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선 ‘화성 공기 단축 7대 요인’ 중 네 가지를 알아봤다. ▲호참 공사를 삭제한 것 ▲성 높이를 낮춘 것 ▲석산을 가까이에서 찾은 것 ▲운반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 점이다. 이번 회에선 나머진 요인과 지금까지 알려진 공기 단축과 관련해 알려진 여러 허구 및 오류를 밝혀 본다.
화성의 공기를 단축할 수 있었던 다섯째 요인은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벽돌은 당시 처음 사용하는 자재였다. 처음 사용하는 자재라면서 공기 단축이라니 무슨 말인가. 화성 시설물은 벽에 많은 구멍을 내야 했고, 외부와 내부를 매끈하게 마감해야 하는 벽이 많았고, 곡선 구조물도 많았다. 이런 경우 돌로 가공하고 설치한다면 천문학적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벽돌을 사용한다면 이런 형태는 식은 죽 먹기다. 벽돌이 최적의 솔루션이었다. 벽돌을 사용해 공기가 대폭 단축됐다.
벽돌 사용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주재료의 이원화 전략’이다. 총리대신과 감동당상의 반대에도 벽돌 사용을 결단한 정조의 숨겨진 전략이다. 대규모 공사에서 주재료가 하나일 경우 자재와 인력의 수요 쏠림이 생긴다. 공기 지연 리스크다. 이 수요 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정조는 처음부터 돌에서 돌과 벽돌로, 석공에서 석공과 벽돌공으로 수요 분산을 계획했다. 공기 지연 리스크를 해소하고 공기 단축 효과도 얻은 것이다.
여섯째, 파일럿 프로젝트를 운영했다. 화성 성역은 산상성과 평지성의 혼합이고 시설물은 60개이지만 유형은 19개로 한 유형에 여러 개인 시설물이 많다. 또 조선 최초로 시도되는 건축물도 많다. 이런 특징의 대규모 프로젝트는 파일럿 프로젝트 적용이 공기 관리의 기본이다. 파일럿 프로젝트란 어렵고 복잡한 것, 처음 시도하는 것, 같은 형태로 다수를 짓는 것들에 대해 표본으로 공사 초기에 완공하며 각종 문제점을 조기에 찾아내 시행착오를 없애는 기법이다. 정조도 착공 초기에 유형별로 문제점을 파악하는 파일럿 프로젝트 기법을 활용했다.
가장 먼저 장안문, 팔달문, 북수문, 남수문을 착수해 문, 수문, 문루, 옹성, 홍예, 적대에 대해 시공성, 소요 기간 등의 문제점을 초기에 확인했다. 9월에는 북동포루와 북서포루를 완성해 성 쌓기, 벽돌 구조, 공사 기간에 대해 검증도 했다. 공사 기간 10년 중 착공 1년 이내에 기본계획 8개항 전체와 19개 중 13개 유형에 대해 문제점을 모두 파악한 것이다. 공사 초기 단기간에 10년 공사 전체를 꿰뚫어보며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 공기 단축에 큰 효과를 얻었다.
근거도 있다. 하나는 정조가 을묘원행을 착공 1년 후로 잡은 점이다. 북성,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 서장대를 원행 시 시찰하겠다고 발표한다. 왜 하필 이 시설물이었을까. 평지라 착수가 쉽고 모든 유형의 시설물이 포함된 구간이기 때문이다. 원행은 표면적 이유이고 파일럿 프로젝트 실시가 정조의 속마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정조는 착공 10개월 전 화성 성역 총책임자인 총리대신에게 “성역이 곧 시작될 터인데 좋은 생각이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이에 채제공은 “역사는 마땅히 먼저 어렵고 쉬움을 깊이 판단해 그중 어려운 것을 먼저 하면 모든 실마리가 잡힐 것입니다”라고 답한다. 채제공이 말한 ‘어려운 것을 먼저 한다’와 ‘모든 실마리가 잡힌다’는 의미가 바로 파일럿 프로젝트의 핵심 개념이다. 그 왕에 그 신하다.
끝으로 일곱째, 현장 책임자의 실무 경험, 현지 경험을 중시했다. 공사 핵심 조직은 공사비와 공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요즘도 설계 책임자와 현장 책임자를 잘못 만나면 프로젝트가 망한다. 정조도 “만약 감동에 훌륭한 사람을 얻는다면 어찌 반드시 10년까지 끌 것인가. 모든 일은 먼저 규모를 정함만 못하고, 규모는 미리 경기함만 못 하며, 경기는 또 그에 적격자를 얻음만 못하다”고 했다. 즉, 건설에서 사람이 우선이고 중요하다는 말이다.
화성 성역에선 총리대신, 감동당상, 도청(都廳)이 핵심 조직이다. 총리대신에 채제공, 감동당상에 조심태, 도청에 이유경을 임명했다. 모두 군사, 자금 운용, 축성, 수성(修城), 이주 업무 경험자였고 화성이나 인근에서 근무, 거주를 한 자로 현지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공기 단축에 영향을 미쳤을까. 신속하고 바른 의사 결정이다. 건설에서 신속은 돈과 시간이고 바른 의사는 돈, 시간과 품질이다. 정조는 이들의 건설 경영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상으로 모두 일곱 가지 공사 기간 단축 요인을 꼽았다.
이제는 그간 알려졌던 단축 요인에 대한 허구를 살펴보자. ‘패스트 트랙으로 운영해 단축됐다’는 설이다. 분명한 오류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모든 공사가 패스트 트랙, 즉 설계시공 병행추진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공사는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진행했다. 다음 ‘공사실명제를 채택해 단축됐다’는 설이다. 역시 허구다. 왜냐하면 공사실명제란 장인이 이름을 걸고 시공 품질을 높이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빨리 하기 경쟁하려고 건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거중기의 발명으로 단축됐다’는 다산박물관 해설사의 설명도 있다. 오류다. 거중기 1부는 선단석과 무사석을, 녹로 2좌는 홍예석을 인양하는 데 쓰였다. 공기 단축에 약간의 도움은 됐겠으나 전체 공기를 단축하는 데 영향은 크지 않았다. 인력 절감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기 단축 요인의 대상은 10년이 정해진 이후 수행된 모든 단축 행위다. 꼭 착공 후 공사 중에 행한 것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성 성역의 공기 단축 요인을 살펴보며 정조가 ‘꼭 참견할 때’에 ‘꼭 참견해야 할 것’을 신속하게 결정했음을 엿봤다. ‘필요하지 않은 때’에 ‘허접한 것’에 목숨 거는 못난 지도자는 정조의 공기 단축 전략에서 분별력을 배워야 할 것이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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