼 조율여부가 주목된다. 25일 도가 마련한 ‘현안 및 국비지원 건의’와 ‘내년도 주요 국비사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도는 국비지원 건의의 우선순위를 대부분 도내 시군 공통사업에 뒀다. 도가 앞세운 경기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확대 발행(1천904억원)을 비롯해 누리과정 차액보육료(1천43억원), 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지원(농민수당, 352억원), 친환경 등 우수농산물 학교급식 지원(216억원), 노인일자리 사업(2천36억원) 등은 31개 시·군 공통사업이다. 또한 21개 시·군의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사업(986억원), 12개 시·군에서 이뤄지는 지방상수도 현대화사업(543억원), 27개 시·군 2천266대의 저상버스 구입비(1천35억원)도 국비 반영을 강조했다. 도의 국비 확보 우선순위 중 1개 지역에 해당되는 사업은 용인반도체클러스터 내 양산 연계형 반도체 테스트베드 구축사업(기반구축형 연구개발사업, 322억원)이 유일하다. 이에 비해 의원들은 내후년 총선에 대비, SOC 예산 확보에 시선을 집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1천억원이 넘는 국비지원 사업 18개 중에도 도로·철도와 관련된 사업이 13개로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상위 10개 사업 중에는 7개 사업이 도로·철도 사업이다. ‘수천억원 예산확보’라는 의정활동 홍보포인트를 놓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도가 6천365억원을 건의한 신안산선 복선전철(안산(한양대 일원)~여의도, 송산차량기지~광명)의 경우 화성·안산·안양·시흥·광명이 모두 해당돼 기재부를 상대로 도와 해당 지역 도내 의원들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4천440억원 반영을 요청한 인덕원~동탄 복선전철은 과천·안양·의왕·수원·용인·화성 지역 의원들이 눈여겨보는 사업이며, 3천709억원 국비 지원을 건의한 월곶~판교 복선전철 역시 시흥·광명·안양·과천·성남을 거치면서 해당 지역 의원들이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김재민기자

[뉴스초점] 교사에 욕하고 무고죄로 협박…학교가 무서워요

끝없이 추락하는 교권 “학생이 수업 중에 막욕을 해대니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 A씨는 2021년 1학기가 시작된 지 2달도 채 되지 않아 휴직했다. 한 학생이 자신에게 수업시간 마다 가운데 손가락을 내보이며 욕설해서다. 시간이 갈수록 욕설의 정도는 심해졌다. 이런 모습을 다른 학생들이 말리기도 했지만, 욕설은 말리는 친구에게 향했고, 수업중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A씨는 “해당 학생의 문제를 교권보호위원회에 알렸지만, 위원회가 심의 결과 내린 처분은 1호 조치인 ‘학교내 봉사’에 그쳤다”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휴직을 선택했고 한동안 정신과치료를 받는 등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한 중학교 교사 B씨는 지난해 오해를 한 학부모로부터 무고죄로 고소하겠다는 협박에 시달렸다. 이 학부모는 B씨가 아동학대로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인 협박을 했다. B씨는 “한 학부모가 어느 날 전화를 하더니 저를 아동학대 신고자로 몰아가며 욕설을 하고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며 “수차례에 걸쳐 그런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협박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 교사를 못하게 하겠다며 막말을 하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아동학대로 신고한 이는 해당 학부모가 운영하는 펜션에 묵었던 손님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B씨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할까 불안하다. 고등학교 교사인 C씨는 지난해 기억조차 하기 싫은 일을 겪었다. 1학기 초 교직원 화장실에 자신과 동료교사를 비방하는 이 학교 학생의 낙서가 발견됐다. 해당 낙서를 즉시 지웠지만, 다음날 또 다른 비방 낙서가 생겼다. 이 학생은 낙서를 하고 C씨가 지우는 일을 반복했다. C씨는 “비난 수위가 높아지자 결국 지쳐서 병가를 낼 수 밖에 없었다”며 “낙서에서 언급한 다른 교사는 학교측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인천 지역 교사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교권침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대응책인 교권심의위원회가 유명무실하면서 교권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7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에 따르면 2021년 인천의 교권침해 신고 건수는 코로나19 여파로 대면수업이 줄었는데도 72건에 달했다. 