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0일 개봉한 ‘외계+인 2부’는 최동훈의 영화일까, 그렇지 않을까. ‘타짜’, ‘전우치’, ‘도둑들’, ‘암살’ 등을 연출한 한국 상업영화의 아이콘 최동훈은 지난 ‘외계+인 1부’의 혹평을 의식하며 이번 후속작을 절치부심 끝에 내놓았다. 재밌게도 ‘외계+인 2부’는 최동훈의 시그니처 인장이 곳곳에 녹아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의 스타일을 어쭙잖게 흉내낸 듯한 조잡한 질감도 맴돌고 있다는 점에서 아리송한 인상을 남긴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를 매력 있게 가꾸는 요소는 언제나 캐릭터와 장르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두 편의 ‘외계+인’은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당히 독특한 지위에 놓인다. 그 이유는 바로 영화에 깃든 동력원에서 비롯된다. ‘외계+인 2부’를 움직이는 건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외계+인’ 2부작은 탄탄한 각본과 다층적인 캐릭터 묘사에 열을 올렸던 지난날 최동훈의 영화와 다른 선상에 놓일 수밖에 없고, 특히 1부보다 2부가 더 그렇다. 고려 시대와 현대를 오가며 전개되는 영화 속에서 맹인 검객 능파(진선규)는 인공지능 프로그램 썬더(김우빈)가 “우리는 2022년으로 가겠다”고 했던 말을 놓치지 않았다. 미래로 합류하지 못한 능파는 불길한 예감에 얼른 서신을 써내려 간다. 그리고 미래로 떠난 이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과 결단을 보여준다. 그저 후손 중 누군가에게 자신이 몸처럼 아꼈던 비검, 신선들의 거울과 부적, 무륵의 부채가 고스란히 전달될 거라 믿었던 그 마음. 막연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더없는 확신으로 가득 찬 그 믿음이 결국 ‘외계+인 2부’를 움직였던 것. 사실 이 능파의 믿음은 서사의 전개 측면에서 보면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요소다. 1391년의 고려, 그리고 2022년의 한국. 과연 천년에 가까운 세월이라는 간극이 능파의 믿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크고 작은 사건을 정신없이 중첩해가면서도 난잡하지 않게 서사의 줄기를 유지하고, 캐릭터 간 관계에 드러나는 정보와 드러나지 않는 정보의 격차를 활용하면서 전개에 긴장감을 부여했던 최동훈의 쫄깃한 각본이 어쩌면 ‘외계+인’에선 서사의 매듭을 위해 너무나 손쉬운 편의주의를 택한 게 아닐까? 이때 우리에겐 최동훈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지 상상해 볼 기회가 생긴다. 사실 현대에 들어서 SF 장르가 영화로 구현될 때, 창작자들은 딜레마에 직면한다. 인류의 터전이나 정체성과 직결된 근미래의 위기를 그려내자니, 60년대 이후 제작된 수많은 영화들이 닳도록 반복해온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최근 들어선 인류의 결핍과 욕망 등이 실현되는 평행 우주를 통해 SF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최동훈의 SF 영화는 무엇일까? ‘외계+인’ 시리즈는 로봇 아닌 로봇, 신선 아닌 신선, 인간 아닌 인간, 과거 아닌 과거, 현재 아닌 현재 등 '~아닌 ~' 혹은 '~답지 않은~'이라는 구조로 귀결되는 요소들의 배열을 고집한다. 기계와 인간형을 오가며 모습을 바꾸던 로봇 썬더(김우빈), 인간의 신체에 자유자재로 스며드는 사이보그 가드(김우빈), 역시 인간을 숙주로 삼는 외계인들까지. 이뿐만이 아니다. 로봇이 로봇답지 않은 대사를 내뱉고, 현실에 현실 같지 않은 그래픽 요소가 개입되고 있다. 고려 말에 롤렉스 시계와 권총이 너스레를 떨듯 등장하고, MCU의 '앤트맨'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크기 변환 액션 신이 신선 흑설(염정아)의 청동 거울을 통해 구현되는 등, 상식 선에서 납득 불가능한 인공적인 조작이 계속되면서 관객들을 얼마간 당황시키거나 낯설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두 편의 ‘외계+인’에는 관객들이 각자 품던 기대감과 실망감이 교차할 때 피어나는 묘한 리듬이 지배한다. 현실을 풍자하거나 사회상을 도려내거나 완벽한 판타지 대서사를 펼쳐낼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이질적인 요소들이 충돌할 때 피어나는 리듬을 통해 관객에게 어떤 쾌감을 전달하고자 한다. 다시 ‘외계+인 1부’를 떠올려 보자. 시공간 표지를 특정하는 순간, 영화는 현실과 호응하는 조건을 부여받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 1380년과 2022년 9월은 현실의 그것과 얼마나 같거나 다른지, 혹은 현실의 그것과 얼마나 가깝거나 먼 지 가늠할 기회가 생긴다. 문제는 어느 쪽으로 보든 <외계+인 1부>의 시간은 현실과 원활하게 소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는 점. 그 이유는 외계+인 시리즈에서 각각의 시대는 그저 배경으로만 작동할 뿐, 인물들이 왜 그 시점에서 그런 사건에 연루되는지 관객들을 납득하는 데엔 실패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외계+인’ 시리즈가 오가는 시공간대의 조합이 굳이 고려 벽란도와 현대의 서울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깊이 있는 작품성을 구현하려는 창작자의 야망보다는 오랜 기간 흥미를 품어온 자신의 취향을 곳곳에 심어놓고 만족하는 한 덕후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가령 2부의 칼집 액션 신은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영화의 전개 상 없어도 되는 구간이지만, 감독이 그런 형태의 액션을 구현하는 데 매력을 느꼈기에 삽입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외계+인’은 관객들이 정의하는 최동훈이 아니라, 최동훈이 정의하는 최동훈을 드러내려는 영화에 가깝다. ‘외계+인’에 이은 그만의 세계관이 어떻게 요동치고 팽창할지 기대가 된다.
