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나눔’ 밀물… 인천은 따뜻합니다

행복한 희망 함께하는 자원봉사(Happy Volunteer! With all Together)2011년 한해 봉사+나눔을 열정적으로 실천한 자원봉사자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한 2011 인천 자원봉사자의 날 대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다. 인천시는 지난해 12월 7일 오후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송영길 시장과 이재호 시의회 부의장, 이승규 경기일보 인천본사 사장, 10개 구군 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자원봉사자의 날 대축제를 개최했다. 봉사활동의 진정한 의미를 기리는 이날 행사는 65만 자원봉사자의 집 고치기 등 다양한 한해 활동과 2014아시아경기대회 홍보 영상물 상영, 타악 연주팀 타투와 전문봉사단의 벨리댄스 오프닝 공연을 시작으로 자원봉사 경과보고 및 우수 자원봉사자 시상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특히 1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자원봉사 활동을 펼쳐 국무총리상을 받는 김종임씨(54여) 등 92명이 중앙부처 장관 및 시장 표창 등을 수상했다. 또 봉사활동 5천 시간 이상 43명을 비롯해 모두 393명이 우수 자원봉사자 인증패를 받았으며 봉사활동 우수단체 등에도 표창이 수여됐다.객석을 가득 메운 각 군구 자원봉사센터 소속 자원봉사자들은 우수 자원봉사자들이 상을 받을 때마다 축하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봉사왕 인증패를 받은 동구자원봉사센터 소속 정용주씨(83)는 같이 봉사하면서 고생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칭찬해주고 상도 받으니 정말 기쁘다며 남은 인생도 봉사하면서 즐겁게 보내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우수 자원봉사단체로 뽑힌 부평구사례관리자원봉사단의 장순옥 총회장도 봉사단을 꾸린지 고작 5년 남짓한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며 내년에도 더 많은 자원봉사자가 동참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하겠다고 말했다.특히 이날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은 2011년 한해 동안의 성과와 공을 동료 자원봉사자들에게 돌려 축제의 의미를 더했다. 4년 연속 인천지역 최우수 자원봉사센터로 뽑힌 중구자원봉사센터 임인순 소장은 2만 2천여 중구지역 자원봉사자의 지원과 지지가 가장 큰 힘이 됐다며 자원봉사자들이 행복한 봉사를 펼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센터가 되겠다고 말했다.이밖에 보배봉사단 소속 자원봉사자 10여 명은 축제현장에서도 행사 안내 도우미로 활약하며 봉사정신을 빛냈다.글_인천김창수 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사진_장용준기자 jyjun@kyeonggi.com

“경기공직대상 큰 상 받고 책임감 커졌어요”

경기공직대상이란 큰 상을 받고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해외여행을 할 수 있어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경기일보사가 제정한 경기공직대상(18회) 수상자와 가족들은 지난해 11월, 3박4일간의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 해외시찰 및 연수를 마치고 귀국했다.경기일보가 마련한 해외연수는 수상자와 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본보 강해인 정치부장을 단장으로 권인성 차장 등 24명이 참여, 중국 상해 임시정부를 비롯해 항주상해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이뤄졌다.처음 만남에서 어색해하던 수상자들은 자기소개, 수상 동기 등을 통해 친밀감을 더하면서 연수기간 동안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문화체육대상 부문의 정경임씨(경기도 문화예술과)는 부군, 자녀와 함께 했으며, 경찰행정대상 부문 배홍국씨(시흥결찰서 시화파출소)는 부모님이 해외 나들이에 합류했고, 지방행정대상의 박두원씨(시흥시 세정과)는 부인과 빙모가, 지역경제대상을 받은 이병규씨(수원시 경제정책과)는 부인과 처형이 대신 여행을 다녀왔다.또 김영환(자치지원대상광주시 공보담당관실)이진관(주민복지대상김포시 사회복지과)이주(문화체육대상안양시 회계과)박상태(의회행정대상의왕시 의회사무과)이윤휘(교정행정대상서울 구치소 보완과)우진헌(지역개발대상남양주시 도시개발과)씨 등은 달콤한 신혼여행(?)을 만끽했다. 농정대상을 수상한 이찬주(과천시 산업경제과)씨는 부인과 자녀를 참가시켰다. 