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걸어온 길] 적폐청산 칼잡이서… ‘공정·상식의 리더’로 청와대 입성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는 모습
(왼쪽부터)초등학교 4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즐기는 모습.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기자회견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의 검사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내일을 바꾸는 대통령’을 내세워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이 키워주셨기에 국민의 명령을 숙명으로 받들어 내일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그는 부당한 권력에 원칙과 뚝심으로 흔들림 없이 맞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며 마침내 대업을 이루게 됐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칼잡이’에서 ‘제1야당 대선 후보’가 되기까지 롤러코스터 같은 삶을 살아온 그의 인생이야기는 이제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에 수록된다.

사법연수원 입학 전 모습
사법연수원 입학 전 모습

■ 서울대 모의법정서 신군부 전두환에 무기징역 선고

윤석열은 1960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서 대학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또래보다 한 뼘은 더 큰 덩치를 지녔던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남을 돕는 데 주저하지 않았을 정도로 의리가 있던 아이였다. 왜소한 체구로 놀림을 받는 친구가 있을 때면 먼저 나서 말렸고 방과 후 함께 축구를 즐겼던 친구가 배고픔에 수돗물로 배를 채우면 손을 잡고 중국집에 함께 가 짜장면을 사주기도 했다.

이 같은 윤석열의 면모는 부친의 권유로 입학한 서울대 법대 시절에도 이어진다. 서울대 법대 동아리인 ‘형사법학회’ 회원이던 윤석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았던 그는 당시 신군부 정권의 수장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12·12사태의 책임을 물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음 날 학교 호외에는 신군부 세력에 대한 법과대생들의 궐석재판이 있었는데 재판장인 윤석열 학생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사복경찰이 대학 교정을 감시하던 당시 윤석열은 서슬퍼런 신군부 정권을 피하고자 외가가 있던 강원도 강릉으로 석 달간 피신한다.

■ ‘사시 9수’ 늦깎이 검사, ‘칼잡이’로 명성을 쌓다

서울대 법대 입학 후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윤석열의 성장기는 반전의 연속이었다. 대학 4학년 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후 2차 시험만 8번 낙방한 끝에 1991년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다. 당시 그의 동기로는 추후 검찰총장 시절 대립각을 세웠던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이 있다. 1994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늦깎이 초임 검사로 활동한 윤석열은 평범한 이력을 거치다, 노무현 정부 들어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에 투입되며 점차 ‘칼잡이’로 명성을 쌓았다. 1999년 6년차 검사 윤석열은 ‘박희원 경찰청 정보국장 뇌물수수 혐의’ 사건을 맡았다. 당시 김대중 정부의 실세로 통했던 박 국장이었기에 쉽지 않은 사건이었지만 윤석열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의지로 박 국장의 자백을 받아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촘촘한 수사망으로 증거를 수집해 심문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성과였다.

이후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에 들어간 그는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친정으로 복귀해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는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맡았다. 특히 2004년 불법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 최측근을 구속하기도 했다. 외압에 굴하지 않는 강골로 선 굵은 수사를 펼쳐온 윤석열은 이명재·정상명 전 검찰총장 등 선배들의 총애를 받아 대형 사건마다 차출됐고, 그 덕분에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거치는 경험을 하게 됐다.

■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박근혜 정권 겨누다 유배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윗선의 수사 외압 폭로를 하면서 내지른 국정감사장에서의 작심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윤석열은 2013년 정권에 칼을 겨눴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한 국감장에서 당시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향해 “영장 청구와 공소장 변경을 요구한 자신에게 ‘야당을 도와줄 일 있느냐, 야당이 이를 갖고 얼마나 정치적으로 이용하겠느냐‘ 등의 말을 전해 저는 더 이상 이 사건을 끌고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외압이 있었음을 폭로했다.

이 일로 정권에 밉보여 지방 고검 검사로 좌천된 그는 다음 해인 2014년 1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에서 대구고검 평검사로 좌천된다. 그렇게 그는 유배지를 전전하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이 무렵 당시 야당인 민주당은 정권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갖춘 윤석열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했지만 윤석열은 “검찰에 남아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고 완곡히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 ‘탄핵 정국’ 국정농단 특검 수사로 화려한 부활

2016년 1월 ‘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맡은 박영수 특별검사가 영입 1호로 윤석열을 지목하면서 암흑 같았던 그의 유배생활도 막을 내린다.

윤석열은 삼성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박근혜-최순실-삼성’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은 혐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했으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일가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기소했다.

윤석열은 2017년 ‘나라다운 나라’, ‘적폐 청산’을 외쳤던 문재인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됐고 ‘적폐 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를 치밀하게 수행하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이끌어 냈다.

 

■ 조국 일가 전방위 수사…정권 눈엣가시 ‘광야로…’

2019년 7월 차기 검찰총장에 내정된 윤석열은 한 달 후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으로 또 한 번 살아있는 권력에 날을 세운다. 조국 장관 내정자 가족의 입시비리 의혹 등이 터지자 윤석열은 수사를 결정하며 동시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후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추-윤 갈등’에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시도한 여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결국 문재인 정권과는 불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윤 후보는 지난해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외치며 임기를 넉 달여 남긴 시점에서 전격 사퇴 광야로 나갔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및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싸고 지휘 책임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실무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진술이 정면으로 충돌.연합뉴스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및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싸고 지휘 책임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실무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진술이 정면으로 충돌.연합뉴스

 

■ ‘맨손’으로 일군 국민의힘 대선 간판…대권을 거머쥐다

문재인 정부의 대척점에 섰던 윤석열은 보수의 아이콘으로 급성장하며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여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은 이런 윤석열을 향해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고 ‘6·29 선언’을 통해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지 않았던 만큼 적응 과정이 순탄치 않았고 이후 ‘윤석열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부각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핵심과 맞서 싸워 지지 않았다’는 대표 이미지를 구축하며 당내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의원 등을 꺾고 결국 제1야당 대선 후보에 올랐다.

윤석열은 이후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코로나19 극복 회복과 도약 ▲행복경제시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공정과 상식의 회복, 대한민국 정상화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대한민국 ▲당당한 외교, 튼튼한 안보 등 내일을 바꾸는 10대 공약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변화시킬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정성 있게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경쟁 후보들로부터 ‘불안한 안보관’, ‘국정 경험 부족’ 등에 대한 공세와 부인 김건희씨에 대하 네거티브에 시달렸지만 선거 막판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극적인 단일화를 이뤄내 보수 대결집을 이루어내며 마침내 대업을 이루었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을 방문해 특검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을 방문해 특검 수사를 촉구하는 모습

이광희기자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