성남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성남미디어센터가 스크린 속으로 산책을 떠나 일상 속 호흡을 맞추고 숨을 가다듬는 특별한 영화제를 개최한다. 성남미디어센터는 오는 22일부터 3일간 성남아트센터 내 큐브플라자 2층 야외 원형광장과 큐브플라자 3층 미디어홀에서 ‘2023 성남다시영화제’를 개최한다. ‘성남다시영화제’는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제 기획에 관심 있는 성남미디어센터 청년영화기획단이 작품 선정부터 세부 프로그램까지 모두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2023년 경기도 소규모영화제 지원사업 공모 선정으로 1천5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는 ‘다시-, 호흡’이란 슬로건으로 국내외 장․단편 영화 총 15편을 상영한다. 청년영화기획단의 참신한 시각으로 선정한 작품들을 통해 평소 접하기 쉽지 않은 독립영화들과 친숙해지고 독립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시간을 만든다. 먼저 22일 큐브플라자 2층 야외 원형광장에서 새로운 시작의 메시지를 담은 장편 ‘종착역’으로 영화제의 문을 연다. 23일에는 다큐멘터리 ‘삼각형의 마음’에 이어 다양한 개체와의 호흡을 주제로 하는 단편영화 6편을 오후 3시부터 연속 상영한다. 저녁 7시 30분에는 해외 장편으로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경쟁후보작에 오르기도 한 ‘레토’를 관람할 수 있다. 영화제 마지막 날인 24일에는 성남시민이 제작하거나, 성남에서 촬영한 단편영화 5편을 만날 수 있고,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드의 디즈니월드 인근 모텔에서 살아가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현실 세계를 그린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끝으로 영화제의 막이 내린다. 이외에도 야외에서 호흡을 가다듬어보는 ‘원데이 명상 클래스’(23일), 신승은 영화감독과 임종우 평론가가 함께하는 영화와 삶의 호흡 맞추기를 주제로 ‘라이브공연+시네 토크’(24일)도 진행해 영화제를 찾는 시민들에게 더욱 특별한 시간을 선사할 예정이다. 재단 관계자는 “‘성남다시영화제’가 시민들의 꾸준한 관심 속에 성남의 다양한 공간에서 진행하는 대표적인 야외 영화제로 규모도 커지고, 특히 영화에 관심 있는 지역 청년들에게 시민 프로그래머나 모더레이터로 지속적 참여해 전문가로 성장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된다”고 말했다.
톰 크루즈가 여름철 극장가 열전의 포문을 열어젖힌 가운데 연이어 개봉하는 대작들이 달궈진 분위기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12일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이하 ‘미션 임파서블 7’)은 영화계 대체불가의 아이콘 톰 크루즈의 모습을 보러온 관객들을 사로잡으며 극장가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덧 톰 크루즈하면 관객들은 모두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극한의 액션을 떠올린다. 톰 크루즈는 1996년 서막을 알린 ‘미션 임파서블’부터 30년 가까이 시리즈 속 첩보 요원 에단 헌트를 연기하면서 배역과 혼연일체된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촬영 때 대역을 쓰지 않은 채로 비행기에 매달리기도 하고 오랜 시간 잠수하는 등 매 편 과감한 시도를 통해 화제를 모았다. 이번 7편 역시 60세가 넘은 톰 크루즈의 건재함이 드러나고 있는데, 특히 그가 오랜 시간 맡은 역할을 통해 관객들과 배우 사이의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입소문이 끊이질 않고 있다. 톰 크루즈가 분위기를 달궜다면 이제 류승완 감독이 불을 지필 차례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밀수’는 ‘부당거래’, ‘베테랑’, ‘모가디슈’ 등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들에서 화려한 배우진을 기용하면서도 범죄, 코미디, 액션 등 장르 요소를 배합하고 나열하는 데 있어 감독 특유의 리듬감이 돋보였던 만큼, 이번 영화 역시 여름 극장가 시즌에 맞춰 관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군천 앞바다를 누비는 해녀 춘자와 진숙이 공장이 들어서면서 생계에 위협을 받자 위험에 가담해 범죄에 휘말리게 되면서 영화가 전개된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두고 갈수록 사람들 사이의 교류가 늘어가면서 의심과 배신이 난무한다. 류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70년대를 담아내는 시대극을 택했으며, 바다 속에 던진 물건을 건져올려 밀수판에 뛰어드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필모그래피 내내 계속해서 장르의 쾌감과 한국 근현대사 속 시대상을 겹쳐놓는 방식으로 영화 세계를 구축해 온 감독의 스타일이 관객들을 사로잡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 '범죄도시3'가 개봉 32일째인 1일,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일 오후 수원특례시 한 영화관에서 시민들이 영화표를 구매하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895년 처음 인류와 만난 영화는 태생부터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었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반응할 사람이 없다면, 그 영화는 상영되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편의 영화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상영되면서 전 세계 어느 누구와도 만나는 소통의 창이 됐습니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스크린을 벗어날 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영화광장’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 사람을 말하는 시간입니다. 