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성 전체 지키는… 동북포루는 전략적 요충지
화성에는 보병 진지인 포루가 다섯 곳이 있다. 그런데 동북포루는 다른 포루에는 없는 특이하고 유일한 점이 여럿 있다. 하나는 위계가 낮은 건물인데도 ‘각건대’란 별칭을 부여받았고 둘째는 벽등(甓磴)을 설치한 점, 셋째는 치성에 벽돌을 사용한 점, 그리고 지붕에 용두를 설치한 점 등이다.
이 중 ‘전편에 왜 벽등을 쌓았을까’에 대해 답을 찾아봤다. 요약하면 한정된 공간에 2배의 병력을 운용하기 위함이고 비상시에 집 안의 병사들이 공격 장소로 이동하는 동선을 10분의 1로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오늘은 ‘왜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쌓았을까’에 대해 살펴본다.
답은 벽등 자체에서 찾았다. 왜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뒀을까에 대한 답은 동북포루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즉, 동북포루는 왜 다른 포루에 비해 두세배의 병력이 필요했을까를 알아내야 한다. 더 많은 병력을 운용해야 할 동북포루만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평면 입지, 입면 입지, 공간 입지로 나눠 살펴보자. 공간 입지란 위치에 대한 분석이다.
첫째, 평면 입지다. 동북포루의 방어 범위에 대한 문제다. 의궤에 “화성에 치는 여덟 곳이지만 실제로는 16곳이나 된다”라는 말을 맨 앞에 던져놓았다. 이 의미는 치, 포루(군졸), 공심돈, 봉돈, 노대는 구조와 역할이 같다는 의미다. 각루, 포루(대포)도 구조적 분류만 다를 뿐 기본 역할은 같다.
화성은 이웃하는 시설물 사이에서 유기적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유기적 방어란 양쪽 두 시설물에서 원성에 접근하는 적을 좌우에서 옆구리를 동시에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한 시설물 자체의 독자적 역할보다 몇 배의 효과를 낸다. 화성 시설물 대부분이 성에서 돌출시킨 철성(凸城)제도로 일정 간격으로 연이어 배치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제 동북포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원성을 살펴보자. 모습이 2개의 활이 연속적으로 놓인 모습이다. 첨부한 주변 지형도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동장대에서 동북포루까지 1개, 동북포루에서 북동포루까지 1개로 2개의 활이 연속된 모양이다. 화성 전체에서 이런 형태의 원성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런 입지에서 동북포루의 방어 담당구역을 보자. 좌측으로 북암문·북수문·북동포루까지, 우측으로 동암문과 동장대까지 담당한다. 여기서 암문은 방어시설로 보지 않는다. 어차피 비상시 암문 폐쇄를 원칙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담당 구역의 범위를 보면 좌측이 378보3척, 우측이 304보2척이다. 화성에서 담당 구역이 꽤 넓은 편이다. 얼마나 큰 편일까.
화성에서 시설물 간 거리 평균이 원성 거리로 107보다. 이곳은 화성 평균의 3배 약간 넘는 방어 범위다. 직선거리로 봐도 양쪽 모두 300m, 즉 255보에 이른다. 평균의 3배가 넘는 범위를 담당하려면 당연히 다른 시설물보다 3배의 병력과 화력을 배치해야 한다. 이것이 벽등이 있어야 할 첫 번째 이유다.
둘째, 입면 입지다. 화성의 요충지 동북포루의 문제다. 동장대에서 북동포루까지 높낮이를 보자. ‘동장대에서 동암문까지 내리막, 동암문에서 동북포루까지 오르막이 되고, 동북포루에서 북암문까지는 굽어진 내리막, 북암문에서 동북각루는 휘어도는 오르막, 그리고 동북각루에서 북수문으로 내리막’인 지세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이 범위에서 최고로 높은 곳은 동북포루가 있는 자리다. 동북포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내리막이 연속된 지형·지세다. 글보다도 실제 동북포루의 벽등에 올라보자. 누구에게나 한눈에 이런 지세가 들어온다. 벽등에 오르는 것은 허용되니 누구나 볼 수 있다. 수원화성이 좋은 이유다.
이런 요충지 동북포루 입지를 생각하면 중요한 것은 동북포루 자기 자신의 방어다. 동북포루가 적에게 함락된다면 끔찍한 결과를 초래한다. 동북성 전체를 적에게 내어준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동북포루는 자신도 지켜야 하고 동북성 전체도 지켜야 하는 운명이다.
동북포루의 입지 중요성은 팔달산 남쪽 능선과 같다. 팔달산 남쪽 능선에 대해 “적군이 점거하면 화성 전체의 허실을 모두 엿보이게 된다”고 했다. 즉, 화성 요해처다. 이를 대입하면 동북포루 입지도 마찬가지다. “지세가 별안간 높아져 방화수류정과 동장대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동북포루를 적군에게 빼앗기면 화성 전체의 허실을 모두 엿보이게 된다”가 될 것이다.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방어 병력을 많이 배치한다. 이래서 팔달산 남쪽 능선에 용도를 설치했다. 용도는 긴 구간에 병력을 많이 배치할 수 있다. 동북포루에는 무슨 대책을 계획했을까. 동북포루에는 벽등을 설계했다. 벽등은 병력을 위아래로 배치할 수 있는 특수한 시설이다. 같은 평면에 2배의 병력을 운용할 수 있다. 이것이 벽등이 있어야 할 두 번째 이유다.
셋째, 공간 입지이다. 동북포루 터에 대한 문제다. 동북포루는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꼭 설치해야 할 위치이지만 터에 큰 단점이 있었다. 뾰족한 산꼭대기여서 평평하고 너른 터가 없었다. 더구나 동북포루는 돌출된 치성 위에 배치해야 했기에 너른 터를 만들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 포루 중 동북포루가 작은 이유다.
비좁은 산꼭대기 터여서 전후좌우 수평으로 확장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대안이 벽등이었다. 위아래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수평 확장이 아닌 수직 확장 설계인 셈이다. 똑같은 평면에 사용 공간을 수직 방향으로 늘린 것이다. 좁은 공간을 2배로 활용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벽등이다.
3배 병력 운용 중 나머지 1배는 어디일까. 동북포루 벽체다. 동북포루 안에 남아 있는 병력이 전안폐판의 총안을 통해 적을 공격하도록 했다. 1군은 벽등 위에서, 2군은 벽등 아래에서, 3군은 포루 안에서 방어와 공격을 맡았다. 3배의 병력과 화력의 운용이다. 이 중 3분의 2를 벽등이 맡았다. 이것이 벽등이 있어야 할 세 번째 이유다.
정리하면 동북포루의 방어 범위가 다른 포루의 3배나 넓었고 북동쪽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또 산꼭대기여서 많은 병력을 운용할 터가 좁았다. 이런 조건이 동북포루 벽등의 탄생이다.
오늘은 3차원 입지 분석으로 동북포루에만 벽등을 설치한 이유를 살펴보며 정조의 전략적 공간 감각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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