올해 전면 등교를 시작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로 인해 발생하는 교권침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교조 인천지부 관계자는 “예전엔 교장 등 상급자로 인한 교권침해가 문제였다면 요즘은 학생,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사례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며 “욕설을 하는 학생은 기본이고, 윽박지르며 고소하겠다고 협박하는 학부모 등 다양한 교권침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 ‘동네북 신세’… 교단이 두렵다 인천지역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가 심각하지만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교사가 휴직을 선택하는 악순환이 반복하고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금언은 빛이 바랜 지 오래라는 푸념이 나온다. 7일 인천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교권침해는 크게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 ‘학부모에 의한 교권침해’, ‘위계에 의한 교권침해’ 등 3가지다. 특히 최근 10년간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 강화 등 관련 법제가 강화된 점이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교권침해 피해 교사들은 교사의 훈육에 앙심을 품은 학부모 등에 의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 교권이 위협받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학교폭력으로 자녀가 신고를 당하면 보복성으로 담임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거나, 생활기록부 내용으로 생활지도를 하면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들은 교사의 명백한 아동학대 행위는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정당한 훈육도 학대로 신고당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육활동 침해 학생에 대한 심각성·지속성·고의성을 0~5점 척도로, 학생의 반성 정도·학생과 교원의 관계회복 정도는 0~3점 척도로 평가해 침해 학생에 대한 조치가 이뤄진다. 피해교사와 가해학생을 분리할 수 있는 기간은 특별휴가 5일과 학교장 재량의 공무상 병가제도를 더해 최대 10일에 불과하다. 현행 교권심의위원회는 학생 인격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치를 단계별로 적용해 학생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자는 것이 교육당국의 취지다. 피해교사는 침해 학생에 대한 강한 조치를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다.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교사가 휴직을 선택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는 이유다. 이에 교육당국이 교권침해 피해 교사에 대한 심리치료와 소송지원 등 보호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다. 안봉한 전교조 인천지부장은 “교권보호위원회가 교사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없다”면서도 “현재 보호 장치는 이것밖에 없어서 매뉴얼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일각에선 교권침해를 일으킨 학생에 대한 처벌과 관련해 학생도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가지고 있기에 이를 제한하거나 조치를 할 때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민 시교육청 교권전담변호사는 “학생이 교육활동침해를 하더라도 본인의 교육을 받을 권리는 있다. 가급적이면 학생을 안고 가겠다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라며 “한쪽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기 어렵다. 학생이 전학을 가더라도 거기서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교육부와 시교육청 등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교권침해가 전국적으로 매년 2천건 이상 발생했다.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엔 전년 대비 40% 수준인 1천197건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2천269건으로 반등했다. 같은 기간 인천의 교권침해 신고 건수는 72건으로 집계됐다. 교육 당국은 올해 전면 등교를 시작하면서 교권침해가 더욱 늘 것으로 예상한다. 김수연기자

[심층취재] 효성구역 개발사업 시행사 주민 불법 강제퇴거 논란