격주 주말, 영화광장으로 모여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지난 29일 개막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의 상영작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영화는 캐나다 출신 영화감독 브랜든 크로넨버그의 세 번째 장편 영화 ‘인피니티 풀’(2023년)이다. 오는 9일까지 이어지는 BIFAN에서 세 차례 상영된다. 30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심야상영 섹션에서 객석과 만난 뒤 이어 2일과 9일에도 만나볼 수 있다. ‘인피니티 풀’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크로넨버그’라는 이름 때문이다. ‘크로넨버그’는 국내를 비롯한 유럽권 영화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캐나다의 영화감독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다. 그는 신체 변형과 바디 호러 장르, 인간의 원초적인 폭력, 성욕 등 본능의 영역을 다루는 데 있어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구축했다. ‘비디오드롬’(1983년), ‘플라이’(1986년), ‘엑시스텐즈’(1999년) 등을 비롯한 20편이 넘는 장편을 연출해 마이너한 장르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 특히 BIFAN을 찾는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존재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네이키드 런치’(1991년)도 이번 영화제에서 만나볼 수 있어 관심이 모이고 있다. 브랜든 크로넨버그 감독은 바로 그의 아들이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연출가인 그는 현대인들의 뒤틀린 내면을 겨냥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2012년 ‘항생제’에 이어, 2020년 ‘포제서’로 아버지와 함께 거론되기 시작했던 그는 올해에도 ‘인피니티 풀’로 영화계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한 남자를 따라간다. 소설가 제임스 포스터가 글이 써지지 않아 창작의 영감을 얻고자 아내와 함께 어떤 섬의 리조트로 휴양을 가는데, 여기서 제임스는 섬에 얽힌 특별한 비밀을 마주한다. 이곳은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구금된 뒤 처형을 받아야 한다고 해도 돈만 지불하면 자신의 복제 인간을 대신 처형할 수 있는 법이 통용되는 곳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과연 내가 처형당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신체를 복제하는 과정에서 제임스는 환각상태와 무의식을 유영하는 신비한 경험 끝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난다. 이후 복제된 자신이 기둥에 묶인 채 끔찍하게 처형당하는 모습을 본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제임스의 복제본이 죽었는지, 제임스가 죽었는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침내 제임스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를 생각해본다. 그는 제임스일 수도 있지만, 제임스와는 관련이 없어져 버린 무수한 복제품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가 과연 어떤 감정과 생각을 품고 있을까? 관객들은 그 존재에 관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 감독은 질문하고 있다. 브랜든의 영화에서 사람들은 프레임의 중앙보다는 가장자리에 위치할 때가 많다. 식당에서 마주 보고 저녁을 먹을 때도, 직장에서 상사와 업무로 대화할 때도 카메라는 사람을 왼쪽이나 오른쪽 하단으로 몰아넣는다. 그렇게 영화 속 사람들은 어딘가 불안한 상태에 놓이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불안하게 보이게 하는 것일까. 왜 이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혼란에 직면해야만 하는 걸까. 그는 지난 작품들에서도 개인의 내면을 파고들었을 때 만날 수 있는 뒤틀린 사회상을 영화로 보여줬다. ‘항생제’ 속 대중들은 연예인을 동경하는 뒤틀린 팬덤 문화의 극단적인 예시를 드러낸다. 연예인이 앓았던 질병의 바이러스를 거리낌 없이 몸에 주입해서 그들의 고통마저도 함께 느끼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스크린에 맺힌다. 두 번째 영화 ‘포제서’에는 타인의 정신과 육체에 접속해서 그 사람을 조종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인피니티 풀’은 그런 점에서 전작에서 다뤘던 소재를 다시 한 번 불러낸다. 정신과 육체를 지배당하든, 복제가 되든 도대체 진짜 ‘나’는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 것일까. 감독은 이때 원인을 들여다보는 대신 병들어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방식에 특별히 집중했다.