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유월의 숲길을 걸으며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은 나와 무관한 듯 살고 있지만 예고 없이 날아드는 부고를 받으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화들짝 깨닫곤 한다. 장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의 풍경이 궁금하다. 인생의 마지막 통과의례인 상례를 전시하는 예아리박물관에 들어선다. 피라미드를 연상시키는 황토 색깔의 건축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 죽음 너머를 상상할 수 있을까
5월부터 시작된 ‘2025년 박물관미술관 지원사업 운남성 소수민족 생활문물전’은 11월 말까지 이어진다. 박물관 맞은편의 체험실에 전시된 중국 소수민족의 독특한 의상을 감상한다. 카페에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뜻밖의 전시물과 맞닥뜨린다. 나비 및 나방 표본과 하얀 목화와 누에고치다. 고치에 들어있던 누에 번데기가 날개를 가진 나방이 되는 ‘우화(羽化)’는 죽음에서의 부활처럼 신비롭다. 고치에서 1천400m에 달하는 0.02㎜의 가는 명주실을 뽑는 특별한 체험은 관람객들이 삶과 죽음을 생각하도록 만들어줬을 터다.
관람객들은 한동안 작가가 돼 자신만의 도자기 만들기에 몰입한다. 초벌을 거쳐 재벌된 도자기에 여러 색상의 유약으로 전시된 유물의 문양 및 형태를 그리고 즉석에서 구워 가는 체험은 인기가 많다. 흙으로 만든 컵이 전혀 다른 성질의 도자기로 변신하는 것도 죽음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피카소의 그림 판화 찍기와 소와 쥐를 비롯한 십이지신상 목판화 찍기 체험도 재미있을 것 같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어떤 옷을 입을까. 이족, 묘족, 동족, 요족, 납고족, 회족까지 여섯 민족의 유물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묘족의 모자는 조선의 유생들이 썼던 유건과 비슷해서인지 정감이 간다. 전시된 옷의 모양과 색상이 화려할 뿐 아니라 문양도 추상적이다. 부츠처럼 생긴 신발도 손으로 직접 만든 수제품이라니 더욱 정겹다. 어깨 부분에 우리나라 전통 베갯잇 비슷한 장식을 단 옷도 시선을 끈다. 장신구의 색깔과 문양이 어쩌면 이처럼 화려하고 정교할까.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여섯 폭의 화조 병풍은 쉽게 보기 힘든 유물이다. 입체적으로 조각한 새와 꽃이 살아있는 듯 섬세하다.
■ 독수리와 로켓을 타고 하늘로 떠나는 천장과 우주장
장례식의 참뜻은 사람이 죽어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 이를 축복하고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가나의 장례문화가 그렇다. 1층 전시실에서 장례식을 축제처럼 즐기는 영상을 감상한다. 임권택 감독이 1996년 장례를 소재로 한 영화 제목도 ‘축제’였다.
“아프리카 가나는 특이하고 유쾌한 장례문화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장례를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라 고인이 좋은 곳으로 간다는 믿음으로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지요.” 오정교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장례를 축제로 만든 가나인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에 공감한다.
도무지 관으로 보기 어려운 관이 여럿이다. 해설에 귀를 기울이니 비로소 의문이 풀린다. “가나 사람들은 고인을 좋은 관에 모시고 싶어 합니다. 고인이 평소 좋아했거나 가지고 싶어 했던 것을 관 모양으로 제작했지요.” 음악에 맞춰 죽은 자를 헹가래 치듯 들었다 놓았다 하고 다 함께 춤을 추기도 하는 충격적인 영상이 나온다. “1950년에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젊은 목수 카네 크웨이는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한 할머니를 위해 비행기 모양의 관을 만들었습니다. 이후 그에게 농부는 양파 모양, 어부는 배 모양의 관을 제작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를 ‘아트관’이라 부릅니다.” 아트관 예술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파조의 원작 아트관 8개를 살펴본다. 사자, 코끼리, 독수리, 물고기, 비행기, 배, 자동차를 관으로 사용한 저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부럽다.
가마처럼 보이는 상여는 또 무엇일까. “이 좌식 상여는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1900년대 초에 제작돼 1950년대까지 사용한 것입니다.” 시신을 운구할 때 살아있는 사람처럼 앉히기도 했던 일본의 문화가 재미있다.
