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판사 사태를 너무 쉽게 얘기한다. 너무 쉽게 영웅 만들기에 나선다. 재임용 탈락 결정은 대법원이 했다. 탈락의 연유가 뭔지 공개된 적은 없다. ‘근무평정’이라는 포괄적 원칙만 설명됐다. 쉽사리 옳으니 그르니를 결론 낼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부에서는 서기호 영웅 만들기에 깃발을 꽂았다. 그리고 그 논리를 꿰 맞추고자 이런 저런 억지를 부리고 있다. 비슷한 경험자의 말을 각색하고 그럴싸한 정황의 흐름을 편집하고 있다. 잘 들여다보면 그게 아닌데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방희선 판사(현 동국대 교수) 얘기가 그렇다. 서 판사의 탈락 다음날부터 방 판사의 이름이 언론에 등장했다. 97년 탈락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대법관 후보에까지 올랐던 사람이다. 잘못된 재임용탈락의 상징이다. 일부 언론과 인사들이 방 판사의 입을 인용해 서 판사 영웅화를 시도했다. 방 판사가 마치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비난한 것처럼 쓰고 말한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얘기가 다르다. ‘판사 재임용은 법적 근거가 없다. 탈락의 근거도 없는 셈이다. 입법적 불비(不備)다’. 그는 서 판사가 아니라 재임용의 제도적 문제를 얘기한다. “서 판사의 경우와 본인을 비교하는 기사가 많은데…”라고도 물었다. 대답이 간단하다. “우리 때는 시대와의 투쟁이었다. (서 판사와는) 다르다. 그 사람의 72자 판결문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판사는 판결에 온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일 안 하고 SNS에나 매달리는 판사들이 너무 많은 것 아니냐”. 이런 말도 덧붙인다. “(김 실장이)주위에 나와 비교하는 기사 좀 제발 쓰지 말게 해줘라”. 길게 이어진 대화 내내 그는 이런 입장이었다. 97년에 탈락한 방 판사가 2012년에 탈락한 서 판사를 보는 명확한 시각이다.
판사회의는 서판사 논의 안했다
단독판사회의도 그렇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과 서울 남부·서부지법에서 시작됐다. 이후 전국의 거의 모든 법원으로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서 판사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현직판사들의 저항으로 그렸다. ‘사법 파동으로 이어질 조짐이 있다’며 군불을 지피는 쪽도 있다. 지켜보는 국민조차 촉각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그런데 회의 결과는 다르다. 토론 대상은 서 판사가 아니라 역시 판사 재임용의 제도적 개선이다. 21일 있었던 수원지법의 단독판사회의가 그랬다. ‘법관의 재임용 제도에 대해 투명성을 확보할 장치가 부족해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 제도 개선에 대한 결의문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다’가 다다. 서 판사 얘기는 거론되지 않았다. 22일 열린 인천지법회의도 같다. ‘판사의 연임심사 기준과 근무평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안을 논의해 요구안을 채택했다’는 게 발표의 전부다. 전국의 어떤 단독판사회의도 서 판사 영웅 만들기에 써먹을 만한 재료를 내놓은 적이 없다. 그러면 아닌 거 아닌가. 서 판사 영웅 만들기에 단독판사 회의를 써먹으려는 시도도 틀린 것 아닌가.
이제 좀 그만해야 한다. 더 하면 그또한 왜곡이다.
1997년 3월 17일 오후 3시, 수원지법 구내식당 구석. ‘코흘리개 기자’가 방 판사가 마주 앉았다. 제도권이 팽개친 방 판사가 찾은 마지막 기자였다. 그 마지막 인터뷰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 ‘코흘리개 기자’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세상은 바뀝니다. 다시 평가할 때가 올 겁니다. 나는 영원히 ‘방 판사’로 부르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순박한 예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이 됐다. 그런데 그때 그 ‘코흘리개 기자’의 눈에도 2012년 재임용 논란은 많이 달라 보인다.
72자 판결은 판사 안하겠다는 뜻
‘그때와는 다르다. 판결이유를 72자로 고집했다는 것부터가 사건 당사자의 권리를 무시한 개인적 실험이다. 당사자들에겐 재산이 걸리고 일생이 걸린 소송이다. 세상에 어떤 문장가가 단 72자로 그 사정을 정리할 수 있겠나. 그런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판사가 또 있다면 그 역시 법원을 떠나야 한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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