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감사원, 용인시 망신 줄 자격 없다

본 공사가 4천억원이다. 여기에 1천329억원짜리 전망 타워를 얹어줬다. 수의계약으로 줬으니 덤도 이런 덤이 없다. 횡재 한 업체가 입 닦고 있을 리 만무다. 담당 공무원들을 캐나다 미국으로 보냈다. 6천만원짜리 호화여행이다. 공무원 딸도 데려다 취직시켰다. 엊그제 발표된 감사원의 용인 비리실태다. 경전철 비리의 용인시가 또로 시작하는 기사가 봇물을 이뤘다. 담당 공무원의 민낯이 TV화면에 그대로 공개됐다. 모자이크 처리의 배려도 없었다. 뻔뻔한 공무원이란 설명도 따라붙었다. 이쯤 되면 대망신이다. 업체 돈으로 여행 가면 안 되는 거다. 취직 부탁도 공무원이 했으니 압력이다. 그다지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행위에 비해 과한 망신을 당했다는 점은 이상하지만. 사실 이런 일은 처음 듣는 일도 화들짝 놀랄 일도 아니다. 시장님의 해외여행 때면 심심찮게 목격되는 게 목적을 알 수 없는 일행들이다. 취업난 시대에 자식 일자리 구걸하러 여기저기 줄을 대 보는 모습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도 파장이 크다. 용인시라서다. 용인시하면 경전철이 떠오르고, 경전철하면 혈세 낭비가 떠오른다. 미운털 박힌 용인시에 정확히 조준된 감사원의 칼이다. 그런데 영 개운치 않다. 감사원의 칼이 왠지 격에 맞지 않아 보인다. 왜 그럴까. 2006년 4월. 수지시민연대 앞으로 감사원의 회신 하나가 배달된다. 용인 경전철에 대해 이 단체가 청구한 감사결과 통보다. 수요예측은 적당했고, 투자법 위반도 아니고, 손실보전 계약은 정당하고, 소음진동 대책도 잘 돼 있다. 그러므로 경전철 사업은 문제가 없다. 수지연대가 문제 삼은 모든 부분이 문제없다로 정리됐다. 찜찜해 하던 지역 여론도 확 돌아섰다. 감사원이 경전철 추진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냈다. 사업 추진이 탄력을 받게 됐다. 최고 감찰기관의 결정은 그렇게 모든 지역 내 우려를 한순간에 잠재웠다. 경전철 감사 문제 없다더니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난 4월5일. 수원지검 안상돈 차장 검사가 경전철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수요예측이 과장됐고, 손실보전 계약도 위법했고, 소음진동 대책도 엉터리였다. 용인 경전철은 총체적 부실이다. 6년 전 감사원 판단과 정 반대다. 관련자 10명을 기소한 검찰이 거짓말을 했을 이유는 발견되지 않는다. 결국 감사원의 판단이 엉터리였다는 얘기다. 6년 전이면 어떤 시긴가. 7천300억원의 혈세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마지막 시기였다. 2조5천억의 미래 손실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런 예민한 때 나온 감사원의 오판이었다. 이제 세상이 다 안다. 선출직 시장(구속)은 임기에 쫓겨 치적 쌓기에만 급급했다. 교통개발연구원은 시장의 입맛대로 수요를 턱없이 부풀렸다. 시의회는 사업을 감시해야 할 기본 책무를 팽개쳤다. 발표된 범죄 구성도를 보며 시민들이 치를 떨었다. 그런데 이 책임의 울타리 속에 쏙 빠져 있는 곳이 있다. 감사원이다. 모든 위법 덩어리 위에 결정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게 감사원이다. 아무 문제 없다는 판단으로 면죄부를 줬다. 이 면죄부에 올라탄 경전철의 부실투성이 고속 질주가 그때부터 시작했다. 소 잡는 칼로 닭만 쫓아다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안고 있는 감사원이 6년 만에 용인시를 뒤졌다. 그래서 내놓은 작품이 망신주기 감사다. 겨우 이런 거 들추려고 10평짜리 상설 감사방에 진 친 건가. 연간 220일(타 기관 감사 포함)을 뒤져서 찾아낸 게 고작 해외 여행, 취직 청탁인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경전철에 관한 한 감사원은 수지 시민들보다도 못했다. 수지연대의 6년전 자료는 차라리 예언서다. 2012년 수원지검의 수사결과발표와 거짓말처럼 일치한다. 그 자료를 만들었던 정주성씨(현 수지연대 운영위원)의 실망과 아쉬움은 지금도 여전하다. 17일 취재에서 말했다. 감사원이 왜 그런 거 같으냐고요? 아마 바빠서들 그랬나? 나 원 참. 원망을 넘어선 체념이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의 6년. 예산 규모 3위의 부촌(富村)이 부채규모 1위의 빈촌(貧村)으로 추락해 가던 그 기간. 감사원은 소 잡는 칼 휘두르며 닭만 쫓고 있었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나는 60년 앉은뱅이였는데… 왜”

난 60평생 앉은뱅이였어.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도 아니잖어. 그런데 왜 20년만에 장애등급이 1등급에서 2등급이 된 거냐고. 딱했다. 김씨(61인천시 연수구)는 평생을 앉아서 지냈다. 손재주가 뛰어나 젊은 시절엔 악사(樂士)로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방 기계가 들어온 뒤부터는 이마저 끊겼다. 아무 일도 안 한 지 벌써 15년째다. 딸(19)은 기본학업을 이어가기도 버겁다. 부인(52)의 허드렛일은 한 달에 열흘 잡히면 다행이다. 김씨의 목소리는 하소연이 아니라 분노로 가득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라던 판단은 착각이었다. 연수구에 취재해 볼 필요도 없었다. 김씨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장애등급 판정 방식이 바뀐 건 2011년 4월이다. 1989년 이후 22년만의 개정이다. 개정의 취지는 엄격한 판정이었다. 이를 위해 의사가 하던 판정을 국민연금공단(장애심사센터)으로 넘겼다. 심사강화라는 말 속엔 가짜를 가려내겠다는 뜻이 있었다. 백번 옳은 선택이다. 줄줄 새는 혈세를 막는 게 국가의 의무다. 하지만 판을 펴놓고 보니 그게 아니다. 엄격한 심사라는 말은 까탈스러운 심사를 말하는 거였고, 허수(虛數) 정리라는 말은 전수(全數) 축소를 뜻하는 거였다. 장애인 등급 하락 3만3천명 앉은뱅이 생활이 60년 동안 바뀐 적도 없고 나아진 적도 없다. 그렇다고 등급 판정의 기준이 바뀌지도 않았다. 바뀐 거라곤 의사에서 연금공단으로 변한 심사주체뿐이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급이 하락했다. 김씨만의 얘기가 아니다. 무려 3만3천여 장애인이 등급하락의 날벼락을 맞았다. 재심사를 받은 9만3천여명 가운데 36.7%다. 작정하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더기 하락이 나올 리 없다. 그렇다고 3만3천여명 모두가 가짜 등급자였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 기껏 한다는 얘기가 억울한 장애인이 있을 수 있으니 이의신청을 해달라다. 무슨 국가 정책이 억울할 수도 있는 사람을 40%나 만들어내나. 에둘러 말할 필요 없다. 복지 예산 충당하려고 장애인 복지에 손댄 것이다. 심사 강화 방침이 알려졌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오판술 연금공간 장애등급센터장도 2010년 예산 줄이기 위해 장애등급을 하락시키지는 않겠다고 해명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가 우려했던 쪽이다. 장애인 40%에게 등급하락의 철퇴가 내려졌고 그만큼의 예산이 국고로 들어갔다. 장애등급 판정제도 개선은 장애복지 예산을 줄이려고 시작한 것이다. 그 악역을 위해 의사를 제치고 연금공단이 나선 거였다. 보편적 복지 예산 돌려막기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보편적 복지 왕국을 꿈꾼다면서 기본 복지 예산을 뺏어 가는 나라다. 앉은뱅이 지원금 뺏어 재벌 손자에게 밥 주는 나라고, 정신병자 등급 낮춰서 재벌 손녀(0~2세)의 보육비 대주는 나라다. 이래놓고도 이런 말만 하면 펄쩍 뛴다. 저 돈과 이 돈은 다르다고 말한다.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얘긴지. 어차피 국부(國富)란 오크통속에 채워진 포도주다. 한 귀퉁이 널빤지가 떨어져 나가면 그 자리까지 포도주는 빠져나가는 거다. 이 널빤지 저 널빤지의 용도가 따로 있지 않다. 무상급식에 쓰일 예산 따로 있고 장애인 복지에 쓰일 예산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 뻔한 공식을 알면서도 모른 척 외면하겠다는 논리, 복잡한 예산 피라미드 뒤로 숨으면 국고가 거덜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할 거라는 논리, 이 논리가 바로 보편적 복지가 입 닫고 있는 교활한 술수다. 김씨의 방에는 문턱이 없다. 앉아서 이동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그 한(恨)도 인정받지 못해 장애등급이 박탈됐다. 애써 이유를 따질 일이 아니다. 돈 없이 벌려놓은 보편적 복지를 위한 예산 돌려막기의 시작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칼럼] MS 문건 작성자는 문건 속에 있다