예상치 못했던 부부동반 여행을 선물받은 수상자 가족들은 공직대상을 받은데다 부부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하게돼 기분이 너무 좋다며 함박웃음을 지었고, 배홍국씨의 부친 배말석씨는 아들이 대상을 받은데다 해외여행까지 가게 됐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이번 여행에선 최 연소자인 정경임씨(경기도 문화예술과)의 딸 민채(5)가 사랑을 독차지했다. 민채는 빡빡한 일정에도 언제나 톡톡티는 유머를 구사해 폭소를 자아내기도했다. 수상자들은 연수기간 동안 가족과 함께 중국의 대표 관광지인 항주와 소주를 돌면서 관광자원 및 친환경 개발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상해에서는 중국의 저력에 긴장하면서 부강 대한민국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가졌다. 또 상해임시정부청사를 돌아보며 당시 나라잃은 서러움, 비참함 등을 다시한번 되새기며 공직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공고히했다. 이들은 일정 중에 함께 어울리며 공직 경험을 나누고 경기공직대상을 수상함으로써 기쁨과 함께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는 등의 후일담으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한편, 이번 공직대상자와 가족들은 여행기간 나눴던 우정을 남기기 위한 모임을 결성하고 회장에는 이주(안양시 회계과), 총무는 이진관(김포시 사회복지과)씨를 각각 선출했다. 글_윤승재기자ysj@kyeonggi.com사진_강해인기자hikang@kyeonggi.com

창영학교 소풍가는 날은 비 오는 날

기찻길 옆 오막살이. 창영동은 지난 한 세기 동안 경인선 기찻길과 함께 해 온 동네다. 개화를 알리는 기적(汽笛) 소리에 잠을 깨며 한동안 신식 동네로 살아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었지만 묵은 것만 움켜쥐고 바튼 기침만 하던 이 동네가 하마터면 큰 수술을 받을 뻔 했다. 박제가 돼 가던 이 동네에 불어 닥친 개발바람은 호불호의 논쟁을 일으키며 오히려 관심과 활기를 불어넣었다. 한동안 수면무호흡증에 빠져있던 동네는 이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인천의 자존심을 지키며 나잇값 하는 꼰대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 #류현진의 후예들 산업도로가 관통할 뻔 했던 창영동은 인천의 근대역사가 관통하는 곳이다. 1899년 경인선 철도가 놓이기 전 제물포항에서 서울을 가려면 이 길을 거쳐야 한다. 개항후 포구에서 싸리재 거쳐 배다리 옆을 지나 쇠뿔고개로 가는, 이름하여 경인가도(京仁街道)다. 사람들이 오고가다보니 낯선 풍경의 집들도 들어섰고 별난 이야기도 만들어졌다.창영초등학교는 인천 최초로 조선 어린이들을 가르치고자 1907년 인천공립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고 1910년 3월 18명의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재도 건재하고 있는 빨간 벽돌의 교사(校舍)는 당시 교육을 열망하는 조선인 유지들이 정성껏 모금한 2만원을 밑거름으로 1922년에 완공됐다. 70년대 말까지 창영동이 인천의 중심지였기 때문인지 창영학교 아이들은 송현동, 만석동 등 변두리 아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굴색이 좋았다. 부잣집 아이들만이 할 수 있는 고적대와 야구부 등이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창영학교 소풍날은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징크스가 계속되다보면 설화가 만들어지는 법. 우물을 팔 때 용을 죽였다는, 혹은 소사 아저씨가 막대기로 용의 꼬리를 쳤기 때문에 그 용이 원한에 사무쳐 저주를 내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변두리 학교 아이들에게는 창영학교 아이들의 이런 불운을 보면서 자신들은 참 좋은 학교에 다닌다고 애써 자위하곤 했다. 맑은 햇살이 빨간 벽돌건물을 선명하게 비춘 늦가을 날, 창영학교를 찾았다. 야구부원들이 함성을 주고받으며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 담벼락에는 대한민국의 에이스 류현진의 모교 창영초 야구부원 모집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세월은 흘렀어도 여전히 부러움의 대상이다. 문제는 학생 수다. 많을 때는 한해 1천명 이상이 입학했다. 올해 입학생 수는 40여 명. 이제는 야구팀 하나 채우기가 벅찰 만큼 아이들이 없다. 창영은 소풍날의 징크스가 있던 그 시절이 못내 그립다. #에즈버리 동산 위 파란 지붕 창영학교 옆으로 영화학교가 있다. 미국인 처녀 마거릿 벤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는 1891년 스물 둘의 나이에 평양을 건너 조선으로 왔다. 