인천 효성구역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사인 ㈜JK도시개발이 주민들의 보상여부 심사 요청을 묵살하는 등 불법으로 강제퇴거 절차를 밟은 것으로 나타났다. 27일 인천시와 JK도시개발에 따르면 JK도시개발은 지난 2019년부터 계양구 효성동 100 일대의 43만 4천989㎡에 공동·단독주택 3천998가구를 조성하는 도시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총사업비는 6천816억원, 준공 예정일은 2025년 12월이다. 당초 효성구역에 살고 있던 450가구 중 현재 강제철거·강제집행·협상 등을 거쳐 370가(82.2%)가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갔고, 현재는 80가구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JK도시개발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을 위반한 채 주민들의 보상여부 심사 요청을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JK도시개발은 지난해 4월 효성구역의 주민 88가구로 부터 토지·건축물 보상권리 여부 심사를 위한 토지수용재결위원회 청구를 받고도 시에 수용재결위 개최 신청을 하지 않았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토지보상법) 제30조 2항은 시행사가 주민들로부터 수용재결위 청구를 받으면 토지 등의 소유 여부와 관계없이 60일 이내에 해당 지자체에 수용재결위 개최 신청을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JK도시개발처럼 시행사가 시에 수용재결위를 신청하지 않으면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이들 주민에게 지연 일수와 법정이율을 적용한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시행사가 수용재결위 청구에 대해 자체적으로 판단해 신청하지 않는 것은 위법사항에 해당한다”고 했다. 특히 주민들은 JK도시개발이 시에 수용재결위 개최 신청을 하지 않자 지난해부터 시에 수용재결위를 열어달라는 민원을 지속적으로 넣고 있다. 이런데도 시는 ‘JK도시개발로부터 수용재결위 신청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1년이 넘게 수용 재결위를 열지 않고 있다. 효성구역 주민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시에 민원을 넣으면 주민들을 도와줄 줄 알았는데, 아예 무시하고 있다”며 “수용재결위를 열려면 주민들이 직접 행정소송을 하라는 답변만 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시는 지난 2020년 5월 실시계획 인가 과정에서 ‘시행사가 주민과 성실한 협의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사업을 승인했다. 하지만 JK도시개발과 시가 주민들의 의견을 모두 묵살하는 과정에서 수용재결위를 신청한 88가구 중 63가구는 이미 강제퇴거·강제집행을 당했다. 이에 대해 JK도시개발 관계자는 “이미 주민이 살고 있는 토지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보상권리가 없는 무단점유자로 판단, 수용재결위를 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시 관계자는 “사인간 문제이기 때문에 시행사에 수용재결위 신청을 지시하기 어려웠다”며 “현재 주민들의 피해를 인지한 만큼, 구제방법 및 행정심판 등의 방안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했다. 효성구역 철거민 길바닥 신세...“돈 한푼도 못받고 쫓겨났다” “돈 한푼도 못 받고 쫓겨났습니다. 이젠 길바닥 위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27일 오후 인천 계양구 효성동 계양산 아랫자락의 한 마을. 마을 입구부터 수십여채의 주택이 창문과 대문, 벽 등이 부서져 있다. 주택 안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 있어 악취를 내뿜는다. 30년 이상 인근에서 살았던 주민 A씨는 지난해 효성구역 도시개발사업 시행사인 ㈜JK도시개발로부터 보상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강제집행 당했다. 지금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다. A씨는 “토지보상법에 의해 1989년 이전에 거주한 사람은 보상권리가 있다”며 “하지만 보상 여부에 대한 심사조차 받을 기회를 잃었다”고 했다. 이어 “수개월째 살 곳을 찾지 못해 막막할 뿐”이라고 했다. 특히 이곳에 남아 살고 있는 일부 주민들은 수개월 전 마을에 들이닥친 철거용역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며 인권 침해를 호소하고 있다. B씨는 “일부 주택을 강제철거 하겠다는 이유로 철거용역들이 마을 입구를 막아 주민들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했다”며 “철거용역들이 주민들을 밀치고 욕설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현재 효성구역 내에는 모두 63가구의 주민들이 강제퇴거·집행을 당하는 과정에서 각종 인권 피해 등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주민들의 호소에도 인천시는 인권 피해에 대한 시 차원의 제도나 노력은 전무하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등과 함께 강제퇴거 등을 당하는 주민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인권지킴이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코디네이터제도’ 등을 통해 주민과 시행사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정복 인천시장 당선인은 “주민들의 고통이 이어지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관련 사업 부서와 협의를 하겠다”고 했다. 이어 “면밀한 검토를 통해 문제가 있는 제도를 개선하는 등 주민들의 피해를 막겠다”고 했다. 이지용기자

