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초대석] 인천상공회의소 김광식 회장

부족한 저에게 회장 연임이라는 영광을 안겨 주신 동료 상공의원님들과 지역 상공인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역 경제의 최일선에서 회원기업의 대변자, 시정부의 경제 정책 파트너로서 경제 침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우리 기업이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방호벽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인천상공회의소 21대 회장으로 연임하게 된 김광식 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취임 각오를 밝혔다. 김 회장은 2008년 8월, 전임 회장의 임기를 이어받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이래 특유의 열정과 인화력으로 인천지역 경제계를 이끌고 있다. 각종 규제로 기업들 하나 둘 떠나백년대계 위해 전면 재검토 바람직 김 회장은 인천지역 경제가 예전보다 활력을 잃고 있다면서 취임 전 부터 인천지역에서 창업해 성장하고 지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던 기업들이 하나 둘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그는 무엇보다 수도권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가 문제라고 지적하며심지어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경제자유구역과 낙후지역인 강화마저도 수도권 규제를 받는 실정이다. 수도권 규제에 대하여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수도권 규제와 도심 개발로 인해 이전이 불가피한 기업들이 저렴한 공장 부지를 찾아 지방이나 해외로 이전하면서 인천지역의 제조 역량과 고용 기반이 축소되고 지역 경제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하지만, 김 회장은 수도권 규제를 탓하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지역 경제 발전을 포기하는 것인만큼 힘들더라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에 대한 방안으로 김 회장은 2008년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각계에 저렴한 공장 부지를 공급해줄 것을 촉구하는 한편, 관련업계와 함께 직접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권 규제와 접경지역 규제라는 이중규제로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의 지속적인 위축을 초래해 돌파구가 필요했던 강화군이 산업단지 조성 계획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강화군에 인천상공회의소 산업단지 직접 조성을 제안한다.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돌파구 마련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인천상공회의소와 강화군의 의지가 합해지면서 강화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시작됐고, 이후 인천시를 비롯한 관련기관의 적극적인 협조와 실수요 업체들의 호응, 그리고 산업단지 개발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현대엠코가 사업에 참여하면서 강화일반산업단지 개발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인천 강화군 월곶리, 옥림리 일대 452,301㎡ 부지에 약 1천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조성하는 강화일반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인허가 과정이 막바지 단계에 이르면서 올 상반기 중에 첫 삽을 뜰 예정이다.이렇게 되기까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김회장은 특유의 추진력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특히 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부동산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존 산업단지 개발과는 전혀 다른 실수요자 맞춤형 산업단지 개발방식을 채택, 개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의 과다책정 등 각종 거품 요소를 완전히 제거해 저렴한 비용(원가)으로 최적의 공장부지를 실수요자들에게 제공할 수는 기반을 마련했다.이러한 헌신과 노력의 결과로 인허가 이전인데다 토지 보상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70% 가량 분양이라는 놀라운 실적을 거뒀다. 