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규모 논란에 예산 문제 겹쳐... 복원사업 첫삽 못뜨고 수십년 표류 道 기념물 지정 탓에 ‘각종 규제’... 있던 상권마저 사라져 낙후 악순환 市 “효율적 보존·관리 방안 고심”
“약국을 가려면 20분이나 걸어가야 하는 이곳은 ‘육지 속 섬마을’입니다. 만년제가 조선시대 저수지였다고 하는데, 이곳 주민들은 저 메마른 저수지 때문에 늪에 빠진 기분입니다.”
19일 찾은 화성시 안녕동에 있는 경기도 기념물 제161호 ‘만년제’. 도를 대표하는 기념물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적이 드문 이곳엔 2m에 달하는 녹색 울타리가 만년제 전체를 둘러싸고 있어 삭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공사 안내’라는 팻말 안쪽으로 언뜻 보이는 만년제 안쪽은 잡목 더미를 비롯해 잡초까지 무성히 자라 기념물이라기보단 버려진 공원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곳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만년제를 ‘흉물’이라고 표현하며 혀를 끌끌 찼다.
안녕동에서만 60년 이상을 살았다는 A씨(69)는 “한때 내다버린 쓰레기가 가득했던 만년제를 기념물로 지정했으면, 복원 사업 등을 차질 없이 진행해 지역 대표 관광지로 만들어야 하는데 수십년째 아무것도 진행된 게 없다. 관광객은커녕 주민조차 못 들어가게 통제하고 있다”며 “여기에 각종 규제도 가득해 지역 발전이 멈춰진 상태다. 편의시설도 부족해 병원과 약국 등에 가려면 20분가량을 걸어 병점역 주변 상권까지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만년제는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묻힌 현륭원(현 융릉)을 풍수적으로 비보(裨補·도와서 보충)하고 주변 농가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고자 축조한 일종의 저수지다.
도는 1797년에 만들어진 만년제가 당시 권농정책을 보여 주는 중요한 사적이라고 판단하고 지난 1996년 7월 도 기념물로 지정했다. 아울러 정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화성시와 손잡고 만년제를 복원하는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만년제가 위치 및 규모 논란에 휩싸인 데 이어 예산 문제 등까지 겹치면서 사업이 장기간 표류했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이 떠안는 실정이다.
안녕동에서 살다 만년제에서 3㎞가량 떨어진 봉담읍으로 이사한 김상범씨(65)는 만년제로 인해 지역이 ‘육지 속 섬마을’로 전락했다고 분개했다.
그는 “문화재 보호에 따른 건축물 높이 제한 등으로 인해 만년제 주변 발전과 상권 활성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었겠느냐”며 “기념물 지정 전에는 상권이 들어설 기미가 보였는데, (지정 후) 모두 무산되거나 있던 것들도 없어졌다. 마치 섬마을처럼 고립돼 주민들은 떠나고, 지역은 낙후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게 역사적 가치조차 의문인 만년제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만년제의 효율적인 보존 및 관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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