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보호시설’ 울타리… 피보다 진한 ‘사랑’ [가정의 달 특집 ‘우리는 가족’]

가정 폭력 피해·남모를 사연... 비슷한 처지 서로 보듬고 의지
보호종료 만 18세, 보육원·청소년 보호시설 퇴소 후에도 어버이날 등 찾아 가족 情 나눠

(해당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이미지투데이

 

1997년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박모씨(여)는 17살이 되던 때 집 근처 그룹홈 시설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박씨가 어릴 때 떠났고, 아버지는 알콜중독에 폭력까지 행사, 함께 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경기도 수원특례시로 올라온 박씨는 2019년 12월에 법적보호 기간이 종료돼 ‘자립준비청년’이 됐다.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받았지만 당장 머무를 곳이 없어 고시원을 택했다. 이후 하숙집, LH청년전세임대주택 등을 떠돌아 다니던 박씨는 지난해 11월 수원시 청년 주거복지정책인 ‘셰어하우스 CON’에 입주했다. 한 집에 같은 성별 청년 3명이 공동 거주하는 방식인데, 현재 2명이 살고 있고 입주자를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지난해 박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처음 만났다. 20여년 만에 처음 만난 어머니에게서 박씨는 가족의 느낌을 느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자립준비청년들은 맘 편히 의지할 사람도 없고, 사회적 지원 또한 미비한 상황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워 방황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따뜻한 가족이자 인생의 버팀목은 혈연관계가 아닌 보호시설에서 만나 인연을 맺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박씨는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고, 교감 할 수 있어 정신적으로 편하다”면서 셰어하우스에 들어온 이후로 심리적 안정감이 생겼다고 한다.

 

부모님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도 생겨났다. “이곳에 와서 서로 얘기하다보니 어떤 지원과 혜택들이 있는지도 알게 됐고, 자립준비청년 단톡방에도 초대받았는데, 나와 비슷한 청년들이 900명 정도가 모여 있어 놀랐다”면서 “이전에는 단톡방이 있는지, 이렇게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는지 몰랐는데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서 이전에 혼자 뭔가 하려고 했던 것 보다 훨씬 좋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박씨에게는 가족이 더 있다. 아빠같은 분이다. 

 

박씨가 대학교를 다닐 때 맹장이 터져 응급실에서 눈앞이 캄캄했을 때 시설에 있을 때 알게 된 원장님이었다. 목회활동을 하시는 원장님에게 박씨의 연락이 닿았고 다음날 한걸음에 전라북도에서 수원까지 달여왔다고 한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던 박씨는 병원비 등 여러 도움을 받았다. 

 

박씨는 “먼저 내가 잘 지내는지 자주 연락해 주시고 얼마 전에도 샴푸나 마스크 등 생활용품이 필요한지도 물어보신다”면서 “나에게는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분으로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분”이라고 애틋한 표정을 띠었다. 

 

보육원 뒤뜰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 명륜보육원 제공

 

경기 의왕시 명륜보육원도 가족들이 함께 모여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보호 시설이지만 이곳에서 자랐던 이들에게는 ‘집’이었고 지금도 가족들이 사는 곳.

 

1951년 한국전쟁 당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설립된 명륜보육원에는 그동안 남모를 사연으로 가족과 떨어지게 된 아이들이 모여 살았고 지금은 29명의 아이들이 지내고 있다. 

 

부모, 형·누나, 오빠·언니인 직원 20여명도 이들에게는 가족이다. 여기 살고 있건 퇴소했던 모두 이곳을 ‘명륜집’이라고 부른다. 아이 한명을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처럼 이곳에서 아이 1명이 여러명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만 18세가 되어 명륜집을 떠났지만 전국 곳곳에서 가족을 꾸리더라도, 홀로 살고 있더라도 여건이 되면 모두 어버이날, 명절, 연말에도 이곳을 찾는다. 결혼해 자신의 아이를 데려오기도 한다. 퇴소한 최고령 연장자는 여든살인데 손주와 함께 이곳을 찾기도 한다. 

 

끈끈한 인연을 바탕으로 명륜집에서 나온 자립준비청년들은 저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기술을 배워 창업을 하거나 가정을 꾸리며 저마다 다양한 일자리를 갖게 됐다.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자립준비청년 2명은 여전히 명륜집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한명은 우울증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꾸준히 아르바이트로 홀로 서기를 준비 중이며 다른 한명은 지자체에서 조건부 수급을 받았지만 혼자서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다. 

 

6년째 보육원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연 사무국장은 “두 친구 모두 LH 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이자도 안밀리고 있다"면서 “어린 나이부터 모든 걸 혼자 해결해야 해 불안해하지만 가족처럼 잔소리도 하고 말동무를 해주면서 스스로 설 수 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만 18세가 되는 보호종료 아동은 매년 평균 2천400여명에 달한다. 경기지역에서도 매년 300여명의 청년들이 보호시설을 떠나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다. 대부분 아무런 도움 없이 홀로서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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