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가 초미(焦眉)의 관심을 가졌던 미국의 중간선거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에서 각각 다수당이 되면서 의회권력을 반분하는 상황으로 종결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에게 하원의 절반이상을 내줌으로써 임기 후반 그의 국정운영의 독주는 더 이상 불가능해 졌다. 특히 민주당과 상당한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에서는 의회의 집중견제가 예상되기 때문에 전보다 신중한 행로가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미국의 중간선거 직후 김영철-폼페이오 北-美회담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동안 북미는 지난 6월 ‘센토사선언’ 이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유엔의 대북제재를 놓고 이견을 보이며 교착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전격적으로 연기된 양국 간 고위급회담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비핵화협상에 적지 않은 차질을 야기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북미의 비핵화 논의에 어떤 차질이 생긴다면 경협 등 남북관계의 일정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최근 중러와 공동전선을 펴며 국제제재 완화를 위해 나름대로 진력을 다해 왔다. 더욱이 미국이 ‘선(先)비핵화 후(後)상응조치’ 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제재의 완화 불가방침을 천명하자 북한은 “핵·경제 ‘병진 노선’으로의 복귀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북한전문가들 중에는 북한의 비핵화 협상의 전개과정이 미국이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해소하고 체제안전을 보장해주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철폐를 조건으로 상호 비핵화에 ‘노력’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관철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협상전략에 말려들고 있다고 보며 북한은 자신들에게 용도가 다한 핵 실험장과 미사일 발사시험장에 대한 사찰카드로 핵 신고서 제출을 피하면서 성과에 목마른 미국을 현혹시켜 북미 정상회담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이끌어 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핵 리스트 신고를 거부하고 선(先)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특히 북한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적대 세력들이 자신들을 굴복시키려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 광분하고 있으니 자력갱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번 시장화를 경험한 북한주민들의 시장화 욕구를 되돌리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제재로 인한 경제 불안과 내부불안으로 체제위기가 가중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미국의 민주당은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 간 ‘빅딜’ 방식으로 진행되어온 북미 비핵화협상을 합리성이 결여된 도박으로 치부해 왔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유보해온 생화학무기와 같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인권문제까지 협상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공화당에 비해 훨씬 엄격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따라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준 트럼프 행정부는 민주당과 여론의 견제 속에서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할 개연성이 커졌다. 차제에 우리 정부는 북미정상회담이 열린지 5개월이 되도록 합의 이행을 위한 로드맵과 검증체제에 대한 협의조차 시작도 못하고 있는 북미 간 비핵화협상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정부는 감성적인 민족주의와 남북관계의 성과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제재완화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자칫 한미공조 및 한미동맹을 저해하고 결국 안보불안까지 야기할 수 있는 일각의 우려를 키워왔다. 감성적인 민족주의와 전시적인 성과주의를 경계하고 실효성 있고 합리적인 대북정책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유영옥 국민대교수·국가보훈학회장
내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만간 러시아를 방문하고, 시진핑 주석의 북한 방문도 곧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안방군수’ 역할을 자처해 오던 북한 최고지도자의 해외방문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것으로 보였지만 우리나라와 중국 정상 간의 3차례 회담, 그리고 북미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은 정상국가에서의 정상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가운데 한반도에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질서는 우리로 하여금 보다 세련되고 입체적인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최대의 현안인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접근법도 복잡 미묘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와의 인터뷰에서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낙관하면서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강한 의지의 일단을 내비쳤다. 그러나 현재 북한과 미국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핵협상의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낙관적 희망과 기대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많은 요인들이 산재(散在)해 있다. 우선 우려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핵문제가 단지 미국과 북한 사이만의 문제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는 미국이 다 알아서 할 문제라는 듯이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성과에 매몰되어 조급증마저 내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얼마 전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강 외무장관이 ‘5·24 조치의 해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 발언과 관련하여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승인 없이 한국은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권침해 논란까지 일으키며 한국에 대한 경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북한이 미국과 핵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일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외교적 총 역량을 집중하여 중국, 러시아 등과 연대를 형성하며 제재완화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국제제재의 전선을 흩뜨리는데 골몰하고 있다. 