김 회장은 기업 지원과 관련해서도 많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 회원사 체감할 수 있는 실사구시형 서비스 먼저 기업을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 변화를 지적하면서 우리 기업들이 급변하는 환경 변화에 따라 가기에는 내부 역량이 부족하다며 상공회의소 차원에서 기업이 환경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만들기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김 회장은 2010년 전국 최초로 FTA활용센터를 만들어 기업들이 FTA 환경에 적응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지식재산 창출을 위한 지식재산센터 사업 확대에도 힘을 쏟고 있다. FTA활용센터나 지식재산센터는 우리 기업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으로 인천상공회의소는 다른 어떤 도시 보다 앞서서 이 같은 사업을 추진, 전국적인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김 회장은 인천지역 기업이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해 생산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기업인들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면서 실사구시형 서비스를 강조하기도 했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 문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경제문제이자 사회문제인 실업난 해소를 위해 기업 맞춤형 인재를 양성해 기업에 공급하는 한편, 기업이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분위기를 조성, 기업인들의 사기를 북돋고 대중소기업 간 협력체계를 구축해 상생경영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이러한 과제 해결은 혼자 이루어 내기는 어렵다며 지역 기업인인천시민 모두의 협조와 격려를 당부한 김 회장은 임기 중 인천지역 경제 발전에 조그만 디딤돌이라도 놓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거듭 나타냈다. 글 _ 김창수 기자 cskim@kyeonggi.com

[길을걷다] 재력가 모여살던 富村 ‘인천판 성북동’

송학동은 부자 동네였다. 사람 키 서너 배 넘게 쌓은 돌축대와 담쟁이로 둘러싸인 높은 담장, 그리고 넓은 정원과 육중한 철문.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저택들이 바다를 향해 자리잡고 있었다. 어쩌다 자유공원에 놀러갔다가 그곳을 한번 기웃거리기라도 하면 대문 앞에서 자가용을 닦으며 사장님을 기다리던 운전수의 눈초리가 여간 무서웠던 게 아니다. 실제로 45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지낸 곽상훈씨 등 고관대작이나 항만관련 사업을 하던 경제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였다. 서울사람들이 이 동네를 지나가면서 인천에도 성북동 같은 동네가 있네 하고 의아함과 놀램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동네가 바로 송학동이다. 100년 추억의 아카이브, 홍예문송학동은 동네 자체가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송(松) 자로 시작하는 송현동, 송림동, 송월동과, 학(鶴)자 돌림의 청학동, 선학동, 문학동과 헷갈려 정작 인천 사람들도 그 위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중구 송학동은 자유공원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앞 쪽으로 막힐 게 없어 인천 앞바다가 고스란히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다.반세기 동안 송학동의 모양은 많이 변했지만 이 동네의 풍치를 그런대로 간직하게 하는 것은 100년 세월의 이끼가 덕지덕지 묻어있는 돌문 때문이다. 이 문은 윗머리가 무지개 형상을 했다고 해서 홍예문(虹霓門)이란 예쁜 이름을 얻었다. 이름에 걸맞게 담쟁이 넝쿨이 계절에 따라 고즈넉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지만 이 문은 슬픈 역사를 품고 있다.1883년 개항 후 중앙동, 신포동 일대에 터를 잡은 일본 거류민들은 전동과 만석동 방면으로 그 영역을 넓히기 위해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문을 내게 된다. 일본조계에서 경인철도의 축현역(현 동인천역 부근)으로 우마차를 이용해 물건을 쉽게 옮길 수 있는 지름길도 필요했다.1905년 일본 공병대가 암석 폭파 등 토목공사에 앞장섰고 중국인 석수장이와 한국인 노무자를 동원하는 등 난공사 끝에 3년이 지난 1908년에 완성했다. 지금도 문 앞 벽에는 쪼아내다 만 거대한 암석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응봉산 마루턱에 있는 홍예문은 한때 인천의 풍광을 갈라놓았다. 북쪽의 송현동, 화수동의 허름한 집들과 남쪽 송학동, 중앙동 쪽의 이국풍 저택들이 대비감을 주었다. 항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시원한 골바람이 불어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겨울이 되면 이곳은 눈썰매장이 된다. 개구쟁이들은 비닐 포대를 타고 이곳에서부터 하강하기 시작하면 단숨에 아랫동네 중앙동까지 다다른다.홍예문에는 전설 같은 사연들이 있다. 