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파업 장기화에 따른 각종 수술과 시술 지연으로 사선에 내몰린 희귀질환자들(경기일보 3일자 1·2·3면 등 연속보도)이 전공의 부재 및 집단 휴진의 여파로 최후의 보루였던 진료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희귀질환자들은 최근 대학병원들로부터 연달아 진료 연기 및 변경 안내를 받고 있다. 성남에 사는 ‘MOG(모그)항체질환’ 환자인 김성민씨(가명·50)는 최근 병원으로부터 9일로 예정된 진료 일정을 미루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지난달 11일 안과와 신경과 진료를 예약했다가 의료파업으로 한차례 연기된 진료 일정이 또다시 밀린 것이다. 특히 병원 측 문자에 ‘일련의 사태와 심각한 인력부족으로 인해 정상 진료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병원에서 먼저 진료를 보시길 권유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어 언제 진료를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주기적 진료가 필수적인 김씨 입장에서는 생사가 오가는 현실에 놓인 셈이다. 김씨는 “진료 예약을 한 번 더 미루다가 증상이 재발하면 최악의 상황에는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남양주에 사는 최재현씨(가명·32) 역시 지난달 27일 예약돼 있던 진료가 11일로 밀렸다. 그는 5주 간격으로 진료를 받고 시술을 해야 하지만 의료파업이 시작된 3월 이후로 벌써 예약일만 5번 넘게 바뀌는 등 진료지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달 시술을 받지 못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절망적인 마음 뿐”이라고 호소했다. 경기 광주에 사는 장수혁씨(가명·64)도 당초 3일이던 진료 예약이 12일로 밀린 상황에서 받아온 약이 떨어져가고 있다고 호소했고, 소뇌위축증과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장현승씨(가명·74) 역시 6개월 전 진료 후 받은 새 약을 먹고 어지럼증이 나타나 재진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병원으로부터 계속해 진료가 어렵다는 얘기만 듣고 있다고 했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희귀질환 특성상 대형 병원에서 주로 진료를 받기 때문에 교수들을 뒷받침해주던 전공의 이탈로 진료 예약이 계속 미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대형 병원들의 집단 휴진이 이어지면서 진료 재조정을 하고 있는데, 겨우 잡아 둔 기존 진료 날짜를 미루는 것 자체가 희귀환자들에게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진단에만 수년을 쏟는 희귀질환자들이 의료공백에 따른 수술 지연 등 피해가 커지자(경기일보 3일자 1·2·3면) 아픈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섰다.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는 4일 오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에는 경찰 추산 400여명가량의 환자와 보호자 등이 참석했다. 의료파업이 시작된 이후 질병을 가진 환자단체가 이 같은 규모로 대규모 집회를 연 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환자단체들은 그동안 직접 거리로 나서기보다는 정부와의 간담회 등을 통해 의견을 밝혀왔지만, 의대 교수들의 집단 휴진이 이어지면서 거리로 나설 결심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미 지난 5월 말 법원이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기각·각하 등의 결정을 내려 정원이 확정됐음에도 사태가 나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희귀질환 및 응급환자 등에 대한 의료공백은 없게 하겠다던 의료계의 약속과 달리 피해는 속출했다. 경기일보가 만난 한 희귀질환자는 서울아산병원의 파업 때문에 진료일이 변경됐다는 연락을 받았고, 또 다른 희귀질환자는 지난달 서울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병원 측으로부터 예약을 9월로 변경한다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날 거리로 나선 환자들은 “의료인 집단행동 시에도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한시도 중단 없이 제공되도록 관련 법률을 입법해야 한다”며 “의사들은 환자들을 향해 ‘정부 탓을 해야지 왜 의사 탓을 하냐’며 날을 세웠고, 정부는 의대증원 찬성 여론을 앞세워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전공의들을 밀어붙였다”고 의료계와 정부 모두를 비판했다. 또한 “반복되는 의정갈등에서 매번 백기를 든 정부를 경험한 의사 사회가 진료권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힘을 과시하고 있는데, 아픈 사람에게 피해와 불안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행태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병, 그중에는 심지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환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확인된 희귀질환은 7천700여종. 전세계 인구의 약 4%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이 지정한 국내 희귀질환 수(2023년 기준)는 총 1천248개, 국내 희귀질환자는 총 70만명으로 추정된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공백 속에서 생과 사의 기로에 놓여 있다. ■ 한 해 희귀질환자 5만명↑... 이름도 생소하고 치료도 힘든 희귀질환 한국은 유병인구가 2만명 이하이거나 진단이 어려워 유병인구를 알 수 없는 질환 1천248개를 희귀질환으로 분리하고 있다. 희귀질환자는 매년 5만여명 발생하는 추세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발간한 ‘희귀질환자 통계연보’를 보면 지난 2021년 국내 희귀질환 발생자 수는 5만5천874명이다. 