경기도 대변인의 말이 사흘 동안 세 번 바뀌었다. 경기일보가 MS 문건을 입수했던 24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보좌진들이 논의한 것을 습작처럼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보도가 나가고 여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됐던 25일엔 달라졌다. 외부 지인으로부터 받은 자료다. 선관위 조사가 시작된 26일에는 또다시 바뀐다. (외부)홍보기획사로부터 넘겨받은 문건이다. MS 문건이 도청을 뒤흔든 3일간, 문건 작성자는 이렇게 세 번 바뀌었다.법률(法律)적 의미는 하늘과 땅이다. 24일 해명대로라면 도청 내 참모진의 현행법 위반이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범죄다. 25일과 26일의 주장대로라면 법적 책임은 없다. 행정기관 건물 내에서 대통령 만들기 문서를 주고받았다는 게 자랑일 순 없다. 하지만 그 점만으로 범죄니 입건이니 하는 우악스런 말을 쓰는 건 무리다. 결국 25일과 26일의 해명은 이번 일을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는 최상-적어도 공직 입장에서는-의 해명이다. 그래서 MS 문건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세 번의 해명 중에 첫 번째 해명, 즉 보좌진의 논의 내용을 습작처럼 정리한 것이 맞을지 모른다는 촉(觸)이 가시지 않는다.첫 번째. 문건 속 글자의 크기와 굵기가 제각각이다. 공개된 문건은 A4 용지 3장이다. 서민 이미지 홍보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한 장이고, 매체별 홍보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두 장이다. 첫 째장과 셋째장의 본문은 신명조체 12급 크기다. 그런데 둘째 장의 일부분은 견명조체 14급으로 쓰였다. 통상 다른 기기에서 작성된 문서를 퍼 날라 붙이는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번에 작성되지 않았거나 다른 컴퓨터에서 작성된 두 문장을 붙였을 가능성이다. 극존칭에 오타까지 조잡한 내용두 번째. 지사님 사모님이라는 구어체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현장에서 쓴 시집 출간(지사님) 사모님 책(에세이). 지사님 생활 공개 등이다. 사업 제안서 혹은 아이디어 제안서에 등장하는 형식은 철저하게 문어체의 고유명사다. ~님과 같은 구어체의 극존칭 표현은 공식 제안서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혹 행사용 제안서라면 모를까. 평소 지사님 사모님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관계인의 습관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으로 보인다. 세 번째. 황당한 오타다. 이벤트에 대한 전략이 표기된 부분에서 문건은 서민 김민수 전략투어라고 적고 있다. 김민수는 김문수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문건 작성 후 한 번만 검토했더라도 바로 잡혔을 단어다. 아니면 컴퓨터 내 맞춤법기능을 적용했어도 발견됐을 실수다. 여기에 밑줄(_) 사용도 기준이 없다. 첫 번째 소단원에서는 본문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두 번째 소단원에서는 제목에 그어져 있다.뒤죽박죽인 글자 배열, 여기에 적절치 않은 극존칭과 중대한 오자 방치까지. 도청을 발칵 뒤집은 MS 문건에는 이처럼 이해 못 할 허점들이 줄줄이 흐르고 있다. 뭘 의미할까. 얼핏 도출되는 결론이 있다. 홍보기획사가 이런 제안서 내나우선 김문수 지사는 이 문건과 관련 없어 보인다. 도지사의 명(命)으로 만든 문건이라면 이렇게 조악할 리 없다. 직속상관의 지시로 문건을 만들면서 김민수라고 적어 바칠 공직자나 측근은 없다. 같은 이유로 추후에 김 지사에게 보고된 공식문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적어도 문건의 수준만을 놓고 보면 김 지사의 뜻과 달리 만들어졌고, 김 지사에게 전달되지 않은 문건이다.그렇다고 외부에서 만들어진 문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기획안 작성을 생명으로 하는 홍보기획사의 제안서라는 얘기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반복되는 구어체의 극존칭이 그렇고, 원칙 없는 형식과 조잡한 테마 구성이 그렇다. 대권 전략 제안서라면 대통령 만들기에 숟가락을 얹는 행위다. 세상 어느 기획사가 이런 황당한 수준의 문건을 기획서랍시고 접수하겠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선관위가 밝힐 것이다. 다만 문건을 들여다볼수록 보좌진들이 나눈 의견을 습작처럼 적은 내용이라던 최초 해명이 잔상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칼럼] 도지사 사퇴? 도민은 국민 아닌가

빌 클린턴이 한국의 홍길동으로 태어났다면? 로널드 레이건이 한국의 김갑돌이로 태어났다면?갤럽이 미국 국민 1천6명에게 물었다. 역대 대통령 중 누구를 가장 존경하는가. 2007년 2월19일의 조사였는데 답이 의외다. 아브라함 링컨(1위)과 존 F. 케네디(3위)는 그렇다 치자. 워낙 역사 속 전설로 남은 인물들이다. 이 기라성 같은 이름 속에 끼어든 게 로널드 레이건(2위)과 빌 클린턴(4위)이다. 전설로 남기엔 너무도 빈약해 보이는 이들을 미국인들은 역대 최고 반열에 올렸다.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전쟁 영웅 아이젠하워, 공황극복의 전설 프랭클린 루스벨트도 전부 이들의 뒷자리다.그래서 해본 나른한 상상이다. 한국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빌 클린턴과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오른 건 미국이어서 가능했다. 뛰어난 능력이나 수려한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주지사가 대통령 될 수 있는 미국 법률과 도지사시장이 대통령 될 수 없는 한국법률의 차이다. 경선에 나가보겠다는 의사표시만으로 도지사직 사퇴하라며 지면이 도배되는 정치문화의 차이다. 역사 속 감동으로 챙겨도 좋을 대통령 카드도 도지사라는 이유로 버려지는 나라. 그게 한국이다. 김문수 지사의 사퇴 요구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다분히 법을 넘어선 정치적 정서를 깔고 있다.대통령에 생각 있으니 사퇴하고 나가라? 이 논리를 대입하면 남아날 도지사가 별로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대통령 되고 싶어 한다.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행정행위를 넘어선 정치행위다. 김두관 경남지사는 대권을 입에 달고 산지 꽤 됐다. 이른바 부산을 먹을 수 있는 야권 카드로 자신을 소개한다. 친노 세력의 좌장 안희정 충남지사는 어떤가. 486 정치세력의 중심으로 향후 권력에 모든 언행이 맞춰져 있다. 가까이는 송영길 인천시장도 있다. 공무원들 월급 챙겨주느라 정신없어 잠시 입을 닫고 있을 뿐이다. 대권싸움에 도정폐기 압박김 지사와 다를 게 없다. 잠재적 후보군이라는 점이 같고, 대권에 대한 꿈을 밀고 있다는 점이 같다. 언론이 그렇게 쓰고 있다는 점이 같고, 시민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 같다. 행정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도리에서 같고, 선거법상 제약을 받는다는 신분에서 같다. 그러면 모두 지사시장직을 내놔야 한다. 오는 12월19일 보궐선거에는 경기지사뿐 아니라 서울시장, 인천시장, 경남지사, 충남지사도 모조리 다시 뽑아야 한다.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게 사퇴의 구분점이 될 순 없다. 모두가 거꾸로 말하고 있다. 지금 압박할 건 사퇴종용이 아니라 책임 완수다. 불과 2년 전에 1천200만 도민이 40억원을 들여 뽑아줬다. 그 때 김 지사가 했던 수 없는 약속이 있다. 무한돌봄사업 하겠다고 약속했고, 사회복지공제회 하겠다고 약속했고, 가정보육교사제 하겠다고 약속했다. 첫 임기 때 약속이행 1등을 했으니-2007 한국 매니페스토 실천본부 평가-2기 때도 잘 할거라고 다들 믿었다. 그런데 도내 곳곳에 널린 숙제거리가 여전하다. 여기저기 그려만 놓은 뉴타운은 어쩔거며, 설계도 못 들어간 GTX(광역급행철도)는 어찌할 거고, 입주자들 암담하게 만든 도청사 이전문제는 어쩔건가. 누구 좋아하라고 이 모든 족쇄를 널름 풀어주자는 건가. 김문수 사퇴가 욕 먹을 일2011년, 많은 이들이 오세훈 시장을 욕했다. 주민투표로 182억원 날렸다고 욕했고, 보궐선거로 258억원 날렸다고 욕했다. 2008년, 안산지역 7개 시민단체가 시도의원 4명을 재판에 걸었다. 시민과의 약속을 버리고 총선으로 뛰쳐나갔다는 이유였다. 똑같은 논리다. 지금 욕해야 하는 건 김 지사의 사퇴다. 혈세 낭비를 욕하고 약속 위반을 욕해야 한다. 유독 김 지사에게만 하루라도 빨리 사퇴하라며 안달을 떠는 이 상황. 역(逆)이다. 혹여 도지사 자리에 눈독 들인 정치적 탐욕에 벌써부터 올라타기라도 했다면 모를까.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남경필·김진표, 지역구는 마지막이었기를

故이병희 의원. 1963년부터 1997년까지 정치를 했다. 모두 7선이다. 명(命)을 달리하는 순간에도 현역이었다. 국회장(葬)을 치른 첫 수원정치인이다. 장관(2 무임소)에 오른 첫 수원사람이고, 아세아농구연맹회장에 오른 유일한 수원시민이다. 하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다. 근대화의 주인공과 군부독재의 충복이라는 평이 공존한다. 그래도 이견 없는 호칭 하나, 수원의 큰 인물이다. 시민 누구든 수원 정치사의 가장 큰 인물을 꼽으라면 이병희를 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게 있다. 큰 인물인 그에게 좀처럼 큰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는 붙지 않는다. 왜 그런지를 보려면 흑백 화면속 영상처럼 흐릿해진 옛 기억을 되돌려 볼 필요가 있다. 신군부에 의한 정치규제가 끝나고 신민주공화당 의원으로 재기했을 때다. 파란색 양복차림의 이 의원이 총리를 상대로 대정부 질문을 했다. 그 내용에 모두가 놀랐다. 신군부가 몰수한 내 재산의 가치가 이중평가됐다<국회 속기록 참조>. 또 하나는 그의 마지막 유세가 된 1996년 봄의 일이다. 당뇨와 백납증세를 숨기며 유세장을 누비던 그가 힘겹게 외친 구호에 모두는 또 놀랐다. 한번만 더 밀어주십쇼. 그러면 내가 7선으로 국회의장이 될 수 있습니다<보좌관 출신 A씨 증언>. 큰 정치인소리를 듣지 못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지역의 열망과 개인의 욕망을 구별하지 못했다. 이런 사고와 처신이 유권자에겐 이기주의와 노욕으로 비춰졌다. 동상(銅像)에 훈장(勳章)까지 추서했지만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큰 정치인이란 수식어는 주어지지 않았다. 故 이병희에 붙지 않는 큰 정치인참으로 오랜만에, 정말 오래된 기록들을 들춰낸 이유가 있다. 이병희 사후 15년만에 수원 선거판에 큰 정치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하나는 수원 병(팔달구) 남경필 의원쪽에서 나왔고, 다른 하나는 수원 정(영통구) 김진표 의원에게서 나왔다. 남의원은 이번 선거로 5선이 됐다. 이미 당 최고위원에 외교통상위원장을 거쳤다. 야권의 바람이 수원을 싹쓸이 했어도 그는 버텼다. 이런 그가 선거판을 누빌 때 나온 말이 큰 정치다. 한번 더 기회를 주면 큰 정치로 보답하겠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영통에 김의원은 아예 선고 공보물에 이 말을 박았다. 큰 인물, 큰 정치-김진표. 그는 3선이다. 하지만 관(官)정(政)을 뛰어 넘는 그의 경력을 따를 정치인이 없다. 부총리만 2번(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이다. 그가 써붙인 큰 정치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 의원과 김 의원의 약속은 한 가지다. 당선시켜 주면 큰 정치를 하겠다다. 그런데 큰 정치가 뭔지는 말하지 않았다. 뭘까. 큰 정치 위해 지역구 털어내야선수(選數)추가는 아닐 것이다. 5선의 남 의원에게 6선은 의미 없다. 혹여 7선 8선까지 간들 달라지지 않는다. 김영삼 김종필 박준규의 9선 기록이 의정사에 남아 있다. 동네에서 6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의미 없기론 김 의원도 마찬가지다. 고희(古稀)를 눈 앞에 두고 치르게 될 선거가 4년 뒤 20대 총선이다. 거기서 1선을 보탠들 무슨 의미가 있나. 거물이란 소리는 이미 부총리 출신의 초선때부터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정치는 1선 추가가 아님이 분명하다. 그래서 떠오른 얘기, 두 사람에게 들었던 독백같은 얘기다. 이제 도지사 후보군에 포함시키겠다고 하자 남 의원은 감사하다고 했다. 도지사에 나가느냐고 묻자 김 의원은 도정 정책도 준비해야 하고 준비할게 많다고 했다. 17대 국회 때니까 벌써 꽤 된 얘기다. 이후 남 의원은 4대 민선 도지사에 경선을 뛰었다. 김 의원은 5대 민선 도지사를 위해 의원직 사퇴까지 했었다.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들이 말한 큰 정치는 도지사다. 이들을 찍은 많은 표도 그렇게 믿었다. 큰 정치 약속도 공약이다. 공약은 지켜야 한다. 지금이 그 시작을 선언할 때다.출근길 시민들에게 모멸 받으며 명함 돌리고, 길거리 유권자에게 항의받으며 악수 청하고. 이런 의미 없는 선거를 또 할 건가. 7선의 노(老)정객이 끝내 얻지 못한 큰 정치인의 의미를 잘 새겨야 한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曰, “우리 권선구는 왜 이 모양이죠?”