고일 선생이 쓴 인천석금에 따르면 해방 후 송건영이라는 청년이 영화에서 본대로 우산을 쓴 채 이곳에서 뛰어내렸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60년대 기계체조 선수였던 유병덕(당시 61세)씨는 가끔 홍예문 위 난간을 잡고 물구나무서기를 해 지나가는 사람들의 간을 콩알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재밌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홍예문의 높이는 13m이다. 70~80년대 까지만 해도 시내에서 이만한 높이의 개방된 건축물이 별로 없었다. 이게 문제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이곳에서 몸을 던졌다. 사고가 이어지자 이후 높다란 철책이 둘러쳐졌다.당시 동인천 쪽으로 통학하는 인성여고생들은 자살사건이 나면 한동안 이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신포동 쪽으로 돌아서 다니곤 했다.10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6.7m의 폭은 그대로다. 당시 우마차는 교차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자동차로는 어림없다. 이 돌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잠시나마 서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라고 묵묵히 얘기 하고 있다. 문화재급 공원매점 홍예문 위쪽에서 신포동 쪽으로 내려가면 이국적으로 생긴 내동 성공회성당이 나온다. 성당이 위치한 응봉산의 동쪽 줄기를 예전에는 약대이산이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약대인(藥大人)산에서 와전된 것이다.야트막한 산이지만 당시 인천인들의 마음속에는 거봉으로 우뚝 솟아있다. 미국인 청년 랜디스는 뛰어난 의술과 따뜻한 인간애로 병으로 신음하던 많은 인천사람들을 위해 불철주야 진료활동을 펼쳤다. 밀려드는 환자를 혼자 감당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안타깝게도 1898년 32세의꽃다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를 약대인(藥大人)이라고 불렀다. 그는 죽어서도 인천을 떠나지 않았다. 현재 연수구 청학동 외국인묘지 양지 바른 곳에 잠들어 있다. 성당 뜰에는 한때 이곳이 성(聖)누가병원이었음을 알리는 영국병원이란 오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바다와 항구를 시원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공원은 한때 인기 있는 신혼여행지였다. 이제는 소일거리 없는 노인들이 공원에 나와 왕년에 내가 말야 하며 서로 말동무를 자처한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치고 맥아더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이데올로기 논쟁에 지친 것일까, 아니면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일까. 월미도쪽을 응시하고 있는 장군의 눈매도 이젠 힘이 없어 보인다.이 공원의 풍경을 더욱 더 빛바랜 사진처럼 보이게 하는 소품 중 하나는 공원매점이다. 학도의용대 기념탑 옆에 있는 정자처럼 생긴매점은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한다.반가운 마음에 매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집이 몇년이나 됐습니까? 공원에 놀러 오는 할아버지들이 그러시는데 50년은 족히 됐고 60년이 넘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데요. 아, 문화재감이네. 온 식구가 공원에 나들이 오는 날은 분명 집안에 경사가 있거나 먼 곳에서 친척이라도 온 날이다. 그날 아이들은 이 매점에서 평소에 갖고 싶었던 장난감 총이나 바비 인형을 하나 챙겼으리라. 매점 옆에는 철제 탑이 높이 세워져 있다. 하나는 TV난시청 중계탑이고 또다른 하나는 8개의 확성기가 달려 있는 사랑의 탑이다. 1965년 인천로터리클럽에서 세운 이 탑은 80년대 말까지 매일 밤 10시만 되면 사방팔방으로 계도방송을 했다. 청소년 여러분,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가정으로 속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공원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갈 정도였다. 당시 계도방송을 들었던 청소년들은 이제 자신의 아들, 딸, 혹은 손녀, 손자의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나이가 될 만큼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낯가림 심한 송학동공원광장에서 남쪽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중간에 양철지붕을 얹은 서양식 건물 하나가 있다. 러시아인 건축가 사바찐의 설계로 1901년 세워진 제물포구락부이다. 구락부라는 말은 영어 클럽(club)의 일본식 발음에 의한 것이다. 주한 미국공사 알렌의 부인이 은제 열쇠로 출입문을 여는 것으로 활동이 시작된 이곳은 1913년까지 독일, 영국, 러시아, 미국 등 서양인들의 사교장으로 사용되었다. 내부에는 사교실, 도서실, 당구대 등이 있고, 밖에는 테니스장이 있었다고 한다. 