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영화감독 미야케 쇼가 연출한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 지난 14일 개봉해 극장가를 잔잔하게 물들이고 있다. 미야케 쇼 감독과 주연을 맡은 키시이 유키노 배우가 지난주 각종 GV 행사에 참석하는 등 내한 일정을 소화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청각 장애를 안고 사는 복서 케이코의 일상을 가만히 따라가는 영화. 케이코는 묵묵히 아침 운동 루틴과 훈련 일정을 소화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일상의 몇몇 위기를 넘기고, 동료와 친구나 가족을 만나 일상을 나눈다. 이 속에서 관객들은 흔한 스포츠 영화의 성장담이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서사의 강박 대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얻는다.
미야케 쇼 감독의 영화엔 공간이 있고, 시간이 흐르고, 사람이 숨쉬고 있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은 복싱이라는 운동을 소재 삼아 극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복서 케이코가 아닌, 사람 케이코의 시공간을 담는 데 집중한다. 회원이 떠나가 폐업 위기에 처한 체육관 근처의 골목길, 밤공기를 뚫고 달리는 철도와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 강둑. 감독은 이곳을 오가는 사람들을 찍기 전에 공간 자체를 충분히 응시한 뒤, 사람들을 스크린 안으로 불러들인다.
전작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18년)에서 감독은 상실과 허무를 떠안은 채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텨내는 청춘들의 초상을 담아냈다. 안정적인 직업도 없고, 불안정한 인간관계 속에서 서로 엇갈리고 위로받거나 계속해서 흔들리는 젊은이들은 그의 영화에서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하면서 생명력을 얻었다. 이번 영화 역시 전작에서 보여줬던 태도, 즉 ‘사람을 그저 사람으로 여겼던’ 감독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에 따라 이번 영화도 농인 복서가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을 특별히 부각하려 들지 않고, 농인이 청인들과 어울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면밀히 관찰하면서 영화와 스크린 바깥의 삶을 연결할 방법을 찾아낸다. 미야케 쇼 감독에게 있어 영화는 허구의 세계를 쌓아 올리는 과정이 아니라, 무심결에 떠나보냈던 현실 속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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