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불법 도살장 갇힌 개 100마리, 관할 지자체는 뒷짐

市 “직접적인 도살 증거 없어 고발 조치 어려운 상황”
동물권단체 케어, 상태 위급한 개들 구호조치 시급

이달 10일 구리시 사노동 일원에 자리잡은 불법 개 도살장이 동물권단체 케어와 구리시 측의 현장 점검을 통해 적발됐다. 사진은 현장 급습 당시 뜬장에 갇힌 채 방치되고 있던 개들의 모습.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정부 차원의 논의(경기일보 10일자 4면)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또 다시 불법 개 도살장이 적발됐다.

27일 오후 구리시 사노동 일원에 자리잡은 야산. 산기슭으로 이어지는 황량한 벌판에는 낡은 건물 두 채(각 250㎡)가 위태로운 모습으로 서 있었고, 이를 중심으로 약 30m 반경에는 ‘접근 금지’를 알리는 주황색 끈이 둘러진 상태였다. 강풍에 으스러지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에선 끊임없이 앓는 듯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제의 건물들은 각각 불법 개 도살장과 번식장으로 쓰이다가 지난 10일 동물권단체 케어와 구리시 측의 현장 점검을 통해 적발됐다. 당시 ‘뜬장’에 마구잡이로 갇혀 있던 개들의 수는 100마리 안팎. 이 가운데 85마리 정도는 도살장, 15마리는 번식장에 각각 나뉘어 방치되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10일 구리시 사노동 일원에 자리잡은 불법 개 도살장이 동물권단체 케어와 구리시 측의 현장 점검을 통해 적발됐다. 사진은 현장 급습 당시 개들이 갇혀 있던 뜬장의 모습.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현장 급습 당시 촬영된 사진들을 보면 개들의 품종은 애완견으로 추정되는 소형견부터 대형견까지 다양했다. 또 개들은 오랜 시간 씻지 못한 모습으로 각종 오물과 함께 나뒹굴고 있었으며,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 속에 개들의 안전을 지켜줄 바람막이나 안전 장치는 전무했다. 그 대신 물이 가득 담긴 대야와 식칼 등이 발견됐다.

그러나 불법 현장이 적발된 뒤 3주가 넘도록 구리시는 별다른 구호 조치를 하지 않고 있어 시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여기에 현장 조사 당시 한 주무관이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받자 팀장급 공무원이 ‘귀하게 자라서 그렇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나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 24일에는 이 같은 내용을 비판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게시됐다.

이날 구리시청에 항의 방문까지 나선 김영환 동물권단체 케어 대표는 “동물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며 “현재 번식장에 갇힌 소형견들은 육안으로 봐도 피부가 엉망일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 구호 조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달 10일 구리시 사노동 일원에 자리잡은 불법 개 도살장이 동물권단체 케어와 구리시 측의 현장 점검을 통해 적발됐다. 사진은 현장 급습 당시 뜬장에 갇힌 채 방치되고 있던 개들의 모습. 동물권단체 케어 제공

문제의 발언을 한 팀장은 “당시 주무관이 현장 내부로 들어가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이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했던 말”이라면서도 “표현이 서툴렀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명했다.

구리시 산업지원과 관계자는 “개를 도살하려 한 정황은 있지만,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경찰에 고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도축은 절대 불가하도록 통제할 계획이며 우선 28일까지 한시적으로 외부와 격리하는 한편 그 이후 조치에 대해선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개 식용 종식을 위해 정부 부처와 동물단체 등이 구성한 위원회(경기일보 16일자 6면)는 이날부터 개 사육농장과 도살장, 식당 등을 상대로 개 식용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기간은 2개월로, 각 지자체 공무원이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이번 조사에선 농장이나 도살장 측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있어, 정부는 통계조사 목적 외에 농장 등의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안내하고 있다.

장희준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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