보름마다 무도회를 열면서 식사도 하고 춤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최근 이곳은 천장에 샹들리에를 달고 한쪽에는 당시 분위기대로 외국인들이 차와 술을 마시던 바를 되살려 스토리텔링 박물관으로 새롭게 오픈했다. 4대의 대형 화면에서는 경인선 개통 모습, 러일전쟁의 모습 등 한 세기 전 시대 상황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있다. 이 건물이 유명세를 탄 것은 2001년 김하늘과 고수가 출연한 드라마피아노의 무대였기 때문이다.한동안 드라마 촬영지를 알리는 표지판이 문 앞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구락부 아랫길에는 일본식 주택이 아직 몇채 남아있다. 그중에는 수아(김하늘 분)의 집으로 나왔던 파란대문집도 있다.드라마가 한창 상영될 때 담쟁이넝쿨을 뒤집어 쓴 이 2층 집은 팬들이 적어 놓은 글씨로 빼곡했다. 10년이 되었건만 봄 햇살을 받은 창문으로 수아가 해맑은 얼굴을 내밀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수줍음 많은 수아처럼 송학동은 아직도 낯가림이 심한, 그런 동네다. 글 _ 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사진 _ 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CEO성공스토리] 인텔라(주) 이은철대표

1980~90년대 한국 사격의 간판스타로 84년 LA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국내 선수 최다인 5회 연속 올림픽 출전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소구경소총 복사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사격의 전설 이은철대표(45인텔라(주)). 이 대표는 현역시절 국내 사격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스타 출신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男 소구경소총 복사 금메달지금은 연매출 100억 어엿한 사장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男 소구경소총 복사 금메달지금은 연매출 100억 어엿한 사장님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때 인천의 한 유원지에서 재미삼아 콜크마개 실탄의 공기총으로 인형을 맞춰 떨어뜨리는 놀이에서 재능을 보인 것이 인연이 돼 사격선수의 길로 접어들었고, 꿈나무 조기육성 프로그램인 제2회 전국 어린이사격왕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고교 1학년 때 미시간주 캠벨사격대회에서 7년간 패한 적이 없는 미국 1인자 론스 위거를 꺾은 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19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돼 이후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했다.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전공한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었다. 미사일과 인공위성 등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윈드리버시스템에 엔지니어로 입사했으나 미국 IT산업이 침체기로 빠져들며 회사를 옮기게 됐고 담당업무도 엔지니어에서 판매업무로 바뀌었다.이 대표는 아이피인퓨션이라는 회사의 한국대만 매니저로 일하면서 회사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비지니스 수완을 발휘했다. 2005년 12월 미국과 한국 업체를 연결해 제품을 판매하는 실리콘밸리테크라는 회사를 차려 운영하던 이 대표는 지난 2008년 이동통신사들이 사용하는 실내용 통합중계기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인텔라를 설립해 많은 특허를 출원하며 사세를 키운 끝에 올해 매출 100억원을 바라볼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사격선수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그는 이제 IT사업가로서 새로운 정상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그러나 이 대표의 꿈은 사업가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회사를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이끌어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뒤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3~4년 후에는 스포츠 유망주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다.