지난 21일 오전, 시민단체 간부 A로부터 전화가 왔다. 권선구가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길래 누굴 찍을거냐고 되물었다. 후보 세 명에 대한 그 나름의 촌평이 이어졌다. 누군 이래서 안 되고, 누군 저래서 안 되고. 그러더니 내리는 결론이 땅이 꺼져라 내 뱉는 탄식이다. 도대체 우리 권선은 왜 이 모양이죠?그의 말이 맞다. 권선구는 411 총선의 버려진 땅이다.버림의 시작은 선거구 획정이었다. 멀쩡하던 권선구가 갑자기 쪼개졌다. 권선구의 중심인 서둔동이 팔달구로 빠져나갔다. 투표는 팔달구 후보에게 하고 행정은 권선구 관리를 받는 이상한 동네가 된 것이다. 이런 짓을 해놓고 찜찜했던지 수원지역 선거구 이름을 죄다 바꿨다. 장안권선팔달영통구를 없애고 갑을병정으로 바꿨다. 영문을 모르는 시민들은 지금도 좋은 이름 놔두고 왜 바꾼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부아가 치민 구민들이 일어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잘못된 선거구 획정을 무효화해 달라는 헌법 소원을 냈다. 2만178명이나 되는 구민들이 서명했다. 하지만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아니다. 4월 11일 선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새로 짜여진 판에 의해 굴러 가고 있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가 권선구민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크지 않아 보인다. 낙하산 논란에 룸살롱 의혹까지여기서 끝났으면 그래도 괜찮다. 찍어 달라며 눈앞에 어른거리는 후보들의 면면이 참 어이없다.배은희 후보는 권선구에 온 지 10일쯤 됐다. 얼마 전까지 서울 용산에서 명함을 돌렸다. 용산 종합병원 설치, 남산 관광벨트 추진 등 용산 작전을 설파하던 장본인이다. 용산 참사의 위령탑을 세우겠다고도 했다. 배 후보의 이런 용산 사랑은 지금도 인터넷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랬던 배 후보가 갑자기 권선구로 내려왔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권선의 수양딸이 되겠다다. 생뚱맞기 이를 데 없는 소리다. 과년한 처자가 남의 집에 쳐들어와 내가 이 집 딸이 돼야겠다며 자리를 펴고 누운 꼴이다. 정미경 후보는 이를 문제 삼으며 출마했다. 낙하산 공천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이는 몰라도 정 후보에겐 그럴 자격 없다. 권선구 낙하산 공천의 역사, 이 자존심 상하는 역사의 시작은 바로 그다. 4년 전 뜬금없이 등장한 그가 공천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수원 권선은 아무나 꽂아도 되더라는 학습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억울하다며 펄쩍 뛰지만 구민들에겐 4년 전의 데쟈뷰일뿐이다. 2008년 3월 19일, 신현태 후보가 말한 몸이 아프신 어머니 뜻에 따라 승복하겠다라던 우울한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신장용 후보의 공천은 정상적이었다. 그런데 그를 따라다니는 잡음이 메가톤급이다. 룸살롱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이다. 2010년 수원시장 경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나온 소리다. 당시 수원여성회 등 19개 시민단체가 성명까지 내면서 성토했다. 신 후보는 아니라고 말한다. 세무서 자료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해명된 건 아무것도 없다. 거기서 본 적 있다는 목격담이 여전하고 아차피 룸살롱 사장은 바지사장들 아니냐는 비아냥도 여전하다. 동업을 했다는 인계동 성인오락실 얘기는 또 뭔지. 해명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꼭 투표 합시다는 말이 나오나권선구민에 차려진 411 밥상이란 게 이렇다. 얼굴도 모르던 후보가 유력 정당 대표로 나타나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낙하산 공천의 업(業)을 가진 후보가 자신의 과거는 잊고 억울하다며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입에 담기 어려운 잡음을 털어내지 못한 후보가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어쩌다 있는 얘기거나 흔치 않은 얘기인데 권선구에는 이런 어쩌다 있거나 흔치 않은 후보가 죄다 모였다. 그리고 그 세 명이 3강(强)이다. 금배지에 가장 접근한 후보 3명이다. 선거구를 난도질 당한 지 며칠 됐다고 또 이런 밥상을 차려 내놨나. 먹으라는 밥상인가 뒤엎으라는 밥상인가. 지금도 권선구 가로수에는 꼭 투표합시다라는 선관위 현수막이 내걸려 있던데. 참 얄궂은 표어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수원상의, 떠나야 할 의원들 있다

삼성 이전 결사반대!, 삼성 이전 요구 철회하라!. 90년대 말, 수원시내를 뒤덮었던 현수막이다. 선거철을 빼고 한가지 이슈가 그토록 지역을 달궜던 적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에 약한게 기업이다. 옮겨 가라면 옮겨 갈 수밖에 없다. 그때의 삼성도 아무 말 못했다. 그 쓰라린 속을 97만 수원시민(당시)과 지역 경제단체가 나서 긁어줬다.경기도의 기업환경은 늘 이런 투쟁과 위기의 연속이다. 지방으로 옮기라는 권력의 엄포가 떠나지 않는다. 감세(減稅)의 유혹에 떠난 기업이 이미 한 둘 아니고, 인구 억제라는 명분앞에 좌초된 사업확장이 한 둘이 아니다. 그때마다 경제단체들이 나섰다. 그래서 얻는 게 그나마 특례니 한시니 하는 조건부 배려다. 서울에 거주하는 공룡기업의 지역사냥도 심각하다. 돈 좀 된다는 사업은 모조리 가져간다. 지역 기업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라야 컨소시엄에 빌붙는 지역 할당 5~10%가 전부다. 이 역시 지역 경제계에 주어진 숙제다. 엊그제 수원상의 회장이 바뀌었다. 20여년만이다. 이번 선거를 주시했던 이유도 이런 변화에의 기대였다. 특정계파의 모임이 아니라 상공인 전체의 모임이 되야 한다고 봤고, 관(官) 주변을 맴도는 단체가 아니라 민(民) 등뒤를 감싸는 단체가 되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될 것 같다. 회장의 문제가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인적 구성때문이다. 상공인 아닌 상공의원이 태반상의에는 의원단이라는 핵심 기구가 있다. 중요 의사 결정부터 회장 투표권까지 다 쥐고 있다. 두 달여전(2월 말 현재 자료), 의원 44명의 면면을 접하고 할 말을 잃었다.대신증권 수원지점장, 국민은행 정자동 지점장, 중소기업은행 동수원 지점장, 한국씨티은행 수원지점장, 삼성증권 수원총괄 지점장, 한국산업은행 수원본부장, 농협중앙회 수원시 지부장. 전부 상공인들이 아니다. 금융인이고 증권인들이다. 상공인을 상대로 여신수신업하고, 상공인을 상대로 보험업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의원이 전체에 15.9%다. 그나마 시(市) 책임자, 동(洞) 책임자의 기준도 엉망이다. 어울리지 않는 의원들은 또 있다. 수원 상공인들과 이익 쟁탈투쟁 관계에 있는 서울 소재 기업의 현지관리인들이다. (주)KCC는 수원지점장이 의원으로 가입해 있고, (주)대한한공도 수원지점장, 대한통운(주)는 경기지사장이 의원으로 돼 있다. 모두 본사가 서울에 있다. 이익금을 매일 밤 서울로 보내고, 세금도 매 분기 서울에 내는 기업이다. 수원 상공인들에겐 입찰, 수주, 사업권을 두고 싸우는 경쟁자들이다. 임의 특별회원으로 돌아가야이뿐 아니다. 자격 자체가 의아한 의원도 있다.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이다. 이 재단의 주된 고객은 상공인이 아니라 소상공인이다. 음식점, 세탁소, 미용실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들이 대상이다. 이들을 도와주라고 도민혈세 투자해 만든 기관이다. 그런데 소상공인과 상관 없는 상공인 협의체에 들어와 의원하면서 간부까지 하고 있다. 언제부턴가는 업무전체를 쥐락펴락까지 한다. 이게 수원상공인의 대표기관인가. 2천300여 회원들이 모르길 천만다행이다. 20여년전. 수원시 거리는 삼성을 지키자!는 현수막으로 뒤덮였었다. 그걸 옛날 얘기로 알면 안 된다. 지금도 여전히 지켜야 할 일은 많고, 투쟁해야 할 일이 많다. 앞으로 수원상의가 열정과 패기를 갖고 풀어 가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그래서 우려하는 것이다. 금융인 증권인이 판치고, 서울 기업의 파견자들이 진치고, 엉뚱한 기관 책임자가 설쳐대는 수원상의로 되겠나. 그런 명단을 앞에 놓고 니편 내편이나 계산하는 수원상의로 되겠나. 차라리 빠지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 본사의 지시 때문에라며 꽁무니 뺄 거면 미리 빠지는 게 낫고, 준(準) 공무원신분이라서라며 뒤로 빠질 거면 지금 떠나는 게 옳다. 임의 회원이니 특별 회원이니 하는 본래의 자격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어차피 회장 선거도 다 끝났다.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김용서의 남경필 공격, 내용 없다