좁디좁은 방 한 켠에… 매일 삶을 욱여넣다

도시에 빈곤이 숨어든다. 예전에 ‘쪽방촌’이 그랬듯이 이제는 고시원이 빈곤층의 종착지이다. 2010년 169곳이던 인천지역 고시원은 2021년 790곳으로 늘었다. 늘어난 고시원에는 이제 고시생 대신 독거노인, 건설 일용직과 노숙자 등 도시빈곤층이 찾아든다. 2013년 국민의 최저 주거권을 보장하는 ‘주거기본법’이 제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빈곤층은 좁은 고시원에서 생을 마친다. 1명당 ‘최저주거기준’인 14㎡는 고시원 거주자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다. 이들은 좁디좁은 방 한 켠에 삶을 욱여넣는다. 경기일보는 도시빈곤층인 그들의 최후 주거지, 고시원의 실상을 짚어보고 허울뿐인 주거기본법의 대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고시원은 IMF가 휩쓸고 간 2000년대 이후 우후죽순 늘어났다. 이 곳은 ‘고시생’ 대신 독거노인과 노숙인 등의 도시빈곤층이 가득하다. 고시원은 1990년대 후반부터 도시빈민층의 주거지로 전락한다. 25일 소방청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인천지역 고시원의 수는 지난 10년 동안 5배 가까이 늘었다. 고시원이 늘어난 만큼 고시원과 여관의 ‘달방’과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수 비율도 덩달아 높아졌다. 인천지역 ‘주택 외 거처’에서 생활하는 가구 수는 2006년 1.7%에 불과했다가 2021년에는 7.1%로 4.2배 늘었다. 경실련이 지난 5월 발표한 지역내 ‘주택외 거처 거주 노인 가구수’는 2015년 2천371가구에 불과했지만, 2021년에는 3천457가구로 45% 가량 늘었다. 2010년대 들어 도시재생이나 주거환경개선 사업 등으로 사라진 듯 보였던 쪽방촌이 장소만 옮겼을 뿐 여전히 고시원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 계양구 A고시원 4㎡ 남짓한 최순자씨(83·가명) 방에는 약 복용법이 적힌 ‘약 달력’이 걸려있다. 창문 하나 없는 방 안에서 최씨는 이불을 말아 침대로 쓴다. 베개는 철 지난 옷가지이다. 끼니로 보이는 과자 봉지와 우유곽이 침구 옆에 나뒹굴고 있다. 그는 지난 겨울 서구의 한 고시원에서 쫓겨나듯 이 곳으로 왔다. 정신질환과 치매를 함께 앓고 있는 탓이다. 홀몸인 최씨는 이 곳에서 생활관리사의 도움으로 근근히 버티고 있지만 병세가 심해 지면 언제 또 이 곳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 A고시원 업주는 “최씨 할머니 같은 경우에는 자식도, 손자도 없으니 이 작은 방이 유일한 집이다”며 “지난 10여년간 고시생이 입주를 한 적은 1번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 “보증금도 없고, 20~22만원 짜리 낡은 방에서 사는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거나 독거노인일 뿐이다”고 했다. 캄캄한 사람들, 웅크린 인생 고시원 사람들은 눈이 마주쳐도 인사가 없다. 대부분 ‘인생의 끝자락’에 혹은 ‘잠시 지낼 임시거처’ 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옆 방 문의 열고 닫는 소리와 TV 소리로 이웃의 생사를 확인한다. ■ 최후의 주거지, 그곳서 살아가는 이들 인천 계양구 A고시원에서 1년째 생활하는 김봉중씨(68·가명)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한 때 지역 곳곳을 누비며 건축현장을 다니던 그는 이제 막걸리 1병에 끼니를 때우고, 담배 1갑으로 시간을 보내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3층 맨 끝에 있는 그의 방은 햇빛이 들지 않는, 제 역할을 잃은 작은 창문 하나가 유일하게 밖과 소통하는 창구다. 불과 지난해 겨울, 김씨는 칠흙같이 어두운 고시원 방에서 살던 친구 2명을 차례로 떠나보냈다. 그는 홀로 방 안에서 최후를 맞았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고시원을 “인생 마지막에 오는 곳”이라고 연거푸 되뇌었다. 김씨가 매달 22만원을 내고 사는 306호는 채 7㎡가 되지 않는 방이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모두 쓰다 버릴 것들 뿐이다. 간직하거나, 추억할 만한 것들은 없다. 기본 옵션인 10인치 TV와 고장난 라디오, 조그마한 냉장고, 책상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나면 그에게 허락된 공간은 몸을 겨우 누일 정도다. 서구 B고시텔에 2년째 살고 있는 김기완씨(74·가명). 건설 일용직 일을 하던 그는 고시원에서 길거리로, 다시 고시원으로, 서울 영등포와 경기 부천 등을 떠돌며 살아왔다. 매달 손에 쥐는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생활수급자 지원비로는 방값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아픈 몸을 누이기 위해 고시원은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공간이 됐다. 