이 중 유병인구가 200명 이하이거나 질병 분류코드가 없는 극희귀질환자는 1천820명, 기타 염색체 이상질환자는 87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희귀질환이 발생한 이들 중 1천845명이 사망했다. 국내 유병인구 200명이 넘는 희귀질환자는 4만3천79명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가 1만1천377명(26%)으로 가장 많고 서울 8천601명(19%), 인천 2천446명(5%) 등의 순이다. 희귀질환 중 진료실 인원수가 가장 많은 질환은 특발성 폐섬유증(4천450명)으로 나타났다. 비가역적 확장성 심근병증(3천92명), 기관 또는 계통 침범을 동반한 전신홍반루푸스(2천967명), 소장 및 대장 모두의 크론병(2천347명), 모야모야병(2천169명) 등도 2천명 이상의 질환자가 나왔다. 희귀질환은 발병 원인이 명확하지 않아 치료가 쉽지 않고 장기간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아야 한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지난해 환자와 보호자 7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은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치료제가 없다고 했다. 치료제가 있어도 처방받아 복용하거나 투약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비율도 30%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 치료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사용하지 못한다고 답한 환자가 절반을 넘었다. 구체적으로 ‘급여 적용이 되지 않아서’(50%), ‘식약처의 허가가 이뤄지지 않아서’(40%) 순으로 나타났다. 질병으로 투병하기 전의 생활수준보다 투병하고 있는 현재 생활수준이 ‘낮아진 편’이라고 답한 응답한 비율은 64.8%에 달했다. 특히 일상 생활을 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72.5%가 생활수준이 낮아졌다고 응답했다. ■ “진단받기까지 수년 걸렸는데”... 의료파업으로 수술 지연 희귀질환자가 많은 상급 종합병원에서 의료공백이 생기면서 수술이 지연되는 등 환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의 ‘희귀질환 환우 대상 국가 지원실태 조사’에 따르면 처음 관련 증상이 나타난 후 정확한 희귀질환 진단명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2.9년, 진단을 받기까지 세 곳의 병원을 전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득이 없는 경우 3.5년, 1인 가구의 경우 7.7년의 시간이 걸린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에 참여한 희귀질환자 10명 중 7명은 상급종합병원(76.3%)을 주로 이용한다고 답했다. 6개월 기준, 이들이 주로 내원하는 의료기관의 방문 횟수는 평균 6.3회다. 10대 미만 환자의 경우 의료기관 방문 횟수는 평균 9.6회로 늘어난다. 희귀질환 특성상 진단을 받기 힘들기 때문에 의료진이 많은 상급종합병원으로 가야 해서다. 또 합병증 치료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희귀질환자들은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기 쉽지 않아 상급종합병원을 주로 이용한다. 이런 상황 속에 의료공백이 생긴 지난 4개월여간 파업으로 피해를 본 환자 대부분이 상급종합병원에서 발생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선민 조국혁신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2월19일부터 6월21일까지 정부 ‘의사 집단행동 피해 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 신고는 813건이었다. 이 중 상급종합병원 이용 환자의 피해 신고는 668건으로 전체 피해신고의 82.2%를 차지했다. 접수된 피해 신고 813건 중 수술 지연이 476건으로 가장 많았고, 진료 차질 179건, 진료 거절 120건, 입원 지연 38건 순으로 뒤를 이었다. 결국 의료파업이 몇 달째 계속되면서 상급종합병원 외에 갈 곳이 없는 희귀질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부는 필수 의료의 경우 진료를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전공의의 공백은 곧 의료공백으로 이어졌다. 교수를 도와 시술과 처방을 맡았던 전공의가 없어진 만큼 수술은 지연됐고, 예약을 해도 진료를 받기까지 대기하는 시간은 한없이 길어졌다. 김재학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희귀질환은 말 그대로 희귀한 질병이기 때문에 이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교수와 전공의도 소수에 불과하다”며 “결국 쓸 수 있는 약이 드물고 치료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인 희귀질환자는 상급종합병원에 갈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어 “의료파업이 지속되면서 수술 일정이 계속 뒤로 밀려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을 생각해달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 증원에 관해 의료계에서 집단행동을 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집단행동을 예견했고 비상진료대책을 준비했으나 피해가 있었다”며 “환자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의료계와의 대화 등 사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제언 “의료공백 최대 피해자… 세심한 지원체계 필요” 전문가들은 의료공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세심한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한진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희귀질환자는 평소에도 지원 정책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어 왔는데, 의료파업 이후 약자였던 이들의 문제가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이라며 “취약 계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조 교수는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빠른 대처가 필요한데도 희귀질환자의 아픔을 생각하지 않은 채 의료파업을 지속하는 것은 의사가 아픈 환자들을 길바닥에 내던지는 꼴이다”며 “강 대 강 대치에 약자인 환자들만 죽어나가고 있다. 