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한 여자의 꿈과 사랑 '미스 포터'

앙증맞은 토끼 '피터 래빗'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친숙한 캐릭터다. 파란 조끼를 입은 토끼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치 사람처럼 이야기를 속삭인다. 짧은 동화 속 토끼 피터 래빗, 오리 제미마 퍼들덕, 개구리 티기 위클 부인은 동심의 세계에서 생생히 살아 있다. 피터 래빗 시리즈는 100년 동안 전세계에서 1억 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 영화 '미스 포터'는 바로 그 피터 래빗을 만들어낸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다룬 이야기다. 귀족사회의 잔재가 여전한 19세기, 베아트릭스 포터는 좋은 집안에 시집가 남편과 남편 가문 덕으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여자의 일생을 거부한 채 자신의 일과 사랑을 일궈나갔다. 영국풍이 가득한 영상 속에서 르네 젤웨거는 인생의 주체로 당당히 서고자 했던 베아트릭스 포터가 됐다. 잔잔한 흐름으로 한 여류 작가로서의 성공과 사랑을 보여주면서 도전에 맞선 강인한 성품을 드러낸다. 특별한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나간 점이 도드라진다. 영화 속 그림에서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토끼와 물고기를 피해 연못으로 퐁당 빠지는 개구리 등 작은 소품처럼 처리된 애니메이션이 영화의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19세기 영국 런던 교외의 볼튼 가든에서 태어난 베아트릭스 포터.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자연 속에서 얻어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토끼, 오리, 고슴도치, 소를 그리며 그림 속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32살 노처녀가 됐지만 언젠가 자신의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그에게 어머니는 좋은 집안 남자를 만나 결혼하라고 성화다. 포터의 책을 발간하기로 한 출판사 편집자 노만 워른(이완 맥그리거) 역시 첫 번째 작업. 두 사람은 책에 대한 뜻을 같이 하며 열성적으로 일한다.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 결에 사랑에 빠지지만 귀족 집안인 포터의 부모는 장사를 하는 사람을 사위로 맞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한다. 여름을 지내는 동안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결혼을 허락하겠다는 아버지의 중재로 잠시 이별을 하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아픈 상처를 딛고 다시 인생의 주인공으로 서려는 포터의 새로운 삶이 그려진다.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며 자신의 인생에 스스로 도전장을 던진 한 여자의 이야기. 수많은 전기영화에서 봤음직한 스토리지만 주인공이 여자인 까닭에 여성적 취향이 강하다.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와 함께 아름다운 자연이 주는 화면은 반가운 선물이다. 말없이 인간사를 보듬어 안는 자연의 풍광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된다. 시나리오를 보고 제작자로도 나선 르네 젤웨거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전체관람가. 25일 개봉 예정. /연합뉴스

만화 원작 영화 전성시대 '활짝'

최근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 흥행에 성공하면서 고질적인 시나리오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 빛을 던져주고 있다. 10일 영화계에 따르면 일본 스즈키 유미코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코미디물 '미녀는 괴로워'가 지난달 14일 개봉한 이후 보름여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빅히트를 기록하면서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미녀는 괴로워'는 국내에서만 30여만 권이 팔린 베스트셀러로, 전신성형수술을 통해 못생긴 '뚱녀'가 절세의 팔등신 미녀로 거듭나면서 발생하는 기발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를 유쾌하게 풍자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다. 많은 영화 전문가들은 '미녀는 괴로워' 등 이미 작품성과 대중성을 검증받은 일본 만화의 경우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묘사가 뛰어나 쓸 만한 시나리오가 턱없이 부족한 국내 영화계 실정에서 좋은 시나리오 소재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9월 개봉돼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던 '타짜'도 원작이 만화인 영화다. 허영만 원작 만화인 '타짜'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도박꾼 세계에 대한 빼어난 심리묘사로 영화화되기 전부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영화 '타짜'의 흥행 성공도 원작의 뛰어남과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11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한중 합작영화 '묵공' 역시 수많은 마니아층을 만들어낸 히데키 모리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작품. 영화의 흥행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원작 만화의 뛰어난 작품성이 영화의 완성도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이 나오고 있다. 2004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에 빛나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도 미네기시 노부아키의 인기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 쇼박스 관계자는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좋은 시나리오"라며 "작품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만화 작품을 원작으로 삼을 경우 가장 중요한 조건을 기본으로 갖고 가는 것인 만큼 좋은 영화가 탄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말했다. 한 영화평론가는 "인기 배우나 감독의 '티켓파워'만으로 관객을 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면서 "일본 만화의 작품성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뛰어난 시나리오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영화계에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만들어진다