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는 대신 혼돈과 변형의 과정을 겪는 존재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묘사한다는 점이 그의 영화에선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왜 병든 인간들을 자꾸만 스크린으로 불러내고 있을까? 인간을 병들게 하는 건 문명에 깊게 뿌리내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사회구조다.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 멀쩡히 녹아들기 위해선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고, 집단에 녹아들 수 있는 판단력과 융통성, 적응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여기서 낙오된다면 사회는 이들을 받아줄 여유가 없다. 브랜든의 영화는 사회의 통념과 그 정신없는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채 혼자만의 세계에서 방황하거나 신음하는 영혼들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895년 처음 인류와 만난 영화는 태생부터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었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반응할 사람이 없다면, 그 영화는 상영되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편의 영화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상영되면서 전 세계 어느 누구와도 만나는 소통의 창이 됐습니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스크린을 벗어날 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영화광장’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 사람을 말하는 시간입니다. 격주 토요일, 영화광장으로 모여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면, 바로 발생 가능한 미래의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관객들을 은근슬쩍 속인다. 길복순(전도연)은 영화 시작부터 죽는다. 길복순이 야쿠자 오다 신이치로(황정민)와 일본도로 싸우는 첫 액션 시퀀스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길복순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건 상상 속의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생존 가능성이 낮은 선택에 베팅하지 않고, 확실한 경우의 수를 택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길복순의 모습이다. 길복순은 늘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생존법을 찾아낸다. 사실 그가 딛고 선 세상이 너무 각박하기에, 자타공인 청부업계 최고의 킬러 길복순은 늘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을 의식해야만 한다. 길복순의 모습은 자연스레 현실 속 전도연 배우와 겹친다. 후배 연기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살벌한 경쟁판에서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배우 전도연 역시도 매 순간 길복순처럼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것만 같다. 아니, 바꿔 말하는 게 맞다. 길복순은 전도연처럼 행동하고 있다. ‘길복순’은 길복순의 생각과 감정을 훑어보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다 놓쳐도 길복순의 서사는 붙잡고자 한다. 이때 길복순에게 부여된 설정들은 대부분 배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이 지닌 특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길복순'은 길복순의 영화라기보다는 전도연의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전도연이 나와야만 한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 역시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전도연을 염두에 둔 채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길복순이 킬러이자 평범한 엄마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현실 속 연기자와 엄마를 오가는 전도연의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길복순’이 굳이 액션 영화일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액션 영화에선 배우의 액션 소화력에 따라 영화가 뿜어내는 매력이 달라지는데, 이 영화 속 전도연이 보여주는 액션은 디렉팅의 문제인지 액션 구성의 문제인지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나열되는 액션은 장르의 쾌감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조형에 크게 관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전도연이 촬영해야만 그 존재가치를 얻는 영화인 ‘길복순’은 사실 액션만 놓고 보면, 꼭 전도연이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데엔 실패한다. ‘길복순’의 액션은 키아누 리브스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숨 가쁘게 찍은 ‘존 윅’ 시리즈나 톰 크루즈가 부상위험에 노출되면서도 대역 없이 촬영에 임했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키아누 리브스가 아닌 존 윅의 액션을 상상할 수 없고, 톰 크루즈가 아닌 에단 헌트의 