이 대표는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주 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신데렐라로 떠오른 강초현의 어려운 가정환경을 접하고 후배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평소 해맑고 구김이 없던 강초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것을 알게된 그는 재능이 있으면서도 여건이 맞지 않아 운동을 그만두거나, 제기량을 펼칠 수 없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궁리한 끝에 그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단을 설립할 수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춰 재단을 설립하고 싶었다. IT회사를 차린 것도 이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그는 사격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뒤늦게 국제심판 자격도 취득했다.이 대표는 사격이라는 종목은 누군가 꾸준히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종목이다. 지금은 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분야가 발전할수록 투자는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또한 국제 파트와 재정 문제에서 나중에 국가의 역할을 대신 해줄 민간단체가 많이 생겨야 되는데, 우선은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되겠다 싶어서 자격증을 땄다며 국제사격연맹 임원 자격에도 자격증은 필수다. 우리 선수들이 국제 사격계에서 불이익 받는 일이 없도록 앞장설생각이라고 말했다.한편 이 대표는 우리 세대에는 국가관이 뚜렷해서 모든 사람이 절제하고, 열심히 하고, 희생하고, 그런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 세대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자신의 열망을 기반으로 운동을 하는 세대라며 요즘에는 김연아, 박태환 같은 천재성을 지닌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만, 목표의식이 없는 선수도 많아진 것 같다. 후배 선수들이 좀 더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그는 사격선수와 IT사업가로서의 성공비결에 대해 꿈과 목표 설정,그를 이루기 위한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특히 문교부 공무원 출신인 아버지가 항상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엄격히 독려했고, 운동선수로 대성하기를 바랬던 어머니는 목표를 향해 한눈을 팔지 않도록 강한 신념을 보이며 뒷바라지 한 것이 선수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놓았다.이와 더불어 미국생활 당시 살았던 텍사스에서는 무조건 운동을 잘한다고 운동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여가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C학점 이상 받아야 했다고 소개했다.단 한 과목이라도 C학점 밑으로 떨어지면 점수가 복구될 때까지 다른 것을 못하도록 한 규정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토록 했죠. 결국 선수 생활을 마친 후 IT분야로 진출하는 길을 만들어 줬다고 볼 수 있다.사업가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사격 국제심판과 대한사격연맹, 경기도체육회, 경기도사격장학회 이사로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대표에게서 남다른 열정과 미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글 _ 황선학 기자 2hwangpo@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직업교육을살리자] 상업·정보 준비된 인재 ‘현장에서 척척’

용인정보고등학교(교장 김철규)는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일하면 그 땀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한중락(汗中樂) 건학 이념으로 1974년 용인지역 최초의 사립 상업계고인 용인상업고등학교로 개교했다. 회계 및 금융분야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취업의 질적 수준을 높여온 용인상고는 지난 1997년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ICT 기술교육으로 실질적인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용인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 2003년 학교 평가 최우수학교로 선정됐다. 이후 2008년 용인정보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상업과 정보분야 선도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용인정보고등학교(교장 김철규)는 열심히 정성을 다해서 일하면 그 땀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한중락(汗中樂) 건학 이념으로 1974년 용인지역 최초의 사립 상업계고인 용인상업고등학교로 개교했다. 회계 및 금융분야 서비스 전문인력 양성을 통한 취업의 질적 수준을 높여온 용인상고는 지난 1997년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ICT 기술교육으로 실질적인 역량과 자질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자 용인정보산업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 2003년 학교 평가 최우수학교로 선정됐다. 