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그곳&] “보관함 안에 쓰레기만 가득”…시민 안전 지킬 지하역사 공기호흡기 관리 부실

9일 오후 성남시 모란역 분당선 승강장에 설치된 공기호흡기 보관함에 공기호흡기 대신 쓰레기와 휴대용 비상조명 등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윤원규기자
9일 오후 성남시 모란역 분당선 승강장에 설치된 공기호흡기 보관함에 공기호흡기 대신 쓰레기와 휴대용 비상조명 등 잡동사니가 들어있다. 윤원규기자

“위급 상황에 시민들을 살릴 공기호흡기 보관함에 쓰레기만 있다니…헛웃음만 나옵니다”

지난 2003년 19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지하역사 내 공기호흡기 비치가 의무화된 가운데 경기도 역사 곳곳에서는 여전히 이 같은 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채 시민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코레일에 따르면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하역사 층마다 2개 이상의 공기호흡기가 비치돼야 한다.

이날 오전 10시 하루 평균 이용객 3만4천여명의 수인분당선 모란역(성남시 중원구). 지하 2층에 있는 가로 38㎝, 세로 63㎝의 공기호흡기 보관함 두 곳을 열자마자 폴폴 나오는 먼지로 인상부터 찌푸러졌다.이후 확인한 보관함 안에는 공기호흡기는 온데간데없었고 6개의 휴대용조명등과 부서진 비상전화기만 가득했다.

수원역 지하 1층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현행법상 공기호흡기 보관함은 사용방법이 기재된 채 보이기 쉬운 곳에 설치돼 있어야 하지만 이날 찾은 현장은 옷가게 거치대에 걸려 있는 20여벌의 옷들로 인해 그 형태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9일 오전 10시 성남시 중원구 모란역(수인분당선) 지하 2층 승강장에 위치한 공기호흡기 보관함 안에 공기호흡기가 아닌 휴대용비상조명 등 다른 물건이 쌓여 있다. 이대현기자
9일 오전 10시 성남시 중원구 모란역(수인분당선) 지하 2층 승강장에 위치한 공기호흡기 보관함 안에 공기호흡기가 아닌 휴대용비상조명 등 다른 물건이 쌓여 있다. 이대현기자

취재가 시작되자 코레일 측은 부랴부랴 거치대를 치우게 했다.

용인시 기흥역에서도 공기호흡기 찾기 삼만리는 계속됐다. 지하 2층의 보관함 인근에는 보관함을 알리는 표지판이 없어 소화전과 구분이 안 되는 데다 어렵게 찾은 보관함에는 사용방법도 명시돼 있지 않았다.

탑승객 문준석씨(39)는 “하루 수만명의 유동 인구가 몰리는 역사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 발생 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지하역사 특성상 화재 발생 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철저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상식 우석대학교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지하에서 불이 나면 출입구 방향으로 유독가스가 퍼져 시민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며 “보관함을 찾기 쉬운 곳에 설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기 충전상태를 확인하는 등 수시로 공기호흡기를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코레일 관계자는 “관련기관과 협의해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정민ㆍ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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