그들의 곁을 매몰차게 떠나는 행위는 환자에게 씻어낼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잘못은 의사다. 의사가 환자를 버린 것과 다름없다”며 “이런 상황에 응급 체계를 미리 만들어 놓지 못한 정부의 잘못도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는 무책임한 행동을 그만하고 약자들을 더 생각해야 한다. 그게 의사의 본분”이라며 “더 이상 환자가 을(乙)이 되는 환경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의사는 환자들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인질로 내세우는 행위를 그만둬야 한다”고 피력했다. 진미향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이사(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대표)는 “지난달 26일 열린 국회 청문회에서 정부는 ‘의사 증원에 관해 의료계에서 집단행동을 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집단행동을 예견했다’고 말한 것을 봤다”며 “의료공백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면 의사증원에 대해 논의하면서 환자단체 등과도 사전에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쓸 수 있는 약이 드문 중증·희귀질환 환자는 일부 상급종합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의료파업이 시작된 지난 3월 이후부터 4개월여간 희귀질환 진단을 제대로 받기도 힘들고, 치료도 쉽지 않아져 의료공백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고 강조했다. 진 이사는 희귀질환자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교육, 의료 등의 분야에서 지표와 정책을 만들어 그들의 고충에 맞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희귀질환자는 단순히 아프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의료공백 속에 무관심한 지원 정책 등에서 오히려 더 병들어 가고 있다”며 “이들은 의료비 지원, 장애가족 돌봄 보존 자원 부족 등 지원체계가 미흡하기 때문에 진단받기도 어렵고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치료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인 희귀질환자를 위해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실시간으로 정보를 업데이트해 줘야 한다”며 “또 적기에 치료받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신규 진단 환자들을 위해 각 희귀질환에 쓸 수 있는 약의 정보를 제공해 직접 병원에 찾아가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α팀 ■ 유정이의 편지 “살고 싶어요... 제발 병원으로 돌아와 주세요” To. 의사 선생님께 의사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4학년 이유정(가명·10·고양)이라고 해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레트증후군과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어서 스스로 움직이지도 말을 할 수도 없어요. 제가 의사 선생님께 편지를 보내는 이유는 의사 선생님이 다시 저희 곁으로 돌아오셨으면 해서에요. 지난번 많이 아팠을 때도, 요즘도, 저는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고 필요하거든요. 저는 희귀병 때문에 남들보다 몸이 약해요. 그래서 더 자주 열이 나고 아플 때가 많아요. 지난 3월에도 그랬어요. 많이 아팠고, 경기까지 일으켰어요. 아픈 저를 보고 엄마는 구급차를 부르셨어요. 단숨에 달려온 구급대원님들은 제가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여기저기 전화를 하셨지만 가까운 병원에서는 의료파업 때문에 소아과 선생님이 없다고 거절하셨어요. 한 곳, 두 곳, 세 곳 전화를 거는 병원마다 모두 의사 선생님이 없다며 저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그렇게 30분 동안 집 앞조차 벗어나지 못하자 엄마는 아파하는 저를 꼭 끌어안으시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다독이기만 하셨어요. 그때 엄마 표정은 미안해하는 것도, 화가 난 것도 같았어요. 엄마의 손길에도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어요. 가까운 병원에서 저를 받아주지 않자 구급대원님은 40분이나 걸리는 큰 병원에 전화를 걸었어요. ‘뚜르르... 뚜르르...’ 적막한 구급차 안은 전화벨소리만 울렸고, 엄마는 ‘제발’이라고 짧은 한마디를 하고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셨어요. 구급대원님은 전화를 받은 병원에 저의 상태를 설명하며 받아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는 “아이가 위급한 상황인데 여기까지 오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냐”며 거절하셨어요. 제 몸은 점점 한계에 다다랐어요. 보다 못한 엄마는 “병원에 밀고 들어가자”고 하셨어요. 구급대원님들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며 동의했고 경기를 일으킨지 2시간이 지난 후에야 병원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그날 저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까지 4시간이 걸렸어요. 저와 어머니는 어디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현실의 막막함과 두려움에 떨었어요. 선생님이 보고 싶고, 간절했던 건 이때만이 아니에요. 