민선 4기 시장을 뽑는 2006년 지방선거. 재선에 도전하는 김용서 수원시장에게 위기가 왔다. 선관위가 선거법위반혐의로 김 시장을 고발했다. 당시 한나라당 공천 기준에 따르면 치명타다. 선거법 등으로 기소된 예비후보자는 공천할 수 없다. 이 기준으로 수도 없는 예비후보자들이 날아갔다. 바로 이 악재가 김 시장에게 터진 것이다. 모두들 김 시장 공천은 물 건너 갔다고 봤다. 제3의 후보를 찾는 준비도 공개적으로 시작됐다. 이때 남경필 의원이 나섰다. 수원지검을 찾았다. 검사장에게 기소 사안이 경미하다. 만일 공천되더라도 검찰이 이 점을 양해해달라고 읍소했다. 기필코 김 시장에게 공천을 주겠다는 의지이자 검찰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겠다는 배려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한나라당 경기도당이 수원시장 후보를 발표했다. 김용서, 공천확정. 자칫 역사에 기록될 수 없었던 민선 4기 김용서시대는 그렇게 남 의원의 응급조치가 있어 가능했다.세상은 그런 둘 사이를 건강하게 보지 않았다. 남 의원이 김 시장으로부터 큰 대가를 받았다며 손가락질 했고, 김 시장이 남 의원의 재산관리인이다라며 비웃었다. 어느 것 하나 근거는 없었다. 하지만 뻔한 것 아니냐는 꼬리표가 붙으며 소문은 사실처럼 번져나갔다. 남 의원의 유별난 김 시장 후원이 몰고 온 여론이었다. 2010년 어느 날, 남 의원에게 물었다. 지난번 선거 때(2006년 지방선거) 김용서 시장에 상당히 집착했는데. 답이 간단했다. 그때는 그게 순리였다. 정치는 순리를 따르는 것이고. 녹취에 욕설, 맞출마까지이랬던 두 사람이 2010년 지방선거를 끝으로 갈라섰다. 유명했던 밀월관계가 유명한 견원지간으로 바뀌었다. 남 의원을 향한 김 전 시장의 성토가 시작됐다. 남 의원 측 인사의 대화내용을 몰래 녹음하는 녹취사건이 터졌다. 남 의원을 손보겠다는 노골적인 협박도 이어졌다. 그리고 2년, 급기야 김 전 시장이 남 의원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독설은 여전하다. 남 의원이 수원을 위해 한 일이 없다 1조2천억원의 국비를 따왔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남 의원측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맞받아친다.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벌써 나왔을 법한데 보이지 않는 게 있다. 세상 모두가 뻔한 것 아니냐고 말하던 둘 사이의 거래다. 재산관리인이니 공천 대가니 하며 입방아에 오르던 그 거래다. 이것 한방이면 끝날 일이다. 그런데 없다. 몰래 녹취하며 치고받고, 국고유치 시비로 신경전하고, 욕설해가며 악다구니 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방법일 텐데 그게 없다. 김 전 시장의 표정에는 여전히 화를 삭이지 못하는 분노가 절절하다. 고의로 숨겨줄 만한 여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면 정말 거래가 없었다는 얘긴데. 세상이 단언하던 뻔 한 거래는 사실이 아닌듯싶은데. 돈 오갔으면 밝히든가돈이 훌륭한 정치인을 재는 전부일 수는 없다. 깨끗한 척 하면서도 능력 없는 정치인은 얼마든지 있다. 8년간의 의혹 말고도 정치인 남경필의 자격을 따져볼 항목은 수두룩하다. 그러나 남경필 대 김용서의 이전투구 문제만은 다르다. 두 사람만의 전쟁이 아니다. 수원지역을 갈라놓고 있는 총선 현안이다. 누가 배은망덕한 정치인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8년간의 거래 명세서를 세상에 밝혀야 한다. 거래가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폭로하는 게 맞고, 그렇지 않다면 남 의원에게 지워진 오해를 덜어주는 게 맞다.그때(2010년) 그 자리에서 남 의원에게 얘기했다. 나도 둘 사이에 거래가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런데 둘 사이가 이 지경에 왔어도 돈 얘기는 없다. 결코 8년의 세월이 짧은 게 아닌데. 쉽지 않은 일인데. 앞으로도 돈 얘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남 의원의 결백만큼은 평가하겠다.김종구 논설실장

서기호 판사 영웅 만들기, 이제 그만 좀 하지

서기호 판사 사태를 너무 쉽게 얘기한다. 너무 쉽게 영웅 만들기에 나선다. 재임용 탈락 결정은 대법원이 했다. 탈락의 연유가 뭔지 공개된 적은 없다. 근무평정이라는 포괄적 원칙만 설명됐다. 쉽사리 옳으니 그르니를 결론 낼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서기호 영웅 만들기에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그 논리를 꿰 맞추고자 이런 저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비슷한 경험자의 말을 각색하고 그럴싸한 정황의 흐름을 편집하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그게 아닌데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방희선 판사(현 동국대 교수) 얘기가 그렇다. 서 판사의 탈락 다음날부터 방 판사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했다. 97년 탈락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대법관 후보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잘못된 재임용탈락의 상징이다. 일부 언론과 인사들이 방 판사의 입을 인용해 서 판사 영웅화를 시도했다. 방 판사가 마치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비난한 것처럼 쓰고 말한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얘기가 다르다. 판사 재임용은 법적 근거가 없다. 탈락의 근거도 없는 셈이다. 입법적 불비(不備)다. 그는 서 판사가 아니라 재임용의 제도적 문제를 얘기한다. 서 판사의 경우와 본인을 비교하는 기사가 많은데라고도 물었다. 대답이 간단하다. 우리 때는 시대와의 투쟁이었다. (서 판사와는) 다르다. 그 사람의 72자 판결문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판사는 판결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일 안 하고 SNS에나 매달리는 판사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런 말도 덧붙인다. (김 실장이)주위에 나와 비교하는 기사 좀 제발 쓰지 말게 해줘라. 길게 이어진 대화 내내 그는 이런 입장이었다. 97년에 탈락한 방 판사가 2012년에 탈락한 서 판사를 보는 명확한 시각이다. 판사회의는 서판사 논의 안했다단독판사회의도 그렇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 남부서부지법에서 시작됐다. 이후 전국의 거의 모든 법원으로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서 판사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현직판사들의 저항으로 그렸다. 사법 파동으로 이어질 조짐이 있다며 군불을 지피는 쪽도 있다. 지켜보는 국민조차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의 결과는 다르다. 토론 대상은 서 판사가 아니라 역시 판사 재임용의 제도적 개선이다. 21일 있었던 수원지법의 단독판사회의가 그랬다. 법관의 재임용 제도에 대해 투명성을 확보할 장치가 부족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제도 개선에 대한 결의문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가 다다. 서 판사 얘기는 거론되지 않았다. 22일 열린 인천지법회의도 같다. 판사의 연임심사 기준과 근무평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논의해 요구안을 채택했다는 게 발표의 전부다. 전국의 어떤 단독판사회의도 서 판사 영웅 만들기에 써먹을 만한 재료를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러면 아닌 거 아닌가. 서 판사 영웅 만들기에 단독판사 회의를 써먹으려는 시도도 틀린 것 아닌가.이제 좀 그만해야 한다. 더 하면 그또한 왜곡이다. 1997년 3월 17일 오후 3시, 수원지법 구내식당 구석. 코흘리개 기자가 방 판사가 마주 앉았다. 제도권이 팽개친 방 판사가 찾은 마지막 기자였다. 그 마지막 인터뷰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 코흘리개 기자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상은 바뀝니다. 다시 평가할 때가 올 겁니다. 나는 영원히 방 판사로 부르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순박한 예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이 됐다. 그런데 그때 그 코흘리개 기자의 눈에도 2012년 재임용 논란은 많이 달라 보인다. 72자 판결은 판사 안하겠다는 뜻그때와는 다르다. 판결이유를 72자로 고집했다는 것부터가 사건 당사자의 권리를 무시한 개인적 실험이다. 당사자들에겐 재산이 걸리고 일생이 걸린 소송이다. 세상에 어떤 문장가가 단 72자로 그 사정을 정리할 수 있겠나. 그런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판사가 또 있다면 그 역시 법원을 떠나야 한다.김종구 논설실장

대한민국 정치, 노인을 버리다

집도 있고 가족도 있다. 거지가 아니다. 부천시가 폐지를 줍는 노인 66명을 조사했다. 43.9%가 전세에 살고, 30.0%는 월셋집에 살았다.17%의 노인은 내 집도 갖고 있다. 대답하지 않은 8.8%를 모두 집 없는 노인이라 쳐도 90% 이상이 어엿한 거주지를 갖고 있다. 이런 노인들이 손수레 끌고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그래서 버는 돈이라야 입에 풀칠하기도 부족하다. 76%가 월 10만원 미만이다.10만원에서 20만원, 20만원 이상이 각각 12%다. 최저생계비 53만2천584원엔 턱도 없다.경쟁도 심해졌다. 80대에서 70대로, 다시 60대까지 내려왔다. 언제부턴가 여염집 주부들도 가세했다. 폐지가격이 곤두박질 칠 수밖에 없다. 한때 1㎏에 300원 쳐줄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150원 받기도 빠듯하다. 이러다 보니 노인들끼리 치고받는 일이 빈발한다. 화곡동에 사는 이모(66) 할머니도 중상을 입었다. 폐지 때문에 싸우던 다른 할머니(83)에게 떠밀려 덤프트럭 밑으로 들어갔다. 이 참담한 소식에 지자체가 한 일은 달랑 야광조끼 나눠준 것이다. 폐지 줍지 않아도 될 근본 대책이 아니라 안전하게 폐지 줍도록 하는 궁여지책이다.이러고도 복지 천국이란다. 두 달여 남은 총선이 가히 복지전쟁이다. 재원마련 대책이나 효율적 분배 따윈 관심 없다. 무조건 퍼주기다. 서로 우리를 찍어야 복지 천국이 된다고 외쳐댄다. 한번 보자.복지에 관한 한 민주통합당이 한발 앞서 간다. 초중학생에게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하기로 했다. 만 5세 이하 보육비용을 전액 지원한다고 한다. 여야 공약, 젊은층에만 집중군 복무자에게는 매달 30만 원의 사회복귀지원금을 주겠다고 한다. 대기업엔 청년고용의무할당제를 강제하기로 했다. 새누리당도 뒤지지 않는다. 초중고교생에게 아침 무상급식을 주겠다고 한다. 만 0세부터 5세까지 전면 무상보육을 시행하기로 했다. 만 5세 이하 전 계층 아동에게는 23만원씩 양육수당을 약속했다. 사병의 월급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고교 과정은 전면 의무교육이다.어디가 보수고 어디가 진보인지 구별이 안 된다. 하긴 굳이 애쓸 일도 아니다. 무상 급식, 무상 보육, 아동 수당, 사병 월급, 청년의무고용제라고 정리하면 다 들어간다.이런 약속들의 수혜자가 기가 막힌다. 무상 급식 7세~18세, 무상 보육 0세~6세, 아동 수당 0세~5세, 사병월급인상 20세~23세, 청년 의무고용제 20세~30세다. 하나같이 30세 이하에게 맞춰진 복지다. 간접수혜층까지 보더라도 아동과 학생을 자녀로 둔 30, 40대까지다. 노인 분야는 모판 가르듯 잘려나갔다. 의료복지확대라고 구색은 갖췄지만 그건 말 그대로 확대다. 신규가 아니다. 이런 노인폄훼 선거판은 없었다모두 젊은 표 때문이다. 젊은 표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한다고 해서 이 난리들이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심하다. 과거 선거 때도 젊은 표는 중요했다. 젊은 층이 관건이라는 분석이 빠졌던 선거는 없다.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4년 전의 18대 총선 공약만 봐도 그렇다. 노년기 관절염 치매 백내장 치료비 지원공약이 있었고, 기초노령연금 수급액을 8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리겠다고도 했다. 노인의 의치(틀니) 치료를 건강보험에 적용시키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이번처럼 철저하게 노인층을 빼놓고 내달리진 않았다. 대체 무슨 벌을 받으려고 이러나. 17대 총선이 한창이던 2006년, 노인 폄훼 문제가 불거졌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노인들은 투표장에 나올 필요 없다는 발언이었다. 정치인들이 들고일어났고 결국 정동영 의장을 직에서 끌어내렸다. 그때 그토록 노인공경을 외치던 그 사람들이 지금은 당을 대표하고 선거를 지휘한다. 그러면서 사상 유례없는 노인 폄훼 선거판을 만들어가고 있다. 노인 표는 영양가 없다는 선거판, 젊은 층에만 올인하자는 선거판. 이런 선거판을 기획하고 밀어붙이는게 바로 그 사람들이다. 2006년에는 노인 폄훼 발언을 한 정동영을 의장식에서 끌어내렸다. 노인 폄훼 선거판을 만들고 있는 2012년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를 여의도에서 끄집어 내야 하는 것 아닌가.김종구 논설실장

