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회에서 고민정 의원의 곳간에 곡식을 쌓아두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홍남기 부총리는 곳간이 비어간다고 했다가 금방 재정이 탄탄하다고 말을 뒤집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국가빚이 1천조원에 이르고 준공공기관의 빚도 550조원 이상에 달한다고 하는데 이 두 개만 합쳐도 거의 우리의 1년치 국내총생산액(GDP)수준이다. 이런 판에 곳간에 쌓아둔 곡식이 어디에 있다는 말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재정이 탄탄하다는 말도 어이가 없긴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올해 1/4분기 나라빚 상황을 보면 가계빚이 1천765조원, 기업빚이 2천461조원, 국가빚이 860조원으로 총계가 5천86조원에 달한다. 이는 우리 GDP의 약 3배에 달하는 것으로 다 갚으려면 3년 동안 생산한 금액을 한푼도 안써야 할 만큼 엄청난 금액이다. 코로나 팬데믹이라고 하는 비상사태로 5차에 걸쳐 48조원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과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따른 시혜성 고용창출정책의 영향도 컸다고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가채무는 408조원이 늘어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에서 늘어난 총 350조원을 58조원이나 초과하고 있다. 올해 태어날 신생아는 18년 후 1인당 1억원 넘는 국가빚을 떠안게 된다고 하니 앞으로 나라빚 관리가 큰 걱정거리다. 예산 규모는 문재인 정부 출범시 407조원에서 5년만인 내년에는 50%가 늘어난 604조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코로나로 인한 재난지원금도 예산 팽창의 큰 요인이었으나 저성장 늪에 빠진 경제에도 불구하고 정부예산만은 대폭 증가해 비싸게 먹히는 정부로 내달리고 있어 문제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한 엄청난 생산성 향상으로 정부인력을 늘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소득주도 성장을 내세워 지난 4년 동안 공무원을 10만명 늘림으로써 비싸게 먹히는 정부를 자초하고 있다. 이는 당장의 인건비 부담 증가도 문제지만 앞으로 공무원연금 부담을 늘린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공적연금 재정은 이미 펑크가 나 내년에 공무원과 군인 연금재원 충당을 위해 총 8조원(공무언 5조, 군인 3조)을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형편이다. 여기에 사학연금도 2년 뒤 적자로 예상돼 이 역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할 형편이다. 또한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부담도 16조원에 달하리라 한다. 8대 사회보험에 대한 국가지원금도 근 2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폭증하는 재정부담과 국가부채를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부채의 대 GDP 비율이 50% 정도라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한 편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하나 문제는 우리 경제가 당면한 여건을 고려해 보면 결코 낙관할 수 없다. 첫째, 빚이 늘어나도 경제성장 잠재력이 크다거나 경제성장률이 높다면 덜 문제겠으나 초저출산(합계출산률 0.84)에다 고령화사회(총인구의 19.3%) 진입, 기업활동에 대한 넘치는 각종 규제 등으로 성장잠재력이 크게 낮아진 데다가 저성장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 아니라 재정이나 경제력에 적신호가 켜지면 선진국 자본의 급속한 이탈을 불러와 경제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다는 점이다. 셋째, 코로나 여파로 우리를 포함한 세계가 유동성을 너무 늘려 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것도 문제고 특히 우리의 부동산버블이 하늘을 찌를 정도인 점은 크게 우려된다. 만일 부동산버블이 꺼지기라도 한다면 우리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엄청난 재정부담을 안길 포퓰리즘적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데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판에 이는 설상가상격이어서 심히 우려된다. 자유당정권 때는 고무신 1켤레에 한 표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지금은 몇천만 원 내지는 1억원까지, 그것도 자기 돈이 아니라 나랏돈으로 주겠다고 하니 만일 이를 시행한다면 재정만이 아니라 경제가 파탄나고야 말 것이다. 재정은 정부가 생산해 얻은 것이 아니라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세금이다. 정부는 소비의 주체이지 생산의 주체가 아니다. 생산이 부진한데 소비만 늘린다면 곳간은 거덜나게 마련이다. 국민경제와 재정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므로 재정은 현명하게 관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재철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노조활동이 자유로워진 지도 어언 35년이나 됐다. 나이로 따지면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들어섰고 머지않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게 된다. 노조도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체면도 차리고 남도 배려할 줄 아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기업 노조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노조가 허용되면서 근로자들은 개개인이 기업가와 1대 1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노조가 기업가와 1대 1로 상대하게 됨으로써 사측과 대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뿐 아니라 근로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다른 한편으로 대기업 노조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극단적인 행동이라 할 수 있는 파업을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임으로써 우리의 사회 경제에 많은 희생과 수업료를 지불하도록 했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사실이다. 대기업 노조는 극도의 이기주의에 빠져 파업이라는 무기를 최대한 활용, 사측은 노사간의 협상에서 100전 100패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여북하면 그들 대기업 노조들을 일컬어 귀족노조니 황제노조라고 하는 말까지 붙여지고 있는 데다가 각종 비위와 부조리까지 저지르고 있어 질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시 가장 커다란 희생을 당한 기업들은 바로 이들 대기업이었다. 파산이라는 회오리바람 속에서 엄청난 구조조정을 당한 기업들이 특히 이들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들과 연관된 많은 중소기업도 따라서 피해를 입었다. 그 후유증으로 우리 경제는 아직 저성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대기업 노조는 여전히 변함없이 이익 극대화에 몰입하고 있다는 감이 들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장년기에 들어선 노조가 변하지 않고는 한국경제의 미래가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폐쇄된 경제사회에서는 노조가 자기들의 이익만을 챙기고자 극단적인 행동도 불사할 수 있지만 세계화 시대라고 하는 무한경쟁시대에는 그렇게 해서 이익을 챙길 수 없다. 그렇게 하다간 경쟁에서 낙오되기 십상이다. 극단적인 노동운동이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음은 물론 뼈아픈 엄청난 구조조정을 당하는 계기가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경쟁상대인 미국이나 일본의 노조활동이 유연해진 지 이미 오래며 중국은 노조활동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오늘날 특히 독과점적인 대기업들은 생산의 우회도가 크기 때문에 노조의 파업이나 임금인상이 자기들 기업의 경영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수백개의 관련기업들에게 직접 및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자기이익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딸린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이 확보돼야 자기들의 경쟁력도 커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독불장군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대기업 노조들은 관련 중소기업들의 처지도 배려해 상생의 길을 걷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중소기업들의 죽음 위에 대기업들만이 존립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가 너무 커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넷째, 우리의 임금수준이나 근로조건은 과거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개선됐다. 주 2일 휴무제, 주 52시간 근무제에다 의료보험, 실업보상제도, 국민연금 등 각종사회보장도 과거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졌다. 이런 제도들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의 노조와 현재의 노조는 분명 달라져야 마땅하다. 자동차회사의 생산직 연봉이 1억원이라는데 28년을 유지해온 한 부품회사의 대표는 더 이상 견디다 못해 회사를 운영할 수 없다면서 매각하려 해도 원매자가 없다고 푸념하는 것을 듣고는 마음이 씁쓸했다. 정녕 우리의 대기업 노조는 변할 수 없는 것일까? 정재철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