이런 미묘한 시점에 우리 정부는 북한 석탄 밀반입, 개성 연락사무소개설, 철도 연결 및 군사합의 등에서 미국정부와 이견을 축적해 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표출된 금번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결례성 발언에 이은 국무부의 반박성명은 정부의 대북정책들에 대한 누적된 불만의 표출로써 한미공조에 대한 우려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만약 일각의 우려대로 한미공조에 큰 균열이 생기고 양국 간에 불신이 더욱 가중되고 북한이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이 가능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는 대신에 북한이 기존의 핵전력을 묵인 받는 정치적 타협이라도 추진되어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도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긴급한 현안인 이산가족들의 한을 풀어주고 북한과 경제협력을 통해 북방경제시대를 열어 우리의 경제 활력을 회복하고 우리민족의 공동번영을 이끌어 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부푼 꿈이자 전민족의 숙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북한은 핵폭탄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 북한이 40발 이상의 핵탄두와 운반수단인 1천여 기의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년 10발 이상의 핵탄두를 양상하고 있다는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는 바탕에서 남북관계 및 대외관계의 기본방향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정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 없는 남북관계의 개선이라는 것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북한 핵문제의 제1의 당사자는 미국이 아니라 바로 우리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장의 심각성에 둔감(鈍感)한 순진한 민족주의야 말로 우리 앞에 놓인 제1의 안보의 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평화에 취할 때가 아니라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냉철해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 생각된다. 유영옥 국민대 교수·국가보훈학회 회장
이달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에서 열리는 3차 남북정상회담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 주지하듯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전격적으로 취소된 가운데 북미 핵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최근 한반도정세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북미 핵협상에서 미국은 종전선언에 앞서 북한이 핵탄두와 핵 물질, 핵 시설의 리스트를 제출하면 이를 검증하고 종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입장과 북한의 선 종전선언 요구가 상충하면서 양국의 협상은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다. 이처럼 교착국면에 있는 북미의비핵화 협상을 제 궤도로 돌려놓는 문제는 우리의 국가안보에 명운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우리정부의 역할이 그 만큼 엄중해 졌다.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압박이 점점 강화되고 있고 한 동안 수면아래 가라앉아 있던 ‘북한 인권문제’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 정부를 향해 북한의 비핵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남북사업을 자제하라며 동맹국 사이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강한 톤으로 경고를 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지난 5일 국가안보실장과 국정원장 등을 주축으로 한 ‘대북특사단’이 평양을 다녀왔다. 우리 특사단이 북한 김정은위원장을 면담하고 우리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며 합의한 사항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일정(918~20, 평양),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의지에 관한 김정은위원장의 확고한 의지 재확인,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대화 지속,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 등 크게 4개항으로 요약된다. 금번 대북 특사단이 북한의 김위원장과 합의한 사항은 북한을 설득하여 교착상태에 있는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으로부터 뭔가 획기적인 특단의 조치를 바라던 우리 국민들의 기대에는 못 미친다. 사실 북핵 문제의 핵심은 과연 북한이 ‘북핵 리스트’를 제출하고 국제기구의 사찰을 받을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의 해결 없이는 남북경협 등 남북관계의 협력사업이 실질적으로 진전하기 어려운 현실을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 특히 우리 정부는 남북 연락사무소를 며칠 내에 개소할 예정이며 남북 정상회담에서 남북 경협사업이 주종을 이루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북제재 위반여부를 우려하는 미국의 목소리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3차 정상회담에서 ‘북핵 리스트와 검증’에 대한 북한의 획기적인 조치를 끌어내는 것을 회담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만일 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실천적 방안을 도출하지 못한다면 판문점선언(427)의 이행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논의들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북한에게는 ‘핵 폐기’와 관련해 더 이상 주저하거나 차일피일 미룰 시간적 여유가 없다. 금번 99절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던 중국 시진핑 주석의 북한방문이 실현되지 못한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북한을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지원 및 후원하던 중국의 국제사회 눈치 보기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체제유지의 보검이라 오판하고 종전처럼 말과 행동이 다른 표리부동한 행태로 핵 폐기가 아니라 시간벌기라는 위장전술을 계속한다면 판문점선언은 휴지조각이 되고 결국 북한정권은 외교고립과 경제난이 더욱 심화돼 정권자체가 위기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오는 3차 남북정상회담은 북한당국이 이러한 상황인식을 분명히 하고, 그러한 인식의 토대 위에서 ‘완전하고도 검증가능하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를 위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방안을 제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장이 돼야 한다. 이는 판문점선언의 이행 및 실천을 통한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의 여부에 대한 공(球)은 북한에 넘어가 있음을 은유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문제 해결의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영옥 국민대 교수·국가보훈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