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사투… 갈 곳 없는 노숙인 [현장, 그곳&]

여름철 온열질환 노출 위험수위
최소한 일시적 피서 공간 필요
道 “고시원 숙박 시스템 가동중”

27일 오전 수원특례시 권선구 수원역의 정자에서 한 노숙인이 더위를 피하고 있다. 김은진기자 

 

“더위를 피해 갈 수 있는 곳은 다리 밑밖에 없습니다.”

 

27일 오전 9시30분께 수원특례시 권선구의 수원역 일대. 기온이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운 아침 작은 정자에서 노숙인 두 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내리쬐는 태양열을 피하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얼굴엔 우산을 덮고 있었지만 온전히 폭염을 피하기는 역부족인 상황. 더위에 지친 이들은 수차례 뒤척이기를 반복하다 결국 짐을 챙겨 그나마 그늘이 진 기둥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너편 육교 밑에는 또 다른 노숙인이 이불과 상자 등을 깔고 앉아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노숙인 이모씨(66)는 “한낮엔 더워서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울 때도 있다”며 “어제도 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앞으로 더 더워질 텐데 남은 여름을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같은 날 안양시 만안구 안양동의 한 공원도 비슷한 상황. 인적이 드문 공원 한 쪽 나무 그늘 밑 벤치에 노숙인 김모씨(72)가 가방을 내려놓고 땀을 흘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더위를 피해 역 대합실과 화장실 등을 수시로 옮겨 다녔다는 김씨는 “하루 종일 시원한 곳을 찾아다니는 게 여름철 일상이다. 너무 더워 숨 쉬는 것조차 어려울 지경”이라며 “사람들이 많은 곳은 피해 최대한 시원한 곳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기온이 35도까지 치솟는 등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도내 노숙인들이 여름 나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일정한 주거 시설이 없는 노숙인들은 여름철 온열질환에 쉽게 노출돼 있어 무더위를 피할 시설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이날 경기도에 따르면 도내 노숙인은 2019년 992명, 2020년 617명, 2021년 841명, 2022년 기준 788명이다. 이들 노숙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일시보호시설이다. 일시보호시설은 노숙인들에게 일시적인 잠자리와 급식을 제공하고 응급처치 등 일시보호 기능을 하면서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상담 의뢰, 병원 진료 연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노숙인 수에 비해 보호시설 수가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다. 도내 일시보호시설은 수원, 성남, 의정부 등 3곳뿐이다. 이들 시설의 수용 가능 인원도 각각 40명, 22명,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강관석 수원노숙인종합복지센터장은 “숨쉬기조차 무더운 날씨에 거리 노숙인들은 온열질환에 상시 노출돼 있다. 현재 시설만으로는 많은 노숙인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보호시설을 늘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당장 시설 확충이 어렵다면 이들을 위한 일시적 피서 공간이라도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경기도 관계자는 “일시보호시설을 늘릴 계획은 없다”면서도 “고시원 숙박 허용 등 노숙인들을 위해 다른 시스템을 가동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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