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단지에서 꽃 피운 문화예술…최혜미 한국공예체험박물관장 [문화인]

작업복 입은 근로자, 지역주민 누구나 편히…가장 문턱 낮은 박물관 지향 
전통의 아름다움 꾸준히 알리고, 예술의 본질 담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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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1층 내부 나전칠기와 소품 등이 전시된 공간에서 최혜미 한국공예체험박물관장이 촬영을 하고 있다. 정자연기자

 

점심시간쯤 되자 작업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박물관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거나 작품을 보며 담소를 나눴다. 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 세차를 하던 남성 등 관람객은 다양했다.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작품과 내부는 고색창연함에 현대미가 더해졌다. 공장이 들어선 시흥시 매화산업단지에 둥지를 튼 이 곳은 지난해 8월 문을 연 한국공예체험박물관이다. 삭막했던 산업단지에 새로운 문화예술이 피어나고 있다. 

 

■ 문턱 낮춘 박물관… 누구나 일상에서 예술을 즐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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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1층은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구성됐다. 정자연기자

 

한국공예체험박물관은 홍익대 대학원, 펜실베니아·밴쿠버컬리지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작가, 큐레이터 등으로 활동한 최혜미 관장(46)이 전국에서 가장 문턱 낮은 박물관을 지향하며 개관했다.

 

“좋은 곳에 가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설 수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누구나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누리고, 또 작가들의 작품이 기꺼이 관람되는 공간이 필요하죠. 마음먹고 가지 않아도,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동네 아지트 같은 박물관, 누구나 새로운 경험을 하고 꿈을 꿀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선 박물관 전속 작가들의 전시와 기획전을 관람하거나 16개의 전통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한국공예체험박물관이지만 내부는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졌다. 복합문화생활공간을 표방한 만큼 공간들은 예술과 문화, 상품과 체험, 쉼과 여유를 품었다. 박물관 1층은 쇼윈도 갤러리가 있어 외부에서도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맥간 공예 전시부터 내부에 쓸모를 다하고 버려지는 자개장을 쇼케이스로 감각적으로 변화시켜 여러 유물과 조형 작품을 모았다.

 

2층은 갤러리 공간으로 여러 회화작품과 조형작품이 전시됐고 공예작품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3층은 세미나실과 전통 좌식공간으로 구성돼 전통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품은 규방공예와 민화, 맥간공예, 전통 한복 의상 등 다양하다. 2층과 3층 사이엔 ‘소소한 도서관’이 있어 아이들 누구나 박물관 어디서든 책을 읽고 즐길 수 있다.

 

■ 버려진 것에서 새로움 찾고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 담긴,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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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맥간공예 등이 전시된 내부 공간. 정자연기자

 

조각을 전공한 최 관장이 전통에 빠져든 것은 버려진 것에서 새로운 예술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다. 맥간공예의 보릿대가 출발점이었다. 누군가에겐 쓰레기이지만 누군가에겐 재료가 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맥간공예의 보릿대에서 전통의 아름다움을 엿봤다.

 

이후 ‘전통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에 맥간을 배우고 옻칠을 배우고 나전도 배웠다. “민화를 그린 그 마음은 결국 누군가를 위한 소망, 바람이더라고요. 누군가에게 주는 따뜻한 메시지, 낡은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전통에 끌려 전통 체험을 주제로 현대의 작품이 공존하는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산업단지에 박물관이 웬 말이냐’ 하는 주위의 만류도 많았다. 하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최 관장은 자신이 거주하고 사업체를 운영하는 곳에서 문화예술을 꽃피우고 싶었다.

 

‘맛집은 산골에 있어도 소문난다’라는 자신감으로 박물관을 열었다. 확신은 들어맞았다. 개관한 지 아직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직장인들을 비롯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가족 관람객, 대학생, 전문가 과정을 꿈꾸는 지망생 등 많은 이들이 이곳에 전시를 보거나 체험하러 온다. 주말엔 사람도 차도 없이 적막했던 산단에 관람객을 실은 관광버스가 줄을 잇고 있다. 커피값이 부담 없다 보니 어르신들도 좋아하는 공간이 됐다.

 

최 관장은 단순한 전통의 전시를 넘어 전통이 가진, 문화예술이 가진 본질을 박물관에 오롯이 담는 게 목표다. 누구나 감동받을 수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문화예술 공간이다. 전시를 하고 싶으나 마땅한 공간을 찾지 못하는 작가들을 위해 인도 갤러리를 무상으로 열어 놓고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작가들의 작품이 포털 쇼핑몰에서 판매가 이뤄지도록 돕는 것도 이런 이유다.

 

지역사회와의 접점을 늘리며 예술이 가진 연대와 회복, 나눔의 가치도 전파하고 있다. 그동안 학교와 문화센터에서 강사로 교육하고 전시한 경험을 살려 지역의 다문화센터, 장애인센터와 연계해 무료 한복 체험 등 재능기부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최 관장은 “전통만 있는 게 아니라 문화복합공간으로 특이하고 재밌는 곳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며 “지역단체와 함께하는 이벤트도 만들어 누구나 누리고 즐거움을 맛보는 문화예술을 전파하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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