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 다중이용시설의 방역패스 제도가 중단된 후 QR 단말기, 열화상 카메라 등 방역물품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오전 수원특례시 권선구의 한 중국음식점. 해당 음식점 입구엔 스탠드형 체온측정기 1대와 QR 코드 인증을 위해 설치됐던 태블릿 PC는 전원이 꺼진 채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오미정씨(60)는 “재작년에 방역물품 세트를 13만원이나 주고 구매했는데 현재는 아무 곳에도 사용하지 못하는 애물단지”라며 “정책이 또 어떻게 바뀔 지 몰라 쉽사리 처분도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날 오후 용인특례시 기흥구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도 방역물품들이 애물단지로 전락하기는 마찬가지. 해당 매장 창고 한 켠에선 활동을 멈춘 체온측정기와 스마트폰 공기계가 발견됐다. 해당 카페는 이 같은 방역물품을 약 11만원을 들여 구입했지만 되팔지도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인들은 태블릿 PC나 열화상 카메라 등을 온라인 중고시장에 내놓고 있지만, 구매가의 절반으로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수원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성식씨(60)는 “한 때는 장사를 하기 위해 필수였던 방역물품이 이젠 자리만 차지하는 고철에 불과하다”며 “중고시장에 내놔도 반의 반 가격도 책정되지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이런 가운데 중소벤처기업부가 운영 중인 방역물품 지원금 제도도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제도는 기존 방역물품을 구매한 소상공인·소기업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정작 방역패스가 의무화된 지난해 12월6일 이후 구매자에 한해서만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지난해 방역패스가 도입되기 전인 지난 2020년 6월 QR 코드 전자출입명부 제도 실시 시기부터 자비를 들여 단말기 등을 구매한 터라 이 같은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커피숍 사장 이명기씨(41·용인)는 “이미 재작년에 구매해서 영수증도 다 사라져 방역물품 지원금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자비를 들여가며 방역에 협조한 만큼 정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정부가 표준 가격을 정해 일괄 구입한 뒤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 교육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6일 이후에 구입한 방역물품에 대해서만 구입비용을 지원하는 이유는 해당 시기 이후부터 방역패스 의무화 제도가 시행됐기 때문”이라면서도 “그 이전에 방역물품을 구입했다면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대한 폭넓게 비용처리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지역의 소상공인 사업체 수(2019년 기준)가 약 158만개인 점을 고려하면, 도내에는 최소 158만개 이상의 방역물품이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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