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생명길… 점자블록 가로막은 ‘버스 매표소’ [현장, 그곳&]

인천 남동구 ‘교통약자’ 통행 방해...장기 미운영에 도로 ‘흉물’ 전락
철거 예산확보·집행비 청구 난항, 區 “방문·계도 거쳐… 철거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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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 인근, 운영을 중단한 매표소가 점자블록을 가로막고 있어 시각장애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정성식기자

 

“점자 블록이 무언가에 막혀 갑자기 끊기고, 다시 이어지질 않아 난감합니다.”

 

21일 오전 10시께 인천 남동구 모래내시장 한 아파트 인근 버스정류장. 뽀얗게 쌓인 먼지와 굳게 닫힌 문을 보아 운영을 중단한 지 한참이나 된 듯한 시내버스 매표소가 인도 위에 서있다.

 

작고 낡은 매표소는 거리 미관을 해치는 모습이기도 했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시각장애인들의 통행을 돕는 점자 블록을 깔고 앉아 있었다.

 

‘잠깐 멈추고 주의를 살피시오’ 라는 뜻으로 설치한 점형 블록이지만 멈추라는 표시만 있을 뿐, 또다시 ‘따라 가시오’라는 의미의 선형 블록은 이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시각장애인 A씨는 “점형 블록이 나와 길을 잠시 멈추고 지팡이로 다음 선형 블록을 찾았는데, 컨테이너를 때리는 소리가 나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문을 열지도 않는 매표소를 왜 치우지 않아 통행에 불편을 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빨리 치우면 좋겠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같은 날 오후 1시께 남동구청 인근 버스정류장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오랜시간 운영하지 않은 듯 한 매표소는 점자블럭과 바로 인접해 설치돼 있어 어린아이 조차 지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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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청 인근 버스정류장에 설치한 매표소가 점자블록과 너무 가깝게 자리잡아 시각장애인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정성식기자

 

보건복지부 등이 발간한 ‘시각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매뉴얼’에 따르면 선형블록 좌우로 0.9m 내에는 보행 장애물을 제거하라고 권고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시각장애인 B씨는 “근방을 자주 방문하는데 매표소와 점자 블록이 너무 붙어있어 길을 걷다가도 매표소를 닿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상태”라며 “지팡이가 없다면 부딪쳐야만 하는 구조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토로했다.

 

인천 관내 운영을 중단한 버스 매표소가 도로의 점자 블록과 너무 가깝거나 아예 점자 블록을 막아버린 채 방치돼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보행권을 방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남동구에만 29개 버스 매표소가 있다.

 

이 중 12개 매표소가 주인의 사망, 건강 상의 이유로 장기미운용 상태로 남아 점자 블록을 막거나 쓰레기가 쌓이는 도로의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장기 미운용 버스 매표소 등은 도로법에 따라 철거가 가능하지만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원칙적으로 관련 대집행 비용을 매표소 주인에게 청구해야 하지만 대다수가 노인이나 장애인으로, 집행 비용 청구도 사실상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이정순 남동구의원(구월2동, 간석2.3동)은 “장기간 운영하지 않는 버스 매표소는 길거리 미관에도 나쁘다”며 “더욱이 시각장애인들을 배려하는 안전한 도로를 만드려면 반드시 매표소를 철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남동구 관계자는 “장기 미운용으로 신고가 들어오면 전화 후 현장 방문, 계도, 계고절차를 거쳐 철거할 예정”이라며 “철거 비용 문제는 더 논의해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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