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칼럼] MS 문건 작성자는 문건 속에 있다

김종구 논설실장 kimjg@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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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대변인의 말이 사흘 동안 세 번 바뀌었다. 경기일보가 MS 문건을 입수했던 24일에는 이렇게 말했다. “보좌진들이 논의한 것을 습작처럼 적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보도가 나가고 여타 언론의 취재가 시작됐던 25일엔 달라졌다. “외부 지인으로부터 받은 자료다.” 선관위 조사가 시작된 26일에는 또다시 바뀐다. “(외부)홍보기획사로부터 넘겨받은 문건이다.” MS 문건이 도청을 뒤흔든 3일간, ‘문건 작성자’는 이렇게 세 번 바뀌었다.

 

법률(法律)적 의미는 하늘과 땅이다. 24일 해명대로라면 도청 내 참모진의 현행법 위반이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범죄다. 25일과 26일의 주장대로라면 법적 책임은 없다. 행정기관 건물 내에서 대통령 만들기 문서를 주고받았다는 게 자랑일 순 없다. 하지만 그 점만으로 범죄니 입건이니 하는 우악스런 말을 쓰는 건 무리다. 결국 25일과 26일의 해명은 이번 일을 해프닝으로 끝낼 수 있는 최상-적어도 공직 입장에서는-의 해명이다.

 

그래서 MS 문건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세 번의 해명 중에 첫 번째 해명, 즉 ‘보좌진의 논의 내용을 습작처럼 정리한 것’이 맞을지 모른다는 촉(觸)이 가시지 않는다.

 

첫 번째. 문건 속 글자의 크기와 굵기가 제각각이다. 공개된 문건은 A4 용지 3장이다. ‘서민 이미지 홍보 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한 장이고, ‘매체별 홍보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이 두 장이다. 첫 째장과 셋째장의 본문은 신명조체 12급 크기다. 그런데 둘째 장의 일부분은 견명조체 14급으로 쓰였다. 통상 다른 기기에서 작성된 문서를 퍼 날라 붙이는 경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번에 작성되지 않았거나 다른 컴퓨터에서 작성된 두 문장을 붙였을 가능성이다.

극존칭에 오타까지 조잡한 내용

 

두 번째. ‘지사님’ ‘사모님’이라는 구어체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현장에서 쓴 시집 출간(지사님)’ ‘사모님 책(에세이)’. ‘지사님 생활 공개’ 등이다. 사업 제안서 혹은 아이디어 제안서에 등장하는 형식은 철저하게 문어체의 고유명사다. ‘~님’과 같은 구어체의 극존칭 표현은 공식 제안서에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혹 행사용 제안서라면 모를까. 평소 ‘지사님’ ‘사모님’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관계인의 습관이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으로 보인다.

 

세 번째. 황당한 오타다. 이벤트에 대한 전략이 표기된 부분에서 문건은 ‘서민 김민수 전략투어’라고 적고 있다. ‘김민수’는 ‘김문수’의 오기(誤記)로 보인다. 문건 작성 후 한 번만 검토했더라도 바로 잡혔을 단어다. 아니면 컴퓨터 내 ‘맞춤법’기능을 적용했어도 발견됐을 실수다. 여기에 밑줄(_) 사용도 기준이 없다. 첫 번째 소단원에서는 본문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두 번째 소단원에서는 제목에 그어져 있다.

 

뒤죽박죽인 글자 배열, 여기에 적절치 않은 극존칭과 중대한 오자 방치까지. 도청을 발칵 뒤집은 MS 문건에는 이처럼 이해 못 할 허점들이 줄줄이 흐르고 있다. 뭘 의미할까. 얼핏 도출되는 결론이 있다.

홍보기획사가 이런 제안서 내나

 

우선 김문수 지사는 이 문건과 관련 없어 보인다. 도지사의 명(命)으로 만든 문건이라면 이렇게 조악할 리 없다. 직속상관의 지시로 문건을 만들면서 ‘김민수’라고 적어 바칠 공직자나 측근은 없다. 같은 이유로 추후에 김 지사에게 보고된 공식문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적어도 문건의 수준만을 놓고 보면 김 지사의 뜻과 달리 만들어졌고, 김 지사에게 전달되지 않은 문건이다.

 

그렇다고 외부에서 만들어진 문건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더구나 기획안 작성을 생명으로 하는 홍보기획사의 제안서라는 얘기는 더 이해하기 어렵다. 반복되는 구어체의 극존칭이 그렇고, 원칙 없는 형식과 조잡한 테마 구성이 그렇다. 대권 전략 제안서라면 ‘대통령 만들기’에 숟가락을 얹는 행위다. 세상 어느 기획사가 이런 황당한 수준의 문건을 기획서랍시고 접수하겠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선관위가 밝힐 것이다. 다만 문건을 들여다볼수록 ‘보좌진들이 나눈 의견을 습작처럼 적은 내용’이라던 ‘최초 해명’이 잔상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김종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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