한국 영화의 역사를 새로 쓸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가 만들어진다. 9일 영화제작사 ㈜비전링크글로벌(대표 이인형)에 따르면 한국, 중국, 미국, 프랑스 등 4개국이 손잡고 5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공동 제작하는 초대형 영화 '멜라니의 바이올린'(가제)이 내년 10월께 전세계에 동시 개봉할 예정이다. 비전링크글로벌이 기획, 제작을 맡았으며 최근 중국 '장성국제전파책임유한공사'와 공동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또 프랑스 '스튜디오 카날'의 부사장이 지난 연말 방한, 제작과 투자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미국의 유수 제작ㆍ배급사와도 최종 협의를 앞두고 있다고 비전링크글로벌은 밝혔다. '멜라니의 바이올린'은 아시아판 '쉰들러 리스트'라 불리는 중국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휴먼 대작 영화. 기존의 한국 영화계가 아시아 지역과의 합작 프로젝트에 치중해왔던 데 반해 이번 '멜라니의 바이올린'은 한국과 중국은 물론 미국과 프랑스까지 전세계로 영역을 넓힌 초대형 글로벌 프로젝트라고 비전링크글로벌은 설명했다. 아직 감독과 주연 배우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과 특A급 배우들이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으며 스태프 역시 영화 '쉰들러 리스트'와 '피아니스트' 등에 참여했던 유명 스태프들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비전링크글로벌은 덧붙였다. 음악은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재미교포 출신 지박이 맡기로 했다. 비전링크글로벌 관계자는 "'멜라니의 바이올린'에는 제작 규모면에서 국내 합작사상 최대 제작비인 500억 원 가량이 투입될 예정으로 현재 프리 프로덕션 단계"라며 "안정적 수익구조 확보를 위해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판권을 선판매하는 할리우드의 선진 시스템을 도입해 촬영 전에 제작비를 전액 회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멜라니의 바이올린'은 나치 파시스트의 종족 학살을 피하기 위해 중국 상하이(上海)로 도망 온 세계적 명성의 유대인 바이올린 연주가 레란트 바이센도르프가 상하이에서 제자로 맞이한 중국인 루샤오양과 함께 음악을 통해 핍박받는 동포들에게 희망과 자유에 대한 믿음을 심어준다는 줄거리다. /연합뉴스

“서기 누드,유포됐다∼” 영화홍보 이렇게까지 해야돼?

영화 ‘조폭마누라3’에 출연한 대만 배우 수치(한국식 발음은 서기·舒 淇)의 데뷔 시절 누드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자 제작사측이 이 사실을 보도자료 형태로 작성해 각 언론사에 일제히 배포했다. 이에 외국 여배우의 누드 동영상 유포 사건을 영화 홍보에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조폭 마누라3’ 제작사 현진씨네마의 홍보대행 업체는 7일 각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자료는 ‘조폭 마누라3’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치의 데뷔시절 누드 동영상과 사진이 급속도로 유포되자 흥행 차질이 우려돼 제작사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노출 연기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갖고 있는 수치가 이번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우려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나 자료에서 영화사나 수치의 입장을 고려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는 구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언론매체가 동영상 유포 사실을 기사화하기 편하도록 '기사체'로 작성돼 있었다. 일부 언론은 이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기사화하기도 했다. 이에 영화계 일부에선 제작사측이 누드 동영상 유포 사실을 언론을 통해 더욱 알림으로써 교묘하게 영화를 홍보하려는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치의 누드 동영상이 돌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내려 한다는 것이다. 제작사가 자료에서 밝힌 것처럼 수치가 이 영상물에 극도로 거부감을 갖고 있음은 영화계에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19세 때 연예계에 데뷔하며 찍은 동영상과 누드사진은 한동안 인터넷에서 논란 거리가 된 뒤 비교적 잠잠해진 상태였다. 수치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우려되는 내용을 영화사측이 오히려 언론에 적극적으로 알려 다시 한번 이슈로 부각시킨 꼴이 됐다.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 분석해보니…자립형부터 의존형까지