그는 오랜 고시원 생활로 병을 얻었다고 했다. 좁은 틈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다 관절염이 왔다. 창문 조차 없는 좁은 방에서 지내다 보니 기관지도 성하지 않다. 냉장고 밑엔 그가 챙겨야 할 약봉지가 수북했다. 그는 방문을 닫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다. 창문이 없어 온몸을 조여오는 압박감을 이렇게라도 풀기 위해서다. 김씨는 “여름이면 복도 창문이나 방문을 열어 환기하는 것마저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방이 너무 많아 시원하지 않을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 ‘인간답게 살 권리’ 주거기본법은 유명무실... 최저주거기준 실효성 갖춰야 ‘주거기본법’에는 1인 가구가 인간 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기준을 14㎡ 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벌칙 조항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시원 대부분이 최저주거기준인 14㎡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4~5㎡ 수준이다. 인천시는 이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고시원 면적 리모델링을 권장하고 있으나, 업주들은 리모델링 강제성이 없는데다 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기피하고 있다. 반면에 서울시는 모든 신설 고시원의 방 1칸당 최소면적기준을 7㎡이상 강제 적용토록 건축조례를 개정했다. 김은정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간사는 “고시원은 화재에 취약할 뿐 아니라 건강한 삶으로부터도 떨어져 있다”며 “주거기본법에 제재방안이 없는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초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영국과 미국은 공급부터 최소주거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허가를 내지 않는 형태의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인천시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최저주거기준을 정할 수 있는 조례를 마련하는 등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했다. 김지혜기자

[뉴스초점] ‘서류’ 있어야 자식... 위탁부모들의 설움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위탁부모 증명서. 가까운 곳을 외출할 때, 해외 여행을 갈 때, 병원에 진료를 받을 때 권경수(64)·김숙(59)씨 가족이 챙겨야 할 것들이다. 언제, 어디에서 위탁부모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군포에 사는 이들 부부는 지난 2016년과 2019년에 각각 태진이(7·가명)와 해진이(4·가명)를 위탁해 키우고 있다. 베이비 박스에 남겨진 태진이와 친부모에게 방임 학대된 해진이를 시설에 남겨두는 것이 눈에 밟혀 품으로 데리고 왔다. 정성을 다해 아이들을 돌보지만 위탁부모의 한계에 부딪힐 때가 많다. 먼 훗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만들려 했던 통장과 계좌는 개설할 수 없고, 해외에 여행을 갈 때도 일회용 여권을 발급할 수밖에 없다. 김숙씨는 “어디를 가든 많은 서류로 끊임 없이 내가 아이들의 위탁부모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며 “늘 서류를 내밀 때 마다 아이들에게 ‘남’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에 상처가 되진 않을까 속상하고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코로나19 기간에 어려움은 더욱 컸다. 지난 2월 어린이집에서 발열 등 코로나19 증상이 있던 해진이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김씨는 아이에게 해열제 한 번 먹일 수 없었다. “친부모가 아니기에 병원 규칙에 따라 처방을 할 수 없다”고 병원에서 말했기 때문이다. 김숙씨는 “아이의 보호자가 나인데 위급한 상황에서 조차 서류로 위탁 부모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웠다”며 “위탁 부모라고 서류로 증명하는 것이 정말 위탁 아동을 보호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털어놨다. 가정위탁 가족이 위탁아동의 실질적인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위탁 부모’라는 법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가정위탁은 친부모의 사망, 질병, 학대, 수감 등으로 아동이 친가정에서 보호받을 수 없을 때 위탁가정에서 생활하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아동복지서비스다. 일정기간 보호를 마친 후 친가정으로 복귀하거나, 자립할 때 까지 위탁가정에서 지내기도 한다. 