[김종구 칼럼] ‘교도소 반대하는 시장, 구속 시켜라’

시장이 말했다. 교도소 부지를 공원으로 묶어 버릴까. 과장이 머뭇거린다. 그건 좀. 시장이 다시 다그쳤다. 왜, 안돼? 저 좋은 녹지에 아파트가 들어서게 내버려둘 거야? 대책을 만들어봐. 알았습니다. 돌아서는 과장의 표정이 어둡다. 온통 관심은 교도소 부지였다. 교도소 재건축도 모자라 인근 녹지까지 파헤쳐 아파트를 짓게 한다는 거였다. 시민이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말도 안 되는 이 구상은 법무부의 거였다. 속사정이 있다. 교도소 재건축에 들어가는 예산이 수천억 원이다. 빠듯한 법무부 살림에 이를 절감하는 게 급선무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건설사와 주고받는 방식이다.재건축을 건설사에 싸게 맡기고 그 건설사엔 인근 법무부 땅을 주는 거다. 교정시설의 신증축이 대게 이랬다. 그러니 이 아파트의 건축 허가는 일반적인 그것과 달랐다. 법무부가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업이었다. 시장이 버티는 것이 바로 이 아파트 사업이었다. 모임이 있은지 며칠 뒤. 시장의 인생을 바꾸는 불운한 일이 시작됐다. 법무부가 시에 내린 공문이다. 귀청 관내에서 진행 중인 ○○건설사의 사업진행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시기 바랍니다. 법무부 장관 ○○○. 기자의 눈에 띄었다. 다음 날 사회면 머리기사로 대서특필됐다. 제목도 자극적이었다. 법무부, 교도소 부지 허가 관련 시에 압력행사 말썽. 야 큰 일 났다, 시장 수사하란다시장이 기자를 불렀다. 김 부장. 기사 잘 봤네. 우리 시의 어려운 점을 대변해줘서 고맙네. 그런데 혹시 우리 직원들이 다치지 않을까. 그의 예감은 맞았다. 다만 대상만 틀렸다. 다칠 대상은 직원이 아니라 본인이었다.신문 보도가 있었던 바로 그날 저녁. 법무부 장관실 소속 계장과 시장실 비서, 그리고 기자가 만났다. 계장이 급하게 불러 모은 자리였다. 야, 너희 시장 큰일 났다. 지금 법무부가 발칵 뒤집혔다. 당장 수사하라고 장관이 노발대발했다. 기사를 본 장관이 크게 화를 냈고 시를 관할하는 검찰청에 수사착수 지시를 내렸다는 거였다. 시장 비서는 시장님이 잡혀갈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잖아. 괜찮아라고 태연해했다. 하지만 3명 모두 심상치 않은 상황이 오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한 달여가 지났을까. 검찰청 직원들이 시장실로 들이닥쳤다. 짧은 대화가 오갔고 시장이 연행됐다. 시장이 모 건설사로부터 수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 내용이 흘러나왔다. 시장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조사 이틀째 시장이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다시 검찰청으로 돌아가는 길에 메모지 한 장이 떨어졌다. 겉표지에는 ○○일보 김○○부장과 ○○방송 김○○기자에게 전해 주십쇼라고 적혀 있었다. 시장은 구속됐고, 교도소는 섰다김 부장, 검찰이 이상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 얘기를 듣지 않아. 나를 구속하려고 미리 결정한 것 같다. 결국 그는 구속됐고 바로 그 교도소로 갔다. 이후 아파트 사업은 급물살을 탔다. 시장이 빠진 시청. 더 이상 제동을 걸고 나설 강심장은 없었다.죄가 없다고 밝혀진 건 1년 반쯤 뒤다. 事必歸正(사필귀정)이란 글씨가 새겨진 어깨띠를 두른 시장이 기자실을 찾았다. 향후 계획을 묻는 기자 질문에 무죄를 받았다고 그동안 잃은 게 회복되지는 않는다며 슬퍼했다. 실제로 그랬다. 무죄로 돌아왔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시장실의 주인은 재판 중 피고인은 당선되더라도 시청에 못 들어갑니다. 찍지 마십쇼를 외치던 사람의 차지가 됐다. 새소리 지저귀던 교도소 인근 녹지는 30층짜리 아파트 2천36세대로 뒤덮였다. 꼭 10년전, 그때는 그랬다. 법무부와 맞짱 뜨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교도소 부지는 법무부가 결정하면 그걸로 끝이던 시절이었다.그때 그 장관은 지금 변호사고, 그때 그 계장은 지금 검찰 수사관이고, 그때 그 기자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때 그 사람들 중 시장만 없다. 고인이 된 심재덕 전 수원시장이다.논설실장

지역구 정치는 지역 정치인이 해야 맞다

대구경북에서 민주당 참패, 호남에서 한나라당 참패!. 4월11일 오후 6 시. 출구 조사를 끝낸 방송사들이 일제히 등장시킬 문구다. 누군가에겐 악담일 수 있지만 상식과 경험을 조합해 낸 엄연한 현실이다. 탄핵의 역풍이 휩쓸던 시절에도 열린우리당은 대구경북에서 패했다. 열린우리당이 전멸하던 그때도 한나라당은 호남에서 패했다. 이번이라고 달라질 건 없다. 정치학자들이 쏟아낼 해석도 뻔하다. 이번에도 텃밭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한나라당의 대구경북, 민주당의 호남. 모두 텃밭이다. 많은 이들이 망국의 징조라며 걱정하는 지역주의다. 헌데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민주주의 꽃이라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50개 주 대부분이 전통적 지지층으로 쪼개져 있다. 공화당의 텃밭과 민주당의 텃밭이 확실히 나누어져 있다. 웬만해선 깨지지 않는다. 어림잡아 30개 주 이상이 이렇듯 특정 정당의 텃밭 노릇을 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 바뀌는 주는 몇 안 된다.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미국은 물론 세계인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도 이런 지역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귀에도 익숙해진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아이오아, 네바다가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다. 위대해 보이는 미국의 민주주의도 결국엔 이 몇 개 지역에 의해 움직여져 왔다. 한국에서는 경기도가 그렇다. 모든 선거의 시계추다. 모든 정당의 운명을 결정한다. 그걸 아는 정당들이 선거 때만 되면 경기도로 몰려온다. 선거 전략의 최우선도 경기도다. 내로라하는 인재들을 투입하고 중앙당이 직접 공천을 챙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게 문제다. 경기도 정치 말살의 시작이다. 말이 좋아 인재영입이다. 따지고 보면 사람 내리꽂기고 낙하산 공천이다. 인재영입은 낙하산의 다른 말성남 분당 을, 용인 처인, 용인 기흥, 안산 단원 갑, 군포, 부천 소사, 의왕과천, 의정부 을. 특정정당의 인기가 높다는 곳이다. 여기에다 현역이 공석이거나 분구가 예정돼 있다는 매력까지 있다. 경쟁률이 최고 10대 1까지 치솟는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 있다. 인재영입의 딱지를 달고 있는 외부 인사들이 판을 친다는 점이다. 지역 출신들이 하나같이 뒷순위로 밀려나 있다.A지역을 보자. 후보만 10명이다. 이중 튄다 하는 인사 두세 명이 모두 외지출신이다. 지역과 상관없이 살아온 비례대표 의원에 중앙무대에서 얼굴이 알려진 방송인 출신이다. 저마다 자기가 외부 영입 케이스라며 침을 튀긴다. 대표적 난개발지역인 이곳엔 신구 도심 간 갈등에 각종 규제까지 현안이 산더미다. 이걸 풀 적임자를 찾는 게 이번 선거다. 그런데 이런 현안과 관련된 과거의 어떤 기록에도 그 사람들의 흔적은 없다. 텃밭 버렸으면 정치도 버려야단 한 명의 적임자도 없다면 모른다. 단 한 명의 인재도 없다면 모른다. 하지만 그게 아니다. 지역민을 위해 봉사하고 삭발하고 땀 흘려온 지역정치인들이 즐비하다. 금배지만 달아주면 당장에라도 국회 잔디밭에 드러누울 사람들이다. 그럴만한 용기가 있고, 애향심이 있고, 기여를 해온 사람들이다. 당연히 검증의 맨 앞에 이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뒤바뀌었다. 따져 보지도 않고 외부인사 띄우기에 몰두하고 있다. 출판기념회마다 몰려다니며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A지역은 예일 뿐이다. 성남, 용인, 안산, 군포, 부천, 의왕, 의정부 지역구의 사정이 다 비슷하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저마다의 인연이 기가 막힌다. 전임자와 동향이라서 과거 정치를 했던 곳이라서 처가의 고향이라서 앞으로 살 곳이라서.19대 총선을 앞두고 번지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텃밭 출마 포기수도권 출마. 대단한 공천개혁이라도 되는 양 추켜들 세운다. 잘못된 연결이다. 텃밭을 포기했으면 정치도 포기하는 게 개혁이다. 연고도 없고, 애정도 없고, 의욕도 없는 엉뚱한 지역에 밀고 들어가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공천 개악이고 정치 꼼수다. 지역구 정치는 지역 정치인에게 맡겨야 한다.김종구 논설실장