그녀를 마중 나온 존슨 목사는 당시 내리교회 담임목사였다. 인천으로 온 벤젤은 내리교회 한국인 전도사의 딸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초등교육기관인 영화초등학교의 출발이다. 출발부터 어려움이 많았다. 서양인이 어린이의 간을 약에 쓴다는 흉흉한 소문에 초기 학생 수는 남자 3명, 여자 2명뿐이었다. 싸리재에 있던 학교는 1911년 현 위치에 2층 벽돌집 교사를 마련해 이전했다. 이 건물은 올해로 꼭 100년이 됐다. 창영교회 옆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있다. 존스 목사는 이곳을 에즈버리 동산이라고 불렀다. 1893년 선교기지를 세우기 위해 이 일대의 땅을 매입해서 지금의 동인천세무서 자리에 남자선교사 사택을 지었다. 그 옆에는 안데르센 동화책에서나 나올법한 고풍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여선교사 사택을 지었다. 지상 2층, 지하 1층에 건평 469㎡(142평) 짜리로 마루가 깔린 복도를 따라 아래 윗층에 각각 5개의 방이 있다. 지하에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던 보일러 시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실패처럼 도는 게 인생인가 미싱이 돌아갈 때 실이 실패에서 풀려나가듯 인생도 자연에 순응하며 그렇게 흘러가는 것. 어떤 모양으로 풀려나갈지 박음질이 되어질지, 그 숙제는 우리가 푸는 것 창영동 길 중간쯤에 있는 박의상실 쇼윈도에 써 있는 글귀다. 의상실 주인이 궁금해 불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느질 인생에 대한 제 이야기이자 소회죠 박태순(60)씨는 6번지, 3번지, 9번지 등 창영동 골목에서만 40년 넘게 바느질을 했다. 1976년 당시 인기직장이었던 동일방직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키가 작아 떨어졌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키는 155㎝. 거기에서 딱 1㎝가 모자랐다. 친구와 함께 양재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배다리에 미스박 의상실이란 간판을 걸었다. 동생 뒷바라지 때문에 결혼도 안하고 돈을 벌 요량이었다. 처녀가 결혼 안 한다는 말은 거짓말 중의 거짓말. 그는 결혼했다. 그래서 슬그머니 간판에서 미스를 지워버렸다. 함께 오랜 세월을 보낸 사람들은 골목만 늙어갈 뿐 자신들은 서로 늙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는 지 아직도 삼성서림 사장님은 그녀를 미스 박이라고 부른다. 한때 이곳은 일류는 아니지만 골든의상, 정의상, 르네의상 등 대여섯 개의 의상실이 있었어요. 지금은 단골 10여 명의 옷만 만들 정도예요. 한창 때는 미싱사 등 4~5명을 두고 하루 세벌을 만드느라 밤새기 일쑤였다. 박 사장은 중구 사동에 살았는데 10세 때 집이 철거돼 송림3동에서 살았다. 이런 아픔 때문인지 길을 뚫기 위해 집들이 철거될 때 맨 앞에 서서 반대했다. 그는 배다리에서 그의 실패가 다 돌아갈 때까지 일하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우리집이 동인천 대한서림 다음으로 오래된 책방이야. 헌책방거리에서 60년간 집현전이란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오태운(85) 사장. 헌책방 거리는 6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거리에 이동식 리어카 책방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서울 청계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헌책방 거리가 형성됐다. 오 사장은 영어 관련서적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미군부대 등을 돌아다니며 헌책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면 책을 사려는 학생들이 책방 앞에 줄을 섰다. 1960, 70년대 줄을 서 책을 구하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미래가 밝겠구나 생각했지요. 하지만 요즘 학생들은 참고서 외에는 책을 찾지 않아 그게 안타까워. 헌책방 가게의 주인들은 이제 헌책만큼이나 긴 인생을 보냈다. 최근 삼성서림과 국제서림이 가게를 내놓았다. 이제 머지않아 헌책방 거리는 그들과 함께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지지도 모른다. #토끼고기의 추억 책방거리 뒤쪽에는 배다리 큰 도로와 이어지는 좁은 골목이 하나 있다. 방값이 싸 요즘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길조여인숙이 나온다. 60~70년대 전형적인 여인숙의 모습인 이 집 벽에는 한 달 이상 숙박하는 손님을 위한 달방이 가능하다는 종이가 붙어 있다. 그 옆에 대인상회라는 간판이 붙은 오래돼 보이는 2층 건물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데 한때 쌀을 크게 취급했다고 한다. 