이후 2008년 용인정보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상업과 정보분야 선도학교로 자리매김했다. 교사학생 우리가 지식정보화사회 주인공 한마음 교사학생 우리가 지식정보화사회 주인공 한마음 그동안 1만4천67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지난해 7월 경기도교육청 지정 ERP 및 E-비즈니스 분야 특성화고등학교로 선정되면서 미래사회를 주도할 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특히 직업교육의 선두주자로서 손색없는 선진교육을 펼치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교직원,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의 참된 역군이 되고자 열심히 준비하는 학생들, 그리고 다양한 최첨단 기자재가 어우러져 우수한 인적 자원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배움 중심의 교육과 올바른 인성교육을 통해 창의적인 직업 인재를 양성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ERP비즈니스분야 특성화과 운영용인정보고는 기업자원정보과(ERP)를 통해 창의적인 기술인을 육성하고 졸업과 동시에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 직업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업과 경영, 금융실무, 회계원리, ERP(전사적자원관리) 실무, 전산세무회계,K-IFRS 회계, 기업데이터베이스관리 등 기업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또 이와 관련된 자격증을 취득하고 정부기관 및 금융기관, 서비스업, 물류유통, 의료행정, 세무회계 등과 연관된 직업에 진출하도록 실무 위주로 교육하고 있다.글로벌 비즈니스과(E-비즈니스과)의 경우 21C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전통적인 경영 환경을 뛰어넘는 인터넷상의 각종 기업 경영에 필요한 기획,인사, 재무, 회계, 경영관리 등에 관한 지식과 인터넷 쇼핑몰 구축운영 능력을 키우고 있다. 멘토교사가 취업까지 책임지도외국어예절 등 교육 전문직업인 만들기특히 21세기를 주도할 창의적인 글로벌 비즈니스 리더 양성을 목표로 비즈니스 영어, 비즈니스 일본어, 비즈니스 중국어, 전산회계,전자상거래실무, 인터넷쇼핑몰관리, 창업실무, 인터넷 웹디자인, 멀티미디어실무, 비즈니스프레젠테이션, 인터넷 마케팅 등의 교육과정을 운용하고 있다.이를 통해 전자상거래운용사, 웹디자인기능사, 쇼핑몰 플래너, 유통관리사, 전산회계운용사, 기타 사무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비즈니스 분야의 실무능력과 지식기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맞춤형 진로지도로 전문성 강화용인정보고는 입학과 동시에 각종 진로관련 검사(직업흥미, 직업적성,직업가치관, MBTI 성격유형검사 등)를 실시하고 1:1 진로상담을 통해 학생의 흥미와 특성에 맞는 합리적인 진로계획을 수립,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 있다.또 진로상담노트를 학생들이 3년간 작성해 모든 학교생활을 누적관리하고 학생 개개인별 진로 포트폴리오가 구성 되도록 지도하고 있다.종합진로정보센터에는 진로상담교사, 취업담당교사, 취업지원관, 산학겸임교사가 상주해 카페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이 진로탐색과 각종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했다.무엇보다 용인정보고는 학생들의 직업에 대한 비전 및 정체성 확립과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 인재 육성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학생들의 취업 마인드 고취와 취업률 향상을 위해 다양한 직업교육 전문성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멘토교사와 함께하는 취업캠프, 동아리 발표회 및 자기소개서 경진대회, 에티켓 실천운동, 교내 창업경진대회, 쇼핑몰 플래너반, 취업정보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다.또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소양과 업무능력 구비를 위해 직장예절 교육 및 사무능력 신장 교육, 외국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학교기업 용인몰 운영불우이웃돕기지난 2010년 12월에 대표이사가 학생이고 학생들이 주축이 돼 직접 운영하는 학교기업(용인몰)을 오픈했다. 용인몰은 용인의 대표브랜드인 백옥쌀과 오미자를 판매해 월 매출액이 200만원에 이르고 순이익의 5%는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창업센터를 운영해 창업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자본 창업관 관련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창업준비, 쇼핑몰 구축 및 운영, 인터넷 마케팅 등 창업 관련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하고 창업 아이템의 타당성, 기대효과 등을 다양한 시각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했다. 글 _ 용인강한수기자 hskang@kyeonggi.com