액션을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길복순의 액션 만큼은 전도연의 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길복순’에서 나열되는 무색무취 액션 장면이 오히려 전도연과 길복순이 놓인 피비린내 풍기는 경쟁사회를 은유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길복순’의 세계관은 다른 킬러 영화들처럼 다소 황당무계한 측면이 있지만, 그조차도 어쩌면 전도연과 길복순을 오가는 어떤 존재가 딛고 선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길복순의 삶은 그만큼 고달프고, 전도연 역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갈 즈음, 딸을 바라보는 길복순의 표정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의 영화감독 미야케 쇼가 연출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지난 14일 개봉해 극장가를 잔잔하게 물들이고 있다. 미야케 쇼 감독과 주연을 맡은 키시이 유키노 배우가 지난주 각종 GV 행사에 참석하는 등 내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청각 장애를 안고 사는 복서 케이코의 일상을 가만히 따라가는 영화. 케이코는 묵묵히 아침 운동 루틴과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일상의 몇몇 위기를 넘기고, 동료와 친구나 가족을 만나 일상을 나눈다. 이 속에서 관객들은 흔한 스포츠 영화의 성장담이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서사의 강박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얻는다.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엔 공간이 있고,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숨쉬고 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복싱이라는 운동을 소재 삼아 극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복서 케이코가 아닌, 사람 케이코의 시공간을 담는 데 집중한다. 회원이 떠나가 폐업 위기에 처한 체육관 근처의 골목길, 밤공기를 뚫고 달리는 철도와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강둑. 감독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찍기 전에 공간 자체를 충분히 응시한 뒤, 사람들을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인다.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년)에서 감독은 상실과 허무를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는 청춘들의 초상을 담아냈다. 안정적인 직업도 없고, 불안정한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엇갈리고 위로받거나 계속해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은 그의 영화에서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이번 영화 역시 전작에서 보여줬던 태도, 즉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여겼던’ 감독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에 따라 이번 영화도 농인 복서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특별히 부각하려 들지 않고, 농인이 청인들과 어울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영화와 스크린 바깥의 삶을 연결할 방법을 찾아낸다. 미야케 쇼 감독에게 있어 영화는 허구의 세계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무심결에 떠나보냈던 현실 속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창구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집과 터전을 잃었거나 홀로 남겨진 우주 떠돌이들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면서 또 하나의 가족을 이루는 이야기. 지난 3일 세 번째 챕터가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지탱하는 힘은 가족 서사에서 출발한다. 공교롭게도 영화는 가족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하는 가정의 달 5월에 관객과 만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우주의 부랑자들이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게 된 과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냈던 1편, 가족 내에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가족 구성원 사이의 유대감을 들여다봤던 2편에 이어 찾아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이하 ‘가오갤’)는 시리즈의 마무리에 걸맞게 피할 수 없는 가족의 해체와 종말을 담아낸다. 피터 퀼(스타로드), 드랙스, 가모라와 맨티스 등 시리즈를 함께해온 이들은 각자 꾸려나갈 삶의 남은 페이지를 위해 홀로서기를 택한다. 떠날 이는 떠나고, 남은 이는 또 다른 이들과 연대한다. ‘가오갤’은 분명 가족의 끝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이들에게 끝은 없다. 종착지가 없다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하다. 