세상에 알려진 장례 중에서 ‘천장(天葬)’ 혹은 ‘조장(鳥葬)’보다 놀라운 문화가 또 있을까. 티베트고원 일대에서 행해지는 조장은 고산지대여서 땔감을 구할 수 없어 화장을 하기도 어렵고 땅에 묻어도 쉽게 썩지 않기에 택한 방법이다. 독수리가 가득한 흑백사진을 살펴본다.
“사자의 몸을 독수리가 뜯어먹게 하는 천장은 티베트와 윈난성, 쓰촨성에 살고 있는 장족의 장례법입니다. 독수리가 육신을 먹고 하늘로 오르게 한다고 믿었지요.” 흥미롭게도 미국, 일본, 스위스 등 선진국으로 불리는 7개국에서 사람의 유골을 로켓에 실어 우주로 날려 보내는 우주장(宇宙葬)을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천장과 닮은 꼴이다.
■ 한글 소설 구운몽의 주인공이 등장하는 상여
2층 한국관은 볼거리가 더욱 풍성하다. 이야기는 자주 들었지만 정작 실물은 보기 어려운 칠성판과 마주한다. 일곱 개의 구멍 모양이 밤하늘의 북두칠성이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백자 그릇들은 무덤에 넣었던 부장품이다. 20세기 초에 제작한 100세가 넘은 전남 진도의 상여와 경주 최씨 상여를 가까이서 만나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최부자’로 유명한 경주 최씨의 상여는 실제로 사용했던 유물인데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녹색 치마와 분홍 저고리를 입은 여인을 비롯해 상여 위에서 춤을 추는 있는 여인들은 누구일까. “서포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해 지은 한글 소설 ‘구운몽’에 나오는 팔선녀들입니다. 서포는 효자로 유명한 분 아닙니까.”
또 한 분의 효자를 만난다. 바로 18세기 조선의 문예부흥을 주도한 제22대 정조대왕(1752~1800)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천하의 명당인 화산 현륭원에 모시고 자급자족의 신도시 수원화성을 건설한 효행의 군주. 출판을 비롯한 기록문화를 활짝 꽃피운 정조대왕의 장례를 재현한 것은 아주 멋진 결정이다.
“‘정조대왕국장도감의궤반차도’를 바탕으로 3년간 고증과 수작업을 거쳐 국장행렬을 재현했습니다. 행렬에는 20㎝ 크기의 토우 인물 1천384명, 말 341필, 가마 20채가 등장하지요.” 경기감사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전체 행렬을 감상하려면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녀야 한다. 행렬에 여러 가마가 등장한다. 왕의 상여인 ‘대여’와 ‘견여’를 비롯해 왕실 귀중품을 실어 나르는 ‘채여’와 제기를 실은 ‘요여’도 있으니 비교해 보면 재미있다.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짐작하듯이 장례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세계에서도 드물다.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삼백로에 있는 예아리박물관은 세계의 상장례 유물 5천여점을 보관 전시하는 전문박물관으로 2013년 4월 문을 열었다. “예아리는 예가 있는 아름다운 울타리라는 뜻이지요. 상장례(喪葬禮)문화를 북돋우고 효와 예를 체험하는 공간입니다.” 상장례문화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절차 및 예법이 시기별 지역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처럼 특별한 장례 전문박물관은 언제 어떻게 세워졌을까. 설립자는 임호영 관장의 부친 고 임준 회장이다. 임 회장은 종합장례용품 회사인 ‘삼포실버드림’을 운영하며 1991년부터 국내외를 다니며 관련 유물과 자료를 수집한다. “설립자는 재산의 사회 환원 차원에서 세계의 상장례문화를 후대에 전하고자 했습니다. 예아리박물관은 경제성과 편의성을 좇으며 본래 의미가 퇴색·변질된 전통 상장례문화를 연구하고 그 참된 의미를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너무 바쁘게 살아 죽음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래서일까. 우리 시대 어느 철학자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죽음은 삶을 충실하게 살게 하는 원초적인 힘이다. 예아리박물관을 나오며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떠올린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김준영(다사리행복평생교육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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