지난 연말 개봉작부터 ‘오래된 정원’ ‘언니가 간다’ ‘허브’ 등 1월 개봉작까지 여성의 비중이 높은 영화들이 부쩍 많아졌다.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로서의 여성 캐릭터는 아무래도 남성의 보조자에 머물 때보다 강한 개성을 갖기 마련. 그 가운데는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도 있지만 여전히 의존적이고 미성숙한 여성들도 있다. 최근 영화들 속에 그려진 여성 캐릭터를 형태별로 분류해본다. 자립형 지난 4일 개봉된 ‘오래된 정원’의 한윤희(염정아)는 군계일학이라 불러도 될 만큼 두드러진 여성 캐릭터를 지녔다.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미술 교사(영화 후반부에는 대학 강사) 한윤희는 모든 면에서 주체적인 인물.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도피 중이던 남자 오현우(지진희)를 숨겨주고,그와 연인이 되고,그가 떠난 후 혼자 아이를 키우는 등 모든 과정에서 한윤희는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다. 심지어 오현우에게 딸의 존재를 알리지도 않을 정도. 그뿐 아니라 학생운동에 나서는 대학생들과 소통하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한윤희가 시대의 어둠을 피하거나 그에 압도당하지 않았음을,오히려 그 아픔을 감싸고 위로하면서 시대를 뚫고 나갔음을 보여준다. 한윤희의 비중은 황석영의 원작보다 더욱 커졌다. 임상수 감독은 “1980년대를 후회없이 잘 살았던 사람으로서 한윤희를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오는 25일 개봉되는 미국 영화 ‘미스 포터’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여성을 볼 수 있다. ‘피터 래빗 이야기’라는 그림책을 만든 19세기 영국 여성 베아트리스 포터(르네 젤웨거)를 그린 작품. 당시 여성들이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는 데에만 관심을 쏟은 반면 포터는 재능을 살려 역사에 남을 그림책을 만들었고 가족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사랑을 따라 초라한 배경의 남자를 택한다. 성장형 11일 개봉되는 ‘허브’의 주인공 차상은(강혜정)은 일곱 살 지능을 가졌다는 특징 때문에 얼핏 의존적으로 보이지만 따져보면 누구 못지 않게 강인한 인물이다. ‘바보 취급하는 사람은 팔을 깨물어줘라’는 등 혼자 살아갈 방법을 꾸준히 가르쳐온 엄마(배종옥) 덕에 상은은 당당하게 살아간다. 엄마가 곁을 떠나는 아픔을 겪으면서 더 성숙해져 주변 사람들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서려고 애쓴다. 한창 인기몰이 중인 ‘미녀는 괴로워’의 한나(김아중)도 영화 초반에는 자기 비하로 괴로워했지만 후반에 가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는 성장형 캐릭터다. 의존형 4일 개봉된 ‘언니가 간다’의 정주(고소영)는 그야말로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 서른이 되도록 18세때 첫사랑의 실패에 연연해하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고서도 겨우 한다는 시도가 첫사랑 상대를 바꾸려는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만난 자신(조안)이 털어놓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라는 고민은 귓등으로 흘리고 훗날 부자가 될 남자 태훈(유건)과 엮어주려는 것에만 핏대를 올리던 정주. 결국 현실로 돌아가서도 의상실에서 잡일을 하는 처지는 마찬가지지만 태훈의 사랑을 얻었다는 데 만족한다. ‘중천’의 소화(김태희) 역시 다분히 의존적이다. 중천이라는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영체를 수호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음에도 퇴마 무사 이곽(정우성)의 도움 없이는 한 고비도 못 넘기고 쩔쩔매는 모습만 보여 아쉬움을 남긴다.