현재 위탁부모들은 법정 대리인이 아닌 ‘동거인’으로 분류된다. 법정 대리인인 ‘후견인’ 제도가 있지만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며 위탁아동의 친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 쉽지 않다. 성남에서 여덟 살 윤수(가명)을 위탁 중인 박영진씨(45) 가족 역시 마찬가지다. 박씨는 지난 2017년 아동보호시설에서 자신을 잘 따르던 윤수와 떨어질 수 없어 가족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제약은 늘 뒤따랐다. 아이의 수술을 위한 의사 소견서를 받을 수도 없었다. 박씨는 “아이가 병원에 꾸준히 가야하지만 친 부모가 아니라는 이유로 소견서를 받을 수 없었다”며 “위탁부모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위탁가정의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이라고 덧붙였다. 가정위탁 부모의 설움 : “위탁 아동 행복한 삶 위해... 후견인 제도 개선 시급” 가정위탁제도는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자라도록 지난 2003년 국내에 도입됐다. 22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남·북부가정위탁지원센터에 따르면 도내 가정위탁 가구는 올해 4월 기준 1천399가구로 위탁아동은 1천704명이다. 최근 5년 가정위탁 현황을 보면 2017년 1천734가구·2천161명, 2018년 1천642가구·2천31명, 2019년 1천557가구·1천928명, 2020년 1천474가구·1천833명, 2021년 1천459가구·1천787명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지난 2020년부터 가정위탁이 다소 감소했지만 도내 가정위탁 수는 해마다 1천가구를 웃돌고 있다. 위탁 아동이 위탁 가정에 보내지는 경우는 다양하다. 친부모의 학대나 가난, 이혼, 사망 등 다양한 사정으로 보호가 필요한 경우 일반 가정에서 지내게 된다. 특히, 학대 피해를 입은 아이들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불안함 등을 느끼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관심과 돌봄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 같은 가정위탁 보호대상에게 △국민기초수급세대책정 △아동용품구입비 50만원(1회) △양육보조금 40만원(월) △상해보험 △심리치료비지원 △소년소녀가정 등 전세 주택지원 등의 지원을 한다. 정부는 보호대상 아동 중 현재 25% 수준인 가정위탁 보호율을 오는 2024년까지 37%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호 아동이 시설에서 성장하기 보다는 일반 가정에서 건강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랄 수 있도록 가정위탁을 활성화시킨다는 취지다. 위탁부모들은 기본적인 지원 외에 계좌 개설 및 휴대전화 개통, 수술, 입원 등 상황에 따라 위탁부모에게 후견인의 권한을 부여해 아동들에게 보다 나은 생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경기남부가정위탁 관계자는 “사실상 가정위탁 부모들은 법정 후견인으로 인정되지 않아 아동들에게 기본적인 지원이나 보호를 해줄 수 없어 오래전부터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위탁가정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상황에 맞는 제도와 가정위탁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담은 제도 개선을 통해 위탁아동이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은진기자

가족 상봉했지만, 몰도바에 발 묶인 '고려인 동포' 빌리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피난길에 오른 가족을 만나기 위해 떠난 고려인 동포(경기일보 3월30일자 1·3면)와 출국 닷새 만에 연락이 닿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방법이 마땅치 않아 발이 묶인 것으로 확인됐다. 3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3월25일 밤 터키행 비행기에 탑승한 고려인 동포 최 빌리안(33·우크라이나)은 전날 저녁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 측에 몰도바 도착 소식을 알려왔다. 가족과 무사히 상봉한 그는 아내, 어린 아들딸과 함께 활짝 미소지으며 찍은 사진을 보내오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의 거취다. 법무부는 지난 29일 외교부와의 협의를 통해 고려인 동포의 형제자매, 조부모까지 가족 초청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재혼 가정인 빌리안의 경우 아내의 아들이 빌리안의 자녀로 정식 입양 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입국대상에서 벗어난 상황이다. 몰도바에서도 우크라이나 대사관 시스템이 마비된 터라 ‘종전 이후에나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현지에선 여전히 포성이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종전 시점은 예측하기 어렵다. 