마음을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한 존재들은 서로 의지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었지만, 집단이 해체된 이후엔 어디로 향할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누구를 가족 구성원으로 여겨야 하며, 가족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이때 가족이 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살피기보다 가족이 없을 때를 바라보는 게 중요하다. 영화 속에서 피터가 목숨을 걸고 회수해온 마이크로소프트의 MP3플레이어 준(Zune)에 담긴 음악을 떠올려 본다. 로켓은 피터가 지구에서 가져온 음악을 듣는다. 관객도 그 음악을 함께 듣는다. 피터는 지구에서 자신을 길러준 할아버지를 만나러 로켓의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이 남았다. 보이지 않아도 연결돼 있다는 감각을 환기할 수만 있다면,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다. 곁에 있지 않을 때 오히려 선명해지는 게 가족이다. 가족은 구구절절 표현을 더해가며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 각자 온몸으로 느껴야만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오갤 시리즈가 3부작으로 빚어낸 가족이 해체되는 모습. 이 서사가 오히려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의미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본격적인 여름을 앞두고 액션 영화 대전이 예고됐다. 지난 17일 개봉한 ‘분노의 질주’ 프랜차이즈의 열 번째 영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이하 ‘분노의 질주 10’)에 이어 오는 31일엔 확장과 변주를 거듭하는 마동석 유니버스의 최신작 ‘범죄도시 3’가 극장가를 찾는다. 먼저 개봉 이후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분노의 질주 10’이 액션의 스케일과 무게감을 강조하면서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2001년 길거리 레이서들의 우정과 사랑, 낭만 가득한 자동차 경주를 담아내면서 시작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는 4편을 기점으로 액션이 강조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러 거대한 프랜차이즈가 됐다. 갈수록 시리즈를 대변하게 된 또 하나의 테마는 ‘가족’이다. 이번 영화에서도 역시 도미닉 토레토의 아들뿐 아니라 그간 아홉 편의 영화에서 꾸준히 얼굴을 비쳤거나 스쳤던 인물들이 총출동한다. 마동석의 매력을 물씬 품은 ‘범죄도시’ 시리즈도 어느덧 세 번째 챕터로 찾아온다. 지난해 개봉했던 2편의 베트남 사건 이후 7년 뒤, 마석도 형사(마동석)가 서울 광수대로 보직을 옮겨 여러 배후가 얽힌 신종 마약 사건을 담당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담겼다. 배우의 신체적인 특성을 한껏 살린 마동석표 액션으로 호평 받았던 지난 작품들처럼 이번 영화에서도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타격감을 느낄 수 있다. 점차 견고하게 확장을 거듭하는 마석도 유니버스의 매력 또한 볼거리다.
감독: 일리야 나이슐러 출연: 밥 오덴커크, 코니 닐슨, 크리스토퍼 로이드 등 줄거리: 비범한 과거를 숨긴 채 평범한 가장으로 착하게 살고 있던 '허치'가 일상에서 참고 억눌렀던 분노가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노필터 액션 영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완성한 액션 영화 '노바디'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액션'이다. 액션의 신기원을 이룩한 '존 윅' 시리즈를 탄생시킨 데릭 콜스타트가 각본가 겸 제작자로 참여했고, '데드풀 2' '분노의 질주: 홉스&쇼'의 데이빗 레이치 감독이 제작자로 가세했다. 여기에 풀타임 1인칭 액션으로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하드코어 헨리'의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이 더욱 완벽한 액션을 완성시켰다. 특히 주연배우인 밥 오덴커크는 약 2년간의 강도 높은 훈련까지 소화해야 했다. 훈련을 지켜 본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은 "모든 액션들이 '허치' 그 자체였다. 나는 '노바디'가 특별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달콤한 인생'과의 상관관계 한국영화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리야 나이슐러 감독은 스스로 "한국의 스릴러 액션에는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팬임을 저처했다. 이 때문에 그는 밥 오덴커크에게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을 추전하기도 했다고. 덕분에 '노바디'는 국내 팬들에게 왠지 모를 익숙함을 선사한다. 물론, 화끈한 액션 역시 충분한 볼거리가 돼 국내 관객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찰떡같은 OST 영화에 빠질 수 없는 OST는 '노바디'가 내세우는 주요 관람포인트 중 하나다. 액션이 주요 장르인만큼 영화에는 특유의 쾌감을 느끼게 해 줄 신나는 OST가 등장한다. 특히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나 리버풀FC의 응원가로 유명한 'You'll Never Walk Alone' 등은 액션의 스타일리시함을 증폭시킨다. 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인기 넘버 'The Impossible Dream'도 절대 놓쳐서는 안될 OST 중 하나다. 개봉: 4월 7일 장영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