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이 솟은 길… 적군으로부터 성안 지킨 ‘화성 걸작품’
화성 탐방객 대부분은 용도를 성으로 인식한다.
용도가 성인지 아닌지 근거를 찾아 정의해 본다.
용도는 성이 아니고, 주변보다 높게 “솟은 길“을 말한다.
아울러 왜 성으로 인식하는지 알아보자.
팔달산 능선 남쪽 서남암문을 지나면 양쪽에 여장이 있는 길이 있는데 이곳을 용도(甬道)라 한다. 평평하고 양쪽에는 낮은 담과 노송이 늘어선 아주 편안한 길이다. 많은 사람이 요즘 말로 “멍 때리기 좋은 곳”이라 한다. 정말로 힐링 플레이스다.
생소한 용어 용도에 대해 의궤에 “예 제도에 군량을 운반하고 매복을 서기 위해 낸 길”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로 미뤄 화성의 용도는 용도의 끝에 있는 서남각루인 화양루에 군량과 군수물자를 운반하는 길로 보이지만 이 용도의 목적은 팔달산 남쪽 능선을 오르는 적군을 먼저 정탐하기 위해 매복을 서는 공간이다. 용도가 없는 경우 이 능선을 적이 점거하면 화성, 특히 산상서성과 평지남성의 허실을 적이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용도를 화성 시설물 중 최고의 성공작이라고 보고 있다. 이유는 첫째, 용도는 평지남성과 산상서성 방어력의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용도 없이 평지남성과 산상서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다. 둘째, 용도를 설치하지 않았다면 대신 설치해야 할 성을 계산해 보면 어림잡아도 화성 전체의 20%는 될 것이다. 사업비를 천문학적으로 줄여준 효자가 용도인 셈이다.
이런 용도가 성이냐, 아니냐는 논란 속에 있다. 용도는 성일까? 아닐까? 우선 화성에서 성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자. 성의 구조나 시공 방식에 대해 의궤에 “성의 높이는 2장이 기준인데 산 위에서는 그 5분의 1을 감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를 바탕으로 성과 용도를 비교해 보자.
첫째, 용도는 성 자체가 없다. 용도의 위치는 산상이므로 성의 높이가 16척이어야 한다. 하지만 용도에는 여장 밑에 2척 미만의 석축만 있다. 이 석축은 높이를 떠나 여장의 기초인 기반석일 뿐이다. 반면 성은 기초인 성근, 몸체인 성신, 성과 여장의 경계인 미석, 그리고 그 위의 여장으로 구성된다. 둘째, 용도는 여장으로만 구성돼 있다. 성은 없고 담만 존재하는 것이다. 용도에 대해 의궤에 “산 위의 3면에 돌로 성가퀴를 쌓았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3면 모두가 성가퀴, 즉 여장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여장과 체성을 구분하는 미석이 없다는 것도 성이 아니라는 증거다.
셋째, 여러 기록에서 용도를 성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다. 의궤에 보면 성의 규모를 기록하며 용도 길이를 성과 별도로 취급해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여첩의 규모를 기록할 때도 용도의 성가퀴를 원성의 성가퀴와 분리해 취급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의궤에 서남암문을 경계로 남쪽은 용도로, 동쪽은 남성으로 구분해 호칭하고 있다. 또 서남각루의 위치를 ‘성 내’로 표현하지 않고 ‘용도 안’이라고 성과 분명히 구분해 표현하고 있다. 같은 성이라면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성과 용도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넷째, 용도라는 명칭 자체가 길인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한자 ‘용’은 ‘솟을 용’이며 ‘도’는 ‘길 도’로, 용도는 ‘솟아 있는 길’이란 의미이다. 즉, 길이지만 주변보다 조금 높이 솟아난 상태로 만들어진 길을 의미한다. 지금의 화성 용도의 모습을 봐도 솟아난 길임을 보여준다.
결론은 용도는 성이 아니고 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방문자 대부분이 용도를 성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많은 분이 중국 만리장성을 다녀온 까닭도 한몫하고 있다. 만리장성 위를 걸으며 본 모습과 용도를 걸으며 보는 모습이 같기 때문이다. 가운데 길이 있고 양옆에 여장이 있는 것이 만리장성 위를 걸으며 보는 구조와 똑같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 때문에 용도를 성으로 착각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화성 답사 방식 때문이다. 화성 방문자 대부분은 시설물을 자세히 본다거나 흥밋거리가 많은 성 안 쪽 길, 즉 성상로를 걸으며 화성을 한 바퀴 돈다. 성의 안쪽 내탁부로 걷는다는 것은 사실 성은 보지 못하고 담만 보고 걷는 것이다. 담이란 바로 여장을 말한다. 이런 답사의 연속 선상에서 용도로 들어오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성 위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마치 용도 바깥이 지금까지 걸어온 곳과 마찬가지로 “높은 성이겠지” 하는 생각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도 안에서 잠시 멈춰 타구를 통해 용도 밖을 내다보면 “어! 성이 없네”라고 할 것이다. 성 밖 길이 저 멀리 아래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있기 때문이다. 성이 아님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용도는 화성에서 공사 난도가 가장 낮은 구간이었다. 의궤 권수 ‘토품’편에 “서포루의 위 남쪽으로부터 화양루까지는 흙을 겨우 두어 자 파내자 돌이 깔려 있는 상태가 600보나 계속됐다. 돌을 깎아 판판하게 고르니 땅을 파서 기초를 다질 필요도 없고, 캐어 낸 돌을 그 자리에서 다듬어 사용해 돌을 떠서 실어오는 수고도 덜 수 있었다”라고 기록돼 있다. 화성에서 가장 공사가 쉬운 구간이었다.
용도에 가면 용도 밖도 한번 걸어보길 권한다. 서3치 옆 성 밖으로 나오는 통로를 이용하면 용도 바깥 길로 갈 수 있다. 이 길도 편안한 길이다. 안팎을 모두 걸으면 용도의 참모습을 느낄 것이다. 최소의 공사비로, 최고의 가치를 실현한, 화성의 걸작품 용도를 거닐며 정조의 의도를 엿보았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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