울다가 웃다가…영화 ‘허브’의 눈물+웃음 제조법

‘허브’, 그저 일곱살 정신연령을 지닌 상은이(강혜정 분)와 아픈 딸을 두고 눈 감아야 하는 엄마(배종옥 분)가 관객의 눈물샘을 지독히 자극하는 영화겠거니 했다. 오해였다. 장편영화가 겨우 두 번째인 허인무 감독, 관객 울렸다 웃기는 재주가 보통이 아니다. 눈가를 휴지로 콕콕 찍고 있는 사이 난데없이 웃음 폭탄을 날려 깔깔 웃게 만든다. 울려도 ‘질질 짜도록’ 하는 게 아니라 깔끔하고 상큼한 눈물을 뽑아 낸다. ‘허브’의 눈물 제조법 3일 저녁 9시 서울 종로 필름포럼에서 열린 일반시사회 관객이 처음 눈물을 쏟은 부분은 종범이 오빠(정경호 분)에게 첫눈에 반한 상은이가 실연했을 때다. 감당키 어려운 상처로 힘겨워 하는 상은이가 시리고 먹먹한 가슴을 흰밥으로 채우는 장면이 보는 이를 울렸다. 또 하나,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상은이가 세상 속 유일한 버팀목인 엄마의 죽음을 통해 인생의 큰 비밀인 죽음에 대해 알아가고,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며 성장해가는 모습은 가슴 저리다. 상은이가 사랑에 대해 알아가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눈물 공장의 제조 라인이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정말 일곱살처럼 보이는 강혜정의 호연과 탄탄한 연기력의 배종옥이다. ‘허브’의 웃음 제조법 영화 ‘허브’에는 정신지체 상은이 외에도 좀 엉뚱한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상은이의 사랑, ‘꼴통’ 공익요원 종범이 오빠다. 원인은 다르지만, 사람과 세상에 대해 솔직하게 반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겉치레를 아는 평범한 우리들이 보기엔 좀 모자라고 엉뚱하게 비쳐 웃음을 자아낸다. 그리고 웃음을 논하며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영란이, 승현이다. 허인무 감독의 전작 ‘신부수업’의 하지원과 권상우를 어린 시절로 옮겨놓은 듯, 승현이는 극중에서 신부님으로 불린다. 상은이가 정신연령 일곱, 육체나이 스물이라면 영란이는 그 반대다. 보통 영화에선 어른들이 소화할, 세상 다 산 듯한 대사들을 내뱉는 두 아이의 모습은 ‘우리의 자화상인가’ 뜨끔하기에 앞서 커다란 웃음을 선사한다. 누가 ‘바보’라고 하면 꽉 물어버리는 상은이, 허브를 좋아하다 못해 화투 흑사리 껍데기에 집착하는 설정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웃음을 생산한다. 반복 재생으로 인한 식상함과 지루함 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맛깔스런 양념으로 사용했다. 정신지체아의 유쾌한 성장기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꿈에 그리던 ‘왕자님’ 종범 오빠를 발견한 상은이, 상은이가 국제변호사인 줄 아는 종범. 오해로 시작된 종범의 사랑은 모진 이별을 고하는 듯하더니 상은이의 순수함에 이끌려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종범을 결사반대하는 이가 있었으니 상은이의 엄마다. 모자란 딸을 혼자 두고 가느니 누군가 곁에 세워두고 가는 게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상은이에 대한 종범의 마음을 순수하게만 볼 수 없는 엄마는 사내의 불장난에 딸이 상처 입기보다는 꿋꿋하게 홀로서기를 바라기에 이별을 종용한다. 상은이는 세상을 떠나는 엄마 말을 들어야 할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을 택해야 할까. 뻔한 듯하지만, 다소 의외의 답이 숨겨져 있다. 둥글둥글한 돌들이 만드는 합주 ‘허브’에는 배종옥을 비롯해 이원종, 이미영 등의 중견 연기자들이 출연한다. 강혜정과 정경호에 비하면 대선배인 이들은 연기력 자랑을 하거나 극적인 표현을 앞세워 튀지 않는다. 모두가 편안하고 여유롭게 보인다. 기본기를 갖춘 배우답게, 제 자리에서 제 몫을 해내며 영화의 큰 바퀴를 돌린다. 이들이 굴리는 마차에 타고 있는 건 강혜정과 정경호다. 몸은 스무살, 정신은 일곱살. 강혜정이 만들어낸 상은이는 정말 그렇게 보인다. 표정이며 말투, 목소리까지 감탄스럽다. 상은이가 종범 오빠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가출을 고민하는 순간 등장하는 장화홍련, 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의 캐릭터는 모두 강혜정이 1인 다역으로 소화했는데 재미있는 볼거리다. 특히 ‘혀 꼬부라진’ 인어공주 연기는 압권이다. 정신지체아를 스크린 위에 만들어내는 정극 연기에서 배꼽 쥐게 하는 코믹연기까지 소화하는 그녀를 보노라면 혀가 내둘러진다. 배우들은 나날이 발전하길 바란다는데, ‘다음 번에 더 잘 할 수 있을까’ 강혜정의 차기작이 괜스레 걱정될 정도다. ‘폭력 써클’에 이어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정경호의 안정감 있는 연기와 맑은 미소도 ‘허브’의 매력이다. 상은이가 부딪히는 사회의 벽들에 그녀보다 더 울고 웃는 종범의 모습은 상은이 뿐 아니라 뭇 여성들의 ‘왕자님’이 되기에 충분하다. 상은이를 괴롭히는 폭력녀들을 보며 ‘저녁 밥상에 올라있어야 할 깻잎 반찬들’이라고 거침없이 칭하는 것처럼 영화 곳곳에서 선보이는 유머감각도 유쾌하다. 정신지체아 3급 상은이의 가슴 벅찬 첫사랑, 엄마와의 이별을 통해 어른으로의 성장통을 그린 영화 ‘허브’는 11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