[동호회탐방] 소외된 농촌주민의 ‘진정한 친구’

지난해 연인원 3만6천444명 658차례 농업농촌지역 봉사활동 지난해 연인원 3만6천444명 658차례 농업농촌지역 봉사활동 농촌 소외계층 옆에는 경기농협 농촌사랑봉사단이 있습니다경기농협 임직원 농촌사랑봉사단이 경기지역 농업인 및 지역사회 주민들과 동반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농촌사랑봉사단은 지난해에만 연인원 3만6천444명이 658차례에 걸친 농업농촌지역봉사활동을 벌이는 등 소외된 농촌지역사회를 보듬고 있다.농협경기지역본부에 따르면 경기농협 농촌사랑봉사단은 농업촌의 어려움에 대한 전사적 지원체계 구축 및 농협 임직원의 농촌사랑운동 역할 제고를 위해 2005년 3월 출범했다.현재 농협중앙회 32개 조직, 지역농축협 162개 조직으로 구성돼 연평균 2만5천명 이상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반 자원봉사 조직보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어려움에 처해있는 농업촌 현장에 제일 먼저 도착해 봉사활동을 시작한다. 특히 지난해는 국가적 재앙수준으로까지 확산된 구제역 종식을 위해 1월에 발대식을 조기 개최해 축산 농가의 구제역 방역활동을 시작으로 영농철수확철 일손부족 농가 영농지원, 재해복구활동, 소외계층 방문 자원봉사활동, 환경 정화운동 등 농촌과 지역사회를 위해 활발한 봉사활동을 실시해 축산농가에 희망을 줬다.국가적인 재난상황인 구제역 방역 활동에 농촌사랑봉사단 2만3천81명이 나서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추위에도 24시간 방역활동을 벌였다.한 임직원의 경우 주말 교육관계로 초소 근무가 어렵자 배우자(교사)가 초소 근무를 대신했고, 퇴직한 임직원이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방역활동에 동참했으며, 한사무소장은 여직원을 대신해 주말마다 4주간 연속 근무하기도 했다. 또 경기농협 임직원 농촌사랑봉사단 전원이 구제역 방역활동에 써 달라며 성금 4억9천800만원을 모아 피해지역 지자체 및 축산농가에 전달하기도 했다.지난해 중부지방에 내린 집중호우로 피해를 본 농가 돕기에도 농촌사랑봉사단이 앞장섰다.또 수해현장에 어김없이 경기농협 임직원 농촌사랑봉사단이 공무원, 군인, 자원봉사자와 함께 하우스 내 토사 제거,하우스 시설 해체정비, 농가주택 정비, 하천 둑 보수 등 농민의 조기 영농경영 복귀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수해복구 활동을 펼쳐 시름에 잠겨 있었던 농민에게 희망을 전해줬다.이밖에 경기농협 임직원 농촌사랑봉사단은 일손부족 농가를 위해 영농철에는 일손돕기 집중 지원기간으로 정하고 봄철 파종, 과수농가 꽃 수정열매솎기, (쓰러진) 벼 베기, 수확기 농작물 수확, 영농 폐비닐 수거 작업을 하는 등 농업인 실익 증대에도 이바지하고 있다.정연호 농협경기지역본부장은 경기농협 임직원 농촌사랑 봉사단은 앞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의 중심에 서서 농업농촌에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으며 사회공헌활동에 적극 참여할 계획이라며 농협 육성단체인 고향주부모임, 농가주부모임과 함께 본격적인 영농지원과 자원봉사활동을 다양하게 펼치며 농업인의 경영안정과 미래 농업농촌의 발전을 이끌어 가기 위해 경기농협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글 _ 이선호 기자 lshgo@kyeonggi.com

[병원탐방]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병원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기도 남서부의 바닷가에 위치한 의료법인 일선의료재단 화성현대요양병원(화성시우정읍 이화리 439-1)은 2011년 4월, 지상 8층 건물에 280병상 규모의 쾌적한 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환자중심의 병원에 중점을 두고 설립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족들의 평안이 늘 함께하는 병원으로 운영돼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기도 남서부의 바닷가에 위치한 의료법인 일선의료재단 화성현대요양병원(화성시우정읍 이화리 439-1)은 2011년 4월, 지상 8층 건물에 280병상 규모의 쾌적한 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환자중심의 병원에 중점을 두고 설립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족들의 평안이 늘 함께하는 병원으로 운영돼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기도 남서부의 바닷가에 위치한 의료법인 일선의료재단 화성현대요양병원(화성시우정읍 이화리 439-1)은 2011년 4월, 지상 8층 건물에 280병상 규모의 쾌적한 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환자중심의 병원에 중점을 두고 설립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족들의 평안이 늘 함께하는 병원으로 