지금은 1층에 토시살 숯불구이집이 자리잡고 있다. 황인순 할머니(78)는 황해도 은율 출신으로 14후퇴 때 피난 내려왔다. 처음에는 빈대떡, 되비지 등을 팔았지만 이 집이 한때 유명세를 치른 것은 토끼고기를 팔았기 때문이다. 토끼뿐만 아니라 오리, 참새, 꿩 등 날개 달린 거의 모든 조류가 그곳에서 요리되었다. 지금은 손자 고원기(36)씨가 할머니와 함께 토시살 등을 팔고 있다. 우리는 개발을 원해요. 비만 오면 물이 줄줄 새요.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이 동네에서 먹고자는 사람 별로 없어요. 우리에겐 생존인데 그들에겐 그게 문화래요.사라진 흔적의 덧없음과 사라지지 않은 흔적의 견고함이 겹쳐진 창영동에서는 모든 게 인천 역사의 밑줄 쫙이다.글_유동현 굿모닝인천 편집장 사진_김성환 포토저널리스트

“소외지역 구석구석, 신나는 공연으로 행복을 전달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 코미디언, 탤런트, 국악인 등 연예인으로 구성된 한국연예예술단(단장 전병찬)은 자신들의 끼와 재능을 발판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화제의 키워드로 떠오른 이른바 재능기부다.지난 2005년 공연봉사를 펼치고자 11명으로 출발했던 예술단은 어느덧 연예인 40명, 후원인 20명으로 회원만 60명을 넘어섰다.분기별로 한 차례씩 가요, 코미디, 국악 공연을 준비해 연간 4번의 공연을 하려는 계획이지만,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0년에는 8번이나 무대에 섰다. 지난해 11월 말 영월교도소 공연에 이어 12월 15일 화성노인전문요양원 자장면, 떡, 과일 전달과 함께 공연까지 8번의 공연을 치렀다.인원이 넉넉해진 탓에 한 차례당 6명에서 10명씩, 스케줄이 맞는 데로 참여하면서 이같이 수차례의 무료공연을 하는 게 가능하다.예술단이 향하는 곳은 노인시설, 장애인시설, 병원 등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픈 것을 치료하는 데 웃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믿음에서다. 최근에는 교도소까지 저변을 넓혔다. 자신들의 공연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간다는 다짐을 철저히 실천하고 있다.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펼치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공연을 관람하던 지적 장애인이 불쑥 무대로 올라와 가수를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가 하면, 가지 말라고 서럽게 울기도 한다고. 덕분에 공연을 마치고도 한 시간이나 떠나지 못한 일도 있다. 교도소는 규율이 엄하고, 분위기가 딱딱해 신나게 공연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다. 흥이 나서 손을 잡고 같이 춤을 추고 싶어도 통제된 턱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설보다도 좋아하며 환호성을 외치는 탓에 다음 달에도 교도소 위문 공연을 떠날 계획이다. 예술단은 일반인을 위한 공연도 펼친다.공연을 접하기 어려운 시설 위주의 공연을 하다 보니 일반 시민을 위한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낀 탓에 수원실버가요제를 만들게 됐다. 지난 2007년 만들면서, 65세 이상의 노인 16명이 출전해 노래실력을 뽐내는 노래자랑 대회다. 공연 사이사이마다 예술단이 축하공연을 펼치면서 흥을 더하다 보니,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예선전 경쟁률도 수대일에 이르고 있다.공연과 더불어 식료품과 상품도 전달한다. 노인복지관과 장애인 시설에는 쌀과 과일 등을 전달하고, 가요제 대상에게는 부상으로 김치냉장고를 제공하고 있다.연예인 회원들이 매달 2만원씩 부담하는 회비로는 공연경비를 충당하는 데도 어림없어, 좋은 뜻을 펼치려는 후원인들이 매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부담한다. 경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탓에 후원금을 모으기가 어려워지는 게 요즘 예술단이 하는 고민이다.전병찬 단장은 웃음이 어느 곳보다 필요하지만, 접하기 어려운 곳이 있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뒀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앞으로도 예술단이 선사하는 흥겨운 공연을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것이라고 말했다.글_성보경기자 boccum@kyeonggi.com

‘끼와 열정이 어우러진 한국 문화 콘텐츠 산실’