갑자기 아프면 가까운 병원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지만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중증 환자인 저는 작은 병원에서 환영받지 못해요. 한 병원 의사 선생님께서는 “왜 우리 병원에 왔냐. 여기서는 너 같은 아이를 받아줄 수 없으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제발 약 처방이라도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지만 의사 선생님은 약을 처방해줬다 잘못되면 책임져야 하니 어렵다고 거절하셨어요. 결국 제가 갈 곳은 큰 병원, 선생님이 계신 그 병원밖에 없어요. 선생님, 병원은 저 같은 사람을 위한 곳이라고 하셨잖아요. 엄마는 아픈 저를 낫게 해줄 곳은 선생님이 계신 병원뿐이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저를 고쳐주실 것 같아 꾹 참고 서러운 일들도 모두 이겨냈어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이 떠나고 나서 모든 게 무너져가고 있어요. 엄마는 제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종종 꿈을 꾸셨다고 해요. 꿈에서 제가 두 발로 걸으며 ‘엄마’라고 부르는 꿈요. 하지만 의사 선생님들이 떠나시고 제가 아파도 기댈 곳이 없어지자 엄마 꿈에도 더는 제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요. 저에게는 꿈이 하나 있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돌아오셔서 제가 다시 엄마 꿈속에서라도 걸어다니고 ‘엄마’라고 불렀으면 좋겠어요. 의사 선생님, 제발 돌아와 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제가 아픈 것보다 저를 걱정하시며 눈물을 보이는 어머니를 보는 게 더 힘들어요. 저뿐만 아니라 저처럼 아픈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일거예요. 아픈 저희를 위해서 다시 곁으로 돌아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From. 투병 소녀 이유정 드림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
“하루 8시간, 진료에 하루를 쏟습니다”…새벽 2시에 시작된 조민수씨의 하루 이유 없이 찾아온 고통. 병명을 알아내는 데만 많은 시간을 들인 이들이 있다. 그렇게 병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찾아가는 마지막 보루는 대학병원이다. 그런 대학병원들이 문을 걸어 잠갔다. 의대생 증원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희귀 중증질환자들의 진료에는 무리가 없게 하겠다고 했다. 응급실도 열어 두겠다고 했다. 그렇게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투쟁은 아니라는 ‘정당성’을 강조했다. 과연 그럴까. 경기도내 희귀 질환자들은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다. 보호시설에 가기도 힘들고, 지원조차 부족한 현실 속에 의료파업을 맞았다. 사선으로 내몰린 희귀 질환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편집자주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인 조민수씨(가명·32·남양주)는 불에 타는 듯한 통증에 오늘도 잠을 청한 지 고작 3시간이 지난 오전 2시 눈을 떴다. 온 몸에 찾아온 극심한 통증은 밀어 넣은 수면제도 소용이 없다. 새벽마다 1시간 넘게 달려 도움을 청하던 응급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더 이상 그를 위해 진통제를 처방해 줄 전공의가 없어서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그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는 의료 파업 관련 뉴스를 검색했다. ‘아직도네.’ 한 달 안에 끝날 줄 알았던 의료 파업이 4개월을 넘겼다. 기약 없는 고통에 그는 매일이 지옥 같다고 했다. 지난 2014년 봄, 조씨는 산악자전거를 타다가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 발목을 크게 접질렸다. 수술은 했는데 통증은 가시지 않았다. 2년간 병원을 돌아다니다 찾아낸 병명은 이름도 생소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전신에 극심한 통증과 부종을 수반하는 희귀병으로 이른바 ‘육체적 고통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병이다. 오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던 조씨가 지팡이를 챙겨 집을 나서기까지 입에 밀어 넣어야 했던 약만 25알이다. 2시간여가 걸려 오전 10시께 도착한 서울의 한 대학병원. 요즘 손과 발에 자꾸만 힘이 빠져 컴퓨터단층(CT) 촬영을 했지만 정확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 조씨가 원인으로 의심하는 척수자극기의 교체 주기는 평균 7년. 조씨의 척수자극기도 배터리를 교체할 시기가 됐지만 의료 파업으로 수술 일정이 기약 없이 밀렸다. 고통을 줄이기 위해 2주에 한 번 목과 허리의 신경을 차단하는 신경차단술을 받았지만 이 역시 의료 파업이 시작된 후 4개월째 받지 못하고 있다. 예약 가능 여부를 물어도 “10월은 돼야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뿐이다. 조씨는 이날 네 곳의 진료과를 돌았다. 의료파업으로 몇 개 과가 문을 닫으며 갈 곳은 줄었지만 대기시간은 길어졌다. 전기 자극을 통해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 했지만 고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외래주사실에서 주사를 맞기 위해 또다시 대기가 이어졌다. 점심도 챙겨 먹지 못한 상태로 다시 남양주의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30분. 그렇게 꼬박 8시간30분이 걸렸다. 조씨는 “발작통이 시작되면 뼈를 톱으로 써는 듯한 통증과 몸이 불에 타는 듯한 고통이 동반된다”며 “희귀 질환자들은 치료 가능한 병원이 한정돼 있어 의료 파업이 길어지면 하루하루 버티기가 정말 힘들다”고 절규했다. 경기α팀 ※ 경기α팀 : 경기알파팀은 그리스 문자의 처음을 나타내는 알파의 뜻처럼 최전방에서 이슈 속에 담긴 첫 번째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