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격의 전설’ 이젠 ‘IT사업의 전설’ 정조준
1980~90년대 한국 사격의 간판스타로 84년 LA올림픽부터 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국내 선수 최다인 5회 연속 올림픽 출전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 소구경소총 복사에서 금메달을 따낸 ’한국사격의 전설’ 이은철대표(45·인텔라(주)). 이 대표는 현역시절 국내 사격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던 스타 출신이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男 소구경소총 복사 금메달…지금은 연매출 100억 어엿한 사장님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男 소구경소총 복사 금메달…지금은 연매출 100억 어엿한 사장님
이 대표는 초등학교 때 인천의 한 유원지에서 재미삼아 콜크마개 실탄의 공기총으로 인형을 맞춰 떨어뜨리는 놀이에서 재능을 보인 것이 인연이 돼 사격선수의 길로 접어들었고, 꿈나무 조기육성 프로그램인 제2회 전국 어린이사격왕선발대회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고교 1학년 때 미시간주 캠벨사격대회에서 7년간 패한 적이 없는 미국 1인자 론스 위거를 꺾은 것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1984년 LA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돼 이후 17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했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전공한 컴퓨터 분야에 뛰어들었다. 미사일과 인공위성 등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실리콘밸리의 윈드리버시스템에 엔지니어로 입사했으나 미국 IT산업이 침체기로 빠져들며 회사를 옮기게 됐고 담당업무도 엔지니어에서 판매업무로 바뀌었다.
이 대표는 아이피인퓨션이라는 회사의 한국·대만 매니저로 일하면서 회사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탁월한 비지니스 수완을 발휘했다.
2005년 12월 미국과 한국 업체를 연결해 제품을 판매하는 ‘실리콘밸리테크’라는 회사를 차려 운영하던 이 대표는 지난 2008년 이동통신사들이 사용하는 실내용 통합중계기를 생산하는 주식회사 ‘인텔라’를 설립해 많은 특허를 출원하며 사세를 키운 끝에 올해 매출 100억원을 바라볼 정도의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사격선수로 세계 정상에 올랐던 그는 이제 IT사업가로서 새로운 정상을 향해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의 꿈은 사업가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회사를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이끌어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뒤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3~4년 후에는 스포츠 유망주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주 공기소총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신데렐라’로 떠오른 강초현의 어려운 가정환경을 접하고 후배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기로 마음먹었다.
평소 해맑고 구김이 없던 강초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동하는 것을 알게된 그는 재능이 있으면서도 여건이 맞지 않아 운동을 그만두거나, 제기량을 펼칠 수 없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궁리한 끝에 그들을 위한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단을 설립할 수도 있었지만 나 자신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춰 재단을 설립하고 싶었다.
IT회사를 차린 것도 이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였다.”그는 사격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 뒤늦게 국제심판 자격도 취득했다.
이 대표는 “사격이라는 종목은 누군가 꾸준히 투자를 해주지 않으면 안되는 종목이다.
지금은 나라에서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분야가 발전할수록 투자는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제 파트와 재정 문제에서 나중에 국가의 역할을 대신 해줄 민간단체가 많이 생겨야 되는데, 우선은 내가 그런 역할을 해야되겠다 싶어서 자격증을 땄다”며 “국제사격연맹 임원 자격에도 자격증은 필수다. 우리 선수들이 국제 사격계에서 불이익 받는 일이 없도록 앞장설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대표는 “우리 세대에는 국가관이 뚜렷해서 모든 사람이 절제하고, 열심히 하고, 희생하고, 그런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 세대는 자기가 하고 싶어서, 자신의 열망을 기반으로 운동을 하는 세대”라며 “요즘에는 김연아, 박태환 같은 천재성을 지닌 선수들이 많이 나오지만, 목표의식이 없는 선수도 많아진 것 같다. 후배 선수들이 좀 더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사격선수와 IT사업가로서의 성공비결에 대해 “꿈과 목표 설정,그를 이루기 위한 열정이 있다면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든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교부 공무원 출신인 아버지가 항상 공부와 운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엄격히 독려했고, 운동선수로 대성하기를 바랬던 어머니는 목표를 향해 한눈을 팔지 않도록 강한 신념을 보이며 뒷바라지 한 것이 선수와 사업가로서의 성공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털어놓았다.
이와 더불어 “미국생활 당시 살았던 텍사스에서는 무조건 운동을 잘한다고 운동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여가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과목을 C학점 이상 받아야 했다”고 소개했다.
“단 한 과목이라도 C학점 밑으로 떨어지면 점수가 복구될 때까지 다른 것을 못하도록 한 규정이 공부와 운동을 병행토록 했죠.
결국 선수 생활을 마친 후 IT분야로 진출하는 길을 만들어 줬다고 볼 수 있다.”사업가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사격 국제심판과 대한사격연맹, 경기도체육회, 경기도사격장학회 이사로 꾸준히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대표에게서 남다른 열정과 미래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글 _ 황선학 기자 2hwangpo@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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