만화창작애니메이션영상연출 등 4개 학과 운영전공관련 산학협력도 탄탄 체험위주 특성화 교육日지바테쓰야상 대상 등 졸업생 발군의 실력 발휘 만화창작애니메이션영상연출 등 4개 학과 운영전공관련 산학협력도 탄탄 체험위주 특성화 교육日지바테쓰야상 대상 등 졸업생 발군의 실력 발휘 끼와 열정이 어우러진 한국 문화 콘텐츠 산실, 글로벌 인재의 산실, 뉴미디어시대를 이끌 만화영상의 메카. 한국애니메이션(ANIMATION)고등학교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남시 창우동 523-4 위치한 한국애니메이션고등학교(교장 최창수이하 애니고교)는 더불어 바르게, 날마다 새롭게, 언제나 너르게라는 교훈 아래 21C 한국 영상교육의 미래 인재를 육성해 나가고 있다. 개교 12년을 맞은 애니고교는 지난 2000년 3월 2일 경기도교육청 지정, 자율시범학교로 개교한 뒤 2008년까지 시범학교로 운영돼 왔다. 만화창작과애니메이션과영상연출과컴퓨터게임제작과 등 4개 학과로 나눠져 있으며 해마다 각 과별로 25명 내외의 끼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전교생은 교내 기숙사에서 생활한다. 특성화 고교라는 여건을 고려해 예술적 소양과 전문성 배양, 국제적 의사소통 능력 구비, 체험학습중시탄력적 교육과정 운영, 애니메이션영재교육원(만화애니메이션) 운영, 전공관련 산학협력업체 교내 유치, 기능경기대회 참가를 위한 팀 구성 및 운영, 창업동아리 육성 등 특색있는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지난 2003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주관, 특성화사업 자체 평가 우수학교로 선정되는가 하면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100대 교육과정 우수학교로 지정됐다. 또한, 2009년 전문교과 인정 도서개발 교육감 표창과 학교급식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잇달아 받으며 주목받았다.지난해 졸업생(9기)의 경우, 영상연출과 졸업정원 25명(재수생 24명은 별도)이 모두 국내외 유명 대학에 진학했는가 하면 만화창작과(26명)는 16명, 애니메이션과(정원 25명)는 18명, 컴퓨터게임제작과 24명중 18명(재수 6명 별도)이 진학했다.더욱이 이 학교에서 배출한 인재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발산하는 끼(?)는 조목조목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만화창작과 1기 졸업생 김정현씨는 지난 2006년 12월 1일 일본 신인 만화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인 제50회 지바테쓰야상(ちばてつや賞) 대상을 거머줬다. 당시 김씨는 교토 세이카(精華)대학교 4학년이었다. 지바테쓰야상은 일본 3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가 원로 만화가 지바테쓰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30년 전 제정한 상으로 신인 만화가를 위한 최고의 등용문이다.또한 4기 졸업생 박설아(만화창작과)씨는 문화컨텐츠 진흥원이 선정한 신인작가상을 수상했는가 하면 인기리에 방영된 KBS드라마 추노에서 만화제작에 참여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지난 2007년에는 당시 3학년 재학중이던 신보경양(18)이 학교 과제물로 만든 1분짜리 애니메이션 UCC(사용자제작 콘텐트) 춤추자 는 일주일만에 동영상 사이트 키위닷컴(www.keywui.com)에서 17만명이 감상하는 등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지난 2007년 11월 초순, 이 학교 3학년 권예슬양(만화창작과)은 한 발 앞 선 특성화된 실력으로 시험도 치르지 않고 일본의 동경공과원에서 합격 통지를 받는 숨은 실력을 발휘, 당시 언론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2년제 대학인 동경공과원은 커리큘럼이 탄탄하고 시설이 훌륭해 방송 및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유명한 대학이다. 최창수 교장은 우리 학교는 다원화시대가 요구하는 색깔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질서가 우선하는 기본경영, 창의성이 가득하고 특색있는 칼라경영,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우선하는 신뢰경영을 펼치고 있다며 학생들을 명실공히 21세기 문화교육 중심이자 왕성하게 뛰는 대한민국의 심장 엔진 동력으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_하남강영호기자 yhkang@kyeonggi.com