운영돼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기도 남서부의 바닷가에 위치한 의료법인 일선의료재단 화성현대요양병원(화성시우정읍 이화리 439-1)은 2011년 4월, 지상 8층 건물에 280병상 규모의 쾌적한 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환자중심의 병원에 중점을 두고 설립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족들의 평안이 늘 함께하는 병원으로 운영돼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서해바다가 훤히 보이는 경기도 남서부의 바닷가에 위치한 의료법인 일선의료재단 화성현대요양병원(화성시우정읍 이화리 439-1)은 2011년 4월, 지상 8층 건물에 280병상 규모의 쾌적한 시설과 자연친화적인 환경, 환자중심의 병원에 중점을 두고 설립됐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바탕으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가족들의 평안이 늘 함께하는 병원으로 운영돼 환자는 물론 보호자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노인전문요양병원으로 내과, 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신경과, 가정의학과로 구성돼 있으며 암환자를 위한 차별화된 특화서비스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환자의 신체 및 정신 건강에 도움을 주고 있다. 화성현대요양병원은 특히 암환자를 위한 미슬토 요법을 적용해 눈길을 끌고 있다. 미슬토 요법은 초기, 중기, 말기를 막론하고 모든 종류의 암에 적용하고 있는 주사식 항암면역요법으로 특히 고형암(위암,대장암, 폐암, 간암, 유방암, 자궁암 등)에 좋은 치료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입원한 암환자에게 미슬토 항암요법을 적용함으로써 항암제의 부작용 감소와 암의 재발방지, 통증치료, 면역력 증가 효과를 실현하며 암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탄탄한 전문인력진료 노하우암환자 특화서비스로 명성둘째로는 체계적인 사회복지프로그램 운영을 들 수 있다. 월별로 영화상영, 웃음치료, 작업치료 및 미술치료, 장기와 바둑, 야회활동 등을 개최해 입원환자의 정신적 건강유지를 돕고 있으며, 별도의 다과회와 생일파티 등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또한 매주 주일예배, 환자봉성체 등을 통해 종교적, 심리적인 안정을 도모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요양환자들의 정신적 건강 활동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셋째, 환자 본위의 친환경 요양서비스는 환자 만족도를 높여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화성현대요양병원은 최신식 시설로 깨끗한 실내외 환경을 보유하고 있으며 각층마다 휴게실을 구비함은 물론,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낮고편안한 침대, 새집증후군을 고려한 친환경 비품, 노약자의 안전과 편의를 고려한 시설 및 최신 의료장비 사용 등으로 입원환자들이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적극 배려하고 있다.탁월한 간병시스템 구축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위기 제공에 한 몫하고 있다. 환자를 중심으로 한 간병시스템의 체계화를 통해 환자보호자에게 신뢰를 주고 있으며, 전 직원(간병인 포함)을 대상으로 하는 예절교육과 소양교육 등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200병상 최신식시스템 완비한 종합병원강남에서 40분 거리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나아가 보호자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 제공, 내 부모, 내 가족 같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분위기를 제공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화성현대요양병원은 서울, 경기, 인천, 충청 등의 모든 지역을 망라해 수도권 인근의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최적의 입지요건과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특히 환자 가족의 간병문제나 경제적 문제 등을 상담시부터 세밀하게 파악해 환자 가족 입장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한 배려하고 있는 등 입원환자 및 그 가족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화성현대요양병원은 요양병원으로는 국내 최초로 서울대병원과 협약을 체결, 진료협력을 시행하고 있으며 아주대학교병원을 비롯해 순천향대병원, 서울북부노인병원, 성빈센트병원과 진료협약을 체결하는 등 환자를 위한 상호 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문의 1588-7368(www.화성현대요양병원.kr) 글 _ 화성강인묵 기자 imkang@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