[경기일보-칼럼]SNS 보수 논객 10만 양병론

보수 셋만 모이면 나라 걱정이다. 말이 나라 걱정이지 사실은 욕이다. 블로거, 트위터, 페이스북이 다 싸 잡힌다. 천안함을 조작극이라는 정신 나간 인간들 아무것도 모르고 떠드는 철부지들에 심지어 전부 빨갱이들이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그래서 물었다. 페이스북 하십니까. 트윗은 해보셨나요. 돌아온 대답은 그런 짓 안 한다다. 그런 건 한가한 애들이나 하는 거란다.이러니 지는 거다. 보수가 미는 한나라당이 지고, 한나라당을 믿는 보수가 지는 거다. 선거 때마다 맞은 한나라당은 더 맞을 곳도 없다. 제 몸 가누기도 어려워 간판을 내리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수는 그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판에서는 우리가 이긴다며 한가닥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그도 그럴게, 겉으로 본 한나라당은 여전히 강골이다. 많은 사람이 주변을 지켜주고 있다. 중앙선관위 발표 지난해 통계를 보자. 한나라당의 당원은 195만2천466명이다. 비방만 해대면 해결되나이 중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만 20만8천686명이다. 민주당(당시)은 당원이 164만 7천895명에 진성당원이라야 6만4천470명이다. 당원도 훨씬 많고 진성당원은 세배가 넘는다. 선거 때마다 당원확보에 목숨을 걸던 우리 정치공식에서 보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한국 정치를 틀어쥐고 있는 힘 있는 정당이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다. 질 때마다 충격이 컸던 이유다. 분명히 이기고 있었는데 이럴 리가 없다며 아까워한다. 그게 패착이고 오판이다. 427 재보선은 이미 지고 있었다. 1026 재보선도 그랬다. 뻔히 지는 게임을 이긴다고 보고 있었던 거다. 표심이라는 거대한 풀의 절반을 뚝 잘라놓고 한쪽만 쳐다봤다. 반대편에 도사린 거대한 공룡을 보지 못했다. SNS의 어마어마한 머릿수와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보지 못했다.소설가 이외수를 트통령이라고 부른다. 트위터 대통령이란 뜻이다. 그가 140자 촌철살인으로 긁어모은 팔로어(註: 따르는 사람)만 111만 명이다. 한나라당 21만 명과 비교가 안 된다. 대한민국 모든 정당의 진성당원을 합친 33만 명보다도 많다. 일사불란함은 또 어떤가. 밥 사주며 모집하고, 관광 보내주며 유지하는 정치 당원과 다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외수 트위터에 다섯 글자가 떴다. 투표만복래(投票萬福來). 이 뜻을 넘겨받은 건 팔로어들이다. 이 얼굴도 없는 100만 명이 반나절 만에 선거판을 뒤집었다. 직접 뛰어들어 논쟁해야여기에 트총리(트위터 총리)쯤 되는 인사들도 있다. 또 다른 거물 숙주들이다. 박원순(31만 명), 조국(21만 명), 이정희(17만 명). 모두가 선거판을 쥐락펴락하는 빅 브라더들이다. 여기에 보수는 없다. 야당이나 진보 일색이다. 이기고 있었는데이럴 리가 없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무지고, 알면서도 그렇게 말했다면 핑계다. 보수는 이미 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전의 날을 석 달여 앞둔 지금도 지고 있다.100만, 30만, 20만. 누가 누군지 서로도 모른다. 개중엔 비난 받아 마땅한 님들도 있다. 정신 나간 인간들도 있고 무엇도 모르는 철부지들도 있다. 하지만 선거일 아침만 되면 한 후보에게 몰리는 게 그들이다. 100만 표가 고스란히 한 명에게 가고, 30만 표가 고스란히 한 명에게 간다. 선술집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SNS 욕이나 해대는 게으른 보수들이 이겨낼 재간이 있겠나.SNS에 뛰어 들어야 한다. 보수를 대변할 SNS 팔로어 10만이 양성돼야 한다. 그런 SNS 숙주 10만도 양성돼야 한다. 한나라당 좋으라는 제언이 아니다. 어차피 정당이야 이념이 훑고 간 자리에 남는 찌꺼기일 뿐이다. 보수 SNS 10만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균형과 견제다. 지금의 SNS 세상에는 그게 없다. 그래서 거기로 뛰어 들어야 한다는 거다. 균형을 잃었던 지난 10여년, 우리는 오른쪽 끝에서도 불행했었고, 왼쪽 끝에서도 피곤했었다.김종구 논설실장

체벌이 가혹해도 형벌보다는 낫다

2005년. 고교 2학년 A양이 자살했다. 폭행과 협박이 무섭다는 유서를 남겼다. 조사했더니 가해학생 8명이 나왔다. 오랜 기간 이어진 폭언 폭행 성추행이 있었다. 한참이 흘렀고 법원이 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석방됐다. 초범이고 청소년인 점이 참작됐다고 한다. 분함에 화병을 얻은 A양의 아버지도 2010년 숨졌다. 대개가 이렇게 끝난다. 죽은 놈만 불쌍하다는 속된 말 이외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또 자살했다. 이번엔 생때같던 중학생이다. 목에 줄을 매단 채 끌려다니고, 물속에 처박혀 고문당하고, 찾아온 아이들에게 내 집에서 매 맞고. 인간 이하의 학대를 홀로 견디다 허공에 몸을 던졌다. 잡고 보니 가해자들은 같은 학교 친구-이런 표현조차 적절치 않지만-였다. 아이가 죽은 뒤에도 자기들은 문자로 ㅋㅋ댔다고 한다. 유혈이 낭자한 참혹한 살해 현장에 가면 누구나 사형 찬성론자가 된다.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사형수 앞에 서면 누구나 사형 반대론자가 된다. 죄와 벌에 대한 균형은 그렇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지금의 여론은 분노다. 소년범 처벌을 강화하자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10살 밑에 아이들은 어떠한 잘못을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범법 소년이다. 10살부터 14살까지는 형사처벌은 안 되고 보호처분만 가능하다. 촉법소년이다. 14살부터 17살까지는 형사처벌이 가능하지만 성인에 비해 제한이 많다. 그동안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많은 가해학생. 그 아이들이 멀쩡히 길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것도 이런 규정 때문이다. 그래서 이 걸 바꾸자는 거다. 형벌의 가장 큰 목적은 일반예방기능이다. 일벌백계로 또 다른 범죄를 막자는 거다. 폭력학생에 대한 형벌의 기능도 다를 바 없다. 친구를 물고문 하면 큰 죄라는 걸 일벌백계해야 한다. 소년범 처벌규정 강화해야 친구의 목에 끈을 묶어 끌고 다니면 큰 벌을 받는다는 걸 알게 해야 한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가면 참혹한 형벌이 기다린다는 걸 일러줘야 한다. 사회봉사 몇 시간에 반성문 몇 장 쓰는 것으론 안 된다. 14세미만 소년범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의 여지는 터 놔야 한다. 경중을 가리지 않는 보호관찰과 사회봉사명령도 남발하면 안 된다. 법 개정이 필요하면 손질해야 하고, 형량 조정이 필요하면 협의해야 한다.혹자는 인성교육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상황극을 통해 우정의 참뜻을 알리는게 해결책이라는 조언도 들린다. 결국 소년범 처벌 강화는 너무 성급하다는 얘기 같은데. 지금 무슨 말들을 하고 있나. 아이들을 감옥에 넣자는 참혹한 주장이 왜 나왔는지를 몰라서 하는 얘기인가.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이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학생 3천560명에게 물었다. 22.7%가 1년 이내에 폭력피해를 겪었다고 답했다. 1만 명이면 2천 명, 10만 명이면 2만 명이다. 그중에 30.9%는 자살까지 생각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57.5%가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고 했다. 왜 그랬겠나. 신고할 방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신고해봤댔자 돌아올 건 보복밖에 없다고 봐서다. 자살한 대구 중학생이 어땠나. 보다 못한 친구가 교무실로 달려가자 나를 죽이려고 이러느냐며 눈물로 막아섰다는 거 아닌가. 학교는 아무 것도 보호 못해학교는 신뢰를 잃었다. 소년범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분노한 여론이 지금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 학교는 못 믿겠으니 검찰이 나서라고 하고, 교사의 처벌엔 기대할 게 없으니 판사의 형벌을 높이라고 하고 있다. 나 교육자요, 나 교육감이요해 온 사람들. 지금은 훈수 두려고 기웃거릴 때가 아니라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굴 때다. 체벌(體罰)이 아무리 가혹해도 형벌(刑罰)보다 낫다. 우리 교육이 언제부턴가 그 끈을 놔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몸을 던지고, 아이들이 감옥에 가는 이 순간까지도 누구하나 나서 체벌도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김종구 논설실장

경기도공동모금회, 회장이 있긴 한가?

연말 이웃돕기가 위기다. 11월 말까지의 모금실적이 177억 원이다. 지난해보다 5억 원이 줄었고, 2009년보다는 24억 원이나 줄었다. 12월부터 시작된 연말연시 모금도 형편이 다르지 않다. 경기도모금회가 정한 연말연시 모금 목표는 110억 원. 목표 기간의 절반이 지난 28일 현재 달성률은 43.8%다. 전국 평균 71.3%에 턱없이 부족하다.공동모금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행정복지의 또 다른 축인 사회복지다. 노인이며 아동청소년, 장애인, 여성다문화, 지역사회 등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재해로 생기는 이재민을 돕는 사업도 이 돈에서 써야 한다. 그러니 모금 실적이 저조하다는 것은 복지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도민이 누려야 할 복지의 양이 그만큼 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쯤 되면 비상이 걸릴 곳은 경기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다. 대표자의 모습이 없다.최신원 회장은 지난 8월 취임하며 이런 말을 했다. 나눔문화의 새 바람을 일으키겠다. 모금회에 대한 도민의 실망이 컸던 만큼 이 약속에 모아진 기대도 컸다. 더구나 그 스스로 나눔을 실천해온 인생이다. 축구인 홍명보와 함께 개인 기부 10억 원 이상을 뜻하는 슈퍼 리치 클럽에 오른 장본인이다. 모두가 더 없는 적격자라며 반겼다.위기에 빠진 경기도 성금모금최신원체제에 대한 그런 기대는 불과 넉 달 만에 실망으로 바뀌었다. 연말 성금의 중심 역할은 시군이 다. 31개 시군에서 모금된 돈이 모금회로 전달된다. 공직자와 시민들이 모은 정성이고, 이 뜻을 전달하는 대표자가 시장군수다. 말 그대로 1천100만 도민의 온정 릴레이다. 그런데 그 현장에서 모금회 회장이 사라졌다. 최 회장이 보낸 대리인이 사진 찍고 인사말하고 다 한다. 지금까지 20여 시군에서 행사가 있었는데 최 회장은 단 한 곳에도 가지 않았다. 바쁜 일정 때문이라는 이유도 들리고, 비상근이니 굳이 참석할 필요가 있느냐는 해명도 들린다. 대기업의 경영인(SKC 대표이사 회장)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 치자. 그런데 이런 설명과는 아귀가 맞지 않는 데가 있다.지난 22일 여주에서 있었던 행복나눔 연탄배달. 여기에는 털모자에 장갑을 낀 최 회장이 있었다. 한파가 몰아친 25일에도 최 회장은 파주까지 갔다. 행복나눔 김장행사에서 직접 김치속을 버무려 넣었다. 그런데 최 회장이 참석했던 두 행사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SKC가 주관한 행사다. 그가 대표이사 회장으로 있는 회사다. 본의든 아니든 오해받기 딱이다. 본인 회사가 하는 행사만 가고, 다른 곳에는 가지 않는다. 헷갈리는 행보는 또 있다. 그가 취임한 이후 경기 아너소사이어티클럽이 창단됐다. 1억 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 기부자들의 모임이다. 여기 회원은 기업가, 병원장, 호텔 대표 등 대여섯 명이다. 최 회장도 회원이다. 사적 성격이었던 이 모임이 정식 클럽으로 창단됐다. 이해 안 가는 행사참여 기준최 회장은 이 클럽 창단식에 직접 참석했고 1억 원을 기부하는 성의까지 보였다. 그런데 하필 그때가 시군에서 회장 얼굴 보기 힘들다며 아우성이던 이달 중순이다. 도민들이 뭐라 하겠나. 다들 최 회장을 기업계 기부천사라 부른다. 맞다. 그를 빼놓고는 기부를 얘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그건 개인기부자 최신원의 모습이다. 기부기관의 대표로서의 모습은 다르다. 한 곳이라도 더 가려고 노력해야 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회사보다는 남의 회사 봉사현장이 우선돼야 하고, 고액기부자 대여섯 명보다는 작은 정성 수십만 명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1천100만 도민의 대표봉사자다.그런데 지금 최 회장은 없어도 되는 곳엔 있고, 있어야 하는 곳엔 없다.김종구 논설위원