‘서른살에 연봉 1억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연봉 1억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 중 바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꿈의 영역과도 같은 말이다.보험업계에 몸담은 지 2년 남짓만에 연봉 1억원을 이뤄내고 세계 MDRT(Million Dollar Round Table : 백만불원탁회의) 회원이 된 정재웅 미래에셋생명 SFC(30경기도 구리시)는 그래서 더욱 남달라보인다.처음부터 쉬운 길은 아니었을 거다. 그와 함께 일을 시작했던 동료 25명 가운데 지금껏 살아남은 사람이 고작 2명이라는 것만 봐도 보험재무설계라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에게 비결을 물어봤더니 허허허 너털웃음에 어쩌다보니란다.한번 흘겨봐주고 진지하게 다시 물으니 장난기 가득했던 웃음이 사라지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을 갖고 부딪혔어야 할 사회의 편견과 벽을 허물고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낸 자신감이 느껴졌다. ■긍정은 나의 힘목표를 정해 놓고 한계단 한계단 올라가는 것처럼 이뤄나가는 걸 좋아해요. 하나씩 성공할 때마다 내 자신에게 지금까지 잘 해왔구나, 정말 노력 많이 했구나 칭찬해줄 수 있으니까요동그란 얼굴, 서글서글 눈매, 웃음기 가득한 입가, 재웅씨의 첫인상은 세상을 참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었다.울산 출신인 그가 고향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홀홀단신 서울로 떠나와 보험업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 것도 긍정의 힘이 작용해서다.울산에서 나름 알아주는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보험일 시작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의아하게 보기도 했지만 전 자신있었어요. 정말 신중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었거든요그가 보험계로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3년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 병간호를 하면서 만난 젊은 부부였다. 어머니와 같은 병실이던 그 젊은 부인도 암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았는데 보험도 준비 안돼 있는데다 모아둔 돈도 없어 항암치료 한번을 맘편히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세상을 뜬 것이다.재웅씨는 인생관이 바뀌니 직업도 바꾸게 됐다고 했다. 손 쓸 도리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남겨진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어머니도 결국 돌아가시고 언제 어디서 나한테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른다는 걸 배우게 된 거죠. 미리 준비하고 대비하는 사람이 되자 마음 먹었어요 그렇게 보험계 일을 선택한 뒤 SFC(Special Financial Consultant)라는 명함을 들고 만난 세상은 만만치 않았다.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 그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을까.재웅씨는 처음부터 무리하게 높은 곳을 바라보지 말자.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마음 먹었어요라면서 일주일에 3건씩 계약을 맺는 걸 목표로 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음주에 더 잘하면 돼하면서 나를 다독였더니 그게 또 되더라고요라며 어깨를 으쓱한다.그는 지난해 5월 25주 연속 1주일에 계약 3건을 달성하고 계약부문 동메달을 따냈으며 2011년 1월 전국 미래에셋생명 SFC 6천여명 가운데 91위에 이름을 올리는 실적을 거뒀다.긍정이라는 무기를 갖고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 그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국을 누비는 유쾌한 보험쟁이서울 서초동 한솔지점에 근무하는 재웅씨는 서울, 인천, 경기, 부산, 울산을 가리지 않고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그의 애마인 젠트라X는 2년 동안 무려 12만㎞를 달렸다. 지구를 세바퀴나 돌고온 셈이다. 재웅씨의 철칙은 가족은 나를 기다려주지만 고객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백 KM를 달려가 고객을 만나고 어렵게 맺은 계약이니 조금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객 한사람 한사람이 다 소중한 친구고 인연이다.재웅씨는 보험이나 재무상담을 하다보면 어려운 주머니 사정이나 건강이야기, 가족이야기까지 나누게 된다며 내가 계약하고 싶은 욕심에 무리하게 밀어부치지 않고 고객이 부담갖지 않고 꾸준하게 재무설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한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재웅씨는 3개월에 한번씩 고객들에게 소식지를 돌린다.