결국 빌리안과 그 가족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몰도바에 발이 묶여 버렸다. 빌리안은 현지 구호단체를 통해 일정 비용을 내고 임시 거처를 마련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얼마 되지 않는 수중의 돈마저 떨어지고 나면 빌리안과 가족들은 갈 곳마저 사라진다. 비단 빌리안뿐 아니라 가족을 구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또는 그 인접 국가로 떠난 동포들도 마찬가지 상황으로 전해진다. 김영숙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장은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약없이 집을 떠나 전쟁 난민이 된 동포들이 얼마나 막막하고 위험하겠느냐”며 “외교부는 신속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비롯해 동포들을 구할 방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1천만불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국내 우크라이나인 3천800명에 대해 체류를 연장하는 특별조치를 결정했지만, 난민 수용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사태가 길어지자 법조계도 정부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 있는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정부의 현행 조치는 부족하다”며 “한국은 2012년 아시아 최초로 유엔난민협약을 이행하고자 난민법까지 제정한 국가로,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특별 기여자로 받아들였듯이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과 보호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지 상황은 전날 5차 평화협상으로 양국의 긴장 해결에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 지 하루 만에 다시 갈등 국면으로 돌아서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 등에 배치된 군을 재편성, 다음 작전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며 우크라이나는 완전한 군 철수의 선행을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 장희준기자

[뉴스초점] 우크라이나 사태, 우리 동포들이 전쟁 속에 남겨졌다

#1. "가족이 남아 있어요" 우크라이나 포화 속으로 떠난 빌리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한국에 사는 수많은 고려인도 고국에 남은 가족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러시아 군 부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선 건 지난달 24일. 안산시 상록구에 거주 중인 고려인 최 빌리안(33)은 그날 걸려 온 다급한 전화를 잊을 수 없다. 수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의 아내는 “폭발소리가 들리고 유리창까지 흔들린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현지 시간으로 새벽 4시30분께였다. 빌리안은 군 부대의 훈련일 것이라며 아내를 진정시켰지만, 뉴스 속보를 확인한 뒤로 더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난해 방문취업(H-2) 비자로 입국한 그는 공장에서 가족의 생계비를 마련하던 중이었다. 삶의 이유였던 소중한 아내와 어린 아들, 딸이 전쟁의 한복판에 남겨진 것이다. 빌리안은 본래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고려인으로, 옛 소련지역에 사는 우리 민족이다. 그는 지난 1994년 우크라이나로 이사하면서 국적을 변경했고, 이후 네 살 연상의 우크라이나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렸다. 수백㎞ 너머에서 떨고 있을 아들은 올해 열 셋, 딸은 고작 다섯 살의 소녀다. 빌리안은 가족들을 구해줄 기사를 어렵사리 구했지만, 길을 나선 아내와 아이들의 100m 곁에 포탄이 떨어지며 생사를 오가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빌리안은 돈을 들여서라도 다시 기사를 구했고, 전쟁 열흘 만인 이달 5일 가까스로 가족들을 몰도바까지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줄곧 어두운 표정이던 빌리안의 낯빛은 가족의 이야기를 할 때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그는 “현지에선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모두 같은 민족으로 여기는데, 서로를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져 가슴이 아프다”며 “무엇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내를 도울 수 없는 이 순간이 가장 두렵고 괴롭다”고 털어놨다. 지난 25일 취재진과 마지막 인터뷰를 마친 빌리안은 그날 밤 가족을 구하기 위해 터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터키에 내려 루마니아로 이동한 뒤 다시 몰도바까지 가는 경로다. 