정장선의 半의 半이라도 닮았다면

총선 불출마 선언이 시작됐다. 마이크 앞에 선 표정들이 비장하다. 저마다 폭력국회를 걱정하며 격정을 토로한다. 그런데 딱히 전해오는 감흥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예고됐던 정치 빅뱅이다. 불출마 러시는 정해진 수순이다. 뻔한 수순에 뻔한 얘기다. 거기에 무슨 감동이 있겠나. 그저 또 한 번의 정치 이벤트로 보면 그뿐이다.그런데 딱 한 명이 다르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예상 밖이었던 만큼 내용도 다르다.첫 번째, 막장에 몰린 퇴장과 다르다. 6선의 실세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전혀 영예로워 보이지 않는다. 보좌관이 받은 뇌물이 무려 7억 5천만 원이다.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두 사건 모두에 관여됐다. SLS에서 6억 원, 제일저축은행에서 1억 5천만 원을 챙겼다. 그런데도 6선 의원은 버텼다. 언론이 불출마를 보도하자 너무 나갔다라며 항의까지 했다. 그러다가 의원실 직원 4명이 돈세탁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고 검찰 소환설이 제기되는 마당에 이르러서야 불출마를 결정했다. 이건 불출마가 아니라 출마 불가다. 불출마에 재미붙인 정치두 번째, 낙선을 염두에 둔 정치쇼와도 다르다. 잘생긴 외모, 하버드 법대 출신의 초선 의원도 불출마를 선언했다. 신선해 보일 만도 한데, 여론이 안 좋다. 계류 중인 선거구획정안을 보니 그의 지역구 노원 병이 통폐합대상이다. 새로 맞닥뜨려야 할 상대가 하나같이 벅찬 상대다. 한 명은 진보의 입 노회찬이고, 다른 한 명은 나는 꼼수다의 스타 정봉주다. 이러니 그의 불출마 성명서를 보며 코피 난 김에 혈서 쓰느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거다. 4년여 전,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되던 호시절에 입성했던 그가 삭풍 부는 겨울이 되자 그냥 떠나는 거다. 세 번째, 정치일정에 기웃거리는 퇴장과도 다르다.13일부터 19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정장선의 불출마 선언은 이보다 하루 앞선 12일이었다. 단 하루도 선거일정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 평택을은 사실상 정장선 판이다. 지난 10월 실시한 한나라당 지역위원장 선출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로 그의 아성이다. 같은 당내 경쟁자가 있을 리 없다. 예비후보 등록 하루 전날 물러난 모양이 좋아 보이는 이유다. 후임자가 쓸 수 있는 선거 운동기간을 단 하루도 뺏지 않았다. 선거 막판까지 여론조사를 들춰보며 미련에 발목 잡히는 정치꾼들과는 분명히 다르다.정장선에게 진정성 배워야네 번째, 약속을 지키는 퇴장이라서 다르다.그의 불출마 사유는 폭력국회다. FTA 폭력사태를 막지 못했다. 내가 한 번 더 한들 국회는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4대 강 난장판 국회 직후 국민에게 약속했다. 폭력국회가 또 되면 불출마하겠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런데 그때 옆에 섰던 국회의원은 여럿 더 있다. 국회 바로 세우기 모임 소속 의원들이다. 경기 인천지역 의원도 6명이나 된다. 하지만 약속을 지킨 건 정장선 하나다. FTA 난장판은 폭력이 아니라고 본 건가? 아니면 최루탄은 주먹이 아니니 괜찮다고 본 건가?누구는 의심한다. 정 의원이 차기 경기지사를 노리고 던진 승부수다라고. 실제로 그는 차기 후보군 중 하나다. 3선이라지만 이제 나이 이제 쉰넷, 한창 때다. 이번 불출마를 정계은퇴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다. 그런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랄 건 없다.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자. 경기도지사 자리가 어떤 자린가. 대권후보가 당선되는 자리고, 당선되면 대권후보가 되는 자리다. 이인재-임창렬-손학규-김문수 지사가 다 그랬다. 그를 포함한 지금의 후보군 역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 김진표, 남경필, 원혜영, 전재희, 정병국. 만일 불출마 선언이 그 좋은 자리로 가는 지름길이라면 다른 후보군의 불출마도 있어야 맞다. 그런데 아무도 하지 않는다. 왜? 늘 현역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3선의 정 의원이 이런 공식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폭력국회를 버리고 평택으로 갔다. 불출마도지사 공천이라는 논리로 트집 잡기엔 그가 버린 게 너무 많다.트집 잡을 때가 아니다. 정장선을 닮으려 해야 하고 정장선에 부끄러워해야 할 때다. 정장선의 반, 아니 반의반이라도 닮은 국회의원이 여의도에 반, 아니 반의반만 있었더라도 국회는 이렇게 안 됐다.김종구 논설위원

기회 잃은 박찬호, 기회 잃는 한나라당

코리안 드림이다.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우뚝 선 모습만으로 감동이었다. 집채만 한 거한들이 연신 헛손질을 해댔다. 그가 뿜어내는 시속 157㎞의 강속구 앞에 K(삼진)의 행진이 이어졌다. LA다저스 구장 외야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2001년 텍사스로 가면서 받은 돈은 6천500만달러. 일당 5천만원에 달하는 엄청난 돈이다. 하지만 누구도 시샘하지 않았다. 그가 재미교포사회에 준 자긍심을 비하면 결코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박찬호의 코리안 드림은 그렇게 완성됐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이길 때보다 질 때가 훨씬 많아졌다. 특유의 어퍼컷 화이팅은 사라졌고 고개를 떨구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모습이 계속됐다. 이후 5년간 그가 올린 성적은 22승이 전부다. 최고의 코리안 드림이 최악의 먹튀(먹고 튀기)로 전락했다. 현지 언론이 Go back to Korea(한국으로 돌아가라)라며 조롱했다. 국내 언론들도 그의 은퇴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버텼다. 동양인 최다승 신기록 달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잇단 방출과 부상에 2군 강등까지 겹쳤다. 그러기를 10여년. 2010년 10월에서야 목표가 달성됐다.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124승. 모두가 축하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그만하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또다시 명분을 만들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과 일본 야구를 점령하겠다.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그만의 명분이었다. 팬들은 불안해했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올 시즌 1승 5패, 그리고 2군 강등. 구단 관계자는 한국 방송에 대고 1군 복귀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망신을 줬다. 이제 그의 모습 어디에도 코리안 드림은 없다. 이 구단에서 저 구단으로 팔려 다니며 몸값은 깎일 대로 깎였다. 미국에서 방출되고 일본에서 추락하면서 레전드(전설)의 면모는 사라졌다. 94년부터 2000년까지 쌓아 올린 공을 2001년부터 10년째 갉아먹고 있다. 떠날 때를 놓친 영웅이 밟아가고 있는 초라한 뒷모습이다.야구와 정치. 어떤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요즘 오버랩된다. 떠날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바뀌어야 할 게 바뀌지 않았다. 총선은 필패라고 얘기하면서 혹시 모른다며 미적대고 있다. 30%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속에 자기는 포함되지 않는다. 불출마의 각오를 해야 한다면서도 자신은 출마해야겠다고 버틴다. 바뀌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고, 변해야 하지만 나는 아닌 것이다. 이게 한나라당식 개혁이고 변화였다. 그러다 사달이 났다. 소속 의원의 비서가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했다. 입이 천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선거부정이다. 비서 개인의 범죄라고 둘러댔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한나라당에서 돈 받고 일하던 비서의 짓이고, 상대후보 낙선을 목적으로 벌인 짓이다. 진보는 물론 보수조차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반쯤 돌아섰던 민심이 DDoS 공격 한방에 완전히 등을 보였다. 늦었다. 지도부 사퇴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당대표가 사퇴하고 지도부가 해체된다 해서 돌아설 민심이 아니다. 10.26 보궐선거 때 기회가 있었지만 사실상의 승리라며 놓쳤고, DDoS 공격 초기에 기회가 있었지만 비서 개인의 짓이라며 또 놓쳤다. 당직 사퇴카드로 기대할 수 있는 약발은 없다. 더 큰 희생과 더 확실한 결단이 나와야 한다.당 내부의 얘기라면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자칭 한국 보수를 대변한다는 사람들 아닌가. 10.26에 실망하고 DDoS에 떨어져 나간 한국의 보수. 그러면서도 진보에 투항하지 못하고 중간지대를 맴돌고 있는 한국의 보수. 이들의 옷깃 하나라도 붙잡으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다 버려야 한다.공천도 버리고 의원직도 버리고 당 간판도 버려야 한다. 버릴 여유가 아직 있으니 이 또한 기회다.김종구 논설위원

2012년, 공기업 이전 發 시장 탄핵 온다

어차피 국부(國富)는 한정돼 있다. 그걸 여기서 빼내 저기로 옮기는 일이 공기업의 지방이전이다. 국부 증감의 문제가 아니라 국부 이동의 문제다. 그래서 수도권 공동화는 필연적일 거로 봤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경기도의 지역이기주의라며 뭇매를 맞았다. 결국 잘 됐으면 좋겠다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리고 지금에 왔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당장 내년부터 공기업의 지방 이전이 시작된다. 내년이라야 30일 남았다. 이전기관들은 벌써부터 이삿짐을 쌌다. 직원들도 살림집 알아본다며 전라도로, 충청도로 주말이 바쁘다. 충청도 행복도시는 부동산 가격이 들썩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수도권에서도 이전대책의 청사진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돼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청사진은커녕 땅도 못 팔고 있다.이전부지 활용커녕 매각도 못해진즉에 팔렸어야 할 부지가 37개다. 이 중에 7개-10월 말 현재-만 팔렸다. LH(성남)와 농업연수원(수원) 등 10개는 계속 유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수원)과 한국도로공사(성남) 등 14개는 입찰에도 못 부쳤다. 한국가스공사(성남)와 한국해양연구원(안산) 등 내년에 내 놓을 매물 6건의 전망도 막막하다. 빠져는 나가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말 그대로 빌 空(공) 자, 공동화(空洞化)가 오고 있다.혹 수년에 걸쳐 팔린다 한들 기대할 것도 없다. 지난 2월, 국토부가 해외 매각 카드를 들고 나왔다. 수도권 핵심시설을 해외자본에 팔겠다는 구상이다. 황당했는데 그나마 실패했다. 6월에 다시 국토 해양 투자포럼을 열었다. 성남의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는 고급주택단지로, 안산의 한국시설안전공단은 주거용 오피스텔로 내놓겠다고 했다. 원칙도 없고 기준도 없는 급매물처리다. 차라리 떨이다. 잠시 5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2005년 3월 4일,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의 말이다.수도권 공동화 주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수도권 재창조 및 재탄생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공공기관 이전지역에는 정보벤처단지, 연구개발센터, 역사공원, 문화센터, 도서관 등 활용방안이 가능합니다. 수원(첨단연구개발단지)과 성남(IT 지식산업복합단지)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IT 클러스터를 구축하겠습니다. 안양권(안양 의왕 과천)은 고품위 웰빙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그로부터 6년, 맞는 말이 하나도 없다. 수원에 첨단연구개발단지가 시작됐나? 성남에 IT 지식산업복합단지가 유치됐나? 안양권 어디에 고품격 웰빙공간이 추진되고 있나? 땅도 못 팔아 주택단지로 내놓는 마당에 무슨 연구단지고 웰빙단지인가. 모든 게 거짓말이다. 공기업 이전은 역시 국부의 지방 이전일뿐이었다. 그리고 수도권은 우려했던 그대로 공동화로 빠져들고 있다.2012년판 과천시장 또 생긴다이제 기다리는 건 여론의 분노다. 그리고 이 분노가 서서히 현직 시장들을 겨냥하고 있다.나는 성경륭 위원장을 알지도 못한다며 억울해하는 시장들도 있다. 이전 계획에 서명한 적이 없으니 맞는 말이다. MB 정부로부터 부지매각의 어떤 권한도 받지 못했다며 하소연하는 시장들도 있다. 부지매각 특별법이 그렇게 돼 있으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너그럽게 봐주는 게 여론은 아니다. 늘 가까운 곳에서 분노의 출구를 찾으려고 어슬렁거리는 게 여론이다.여인국 과천시장이 그 첫 번째 먹잇감이었다. 보금자리 주택 책임은 겉으로의 명분이다. 그보다 더 폭넓고 골 깊었던 건 종합청사 대책 불만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9천67명의 시민이 서명해 3선 시장을 긴장시켰던 것도 이 때문이다. 33.3% 미달로 끝났지만 공기업 이전에 따른 또 다른 시장 탄핵을 분명히 경고한 예고편이었다. 텅 빈 농업기관 부지를 떠안게 될 수원시장, 주인 잃은 공기업 부지를 지키게 될 성남시장, 연구원 떠난 연구기관 건물만 붙들고 있을 안산시장. 누구든지 2012년 판 과천시장의 불행을 맞을 수 있다.역사는 늘 엉성한 계획자와 엉터리 추진자가 떠난 자리에 엉뚱한 책임자를 남겨둬 왔다.김종구 논설위원