어디 주식이 오르고 환율이 어쩌고 하는 어려운 이야기는 쏙 빼고 자신이 3개월 동안 열심히 발로 뛰고 계약을 따내고 새로운 고객들과 인연을 맺은 일, 고객들에게 생긴 좋은 일, 고객 생일 챙기기, 보험금 지급사례 등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가끔은 실적이 좋지 않다고 투정부리기도 하고 아내를 닮은 예쁜 공주님이 태어난 기쁜 소식을 전하기도 한다.그래도 전문 재무설계사답게 각종 금융정보와 경제흐름을 파악해 펀드에 가입하는 적시, 돈을 빼야 할 때, 채권형 투자로 갈아타야 할 때 코치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재웅씨는 보험에 인생을 걸어보고자 잘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시작한 일이지만 내 밥벌이 하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고객의 꿈이 이뤄져야 내 꿈도 이뤄진다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며 열심히 뛰는 보험쟁이, 그거면 충분하다고 예의 그 너털웃음을 짓는다. ■말단 SFC에서 명예로운 MDRT회원으로 재웅씨는 올해 자신이 목표로 했던 첫 관문을 통과했다.전세계 보험인들에게 명예의 전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MDRT 회원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어낸 것이다.MDRT는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갖춘 생명보험 전문가로 구성된 협회로 백만불 원탁회의라는 이름답게 기본조건으로 연수익 1억원 이상을 올려야 하고 계약유지 등 보험설계사로서 우수인증을 받아야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재웅씨는 1년 동안 통장에 찍힌 월급을 다 더해보니 1억원이 조금 넘더라고요라며 이제 첫 단추를 잘 꿰었으니 MDRT 윗단계인 COT(3억원), TOT(5억원)까지 노려봐야죠라고 자신한다.참 쉬운 일처럼 말하는 그가 조금 얄미워보이기는 해도 목표를 이루려고 밤잠 설쳐가며 운전하고, 더 전문적인 SFC가 되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흘린 땀방울을 알기에 연봉 1억원이라는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의 진솔함과 유쾌함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글_김미경기자 kmk@kyeonggi.com

‘비구니계 어른’ 수원 봉녕사 승가대학장 묘엄스님 입적

수원 광교산 자락 봉녕사 승가대학의 학장이자 금강율원의 율주로서 이 시대의 한국불교 비구니 대강백이시자 청정율사이셨던 세주당(世主堂) 묘엄명사(妙嚴明師)가 지난해 12월 2일 오전 9시5분, 봉녕사에서 세수 80세로 입적했다. 묘엄스님은 친언니, 형부, 조카 등 가족들과 제자들이 지켜본 가운데 입적하면서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으라는 말씀과 함께 자기를 단속하여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하여 중생을 제도하라는 유훈을 남기셨다. 이날 임종을 지킨 한 제자는 마지막에 숨을 몰아 쉬시긴 하셨지만 평소처럼 편안한 모습이셨다며 척박했던 시대 속에서도 처절한 수행으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전불심등(傳佛心燈)의 법맥과 함께 하신 한국불교 현대사의 산 역사와 같은 분이셨다고 밝혔다. 영결식은 12월 6일 오전 수원 봉녕사에서 전국비구니회장으로 엄수됐다. 이날 영결식은 진제대종사, 고산대종사를 비롯한 조계종의 원로의원 스님들과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선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제2교구본사 용주사 주지 정호스님,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주지 성타스님 등 사부대중 3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됐다. 영결식 직후 연꽃 상여로 장식된 스님의 법구는 대불광전에서 마지막 3배를 올린 뒤 다비장으로 이운됐다. 마지막 의식이 거행되는 동안 새끼줄과 장작더미로 마련된 연화대에 법구가 들어가자 도열해있던 문도스님들과 불자들이 큰스님을 외치며 흐느꼈다. 거화봉에 불이 붙여지고 거화와 함께 큰스님 불들어갑니다 합창과 함께 연화대에서 거센 불길이 솟아올랐다.조계종 종정을 지낸 청담(淸潭1902~1971) 스님의 친딸이며, 성철(性徹1912~1993) 스님의 유일한 비구니 제자인 묘엄스님. 