문제는 대사관 시스템이 붕괴된 탓에 여권이 없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려인 동포들을 돕고 있는 김영숙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장은 빌리안에게 연락 방법을 신신당부했다. 빌리안은 이르면 지난 28일 새벽 터키에 도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몰도바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아직 그에게서 온 연락도 없는 상황이다. 출국을 앞두고 아내와 아이들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빌리안은 끝으로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시민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게 우크라이나든 러시아든 마찬가지”라며 “더 이상 전쟁으로 다치거나 상처받는 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양측 지도자의 대립을 멈출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2. '우크라이나 난민 400만 육박' 고려인 동포 위해 정부 나서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전쟁 난민이 400만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산치가 나왔다. 해당 지역에 고려인 동포들이 다수 거주하는 만큼 우리 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30일 AP통신에 따르면 전날 기준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은 40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0년 넘게 이어지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난민의 3배에 이르는 수치다. 현재 국경을 맞댄 폴란드에서만 약 230만명을 수용했으며 루마니아에서 60만명, 미국 또한 1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우리나라 역시 재외동포법상 한민족인 고려인에 대해서는 입국 자격이 완화돼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적에 대해서는 장기체류자의 가족 등으로 조건을 제한해둔 상황이다. 법무부는 지난 29일 외교부와의 협의를 통해 형제자매와 조부모까지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적인 변화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 빌리안(33)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빌리안은 고려인이자 우크라이나 국적이지만, 아내는 동포가 아니라 온전한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특히 두 사람은 재혼 가정인 탓에 아내의 자녀는 빌리안의 가족으로 호적이 정리되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현지 대사관 시스템이 붕괴돼 여행증명서 발급마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고려인지원단체 ‘사단법인 너머’는 성명서를 내고 정부에 움직임을 촉구하고 나섰다. 현지에선 공습으로 신분을 증명할 서류를 챙기지 못한 다수의 피난민이 입국비자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난민에 대해 긴급입국허가를 해줄 수 있는데도 까다로운 조건을 계속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에 난민 신청을 한 우크라이나 난민은 0명이며, 빌리안처럼 여러 고려인 동포들이 가족을 구하기 위해 직접 출국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국내 체류 우크라이나인은 지난달 말 기준 전국 2천351명으로, 경기도에만 918명이 거주한다. 특히 안산시(477명)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김영숙 안산시 고려인문화센터장은 “현지에선 여권을 만들려고 해도 대사관이 마비돼서 발급이 안되는 상황”이라며 “현행 법 체계에서 여행증명서를 신속하게 발급해줄 수 있는 외교부가 전쟁터에 남겨진 동포들을 위해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입국길이 열린다 해도 피난길에 오른 동포들은 당장 머물 곳조차 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숙소 문제를 비롯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지침을 내려 각 지자체가 지역 여건에 맞는 지원 방책을 강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개전 이후 30일까지 200명 정도의 난민들이 입국했다”며 “이들 우크라이나인 대부분은 90일 이하로 체류할 수 있는 단기 사증을 발급받았으며, 현지 정세가 안정화 될 때까지 비자 만료 후에도 인도적 특별체류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장희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