투신한 수험생 A군, 당신이 떠밀었습니다

A군이 아파트에서 뛰어내렸습니다. B군도 그랬습니다. C군은 상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A군과 B군은 18살 고 3, C군은 19살 재수생입니다. 아이들의 품에는 약속이나 한 듯 미안하다는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경찰이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라고 합니다. 꼭 조사해야 알까요. 일면식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우리 모두가 그 이유를 압니다. A, B군은 망쳐버린 수능성적이, C군은 밀려오는 수능공포가 그렇게 만든 겁니다. 아마도 허공을 휘젓던 그 순간에도 수능에서 실패한 나는 이 사회를 떠납니다라며 울부짖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생각을 틀렸다고 할 수 없으니 그게 답답합니다. 학벌 사회가 맞거든요. 1등만 기억하는 사회 맞고요. 수능 실패의 대부분이 인생실패로 이어지는 사회 맞습니다. 며칠 전 대통령께서 학력 차별 없는 사회를 역설하셨습니다. 고졸자가 마음껏 꿈을 펼치고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학력차별 없는 사회를 열어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류 대학교 출신이시라 찜찜하긴 했지만 그나마 화두라도 던져준 게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있고 딱 열흘째 되던 지난 10일. 새벽 6시에 C군이 뛰어내렸고 저녁에 B군이 뛰어내렸습니다. 대통령 말씀에 0.1%의 믿음만 가졌더라도 그러진 않았겠죠. 대통령의 말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한국의 학력사회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불행히도 그게 사실인데 어쩝니까.얼마 전 언론에 학력 시대는 끝났다는 제목이 떴습니다. 대우조선해양 얘깁니다. 고졸 관리직 100명을 공채했습니다. 신(新) 인사제도란 것도 소개됐습니다. 고졸자를 뽑아 4년간 양성교육을 시킨 뒤 대졸 사원 대우를 한다는 구상입니다. 여기에 500명의 아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고교 내신 1, 2 등급짜리 똑똑한 아이들이었답니다. 이걸 두고 혁신이라고 쓴 겁니다.웃기는 얘기죠. 결국엔 대학과정을 흉내라도 내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얘기 아닙니까. 4년을 버텨내면 그때가서 대우해주겠다는 거 아닙니까. 군대 교육 4년으로 학사자격증을 주던 사관학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중공업 사관학교라고 표현하면 될듯싶습니다. 1, 2등급 아니면 못 가기도 마찬가지죠. 대기업들이 발표했다는 13% 추가 채용 계획 역시 내용 없기는 마찬가집니다.흔히들 대한민국을 학력민국이라고 합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통계청이 뽑은 자료가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83%가 대학을 간답니다.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 2009년에 1천100만 명을 넘겼다고 합니다. 툭하면 OECD를 들먹이기에 한번 비교해봤습니다. 1위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두 배입니다.대학생 많은 건 좋죠. 문제는 사람구실 해보려고 졸업장을 딴다는 겁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이라는 데서 지난 4월에 대기업 인사담당자 150명에게 물었습니다. 56명이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가 학력사회의 출발이라고 실토했답니다. 그때 조사된 대졸과 고졸의 초임 격차가 1.5배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는 임금과 직급의 격차는 말 할 것도 없고요.이러니 대학 안 가고 배겨낼 재간이 있겠습니까. 망친 수능성적에 독하고 참담한 상상을 하지 않겠습니까.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다.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온 경우다. 스티브 잡스의 그 유명한 스탠퍼드대 연설의 한 토막입니다. 1천100만 명의 대학졸업생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연설입니다. 여전히 입사서류에 대학 졸업장을 첨부시키는 대한민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연설입니다.해남의 B군, 대전의 C군, 그리고 수원의 A군은 죽었습니다. 보릿고개 기사는 30년 전에 없어졌고 연탄가스 기사는 20년 전에 없어졌는데 수험생 자살기사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옥상난간에 매달려 무섭다며 발버둥치고 있는데, 대한민국 학력사회는 여전히 그들의 손등을 잔인하게 짓밟고 있습니다.김종구 논설위원

좋은 쇄신, 나쁜 쇄신, 이상한 쇄신

한나라당, 243곳 중 11곳에서만 우세. 불과 선거 보름여 전 J일보 톱 기사다. 대통령 탄핵의 역풍은 그렇게 참담했다.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씻으려던 한나라당의 자충수였다. 민심이 분노했고 표심은 돌아섰다. 각종 여론조사의 그래프는 열린우리당 판이었다. 선거는 해보나 마나였다. 이때 박근혜 대표가 등장한다. 그의 취임 일성은 당사에 들어가지 않겠다였다. 대신 여의도 공원 맞은 편에 천막을 쳤다. 쇼라던 비아냥이 서서히 동정으로 바뀌어갔다. 이어 기다린 건 박 대표의 눈물이다. TV에 등장한 박 대표가 30분간 연설을 했다. 어머니를 잃고아버님을 여의면서. 연설 내내 눈물이 흘렀고 그는 한 번도 닦지 않았다. 4월 15일은 민주당과 자민련이 몰락한 선거였다. 전남에서 5석, 충남에서 4석을 건진 게 다다. 질긴 생명력의 정치인, 김종필도 이날 정계를 떠났다. 이런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난 게 한나라당이다. 121석 획득은 분명히 기적이었다. 박 대표의 쇄신약속에 유권자가 답해준 표였다. 이후 천막당사는 정치쇄신의 고유명사가 됐다.박근혜의 천막당사. 좋은 쇄신이었고 성공한 쇄신이었다. 이런 쇄신도 있었다. 1980년 11월 5일. 국가보위입법회의가 법 하나를 발표한다. 전문 12조와 부칙으로 구성된 이 법의 목적은 나쁜 정치 몰아내기다. 11월 24, 법에 기초한 567명의 명단이 발표됐고 여기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포함됐다. 이른바 나쁜 정치인 명단이다. 법의 목적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정치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정치풍토를 쇄신한다다. 법의 이름도 정치풍토쇄신을 위한 특별 조치법이다. 쇄신이라는 단어가 노골적으로 이름에 들어간 처음이자 마지막 법률이다.쇄신? 사실상 인간청소였다. 쇄신돼야 할 대상자로 찍힌 정치인은 산목숨이 아니었다. 본인이 출마해도 안 되고, 남을 지지하거나 반대해도 안 됐다. 정당에 가입은 물론이고 옆에서 도와줘도 안 됐다. 정치적 집회에서는 말만 해도 붙들려 갔다. 이랬던 5공화국의 정치 쇄신. 지금은 신군부의 권력장악에 이용된 나쁜 쇄신으로 정의돼 있다.또 다른 쇄신이 있다. 1997년 3월 27일은 우리 정치사의 금기 하나가 깨진 날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출당요구다. 신한국당 의원 연찬회에서 나왔다. 김 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것도 국면 타개를 위한 방안의 하나다. 발언자는 김윤환 고문이었다. 그의 정치 시작은 3공화국이다. 유정회가 첫 번째 금배지였다. 이후 전두환의 5공과 노태우의 6공에서도 그는 실세였다. 심지어 군부와 문민이 갈리는 격변기에도 살아남았다. 총재 YS가 내준 신한국당 대표 자리에 앉아 시대를 풍미했다. 그랬던 그가 대통령 나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발언은 이후 한국 정치사에 못된 법칙 하나를 만들었다. 여당이 살려면 임기 말 대통령을 공격하라. 여기서 배운 이상한 쇄신파들이 국민의 정부 말기에 DJ를 몰아세웠고, 참여 정부 말기에 노무현을 몰아붙였다. 분명히 배신이었지만 쇄신이라고 포장하며 그 짓을 했다. 변화의 달인 虛舟 김윤환. 그가 남긴 쇄신은 이렇게 이상하고 얍삽한 거였다.MB 임기를 1년 남긴 지금, 여권이 또다시 쇄신론에 휩싸였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핵심공약을 폐기하라는 강도 높은 연판장이 돌았다. 25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선봉에 섰다. 연이은 선거 참패, 떠나는 민심, 엄습해오는 총선패배의 공포. 현실 정치인인 저들이 오죽하면 저럴까 싶기도 하다.그런데 정작 저잣거리의 평가는 이와 딴판이니 그게 문제다. 누가 누구를 쇄신하느냐는 빈정거림이 더 많다. 면면에서 느끼는 실망감과 배신감 때문이다. 4년간 권력의 언저리를 맴돌던 얼굴, 한 달 전 TV에 출연해 MB 정책 홍보에 침을 튀기던 얼굴, 넉 달 전 최고위원 뽑아 달라며 한나라당 만세를 외치던 얼굴. 그들이 갑자기 대통령 때리기로 칼자루를 돌려 잡았으니 민심이 감동할 리가 있나.2011년 11월의 한나라당 쇄신은 이상한 쇄신이다. 정치생명 연장의 꿈을 쇄신을 통해 이뤄보려는 속내 보이는 쇄신이다. 천막쇄신의 감동을 쫓아가려면 멀었다.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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