종단 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 최고 지위인 명사 법계를 받은 묘엄스님은 1931년 진주에서 태어나 1945년 대승사에서 월혜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같은 해 대승사에서 성철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1958년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각각 수지했다.봉암사 결사에도 참여한 스님으로, 성철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은 유일한 비구니 스님이기도 하다.1970년대 폐사에 가까웠던 수원 봉녕사에 정착하면서 선원을 개설할 요량으로 맨 처음 선방을 지어 4년간 정진에 힘쓰다 1974년 강원을 설립하고, 강주에 취임해 후학양성에 힘썼다. 봉녕사 강원 개원 이후 40년간 학장을 맡아 현재까지 39회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한국 비구니교단의 미래를 밝히는 동량들을 양성해 왔다.최근에는 사찰 음식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 2009년부터 사찰음식대향연을 열어왔다. 3회를 치른 봉녕사 사찰음식대향연은 사찰음식축제 중 대표적인 행사로 자리매김했으며, 스님은 지난해 10월 9일 행사 회향식에 직접 참석해 사찰 음식에 담긴 정신문화의 선양을 역설하기도 했다. 글_강현숙기자 mom1209@kyeonggi.com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

수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아시아 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아시아 지역회의가 지난해 12월 7일 수원에서 화려하게 개막됐다.경기도와 수원시, 문화재청이 공동 주최한 이번 회의에는 아시아 29개 나라 세계유산 담당자와 유네스코 13개 아시아 지역사무소,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회), IUCN(세계자연보존연맹) 등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계자 130여명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이날부터 12월 10일까지 지역별, 주제별 그룹회의를 열어 아시아 태평양지역에 있는 세계유산 164곳의 보존 현황과 세계유산협약 이행 여부를 점검했고, 세계유산 보존을 위한 미래전략을 제안했다. 그룹별 회의 결과는 전체회의에 보고됐고, 전체회의에서 채택한 아시아지역회의정기보고서는 올해 러시아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 보고된다.한국은 이번 회의에서 수원 화성과 해인사 장경판전, 석굴암ㆍ불국사, 경주 역사지구 등 10개의 세계문화유산 보존 현황과 관리 실태를 발표했다. 국제기념물유적협회(ICOMOS)는 1997년 수원 화성과 비원, 창덕궁 등을 현지 점검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권고한 문화유산 평가 비정부기구다.회의 참석자들은 폐막에 앞서 지난해 12월 10일 수원 화성과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남한산성을 답사한 뒤 수원시장 주최 환송 만찬에 참석했다.글_박수철기자 scp@kyeonggi.com사진_전형민기자 hmjeon@kyeonggi.com

“경기를 빛낸 ★…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도체육회는 지난해 12월 12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제42회 경기도체육상 시상식을 가졌다.이날 시상식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허재안 경기도의회 의장,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종목별 회장 및 전무이사, 시군체육회 사무국장, 선수지도자 등 1천500여명이 참석했다.시상식에서는 체조의 강영훈(수원 영화초), 핀수영 유재호(경기체고), 빙상 이주연(동두천시청)과 성남시청 하키팀이 경기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또 한병희 수원 영화초 코치(체조), 임용수 경기대감독(탁구)이 최우수지도상을 받았다.경기부문 우수선수에는 최수희(유도경기체고), 최혜숙(육상남양주 진건고), 김서영(수영경기체고), 윤여원(역도수원고), 진효성(볼링부천대), 김민지(육상하남 남한고), 류재철(사격경기도청) 등 11명, 우수단체는 포천시청 바이애슬론, 안양시청 롤러팀, 원곡중 배구팀, 신하초 축구팀, 명지대 테니스팀, 단원고 탁구팀, 화성시청 배구팀 등 9개팀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우수지도자상은 김동열 안산 원곡중 감독(배구), 문석현 남양주 진건고 코치(육상) 등 10명이 수상했다. 또 LPGA투어 등에서 경기도를 빛낸 최나연(SK텔레콤)이 특별공로상을, 석호일 베어스타운 리조트사장, 여규설 고양시체육회 부회장 등 12명이 공로상을 받았다. 글_정근호기자 k101801@kyeonggi.com 사진_추상철기자 scchoo@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